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최근 편집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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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808080
[ 전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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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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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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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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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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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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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 Albums ]
[ Live Albums ]
[ Compilations ]




비틀즈의 역대 스튜디오 음반
1966년 8월 5일
7집 Revolver


1967년 5월 26일
8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년 12월 8일
Magical Mystery Tour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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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UK 차트 1위 앨범,
전번_앨범=The Sound Of Music,
전번_아티스트=Various Artists,
이번_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번_아티스트=비틀즈,
1위_기간=23주 연속,
후번_앨범=The Sound Of Music,
후번_아티스트=Various Artists)]

[include(틀:UK 차트 1위 앨범,
전번_앨범=The Sound Of Music,
전번_아티스트=Various Artists,
이번_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번_아티스트=비틀즈,
1위_기간=1주 연속,
후번_앨범=The Sound Of Music,
후번_아티스트=Various Artists)]

[include(틀:UK 차트 1위 앨범,
전번_앨범=The Sound Of Music,
전번_아티스트=Various Artists,
이번_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번_아티스트=비틀즈,
1위_기간=2주 연속,
후번_앨범=Val Doonican Rocks But Gently,
후번_아티스트=발 두니칸)]

[include(틀:UK 차트 1위 앨범,
전번_앨범=The Sound Of Music,
전번_아티스트=Various Artists,
이번_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번_아티스트=비틀즈,
1위_기간=1주 연속,
후번_앨범=Greatest Hits - Four Tops,
후번_아티스트=포 탑스)]

[include(틀:UK 차트 1위 앨범,
전번_앨범=Divide,
전번_아티스트=에드 시런,
이번_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번_아티스트=비틀즈,
1위_기간=1주 연속/누적 28주,
후번_앨범=Divide,
후번_아티스트=에드 시런)]

빌보드 200 역대 1위 앨범
Headquarter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Ode to Billie Joe



















































파일:sgt pepper.jpg

왼쪽부터 링고 스타,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파일:SgtPepper.jpg


50주년 기념반 커버 ▼

발매일
[[영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틀:국기|
]][[틀:국기|
]]
1967년 5월 26일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67년 6월 1일
녹음일
1966년 12월 6일 - 1967년 4월 21일
장르
팝 록, 사이키델릭 록, 사이키델릭 팝, 아트 록, 라가 록, 바로크 팝, 프로토 일렉트로니카
재생 시간
39:43
곡 수
13곡
프로듀서
조지 마틴
스튜디오
EMI
레이블
파일:7FF17EF7-7612-4390-BF5C-B00EF61850AD.jpg 팔로폰 레코드
사용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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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 보컬, 리듬 기타, 어쿠스틱 기타, 봉고, 피아노, 오르간, 해몬드 오르간, 콩가, 멜로트론, 카우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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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 보컬, 베이스, 봉고, 멜로트론, 피아노, 하모니 움, 오르간, 탬버린, 팀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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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 리드 기타, 어쿠스틱 기타, 오르간, 하모니, 탐부라, 마라카스, 케틀 드럼, 스와 만달, 시타르,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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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스타}}} : 드럼, 관형벨, 헨드벨, 봉고, 콩가, 탬버린, 마라카스, 하모니카, 보컬


1. 개요
2. 제목
4. 평가
5. 기타
6. 50주년 기념반
7. 수록곡
7.1. 트랙 리스트
8. 참여자
9. 영화
9.1. 줄거리




1. 개요[편집]


1815년 빈 회의 이래 서구 문명이 가장 단합되었던 순간은 페퍼 상사가 발표된 주였다. 유럽과 미국의 모든 도시에서 라디오 방송국들이 앨범을 틀어댔고 또 모든 사람들이 들었다. 서양인들의 돌이킬 수 없는 분열된 의식이 잠시 동안, 적어도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만큼은 통일되었다.

랭던 위너, 롤링 스톤 편집 고문


영화에 시민 케인이 있고[1]

, 소설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있다면, 대중음악에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있다

배순탁


영국록밴드 비틀즈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이름이자, 앨범 속 가공의 밴드의 이름이며, 음반의 1번 곡과 12번 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1967년 5월 26일[2] 발매. 미국에서는 6월 2일 발매되었다.

비틀즈의 음악사에서, 그리고 대중음악사에서도 손 꼽히는 명반이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 록히피 문화를 적절히 반영해 큰 인기를 얻고,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사이키델릭 록의 발전과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상업적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앨범이다. 3,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서 1보다도 조금 더 팔려나갔다고 한다. 즉, 비틀즈가장 성공한 앨범이다. 1970년대에 가서야 카세트 테이프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었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CD가 발명된 것을 고려하면, LP가 주류 매체이던[3] 1960년대 발매된 앨범으로서 이 정도의 기록은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4]

본 앨범을 기점으로 미국 '캐피톨 (Capitol)' 사는 영국에서 나온 비틀즈 앨범을 그대로 발매한다.[5]


2. 제목[편집]


제목이 꽤 길다. 지금 기준으로도 짧은 제목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음반 제목을 이렇게 길게 짓는 경우는 전무했다. 이름이 너무 긴 관계로 주로 'Sgt. Pepper's'나 '페퍼 상사(하사)' 등으로 줄여 부른다.

곡의 도입부 가사를 보면 "서전트 페퍼"[6]가 "20년 전 오늘" 밴드원들을 모집하고 음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음악 스타일이 유행에 뒤떨어진 적도 있었고, 다시 (복고풍의 유행 덕에) 유행을 탄 적도 있었지만, 항상 듣는 이들을 미소짓게 하는 음악을 해 왔다고.

제목의 "론리 하츠 클럽"20세기 영국식 영어로, 외로운 사람들, 즉 친구나 연인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클럽(술집) 또는 신문 개인 광고란을 뜻한다. 때문에 서전트 페퍼 밴드는 어느 론리 하츠 클럽에 소속된 전속 밴드라 상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밴드 이름이 "론리하츠 클럽 밴드"일 수도 있다. 가사를 보면 두 번째가 더 가능성이 높다.[7]

앨범 제목을 과연 누가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 비틀즈의 매니저이자 충실한 벗인 '멜 에반스'가 지었다는 것.
  • 폴이 처음에 닥터페퍼라는 이름을 생각해냈으나, 그것이 우연히도 미국청량음료 회사와 이름이 겹쳐 고심 끝에 이 이름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

하지만 베리 마일즈의 저서인 'Paul McCartney : Many years from now'에서 폴이 이야기하기로는 어느 날 멜 에반스와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S와 P가 적혀있는 봉투[8]를 보고 그 의미에 대해 서로 농담을 주고 받던 중, 문득 머릿 속에 가상의 밴드 이름이 떠올랐다고 한다. 50주년 기념반의 설명에서도 이와 유사한 유래를 소개하는데, 폴 매카트니에게 멜 에반스가 'Salt and Pepper (솔트 앤 페퍼)' 즉, 소금후추(소튼 페퍼)를 달라고 한 것을 'Sergeant Pepper (서전 페퍼)'로 잘못 들어서라고 나와있다.

3. 앨범 아트[편집]


파일:desktop.beatles.jpg
앨범을 펼쳤을 때

파일:Sgt Pepper'sbk.jpg
파일:Sgt Pepper's poto.jpg

커버의 전체적인 구도는 폴 매카트니가 잡았고, 팝아트계에서 유명한 '피터 블레이크 (Peter Blake)'가 디자인했다.

표지 디자인 과정에서 폴 매카트니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다. 원래 표지는 지금의 표지보다 훨씬 단순할 예정이었으나, 폴 매카트니는 지금과 같은 형식의 표지를 만들기를 원했다.[9] 초상권 구입 비용 때문에 큰 반발이 있었으나, 폴 매카트니는 설득 작업에 들어가 결국 지금의 표지를 만들어 냈다.

팝아트계에서 유명한 '피터 블레이크 (Peter Blake)'가 디자인했다. 그리고 표지는 굉장히 히트를 쳐서 여러 매체들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앨범 아트 쪽에서는 커먼의 Electric Circus, 데벤드라 반핫의 Cripple Crow가 이 앨범 아트를 오마주했다.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콜라주한 앨범 아트는 본작 오마주가 대다수인 경우가 많다.

다만, 이 앨범 자체가 워낙에 폴 매카트니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10] 매니저 엡스타인 사후 비틀즈의 분열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존 레논은 이후 그의 곡인 'How Do You Sleep?'에서 이 점을 들어서 폴 매카트니를 공격하기도 했다.

존 레논은 표지 인물로 예수, 마르크스, 아돌프 히틀러, 마하트마 간디의 4명을 지명했지만, 예수는 그 유명한 1966년의 '예수발언'으로 인해 엡스타인이 검토 단계에서 잘랐고, 히틀러는 사진까지 마련했지만,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촬영 단계에서 제외, 간디는 실제로 촬영되었지만, 국가의 정신적인 지주가 대중음악 포장에 사용된 것을 인도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EMI 회장의 판단으로 지워졌다. 또한, 배우 'Leo Gorcey'의 사진은 초상권료 400 달러 지불 요구 때문에 제외되었다. #

우측 상단에 보면 밥 딜런의 얼굴이 있다. 이 사진은 밥 딜런의 명반인 Highway 61 Revisited 커버에 있는 얼굴이다.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의 모습도 초기 비틀즈 멤버 인형 뒷부분에 위치해있다.

파일:external/eil.com/The+Beatles+Sgt+Peppers+Lonely+Hearts+Club+274560.jpg
국내에서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A Day in the Life"가 금지곡으로 지정받아서 제외되었으며, 표지의 인물 사진들 중 마르크스가 있다는 이유로 표지마저 편집을 당했다. 제목도 틀렸지만, 희귀반이어서 해외에서는 100$ 이상으로 비싸게 거래된다. 대신 국내에 발매된 초판은 앨범 커버가 그대로 나왔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50년 전 오늘의 비틀즈: 서전트 페퍼와 그 너머'에 제작 과정이나 뒷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피트 베스트의 집안에 있던 훈장을 빌려와서 착용하고 앨범 아트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나, 초상권 허락을 받기 위해 전세계에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느라 수개월을 허비한 이야기, 엡스타인이 이 앨범을 끔찍히도 싫어했다는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엡스타인은 비틀즈가 투어를 중단하고, 스튜디오에만 머물자 자신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고, 그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마약에 의존하게 됐다고 주변에서 증언했다.

또한, 조지 해리슨이 글씨를 도저히 못 알아먹겠다며 기계로 쳐달라며 건네준 노트를 보고 엡스타인의 비서가 타이핑한 뒤, 필기된 종이를 모두 휴지통에 버렸는데, 그게 이 앨범에 수록할 전곡의 가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말한 인터뷰도 있다.


4. 평가[편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전문가 평점
매체
평점
AllMusic
★★★★★
The Daily Telegraph
★★★★★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
MusicHound Rock
5/5
Paste
89/100
Pitchfork
10/10
Q
★★★★☆
Rolling Stone
★★★★★
Sputnikmusic
5/5
The Village Voice
A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보다) 나은 비틀즈의 앨범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가능하지만, 여전히 이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앨범은 없습니다. Sgt. Pepper 이후 (음악적으로) 따라야 할 규칙들은 없었습니다 - - 결과가 좋든 그렇지 않든 락, 팝 밴드들은 뭐든지 시도해볼 수 있었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극소수만이 비틀즈가 이 앨범에서 보여준 것처럼 음악의 광범위한 수용을 해내려고 시도했습니다.

AllMusic


1967년 출시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다양한 의미에서 현대 대중음악의 최대 환희의 순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황금 기념일은 분명히 Sgt. Pepper는 음악을 바꾼 앨범으로 많은 논평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 주장은 확실하게 사실입니다. - 그리고 Sgt. Pepper 보다 더 중요한 앨범은 없었습니다. - 정확히 적시에 나왔을 수도 있지만, 50년 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걸작처럼 들렸습니다.

SLATE #


비틀즈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역작으로 1990년대까지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고정적으로 평가받았던 명반이며, 대중음악계 명반의 대명사로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인 비틀즈의 앨범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최고작으로 항상 꼽히던 앨범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Revolver화이트 앨범, Abbey Road 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심지어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발매된 Magical Mystery Tour 앨범을 페퍼 상사 이상으로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1964년A Hard Day's Night 앨범도 쟁글 팝, 파워 팝 등 훗날 중요하게 자리매김되는 장르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효시격인 앨범인 점이 재조명되면서 갈수록 평가가 높아지고 있는 앨범이다. 즉, 과거와 같이 비틀즈의 5대 명반이니, 그 중에서도 최고는 페퍼상사니 이런 판에 박은 듯한 공식은 요즘엔 별 의미가 없어졌다. 요즘엔 Magical Mystery TourA Hard Day's Night, 또는 Help!도 기존의 5대 명반에 못지않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단, 이러한 요즘 추세 때문에 페퍼상사가 거품이니, 음악성이 과대평가되었다느니 오해하는 이들도 있는데, 위의 재평가는 어디까지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청자들의 음악적 식견이 넓어져서 이전의 Revolver나 화이트 앨범도 페퍼상사 급으로 평가하는 거지 페퍼상사가 가지는 음악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즉, 페퍼상사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완성도로 높게 평가받으며, 최근 들어 Revolver, Magical Mystery Tour, The Beatles 등의 중후기의 다른 앨범들 또한 최고로 인정받는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많은 평론가들이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이 앨범을 최고로 선정하고 있으며, 해체 이후 비틀즈 멤버들의 발언을 보면 내부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평점에서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단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만점을 받았다. 3곳에서 만점을 받지 못한 The Beatles보다도 나은 성적이다.

이 앨범이 과거에 비하면 평가가 좀 떨어진 이유는 당시의 들뜬 히피 문화적인 분위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어서 청자에 따라 보편적인 정서와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컨트리 뮤직, 스탠더드 팝, 보드빌 등 1960년대 시점에 전 세대를 아우르기 위한 시도로 인해 도리어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 또한 현대의 청자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과거에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어떤 리스트든지 항상 이 앨범을 올타임 1위로 놓는 등 지나치게 성역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 역시 이 앨범의 안티 형성에 하나의 원인이다. 롤링 스톤의 경우, 1987년부터 2020년의 리스트 개정까지 무려 33년 간 페퍼 상사를 명반 리스트에 늘 1위로 올려놓았을 정도이니 장기 집권이라는 불만이 틀린 것도 아니다.

뭐든 지나치게 띄우고, 신성시하면 그만큼 반감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듣기 전부터 지나치게 높은 기준과 기대감을 가지고 처음 들으면 어지간히 좋은 음악이라도 그런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점도 있다.

우선 '음악적으로' 페퍼상사를 초월하거나, 어깨를 겨루는 앨범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음반을 대중음악의 귀중한 유산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일종의 유행이던 록 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첫 번째 시도이며, 동시에 그러한 시도에 성공했다는 점.
  • 1967년 당시까지도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일종의 현상에 가까웠던 록이 다른 음악들과 만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
  • 20세기 중반은 고전음악이 고도로 실험화하면서 대중과 괴리되고,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분리가 심화되던 시기였는데, 페퍼상사는 20세기까지의 서양음악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분리와 고립이라는 현상을 넘어 서양음악이 나아가야 할 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
  • 1960년대에 만들어졌음에도 더 늦게 나온 수많은 앨범들을 능가하며, 한층 더 문학적인 가사와 앨범 커버에 전곡의 가사를 수록하는 시도를 최초로 하였고, 대중음악의 문학적 성격을 고양시킨 점.
  • 이전까지 비틀즈가 확보했던 대중성에 기초해 위대한 예술이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인 '보편성'을 획득한 첫번째 록 음반이라는 점.
  • Sgt. Pepper를 시작으로 모든 연령층에 록 음악으로 대표됐던 "대중음악의 인식"을 끌어올린 점.

특히 마지막 두 가지 이유들이 중요한데, 1967년 페퍼상사의 성공은 이미 비틀즈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던 젊은 세대의 지지만으로 달성할 수 없었다. 1963년1964년영국, 유럽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비틀즈 열풍이 불었을 때, 당혹스러워하던 기성세대들도 페퍼 상사는 거부감 없이 들었고, 소위 '고급 문화'를 지향하는 클래식 음악계도 페퍼 상사를 통해 받은 신선한 충격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페퍼상사 음반을 듣고 '슈만의 음악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라고 고백한 일화가 유명하다.

1967년 페퍼상사 발매 무렵, 미국의 남서부를 여행할 때의 경험을 적은 글에서는, 컨트리가 지배하고, 라디오에서 락이라고는 하루에 한곡도 들을 수 없는 동네에서 사람들이 페퍼상사를 듣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의 현대 대중음악 역사에서 성별,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장르의 음악을 대중적으로 즐기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남녀노소, 지역과 인종을 넘어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코드의 확보가 페퍼상사가 위대한 음반으로 평가 받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물론 페퍼상사도 완전무결한 음반은 아니며,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페퍼상사 이후의 어떤 음반도 이것만큼의 대중성, 보편성, 예술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객관적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들이 될 수 있다.

특히, 페퍼상사에 대한 높은 평가와 찬사는 19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락 음악이 보편적인 주류 장르로 정착한 1980년대에 그 기원을 찾는 과정에서 페퍼 상사의 역사적 공헌에 대해 인정하게 되면서 이전 시대보다 평가가 더욱 상승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글: 가장 사랑받는 비틀즈 앨범

그러나 얼터너티브가 락 음악의 중요한 조류로 자리잡은 1990년대 이후에 와서는 얼터너티브 사운드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RevolverThe Beatles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페퍼상사 외 다른 비틀즈의 음반들도 뒤늦게 재조명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앨범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단순하고 직설적인 로큰롤을 선호하거나 히피 문화에 반감을 가진 이들은 이 앨범의 화려한 사운드와 히피 냄새에 대해 비판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루 리드는 "들을 때마다 구역질이 밀려오는 앨범"이라 비난했다. 분명 루 리드의 음악적 성향인 '신랄한 미니멀리즘'과 정반대에 있는 앨범이긴 하다.

하지만, 페퍼상사 앨범을 깠다고 루 리드가 비틀즈 음악 전체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해외 록 포럼을 보면 루 리드를 비롯한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이 비틀즈에게도 어떤 부분에서는 꽤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인터뷰들이 의외로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루 리드는 Jackson Browne과 Richard Meltzer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로 조지 해리슨과 버즈의 로저 맥귄을 꼽기도 했다. 그리고 'Lou Reed: Between The Lines'란 책에서 비틀즈'역사상 가장 놀라운 작곡가들(The most incredible songwriters ever)'이라고 평했으며, 존 케일과 스털링 모리슨 역시 러버소울과 애비로드를 거명하며 벨벳 시절 비틀즈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루 리드가 A Hard Day's Night 앨범과 Get Back 세션 부틀렉에 심취했었으며, 폴 매카트니를 대단한 작곡가라고 평가했던 인터뷰도 있다.[11][12]

5. 기타[편집]


  • 이 음반이 녹음되고 있던 시기, 바로 옆방에서 매우 비슷한 분위기의 앨범이 녹음되고 있었다. 그 앨범이 바로 전설적인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 앨범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우연의 일치로 사이키델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앨범이 바로 한 벽을 두고 녹음되고 있던 것이다.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를 비롯한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모두 비틀즈의 광팬이었기 때문에 한번 비틀즈를 찾아가 인사를 해본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는 핑크 플로이드가 데뷔하기도 전이라 인지도가 형편 없었기 때문에 비틀즈핑크 플로이드의 역사적인 만남은 매우 짧게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 이 앨범이 나오기 전 더블 A싱글로 나온 Penny Lane-Strawberry Fields Forever가 그동안 지켜오던 영국 차트 1위를 놓치게 되면서 '드디어 비틀즈의 시대가 지나가는구나' 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고한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본 앨범이 나오게 되면서 그런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게다가 이 싱글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싱글로 평가받는다.

  • 원래 앨범에는 "When I'm Sixty-Four"와 "Lovely Rita"가 아닌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Penny Lane"이 수록될 예정이었다.[13]

  • 비치 보이즈와의 일화도 유명하다. 1965년비틀즈러버 소울을 듣고 깊은 감명과 충격을 받은 비치 보이즈브라이언 윌슨은 이 러버 소울 앨범에 영향을 받은 명작 'Pet Sounds'를 내놓았다. 이 펫 사운즈 앨범은 비틀즈에게도 음악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이에 비틀즈가 카운터로 내놓은 것이 페퍼상사 앨범이었다. 즉, 러버소울 → 펫사운즈 → 페퍼상사의 순으로 서로 창조적인 영향과 자극을 주고 받은 것.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펫 사운즈와 같은 해에 나온 비틀즈의 리볼버를 듣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고 불타오른 비치 보이즈의 브라이언 윌슨은 SMiLE 음반 작업 착수에 돌입한다. 그러나 브라이언 윌슨은 너무 불타 올랐는지[14] 제작하다가 다 엎어버렸다. 브라이언 윌슨은 특히 이 페퍼 상사 앨범을 듣고는 '비틀즈가 결국 음악적으로 이겼다'라고 생각하고는 음악적 경쟁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고 한다. 마지막 트랙인 A Day in the Life까지 들었을 땐 놀라움을 금치 못함과 동시에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은 "너는 음악적으로 이를 능가할 수 없다"는 장엄한 선고같이 느껴졌을 정도였다고 한다.[15] 결국 스마일 앨범 제작은 중단되어 엎어졌으나, 2004년에 리더 브라이언 윌슨 명의로 원래 구상했던 것과 가까운 'SMiLE'이 발매되었다. 자세한 것은 SMiLE 항목 참조.

  • 이 앨범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에 대한 영향력은 매우 방대한데, 이 앨범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이키델릭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 등은 물론이며, 훗날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쪽에도 영향을 줬다. 크라우트록의 거물이자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선구자격인 그룹인 탠저린 드림의 밴드명도 페퍼 상사의 수록곡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가사의 한 구절인 'Tangerine Tree'에서 따온 것이다.

  • 심지어 힙합 쪽에도 이 앨범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전설적인 힙합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리더 척 디도 그들의 최고 명반인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을 제작할 때 힙합계의 페퍼상사 앨범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16]

  • 역시 전설적인 백인 힙합 그룹인 비스티 보이즈의 명반 'Paul's Boutique'의 대표곡 중 하나인 'The Sounds Of Science'엔 페퍼상사 수록곡 셋을 포함한 무려 다섯 곡의 비틀즈 곡들[17]이 절묘하게 샘플링되어 있고 백인 록음악의 샘플링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힙합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

  • 비틀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밴드 중 하나이자 미국 인디 록의 거물인 플레이밍 립스2014년에 발표한 With a Little Help from My Fwends 앨범은 비틀즈의 이 페퍼상사 앨범 수록곡들을 통째로 커버한 오마주 트리뷰트 앨범이다.[18] 모비 등 게스트 뮤지션들도 여럿 참여했다.

  • 더 머펫 쇼의 베이스 기타리스트 플로이드 페퍼 상사의 이름과 복장은 대놓고 이 앨범에서 따왔다.



6. 50주년 기념반[편집]



트레일러
2017년 5월 26일, 50주년 기념으로 1CD, 2CD, 2LP, Blu-ray[19], DVD-Audio[20]버전, 슈퍼디럭스버전으로 발매되었다.

원래 앨범에 수록하려 했던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Penny Lane"을 보너스 디스크에 추가한 것은 물론 모든 음원이 리믹스되었다.

Blu-ray 기준으로 사운드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보컬이 쏠리던 보컬을 중심으로 잡아주었다. 그리고 음이 좀 더 부드러워졌으며, 악기의 위치감도 다시 재조정이 되었으며 저음을 좀더 보강해서 풍부하게 나오게 하였으며, 기존 공개했던 24Bit/44.1kHz 버전에 비해 화이트 노이즈를 많이 제거해서 음이 많이 깔끔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매했던 CD, LP, 24Bit음과 너무 다르게 악기 음위치를 재배치하여 원곡과는 거리가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A Day in the Life의 오리지날 믹스를 들으면 초반 존 레논의 보컬의 경우,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점점 중간으로 가서 왼쪽으로 가는 패닝 형태로 스테레오 음향효과를 주었는데, 2017년 리믹스 에서는 이부분 음향이 제거되었다.

이전부터 비틀즈의 몇몇 앨범의 스테레오에 보컬 오른쪽 고정 위치야 말이 많았던 부분이지만(Please Please Me, With The Beatles[21], Rubber Soul 그리고 그외 앨범들 일부에 수록된 곡들) 이 부분이야 수정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음향 효과를 주는 부분 제거나 악기음을 위치 변경한 것은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특히, 음향 효과가 생명인 페퍼상사에서는 우려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기존 모노 믹스는 비틀즈 멤버들이 직접 참여한 것에 반해 스테레오 믹스는 조지 마틴과 제프 에머릭이 며칠만에 만들었기에, 1967년 모노 믹스와 비슷하게 스테레오 믹스를 구성하기 위해 기존 스테레오의 음향 효과가 일부 희생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She's Leaving Home, Lovely Rita, Good Morning Good Morning 등도 모노 믹스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피치 즉 음의 높이가 조정되었다.[22]

또한, 원본 스테레오 믹스의 음향 효과를 굳이 유지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존 레논의 메인 보컬의 패닝이 오늘날 쓰이는 기법인지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대부분의 현대 스테레오 믹싱들은 메인 보컬은 항상 중심에 고정되어있고, 메인 보컬에 위와 같은 패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Deluxe Edition)라는 버전으로 24Bit 음원을 음원 사이트에서 판매를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LP, CD, 블루레이로만 공개하고 다운로드를 매우 꺼렸던 비틀즈 음원 중 24Bit로는 유일하게 다운로드 판매를 하였다. 다만 5.1 채널 믹스가 아직 블루레이로만 공개된 점이 아쉽다.

50주년 기념반에 담긴 음원은 유튜브를 통해 모두 공개되었다. 디럭스 에디션, 슈퍼 디럭스 에디션

파일:Sgt. Pepper Reissue UK Chart.png

2017년 6월 2일(현지시간), 50주년 기념반이 UK 앨범차트 1위에 등극함으로써 가장 오랜 텀을 두고 다시 차트 정상에 오른 앨범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빌보드 200 차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UK 차트 1위에 다시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9년 125일이다.

하지만 2년 뒤에 본인들다른 앨범에 의해 이 기록은 깨진다.


7. 수록곡[편집]


Help!부터 The Beatles까지의 비틀즈 앨범들은 LP는 모노와 스테레오 양쪽 다, 1987년 오리지널 CD는 오직 스테레오로만 발매되게 된다.

모노 CD는 2009년 The Beatles in Mono로 처음 공개되었다.

아래의 수록곡은 2017년 50주년 기념 스테레오 리믹스 음원.

모노 음원은 50주년 기념반을 통해 리마스터되어 인터넷에 공개되었으며, 50주년 기념 스테레오는 모노 음원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7.1. 트랙 리스트[편집]






8. 참여자[편집]


파일:Sgt Pepper'sall.jpg
  • 존 레논 - 리드 보컬, 하모니 보컬, 배킹 보컬, 리드 기타, 리듬 기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하몬드 오르간, 하모니카, 테이프 루프, 사운드 이펙트, 페이퍼 카주, 박수, 탬버린, 마라카스
  • 폴 매카트니 - 리드 보컬, 하모니 보컬, 배킹 보컬, 리드 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로우리 오르간, 하몬드 오르간, 박수, 테이프 루프, 사운드 이펙트, 페이퍼 카주
  • 조지 해리슨 - 리드 보컬, 하모니 보컬, 배킹 보컬, 리드 기타, 리듬 기타, 어쿠스틱 기타, 시타르, 탐부라, 하모니카, 카주, 박수, 마라카스
  • 링고 스타 - 메인 보컬, 드럼, 콩가, 탬버린, 마라카스, 박수, 튜블러 벨, 하모니카, 마지막 E 코드[23]
파일:페퍼상사 세션.jpg
  • 닐 아스피널 - 탐부라, 하모니카
  • 말 에반스 - 숫자 세기, 하모니카, 알람시계, 마지막 E코드
  • 제프 에머릭 - 테이프 루프, 사운드 이펙트
파일:Sgt Pepper's.jpg
  • 조지 마틴 - 테이프 루트, 사운드 이펙트, 하프시코드, 하모니움, 로우리 오르간, 글로켄슈필, 하몬드 오르간, 피아노, 피아노 솔로, 마지막 E코드(하모니움)
파일:Sgt Pepper'sbt.jpg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외부 세션맨이 많아 간단히만 적는다.
파일:Sgt Pepper'soc.jpg
(연주 배치도)

  • 색소폰 여섯 대
  • 프렌치 호른 네 대
  • 바이올린 여덟 대
  • 첼로 네 대
  • 클라리넷 세 대
  • 오케스트라 하나 (총 42명)[24]
  • 하프
  • 타블라
  • 시타르
  • 딜루바(인도식 하프)


9. 영화[편집]


파일:external/991.com/Bee-Gees-Sgt-Peppers-Lonel-497922.jpg

위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수록곡들과 비틀즈의 인기곡으로 이루어진 뮤지컬 영화. 1978년작.

이야기는 조지 번즈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고, 등장인물들은 대사가 전혀 없이 모두 비틀즈 노래 가사만으로 영화를 전개한다.

1천 2백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지고, 뮤지션 피터 프램튼토요일 밤의 열기 OST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비 지스가 주연으로 나왔지만[25], 2000만 달러 흥행(극장과 절반씩 수익을 나누니)은 안 좋았고, 비평가들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들었으며, 조지 마틴이 프로듀싱한 OST 앨범은 최소한 수백만장은 팔리리라 예상했지만, 불법 복사판이 나돌면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26] 음악 자체도 원곡에 비해 형편없다는 비판이 무성했다.

제작자인 로버트 스틱우드(1934~2016)는 영화 제작사인 RS0레코드 설립자이기도 한데, 이후 이 영화 배급사인 유니버설에게 이 레코드사를 넘기게 된다. 정확히는 1981년 폴리그램 레코드로 팔렸다가 나중에 폴리그램이 유니버설 레코드에 팔려 흡수되어 지금은 저작권을 유니버설이 가지고 있다.

천국의 문은 이 영화 4배가 넘는 제작비 들이고도 10%조차 못 벌었다....아주 쫄딱 망한 것도 아니고, 좀 손해를 본 정도 흥행이었다.

그렇기에 감독인 마이클 슐츠(1938년생)는 이후로도 영화감독을 쭈욱 이어나가 26년이나 활동하다가 2004년 은퇴하고, TV드라마 연출을 아직도 맡으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9.1. 줄거리[편집]


하트랜드(Heartland)란 마을에 Sgt. Pepper(페퍼 상사)와 그의 밴드인 Lonely Hearts Club Band가 있었다. 세계 2차 대전에도 음악으로서 평화를 일구는 데 크게 일조한 페퍼 상사 밴드는 하트랜드의 영웅이자 큰 자랑거리다.

마을 축제에서 연주를 하던 중 페퍼 상사가 사망한다. 그리고 페퍼 상사와 밴드는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져 시청에 전시되고, 페퍼 상사 밴드의 악기들은 마을의 보물이 된다.

페퍼 상사의 손자인 빌리 쉬어즈(피터 프램튼 분)는 형과 함께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나고, 쉬어즈의 세 친구인 앤더슨 형제(비 지스 분)는 쉬어즈를 도와 밴드를 결성한다. 이른 바 페퍼 상사 밴드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마을 축제 도중 대도시의 레코드 회사로부터 음반 취입 제의 전보를 받고 기뻐한다. 쉬어즈는 여자 친구인 스트로베리 필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페퍼 상사 밴드는 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향한다.

한편, 돈을 좋아하고, 사랑과 평화를 싫어하는 악당은 무스타드 박사를 내세워 페퍼 상사 밴드의 악기를 훔쳐내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페퍼 상사 밴드를 불러 도난당한 악기를 찾으려고 스토로베리 필즈를 도시로 보낸다.

우여곡절끝에 스트로베리 필즈는 페퍼 상사 밴드를 만나고, 이들은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고 도난당한 악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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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게도 시민 케인과 Sgt. Pepper는 가장 저명성 있는 평론지 (시민 케인은 사이트 앤 사운드, Sgt. Pepper는 롤링 스톤)에서 몇십년 동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앨범으로 선정했다는 점, 최근에는 비교적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시민 케인이 최근 아무리 저평가를 받는다지만 그래도 웬만한 리스트의 Top 5안에는 무조건 꼽히는 반면에 Sgt. Pepper는 Top 10 안에 들어가는 빈도도 상당히 낮아졌다는 점에선 좀 다르다.[2] 오랜 세월 6월 1일로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EMI도 6월 1일에 발매하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앞당겨져 5월 26일에 발매되었다. 이는 6월 3일자 영국 레코드 리테일러 앨범 차트에 이 앨범이 1위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발매 50주년을 맞은 2017년에야 발매일이 정정되었다.[3] LP 자체의 가격도 카세트 테이프와 CD에 비해 2-3배 수준이지만, 재생 기기인 턴테이블의 가격은 보급기 기준으로도 CD플레이어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의 몇 갑절이나 된다.[4] 당장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순위만 봐도 2,000만장 이상 판매된 음반 중 1960년대에 발매된 음반은 페퍼 상사와 Abbey Road, 더 후Tommy 단 세 장 뿐이다.[5] 전작 "Help!", "Rubber Soul", "Revolver"는 이름은 같지만, 영국반과 미국반의 수록곡의 차이가 있다. 이후, 그대로 발매된 것은 비틀즈조지 마틴의 협박 때문이다.[6] 서전트는 군대의 NCO일 수도 있고, 경찰의 경사일 수도 있다.[7] 특정 클럽 전속 밴드라면 사회자가 사람들에게 밴드를 "act"로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8] 소금(Salt)과 후추(Pepper)가 담겨 있는 봉투[9] 이 앨범 레코딩 즈음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는데, 죽기 직전 남긴 유언이 '페퍼 상사 앨범은 갈색 종이봉투로 한 번 더 포장할 것' 이었다고 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표지에 앨범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대신 종이봉투에 포장한 듯한 컨셉은 이후 앨범인 The Beatles를 통해 부분적으로 실현된다.[10] 폴 매카트니로저 워터스와는 달리 개인적인 인품이나 명망은 매우 높은 인물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로저 워터스 못지 않게 자기 주장이 강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페퍼상사도 The Wall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폴 매카트니의 독주라고 볼 수 있는 앨범이다.[11] 링크에 인용된 인터뷰에서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을 들어보면 솔로로도 들려줄 것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비틀즈 해산을 더 이상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12] 즉, 페퍼 상사 디스 같이 비틀즈를 깐 적도 물론 있었지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찬사를 했던 적 또한 많았던 것이다. 링크된 포럼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루 리드는 비틀즈 뿐 아니라 딜런, 스톤즈, 존 케일, 보위, 프랭크 자파 등에 대해서도 어떨 땐 칭찬했다가 어떨 땐 깠다가 하며 말이 바뀐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All Tomorrows Parties bootleg에선 루 리드가 비틀즈Day Tripper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루 리드는 존 레논 추모 공연에도 여러 번 참여했고, 존 레논의 솔로곡 Jealous guyMother를 여러 번 공연에서 커버해 부르기도 했다. 특히, Mother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라고 평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12곡들 중 3번째 명곡으로 꼽기도 했다. 존 레논의 명곡 Happy Christmas (War is Over)를 커버한 적도 있었다.[13] 특히나 존 레논이 작곡한 "Strawberry Fields Forever"은 이 앨범의 녹음 기간에 만들어진 첫번째 곡이었지만,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재촉으로 "Penny Lane"과 더불어 싱글로 따로 발매되어 나왔다. 그 당시, 비틀즈싱글에 실린 곡은 앨범에 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던 터였는지라, 결국 이 두 곡은 앨범에서 빠지고 만다. 나중에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은 이 결정에 대해 후회했다. 이런 이유로 50주년 리마스터 앨범에서는 이 두곡이 마지막 트랙으로 추가 되었다.[14] 다만, 녹음 도중 스튜디오에 불을 질렀다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정도로 미쳤으면 이미 녹음은 커녕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을 테니까... 브라이언은 적어도 녹음할 때는 철저히 프로다웠다는 것이 당시 세션 뮤지션들의 증언이다. 다만 녹음 도중 동료들에게 장난감 소방복을 입히려고 하는 등 기행을 일삼기는 했다고 한다.(...)[15] 훗날 브라이언 윌슨은 비슷한 제목인 'A Day in The Life of a Tree'란 제목의 곡을 만들었고, 비치 보이스의 Surf's Up 앨범에 수록된다.[16] 음악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명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겠고, 수록곡들이 이어져서 흘러가며 전체를 이루는 듯한 다이나믹한 구성과 사운드 꼴라쥬적인 요소 등도 그 앨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17] When I'm Sixty-Four, Sgt. Pepper, Back in the U.S.S.R, Sgt. Pepper(Reprise), The End[18] 물론 그냥 카피하듯이 똑같이 커버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밍 립스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거쳐 창의적으로 커버했다.[19] 24Bit/96kHz 2.0&5.1ch[20] 24Bit 48kHz 2.0ch[21] Money(That's What I Want)는 예외이다. 이 곡은 보컬이 중심으로 고정되어 있다.[22] She’s Leaving Home은 한 키 높게 음이 조정되어 있다.[23] A Day in the Life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여럿이서 E코드를 동시에 누르는 것이 나온다.[24] 실제 녹음에서는 네 번 연주한 것을 합쳤기 때문에 소리는 168명의 것이다.[25] 폴 매카트니에게 주인공역을 제안했지만 폴은 거절했다.[26] 잘 팔리지 않자 반품을 받아주었는데, 반품량이 배포량보다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