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포로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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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제5대 대통령
페트로 올렉시요비치 포로셴코
Петро́ Олексі́йович Пороше́нко
Petro Oleksiyovych Poroshenko


파일: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jpg

출생
1965년 9월 26일 (58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볼흐라드
(現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 볼흐라드)
재임 기간
제5대 대통령
2014년 6월 7일 ~ 2019년 5월 20일
학력
키이우 대학교 (경제학 / 석사) (1982-1989년)
정당


직업
정치인, 경제학자, 기업인
종교
정교회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체
185cm
가족
배우자: 마리나 포로셴코
슬하: 2남 2녀[1]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3, 4, 5, 7, 9(現)
현직
제9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비례대표)
경력
로셴 CEO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의장
우크라이나 제9대 외교부 장관
우크라이나 제2대 경제통상부장관
우크라이나 제5대 대통령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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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경력
근무
소련군
복무
1984~1986년
소속
소련 육군
서명

1. 개요
2. 성향
3. 생애
3.1. 정치 활동
3.1.1.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을 재건하다
3.1.2. 젤렌스키 집권의 숨은 주역
3.1.3. 부정부패
3.1.3.1. 감안할 점
3.1.3.2. 재선에 실패한 부패 정치인
4. 선거 이력
5. 어록
6. 별명
7. 기타



1. 개요[편집]


우크라이나 제5대 대통령이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중도주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2] 동유럽의 제과 회사 로셴의 회장이었지만 이후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 2014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재임 기간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군을 개혁하고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을 이룩하며 우크라이나어 진흥책을 펼치는 등,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과 독립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군사 개혁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맞서 굉장히 선전함으로써 적절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책없는 반러 정책과 자국내 러시아계 탄압으로 러시아와의 갈등을 극한으로 몰아갔으며 우크라이나의 고질병인 부정부패 척결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초부터 올리가르히 출신인 본인 역시 부정부패 혐의가 있을 정도고, 이것 때문에 재선에 실패했다.


2. 성향[편집]


키이우와 드니프로에서 시위는 대체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대인 집단의 지지를 받았다. 마이단 광장에서 자위 대대를 조직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스라엘군의 재향군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키이우에서 자기 밑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형제"라고 불렀다고 기억한다. 1월 마이단에서 처음 발생한 사망자 두 명은 아르메니아계인 세르게이 니호얀과 벨라루스 국적인 미하일 지즈넵스키였다. 2월에 벌어진 저격병 학살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자체와 시위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우크라이나 동북단에 자리한 하르키우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쓰는 환경 운동가 예브헨 코틀례프도 있었다. 이 학살에서 무장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유대인 세 명이 살해됐는데, 그중 한 명은 붉은 군대 재향 군인이었다. 무슬림 난민 가정 출신으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이가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혁명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폴란드, 유대 문화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대통령 권한 대행과 임시 정부 성원들은 우파 민족주의자는커녕 대개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의 러시아어 사용자였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뽑힌 국회의장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출신의 침례교 목사였다. 이행기 동안 국방부, 내무부, 국가보안부 등이 러시아어 사용자들 손에 넘어갔다. 국방장관 직무 대행은 집시계였다. 내무장관은 아르메니아인과 러시아인의 피가 반반 섞인 사람이었다. 부총리 두 명 중 한 명은 유대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은 동남부주인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의 주지사 역시 유대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은 동남부주인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의 주지사 역시 유대인이었다. 2014년 봄 임시 정부 각료 열여덟 명 가운데 세 명이 민족주의 정당인 자유당 소속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더라도 이 정부는 우파 정부가 아니었다.

쿠데타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행정부의 권한 축소를 요구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쿠데타를 벌이는 이들은 권력을 양도하기 위해 선거를 요구하는 법이 없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2014년 5월 2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크라이나 남부 출신의 중도파 러시아어 사용자인 페트로 포로셴코가 승리했다. 초콜릿 사업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당시 쿠데타 시도 같은 게 있었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해킹해서 극우파 정치인이 승리했다고 선언하려 한 러시아의 시도와 그 선언을 그대로 내보낸 러시아 방송의 발표였다.

2014년 5월, 극우파 정치인 두 명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 각각 전체 투표의 1퍼센트도 얻지 못했다. 둘 다 유대교 정강을 내건 유대인 후보보다 더 적은 표를 얻었다. 승자인 포로셴코는 계속해서 총선을 요구했고, 9월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쿠데타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사태 진행과 정반대였고,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극우파의 인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우크라이나의 우파 정당, 즉 자유당과 준군사 집단 라이트섹터를 바탕으로 생겨난 신생 정당 어느 쪽도 의회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기준선인 5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유강은 옮김), 서울 : 부키, 2019. p.206~208

후임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중도주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젤렌스키나 포로셴코나 중도파 정치인들이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협력이 가능할 정도로 정치노선의 차이는 적다.[3][4] 2019년 대선 당시 포로셴코 대 젤렌스키의 대결도 '친러 대 반러'가 아니라 '부패 대 반부패'의 구도였고, 후자를 대표한 젤렌스키가 이긴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조선일보도 2014년 포로셴코가 당선될 당시에는 그를 중도주의 정치인이라 보도했을 정도다. # 하지만 동유럽 정세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까지 이 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3. 생애[편집]


1965년 오데사주볼흐라드에서 태어났으며, 우크라이나 중부의 빈니차 시에서 자랐다. 학창 시절 유도를 배웠고 1982년 키이우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84년에 자신을 폭행하고 여자친구를 강간하려 한 술에 취한 우크라이나인 해군 사관생도 4명과 싸움을 벌였는데, 이 중 두명을 묵사발냈다. 사관생도들도 큰 처벌을 받았으며 또한 포로셴코도 공군 장교 지원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소련 육군 병사로 입대해 2년간 저 멀리 떨어진 카자흐스탄 쪽에 소련군 국경수비대로 자대배치를 받고, 소총수로 복무하다 1986년에 만기전역했다. 이후 1989년 키이우 대학교의 국제관계 및 법학부(뒤이어 국제관계학회)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기업인이 되어 초콜릿 제조회사 및 카카오 열매 판매 사업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과자 기업 몇 곳을 인수하여 1996년에 자신의 이름(포로셴코)에서 따온 로셴(Рошен / Roshen)을 세웠다. 이후 포로셴코의 기업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과자 생산 기업이자 동유럽 최대 제과회사로 성장하여 로셴 그룹이 되어 여러 확장을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자동차 및 버스 공장, 레닌스카 쿠즈냐 조선소, 5 카날 텔레비전 채널을 비롯한 다양한 기업을 인수 및 포괄하여 운영하였으나, 2012년 주력 사업을 제외한 분야는 정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재산을 13억 달러 이상 (원화로 환산 시 약 1조 3천억 원 이상) 축적하여 우크라이나 7대 갑부가 되었고 '초콜릿 왕(chocolate baro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5]

1998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중도좌파 성향인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0년 탈당하고 우크라이나 단결당(페트로 포로셴코 블록)에 합류하는 등 행보를 거치며 우경화했다. 주된 지지기반은 르비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서부.


3.1. 정치 활동[편집]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외교부 장관, 2012년에 경제발전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을 이끌었다. 특히 해외에서 사업을 많이 했는데 주로 북미에서 한 터라 영어를 프리토킹할 정도로 잘 한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할 때에도 통역 없이 진행했고, 외국 언론들과 인터뷰 할 적에도 말을 더듬지 않고 능숙하게 한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와중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치루어진 2014년 5월 25일 대선 1차 투표에서 55%에 달하는 표를 획득하여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를 큰 표차로 눌렀다. 당선이 확실시되어 2차 투표를 하지 않게 되면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동부 친러 세력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고[6] 때문에 초전에 국토 상당 부분과 해안 대부분을 잃는 와중에도 계엄령 선포 없이 우유부단한 행보를 보여, 임기 초반부터 큰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이때 러시아로부터 로셴이 위협받자 이 시기부터 완전한 반러로 돌아섰다. # 취임 1개월만인 2014년 6월, 전임자 야누코비치가 취소시켰던(그리하여 유로마이단의 단초가 된) EU와의 제휴 협정 체결을 매듭지어 친서방 노선을 확실히 드러냈다.

포로셴코 집권 시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로는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비자 정책 시행(2017년 6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함 나포 사건에 따른 계엄령 선언(2018년 11월), 2018년 정교회 분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것을 지지(2018년 11월 ~ 2019년 1월) 등이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둔 2019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EU 가입 방침을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안을 추진하여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통과시켰으며, 5월 15일 퇴임 5일을 앞두고는 우크라이나어공용어로 지정하는 법률에 서명했다.[7]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당시 그의 슬로건은 "Армія, мова, віра"(군대, 언어, 신앙)이었는데, 이는 또한 그의 대통령 임기를 잘 요약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유로마이단 흐름을 타고 당선된 만큼 임기 동안 친서방 반러 정책을 고수하였다. 또한 우크라이나군을 서구화 및 현대화하면서 군사력을 크게 확충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하술.


3.1.1.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을 재건하다 [편집]


임기를 돈바스 전쟁으로 시작한 만큼 재임 기간 동안 국방비를 크게 늘렸다. # 친러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재임 동안 하지 않았던 열병식을 재개했고, 러시아로 망명한 야누코비치의 재산을 환수해 우크라이나 국군 재건에 사용했으며 # 야누코비치가 징병제를 폐지하며 반토막을 내놓은 군의 규모를 대폭 증강하고 2014년 가을부터 유럽에 주둔한 미군, NATO군과 꾸준히 군사 훈련을 하여 동부 반군에 대비하였다. ### 러시아군의 부패 장교들과 짜고 러시아군의 포탄을 밀수해오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적의 치장물자를 미리 털어온 꼴이 되었다. 2022년 9월에 이르러서는 러시아는 포탄이 부족해 북한에서까지 포탄을 수입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백악관과 미 의회를 방문해 돈바스 전쟁이 심각함과 러시아가 위험한 나라임을 강조하며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고 #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방탄복, 전투식량, 통신장비 등 '비살상 물자 지원' 위주로 미적지근하게 반응하자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도 꾸준히 요청을 보내 여러 전투용 무기들, 특히 FGM-148 재블린 약 360발을 두 차례에 걸쳐 구입하고 교관을 모셔와 사용법을 훈련시켰는데(###) 이는 몇 년 뒤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구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또한 재임 중에 우크라이나군의 전투식량의 질을 NATO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사업도 했다. 이 덕분에 깡통에 불을 지펴야 했던 기존 러시아식 기반의 전투식량에서 벗어나 레토르트식을 도입하여 편의성이 대폭 늘어났고 초콜릿 사업체 로셴의 회장인 본인과 군인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우크라이나군 신형 전투식량에는 싸제 수준으로 맛있는 초콜릿까지 간식으로 들어가는 등[8] 맛도 먹을만한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 사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여러 업체와 결탁하여 본인 뒷주머니 챙기는 사업의 일환이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결과물은 민간인들도 먹을 만한 수준으로 잘 개선되었으니 역대급 변화라는 듯하다. 러시아군의 현황을 보면 알듯이, 독재국가에서 어떤 사업을 두고 부정부패를 벌인다면 사업 자체가 그냥 없던 일이 된다.

포로셴코의 병참 개선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군이 먹는 전투식량은 유통기한조차 지난 것이 수두룩한데다 보급 상황까지 거지같은 반면에, 우크라이나군은 그나마 정상적인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열악한 식량 사정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놀리는 영상을 찍는 것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자국의 식량이 러시아군 식량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함을 보여주고, 이런 사소한 배려에서 비롯되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높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돈바스 전쟁 때까지 낙후된 동구권 군대였던 우크라이나군은 포로셴코 시기를 거치면서 병참이 질적인 부분과 양적인 부분에서도 크게 개선되었고, 세련된 서방식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정예로 거듭났다. 후임 대통령 젤렌스키가 자신의 임기 내에 돈바스 전쟁을 승전으로 이끌 수 있다고 공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포로셴코가 서방식으로 완전히 개편한 우크라이나 공수군은 22년 러시아의 침공 초기 호스토멜 공항 전투에서 러시아 VDV의 Il-76 수송 작전을 좌절시켜 수도 키이우를 지켜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파일:Neptune_cruise_missile_03.jpg

넵튠의 TEL과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넵튠 대함 미사일의 개발을 추진하여 2015년에 공개하고 2019년에 소량 배치시켰다. 해외에서는 공식적으로 배치된 수량이 발사대 1대뿐이어서 생색내는 용도가 아니냔 분석도 있었고, 2022년 러시아의 침공 때 소식이 없어 전란 속에 고철이 되었으리라 추정됐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군은 자기들 손에 있는 그 발사대 1대를 후방에 보존해 뒀다가 이후 흑해 함대의 기함인 슬라바급 순양함 모스크바가 연안에 근접한 때를 노려 격침시키는 대전공을 거두었다. 모스크바함 격침 사건 참조.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 무인기 바이락타르 TB2를 구입한 것도 이 양반 집권기인 2019년 1월이다.# 바이락타르가 주목을 받은 것이 2020년 전쟁인데 이미 그 전에 도입한 것이니 상당한 선견성을 가졌던 듯. 그리고 바이락타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큰 활약을 해서 이 회사 CEO가 우크라이나로부터 1급 공로훈장까지 받았을 정도.#

이 양반이 대통령 재임 시절 펼쳤던 국방력 강화정책들 모음. 물론 이러면서 본인 뒷주머니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방대한 걸 하나하나 잡아내면서 자기 뒷주머니 채울 정신도 금액의 여분도 있는데 그만큼의 돈 챙기면서도 필요한 만큼 나라에 일을 해준 게 신기할 따름. 2022년 5월 20일자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현대화된 우크라이나군을 자신의 업적으로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볼 때, 자신이 손댄 부분에서 기본적인 결과물은 내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포로셴코의 임기동안 개발된 결과물(BTR-4, Stugna-P, R-360 넵튠, 전투식량 등)은 전장에서 제 역할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 이렇게 예산을 횡령하더라도 최소한의 결과물을 내놓는 우크라이나의 올리가르히와 최소한의 결과물조차 내놓지 않는 러시아 실로비키의 차이점은 전쟁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감안해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의 부패는 단순히 사람이 썩고 양심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쟁 이전부터 부패를 무기화해왔다. 돈을 뿌리고, 프락치를 심어서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회에 부패를 조장해왔고 포로셴코의 지지층에는 그런 러시아에 적대적인 올리가르히들도 여럿 있었다.
이 상황에서 2가지 벽에 부딪치게 된다.

  • 거대한 물주인 러시아가 끊임없이 부패를 조장하고 있다.
  • 러시아 때문에 경제적 피해를 입고 친서방 반러 정책에 지지를 보낼 힘이 있는 진영도 결국 부패한 올리가르히다. 과연 지금 당장 아군이 되어줄 진영을 부패 혐의로 죄다 쳐낼 수 있는가? 한 개인의 의지로 청산될 부패가 아니고 일단 러시아가 더 이상 손을 내밀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쳐내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얄궂게도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자기네 부패가 발목을 잡았다. 부패가 군대에도 스며들어서 러시아군이 졸전을 벌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또 자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MiG-29도 꾸준히 개량 및 부품 국산화를 진행하였다는 소문도 있다. 이 사업은 크림 위기 이후 러시아와 사이가 벌어진 MiG-29 운용국을 대상으로 개량을 해주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그 외에도 2016년 1월에 나름 숙원사업이던 우크라이나 신분증 개편을 이끌어낸 것도 이 양반의 업적으로 원래 신분증 개편 계획 자체는 2004년부터 존재하였으나 보안성 논란으로 빅토르 유셴코빅토르 야누코비치에 의해 두 차례 취소된 전적이 있었다. 2013년 계획 당초부터 ICAO Doc 9303 표준화를 염두에 두었으며 이 신분증 개편 사업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 차단[9]과 훗날 여권 미소지 난민의 신속한 신원 증명에 톡톡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ICAO 표준 신분증공동시장 가입과 노동시장 개방의 첫단추로 EU 가입을 생각하는 역외 유럽 국가들도 많이 도입하는 편이다.


3.1.2. 젤렌스키 집권의 숨은 주역[편집]


아래는 일부 중략해서 번역됐다

왜 포로셴코가 졌는가

데니스 솔티스

Why Poroshenko lost

By Dennis Soltys

젤렌스키는 특이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일반적인 친서방 노선을 넘어서는 프로그램에 대한 약속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부패를 척결할 배역을 부여했다. 유권자들은 보다 기술적이고 현대적인 정부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커서 의도적인 모험을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젤렌스키를 선출하는 모험과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진화의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한 것은 포로셴코의 상당한 업적이었다.

Zelenskiy ran an unusual campaign. He made few programmatic promises beyond a general pro-Western course, but cast himself as a person who would clean up corruption. The thirst for a more technocratic and modern government was so great that voters deliberately took a chance on a largely unknown quantity. Ironically, it was Poroshenko’s considerable accomplishments that made the risk of electing Zelenskiy and the next phase in Ukraine’s political evolution possible.

역사는 포로셴코가 후원하거나 그의 감시하에 일어난 성공적인 많은 목록들을 잘 기억할지 모른다, 유럽으로의 비자 면제 여행, 유럽에서의 역 가스 그리고 독립 정교회를 포함하여 3개를 들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비우크라이나 민족)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우크라이나 민족을 위한 문화적 재탄생을 장려했다.

History may remember Poroshenko well for a long list of successes that he sponsored or that occurred on his watch, including visa-free travel to Europe, reverse gas from Europe, and an independent Orthodox Church to name only three. He encouraged a cultural rebirth for ethnic Ukrainians without alienating others.

포로셴코 진영이 득표율을 부풀리려 할 것으로 예상한 젤렌스키 후보 진영은 1차 투표에서 평행 개표를 실시한 결과 젤린스키 후보의 득표율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수치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포로셴코가 행정 자원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거나, 동원할 수 없었거나, 외국의 감시 하에 감히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Anticipating that the Poroshenko camp would try to inflate its share of the vote, Zelenskiy’s team conducted parallel vote counting in the first round and found that Zelenskiy’s share corresponded almost exactly with the figure announced by the Central Electoral Commission. This means that Poroshenko did not try to use administrative resources, had been unable to mobilize it, or did not dare use it in the presence of foreign monitors.

[젤렌스키의 당선에]젊은 사람들은 성장했고, 포로셴코의 국가 건설 조치가 기여했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군사 침공도 기여했다. 민족 의식은 남동부의 전통적으로 더 많은 라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증가했으며, 서쪽과 중앙까지 거의 따라 잡았다. 어떤 친러시아 후보도 대통령에 당선될 기회가 없었고, 2019년 선거는 선두 주자들에서 친러시아 후보가 없는 첫번째 선거였다. 후보자들이 분열적인 민족 카드를 사용하려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다.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반부패와 훌륭한 통치였으며, 인종과 연령을 초월하여 모든 지역에서 젤렌스키를 다수로 이끌었다. 남동쪽에서 러시아어를 구사한 젤렌스키는 남동쪽을 국가 정치로 이끄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구, 중부, 그리고 동부는 이제 모두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정부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과두정치의 징계는 더욱 그럴듯해진다. 정치적 세속화와 보편주의적 가치에 관해서, 젤렌스키는 유대인 출신이며, 이 요소는 선거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동유럽 국가의 첫 번째 유대인 대통령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를 반유대주의의 온상으로 묘사하는 크렘린의 선전을 잠재워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younger people grew up, Poroshenko’s nation-building measures contributed, as did Russia’s annexation of Crimea and military invasion. National consciousness increased the most in the traditionally more Russified regions of the southeast, and has almost caught up to the west and center. No pro-Russian candidate had a chance to win the presidency, and the 2019 election was the first not to have pro-Russian candidates among the frontrunners. It was also the first in which candidates did not try to play the divisive ethnic card. The overriding issues of the election were anti-corruption and good governance, issues that cut across ethnicities and ages and brought Zelenskiy a majority in all regions. Being a Russian-speaker from the southeast, Zelenskiy helped carry the southeast into national politics, although the region had finally decided to join the rest of the country in a broad democratic front. The west, center, and east now all agree on the need for democratic and accountable government, and the chastening of oligarchic rule becomes more plausible. Regarding political secularization and universalistic values, Zelenskiy is of Jewish background and this factor played no role in the election. He is thus the first Jewish president of an East European country. This should, but will not, put Kremlin propaganda depicting Ukraine as a hotbed of anti-Semitism to rest.

젤렌스키의 대통령직은 어떻게 시작될까? 포로셴코 덕분에, 그 나라는 2014년보다 훨씬 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How might Zelenskiy’s presidency begin? Thanks in large part to Poroshenko, the country is in a much less precarious situation than in 2014.

데니스 솔티스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KIMP 대학교의 행정학과와 국제개발학과의 교수이다.

Dennis Soltys is a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public administration and international development at KIMEP University in Almaty, Kazakhstan.

https://www.atlanticcouncil.org/blogs/ukrainealert/why-poroshenko-lost/



3.1.3. 부정부패[편집]


이렇게 강병을 이끈 지도자이지만 대다수의 동구권 정치인이 그렇듯 그 역시 많은 사적인 착복을 저질렀다. 당장 늘린 국방비로 러시아 올리가르히를 통해 러시아 무기를 밀수해와 자국 방산업체에 비싸게 판매하고 차익을 자기 주머니에 챙기는 등 방산비리 의혹이 터져나왔는데(#), 유로마이단 분위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었던 그에게 러시아와 연관된 비리는 치명적인 이미지의 손상을 줬다.[10]

그리고 방산비리뿐만 아니라 임기 동안에도 착복을 저지른 사례가 많아서 키이우-오데사 고속도로와 관련한 비용도 착복하였고 이 영향으로 개판인 나들목, 분기점은 둘째치더라도 고속도로인데 횡단보도가 널린 문제가 발생하였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고속도로 취급도 못 받는 그 악명 높은 88올림픽고속도로 시절의 광주대구고속도로는 왕복 2차선 도로와 일부 나들목이 평면 교차로형 나들목이 있긴 했어도 적어도 횡단보도는 없었다. 그 외에도 고가도로가 올라가는 부분이 없이 건설된 곳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교각과 상판을 지어놓고 진입로가 없어서 고가도로를 만들어놓고도 안 쓰는 부분이 존재한다. 당연히 이 진입로 만들 예산을 포로셴코가 맛있게 해처먹은 것.

다만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경제사정도 감안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는 1인당 GDP가 3~4천불을 오가는 빈국이고, 이런 나라들의 고속도로라는 것은 원래 이 정도 수준인 게 보통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70년대에 준공된 호남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등의 도로에는 지금은 개량으로 인해 다 사라졌지만 평면 교차로가 존재했었다. 오히려 이웃한 독재국가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보다 1인당 GDP는 훨씬 높다. 물론 더 큰 관점에서 이 GDP에서 발전을 못하고 정체하는데 있어서는 포로셴코를 비롯한 정치권의 착복도 영향이 상당할 것이다.

여기에 파나마 페이퍼즈 명단에 있어 탈세 논란이 생겼는데, 대통령 퇴임 이후엔 그와 별개의 탈세 사건에 또 연루됐다. # 그 외에 우크라이나 스캔들에도 여러모로 엮여있던 게 마구 터지는 등 재임 기간에 거듭된 여러 실책이 있었던지라 지지율이 크게 추락하였다.


3.1.3.1. 감안할 점[편집]

포로셴코도 잘한 건 아니지만 다만 당시 상황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우크라이나 부패 해결의 어려움은 내부 문제도 있지만 러시아의 전쟁 수행방식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부패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부패공작은 이미 '무기화'라 평가돼서 그것 자체가 이미 러시아와의 전쟁의 일부로 경제문제를 넘어 러시아의 전쟁수행에서의 생존문제였다.

지난 5월, 미국 국무장관 블링켄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뿌리 깊게 구조화 되어 있는 부패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부패문제는 내부적으로 개혁과 부패청산에 반대하는 과두 정치세력과 이를 활용하여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식하는 도구로 삼는 러시아의 작전이 엉켜 있다고 분석했다. 2017년 국제투명성기구(TI)의 보고서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부패를 활용하고 무기화하는 방식을 설명한 바 있다. 젤렌스키 정부에서도 부패는 지속되고 있다는 다양한 보도와 보고서들이 제출되고 있다. 현재 젤렌스키의 개혁과 반부패 노력은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법제도적 성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준모. (2021). 코로나19 시대 글로벌 격변과 우크라이나의 반부패 노력 및 개혁과제. 동유럽발칸연구, 45(4), 104



3.1.3.2. 재선에 실패한 부패 정치인[편집]

그럼에도 2019년 대선에 재선 출마 선언했으나, 오히려 율리야 티모셴코를 누르고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1차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2위로 결선투표까지 가는 기적을 이루었다.영상 결선에서는 25%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졌다. 이후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 그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하였고 겨우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2021년 말에는 2014~2015년에 동부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들이 5500만 달러 규모의 석탄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반역 혐의로 기소되면서 임기 중 그나마 쌓은 국방, 안보 이미지마저 완전히 박살나 버린다. # 그래서 결국 2021년 12월에 검찰이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에서 재산은 동결되고, 폴란드로 몸만 망명하는 신세가 되어 여기까지만 보면 신나게 해처먹은 동구권의 흔한 부패 정치인으로 끝날 예정이었으나...


3.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재평가[편집]


이러던 중 국경에서 러시아군이 대규모 훈련이랍시고 무력 시위를 노골적으로 하던 2022년 1월 17일 돌연 귀국하여 수천 명의 지지자들을 맞이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 포로셴코는 반역 혐의에 대해 경기 침체와 코로나 19 방역 실패를 모면하려고 현 대통령이 자신을 숙청하려 드는 정치 공세를 한 것이라며 강한 어조를 써가며 반발하였다.

포로셴코는 귀국 직후 우크라이나 법원의 구속 여부 심사에 참석했다. 구속 여부는 현지 시간으로 1월 19일 오후에 결정된다. #(러시아어) 구속심사 결과 구속 영장이 기각되었다. # 하지만 해외 도주 이력 때문에 여권을 압수당하여 출국에 제약이 생겼으며[11] 그의 막대한 재산도 동결된 상태다.

그 후에는, 노르드스트림 2를 제재하고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야 한다고 발언까지 하는 등 # 반 러시아 성향을 외부에 꾸준히 보이나 싶더니,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남아서 끝까지 결사항전을 선택했다.

2월 25일에는 수도 키이우 방위를 위하여 본인이 직접 중무장한 상태CNN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2] 러시아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하면서 자신도 무장한 지지자들로 민병대를 구성하여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는데, 숨겨둔 사재를 털었는지 소속 민병대들의 군장이나 장비 상태가 제법 좋아 보인다. 이러한 지원이 일회성도 아니고 계속 해주고 있어서 방탄복, 식량, 소화기류, 의료용품 등 보병의 운용에 필요한 물자를 각지에 기부를 하고 있다.

3월 21일에도 방탄복과 PKM 기관총을 나눠주는 모습, 3월 30일에는 민병대원이 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자 축의금으로 대대에 방탄복을 선물하는 장면, 4월 29일에는 수송용 트럭 18대를 전선의 전투 부대에 기부하는 장면 등이 공개되었다. 심지어 그의 민병대도 젤렌스키 휘하 정규군을 방해하지 않고 공조하거나 일부가 정규군으로 편입돼 전력을 보태는 등 전쟁 수행에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2022년 5월 20일 인터뷰에 의하면 포로셴코는 5월 기준으로 자신과 회사 명의로 약 1천만 달러(한화 120억원)어치의 물자를 기부했으며, 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사재를 털어 키이우 주변에 휴대용 방공망 구축을 도왔고 전쟁 발발 직후에는 소총 3만 6천정[13]을 민병대에 배포했다고 한다. 전황이 호전되자 당장 급한 군수물자 지원 뿐 아니라, 급수 및 발전 시설 등 이동식 인프라 시설, 연대 단위 통신 장비 등 본인 명의 재단의 막대한 자금력을 활용하여 시스템 단위의 기부를 하고 있다. 포로셴코의 배우자 마리나 포로셴코 전 영부인 역시 포로셴코 명의로 자선 재단을 운영하며 보급물자의 지원을 돕는 동시에 목숨을 걸고 일선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을 돕고 있는 중이다.

조국의 전쟁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동시에 정치인 경력과 유창한 영어 실력을 살려서 서방측 종군기자 및 주요 미국 방송국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을 알리고 젤렌스키의 전쟁 수행 방침을 홍보하고 있으며, 해외 국가에다 "렌드리스는 돈이 되는 장사입니다." 라며 외국 국가들의 지원을 촉구하는 등, 젤렌스키의 여론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표현이 하도 날 것이라 오히려 개드립처럼 보이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면죄부를 얻으려고 저러는 건가? 국고로 밀덕질이나 하더니 이젠 사재로 밀덕질을 한다" 라는 등의 의심이나 "저 놈이 사실은 자기 초콜릿 공장 날아갈까봐 저러는 거 아니냐" 같은 비아냥이 많았다. 그러나 지휘하는 민병대들이 헬기 격추, 전차 파괴 등 전과를 올릴 때마다 나와서 격려하고 독전하는 모습을 꾸준하게 보여주자 우크라이나 국내 여론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이제보니 자기가 털어먹을 나라 자기가 몸소 지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애국노", "부정부패는 푸틴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계략이다." 같은 드립이 터져나왔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플라이트 레이더 같은 사이트를 보면 알겠지만 우크라이나의 정치인과 부자 등 대부분의 특권층은 전세기를 타고 미리 도망쳤는데 포로셴코는 오히려 해외에 있었는데다가 상술했다시피 반역 혐의로 기소되어 있었던 상황에서도 1월에 미리 우크라이나로 귀국했었다.[14] #

또한 대한민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그의 초콜릿 회사인 로셴은 동유럽을 석권한,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 대규모 초콜릿 제과회사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의 테마파크도 빈니차[15]에 있으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꼽힐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회사다.##, ## 이뿐만 아니라 국립 암 연구소, 어린이 특화 병원, 영화관, 동물원,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로 부상당한 상이군인들 재활 지원 및 전쟁고아 돌보기## 등 어린이에 특화된 공익 사업에도 뛰어들고 있었다. # 재산의 큰 부분이 우크라이나에 있고 많은 재투자도 하였으니 자기 재산 지키려고 돌아왔다고 할 법도 하긴 한데, 러시아에 수출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아있는 주력 고객은 우크라이나인들이고 그 중 상당수는 자신의 사탕과 초콜릿을 맛있게 먹어준 어린이들이므로,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고객이기도 한 우크라이나의 국민과 어린이들을 지킨다는 명분을 세웠을 수도 있다. 아울러 징집 대상인 그의 자녀들은 외국에 남아있다고 한다. 스스로는 돌아왔으면서 해외의 자식들은 징집이 확실하니 그곳에 남겨둔, 그야말로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상이다. 사실 포로셴코는 상당수 비리 정치인과 달리 가정사는 깔끔하다. 정부와 사생아를 만든 푸틴과 다르게 정말로 돈만 해먹었다. 군 지휘관 혹은 통수권자라면 자식들도 군에 보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포로셴코는 어디까지나 전직 대통령인 민간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어쨌든 자기 주머니에 엄청 털어넣긴 했지만 친러 매국노와는 달리 수익의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꾸준히 환원하고, 과거 저지른 비리 중 일부분은 러시아의 전쟁 물자 구입을 통해 전쟁 수행 능력을 키운 것인 데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의 기득권자들은 대부분이 도망갔는데도 포로셴코는 끝까지 우크라이나에 남아 항전을 결의하고 본인의 재산을 털어 군인들을 무장시키고 있으니 오히려 마냥 비판하는 것도 애매해졌다. 동시기에 정적 율리야 티모셴코는 민병대 지원을 부르짖으면서도 별다른 활동을 하기는커녕 부패한 행보만 보여주고 있는 것과 대비되고 있다. 그리고 전술했듯 우크라이나군의 현대화도 이 사람이 추진했고 방어전, 특수 작전의 기반이 되는 병기[16]도 포로셴코가 도입했기에 졸지에 재평가까지 되었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로 이미 현대사에는 부정부패로 국정과 군대를 말아먹다가 나라까지 잃어버린 응우옌반티에우, 아슈라프 가니 같은 부패한 정치인들도 상당하다. 러시아군의 장비와 보급 체계가 엉망이 된 이유도 낡고 비효율적인 소련 시절의 잔재 외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등과 같은 러시아 상류층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같은 비리 문제가 컸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포로셴코는 좀 달랐던 게, 온갖 비리로 재산을 쌓으면서도 대선 이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그리고 재임 중 일어난 돈바스 전쟁오데사 인민공화국,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 선언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급기야 아조프와 프라비 섹토르 등 극우~우익 계열의 민병대들까지 무장시켜서 저항하고 처절하게 맞서는 것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우크라이나군의 개선을 결심했다.

일단 장비나 전술이 소련 시절에 머물렀지만, 서류상 6만에 실제 동원 가능한 건 겨우 1만 남짓이었던 우크라이나군을 선진화된 군대로 환골탈태시켰다. 우선 상술한 전투식량 개선을 포함하여 실력을 검증받은 아조프 연대 등의 민병대들을 정규군에 편입하되, 꼴통 대원과 수뇌부들은 퇴출해버리는 등 내부에서 분란이나 막장으로 치달을 여지를 최대한 제거했다. 심지어, 아조프 연대의 경우 심지어 창설자이자 초대 지휘관인 안드리 빌레츠키조차 쫓아냈다. 또한 일개 보병이나 다름없었던 우크라이나 공수군을 아예 창군 수준으로 대대적으로 뜯어고쳤고 서구와 교류를 시키면서 전투경험을 쌓게 했다. 이후 이 공수군은 훗날 키이우가 개전 초기부터 공격받을 때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면서 키이우 사수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

하여간 포로셴코가 임기 중에 절치부심하고 군대의 현대화에 투자한 결과 2022년 2월 개전 당시엔 지역 방위군을 제외한 육군만 14만 5천 명으로 불어났고, 이러한 영향으로 러시아군에 비하여 질적과 양적으로 상당히 열세인 상황에서도 키이우가 3일 내에 함락당하지 않고 주요 전선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만약 포로셴코가 우크라이나군이라는 녹슨 칼을 담금질과 숫돌로 갈아내지 않은 상태로 러시아의 침공을 당했다면, 러시아 지휘부의 말대로 3일 내에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가 허무하게 함락당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는 젤렌스키도 국제사회에 믿음을 주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17] 젤렌스키는 사실상 포로셴코의 행정력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젤렌스키 역시 전시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로셴코와 젤렌스키는 현대 우크라이나 정치사에 있어서 공과 과가 분명하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전·현직 대통령으로서 거대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개전 이후 러시아군의 졸전과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을 확인하고 귀국한 것이라면 기회주의자적인 면모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러시아의 국경 무력 시위 규모가 증가하고, 젤렌스키 행정부는 이를 작정하고 침공하려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던 폭풍전야 시기인 1월 돌연 귀국하여 출국 제한과 재산동결까지 받았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자 다른 친러 정치인들이나 올리가르히들과 달리 끝까지 도주하지 않고 지지자들을 규합, 사비를 털어 민병대로 무장시켜 수도 키이우에서 결사항전을 선택했다. 이를 보면 자신이 공들인 사업과 국방 자산들이 일순간 박살날 위기를 경계했거나, 더 나아가 젤렌스키를 불신해 만약 도망갔다면 자기가 일선에서 지휘하려던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물론, 어찌되었든 간에 포로셴코의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포로셴코가 전쟁 이후 사면을 받기 위한 목적이나 본인의 사업 기반의 회복이나, 민심을 얻고 다시 정계복귀를 위한 목적을 염두에 둔 이득을 위한 도박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찌됐든간에 권력가 대부분이 죄다 제 몸 사리느라 국외로 도주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러시아와 싸우는 중이라 흔치 않은 서방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주목받은 것도 사실이다.[18]

이후 현 대통령인 젤렌스키가 수도에서 결사항전을 천명하고, 포로셴코도 젤렌스키를 지지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여기에 서로 만나자는 포로셴코의 제안을 젤렌스키가 받아들였다는 인터뷰도 있는 만큼 일단 앙금은 덮어두고 공동 전선을 형성한 듯 보인다. # 4월 23일 마이단 광장역에서 젤렌스키가 연 기자회견에서 호위 병력과 함께 좌석 맨 앞줄에 카메라에 모습을 비쳤고, 5월 28일에 네덜란드에 있는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재판중인 혐의로 인해 거부되었다가 2일 후 출국이 허용된 것을 볼 때, 피고인으로만 취급받지 않고 국가 주요 인사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7월에 자신의 사업 기반이자 정치적 고향[19]빈니차순항미사일 공격을 당해 아동까지 살해된 사태가 벌어지자,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분노했다. #

2022년 10월에 우크라이나군을 위해 트럭 200대FV103 스파르탄 장갑차를 영국으로부터 구매했다. 이 중 스파르탄 장갑차와 계열 차량 FV104, FV105는 이미 동일 기종 차량을 운용중인 우크라이나 육군이 직접 구매해달라고 부탁했으며 각지에서 받은 기부금에 자신의 몫을 보탰다고 한다. #

훗날을 대비하여 스토브발전기구매하여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했다. 겨울을 내다본 판단이다.

클레이모어가 달린 드론을 구매하여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했다. 헤르손이 해방된 후, 우크라이나 전 지역을 해방시키는 것이 목표임을 밝혔다. 이어 현대그룹 명의로 제작된 발전기를 구매한 것이 눈에 띈다. 아우디우카 방면 우크라이나군에는 차량용 무전기들을 기부했다. 이어 샤워 및 세탁 시설을 제공하는 트레일러를 구매하여 기부했다.

2023년 1월에 트위터 NOELreports에 따르면, 본인이 세운 The Petro Proshenko Foundation(페트로 포로셴코 재단)이 DAF 레이랜드 T244 트럭 91대를 구매해 우크라이나군에 전달했다. 향후 209대를 추가로 구매해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전투 공작 스테이션도 기부했다.[20] 현재 공수군 사령부에서 전투 적합성 평가를 받고 있으며, 통과할 경우 비슷한 체급의 전투 공작 스테이션을 계속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재평가 자체가 포로셴코의 정치적 목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계속 해외 도피를 전전하느니 차라리 좀 비싼 면죄부를 산 셈 치고 이전까지의 이미지를 뒤집을 기회를 얻으려 한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행보를 통해 포로셴코는 단순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그것을 긍정적인 인식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꾀할 수 있다. 이 재평가에는 애국노니 초콜릿 공장 무너질까봐 돌아온 초콜릿 덕후니 하는 진지한 재평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밈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밈적 미화가, 그것이 풍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밈인 이상 그것이 풍자적인 맥락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전파될 수는 없기에 결과적으로 포로셴코에게 정치적으로 투자 대비 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적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비꼼이야 말로 대상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가져오는 경우도 존재한다.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수 (득표율)
2차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3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12(빈니차)[21]

[[무소속|
무소속
]]

18,809 (17.44%)
-
당선 (1위)
초선
2002
제4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우리 우크라이나
53,058 (49.99%)
재선
2006
제5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 (?%)
3선
2012
제7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
무소속
]]

73,493 (71.52%)
4선
2014
제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우크라이나
9,857,308 (54.70%)
-[22]
초선
2019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3,014,609 (15.95%)
4,522,320 (24.45%)
낙선 (2위)

2019
제9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1,184,620 (8.10%)
-
당선(1번)
5선


5. 어록[편집]


CNN 앵커: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How long, do you think you can hold out?)

페트로 포로셴코: Forever(영원히).

--

CNN, 개전 초 2월 25일 인터뷰에서, 8:53부터.


MSNBC 앵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도우려면, 서방 세계에서 무엇을 제공해야 하겠습니까?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무기, 무기, 그리고 무기. (Weapons, weapons, and weapons.)

첫번째 무기, 전차, 전투기, 대전차 체계, 대공 체계 등 국토 방어에 필요한 공세 무기입니다.

두번째 무기, 러시아의 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릴 더 강력한 경제 제제입니다.

세번째 무기, 러시아의 완전한 외교적 고립입니다.

--

MSNBC 4월 6일자 인터뷰에서, 5:47부터.


MSNBC 앵커: 포로셴코 대통령님,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부장관이 핵전쟁의 위험이 임박했다고 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페트로 포로셴코: 제가 알기로 전세계를 핵전쟁으로 직접 위협한 나라는 둘 밖에 없습니다. 북한러시아입니다. (I know only two countries in the world which threatened the world with nuclear war. The name of these countries is North Korea, and Russia.)

페트로 포로셴코: 우리는 지금 러시아가 북한으로 변화하는 단계를 하나씩 지켜보고 있습니다. (We now observe the step-by-step transformation (of) Russia into North Korea.)

--

MSNBC 4월 27일자 인터뷰에서, 2:24부터.


6. 별명[편집]


초콜릿 기업 로셴과 로셴 그룹의 창설자로서 얻은 별명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포로셴코에 의해 우크라이나군의 훈련 수준과 장비 상태가 확연하게 향상되었음이 확인되면서 아래의 별명과 합쳐져 비리 웡카라고 불리고 있다.

애국자 + 매국노. 부정부패를 저질러 우크라이나에서 도망친 신세가 됐으나,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조짐이 보이자 제 발로 자신을 잡아넣으려는 고국에 돌아와 맞서 싸우고, 포로셴코가 과거 실시한 다양한 정책이 러시아에 맞서는 데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황이 주목받으면서 생겨난 한국 한정의 별명. 임기 동안의 부정부패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의 괴리감이 엄청나서 이 사람에게 붙는 칭호는 죄다 모순적인 내용이 태반이다. 지속 가능한 부패
물론 무시무시한 규모의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여전히 그의 진의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하기에 평가가 좋지 않고,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는 행보를 용인하며 대외적으로는 동결되었다고 발표된 재산을 군수품의 형태로 기부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에 가깝다. 다만 우크라이나 국내에서도 이 사람이 이끌고 장비를 지원해준 민병대가 계속 승전보를 울리고, 대통령 시절 도입한 군 장비들이 러시아군의 공세를 막는데 혁혁한 전과를 올림에 따라 여론이 슬슬 좋아지고는 있으니, 정치인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은 힘들지라도 최소한 사면은 받아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적어도 이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승리를 하기라도 한다면 감옥으로 가는 꼴은 겪지 않고 본업인 사업가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부패강병, 매국강병
부국강병을 비틀어 지은 별명. 군의 정예화, 현대화를 이끌어내 전쟁 수행에 이바지하면서도 현대화 과정에서 뇌물을 챙긴 행보를 한데 묶은 별명이다.

7. 기타[편집]


  • 상술했다시피 제과, 제빵 기업 로셴의 창업주이며 자신도 제과, 제빵에는 수상할 정도로 열정적이다.[23]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로셴의 제품이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국내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서는 상술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중적인 행보에 대해 1회차에선 부패한 정치인으로만 살다가 나라가 망해서 죽고, 2회차에선 청렴한 정치인으로 개혁을 주도하다가 러시아의 손에 암살당하고, 3회차에서는 적당히 부패한 척하며 자국의 군 개혁을 이끌었지만 본인의 외교력만으로는 해외 지원이 모자라 패전하자, 4회차에서는 3회차에서 했던 준비와 더불어 악역을 자처하고 해외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젤렌스키를 내세워 조국을 지키고 있는 거라는 회귀물설(...)을 내놓기도 한다.포로셴코가 되었다

[1] 1985년생, 1999년생, 2000년생, 2002년생. 1985년생인 장남 올렉시 포로셴코는 부친의 지역구였던 제12선거구를 물려받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을 역임했다.[2]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p.207~208[3] 단적인 예로 포로셴코, 젤렌스키는 둘 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EU 가입을 지지할 정도로 친서방 노선을 주장한다. [4] 따지고보면 푸틴과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행한 이유들 중 하나도 우크라이나 정치가 친서방 우세의 구도로 굳어진 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선거로 친러시아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낮아지니, 아예 자기들이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장악해서 친러시아 괴뢰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5] 그런데 얄궂게도 정작 포로셴코 본인은 당뇨병 환자라 초콜릿을 못 먹는다. 이 때문인지 로셴에서는 당뇨병 환자용 초콜릿도 생산한다.[6] 사실 말이 '반군'이지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러시아 출신에 병력도 만 단위로 파병되고 보급과 훈련도 거의 러시아가 해주는, 사실상 복장만 사복인 러시아 침략군이나 다를 바 없다. 러시아는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이 끝장났음을 직감했고, 포로셴코가 대놓고 친서방 반러 정책을 실시하자 반발하면서 우크라이나 체제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7] 다민족 국가인 우크라이나 특성상 2001년 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러시아어, 크림타타르어, 벨라루스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슬로바키아어, 루마니아어, 불가리아어 등의 외국어를 각급 지방의회에서 지역어로 선정이 가능하다고 명시한 2012 언어법을 정면으로 뒤엎고 우크라이나어만 공식어로 지정한 법률. 다만 2014년부터 2012 언어법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있었고 이 법이 서명되면서 주변국인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몰도바, 불가리아등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다. 특히 자카르파탸주헝가리인헝가리계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지원을 통해 지지를 얻어온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매우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주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와 EU가입을 막겠다고 엄포를 놓았다.[8] 제조사는 포로셴코의 기업인 로셴이 아니라 도미니크라는 업체다.[9]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선거는 국외용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인정하지 않는다.[10] 그런데 시간이 흘러 2022년 2월 말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결과적으로 적국의 치장물자를 털어오고 우크라이나 국방력 증가에 도움이 된 지라 이상한 방향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애국노[11] 우크라이나 신분증만 있어도 터키 등 인접국으로는 입국할 수 있다. 즉, 여권 압류가 곧 출국 금지에 해당하지는 않는다.[12] 300명이 모인 민병대에 중화기는 고작 NLAW 4발, 기관총 2정밖에 없고 자원자는 정말 많은데 이들에게 줄 무기조차 부족하다고 안타깝게 말하는데, 이를 통해 개전 초기 2월에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13] 이 정도면 최소 2개 사단급 병력을 무장시킬 수 있다.[14] 전쟁이 2월 말에 터졌다는 걸 생각해보자. 한창 양국이 눈 똑바로 뜨고 기싸움 하던 그 살벌한 때에 귀국했다는 거다.[15] 때문에 빈니차 미사일 공격 당시 포로셴코가 특히 격분하면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라고 선언하였다.[16] FGM-148 재블린, R-360 넵툰[17] 젤렌스키는 모어가 러시아어였고 친러 지역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어내서 지지층이 서부에 치우친 포로셴코를 제치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라 완전히 반러 스탠스를 취하기에도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여기에 국제사회는 2022년 3월 이전까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에 대한 막연한 편견만 가득했다.[18] 사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따른 참전에는 지위에 대한 책임감 외에도 전후 생존했을 때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현대 한국에서도 신체검사를 받으면 5급 전시근로역이 확정될 정도로 심각한 호르몬 질환에 시달리던 존 F. 케네디가 아버지 빽까지 써가면서 해군 장교로 자원입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이런 미래에 대한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에 더욱 목숨을 걸고 열심히 군 복무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서 케네디는 일선에서 PT 보트 정장으로 복무하다 함정이 격침되자 부상당한 부하를 끌고 인근 섬까지 수영했고, 조지 H. W. 부시는 뇌격기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격추되고 일본군에게 잡아먹힐뻔 한 등 정말 목숨걸고 싸웠다.[19]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을 지낸 지역구였다.[20] 링크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쉽게 말해 "보병용 트럭 버전 아카시 공작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비 소요를 줄이는 것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21] 참고로 구소련권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를 보통은 지역명 없이 숫자로만 구분하며, 이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 발트 3국, 몰도바, 아르메니아 등도 동일하다.[22] 과반 득표로 결선투표 미실시[23] 전투식량의 디저트가 상당히 맛있는 것도 이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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