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마카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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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여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포르투갈마카오의 관계.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 이전[편집]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인해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포르투갈은 동양을 나눠먹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를 함락시키고 중국의 튄문으로 갔는데 튄문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명나라 관군에게 털린 포르투갈은 튄문을 버리고 마카오로 가게 된다.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얻어낸 것에 대해 "포르투갈인들이 해적을 퇴치한 공로로 명나라 황제가 마카오를 상으로 떼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창작한 이야기다. 사실은 1553년에 포르투갈의 콘키스타도르인 호르헤 알바레스 일행이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체류하게 된 것이 시초이다.

당시 명의 가정제는 마카오를 서양 국가들과의 교류 창구로 사용할 마음이 있었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1572년부터 명나라 조정과 그 뒤를 이은 만주족의 청나라 조정에 매년 500 냥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체류를 허용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포르투갈에게 법적으로 마카오의 주권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2.2. 19세기[편집]


이후 1842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에게 털리는 것을 보고 여러 서양 열강들이 청나라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해 수많은 이권을 뜯어냈다. 포르투갈도 이에 편승해 1851년과 1864년에 원래 마카오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무인도인 타이파와 콜로안을 점거하고 1887년에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을 맺어 마카오를 정식으로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마카오는 포르투갈령 마카오가 되었다.


2.3. 20세기[편집]


1975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해외 식민지 포기선언을 한 포르투갈이 중국의 새 주인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 제의를 하였고 1999년 포르투갈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마카오를 반환하면서 식민지 시대는 끝나게 된다.


2.4. 21세기[편집]


반환 후에도 대개의 구 포르투갈령들이 다 그렇듯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직도 각계에서 상류층으로 꽤 영향력을 발휘한다. 포르투갈어는 마카오 반도에서 통용이 잘 되는 편이고 마카오인 중 포르투갈과 중국의 혼혈들도 많다. 이들을 마카니즈 내진 마카이엔사라고 부르며 마카오의 원주민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3. 여담[편집]


마카오인의 성명 중 포르투갈/스페인식 이름인 하무스(라모스), 주제(호세), 페르난두(페르난도), 카타리나, 루이사, 이사벨라 등의 이름들도 자주 보인다. 홍콩영화 <이사벨라>에 나온 마카오 배우 이사벨라 렁은 원래 이름이 이사벨라 루이사 다실바(Isabella Luisa Leong Da Silva)라는 포르투갈 혼혈 중국인이며 양락시라는 중국어 성명을 갖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1]은 여기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4. 관련 문서[편집]



[1]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도 여기에 소속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