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도니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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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포시도니오스.jpg
이름
포시도니오스
(그리스어: Ποσειδώνιος)
출생
기원전 135년경
사망
기원전 51년경
직위
로도스의 프리타네이스

1. 개요
2. 행적
3. 연구 분야
3.1. 철학
3.2. 천문학
3.3. 지리학과 지질학
4. 역사와 전술



1. 개요[편집]


고대 그리스스토아 학파 철학자, 정치인, 천문학자, 지리학자, 수학자, 역사가.


2. 행적[편집]


기원전 135년경 시리아 아파메이아의 그리스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는 젊은 시절 아테네로 유학갔고, 그곳에서 로도스스토아 학파 철학자 파나이티오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그리스,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이탈리아, 시칠리아, 말마티아, 갈리아, 리구리아, 북아프리카 아드리아 해의 동쪽 해안을 여행하면서 천문학, 지리학, 지질학과 관련된 많은 과학적 연구를 했다. 스페인의 카디스 대서양 연안에서 바다의 조석이 달의 주기와 궤도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조석의 연간 주기를 연구했으며 조석과 춘분점의 연관성에 대해 가설을 세웠다. 갈리아에서는 켈트족을 연구하여 그들의 생활 방식과 터전에 대한 지리학 저서를 집필했다. 타키투스게르만족의 기원과 위치를 집필할 때 이 저서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00년 즈음에 로도스의 스토아 학파 수장이 되었으며,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등 여러 로마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기원전 87~86년 로도스의 사절로서 로마를 방문해 양국의 우호관계를 다졌고, 말년의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찾아갔으며,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키케로를 포함한 옛 제자들과 재회했다. 이후 로도스의 프리타네이스(6개월 임기의 최고 행정관) 중 한 명을 맡아 공직을 수행했으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폼페이우스는 해적 토벌,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등 동방 원정을 떠날 때마다 로도스를 방문해 그와 교분을 나눴으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기원전 51년 사망했고, 손자 야손이 뒤를 이어 로도스에 있는 그의 학교장을 맡았다.


3. 연구 분야[편집]


그는 철학, 물리학, 천문학, 점성술, 지질학, 광물학, 수학, 식물학, 윤리학, 논리학, 역사, 자연사, 인류학, 역사, 전술 등 수많은 분야에 관한 무수한 저서를 남겼다. 스토아 학파를 신봉했던 그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설명과 지침을 제공하는 인간의 지성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통일된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저서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키케로,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플루타르코스, 스트라본, 클레오메데스, 세네카,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 후대의 여러 학자들의 저서에 광범위하게 인용되었다.


3.1. 철학[편집]


포시도니오스는 스토아 철학자이면서도 정욕이 욕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 잘못된 판단이라는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최초의 스토아 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영혼에는 이성적인 능력 외에도 영적인 능력(분노, 권력욕, 소유욕)과 기초적인 욕구(성욕과 식욕)를 가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이러한 욕망을 배제하기보다는 통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윤리학은 이성이 지배적인 능력으로서 위치를 가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여겼다. 또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일정부분 수용하면서도, 스토아 철학이 그들의 철학을 능가한다고 봤다.

그는 철학을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지배적인 체게로 여겼으며, 근본적인 원리는 철학에게 달려 있고 개별적인 원리는 과학에 달려 있다고 봤다. 그는 철학을 자연철학, 번증법을 포함한 논리학, 윤리학으로 분리하면서, 이 세 가지 범주는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전체의 불가분하고 상호의존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세 범주를 살아있는 존재에 비유했다. 물리학은 고기와 피이고, 논리학은 유기체를 하나로 묶는 뼈와 힘줄이며, 윤리학은 가장 중요한 부분인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주를 하나의 상호 연결된 실체로 봤으며, 전 우주에 스며들어 형태와 방향을 부여하는 신성한 힘인 로고스가 존재한다고 여겼다. 또한 그는 우주가 끝없는 주기를 거치며, 각각의 주기는 대화재로 끝난다고 단언했다.

포시도니오스는 로마 세계에 스토아 학파를 전파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1세기 후, 세네카는 철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그를 언급했다. 중세에도 그는 중요한 인물로 다뤄졌다. 10세기 동로마 제국의 백과사전인 수다(Suda)는 그의 철학을 참고 자료로서 많이 인용했다.


3.2. 천문학[편집]


포시도니오스의 천문학에 관한 연구는 클레오메데스의 저서인 <천체의 원운동의 관하여>에 일부 전해진다. 그는 태양이 세계에 스며드는 중요한 힘을 방출한다고 여겼으며, 태양의 거리와 크기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자 노력했다. 그가 도출한 값은 실제 크기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 등 다른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계산한 것보다 정확한 편이었다. 그는 여기에 달의 크기와 거리도 계산했다고 전해지나 구체적으로 어떤 값을 도출했는지는 알 수 없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개의 행정의 일주 운동을 다룬 오레리(Orery: 태양계 기계 모형)을 제작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용골자리의 일등성인 카노푸스(Canopus)의 위치를 관찰하고, 카노푸스의 고도를 이용하여 로도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위도 차이를 측정했다. 그렇게 해서 위도 차를 도출한 뒤, 이를 통해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다. 그 결과 계산된 값은 24만 스타디아(stadia)로, 실제 지구 둘레보다 1/3 정도 작았다. 후대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포시도니오스의 체계적이고 정교한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가 도출한 값이 지구의 실제 크기와 근접할 거라고 확신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은 후대 천문학계는 1,500여 년간 보다 정확한 값을 도출한 에라토스테네스[1]보다 포시도니오스의 값을 지구 둘레로 인정했다.


3.3. 지리학과 지질학[편집]


포시도니오스는 일찍이 지중해 세계를 여행한 뒤 저서 '바다와 인접 지역에 대하여'를 집필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기후와 지형적 특성이 한 민족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상세한 이론을 제시했으며, 전 세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을 독자들에게 설파했다. 특히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의 중심지에 자리잡으면서 적절한 기후와 지형 조건을 통해 남자는 강건해지고 여인은 다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히스파니아 카디스 해안에 있을 때 조석을 연구하면서, 공기와 불의 혼합물인 달이 물을 부풀어오르게 할 정도로 뜨겁지만 증발할 만큼 뜨겁지는 않기 때문에, 바다는 달의 열로 인해 부풀어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또한 시칠리아 북쪽에 있는 아이올리아 제도의 화산 폭발에 대한 기록을 포함한 여러 지진과 화산 활동에 대한 관측 기록을 남겼으며, 서리, 우박, 번개, 무지개, 구름, 안개, 바람, 비의 생성 원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따른 이론을 세웠다. 그 외에도 몇몇 수학적 정리를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4. 역사와 전술[편집]


포시도니오스는 폴리비오스의 세계사를 계승한 기원전 146년에서 기원전 88년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다룬 52권의 역사서를 집필했다. 이 저서들은 오늘날 현존하지 않지만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폼페이우스 트로구스, 플루타르코스 등 후대 학자들이 인용한 일부 내용은 전해진다. 그의 역사는 개인과 민족의 정치적 역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행동하고 환경의 일부가 되게 하는 모든 힘과 요소(지리적 요인, 광물 자원, 기후, 영양)에 대한 논의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그는 아라비아의 기후와 태양의 생명력, 조수, 기후 이론을 고려하여 아라비아인들의 민족적 특성을 설명했다. 그는 로마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던 정신적 미덕 및 권력 체계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러면서도 로마가 세상을 정복한 뒤에 정신적으로 타락하면서 갈수록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전술에 관한 저서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아노스는 이 저서가 너무 어려워서 오직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다고 비평했다. 그는 아마도 폼페이우스와의 친분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현존하지 않으며 후대 작가들도 책의 존재만 언급했을 뿐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기에 현재로서는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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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가 250,000스타디아(46,250km)라고 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