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및 고정관념/성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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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물학적 성
3. 사회적 성, 젠더학, 페미니즘
4. 연애, 결혼
5. 성생활, 성관계
6. 성추행, 성범죄, 성폭력, 강간
7. 성소수자, 퀴어 담론
8. 음란물, 외설 등



1. 개요[편집]


아래는 편견 및 고정관념의 예시 목록.보통 흔히 강자라고 인식되는 남성의 고정관념이 더 많다. 예시들 중에는 완전히 틀린 새빨간 거짓말도 있지만 거의 사실에 가까운 것도 있다. 또한 실제로 편견 및 고정관념에 해당하는 것도 있지만 단순 루머도 포함되어 있고, "오해와 진실" 류의 흔한 잘못된 통념을 반박하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실제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온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어라, 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싶은 항목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든, 나무위키는 개인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으며 온전히 전문적이지 못한 위키다. 이하의 목록은 단지 새로운 지적 탐구의 동기부여를 위한 참고사항 정도로 보는 것을 권장한다. 더불어 전문적이지 못하거나 도리어 엉터리에 가까운 거짓 해명이 실제 정확한 사실들 사이에 뒤섞여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성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



2. 생물학적 성[편집]


  • 우리가 정자이던 시절에는 우리도 1등이었다.
    •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현재는 학설이 변했다. 출처. 보통 제일 선두를 달리는 정자들은 여성의 체내라는 적대적 환경에서 산화되거나, 길을 잘못 들거나, 여성의 면역계의 공격을 받는 등의 이유로 수정에 실패한다. 첫번째로 난자에 도달한 정자들 역시 난자의 보호막인 난구세포층을 뚫으면서 소모되어 버린다. 결국 뒤처져 있던 정자들 중 하나가 난자와 결합하게 되는 것. 짧게 말하자면 우리는 1등이었던 게 아니고, 극도로 작은 확률을 통과한 것이다.
    • 물론 그 전에 "언제부터 나인가?" 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만일 정자와 난자의 수정 이후부터를 나라고 한다면, 결국 어떤 정자가 1등을 했는지는 다소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 정자는 생각보다 수동적이라 적극적인 이동보다는 흘러들어가는 편이며, 난자는 생각보다 능동적이라 정자 쪽으로 이동하고, 정자를 간택하기도 한다.
    • 주로 페미니즘 계열에서 퍼져있는 잘못된 상식이다. 정자는 여성의 질 안에서 1분에 최대 1~3mm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데, 정자 자체의 미세한 크기를 감안하면 적극적인 수준을 넘어 딱할 정도로 필사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또한 난자에는 이동성을 부여하는 섬모나 편모, 위족 등의 기관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물론 난자 역시 이동하긴 하나 이는 난자 스스로의 이동이 아니라 난소에서 배출된 뒤 수란관의 섬모에 의해 밀려나는 것. 정자를 간택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인데, 애초에 난구세포층이 뚫려야만 수정이 이루어지며 이는 난자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보호막이기 때문.
    • 이는 페미니즘의 시각과도 맞닿아 있는데, 여성의 수동성과 남성의 적극성 같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공격의도와 유사과학의 콜라보처럼 보인다. 여담으로 실제 수정의 과정은 공주를 구하는 용사의 이야기보다는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괴멸적인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처절한 공성전에 가깝다. 기본적인 정자는 물론 이동에 특화된 정자나 난구세포층을 뚫는데 특화된 정자, 여러 개의 머리로 다른 남성의 정자를 방해하는 정자 등 공성전에서의 병과분류와 마찬가지로 역할이 분화되어 있다.
    • 다만,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여 난자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정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기사에도 언급되듯이, 정자와 결합한 난자는 스스로 보호막을 만들어 다른 정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위 설명에도 나오듯이, 난자는 일종의 방어전을 펼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난자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왕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공주와 동일시하고, 여성은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고 확대해석을 하는 것을 반박해야 하는 것이지,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안티테제로 난자의 운동성을 굳이 과장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 겉으로 보이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런 역할을 안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어째서 페미니스트들이 난자의 능동성과 정자의 수동성을 강조했느냐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이는 마리 보나파르트(M.Bonaparte)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마조히즘적" 이라고 비하하면서 주장했던 내용, 즉 "난자는 정자가 다가와서 자신을 '관통' 해 줄 것을 기다린다. 이러한 침범은 파괴와 죽음을 수반하며, 생식은 상처로부터 시작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수동성은 모든 여성 세포들의 본성이다" 의 개소리에 발끈해서 정반대로 논의를 끌고 나가려 한 것에 기원한다. 어느 쪽이 더 적극적이든 간에, 세포 수준의 적극성(?)이 성인 남녀의 적극성 수준을 결정짓는다는 수준의 은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성교육을 기사와 공주의 비유로 이해하는 것도 '문학적' 해석을 한 차례 거친 결과물에 가까우며, 설령 그런 비유를 대놓고 친다 해도, 그 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이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서 "만약 난자라면 어떻게 했을까?"(What would Egg do?)라고 정말로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 "생리? 음... 그거, 설사 같은 거 아님? 그냥 한 번 쏴아 하고 끝내면 안되나?"
    • 월경 문서로. 생리는 설사도 아니고, 하루 아프고 한 번 쏟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약 일주일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피가 왈칵왈칵 흘러나오며, 그걸 의지로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소변처럼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불편하게 생리대를 찰 이유가 없다.

  • "생리휴가 쓰는 사람들은 꼭 보면 얄밉게 금요일이랑 월요일에만 쓰던데?"
    • 진짜로 그럴 수도 있지만 금, 토, 일, 월을 합치면 일주일 중 4일이니 이 기간에 1~3일 정도인 가장 힘든 생리 기간이 끼어있을 수도 있다. 다만 생리 휴가를 다른 용도로 쓰는 사람도 있는 것은 사실이라, 생리 휴가를 1분기 연속해서 월요일과 금요일에 쓴다면 28일 또는 35일 생리주기일 확률이 높은 것을 고려해 꼼수일 확률이 크다. 하지만 생리주기는 하루 정도는 불규칙할 수 있고 완전히 불규칙한 생리를 하는 여성들도 많다보니, 인격과 사람을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 공동 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생리 주기에 동조 현상이 일어난다.
    • 생리를 직접적으로 겪지 않는 남성부터 실제로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까지 널리 퍼져있는 일종의 오해로, 한때는 실제 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보고되거나 연구되기도 했었다. 1971년 네이처에서 처음 이에 대한 논문이 올라오고 그 뒤로 몇 가지 가설[1]들이 제시되고 연구되기도 했지만, 현재로선 실제로 조사해보니 그렇지 않은 사례가 쏟아져 나오는 데다 기존의 보고서나 연구에서 오류가 발견되었기에 '아 그거 오류가 많은 이론임.' 이 학계의 정론이다.
    •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실제 생리가 하루만 딱 일어나고 그치는 것이 아니니, 생리의 지속 시간과 주기를 생각해 보면 주기가 조금이라도 겹치거나 한 사람이 생리를 할 때 다른 이가 며칠 뒤 시작할 확률은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으니, 실제론 전혀 연관이 없어도 심리적으로 날짜가 가깝다고 느낄 확률은 매우 높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면 계산을 간략/정량화하기 위해 생리 기간을 그냥 5일로 대충 잡고 주기도 28일로 고정하고, 실제로 어떠한 이유에도 주기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뒤 심리적인 간격의 한계를 이틀로 잡는다고 가정해 보자.[2] 그럼 단 두 사람 사이만 따지더라도 심리적으로 생리주기가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확률은 15/28로 절반이 넘는다. 생리 날짜가 실제로 반드시 겹치는 경우만 인정한다고 해도 9/28로 확률적으로 1/3 가까이 된다. 여기서 그룹의 구성원이 많아진다면 당연히 주기는 겹치는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주기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이런데 실제로는 생리주기는 스트레스에 의해서 변하기도 하므로 주기가 우연히 겹치는 상황은 결국 나올 수밖에 없다. 징크스나 점쟁이의 예언처럼 우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인과관계가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이라는 것. 게다가 그 경우의 수 자체가 크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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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춘기 소녀들은 속칭 "빈유 콤플렉스" 를 갖고 있어서, 또래들에 비해 자신의 유방 성장이 뒤처지거나 미미할 경우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남성들이 자신을 여자로 봐 주지 않거나 사랑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한다.
    •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이상하게 강조되는 심리묘사로 인해 발생한 오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차를 제쳐두고 말하자면,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청소년기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서구권의 여러 면접법 활용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소녀들은 자신의 가슴이 갑자기 부풀어오르는 것을 알게 되면 당혹감과 혼란을 느끼며,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가까운 또래 남자아이들이나 부모님, 혹은 교사에게 들킬까 불안해하는 심리를 보인다. 특히 이들은 다른 남성이 자신의 가슴에 대해 "너는 가슴이 참 작구나!" 라고 말할 때 분노를 느끼기는커녕, 다른 남성이 "너는 가슴이 참 크구나!" 라고 말할 때 극심한 수치심을 경험한다. (물론 가슴이 작다고 말한다고 해도 성희롱이니 반응이 절대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이들의 불안은 청소년기 자존감의 만성적인 하락을 야기하며,[3] 심지어 중년 후기의 폐경에 들어설 때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잔존하게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현실은 현실이고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 여성들은 감정적이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그르치지만, 남성들은 냉철하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현명한 결정을 한다.
    • 인지과학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터리스 휴스턴은 자신의 저서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에서 이것이 현실과는 정반대의 통념이라고 지적했다. 적어도 그 스트레스가 일상적인 수준인 한,[4]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더 잘 견디고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성이 짜증을 내면 "원래 여자들은 감정적이야" 라고 해석하고, 남성이 짜증을 내면 "오죽했으면 저럴까?" 라고 해석하는 심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여자들은 원래 남자들보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나다. 여자들은 요리를 하면서 전화를 받으며 저녁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남자들은 요리를 태우거나, 전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드라마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 남성보다 여성이 더 멀티태스킹을 잘 한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심리학 연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심리학의 관점에서 정말 좋은 것은 한 번에 여러 과제를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주의분산의 유혹을 이겨내고 당장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최대의 효율성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상기 주장은 "남자는 수렵민이라서 눈 앞의 사냥감에 집중해야 했고 여자는 채집민이라서 사방의 과일들에 전부 신경써야 했다" 는 얼핏 진화심리학적인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그 학술적 근거는 빈약하다. 집중력 떨어지는 사냥꾼도 집단의 우수한 사냥꾼들과 협력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여성들이 멀티태스킹(?)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여부가 그 집단의 생존 자체를 가르는 것도 딱히 아니었다. 또한 수렵채집 사회가 정말 그렇게 성별 노동분업이 명확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의견들이 많다. 실제로 이 문제로 인해 고인류학 도서 "인류의 기원"(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의 영문판 제10쇄본 표지 상단에는 사슴사냥하는 여성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 의미심장한 것은 여성들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칭송(?)하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활동은 죄다 가사노동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아기 기저귀 갈면서 세탁기 돌리고 동시에 사과를 깎는 고생을 하는 아내의 노고를 돕기는커녕, 남편들은 "저걸 봐, 나는 남자라서 저렇게는 못 해, 저런 건 여자들이나 보여주는 신기한 재주야" 라고 생각하며 가사분업을 단념하게 될 수도 있다.
    •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지적하자면, 이 고정관념은 흔한 '김여사' 의 이미지와 정면충돌한다. 상기 표현을 살짝 바꿔 보자. "여자들은 운전을 하면서 화장을 하며 옆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이 가능하지만, 남자들은 앞 차를 들이받거나, 화장을 망치거나, 수다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화장은 여자나 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편견은 잠시 접어두자. 멀티태스킹 가설이 옳다면 이 가설 역시 옳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유독 사람들은 여자가 운전대를 잡았으면 딴짓이라도 하질 말아야지, 괜히 딴청부리다는 사고 내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3. 사회적 성, 젠더학, 페미니즘[편집]


  • 여자들은 무조건 자기보다 예쁜 여성을 보면 시기하고 질투하며, 위아래로 훑어보며 "...했네, 했어"라고 비웃는다.
    • 정말 어지간히 자존감이 떨어진 여성이거나 성격이 비뚤어지지 않는 이상 그런 반응을 보기 힘들다. 여성들도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을 좋아하고, 이에 환호하고 동경한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돌 그룹이나 유명 연예인과 마주쳤을 때 좋아하거나 감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학생들 중에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걸크러쉬 항목도 참고할 것. 남녀 상관없이 사람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남성들 중에서도 이런 사례는 흔하다. 현실 속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예쁜 여성이 왕따당하기는 커녕 자주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고, 되려 예쁜 여성 중심으로 모임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여성 모임을 가든 공통적으로 예쁜 여성이 인기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친해지고 싶어한다. 즉, 이 편견은 일부 여성들을 가지고 일반화한 경우에 해당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격 차이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 하지만 현실이 아닌 인터넷, 특히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폐쇄적인 여초 사이트에서는 위의 '예쁜 여자는 성형이다' 명제가 실제로 진리처럼 통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이런 현상만 보고 인터넷의 특성을 간과한 채 현실 속 여성도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여자들 사이에서 예쁘다는 이유로 왕따를 만드는 일은 없다. 여초사회에서 여자들은 예쁜 여자들에게 들러붙으려고 한다. 예쁜 여자애가 왕따를 당했다면 그것은 예쁘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의 착각이거나 피해자가 성격이 나쁘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실제 사례.
    • 이 편견은 바로 위에 서술된 소위 '여적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나치게 극단적인 주장이다. 시기심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실제로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 정말 하나도 없음에도 오직 예쁘다는 이유로 괴롭혀 왕따를 만들고는 피해자에게 '쟤가 원래 문제가 있어서 당하는 거'라는 누명을 씌워 자신의 시기심을 감추는 찌질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 남자 중에도 사람에 따라 개념인이 있고 인간 쓰레기가 있는 것처럼, 여자도 마찬가지다. 예쁜 여자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면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 아울러, '여자는 절대 예쁜 여자를 시기하지 않는다'라는 편견은 실제로 시기심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언제나 유의해서 판단해야 한다. 실제 사례로는 이탈리아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있다. 어린 시절 너무 눈에 띄는 외모로 자주 구설수에 올라 스트레스를 받자, 그녀의 부모님이 "너 같이 예쁘게 생긴 애는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강해져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배우 김하늘도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다고 하고, 박하선도전 골든벨 출연 당시 작가의 요청에 의해 '예쁜 척'을 했다가[5] 그만 전교에서 왕따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질투심을 사 왕따를 당한 예쁜 소녀가 5년 동안 등교 거부를 했다고 한다.

  • 그렇다면 여자들은 시기와 질투의 화신일 것이다!
    • 뭐든지 사람 바이 사람인 법이다. 누구나 예쁜 여자들을 보면 계속 눈이 가고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더 친하게 지내려는 여자들도 있고, 남을 깎아 자신을 채우려는 여자들도 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에 따라 행동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동성을 시기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맞지 않다.

  • 여자들은 무조건 잘생긴 남성을 보면 홀라당 넘어가서 그 남성의 모든 단점에도 개의치 않는 충실한 시녀가 된다.
    • 남자들도 예쁜 여자가 단점이 많으면 싫어하듯이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사회적 이미지가 나쁘면 여성들은 관심 끄고 돌아선다. 단점도 어느 정도 작아야 외모로 덮어진다. 외모만 좋다고 해서 그 외모로 절대 거대한 단점들을 커버할 수 없다. 요지는 그 남성의 전반적인 이미지와 캐릭터성이 흔한 여성들의 보편적 선호에 부합하냐는 것이다. 즉 단점이 봐줄 만한 수준이고 다른 장점도 존재해야 외모가 빛을 발하지, 외모만 갖고는 아무것도 안 먹힌다. 이걸 이해하지 못해서 이슈가 된 사례가 바로 저 유명한 맹모닝 셰프 논란이다.[6]

  • 여성이 야하게 입고 다니는 것은 남성들에게 만만한 여자, 밝히는 여자, 남자가 꼬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여자라고 스스로를 광고하고 있는 셈이다.
    • 19세기까지는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여성들이 치장을 했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은 어떤 여성도 스스로 남성들에게 밝히는 여자, 야한 여자로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정착되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하의실종 패션을 스스로 자신을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자기표현용으로 입거나 최신 패션,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입지, 자발적으로 남성들을 의식하고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입는 경우는 많지 않다.
    • 해외에도 이런 터무니 없는 관점이 종종 있는 모양이라, 국제적으로 슬럿워크 같은 시민운동이 열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쉽게 말해 "내가 네 앞에서 발가벗고 있다고 해도, 내가 원하기 때문에 벗은 것이지 너를 위해 벗은 건 아니다" 정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

  • 남성은 다부지고 믿음직하며 호방하고 외향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하며, 여성은 조신하고 순종적이며 조용하고 내향적이고 내조나 잘 하면 된다.
    • 이러한 성 역할은 시대가 변하면서 깨지고 있다. 현대사회는 유니섹스의 시대로, 양성 모두의 장점을 개인 내부에서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을 갖고 있을 때 가장 유리하다.
    • 또한 성 역할은 개인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아이가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드는 것을 원한다고 가정하자. 이 남자아이가 "나는 누구지? 나는 남자야." 라고 정체성을 확인한다면, 그는 인형을 안고 자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남자아이가 "나는 누구지? 나는 나야." 라고 정체성을 확인한다면, 그는 자신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런 경험을 함으로써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다.
    • 또한 이 항목에 쓰인 표현 자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차용하고 있음을 주의하자. 그렇게 서술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하는 것이다. 즉 애초에 남자는 인형을 안고 잠들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나는 누구지? 나는 남자야."라고 인식하는 것이 인형을 안는 것과 배치되지 않는다.
    • 즉, 남성적인 여자도 있을 수 있고, 여성적인 남자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너무 과도해서 동성집단에서 배척을 당할 정도라거나[7] 아니면 본인이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아니라면 무슨 문제가 되는가?

  • 여성은 수학&과학이나 이해적 문제 해결에서 남자보다 떨어진다. 또는, 남성은 국어&사회나 암기적 문제 해결에서 여자보다 떨어진다.
    •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수학&과학이나 이해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보인다. 남성 대상 고정관념도 마찬가지. 오히려 이런 종류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능력이 저하된다. 고정관념으로 인해 수행 수준이 저하되는 이 현상을 두고 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이라고 한다. 해당 문서 참고. 심지어 이는 단순히 시험장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기만 해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하며, 정말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8]
    • 물론 심적 표상과 같은 인지적 오퍼레이션에서 차이가 있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이건 수학&과학 교육의 맥락이라기보다는 훨씬 기본적이고 전반적인 수준에서의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에 가깝다. 이와 관련하여 학계에 흥미로운 (그리고 논쟁적인) 반론이 몇 건 제기되었는데,[9] 1995년의 논문에서 흑인과 백인의 수학 점수 결과를 통계적으로 엄밀히 해석하면 "고정관념 위협으로 인해 흑인 학생의 수학 점수가 떨어지긴 하는데, 고정관념을 없애준다 해도 딱히 수학 점수가 같아지진 않더라" 가 된다고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 여성의 성취 동기는 고정관념을 내면화했을 때 추가로 촉발되는 불안에 의해서도 더욱 훼손된다. 젠더를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성공할 것에 대한 두려움" 이라고 부른다. 성공하기 싫어한다거나 실패하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말이 아니고, 성공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일정 부분 훼손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한 논문에서는,[10] "앤(Anne)은 의학 시험에서 자신이 학과 1등을 했다는 걸 알았다." 는 문장을 보여주고 주인공의 심정을 짐작해 보라고 하자, 과반수의 여학생들이 기쁨에 더하여 불안도 함께 보고했다. 반대로 "존(John)은 의학 시험에서 자신이 학과 1등을 했다는 걸 알았다." 는 문장을 남학생들이 보았을 때는 불안을 짐작한 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 "뭐, 유능한 여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드센 년이거나, 누구한테 한 번 대 줬겠지!"
    • 남성우월주의에 갇혀있다는 시대착오적 고백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성을 팔아서 유능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급의 주장은 고려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지만,[11] 한 가지 짚어볼 만한 점은 "드센 년" 이라는 표현에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이 직업적 성취를 올리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가 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남성 코스프레를 하는 역할을 통해 성공한 것이다.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커리어우먼들과 여성 고위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워킹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들의 면모는 "남성적"인 것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만을 보여주는데, 여성적인 면모는 그런 고위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여성 판사, 최초의 여성 응원단장[12], 최초의 여성 파일럿 같은 사람들도, 금녀의 문을 처음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유사-남성으로서 열어야만 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면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남성적인 역할(ex. 독립성, 주체성, 유능성 등)에 대한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성적인 역할(ex. 배려성, 우애성, 돌봄과 유대 등)이 없다고 까이는 게 태반이다. 드센 년이라는 표현은 유능한 여성이 얼마나 부정적인 (혹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물론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과거보다 성 평등의 원칙이 확고해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다양한 세대에서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기에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이다.

  • 남성은 싸우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남자가 싸우는 걸 두려워하면 남자가 아니다.
    • 옛날 박정희, 전두환 때에나 그랬다. 옛날에야 패싸움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게 나쁘다는 인식이 퍼져 웬만해서는 싸우지 않는다.

  • 게이가 아닌 남자가 여자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불구자이거나 정신병이 있거나 아니면 여성혐오자다.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 편견이다. 2000년대 이후 초식남, 절식남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건너오고, 여성과의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거나 딱히 목매지 않는 남성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상황임에도 그 존재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편견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나 가부장적인 유교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편견이 가장 심하다.

  • 페미니즘SSCI에 단 하나의 학술지도 등재시키지 못한 유사학문에 불과하므로 진지하게 취급해 줄 가치가 없다.
    • 이 리스트(PDF)에서 "Feminis-" 로 시작하는 학술지가 몇 건인지 직접 찾아보자. 그 외에도 예컨대 여성심리학 분야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출판이 이어지고 있는 "Sex Roles" 와 "Psychology of Women Quarterly" 가 양대산맥이며 당연히 SSCI 등재지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또 SSCI 자체의 신뢰성을 의심한다면 사회과학 전반을 못 믿겠다고 하는 셈이다(...)


  • 남성이라도 페미니즘을 깊이 이해한다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 이게 의외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다. 일각에서 "양성평등의 가치에 공감하는 모든 남성 여러분들은 이미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외치면서 두 팔을 벌리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남성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여성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남성은 어떤 경우에도 연대의 대상이 아니며, 도리어 타도의 대상이다" 라며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13] 예시. 전자의 경우 페미니즘의 요체를 태도나 신념, 가치관의 문제로 보는 반면, 후자의 경우 여성들만이 공유하는 유대감 및 개인의 생애를 통한 역경의 경험이 페미니즘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급진파 중에서는 간혹 MTF 트랜스젠더들과도 연대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따로 TERF[14]라고도 하며 이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경우에 따라 he for she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MTF 트랜스젠더에게는 호의적인 경우도 있다.
    • 이 문제로 인해 2002년에 남성으로서 여성운동에 참여하던 사회운동가인 김규항 씨가 여성권익단체 "일다" 와 정면충돌을 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되짚어보는 포스트. 여성운동가들에게 있어,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성들을 진정한 "동지" 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황송하게도) 여성들의 인권에까지 신경써 주는 온정적인 "오빠" 로 보아야 할 것인지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 게 사실이다.
    • 문제는 이런 견해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거다. 분명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가갔는데 오히려 매몰차게 거부당하고 내쳐진다면 당연히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려던 남성이 이런 일을 겪고 되려 여성에게 공격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저런 태도는 간접 경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어서 자칫하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는 주장. 자기가 직접 겪지는 않더라도, 정상적인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 여성이 겪는 부당한 일이나 어려움을 보고 '이건 불합리하다!'고 느끼며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15]
    • 서구권 국가에선 현재의 대한민국 페미니즘에서도 종종 보이는 급진 페미니스트들 뿐만 아니라 기존 페미니스트도 과도하게 남성을 배척하는 태도를 보여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그러며 옹호자가 비판을 만들고 비판에 위협받은 자가 다시 옹호한다 이건 사실 한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 페미니스트들은 매사 "연약한 여성들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같은 말을 달고 산다.
    • 완전히 정반대다. "여자는 연약하니까 보호받아야만 한다" 라는 진술은 페미니즘의 관점이 아니라 가부장제적 관점에 해당한다.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역시 강하고 주체적인 한 인간이다" 가 더 정확하며, 여자는 연약하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나, 여자는 연약하니까 짓밟아도 된다는 논리나 페미니즘 입장에서는 사실상 똑같은 얘기다. 단지 여성에게 호의적이냐 적대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건 같은, 똑같이 마초이즘에 젖어 있는 논리라는 것.
    • 만일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전 여잔데요? 여자인 제가 왜 이런 힘든 걸 해야 해요?" 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페미니즘이라는 의미 깊은 사상을 단지 자신의 면피용 및 실드용으로 서슴없이 오용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이러한 행동은 진정한 성 평등의 정착에 큰 피해를 가져오며,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오해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이는 페미니즘의 내재화가 아니라 온정적 성차별주의(benevolent sexism)의 내재화이다. 양가적 차별 문서도 함께 참고할 것.
    • 사실 이런 이미지는 미국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페미니스트들의 인상이다. 20세기 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인상은 으레 "감히 남자가 되고 싶어서 남자처럼 구는 여자들" 에 가까웠다.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에 입각하여, 고금의 미국인 남성들은 성차별주의자일수록 여성의 본분이 "어머나아~ 도와줘요오~" 하는 데 있다고 믿어 왔고, 또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남자다운 매력이 입증됐다고 여겨서 매우 뿌듯하고 흡족해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에 반감이 있는 남성들은 맥주 박스를 남자만 운반하거나 정수기 물통을 남자만 교체하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지만, 페미니즘에 반감이 있는 미국 남성들은 오히려 그런 '남자다운' 완력을 '연약한' 여자 앞에서 과시하지 못하게 하면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는 편이다. 이런 그들에게 "We can do it!" 을 외치며 나타난 당시 '해방된 여성' 들의 모습은[16] 그야말로 바라보기만 해도 고추 떨어질 것 같은(…) 존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우리나라의 사회정서상 페미니스트들은 오히려 무임승차자, 체리피커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데, 청년층이 여유가 줄고 각박해지는 현대에는 미국에서도 점차 뷔페미니즘이라는 인상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 페미니스트들은 무조건 투블럭 수준으로 짧은 단발머리에 화장 안 한 쌩얼이며, 겨드랑이 털을 기른다. 또는, 단발머리 여성은 전부 페미니스트다.
    • 자신이 입었을 때 기쁘고 자기다운 옷을 입는 것이 페미니즘의 핵심이지만, 현대 대한민국에서 탈코르셋이 유행이 되면서 나타난 사회적 압력이다. 이것은 페미니즘의 메시지들 중에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 경향인데, ① 여성들에게 억지로 밤낮 섹시하게 치장할 것을 강요하는 남성들을 비판하면서도 ② 자기 자신을 섹시하게 치장해서 남성 젠더 권력에 공모하는 여성들까지 비판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모든 옷을 원하는 대로 입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어떤 옷들은 입으면 안 된다" 의 요상한 결론이 얻어지게 된 것. 결국 모든 옷 집합에서 입으면 안 되는 옷 집합의 여집합만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헤어스타일의 경우 생머리나 웨이브, 포니테일 등의 선택지가 싹 지워지고 단발밖에 남지 않게 된 상황이다. 이러한 자기검열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패션의 다양성을 크게 저해하고 말았다.
    • 실제로 서구의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이 바로 이 문제로 동료 운동가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그녀가 가슴골이 깊이 파인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난 뒤 일각에서 "페미니스트가 자기 자신을 저렇게 성적으로 대상화하다니, 변절이다!" 라는 불만이 나왔던 것. 이에 대해 왓슨은 "내가 내 기분좋은 대로 입겠다는데 너네들이 뭔 오지랖이냐" 라고 대꾸했다고. 이상의 갈등은 남녀 모두가 공통으로 선호하는 패션 코드가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여성적인 패션을 좋아하는 것 자체를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들에게 인위적으로 주입시켜서 빌트인한 비정상적 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

  •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부 여성들 뿐이고,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서 학계의 억압 운운하며 밑도끝도 없는 음모론을 펼친다.
    • he for she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
    • 심리학 분야의 젠더 담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간 대학원생 이상의 전공자들이 빵 터질 수 있다(...) 당장 성차별 분야의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피터 글리크(P.Glick)부터가 남성이다. 물론 비율 자체는 여성들이 더 높긴 하지만 짐 시다니우스(J.Sidanius) 같은 케이스도 있는 등[17] 의외로 남성 페미니즘 연구자들도 종종 있다. 게다가 심리학계에서 발견한 성차별의 심리적 메커니즘들은 갈등론사회관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이 연구들은 사회적 정보처리 모형[18]을 바탕으로 한 인상형성(impression formation), 점화(priming), 대인지각(person perception) 같은 연구들을 바탕으로 따져 보니까 레알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편견차별로 나타나게 됨을 보고한 것이다. 그래서 위 오해와는 달리 인지과학과도 의외로 접점이 많이 존재하며, 심리학 자체가 페미니즘 연구와 비-페미니즘 연구 간 경계가 희박한 편이다. 대신 갈등론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남녀 싸잡아서 니들 다 똑같다 하는 느낌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19] 대표적으로 양가적 차별의 경우도 "여자들 중에도 마초들이랑 똑같이 가부장제 옹호하는 애들 많더라" 를 암시하고 있기에... 당장 《여자의 적은 여자》 책을 쓴 사람부터가 진화심리학의 관점을 적극 활용하는 여성심리학자다.

  • 가부장제는 항상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해 왔다.
    • 옛날 시절에는 잘 나가는 여성들일수록 가정대학으로 진학하고자 몰려들었고, 부잣집 영애들은 소위 "신부수업"이란 걸 받으려 했다. 즉, 그런 사회에 잘 적응하고 가치를 내면화한 여성들은 충분히 행복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면 주관적인 불편함도 없었다는 것. 선각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 비슷하게는, "왕정 국가의 백성/신민/농노들은 민주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살면서 무조건 불행했을 것이다" 도 있다. 사실, 그들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보았다면 너무나 놀란 나머지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국왕 폐하를 옹립하지 않는다니, 이런 발칙한! 아아... 말세다 말세야!"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지식인들과 계몽사상가들, 일찍 생각이 트인 사람들은 이 문제로 인해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자국 혐오와 같은 환멸감을 갖거나, 심하게는 그들이 우매하다고 여겼던 민중들에게 잡혀 죽기도 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그들의 죄라면 생각이 시대에 지나치게 앞서나갔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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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부장제는 모든 권리는 남성에게 몰아주고 모든 의무는 여성에게 몰아주는 시스템이며, 그 결과 남성들은 행복하고 여성들은 불행하다.
    • 실제로는 남녀 모두가 일정 부분씩 피해를 입는다. 가부장제는 권리를 모두 남성에게 몰아주는 시스템이라서, 우선 권리를 빼앗긴 여성 측에서 더 우선적으로 가부장제의 폐해를 깨닫게 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남성들에게 과중한 책임까지 몰아준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사 항목만 봐도(...)
    • 예를 들어 보자. 첫째,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들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살리고도 남을 막강한 재력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보장되어야 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군말 없이 내조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만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남성들이 전부 그럴 만한 슈퍼맨급 능력이 보장되던가? 여성들이 직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남성들은 직업 활동을 강요받는다. 남성들은 자기 실현과는 전혀 무관하게 한 가정의 생존을 홀로 책임지고 모든 고통과 스트레스를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 흔히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라고 일컬어지는 바로 그것이다. 둘째,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들은 자기주장이 강해야 한다. 매사 적극적이고, 외향적이고, 지배적이고, 리더십이 있고, 힘든 일을 전부 다 해야 한다. 섬세하고 소극적이며 힘이 없고 팔로워십이 있으며 체력이 약한 남성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들이 눈총을 받듯이 눈총을 받게 된다. 여성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쉽사리 위로받고 보호본능을 일으키지만, 남성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내놈의 새×가 계집애 같이...", "남자가 되어가지고 어딜... 콱 짤라 버릴라!"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맨 박스(man box)라고도 한다. 하지만 가부장적이지 않은 양성평등적 사회에서는 이런 남성들도 얼마든지 존중을 받을 수 있다.
    • 가부장제는 결국 남녀 모두에게 만악의 근원이다. 사회 일각에서 주목받은 바 있는 역차별 반대운동 역시 정확히 말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폐해에 대한 반동일 수도 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성 평등이 온전히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성별이 반전된 또 다른 가부장제가 아니라 진정한 의무와 권리의 평등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온전한 권리를, 남성들은 자신의 합당한 의무를 위해, 힘을 합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자료.

  • 그렇다면, 맨 박스의 논리에 따르면 남성들도 억압적인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피해자일 뿐이니 여성 억압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 적어도 해당 개념을 처음 주창한 토니 포터(T.Porter)의 생각은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처럼 터무니없이 악랄한 사회적 압력인 맨 박스에 대해 남성들은 연대하여 거부하고 저항하지 않았으며, 맨 박스 속에 들어앉아서 맨 박스가 제공하는 젠더 관념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맨 박스에 문제의식을 품은 선한 남성들조차 맨 박스에 침묵으로 긍정함으로써 악한 남성들이 활개치며 마음껏 여성들에게 패악질을 부리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게 맨 박스 논리의 골자다. 오히려 토니 포터는 여성 억압에 대한 남성들의 공동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맨 박스라는 논리를 꺼내 든 것이다. 따라서, 여성 억압적인 남성성의 강요에 대해 언어적/사회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해 온 남성이 아닌 한, 맨 박스에 따라 책임감을 갖는 게 맞는다는 것. 이러한 토니 포터의 생각을 위키러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와는 별개로, 맨 박스 논리를 들어서 남성들의 무고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일종의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 된다.

  • 여성은 금성에서 왔고, 남성은 화성에서 왔다. 남녀 사이에는 똑같은 것이 거의 없다. or 여자와 남자의 차이는 성별 뿐이다. 다른 점이 있을 수가 없다.
    • 일단 전자에 대한 반론.
      • 도리어 20세기 초엽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온 수많은 성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양성 간에는 생물학적, 물리적 특징[20]을 제외하고는 성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었다. 몇몇 세부 사항들에서는 그나마 나타나는 성차가 있기는 한데,[21] 그 중의 많은 수는 사회로부터 학습된 결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구자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유사점 & 소수의 주목할 만한 차이점" 으로 성차를 정리하고 있지만,[22] 많은 대중서들은 남성과 여성이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주제에서 차이점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젤라 루리아(Z.Luria)는 1986년에 자신의 논문에서 "심리적 성차에 대해 공부한 사람들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남녀간 공통점이 항상 차이점보다 더 많다' 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일 뿐이다" 라고 못박았다. 1995년에 학술지 "American Psychologist" 50권 3호에서 스페셜 이슈로 이 주제를 다루었으니,[23] 진지한 관심이 있다면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 물론 몇몇 사람들은 공통점으로 꺼내놓고 얘기해줘도 "그럼 바나나랑 인간이랑 똑같은 점은 어느 정도냐?"[24]라면서 오히려 부정한다. 왜 여자가 애낳지, 남자가 애낳냐는 말이 나온지 생각해보자.
    • 이제 후자에 대한 반론.
      • 남자랑 여자랑 완전히 같다고 생각하려면 딜레마가 있는 건 사실이다. 바로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고 탈의실이 남녀로 따로 있는 경우. 만에하나 당신이 이 곳 중에 다른 성별이 가는 곳에 들어가서 당장 나가라는 사람한테 "남자랑 여자랑 같은 거 아닌가요? 이거 성차별입니다!"라고 해보자. 무슨 취급을 받을까?
      •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Baumeister)는 자신의 저서 《소모되는 남자》 에서, 남녀간에 성차 자체가 존재하긴 하지만, 능력에서의 성차보다는 동기에서의 성차가 더욱 중요하며, 전자에서 후자로 시선을 돌릴 때 훨씬 더 크고 강한 성차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 즉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느냐" 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도서의 문서를 참고하자.
      • 더욱이, 완전히 같았다면 1번은 취향 문제로 그렇게 갈등이 생겼을 리가 만무했고, 2번은 세상 사람들 전원 양성애자/무성애자로만 나뉘어졌을 터이며[25], 3번은 남자도 애 낳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리가... 그리고 하나 더, 남자랑 여자랑 똑같이보기 매우 힘든 게 있는데 신장과 체중. 남자랑 여자 똑같이 172cm인 경우에 왜 남자는 좀 단신 취급받는 반대로 여자는 제법 장신으로 취급될까? 그리고 68kg이라면 여자는 좀 체구가 있다고 느껴지지만 남자는 아니다.
      •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남자랑 여자랑 똑같으니 남자라 해도 여자처럼 다루면 여자가 돼라고 생각했다면 위에서 말해준 돌연변이(...)가 있을 것이다. 남자랑 여자랑 완전히 똑같다는 점이 정말로 틀렸다는 걸 증명해주는 사례.
    • 종합적으로 따지고보면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람이나 완전히 똑같다는 사람이나 모순점을 지목해주면 말이 막히는 것은 똑같다. 전자야 대놓고 차별을 권하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후자는 아름답게 들릴지라도 나중에는 차이까지도 멸시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셈.

  • 파란색은 남자아이의 색이고, 분홍색은 여자아이의 색이다.
    • 역사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20세기 초까지, 분홍색은 "정열적이고, 진취적이며, 열정적이고, 제왕의 상징인 빨간색과 가깝다" 고 여겨져서 남자아이 전용의 옷 색상으로 사랑받았다. 반면 하늘색은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고, 차분하고, 조신하며, 섬세한 느낌을 준다" 고 여겨져서 여자아이 전용의 옷 색상이었다. 옛 성화나 명화, 그림들을 살펴보면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소년이나 청년 남성의 모습, 그리고 하늘색~파란색 옷을 입은 소녀, 성녀 및 아가씨들의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 현대로 와도, 20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공주님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여왕님은 모두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다.
    • 또한 이는 위에서 쓴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선택의 권리를 제한하며 행복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하늘색이 더 예쁘고 공주님 같은데?" 라고 말하는 여자아이들도 있고,[26] 분홍색에 매료되는 남자아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안 돼, 넌 남자/여자아이잖아!" 라고 말할 경우, 이들은 자신의 의향을 거둘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치 않는 색상의 옷을 입으면서 만족하기는 힘들 것이다.

  • "남자가 돼 가지고 칠칠맞게 눈물 흘리면서 울고 있냐? 모름지기 남자라면 무조건 눈물은 보이면 안 된다."
    •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적절하게 슬픔을 표현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단, 너무 참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자주 우는 것도 과히 좋지 않은 생활습관이다. 정서심리학에 따르면, 장기적이고 과도한 반추(rumination)는 우울증의 전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눈물을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고독사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
    • "남자라면 마땅히... 여자라면 모름지기..." 와 같은 인지는 흔히 성심리학에서 젠더 정체성(gender identity)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이 과할 경우 개인의 행복이 저해될 수 있다.
    • 설혹 울고 싶어서 울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별로 없다. 슬픔이란 남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써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게다가 남성들에게도 인형을 통해서 적절히 감성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 남자는 기계와 공구를 다룰 줄 알아야 하며, 전문가를 부르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 가정의 수도, 보일러, 전기, 가전기기 등을 고치지 못하고 사람을 부르자고 얘기하면 "남자가 되서 그것도 못해? 창피하게" 하고 핀잔을 주는 경우가 있으나, 아무리 남자라도 기계 분야에 대해 접해보고 배워볼 기회가 없으면 잘 모른다. 기계 분야의 전문가들도 처음부터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고 모두 지식과 경험을 쌓아서 습득한 것이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건드리면 오히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몇만원, 몇천원 내고 끝낼 거 몇 배, 몇십 배 들여가며 그냥 새로 사야 하고, 심하면 사고가 발생하면서 다칠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자면 기계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라는 것인가?

  •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지."
    • 치마 입기를 싫어하는 어린 딸을 둔 부모들이 종종 이걸로 탄식하곤 하는데, 탄식할 이유가 전혀 없다.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서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모습에 자신을 맞추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딸이나 조카가 치마를 입기 싫어한다고 해서 억지로 입히려고 하지 말자. 게다가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이 사회적으로 이상한 것도 아니다! 남성의 경우, 치마를 못 입게 하는 이유는 풍성한 다리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이것도 문화적으로 다 달라서, 실제로 바지는 서구 역사에서 꽤나 늦게 발명되었으며 고대 로마 등에서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고 지냈다.[27] 하지면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에 비하면 남자가 치마를 입는 건 엄청난 어그로가 끌린다
    • 한편 킬트스코틀랜드가 문화 콘텐츠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데, 한국의 현실에까지 고스란히 대입하기는 곤란하다. 대신, 킬트의 사례를 들어서 옷차림의 성별 차이를 문화가 강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 성문화가 보수적인 나라일수록 성범죄 발생률이 적다.
    • 통계의 허점. 만일 이 진술이 "성문화가 보수적인 나라일수록 성범죄 신고율이 낮다" 는 것이었으면 진실이다. 강간 범죄율 문서로. 그러나 성범죄라는 것 자체가 신고율에 의지해서 발생률을 짐작해야 하는데, 이는 일반 대중들의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에 크게 좌우된다! 가령, 성범죄의 공론화가 잘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인식이 깨어있는 북유럽의 경우 오히려 성범죄의 발생 빈도는 전세계 탑(...)을 달리고 있으며, 외국인 여성 여행객이나 자국민에 대한 성희롱, 납치, 강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걸 또 사람들이 쉬쉬하는 일부 국가들의 경우, 너무 일상적이다 보니 그게 범죄인지도 몰라서 신고를 안 하는 상황인지라 신고율이 낮아지고 진짜 발생률은 베일에 가려지게 된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 경찰이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 보니 경찰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자료.
    • 그리고 성문화가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많이 있지만,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이슬람권 국가의 명예살인처럼 오히려 피해자를 죄인 취급하거나, 아예 법이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피해자가 가해자와 결혼하라는 판결을 내리는 이뭐병스럽고 극악무도한 일도 벌어진다. 피해자가 이미 기혼자이거나 상습법이라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다면 어떡하려는 건지 후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겨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여고생이 성폭행을 당했는데, 피해자의 부모가 성인이 되면 범인이 딸과 결혼해주는 대가로 가해자와 합의해 범인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건이 무려 1998년에도 있었다. 피해자는 당시 17세로, 1982년생이었다. 레알 82년생 김지영?
    • 이와 관련된 사례로,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는 동성애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지지만, 음지에서는 권력자들이 "bacha bazi"(boy play)라고 하여 미성년의 어린 남자아이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악습이 횡행하고 있다. 겉으로는 강하게 처벌하면서도 뒤로는 즐길 것을 다 즐기는 이러한 경향은 인권 개도국들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유흥과 쾌락을 권력에 결부하여 누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28] 또는 권력자들의 자기혐오적인 불순한 동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원나잇 스탠드는 개방적인 성문화를 암시하는 것이다.
    •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자신의 원나잇 스탠드 경험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이 간주하고 사회 역시 그것을 잘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남성들은 여기에 잘 부합하지만, 여성들은 원나잇 스탠드 경험을 밝혔다가는 결혼을 아예 못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남성들은 원나잇 스탠드를 일종의 무용담처럼 생각하고 자랑하려 하지만 여성들은 있는 힘을 다해 숨기고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세태는 극도로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문화를 암시할 뿐이며, 개방적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별로 없다. 성별을 막론하고 개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는 순결을 운운하면서도 자신은 어떻게든 원나잇 스탠드를 해서 동료 남성들에게 떠벌리겠다는 심산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마인드일 뿐이다.

  • 여성이 등장하는 모든 매체들에서 여성 캐릭터는 그저 인형처럼 박제되어 있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며, 유약하고, 자기주장이 없는 경향으로 묘사된다.
    • 의외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은 비서구권 매체들에서는 주체적 여성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여성들이 거침없이 남성들을 이끌고, 남성을 훈계하며, 남성들을 지휘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 어떤 시청자/독자들은 "남자가 돼 가지고 가오 떨어지게...", "저 남자들은 자존심 상해서 어쩌냐"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서 그 어떤 '백마 탄 왕자님' 의 도움도 바라지 않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 캐릭터들은 미국을 벗어나서 찾아보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디즈니를 비롯한 여러 제작사들에서도 이런 점을 인지하여 주체적 여성상을 통해 꼬마숙녀 시청자들에게 역할 모델을 만들어주려 애쓰고 있다.
    •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인식이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사실 위의 설명을 뒤집어서 다시 보자면 미국에서는 실제로 그런 무기력한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50년대, 1980년대 정도 즈음에 이런 경향이 크게 나타났으며 이는 《백래시》 의 저자로 유명한 수전 팔루디(S.Faludi)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과거에는 미국 창작물들에서 남성은 무조건 마초가이여야 환영받고 여성은 무조건 창백한 귀공녀 같아야 환영받았다. 오늘날에도 이런 문화적 특성은 그대로 이어져서, 아직도 미국인들은 여러 남성 캐릭터들 중에서 흔히 "Bad Ass" 스러운 캐릭터, 즉 선 굵은 몸에 건조한 성격을 지닌 간지남을 선호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 그렇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 젠더 평등하고 PC한 장르가 분명하다!
    • 이것 또한 간단히 말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일단 현대 주류 페미니즘의 이론화 자체가 미국에서 제안되고 정교화되었기에, 일본 창작물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실시하려면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논리가 새로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주체적 여성들의 모습을 미국에 비해서 더 즐겨 그려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를 예로 들면, 서구에서는 이 정도로 당차고 강한 여성 캐릭터들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항상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흔히 제기되는 문제는 포르노에 가까운 카메라 워크와 연출이다. 이를 적당히 비유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당찬 여전사" 가 한편으로는 미니스커트 판치라를 숱하게 당하며, 수시로 바스트 모핑이 묘사되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 다시 앞의 예를 들면, 세일러문 캐릭터들의 치마 길이 역시 비현실적일 정도이지만, 그 길이는 여성이 차려입어야 할 이상적 복장의 일부로서 무난히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리고 여러 작품들에서 샤워씬, 온천씬, 해수욕씬, 탈의씬, 슴만튀 등의 장면들은 내용 전개에 불필요할지라도 관례적으로 삽입되게 마련이다. 유튜브의 한 애니 리뷰어는 리코이즈미 사기리 캐릭터를 예로 들어서 "이 업계 최대의 문제점" 이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관련영상(영어)[29]
    • 종합적으로 보아, 서구 창작물에서 여성들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무기력하고 연약하며 순종적인 캐릭터성으로만 단편화시켜서 비판을 받는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하되 남성 시청자들을 위한 눈요깃거리 재료로서 여캐를 공급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는 또 미국의 창작물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로리로 대변되는 미성년 여자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상화했다간 미국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딱 좋기 때문.[30] 결국 막무가내 식으로 문예비평을 시도하기에는, 어떤 경우든 상당히 복잡하다. 문화검열의 신풍속(?)을 이끄는 프로불편러건, 그들의 공세로부터 애정하는 작품을 변호하려는 팬덤이건 간에, 이런 배경 정도는 감안할 필요가 있다.

  • 남자들은 의젓하기 때문에 털털하고 대범해서 군대도 다녀오고 고된 일도 묵묵히 참고 견디지만, 여자들은 철이 없어서 속좁고, 쫑알대고,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이다.
    • 여자는 고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자주 이용되는 고정관념. 남녀 성별에 따라 성격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성격이 나뉘는 것이다.
    •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남성이 철없는 모습을 보이면 "쟤가 유달리 이상한 거야" 라고 생각하고, 여성이 철없는 모습을 보이면 "여자라서 원래 이상한 거야" 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지적 함정에 대한 심리학적인 연구도 (특히 인종차별 등에 관련하여) 정말 어마어마하게 이루어져 왔다. 결국 사람들을 관찰한 것을 근거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맞게 자신의 관찰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당초 결론을 다시 뒷받침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4. 연애, 결혼[편집]


  • 남녀 간에 그냥 친구로서의 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설령 친구처럼 지낸다 해도, 마침내는 연인 관계로 발전할 것을 전제로 해서 교제하는 것이다. 또는, 남녀가 서로 친구로서만 알고 지낼 거라면 동성 친구를 만나지 뭐하러 이성을 만나겠는가?대놓고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단어에 중지를 지켜세운 편견
    • 성차이가 낳은 편견이자 남자랑 여자랑 완전히 다르다고 못 박는 주장. 이렇게 생각하는 남성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과 만나는 여성이 자신에게 온도차가 있음을 알고 좌절하기도 한다.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영어권에 어째서 friendzone이라는 신조어가 있겠는가? 여성들이 남성 지인들을 주변에 두는 동기는 그들을 잠재적인 연인으로 (혹은 섹스 파트너로) 고려하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은 남성들에게 흔히 "미안해, 우리 그냥 지금처럼 좋은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에게는 마치 계약위반(...)과도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혼자 김칫국을 마신 것이었을 뿐임에도 "지금껏 나를 속였구나, 나를 갖고 놀았구나, 어장관리를 했구나" 라며 엄청난 배신감과 분노를 갖게 한다. 그러나 정작 여성은 자신의 사회적 평판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서로가 지레짐작이 아닌, 상대방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 "이 여자가 나랑 사귀기로 한 것은, 언젠가는 나랑 같이 모텔에 들어가는 것도 당연히 전제하고 동의했기 때문에 사귀는 것이다!"
    • 우선, 세상에는 플라토닉 러브도 있고, 여성이 설령 성관계를 예상했다 하더라도 그 때와 장소와 방법을 남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며, 사귀는 사이라고 해서 원치 않는 섹스에 억지로 응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연애의 궁극적인 목적이 단지 섹스에 골인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육욕을 충족시키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여친은 주체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인간이지, 남친에게 봉사하기 위해 스탠바이 중인 메이드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남성들이 아직도 간간이 존재한다.
    • 이런 일부 남성들은 여친이 섹스를 거부했을 때 마구 화를 내며 "내가 그 동안 너한테 밥 사주고 선물 사 주면서 들인 돈이 얼만데 어떻게 이제 와서 이럴 수가 있느냐" 고 고객 불만족 클레임(?)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방과 섹스에 골인하기 위한 일념만으로 금전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연애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며, 오히려 말하자면 성매매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자식을 갖게 되더라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소리를 늘어놓는 막장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원래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섹스를 하는 거야!"
    • ...라고 말하면서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 억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사랑이건 섹스건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요구를 다른 한편이 일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성립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선이 어떻게 일방적인 방향인가? 사랑과 섹스는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방적인 사랑은 집착이라고 부르고, 일방적인 섹스는 강간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부부간에도 강간죄가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 "우리 그이는 조금 폭력적이긴 하지만, 참고 용서하고 받아주다 보면 나아질 거예요."
    • ...라고 말하면서 꾹꾹 눌러 참고 감내하는 여성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폭력을 받아주다 보면 관계는 진전되지 않는다. 한두 번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이후로도 계속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가 "미안해" 라고 말할 때 모든 것을 용서해 주지 마라. 그가 "사랑해서 그랬어" 라고 말할 때 그의 폭력을 사랑이라고 애써 포장하지 마라. 개인 수준에서 안 되겠다 싶으면, 당장 전화기를 들고 국번없이 1366 혹은 02) 2263-6465 아니면 112로 전화를 걸자. 남성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여성이 참을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한다면 당장 떠나라.

  •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니까, 조금은 X가지 없게 굴어도 되겠지?"
    • 해당 항목으로. "나쁜 남자" 라는 말은 쉽게 생각하자면, 나쁜 남자가 되기 위한 몇몇 요건들을 충족한다고 나쁜 남자로 칭송받으며 여성들의 환심을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여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에 대해서 나쁜 남자라는 표현을 빌려 칭한다고 봐도 되겠다. 더 줄여 말하자면 여성 호감을 사는 남자가 츤데레라는 거다. 정말로 인성이 나쁜 측면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요소 다 맘에 드는데 어느 한 군데 좀 부족한 부분이나, 괜히 자기에게 마음을 완전히 주지 않는 사람을 짝사랑하면서 나쁜 남자 운운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터프한 매력과 싸가지 없는 건 아예 다르다.

  • "공주님 안기를 시전하면 이 여성이 내게 홀딱 반하게 되겠지?"
    • 직접 공주님 안기를 시전하는 것은 좋은데, 이게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다는 사실을 계산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여성의 몸이 아무리 가볍다 한들 성인이라면 기본이 4-50kg 이상이고, 여성이 남성 쪽에게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 늘어진 상태일 경우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그러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안전도 안전이거니와 당분간 여자친구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니는 불쌍한 처지가 될 수 있다. 어지간히 팔과 허리 근력이 자신 있지 않으면 그냥 하지 말자. 만화 OL진화론에서는 공주님 안기를 강요하는 색시 때문에 고생하는 신랑이 나온다.

  • "일부다처제를 하면 나 같은 남성도 얼마든지 하렘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당신이 폴리아모리가 아닌 이상 꿈 깨자.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일부다처제일처다부제처럼 배우자를 다중으로 두는 결혼 문화가 인류 역사에서 마이너한 결혼 문화로 남겨지게 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일부다처제를 했다가 집안이 콩가루가 되다 못해 아예 박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당장 결혼할 때는 좋을지 몰라도 n명과 결혼 후 바가지가 n배라는 문제점은 그렇다 치고, 대부분의 경우 아내들 사이의 불화와 권력다툼, 갈등, 특히 이복자녀 학대살해[31] 등 가정의 평화를 뒤흔드는 온갖 역경과 고난, 번뇌가 끊이질 않는다. 가정이 안정되질 않으니 그 가정들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사회가 안정을 찾을 리 없고, 결국 사회의 질서와 화합을 위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씩!" 이라는 룰을 각 문화권마다 정해놓은 것이다. 심지어 그 중동에서조차 원칙적으로는 "아내 더 들이겠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솔직히 추천 안한다. 그리고 이거 읽는 너는 안될거야 아마" 라고 쿠란에 적혀있을 정도다.[32]
    • 그리고 일부다처제가 실제로 시행되어서 상술한 장애요소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집안을 일구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쳐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현실적으로 일부다처제의 결과는 학벌과 재산, 능력 등이 상위 1% 안에 드는 남성들이 과반수의 여성들을 싹쓸이하고, 그나마 중박 이상은 치는 남성들은 간신히 1~2명 정도의 아내를 얻는 데 성공하며, 사회에서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변변찮은 나머지 남성들은 아예 평생 자식을 낳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독신인 채로 살다 갈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이런 문제가 나타나서 뭇 남성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데 일부다처제를 하면 오죽하겠는가. 당연히 자신에게 몰려들 것이라고 믿었던 아리따운 미녀들은 대체로 전교 1등 + 학과 수석졸업 + 외국계 대기업 입사 + 건물주 같은 금수저에게 다가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 이렇듯 하렘물과 현실의 하렘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지라 여자들은 하렘물의 히로인들이 벌이는 행동을 이해할 수도 없고 절.대.로!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괜히 하렘물이 극남성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괜히 여자들이 이런 거 봤다가 눈 썩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남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어느 여성이 연애를 역하렘물로 공부했다고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하렘물이나 미연시는 남성 고객들을 표적으로 삼아 그들의 성적 환상을 대리만족 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물건이므로 현실성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진지하게 여자들의 속마음을 고찰하면서 썼을 확률은 절대로 없다. 여자들이 하렘물을 보는 감정은 남자들이 역하렘물을 보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괜히 하렘물/역하렘이 여성혐오/남성혐오를 부추긴다는 편견이 나온 게 아니다.


5. 성생활, 성관계[편집]


  • "남자들은 7초마다 한 번씩 야한 생각을 한다며?"
    •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자.애초에 가능할리가 없다 어디에도 학술적인 근거가 없는 출처불명의 수치다. # 킨제이 보고서에서는 '남성의 97%는 하루에 몇 번 내지 한 달에 몇 번씩 섹스에 대해 생각하며, 이 중 54%는 매일 한 번씩 생각한다'는 진술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 전체 남성들을 변태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타인이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탓할 수도 없다. 더불어 이 편견은 근거없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숫자만 보여주면 사람들이 얼마나 쉽사리 설득되는지에 대해 여실히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상식적으로 절대다수의 남자들이 7초마다 한 번씩 음란한 생각을 했다가는 아무 일도 못한다.

  • 섹스는 무조건 오래, 길게, 많이 할수록 여성이 만족스러워한다.
    • 서로가 오래, 길게, 많이 하는 것을 원한다면 상관 없을 일이겠으나, 지루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삽입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유지되면 여성도 아파하며 힘들어한다. 지루인 본인도 만족하기가 어렵다. 물론 조루인 것도 여성이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합의해서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당한 시간이다.

  • 섹스 중 여자가 싫다고 하는 것은 싫은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내숭을 떠는 것이다.
    •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이런 클리셰 자체가 포르노 등에서 만들어 낸 판타지다. 그러니까 싫다고 하면 싫은 거다. 싫은 것을 억지로 한다고 해서 좋아할 거라고 믿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지를 인증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섹스를 포르노로 배웠습니다!"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발상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기분이 좋겠는가? 정상적인 이성관계, 최소한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기만 했어도 "안 되는 걸 억지로 하자고 했다가는 범죄자가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인생에서 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즘에는 이런 컨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는 중이라서 순애물 컨셉이 인기를 끄는 중이라지만, 그래도 강간 컨셉의 포르노는 항상 어느 정도 인기가 있기 때문에... 차 마시는 비유로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 (한국어 자막 있음)[33].
    • 1980년에는 여성심리학계에서 이런 종류의 고정관념을 두고 강간 신화(rape myth)라는 용어로 정리한 바 있다. 물론 모든 남성들이 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런 생각이 강한 남성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다수의 문헌들을 통해 연구되어 왔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링크를 참고.

  • 사정은 무조건 넘치도록 많이 할수록 여성이 만족스러워한다.
    • 아기를 갖자고 합의한 부부가 아닌 이상, 여성이 그런 포인트에서 만족한다고 보기 어렵다. 여성은 정액의 양에 별로 관심 없다. 정액 자체를 지저분하다고 생각해서 찝찝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많이 싸는데 신경 쓰기보다 서로의 낭만적 기대가 충족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을 때, 두 사람은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웬만하면 콘돔을 쓰자. 이것도 포르노의 영향인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다 보니 과장해서 연출된 장면일 뿐인데 그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 섹스 중에 여성이 마구 비명과 신음을 내지르고 아헤가오를 선보인다는 것은 해당 여성이 그만큼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다.
    • 이것은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케바케. 애초에 사람에 따라서 만족하면서도 딱히 비명이나 신음을 내지르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 사실, 정말 오르가즘에 빠져서 기분이 좋아 죽을 기분이라면 숨이 가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예 신음소리 자체가 나오지를 않는 경우도 있고[34], 여성들의 오르가즘이 남자들보다 몇 배 강해서 신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세다는 믿음이 있지만, 사실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강도로 느끼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섹스가 만족스러워도 굳이 내지 않는 경우, 무뚝뚝하기 때문에 신음 내는 행동을 쑥스럽게 생각해서 기분이 좋아도 남자 앞에서 일부러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 여자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남성들도 워낙에 많기에, 어떤 여성들은 본인은 별로 행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신음을 내고 만족하는 척을 하는 경우도 있다.

  • 질내사정을 할 때, 여성은 남성의 정액이 뿜어져 나오는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
    • 대부분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미미한 정도고, 마찰로 인한 열감이나 아니면 격렬한 섹스로 인해 높아진 혈압 등을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간혹 정액과 애액의 중화반응으로 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정도로 열이 그만큼 발생했다간 정자들부터 사멸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고환이 왜 외부 충격의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외음부로 돌출되어 나와 있는지 생각해 보자.
    • 또한, 정액 자체는 의외로 체온에 비해 뜨겁지 않다. 사정 중인 남성의 피부 온도를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후방주의) 정액의 온도는 피부 온도보다 명백하게 낮음을 볼 수 있다.

  • 남성이 발기가 거의 안 되는 장년~노년층의 부부들은 섹스리스다. "아재... 서요? "나는 하는데, 너도 하냐?""
    • 발기가 약해지긴 하는데, 이는 장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발기부전 항목에 나와있듯이 발기부전인 10대~20대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섹스는 완연한 발기와 거친 삽입, 기운찬 피스톤 운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금슬 좋은 황혼 부부들은 발기 → 삽입 → 사정이라는 프로세스를 잘 따르지 않으며, 서로를 위한 부드러운 마사지와 스킨십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곤 한다. 특히 십수 년을 자신과 함께해 왔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함께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친밀감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은 발기, 삽입, 사정을 섹스의 3요소라고 여기기 때문에, 잠자리 파워(?)가 약해지는 중년이 되면 정력에 좋다는 보양식을 찾아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괴식을 열심히 자시는 걸 볼 수 있다. 아무튼 쉽게 접하거나 평범하게 요리하거나 하는 음식은 어지간해서는 정력에 좋다는 타이틀을 얻기가 힘들다.
    • 그러나 약간 다른 의미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발달심리학적으로 볼 때 중년기의 남성과 여성은 삶의 만족도와 결혼의 만족도가 인생 전체를 통틀어 최저점을 찍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자녀들은 사춘기로 고생하거나 이제 막 독립해 분가한 상태이고, 일부 여성들은 빈 둥지 증후군(empty-net syndrome)으로 고생하며, 남성들은 퇴직의 압박에 시달리거나 이미 퇴직한 상태. 인생 전체에서 가장 행복하지 못한 시기이기 때문에 부부 생활도 적극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 남성의 물건이 크다면, 경우에 따라 귀두가 자궁 속까지 파고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 불가능하다. 기존의 성교육이 구태의연하게도 여성의 내부 생식기 그림을 정면 단면도로만 보여주었기에 발생한 오해인데, 자궁 입구와 질 사이는 구부러져 있어서 안된다. 섹스 중의 남성의 귀두는 해부학적으로, 구조적으로 자궁 쪽으로 전혀 들어갈 수가 없다. 또한 각종 상업지에서 저런 왜곡된 그림을 많이 그려제껴서 오해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작품들을 많이 봤다면 얼마나 말이 안 되게 왜곡된 요소가 많은지 알 수 있을 텐데 저것만 달랑 믿지 말자. 현실에서 시도했다간 환희에 차긴 커녕 상대가 고통을 느껴 강간으로 이어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관계도 파탄날 위험성만 농후하다. 동인지에서는 고통이 너무 쎄서 뇌가 맛간 건가 참고로 억지로 밀어넣으려 하면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애초에 시도도 하지 말자. 정 이해가 안된다면 가운데 손가락으로 코를 파서 목구멍까지 닿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봐라. 이러면 코피 나는 정도가 아니라 조직이 파괴된다. 마찬가지로 질에 강한 압박이 가해진다면 장과 질 사이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 사실 여성에게 자궁이 제 자리를 벗어나 질 쪽으로 내려앉는 질병인 자궁하수가 있다면 귀두가 자궁에 닿는 것이 가능하지만, 자궁하수는 성고통을 유발하므로 이 경우에도 정상적인 성교는 불가능하다.

  • 질외사정만 하면 피임은 완전히 보장된다.
    • 피임법이라고 돌아다니는 내용 중에 가장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 임신 주기를 확인하는 것도 불확실한 판인데, 괜히 후회하지 말고 불임 수술을 받거나 피임도구를 적극 사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35]

  • 첫경험을 할 때에는 남자는 무조건 능수능란하게 주도적으로 리드해 가야 하고, 여자는 무조건 조신하고 순진하게 남자의 리드에 몸을 맡겨야 된다.
    • 오히려, 서로 처음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서로를 챙겨주는 게 바람직하다. 남자가 능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기가 죽을 이유가 전혀 없으며, 아무리 관계가 익숙하더라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면서 자신의 성적인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억눌러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러나, 의외로 상당히 많은 남성들이 첫경험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독무대인 것마냥 착각하고, 여성에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마치 자신이 남성성을 부정당하면서 여성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괴로워하면서 자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36] 그래서 자신의 남자친구가 그러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 가짜로 신음소리를 내고 만족스러운 척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 사귈 거라면 절대로 그러지 말자. 결국 연인 관계는 서로 간의 심리적인 교감과 배려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첫경험을 할 때는 무조건 정상위이고, 기승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은근한 암묵적 고정관념. 기승위도 여성 쪽이 리드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체위다. 그냥 속 편히 두 가지 체위 다 해 보든가...?
    • 특히 이런 거 가지고 괜히 쓸데없는 자존심 걸지 말자. 더 적극적인 쪽이 더 많이 리드하는 거지, 누가 누구 위에 올라타느냐를 놓고 기싸움[37]을 할 이유가 없다. 보통은 이런 데 "남자의 자존심"(?) 따위를 거는 꼴마초와 관계를 갖는 여성 쪽도 그 못지않은 수동적이고 금욕적인 성 관념을 가진 경우가 많다.


5.1. 순결, 비처녀 논란[편집]


  •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관계 시에 "덜 쪼일" 것이다. 이유는 출산은 여성의 생식기에 불가역적인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 인간의 몸은 피해를 다시 복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물론 출산 후 후유증이 몸에 남는 경우가 많지만, 자궁도 출산 후에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서 도로 원상복구된다. 물론 남성 쪽에서 느끼는 자극과 쾌감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에, 기분 탓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 음순이나 유두의 색이 연분홍빛인 여성은 순결하다는 뜻이며, 갈색인 여성은 문란하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자위행위섹스를 통해 피부가 자극되고 마찰되면서 피부색이 탁해지기 때문이다.
    • 지금 당장 며칠에 한 번씩 10~20분 가량 왼쪽 팔뚝을 비벼서 피부가 검어진다면 인정한다(...) 애초에 이것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개인차" 의 영역이며, 멜라닌 색소의 많고 적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남녀 상관 없이 동양인의 경우 서양인보다 음순 혹은 음경이 검은 경우가 많은데, 이게 동양인이 더 문란하기 때문이겠는가? 애초에 남녀를 떠나서 해당 부위의 색이 어릴 때와 달라지는 이유는 호르몬 증가에 의한 멜라닌 색소의 착색 때문이지 사용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 여성의 음문은 나이가 어릴수록, 경험이 없을수록 더 "잘 쪼일" 것이다. 삽입 시 감각이 헐겁다면, 이 여편네의 과거를 의심해야 한다.
    • 그럴 리가 있나.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개인차" 의 영역이다. 미성년자에게 손대지 않는 이상 나이가 어릴수록 소위 "잘 쪼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근거 없는 생각이다. 또한 상대방의 과거를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런 것에 신경 쓰느니,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섹스를 함께 하는 상대방에게 애정의 표현을 한 마디라도 더 하는 것이 서로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

  • 처녀막은 질 입구를 잘 밀봉하고 있는 두꺼운 비닐 같은 막일 것이다. 이것이 찢어져 있다면, 이 여자의 과거를 의심해야 한다.
    • 처녀막은 그냥 질 입구에 있는 얇은 막일 뿐이다.[38] 막이라고 해서 구멍이 없는 게 아니라 구멍이 막으로 덮어서 작게 있다. 실용성이 없어서 처녀막이 없이 태어날 경우도 있다.[39] 만약에 질구를 밀봉하고 있다면, 그 여성은 월경 때마다 월경혈을 배출하지 못할 것이며, 이는 처녀막 폐쇄증으로 심각한 고통과 합병증을 초래한다. 그리고 질 입구에 위치해서 손상되기도 매우 쉽기에, 비포장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정도로도 손상될 수 있으며, 삽입성교 외에 격렬한 운동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이것이 손상된 채 첫경험을 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다. 이와 반대로 출산 후에도 처녀막이 유지 되는 경우도 있다.
    • 그리고 처녀막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앞글에도 말했지만 없이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쾌락과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환희를 느끼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게 섹스인데, 처녀막 따위로 꼭 산통을 깨야 할까?[40][41]

  • 처녀막이 훼손될 때에는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것이다.
    • 일부 예민한 사람들이나 살짝 따끔한 느낌을 경험할 뿐, 대개는 잘 느끼지 못한다. 대신 가부장적 가치관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신체적 고통은 없더라도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는 있다. 관련 자료.
    • 여성이 생애 첫 성관계에서 심한 통증을 느낄 경우, 처녀막이 찢어지는 충격(...)이 아니라 여성기 자체에서 느끼는 성고통일 가능성이 크다. 본인의 체질, 건강 상태, 흥분 정도, 파트너와의 상성, 정신적 교감, 성교섭 방식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향후 개선되는 사람도, 개선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 매너 있는 남성은 자신이 연애 중인 여성의 몸을 지켜주는 것이다.
    • 케이스 바이 케이스. 만일 양쪽이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합의 하에 혼전순결을 지키기로 했다면, 이는 그 커플이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한 일이므로 문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혼전순결을 요구하거나, 여성은 섹스를 원하는데 남성이 여성의 순결을 목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타인에게 바라는 순결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 제도적으로 그 대상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억압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또한 이러한 소위 "기사도적 남성우월주의" 역시 진정한 성 평등을 위해서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이해할 때 평등한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편견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양가적 차별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6. 성추행, 성범죄, 성폭력, 강간[편집]


  • 성폭력 사건의 책임은 애초에 야하게 옷을 입고 다니거나 함부로 눈짓을 하고 추파를 던지거나 야밤에 돌아다닌 여성의 책임이다.
    • 오늘날에는 이렇게까지 정신 나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생 데이트 폭력 사건 같은 것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에서 많은 몰상식한 인간들이 여성에게 그 책임을 돌려서 2차 피해를 일으키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범죄 수사를 종합해 보면, 성폭행은 피해자의 외견과 상관 없이 저지르기 쉬운 환경일 때 일어난다.
    • 비슷하게, 유흥업소 등에 종사했다거나 평소 문란한 생활을 하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강간 신고를 부인하고 묵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과거에는 성폭력의 보호법익이 해당 부녀의 정조였기 때문에[42] 이러한 경향이 더 심했다.
    • 벨기에에서 열린 한 박람회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성범죄 생존자들이 피해 당시 입고 있었던 옷만을 모아서 전시하기도 했다. 전시된 옷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소위 남성의 눈이 뒤집히게 될 정도로 "야한" 옷은 의외로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박람회 관계자에 따르면, 전시된 옷들 중에는 심지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프린트되어 있는 옷도 있다고 한다.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것이다.
    • 이와 관련하여 오찬호 씨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것으로, 해외 웹에서 이런 대화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성범죄 사건에 대해 누군가가 "남자 앞에서 옷을 그렇게 입으면 개 앞에 스테이크를 던져주는 것과 똑같잖아!" 라며 덧글로 히히덕거리자, 다른 사람이 "우리집 개는 땅콩버터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만, 내가 '안 돼' 라고 말하면 절대 안 먹어!" 라고 받아쳤다는 것. 인간은 성욕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만큼 사회규범과 도덕윤리로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존재이기도 하다.

  • 성폭력 가해자들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살펴보다가 "야하고 벗기기 쉬운" 옷을 입은 여성이 지나가면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덮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 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성범죄 원인 및 발생환경 분석을 통한 성범죄자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성폭행 중 우발적인 것은 25.2%에 그친 반면 계획적인 것은 74.8%에 달했다. 또한 가해자 주거지와 범행장소 간의 평균 거리는 무려 40.72km[43]나 되었는데, 연구팀은 이에 대해 가해자가 검거를 피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적으로 장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 성범죄는 낯선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다.
    • 위와 마찬가지로 "일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범죄자들" 에게 책임을 한정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 편견은, 그러나 뉴시스 관련보도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국가통계의 일환으로써 3년마다 한 차례씩 진행되는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실은 강간가해자 10명 중 8명은 피해자와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 더불어 성범죄는 사람들이 없는 으슥한 곳에서 주로 당한다는 편견도 있는데,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전체 여성 피해자의 78.1%는 대중교통과 같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서 성범죄를 겪었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 피해자의 경우 (여전히 가장 많은 응답이 있었지만) 대중교통 내부는 48.3%에 그쳤다는 것.

  • 성폭력은 여성만 당한다.
    • 비율로 따지면 여성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남성도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노인들이 어린 남자아이의 고추를 만지는 것은 우스개로 넘길 수 있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으며,[44] 젊은 남성들은 일부 아줌마들이 엉덩이를 만지거나 꼬집는 등의 성희롱을 겪는 경우도 있다. 언론 및 방송에서도 남자 연예인들은 상당한 성희롱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유쾌한 예능의 한 장면인 것처럼 비추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이것이 역차별 반대운동 쪽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으며, 2016년 연말에는 B1A4 멤버들이 방송 중 성추행을 당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개그우먼 이세영SNL 코리아에서 잠정 하차하기도 했다.
    • 이 때문에 2015년 12월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성인남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안내서" 를 배포하기도 하였다. 성폭력이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자는 것이 책자의 골자.
    • 성폭력 지원 센터와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통계를 믿는다면, 2013년에서 2015년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의 최소 5퍼센트는 남성이다. 이는 군대나 교도소 등의 특수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또한 남성들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 여성 피해자보다 신고율이 낮다는 보고도 있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캠퍼스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명령한 조사 결과, 강간당한 경험이 있는 미국 여성이 2200만 명, 남성은 16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 "뭐, 남자인 네가 여자에게 당했다고? 그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솔직히 너도 즐겼잖아, 안 그래?"
    • 흔히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즐거울 것이다" 라는 식의 섹스 판타지가 돌고는 있지만, 현실은 야동이 아니다 당장 수많은 남자 강간 범죄들의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억지로 비아그라를 먹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피해자들은 발기가 되기는커녕 극도의 공포에 질리는 경우가 태반이고, 강간의 충격으로 인해 발기부전을 얻는 것은 기본이요 평생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45] 특히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나 주변 사람들이 위의 편견을 들먹이며 별 것 아닌 일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피해자의 재활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 심지어 (극단적 성평등주의자[46]가 아닌 이상) 남자랑 여자랑 똑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이 상황에서는 남자가 기분 좋았을 거라고 평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왜냐고? 그들 입장에서는 생물학적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문제는 이 문제를 생물학적 차이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니들 뭐가 차별이고 차이인지 분간도 안 되냐?[47]

  • 모든 종류의 강력범죄는 힘 없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여자라서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 연구자들은 실제로는 그보다 약간 더 복잡한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전세계적 역사로 미루어 보건대, 강간을 포함한 성범죄, 그리고 아동학대[48]는 여성에게 훨씬 더 많이 가해지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중범죄들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한다![49] 특히 살인으로 보자면 아예 비교를 불허할 지경. "가해자도 남성, 피해자도 남성" 인 이 상황에 대해서 연구자들은 여기에 어떤 진화론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50]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하위 남성 표적 가설(subordinate male target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 이것이 당혹스럽다면, 잠시 시대극이나 전쟁물에 나오는 흔한 클리셰적인 대사를 상기해 보자. "남자들은 어린아이들까지 전부 잡아 죽이고, 여자들은 납치해서 아내나 첩으로 삼아라!" 이렇게 본다면, 사실 하위 남성 표적 가설도 그렇게 아주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다만 대한민국 기준으로만 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2013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해자의 80%가 여성이었으며, 이 중 성범죄를 제외하고 비교하면 폭행과 강도는 남녀 비율이 비슷했으나 살인은 여성 피해자가 60%를 넘겼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의 살인 피해자의 70에서 80%가 남성이라는 통계와 비교하면 꽤 큰 차이로, 대한민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할 확률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매우 높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확률이 아니라 피해자 수를 가지고 따진다면, 성범죄 이외의 강력범죄 피해자가 여성이 '훨씬' 많다고 하기는 어렵다.
    •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에 따르면, 유독 국내에서는 서구와 달리 성인 여성의 사망률이 성인 남성의 사망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웃도는 예외적 패턴을 보이는 이유는 가정폭력에 대한 법적, 제도적 미비 때문이라고 한다. 서구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깔끔하게 격리시키는 것도 아니고, 문이라도 뜯고 들어갔다간 경찰 본인이 수리비를 대신 변상해 주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보호의 목적이 피해자의 안전이 아니라 가정의 유지로 잘못 맞춰져 있어서 폭력행위가 치사에 이르기 쉽다는 것이다. #인터뷰

  • 무성애자는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7. 성소수자, 퀴어 담론[편집]


  • 게이는 여성스럽고 레즈비언은 남성스럽다.
    • 게이/오해, 레즈비언/오해 항목을 참고할 것.
    • 일본이나 서구권에서는 그 반대의 편견이 많다. 게이들은 지극히 마초적이고[51], 레즈비언은 지극히 여성적이다[52]는 편견이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편견은 편견일 뿐이다. 자세한 건 위의 두 링크를 참조할 것.

  • 게이는 "성적 취향"이다. 그들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이성애자들에게 좋아하거나 인정할 것을 요구하면 안 된다.
    • 성적 취향이 아니라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나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 커밍아웃을 "나는 발 페티쉬가 있어"와 같은 정도의 표명으로 생각한다[53].

  • 동성 간 성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동성애자 내지는 양성애자다. 내지는, 동성 간 (유사) 성행위를 하면서 즐겼다면, 그것은 자신의 성적 지향이 동성애 지향적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 이성애자라도 동성 간 성행위를 할 수 있고,[54][55][56] 성행위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즐긴다" 는 것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유대감과 애정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말초적인 쾌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말초적인 의미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소위 떡정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개인에 대한 친밀감이 생긴 것이지, 그 사람의 성별에 대한 지향의 증거라고는 하기 어렵다.
    • 반례로,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기에는 종종 단 둘이 있거나 분위기에 휩쓸릴 때 우발적으로 유사 성행위를 하기도 하며, 단순히 호기심에 우연찮게 경험해 보기도 한다. 학업이 부진하거나 일탈이 잦은 학생들이 자주 그런다고도 하지만, 학업 성적이 좋다고 해서 성적 호기심조차 없는 것은 아니니 단정은 불가. 그러나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바로 교도소군대일 듯. 한국군에서 비누 좀 주워줘 같은 괴담이 돈다거나, 미국 교도소에서는 미청년들이 출소한 후 기저귀를 찬다거나 하는 얘기가 줄기차게 나오는 것은, 동성 간 성행위가 어떤 환경에서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권력 확인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 인터넷의 동성 성관계 조건만남 카페에 서식하는 회원들은 전부 동성애자들이다.
    • 그렇지 않다. 물론 그들 중 일정 비율은 동성애자일 수 있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동성애의 본질은 단순히 (이런 카페들에서 추구하는) 동성 간 성적 접촉을 통한 흥분이 아니라, 동성에게 한해 배타적으로 느껴지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이 더해진 친밀감유대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우호적 태도가 나타나는 방법 중 하나가 항문성교일 뿐이다. 즉, 동성애는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의 한 종류이며,[57] 이는 항문성교가 아니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일부 소수자들이 "동성애자도 플라토닉할 수 있다" 고 말하는 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호모포비아들이 위 오해를 근거로 동성애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쉐도우 복싱에 가깝다.
    • 특히 청소년들이 이러한 비공개 카페에 가입할 경우, 자신이 이런 곳에서 형들이나 아저씨들[58]조건만남을 가져 보았다고 해서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성급히 단정지을 이유는 전혀 없다. 청소년기에는 대부분의 경우 거의 양성애적인 수준으로 그 지향성의 경계가 희미하며, 성적 지향에 따른 동기보다는 당장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만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이런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미성년 남성과 성인 남성 간의 성관계는 동성애라기보다는 성 착취에 가깝다" 고 한다.[59] # 결국 일방적이고 약탈적인 단회적 만남이 반복된다는 것이며, 이는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 거리에서 공공연히 애정행각을 하는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타인들에게 과시하거나 강요하기 위함이다.
    • 여러분이 만일 이성애자라면,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와 애정을 나눌 때 "나는 내 이성애를 남들에게 과시해 보이겠어! 남들도 나를 보고 똑같이 이성애자가 되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할까? 보통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는다.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사랑하는 파트너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중요치 않은 잡생각일 뿐이다.

  • 변실금의 가장 흔한 원인은 게이들의 항문성교다.
    • 그렇지 않다. 변실금의 가장 흔한 원인은 여성이 출산할 때 겪는 외상이다.[60]

  • 레즈비언들은 전부 숏컷에 보이시한 차림이며, 젠더 감수성이 높고,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 진정으로 온전한 우애, 연대, 상호지지의 끈끈한 애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또는, 레즈비언들의 전체 또는 일부는 남성들과의 여성억압적 연애와 섹스를 거부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진 페미니스트들도 포함된다.
    • 1970년대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그리고 "한남이랑 연애하기 싫어서 레즈비언이 되길 선택했다" 고 말하는 2010년대 국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흔히 갖는 생각이다. 정작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이 남성의 대체물로서 이용당한다고 느끼며, 만날 때마다 남자 욕만 하는 상대방에게 맞추어 주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차림새에 있어서도 자신다움이 아닌 숏컷에 탈코르셋만을 강요받으며, 잠재적 아웃팅의 위험을 안고 교제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무엇보다도 동성애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위 정치적 (혹은 양심적?) 레즈비어니즘과 퀴어 진영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존재한다. 퀴어들의 귀에는 "한남에게 질려서 레즈가 되기로 했다" 는 주장은 반동성애 진영의 "저러다 동성애에 질리면 건전한 이성애적 성생활로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겠지"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고. 따라서 이런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은 단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선택한 비연애나 비혼에 불과할 뿐, 성적 지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 BDSM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검은 가죽옷에 킬힐을 착용하는 것을 즐긴다.
    • 포르노에서 상황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특별히 연출한 도구일 뿐이다. 현실의 에세머들이 그런 도구를 즐길 거라는 보장은 당연히 어디에도 없으며, 그런 게 어울릴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 돔은 강간을 즐기고, 서브는 강간당하는 걸 즐긴다.
    • 그럴 리가 있나. 애초에 이런 BDSM 바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호 합의의 여부이다. 이런 것 때문에 서브가 특히 여성일 경우 돔으로 가장한 변태들에게[61] 당할 것을 우려하여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있는 상태다.
    • 그 외에 다른 BDSM 관련 오해들에 대해서는 BDSM/오해 문서로.

  • 성 소수자를 배려하는 국가들은 전부 교육 수준이 높고 시민의식이 선진화되어 있으며 크게 발전되어 있는 북유럽 선진국가들이다.
    • 서양에는 길고 긴 동성애 혐오 역사가 있다. Faggot이란 단어와 소도미 법(동성애 처벌법)을 최초로 만든 나라가 미국, 영국, 북유럽인 것을 기억하자. 애초에 기독교에 죽고 살았던 서양국가들이 동성애에 긍정적일 리는 없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반동성애 법들이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연시되던 곳이 서양이었다. 경제적인 의미로 선진국이라 한다면 1인당 GDP 기준으로 아랍에미리트, 브루나이,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은 한국보다 더 경제적으로 잘 살지만 동성애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반대로 동양권인 네팔에서는 여권의 성별(sex)에 "Others" 항목에 체크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문화권에는 "히즈라" 라고 하여 제3의 성 개념이 이미 문화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사회적 수용이 보다 수월하기도 하며, 특히 이들 나라들은 법조계에서 성 소수자 담론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 태국트랜스젠더의 천국이 된 이유는, 주변국과의 잦은 전쟁을 치르다가 많은 남성들이 죽게 되었고, 그 결과 근친상간이 잦아져서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났으며, 이런 유전적 이유로 인해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개념이 생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실은 태국에는 과거부터 개인의 성 정체성의 차이에 대해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오해는 《미녀들의 수다》 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잘못된 설명 때문이라고 한다. #
    • 태국 말고도 잦은 전쟁으로 많은 남성들이 희생된 역사가 있는 나라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 나라들도 다 트랜스젠더의 천국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화적인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이지 전쟁으로 많은 남성들이 희생된 탓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 동성애를 양성화하면 게이 사우나, 휴게텔 등 '퇴폐적'이고 '음성적'인 문화가 활개치게 될 것이다.
    • 거꾸로 동성애가 공론화될수록 '퇴폐적'인 문화는 줄어들어 왔다.
    • 게다가 이성애 지향에서도 소위 "퇴폐적이고 음란한" 문화가 있기는 매한가지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동성애와 이성애는 여러 모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 양성애자는 단지 항문성교 맛을 알게 된 이성애자일 뿐이다. 또는, 모든 양성애자들은 결국에는 항문섹스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게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 이런 생각은 여성 양성애자를 설명할 수 없다. 남성의 경우에도 그들이 필연적으로 동성애로 고착된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 또한 양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과의 성교섭 시에 삽입을 하지 않는 남성 양성애자도 존재한다. 애초에 이 편견 자체가 모든 성교섭은 반드시 남성기의 질내삽입으로 귀결되어야 하며, 그 외에는 전부 비정상이라는 편견과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 무성애자는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관심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다.
    • 대부분의 무성애자들에게는 성적 끌림 자체가 남의 이야기다. 행위 자체의 말초적 쾌감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무성애자가 섹스를 안 할 것이라는 것부터가 편견이다.

  • 무성애자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다.

  • 성소수자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들이다.
    •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성애자들이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이성애자들이 모두 범죄자인 것인가? 성적 지향과 성범죄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이고 성소수자들이 그러한 지탄을 받아야만 한다면 여기에는 정말 많은 논증이 필요할 것이다.

  • MTF 트랜스젠더들은 여성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 이는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MTF 트랜스젠더들의 대부분이 주로 연예계나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직업상 그러한 기믹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또 '여자가 되고 싶어서 성전환수술을 했으니 당연히 여성성을 강조하려고 하겠지?'라는 선입견과도 맞물려 생겨난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일 뿐이다. MTF 트랜스젠더 중에서는 스스로 여성으로 살고 싶어서 트랜스젠더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클라인펠터 증후군 등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트랜스젠더가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까지 자신의 여성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려고 하지는 않을 겻이다. 물론 자의로 트랜스젠더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굳이 자신의 여성성을 강조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이 선입견의 반례를 몇 가지 들자면, 트랜스젠더 정치인으로 유명한 대만탕펑 장관으로, 여성성과는 거리가 있는 해커 출신이라 그러한 이미지메이킹을 하지 않아서 그냥 평범한 여성 정치인처럼 인식되고 있다. 또한, 워쇼스키 자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둘 다 과도한 여성성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는 MMXI년 추석특집으로 방송된 ≪미녀의 비밀≫에 트랜스젠더 플루티스트로 출연한 임지우 씨가 있는데, 방송이라 여성성을 약간 강조핻을 뿐 실제로는 그냥 평범한 여성 플루티스트라고 한다.

  • 특정 종류의 페티시즘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해로운 페티시일 것이다.
    • 어떤 페티시가 욕구의 충족을 위해 필수적으로 타인을 해쳐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페티시는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므로 타인이 그것을 부도덕하다거나 해를 끼친다고 평가할 수 없다. 이는 모든 종류의 페티시즘을 평가할 때 일반론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상의 성 소수자 관련 편견들을 살펴보면, 이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도리어 사랑과 섹스에 대해 피상적이고, 편협하고, 얄팍하고, 말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그 정도 수준이니까 남들도 당연히 그 정도 수준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당연히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다. 즉, "다름" 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것이며, 일그러지고 왜곡된 성적 판타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들이 비판하는 허수아비와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행동력까지 높으면 타인의 성문화를 "건전하게" 계도하고 규제하고 검열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따라서 동성애가 불법인 국가들이 괜히 성범죄율이 높은것이 아니다.


8. 음란물, 외설 등[편집]


  • 예술외설이다.
    • 일단 성 관련 내용이라 편의상 여기다 적는다. 이 둘은 전혀 별개의 요소로,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하여 음란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다만 그 작품의 문학적•예술적 가치에 따라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형법이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 뿐이다.
    • 반대로 말하면, 음란물 역시 예술성이 있다면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미 일본 춘화라는 예시가 존재한다.
    • "똑같은 작품이라도 전체를 보면 예술이 되고, 중요 부분만 보면 외설이 된다"는 말이 90년대 중후반부터 잠시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보는 사람의 관점 차이라는 것.

  • 음란물은 불법이므로, 보기만 해도 잡혀간다.
    • 만들거나 뿌리는 게 불법이지, 보는 건 불법이 아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성인물로서 유통되었다면 일단 합법. 단, 예외가 있는데 바로 아동 포르노. 이는 성인물로 공식적으로 유통되었든 소지조차 불법이며 일부 국가에서는 아동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만 해도 처벌하기도 한다.
    • 비슷하게, 미성년자가 음란물을 보더라도 잡혀가지는 않는다. 다만 미성년자에게 음란물을 주거나 판 사람이 잡혀갈 뿐이다(청소년보호법에 의거). 이는 술, 담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학교의경우 교칙에 따라 처벌할 수는 있겠지만 학교 밖 청소년이면 제제할 방법이 없다.
    • 마찬가지로,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또한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다. 만약 접속 자체를 범죄로 규정한다면 이는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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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국내에선 호르몬 때문이니 어쩌니 이러면서 근거를 제시해 보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애초 호르몬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자. 여성들끼리 서로 피를 교환하지 않는 이상 호르몬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겠는가?[2] 무슨 소리냐 하면 "나 어제 생리 끝났는데 너 오늘 시작이구나. 주기가 비슷해졌네." 이런 느낌을 주는 경우를 말하고, 이 경우는 하루의 차이가 된다.[3] 바로 이 맥락에서 개발된 것이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RSES). 자존감 연구자들에게는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되어 버린 바로 그 자존감 측정 척도다.[4] 저자에 따르면, 일상적 수준 이상의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5] 사실 이건 어디까지나 박하선 본인이 아니라 작가의 책임이라서 더욱 억울한 일이다.[6] 소위 시청자들의 "여심 공략" 같은 목적으로 내세운 인물이라지만 제작진은 여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비판받았으며, 도리어 "여성 시청자들이 그렇게 단순하고 우스워 보였느냐."라는 역풍으로 인해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7] 과도하다는 이유로 "항상" 배척을 당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정확한 맥락은 그그실일 정도로 받아들여져야 함에 유의.[8] 예컨대, 여성인 수학자들조차 수능 문제를 만들 때 주변 동료 학자들에 의해 자신의 여성성이 강조되면 수학적 사고에 일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는 것. 다행히 이는 해결책이 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면 된다.[9] Sackett, Hardison, & Cullen, 2004; Jussim, Crawford, Stevens, Anglin, & Duarte, 2015.[10] Horner, M. S. (1972). Toward an understanding of achievement-related conflicts in women. Journal of social issues, 28, 157-175.[11] 업무에 미숙해서 실수할 때마다 몸으로 때우며 수습을 하는 여성이 실제로 있다고 일단 가정이라도 해 보자. 그러나 업무 실적이라는 것은 그걸로 만회가 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일도 못 하고 조직과 회사에 피해만 입히는데 월급까지 주면서 고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여성은 B급 야동 바깥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12] 응원단은 원래 여자가 하는 거 아니었냐는 사람을 위해서 얘기해본다. 기록에 남은 최초의 치어리더는 남자이며, 19세기 말엽에 미국미네소타 대학교의 학생회장이던 한 남학생이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도중에 관중들 앞에서 응원을 호소하던 것이 치어리딩의 시초라고 한다. 이렇게 '이 직업은 여자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하는 것도 명백히 성차별적인 생각이다.[13] 아나키즘적 페미니즘 계통에서 이런 발언이 꽤 많다. 또한 he for she의 긍정은 여성의 자립과 자조(self-help) 능력을 부정하고, 암묵적으로 "백마 탄 기사" 의 구원을 기다리는 듯한 함의를 갖는다는 비판도 많이 있다.[14] 트랜스-배제적 급진 여성주의.[15] 백인이 유색인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을 보고 '이건 잘못되었다!'며 차별을 반대하는 상황이나, 본인은 성다수자이지만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에 반대하며 성소수자들에게 연대를 표시하는 일명 '앨라이'들을 생각해 보라.[16] 사실 현대 서구권 페미니스트들이 "여자도 다 군대 가야 한다!" 라고 외치는 것도 그런 전후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서구 안티페미니즘 세력에게 군대는 싸나이들의 최후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이 가장 앞장서서 여성징병제를 요구하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17] 시다니우스의 경우 본인이 흑인이고 해서 주로 인종차별에 관심이 많지만, 인종차별과 성차별, 심지어 보혁갈등 같은 정치 문제까지 보편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이론체계를 개발한 인물이다.[18] 헤더, 스토리지 유닛, 컴프리헨더, 메모리 워크스페이스 같은 개념들이 쏟아져나온다. 이쯤에서 강조하지만 이거 컴퓨터과학 얘기 아니다. 심리학 얘기다(...)[19] 그래서인지 국내 페미니스트 중에 심리학을 기반으로 업데이트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자기들도 똑같이 까인다고 느껴서인지...[20] 그런데 그 물리적, 생물학적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야 한다. 사실상 성차별의 시초로 보자는 의견도 존재.[21] 사실 이런 사례 때문에 연구자들이 종종 혹시나 해서 사후분석으로 젠더 변인을 넣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매우 높은 확률로 "젠더 변인은 유의하지 않았으므로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문장을 논문에 넣게 된다(...)[22] 가장 대표적인 남녀 간 차이점으로는 다름아닌 신체적 공격성이 있다. 말하자면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심한 신체적 공격성의 표출을 보이며, 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일관되게 나타나고, 진화론적으로도 사회학적으로도 방대한 문헌들을 통해 지지되고 있다.[23] Eagly, 1995a, 1995b; Buss, 1995; Marecek, 1995; Hyde & Plant, 1995.[24] 왜 하필 바나나냐면 인류의 과반수의 DNA가 바나나와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차라리 고릴라하고 비교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자.[25] 각각 대접을 보자면 양성애는 원래는 이성애인데 성적으로 타락했다고 여기며, 무성애는... 그냥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26] 이 때문에 유아용품 전문점에 문의하는 젊은 어머니들 중에는 하늘색 여아용 물건이 없다고 컴플레인을 거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27]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예 고대 사회에서 미니스커트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모르겠으면, 당장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의 병사들의 복장을 생각해보자. 오늘날 보면 심히 OME스럽겠지만, 여성이 다리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옛날에는 오히려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28] 즉, 권력적 강자들은 암묵적으로 그들의 욕정을 가감 없이 해결하지만, 권력적 약자들은 법과 제도라는 틀로 억압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권력이라는 희소가치를 갖지 못한 구성원들에게는 성욕조차도 사치품의 일부가 됨을 암시한다.[29] 시간이 없거나 영어가 안 된다면, 해당 영상의 11:02 지점 한 장면만 멈춰놓고 보자.[30]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Fate/kaleid liner 프리즈마☆이리야인데, 서구 기준의 정치적 올바름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심지어 우스개로 가장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이라는 농담도 가능할 정도지만, 실상은 어린 소녀들의 성적인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호주에서는 아동 포르노 시청으로 오해받아 경찰이 출동하고, 러시아캐나다에서는 아예 아동 포르노로 분류될 정도이다.[31] 한 예로 구약성경 창세기에도 아브라함의 아내가 간신히 임신에 성공하자, 그 이후부터 이복자녀를 괴롭히는 장면이 나온다.[32]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처하여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 번 또는 세 번 또는 네 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그녀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손이 소유할 것이거늘;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라. (꾸란 4:3)[33] 참고로 미국에서는 관계 도중에 멈춰달라고 했지만 멈추지 않아서 강간 혐의로 유죄판결이 나온 사례가 있다.[34] 특히 정숙한 여성 이미지를 강조하던 옛날 여성들, 그리고 그런 가풍에서 교육받은 여성들이 이런 경우가 있다.[35] 콘돔과 피임약을 쓰는 걸 피하려고 이런다면 상대방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거나 당신을 임신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36] 만화 B형 H계에서 진 주인공 코스다 타카시모테키의 진 주인공 후지모토 유키요가 이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잘 묘사했다.[37] 이를 두고 어떤 체위에서 누가 상위로 올라가는가의 문제가 상대방을 신체적으로 "정복" 하는 것을 은유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38] 간혹 질 내벽의 주름을 처녀막으로 오해하는데, 그러면 처녀막은 한 개가 아니라는 주장이 된다.[39] 이해가 안 간다면 퇴화 항목으로.[40] 이는 마치 포장된 물건을 개봉하여 귀속하는 행위처럼 봉인되어 있는 여성의 몸을 자신의 남근으로 찔러 해제시킴으로서 여성을 소유하거나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남성 중심적인 로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상대방 이성이 나를 만나기 전에 누구를 만났는지 알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남성들은 여성의 과거에 대한 불확실성 자체를 일소해 주는 처녀막의 존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데, 참고로 처녀막은 간단한 수술로 매우 쉽게 재건될 수 있다.[41] 진화심리학의 관점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이 아이가 내 자녀인지 남의 자녀인지 더욱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부성투자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데이비드 버스(D.Buss) 등은 남성들이 배우자의 "신체적" 인 순결 여부를 통해 향후 배우자 부정의 가능성을 추정하려고 한다고 본다. 반대로 여성들은 남성의 장기적 부성투자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므로, 이들은 보다 "정신적" 이고 "금전적" 인 배우자 부정에 민감하다.[42] 1995년까지 강간과 추행의 죄의 장 이름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43] 서울특별시에서 용인시까지의 거리다.[44] 물론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 젊은 부모들은 이런 일을 목격하면 대경실색한다. 낯선 성인이 그런 짓을 했다면 경찰을 부를 가능성도 높다.[45] 좀 이상하다면 한 번 상상해 보자. 옆집의 후덕하신 아주머니가 여러분을 갑자기 벽으로 몰아붙이더니, 주름살 위로 진한 화장을 한 얼굴로 살살 눈웃음을 치면서 셔츠를 거칠게 잡아뜯고는 숨을 몰아쉬면서... 그 이하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좀 극단적이긴 해도, "원치 않는 성관계" 라는 것이 대체로 이런 의미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현실은 야동이 아니다. 괜히 현실주의자가 작가를 조현병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다[46] 즉 남자든 여자든 평등하게 살아야 하고 평등하게 죽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자.[47] 괜히 남성이 여아를 성폭행하는 건 범죄지만 여성이 남아를 성폭행하는 건 취향이라는 개소리가 튀어나온게 아니다. 남자와 여자와 이런 성욕의 차이에 남자들은 모두 성행위를 좋아하며 즐긴다는 편견때문에 생기는 것이다.[48] 어차피 피해자는 힘 없는 어린이이고 가해자는 성인이므로 남녀 비율이 비슷하다. 남자건 여자건, 어린아이는 성인과 비교할 수 없이 힘이 약하기 때문.[49] 미국 백인 남성의 40%, 백인 여성의 25%, 흑인 남성의 20%, 흑인 여성의 12%가 증오범죄의 표적이 된 바 있다는, 우리의 상식을 거부하는 통계도 있다! Bureau of justice statistics, 2001, "Hate crimes reported in NIBRS, 1997-1999".[50] e.g. Belzig, 1993; Sidanius & Pratto, 1999; Sidanius & Veniegas, 2000; Olsson et al., 2005; Navarette et al., 2009; 2010. 참고로 이 분야의 연구자 중 하나인 펠리치아 프라토(F.Pratto)는 젠더심리학 전공의 여교수이고, 학부 시절 공순이로서 이공계의 저 지지리도 심한 성차별을 겪을 대로 겪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행여나 학계가 남성권력의 헤게모니에 장악됐다느니 하면서 이상한 정신승리를 하지는 말자(...)[51]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클럽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프레디 머큐리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양성애자이지만, 일단 서구권에서의 게이에 대한 편견은 '게이는 상당히 마초적인 이들이다'라는 것이다.[52] 이쪽은 실제로 레즈비언조디 포스터나, 엘렌 페이지의 이미지를 보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그저 편견일 뿐이다.[53] 참고로 성적 지향에 대해 취존 운운하지 않더라도, 성적 지향을 '성적 취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꽤 있다. 본인이 성소수자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를 모르거나,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54] 물론 적지 않은 수가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한다.[55]군대교도소같은 특정 성별이 몰린 곳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빈번한 지를 보자. 이런 동성 간의 성폭력은 가해자의 성적 지향과는 아무 상관없고 그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위력 과시가 그 목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56] 사춘기 학생들 사이에서 단순한 성욕 해소를 위해서 이성이나 동성 간의 성접촉이 일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57] 간혹 이에 대해 항문성교를 그럴싸하게 포장할 뿐이라는 혐오론자들도 있는데,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셈이다. 즉, 동성애가 이런 '더러운' 거라고 미리 정의를 내려놓고, 실제 동성애의 정의와 충돌하자 자신의 생각을 교정하는 게 아니라 남들의 생각을 자신에게 맞게 교정시키려 드는 것이다. 그들은 동성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 궁금증보다는, 그것이 '더러운' 것이라는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 확증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58] 이런 사람들이 이성애자일지 동성애자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59] 따라서, 동성애에 관련하여 논쟁이 벌어지면, 탈동성애 운동을 하는 많은 종교인들이 생각하는 동성애라는 것이 혹시 이런 성적 약탈과 착취의 이미지는 아닌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60] Rao, 2004; Kamm, 1998.[61] 이를 소위 "변바" 라는 은어로 부르기도 하는데, 변태 바닐라의 준말이다. 바닐라는 BDSM과 무관한 일반인들을 일컫는 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