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사례

최근 편집일시 :

분류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폭염

1. 시대별 일람
2. 관측 기록
2.1. 평균 기온 (서울)
2.2. 폭염 일수 관련
2.2.1. 평균 일수
2.2.2. 지속 일수
2.2.3. 빠른 / 늦은 폭염일
3. 군대에서
4. 여담


1. 시대별 일람[편집]



1.1. 15세기 이전[편집]


  • 1050년 여름, 고려: 무더위로 나성 보수 공사를 중지시켰다.[1]

1.2. 15세기[편집]


  • 1405년 여름, 조선: 혹서에 죄수들이 더위로 죽을 것을 염려하여 죄질이 가벼운 죄수를 풀어주게 했다고 한다.

  • 1430년 여름, 조선: 곧 혹심한 더위에 접어드는 것을 이유로 공조에 명해 건축 공사를 정지시키게 했다고 한다.

  • 1432년 여름, 조선: 심한 더위로 죄질이 가벼운 죄수들을 풀어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1일 뒤에는 금년 여름은 더위가 심했는데도 사신에게 베옷을 주지 못한 것을 들어 지금은 가을철이 됐으니 베옷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권진과 허조가 만류한다. 기록 시점인 양력 8월 2일에는 확실히 폭염이 설쳤으며, 그 뒤 3일과 12일 사이에 폭염이 누그러졌는지 13일 시점에선 날씨가 가을철같다는 언급을 한다.

  • 1443년 여름, 조선: 임금이 "올해는 가뭄으로 인해 더위가 심한데, 이미 죄가 가벼운 죄수들은 모두 풀어주었지만, 석방되지 않은 죄수들은 더위로 인해 옥에서 죽지 않을까 염려되니, 각 고을의 수령들에게 죄수들을 무휼(撫恤)하여 병이 나지 않게 하라는 전지를 내린다. 이상 양력 8월 7일의 기록이며, 이보다 이틀 앞서 여진족 사람 '도구라'가 더위를 무릅쓰고 서울까지 오는 것을 가련하게 여겨 도구라와 그 수행원들에게 옷을 하사할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감옥에 남아있는 죄수들을 신경쓰는 것과 서울까지 내려오는 사람을 굳이 걱정할 정도로 더위가 아주 심했던 듯.

  • 1484년 여름, 조선: 폭염으로 인해 죄수들의 고통이 심해지자 성종의 어명으로 강력범죄자를 제외하고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1485년 여름, 조선: 기록에 의하면 전 해에 이어 이 해에도 불볕더위가 찾아와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기근이 들었다고 하며, 성종이 이를 언급하여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고 대신들에게 방도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1.3. 16세기[편집]


  • 1540년 여름, 유럽: 영어 위키백과의 1540년 유럽의 가뭄 문서에 의하면, 이해 유럽의 여름 평균기온이 1966년~2015년 평균보다 높았으며, 심지어 그 2003년의 폭염보다 더 더웠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2]

  • 1593년 여름, 조선: 6월 말부터 더위가 언급된다. 비변사에서 명나라군과 일본군의 동태를 논하면서 날씨가 매우 무더워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다고 언급한다.[3] 같은날 선조가 경략 송응창에게 가서 답답함을 호소하려 할 때도 장운익이 심한 더위를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음력 7월까지 더위가 언급되기도 하였다.

  • 1594년 여름, 조선: 이 당시의 더위의 위력은 다름아닌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 드러나 있다. 다만 당시 이순신이 있던 지역은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였으므로 이 서술은 경남 남해안 지역이 기준이다.[4] 음력 6월 11일(양력 7월 28일), 이날 난중일기에는 "더위가 쇠라도 녹일 것 같다."[5][6]라는 인상적인 문구가 등장하며, 사흘 뒤인 14일에도 "바다의 섬도 찌는 듯 하다"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15일(8월 1일)에는 이순신의 아들 이면이 더위를 심하게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6월 22일(8월 8일)에는 전일 왔던 폭염보다 더 심했는지, 아예 "오늘 불꽃같은 삼복 더위가 전보다 더하다. 큰 섬이 찌는 듯하여 사람이 견디기가 힘들다."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정황상 이 날이 연중 최고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일 가능성이 높다. 7월 2일(8월 17일)에는 "늦더위가 찌는 듯 하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때도 더위가 있었지만 8월 초보다는 덜했던 듯. 중간에 가뭄이 심해 농삿일을 걱정하는 기록마저 있었다. 이 기록을 끝으로 더위에 대한 기록은 없고, "바람이 종일 거셌다", "비가 퍼붓듯이 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7월 16일(8월 31일)에는 "바람이 차갑다", "늦은 아침에 비가 오더니 종일 퍼붓듯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8월 17일 이후로 비가 몰려와 폭염이 끝난 듯한 정황을 나타냈다.

  • 1599년 봄, 조선: 이미 윤달 4월 1일 기록에 비가 올 징조도 없이 불볕더위가 심하여 밀과 보리가 매말라가고, 모내기를 전혀 하지 못 했음을 염려하여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윤달 4월 1일이면 양력 5월 24일[7]인데 이때부터 기우제를 지내야 할 정도로 이미 더위가 극심했던 모양.[8]

1.4. 17세기[편집]


  • 1627년 여름, 조선: 청나라 사신 유해에게 답신하는 편지에서 더위를 무릅쓰고 찾아왔으니...라는 기록[9]이 있고, 심각한 더위에 죄수들 중에 석방할 사람은 석방시키라는 전교를 내리기도 했다.[10][11]

  • 1663년 여름, 조선: 비망기(備望記)에 의하면, 쨍쨍한 불볕 더위에 가뭄이 심하게 들고 논과 밭이 갈라져 호미가 들어가지 않아 농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 1678년 가을, 조선: 비망기(備望記)에 의하면, 지난 달(음력 6월)에 비가 내려 농사가 잘 될 줄 알았으나, 이 기록이 쓰여진 음력 7월 23일[12] 시점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불볕 더위가 매우 심하여 큰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양력 8월에는 비가 어느 정도 내렸지만 9월을 넘긴 시점에서는 비는 커녕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농삿일을 망칠까봐 기우제를 지냈다는 것이 된다. 9월은 현재에는 기상학적으로는 여름에 거의 가깝지만 당시에는 가을이었다.

1.5. 18세기[편집]


  • 1757년 여름, 프랑스: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폭염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1757년 7월 프랑스 파리의 월평균 기온이 25.0°C[13] 로, 1756년 기록이 남아있는 이래 264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높다. 2위는 2006년 7월의 24.6°C[14].1757년 7월 유럽 폭염 영문위키 문서에 의하면 심지어 7월 14일에는 아침 최저기온 25.0°C 로 열대야가 발생하고 낮 최고기온 37.5°C, 일 평균기온 31.3°C 를 찍었다. 위키백과 해당 문서에 따르면, 이 해 여름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이 극단적인 폭염이 발생했다고 한다.

  • 1794년 여름, 조선: 폭염이 극심해 공역에 종사하는 백성들이 더위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정조는 "불볕더위가 이와 같은데 공역을 감독하고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며 척서단(滌暑丹)[15]이라는 약을 4000정 정도 조제한 뒤 수원성을 쌓는 화성 공역소에 하사하였다.[16][17] 여담으로 정확히 100년 뒤에도 강한 폭염, 200년 뒤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6. 19세기[편집]


  • 오래전 기록이라 기록이 유실된 부분도 있지만,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기록을 종합해보면 2010년대 수준으로 1880년대 역시 폭염이 잦았던 모양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1888년은 폭염의 절정을 이루는 수준. 1888년이랑 2018년은 대칭 관계인가[18]


1.6.1. 1880년대[편집]


  • 1881년 여름, 조선: 한수당 블로그[19]에 의하면, 서울의 6월의 평균기온이 23.2°C이라고 한다.[20] 7월은 25.7°C[21]를 기록, 8월에 들어서 폭염이 굉장히 심화되었는지 27.6°C라는 기록을 세웠다. 일별 기록을 확인할 길이 없으나, 평균 27.7°C를 기록한 2013년 8월, 27.5°C를 기록한 1939년 8월, 똑같이 27.6°C를 기록한 1994년 8월 모두 폭염이 오랫동안 기승을 부렸던 전적이 있어서, 1881년 8월 역시 저 세해와 비교될만한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해의 폭염은 열섬 현상이 전무했던 시절에 일어난 것. 물론 이 기록이 실제보다 높게 기록된다는 것을 감안할 시 6월은 22도대 중반, 7월은 25도 전후, 8월은 27도 전후이며 6~7월은 평범해 보이지만 2006년, 2012년급으로 꽤나 더운 여름이다. 게다가 6월이 당시 22도대 중반이라면 현대에 오면 2020년 6월에 가까운 이상 고온이고 7월도 25도대 후반이다.

  • 1887년 여름, 조선: 서울 기준 6월 평균기온이 23.3℃[22]였다고 하며, 7월과 8월 평균기온 모두 26.7℃[23]를 기록하였다. 물론 블로그 기록이 높은 것을 감안해도 6월은 22도대 중후반, 7~8월은 26도 전후이며 당시 치고는 상당히 높다. 6월 기준 현대에 올 시 2020년 6월급이고 7~8월도 2017년 7월이나 2020년 8월급이다.

  • 1888년 여름, 조선: 비공식적인 기록으로 볼수 있는데[24] 상당히 강한 폭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의하면 1888년 7월 서울의 월평균기온은 26.9°C, 강수량은 335.8mm 다. 7월 평균 26.9°C 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상당히 고온으로 2018년, 2021년 7월보다는 약과이지만 2017년 7월과 같다. 8월이 되자 폭염이 더 심해져서 월평균기온 28.3°C 를 기록하고 월강수량도 128.3mm 에 머문다. 월평균기온 28.3°C 이라는 수치는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기록적인 수치로, 기록적으로 더웠던 2016년 8월의 28.0°C 보다도 높은것은 물론이고, "단군이래 최악의 여름"이라고 불렸던 2018년 8월의 28.8°C 를 제외하면 이것보다 높은 8월은 한번도 없었다(!) 이게 공식이었으면 실제로는 1888년 8월이 장장 129년이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이 기록이 실제보다 높게 측정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939년, 1943년, 1994년, 2013년과 비슷한, 즉 엄청난 기록이다.

블로그 기준으로 역대 최강의 폭염을 기록한 1888년은 두 가지의 놀라운 점이 있다. 첫번째로, 평년보다는 약간 적지만 7월에 335.8mm 의 비가 나름 풍족하게 내렸음에도 7~8월이 이 정도로 더웠다는 것이다.[25]

두번째는 이러한 기록이 초가집짓고 살던 조선시대에 왔다는 것인데, 같은 기상학적 조건으로 만일 2010년대 이후에 이러한 폭염이 똑같이 왔다면 아스팔트, 건물 콘크리트가 내뿜는 도시 열기인 열섬 현상이 추가되어서 8월 평균기온이 2018년 이상, 심하면 거의 30°C 가까이 육박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시대를 고려할때 정말 상당한 더위다.[26]

그러나 국립도서관에서는 1888년 7월이 25.6°C, 1888년 8월이 26.5°C이다. 이정도도 다소 높긴 하지만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다. 물론 당시 평년보다 1.5도 정도 높다.[27] 이것도 오류일 가능성이 있어서 여러모로 애매한 여름이며 대충 7월은 2014년, 2016년, 2019년처럼 26도 전후의 평균기온, 8월은 27.2~27.5도로 1939년, 2019년 8월과 비슷할 듯 하다. 물론 시기를 감안하면 현재에 왔을시 그 28.3°C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정작 한더위 했을 법한 도쿄는 25.6°C를 기록, 당시 8월 평년인 25.3°C~25.7°C과 거의 비슷하다. 아무래도 동일본보다는 서일본을 위주로 열기가 들어온 듯.

  • 1889년 여름, 조선: 서울 기준 6월 평균 22.9℃[28], 7월 평균은 25.1℃로 조금만 높았으나, 8월 평균기온 27.2℃로 2019년 8월과 동일한 수치로 기록되었고 2012년 8월보다 높다. 물론 블로그의 기록이 높은 것을 감안해야되어서 6월은 22도대 초반, 7월은 24도대 중반, 8월은 2020년 8월같이 26도대 중반으로 예상되나 이 역시 현대에 올 시 6월은 2011년, 2019년 제외한 여타 2010년대의 23도대 평균기온, 8월은 2012년, 2019년급의 더위로 예상된다.

  • 1890년 여름, 조선: 이상 고온/사례에서 나와있듯, 2월부터 시작된 고온 현상이 여름철인 6~8월에 들어 폭염으로 발전하였다. 서울 기준 6월 평균기온 23.6℃[29], 7월 평균기온 26.4℃[30], 8월 평균 27.3℃[31]로 기록되었다. 여러차례 서술된 사실이지만, 이 해와 1888년은 열섬 현상도 전혀 없던 시절에 6~8월 모두 2016년과 비슷한 더위가 찾아온게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블로그의 기록이 과장된 것을 감안해야되지만 6월은 1994년, 2021년 6월 수준의 22도대 후반~23도, 7월은 2015년 수준의 25도대 후반, 8월은 2020년 수준의 26도대 중반으로 예상된다. 물론 현대에 오면 6월은 2012년, 2013년급, 7월은 1978년, 8월은 1939년, 2019년 수준이다. 물론 한파 문서의 각주에서 언급되었듯, 당시에는 일일 3회 정도로만 기온을 산출했기에 실제 기온보다 과장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실제 8월 평균은 26℃대 초반으로 추정된다.[32] 서울과 비슷한 위도인 야마가타시의 기록으로는, 서울과 야마가타시의 기후차를 감안해도 8월 마지막까지 최저기온이 높게 기록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일평균까지 24~25도를 며칠 연속 기록하였다고 한다. 전반적으로는 8월 초보다 후가 기온이 더 높은 경향을 보였던 것을 보아, 이 해 8월 또한 1894년 8월처럼 2020년 여름의 조상격이었던 듯 하다...


1.6.2. 1890년대[편집]


  • 1892년 여름, 조선: 작년 여름은 폭염이 전멸했다시피했지만, 이 해의 여름은 비교적 일찍부터 폭염이 찾아왔다. 인천은 7월 초순부터 슬쩍 더워지더니 12일 최고기온이 34.2℃로 오르며 폭염이 시작되었다. 다음날에는 35.1℃가 찍혔고[33], 16일까지 34~35℃를 기록한 뒤 더위가 꺾였지만, 22일부터 재차 더위가 와서 27일과 28일에 34℃까지 올라갔다. 8월은 13일의 34.7℃를 빼고 7월과 달리 큰 더위가 없었으며, 7~8월 평균기온은 각각 26℃와 25℃로 추정되어 1962년, 2014년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894년 여름, 일본, 조선: 6월은 폭염전야인 듯 다소 서늘했었던 다른 해와 다르게, 유독 이 해는 6월부터 열기가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1894년 6월 도쿄의 평균기온이 23.6°C[34]로,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 와서 봐도 상당히 높다. 평균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지금 시대에도 7위로 랭킹되어 있다. 한반도 바로 아래의 대마도 이즈하라의 기록을 보면 못 해도 6월 14일경부터 북태고의 확장이 이루어진 듯 싶다.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1894년 8월 평균기온이 29.1 °C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현재까지도 역대 4위로 폭염이 발생한 2010년 8월의 29.0 °C와 2020년 8월 28.8 °C보다도 높다. 이보다 더 높은 기록은 한국과 비슷하게 2018년, 1994년, 2013년, 2016년 등이 있다. 위의 1888년 여름은 한반도와 서일본만 화로나 다름없었지만, 1894년 여름은 동일본도 예외가 아닌 셈. 또한 어느 기상역사 블로거의 자료를 보면 1894년 8월 부산평균기온이 28.1 °C, 월합강수량은 0.2mm(?!)라는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기록을 보였다. 실제로 해관기상자료를 뒤져봤을 때도 0.25mm에 그쳐서 이 강수량 0.2mm라는 수치는 거짓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평균기온 28.1 °C는 1994년 8월과 함께 부산 월평균기온 역대 최고 2위이며 오직 1990년 8월의 28.3 °C 기록이 이보다 더 높다. 또한 열대야가 드물었던 당시를 생각해본다면 정말 비상식적인 폭염이 있었을 듯 하다. 인천1894년 8월 평균기온 27.4°C[35]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수치는 현재까지도 1943년, 2016년 8월의 27.4 °C와 함께 공동 역대 2위이며 오로지 2018년 8월의 28.1 °C 기록만이 이보다 높다.

  • 인천해관의 자료를 보았을 때, 이 때의 북태고 확장 속도가 상상보다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6월 14일 쓰시마 섬이 북태고로 뒤덮일 때 한반도 중부에 있는 인천도 그 영향을 받아 최저기온 20℃가 기록되었다. 6월 말에 북태고의 기세가 더 심화되어, 30일 최고 33.3℃[36], 최저 23.5℃로 상당히 더운 날씨를 보였다. 당연히 7월 초에도 이런 기세가 계속되어 2일 최기온 24.0℃, 6일 24.5℃(!), 7일 24.0℃였고, 초순 중 나머지는 22~23℃였다. 7월 중순에 들어 이 기세가 또 심화되어(...) 12일과 13일 최기온 25.0℃(!), 14일에는 아예 27.0℃(!!)를 기록해 1994년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일찍부터 열대야가 심했으며, 15일도 26.5℃, 16일 25.5℃로 열대야가 계속되다가 17일에 가라앉았다. 그러다 7월 25일[37]과 26일에 다시 최저 24.0℃로 올라갔고, 27일, 29일, 31일에 다시 25.0℃ 열대야를 기록, 30일에 또다시 27.0℃까지 올라갔다.

  • 열대야만 기록했던 7월과 달리, 8월에는 열대야와 함께 폭염도 동반되어 나타났다. 8월 1일8월 5일36.7℃(!)를 기록했고, 2일에도 36.4℃로 측정되었으며, 8월 10일까지 최고 34~35℃, 최저 25℃의 폭염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은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여름같으면 그 다음에 잠깐 더위가 오다가 가을 장마로 남은 더위가 싹 쓸려갔겠으나..., 이 1894년의 여름은 이 법칙을 대놓고 비틀어버린 케이스였다. 8월 20일에 다시 열대야가 돌아왔고, 24일에 다시 한번 27.0℃(!!!)를 기록했으며, 25일에 열대야가 끊겼지만, 28일에 다시 귀신같이 복귀해(...) 그만해 제발저 25.8℃였으며, 29일 25.2℃, 30일과 31일 25.0℃로 8월 마지막날까지 지긋지긋하게 열대야가 관측되었다. 그러다 9월 첫날이 되자마자 바로 열대야가 해소되어 최저 18.5℃로 1894년 여름은 끝이 나게 되었다.

  • 정리하자면, 6월 14일부터 시작된 북태고 확장으로 여름이 일찍 시작되었으며, 6말7초에 더위가 심했고, 7중에는 열대야까지 왔다. 7말부터 재차 시작된 열대야는 그대로 8초로 넘어가며 폭염까지 몰고 왔다. 8중에는 그나마 폭염과 열대야는 없었지만, 8말이 되자마자 다시 열대야가 발생해 8월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비도 별로 없었는데 최저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8월 31일이 다 되어서도 최저기온이 25 ℃ 이상이었으며 가장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한 날인 8월 25일조차 21.2 ℃1967년, 2013년, 2020년에 맞먹는 최저기온 중심으로 매우 높은 8월을 보냈다. 그리고 8월 초에는 거의 매일 33~36도 이상의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8월 1일과 5일에는 인천의 최고기온이 36.6 ℃를 기록했다. 안 그래도 1894년이 역사적 사건이 많기로 유명한 해인데 여름마저도 이와 같이 기록적으로 더웠고 가뭄까지 합세해 농민들의 고통이 커졌을 듯 하다. 이로서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1794년, 1894년, 1994년 끝이 94로 끝나는 해마다 기록적인 폭염이 꼭 닥치는 것으로 보인다. 2094년 헬게이트 예약이요.

이 사이트에서는 6월은 81~10년이든 91~20년이든 모두 편차가 1.0~2.0°C 사이이며[38], 대략 23.7°C~24.2°C, 7월은 81~10년 기준으로는 1~2°C 높은 주황색이지만 91~20년 기준으로는 0.5~1°C 높은 옅은 주황색이므로 대략 25.9~26.3°C, 8월은 81~10년 기준으로는 옅은 주황색, 91~20년 기준으로는 0.2~0.5°C 높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대략 26.3~26.6°C사이로 예상된다. 2020년 8월과 비슷한 기온인듯 하다. 대략 1929년, 1997년 6월~8월의 상위호환이다.

  • 1895년 8월, 조선: 전년도의 살인적인 더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8월 하순으로 갈수록 은근히 기온이 높아지더니 8월 24일에 인천이 34.7 ℃를 기록하여 강한 늦더위를 보였다. 또한 최저기온도 전년도와는 달리 8월 하순에 20 ℃ 밑으로 하강하긴 했지만 그조차 19 ℃대이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높은 축에 속했다.

  • 1896년 7월, 조선: 전체적으로 더위가 심하지 않고 평범한 여름이었으나 7월 하순에 폭염이 살짝 나타났다. 인천은 7월 23일에 33.3 ℃를 기록했다.

  • 1897년 7월, 조선: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던 해로 7월 하순의 반짝 폭염 말고는 크게 덥지 않은 여름을 보냈다. 7월 29일에 인천은 33.3 ℃를 기록했다.

  • 1898년 8월, 대한제국: 2년 후처럼 여름 자체는 평범한데[39] 8월 말 늦더위가 강한 양상을 보였다. 8월 29일에 33.6 ℃를 기록하여 폭염이 하루 나타났다. 그리고 18일에 잠시 최저기온이 18도로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이 해에도 8월 최저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가지 못했다.

  • 1899년 7월, 대한제국: 1896년1897년처럼 7월 하순 반짝 폭염 말고는 평범한 여름을 보냈다. 7월 22일에는 인천이 33.0 ℃로 폭염이 하루 나타났다.

  • 1900년 8월, 대한제국: 한여름은 7월 말에 잠깐 덥고 평범했으나 8월 31일에 인천이 36.1 ℃를 기록, 인천이 이러면 서울은 대체? 8월 하순 기록으로도 1943년만이 이를 능가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여름이 다 끝나가는 시기인 8월 31일에 이런 기온을 기록한 것이 매우 비정상적이다. 다행히도 9월 들어서 급락하긴 했지만 이 여파로 9월 1일 최저기온이 24°C대를 기록하여 거의 열대야에 준하는 기온이 찾아왔다. 하루만 더 늦었어도 약 3 ℃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9월 최고 극값을 세울 뻔 했다.


1.7. 20세기[편집]



1.7.1. 1900년대[편집]


이 시기는 그럭저럭 더운 해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1880년대와 1890년대랑 다르게 유독 서늘함이 늘었다. 1901년을 제외하곤 전부가 눈에 띄는 더위가 없었고, 오히려 1902년과 1905년에 저온 현상이 가장 강력하게 두드러졌으며, 1903년과 1906년도 그렇게 높다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40]

  • 1901년 8월, 대한제국(중부): 역시나 또 기상학 역사를 다루는 그분의 블로그에 의하면 인천의 8월 평균기온이 7년만에 역대 2위 급인 27.4°C 를 기록했다. 게다가 가뭄도 비상식적으로 심했던것으로 보인데 월강수량이 7월 38.1mm, 8월 32.0mm 로 그 어느해보다 심했다.[41] 다만 7월은 24.5°C로 평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부산은 1901년 8월이 25.5°C 로 평년 수준이었다.[42] 그 해는 중부지방 한정으로 엄청난 폭염+비상식적인 가뭄이 찾아온 모양이다.[43] 해관자료를 보면 7월 말에 기온이 점점 높아지더니, 8월 3~5일간 최저기온이 25 °C 이상인 열대야와 함께 인천이 37.5 °C를 연속으로 기록했다고 한다.[44] 그리고 8월 상순에 인천이 이 정도로 기온이 올라간적이 공식 기상관측이래 전무하며 이 기록은 12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45] 이 정도로 강하게 지속되었던 폭염이면 서울은 38 °C를 넘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으며[46] 거의 후술할 1943년에 맞먹는 8월 중심으로 유난히 중부 지방이 더운 여름이었을 듯 하다. 8월이 지나갈수록 폭염은 진정되는 추세를 보였지만 8월 하순까지 가서도 쉽게 더위가 식지 않아 인천의 최저기온이 20 °C 이상인 날이 많았다. 블로그의 평균기온이 다소 높다곤 하지만 1901년 8월은 실제로도 거의 비슷한 값을 나타냈을 것으로 보인다.

  • 1907년 여름, 대한제국: 대구에서 관측을 시작한 해부터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다. 구체적인 일별 기온은 알 수 없으나, 8월 평균기온이 27.2°C[47] 를 기록했으며, 인천25.2°C를 기록했고, 부산26.1°C, 평양24.8°C, 목포26.0°C를 기록했다. 인천의 경우 7월 5일과 6일에 30°C를 기록한 뒤, 18일에는 33°C를 기록했으며, 8월 2일~4일에 31~32°C, 5일에는 34.6°C를 기록하여 연중 최고 극값을 기록했다.[48] 서울은 아쉽게도 10월 1일부터 기상관측이 시행되어 8월의 날씨는 영영 알 수 없다.[49] 그저 옆의 인천 날씨를 간접적으로 참고하는 것과, 이 해 8월의 서울은 절대 시원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일본 본토나 홋카이도 등의 지역 기록에 의하면 8월에는 최저기온 평균마저 다른해에 비해 유달리 높게 기록되어, 7월은 몰라도 8월에는 북태고가 동북아시아 일대를 강하게 장악한 것으로 판단된다. 역사적으로는 이해 8월 1일부터 대한제국군대가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어 이에 항거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일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는 상황이 당시 무더운 여름 날씨와 겹쳐 긴장감은 상당했을 듯 하다.

  • 1909년 여름, 대한제국: 서울에서 8월 4일에 34.7°C를 기록했고 8일에는 35.6°C를 기록해서 1909년 연중 극값을 세웠다. 그리고 이 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25.3°C로 열대야를 기록했다.


1.7.2. 1910년대[편집]


  • 1913년 여름, 10월 초, 일제강점기 조선: 서울은 초이상 저온으로 극값이 31.7°C에 불과했고 일제강점기 중 유일하게 폭염이 없었으나 대구는 8월 17일에 38.9°C의 기록이 나타났다. 그렇게 저온이 만성적으로 나타났던 1913년 특징상 더위가 빨리 물러가는 듯 싶었는데, 9월 말~10월 초에 다시 더위가 찾아와서 3일 최고기온이 30.1℃에 일평균 21.9℃로 때늦은 더위[50]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때늦은 더위가 으레 그렇듯이 비구름 때문에 바로 기온이 내려가 더위가 오래가진 못 했다. 서울에서 10월에 유일하게 30도를 남은 사례이다.


  • 1917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강한 라니냐로 인해 시작된 이상 저온으로 1917년 1월은 서울에서 1936년, 1963년과 더불어 가장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고 그 여파로 봄에도 1981년~2010년 기준은 물론 당시 기준의 평년보다도 낮았으나 6월부터 갑자기 더워지더니 16일에 결국 36.7℃를 기록하고 만다.[51][52] 급발진 甲 장마도 7월 중순에 어중간하게 끝나서 2018년급은 아니지만 다소 더위가 강했다. 이후 7월말~8월초에는 더위가 가장 심해 7월 31일, 8월 2일 각각 경성 최고기온 36.6℃가 관측되었다. 대구광역시는 7월 31일 37.7 °C, 다음날인 8월 1일에는 37.3 °C가 기록되면서 서울보다 한층 심화된 폭염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8월 중순부터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서 더위가 물러갔고 가을에는 또다시 이상 저온이 기승을 부렸다.[53]

  • 1918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앞뒤 년도보다 최고기온 극값이 높지 않으나 서울은 36 ℃를 넘는 폭염이 이 해에도 찾아왔다. 7월 중순은 이상 저온이 있어서 평년보다 낮았지만 이후 7월 하순부터 급격히 올라 서울은 25일에 36.1 ℃를 기록해 36도를 넘기며 한해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했고 이후에 30도 밑으로 급락하며 좀 진정되나 싶었더니 8월 7일에 35.2 ℃를 기록했다. 이후 또 기온이 낮아져서 9월은 이상 저온 현상이 다시 찾아온다.[54] 한편 대구광역시는 전해와는 다르게 그닥 큰 폭염을 보이지 않았지만 8월 6일에는 34.9 ℃를 기록했다.

  • 1919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7월 초는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13일부터 점차 30도 이상으로 오르더니 18일에 서울은 35.3 ℃까지 올랐다. 이후 계속 30~32 ℃의 최고기온을 보이다 27일 경성은 35 ℃를 다시 기록하였으며 7월 말인 31일에는 35.9 ℃, 다음 날인 8월 1일에는 37.5 ℃로 1919년 한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55] 8월 2일 최저기온은 26.4 ℃로 서울에서 열대야가 관측되었으며[56] 이후 최고기온이 낮아지긴 했으나 33~35 ℃를 넘는 폭염이 중순까지 기승을 부리다 10일부터 서서히 다시 오르더니 12일에 36.5 ℃, 다음 날인 13일에는 37.3 ℃까지 올라 8월 초의 악몽을 생각나게 하는 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이후 다시 소강 상태에서 18일부터 34 ℃를 다시 기록하더니 20일까지 35.7 ℃를 기록하며 8월 하순이 시작되는 시기까지도 더웠다.[57] 8월 21일의 33.9 ℃ 이후 서서히 폭염의 기세가 꺾였으며 이후 9월까지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 한편 강릉시에서는 서울에 폭염이 찾아오지 않은 7월 21~25일 사이에 폭염이 찾아왔는데, 22~25일 기간 동안 최고기온 35~36 ℃를 연일 기록했으며, 23일에는 36.4 ℃로 1919년 한해 가장 높은 강릉시의 기온을 기록했다. 이후 8월 말까지 최고기온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서 28일에는 33.3 ℃의 늦더위가 오기도 했지만 거의 그맘때 수준이었고 34 ℃ 이상의 폭염기록은 없었다. 또한 대구광역시1917년보다는 최고기온이 조금 낮았지만 전년도보다는 더웠으며 7월 21~26일까지 계속 최고기온 35 ℃ 이상을 기록하더니 26일에 35.9 ℃까지 오르고 급락해서 강릉과 비슷하게 거의 그맘때 기온으로 내려갔다. 정리하자면 일제강점기 치고 당시 평년보다 꽤 더운 여름이었으며 서울의 평균기온은 26.3 ℃2015년 8월의 평균기온과 같고 공동 기록된 년도들을 합한 순위로는 상위 13위이며 열대야가 드물었던 당시 치고는 꽤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했다.[58]


1.7.3. 1920년대[편집]


  • 1920년대는 2010년대처럼 거의 모든 해가 이 문서에 올라올 정도로 폭염이 많았으며, 특히 최고기온만 보면 2010년대와 맞먹을 정도의 폭염도 있었다. 서울 8월 평균기온도 25.6도로 다른 시기에 비해 높은 편이다. 물론 반올림 기준 38°C나 그 이상의 극값은 없었으나 34~37°C의 극값이 자주 기록되었다. 사실 일제강점기에는 1913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폭염이 하루 이상 나타났다.

  • 1920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7월 말~8월 초는 큰 폭염을 보이지 않았으나 6월 말~7월 초에 폭염을 보였다. 사실 서울은 6월 초부터 33도를 넘기는 날도 있는 등 더운 편이었지만 중순에 접어들자 그맘때 기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29일부터 서서히 33 ℃ 이상으로 올라가며 더워지더니 30일에는 35.6 ℃로 1920년 서울의 한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가 다시 급락했다. 또한 대구광역시는 7월 1일에 36.0 ℃를 기록한 후 서울처럼 급락했으며 이후 전국이 7~8월에는 더워도 33~34 ℃에 그치는 등 큰 폭염을 보이지는 않았다. 우연이지만 100년 후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8월 초에 서울에 초강력 집중호우가 내렸다는 점도 판박이다. 한편 강릉시는 6월에는 큰 폭염이 없었고 7월 26~28일에 폭염이 찾아와서 27일 35.8 ℃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후 8월 3일에 33.7 ℃를 기록한 이후 강릉도 더위가 물러갔다.그러나 이후 서울은 9월 5일에 33도의 폭염을 보였다.[59]

  • 1921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8월 초까지 평년 수준으로 큰 더위가 없었으나 중순부터 폭염이 점차 심화되더니 15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36.0 ℃를 기록했다. 이후 33~35 ℃의 더위가 8월 22일까지 이어지다 최고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29일에는 최고기온이 21.1 ℃로 매우 낮았다. 또한 대구광역시는 양상은 비슷했으나 서울보다 덜한 더위가 찾아왔다. 그래도 21일에는 35.5 ℃까지 올라 폭염기록을 보여주었다. 8월 중순 폭염이 강력했으나 하순들어 평년기온을 회복한 셈이다. 한편 강릉시는 서술한 두 지역들보다 조금 빨리 폭염이 찾아왔는데, 8월 8일~14일에 최고기온 33~35 ℃의 더위가 찾아왔으며 8월 9일에는 최고기온 35.8 ℃, 10일에는 36.0 ℃로 가장 높았다. 물론 그 이후 다른 지역들처럼 점차 기온이 내려갔다.

  • 1922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6월 중하순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서울은 6월 20일에 34.5 ℃까지 올랐고 대구광역시는 19일 34.8 ℃를 기록했다. 이후 7월은 오히려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 현상이 기승을 부렸으며 21일 서울 34.5 ℃를 제외하고는 큰 더위 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대구는 8월 이후 기온이 본격적으로 올라 중순까지 폭염이 발생했다. 33~35 ℃를 연일 기록했으며 8월 5일에는 36.6 ℃까지 올랐다. 이후 18일까지 35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다 하순에는 그맘때 기온으로 낮아졌으나 30일에는 다시 대구의 최고기온이 34.0 ℃를 기록했다.[60] 서울에서도 광복절 전후로 폭염이 찾아와서 16일 36.3 ℃까지 올랐다. 그다음은 대구와 비슷하게 하순까지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31일에 34.5 ℃까지 올라가는 등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물론 그 이후 9월은 기온이 급락했다. 강릉시에서도 6월 14일 35.4 ℃ 이후 7월은 큰 폭염이 없었으나 8월 2일~7일간 폭염이 찾아와 6일 최고기온이 35.8 ℃까지 올랐다. 8월 하순은 다른 지역들처럼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31일에는 기온이 올라 33.5 ℃를 기록하며 늦더위가 강했다.

  • 1923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8월에 폭염이 찾아왔다. 서울은 7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27일의 30.7 ℃를 제외하면 한번도 최고기온이 30 ℃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으나 5일부터 33 ℃ 이상을 기록하기 시작하더니 6일에는 35.9 ℃를 기록하며 가장 높았다. 이후 11일부터 기온이 떨어져서 그럭저럭 시원해졌으나 20일부터 늦더위가 찾아와서 서울은 22일 34.6 ℃를 기록했다. 이후 9월은 첫날에 30도 빼고는 더위가 딱히 없었고 10일에는 최고기온이 20도를 겨우 넘기며 저온현상이 찾아왔다. 한편 대구는 7월 말에도 34 ℃를 기록하는 등 더위가 일찍 찾아왔고 8월 초반에는 잠시 주춤해졌다가 4일부터 33.4 ℃를 기록하며 폭염이 시작되어 8월 9일에는 36.9 ℃까지 오르며 가장 높았다. 이후 대구는 연일 33~34도를 기록하며 늦더위가 강했지만[61] 9월에 들어서자 다른 지역처럼 다시 늦더위가 주춤하였다. 한편 강릉은 폭염이 없는 듯 보였다가 역시나 7일부터 급격히 더위지며 8일에는 37.0 ℃로 가장 높았고 이후 주춤하다가 중순에 폭염이 닥쳐 12일 36.8 ℃, 15일 35.2 ℃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더위가 주춤해졌으며 큰 늦더위 없이 9월로 접어들었다.

  • 1924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서울은 7월 초는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대구는 7월 5일부터 더워지더니 8일부터 38.3 °C의 기온이 관측되며[62] 신고식을 제대로 치뤘다. 강릉의 기온도 35.7 °C를 기록하는 등 7월 초라고는 믿기지 않는 더위가 찾아왔다. 이후 7월 중순은 강릉은 크게 덥지 않았고 서울과 대구는 비슷하게 34~35 °C로 평년보다 더웠지만 기록적은 아니다.[63] 이후 7월 하순은 서울은 큰 더위가 없었지만 강릉과 대구는 25일부터 점차 더워지며 34~35 °C의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이후 8월이 시작하자마자 대구는 2일 36.0 °C, 서울은 3일 35.5 °C를 기록했다. 이후 좀 누그러지는 듯 보였다가 서울은 곧바로 8일부터 다시 35.9 °C까지 오르더니 다음날에는 37.4 °C까지 오르며 한해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했다. 이후 다음날인 10일, 11일에도 37.0 °C까지 오르며 매우 강한 폭염을 보이고 14일까지 35 °C 이상을 연일 기록하였다.[64] 이때의 상황을 보자면 2018년 7월 말의 무더위의 사례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이 시기에 도쿄 정남쪽 먼 바다에서 2458호 태풍이 생겨났는데, 거의 종다리와 매우 흡사한 기형적인 진로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상한 태풍 경로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풍 경로와 일기도는(8월 12일) 다음과 같다.[태풍][일기도]15일부터 더위가 주춤하였지만 곧바로 늦더위까지 찾아와 8월 하순까지 그대로 32~34 °C를 연일 기록하였다. 특히 8월 24일까지 34.9 °C를 기록하며 늦더위가 강했지만 29일부터 기온이 급락하면서 이상 저온 현상이 찾아오며 가을로 접어들었다. 정리하자면 늦더위의 영향과 8월 초 높은 최저기온으로 인한 잦은 열대야로 8월 서울의 평균기온이 27.0 ℃를 기록하여 1975년, 2006년 8월과 같은 기온이며 현재까지도 상위 9위를 기록하여 일제강점기 치고는 물론 현대 치고도 매우 높았다. 사실 관측 사상 처음으로 평균 27°C를 돌파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한편 대구는 7월 초부터 38.3 °C 기록에 비해 8월에는 아주 심한 더위까지는 없었는데, 13일에는 35.9 °C까지 기록하였으나 이후 급락해서 서울만큼 늦더위가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상 저온 수준으로 기온이 낮아졌다. 강릉도 11일 35.5 °C를 제외하면 큰 더위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더위의 중심이 7월은 대구경북, 8월은 서울경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 1925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잦은 비로 인해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했던 1925년이지만 7월말~8월초 사이에 대구와 강릉에서 반짝더위가 있었다. 대구는 7월 28일 34.3 °C, 강릉은 7월 30일 34.9 °C로 한해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했고 대구는 8월 2일에도 다시 한번 34.0 °C의 기온을 보였다. 서울도 7월 말에 33~34도를 기록했으며, 8월 21일~27일에 32~33도의 더위를 여러 차례 기록했다. 비록 폭염은 적었으나, 아예 폭염이 전멸했다기엔 어폐가 있는 여름이었다.

  • 1929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극단적인 고온은 많이 없으나, 6~8월 전반에 걸쳐 더위가 꽤 강하게 나타났다. 서울은 이미 5월 중순과 월말에 열기가 와서 29℃를 기록했고, 6월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달 내내 29~33℃에 이르는 더위를 보였으며, 급기야 6월 25일에 35.5°C를 기록해 절정을 이루게 된다.[66][67] 8월에 더욱 더위가 심해져서 8월 5일, 8월 12일에 서울이 36.7°C 를 기록하는 등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값을 보였다. 강릉도 37.4°C 를 기록하며 2018년 폭염 전까지 8월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었다. 서울은 6월 22.9도, 7월 25.9도, 8월 26.2도였다. 하지만 8월 16일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가을철(특히 9월)은 이상 저온 현상이 기승을 부렸다.[68]


1.7.4. 1930년대[편집]


  • 1930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8월 초~중순에 걸쳐 중부지방 한정으로 엄청나게 더웠다. 서울은 8월 초 이후 연일 최고기온 35°C 를 넘더니 기록이 8월 11일 37.4°C 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시원한 인천도[69] 36.9°C 까지 오르는 등 서울,인천,경기도 전역이 몹시 심한 더위에 시달린것으로 보인다. 8월 초중순에 폭염이 집중되었던 것과 폭염의 고장인 대구와 8월 월평균이 거의 차이가 없는 것[70], 14일 이후 폭염이 누그러진 양상을 보인 2019년 8월과 어느 정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71]

  • 1932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일제강점기의 첫번째 네임드 여름중 하나. 중부 이남을 중심으로 폭염이 찾아왔다. 경상북도는 41~42 ℃(비공식 기록)까지 올라갔고 5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서울은 이미 5월 2일30.2°C를 기록했고, 5월 17일부터 기상관측사상 가장 빠른 폭염일수가 관측되었다.[72] 서울은 7월 말부터 기온이 유의미하게 올라가더니 7월 31일에 35.9°C 를 기록, 8월 1일과 2일 최고기온 모두 37.2℃ 를 기록한 이후 기온이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며 9월까지 이어지다 9월 말에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73] 대구의 경우는 훨씬 심해서 7월 17일 경부터 연일 35~37°C 를 웃돌더니 7월 30일 39.3°C, 7월 31일 39.0°C, 8월 1일 39.3°C 로 3일 연속 39°C 이상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운다.


  • 1936년 여름, 미국·캐나다: 미국 중서부와 캐나다 남부를 중심으로 폭염과 가뭄이 닥쳐 농작물에 큰 피해를 남겼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추위로 유명한 노스다코타에서 49도까지 치솟는 기록을 나타내는 등, 중서부 대부분 지역에서 40도를 훨씬 뛰어넘는 폭염에 시달렸다. 대공황 이후 어려운 1930년대에 맞은 크리로 더욱 힘든 나날을 보냈고, 미국의 역사를 바꾸는 데도 영향을 준 폭염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계기로 서부로 이주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참고로, 조선에서는 이 해에 비교적 서늘한 여름을 보냈다.[74]

  • 1937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 - 1937년 폭염
  •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폭염 지속이 매우 심했다. 서울은 7월 24일부터 기온이 폭염으로 올랐고 여름기간동안 32~35˚C의 날씨가 줄기차게 이어졌는데 그 끝이 8월 23일인 것이 후술할 1939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거기에 장기간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을 받아 서울 대구 할거없이 매우 더웠으며 최저도 서울 23-24˚C가 계속 이어져서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강점기 치고 매우 높았다. 7월 24일부터 8월 5일까지 이어진 폭염과 8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지는 폭염으로 나뉘는데, 이 기간동안 앞서 말했듯 32-35 ˚C의 폭염이 계속 이어졌고 8월 4일에는 일최저기온 26.0 ˚C를 기록해서 열대야를 보였다. 이후 14일부터 다시 시작한 폭염은 최저 23-24 ˚C 지속에 8월 17일 최고기온 35.1 ˚C를 기록해 매우 높았다. 그리고 8월 23일까지도 쉬지 않고 폭염이 이어져서 서울 34.1 ˚C로 시기치고 매우 높은 편이었다. 24일부터 폭염이 끝났긴 했지만 이 해 8월은 당시 평년보다 매우 더웠으며 8월 평균기온 26.7 ˚C를 기록해 현대치고도 높았다.[75] 대구 역시 서울과 비슷하지만 한층 더 길고 심화된 폭염을 맞이하여 7월 21일부터 8월 29일까지 매우 길게 이어져서 폭염 지속으로는 1939년, 1942년, 1994년 등과 같은 해에 결코 지지 않았다. 최저 23-25 ˚C, 최고 32-36 ˚C 날씨가 계속 이어졌으며 8월 21일에 36.7 ˚C를 기록한 것이 압권이고 36도 더위도 19일부터 3일 이상 이어졌다. 그리고 더위 마지막날인 8월 29일에 34.1 ˚C를 기록하여 서울의 더위 마지막날인 8월 23일의 기온과 같았다.[76]

  • 그러나 이 폭염의 진정한 극서지는 바로 강릉이었다. 상대적으로 서울과 대구가 덜 더운 7월 초중순에도 강릉은 33~34 ˚C의 고온이 다소 기록되었으며 7월 21일부터 본격적 더위가 시작되어 8월 26일에 끝나는데, 폭염 기간 동안 서울과 대구보다도 높은 최고기온을 보여주어 8월 1일에 36.6 ˚C,[77] 18일에 37.1 ˚C를 기록했다. 특히 37.1 ˚C를 기록한 18일에는 일최저기온도 무려 26.8 ˚C로 현대보다도 시기치고 매우 더운 극한의 폭염이 나타났다.[78] 21일에도 36.8 ˚C를 기록했으며 이후 기온이 내려갔으나 폭염은 8월 26일에 34.4 ˚C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 폭염의 원인으로는 태풍 영향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장기 지배로 인한 것으로 이 사이트에서 날짜를 선택하여 보면 7월 23일경부터 태풍(3795호)가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연해주로 가는 정황이 있고 아마 이 과정에서 다량의 열대공기가 제공되어 폭염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79] 실제로 8월 1일부터 북태고의 확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8월 초순 극단 폭염도 역시 태풍이 원인 중 하나로, 2021년 7월 하순 인파와 비슷하게 대형 태풍이 대만-중국 남부로 흘러들어가 대륙에서 북상하다 소멸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태고도 2021년과 유사하게 유난히 북동쪽으로 확장한 경향을 보인다. 이 태풍 잔해로 추정되는 것들이 서쪽지방에 비를 뿌려 8월 6일부터 11일까지 전국적으로 흐린 날씨(운량 9~10)으로 더위가 잠시 쉬어갔으며, 8월 15일 광복절 경에도 태풍이 영향을 주어 좀 더 북편화된 경로로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보이는데, 이 틈을 타 북태고가 남동쪽으로부터 강하게 확장해서 태풍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극한 폭염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23일부터 약한 열대저기압이 북상하여 목포로 향하며 잠시 한반도가 더위에서 벗어났고, 곧이어 27일에 중국으로부터 오는 저기압으로 북태고가 중부 지방에서 방을 빼고 서울은 23일, 강릉은 26일을 마지막으로 폭염이 끝났으며, 대구는 29일까지 더위가 이어지다 이달 말에 더위가 사그라들었다. 더불어 9월 상순이 되자 북서쪽 찬 공기가 급격하게 남하하는 모양을 보인다.

  • 하지만 더위가 오면 빨리 식는 법으로 9월 상순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서울은 9월 3일에 14.8 ˚C를 기록했다. 그리고 상순 내내 저온이 이어졌지만 12일부터 25일까지 최고 27~29 ˚C의 날씨가 계속 이어져 심하지는 않아도 다시 고온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28일에 기온이 7.3 ˚C로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었다. 대구도 9월은 서울과 비슷했다.

이미 7월 초부터 강력한 폭염이 찾아와 경성은 7월 9일에 36.8˚C를 기록했고 중순에 접어들자 좀 더위의 기세가 약해지는가 싶더니[80] 18~22일, 26~31일에 또 강한 폭염이 찾아와 (경성부는) 36~37˚C 이상을 연일 기록했다. 7월 21일 대구부는 39.6도, 추풍령은 39.8도를 기록했다.[81]이 폭염은 8월에 접어들며 살짝 누그러졌지만 6일~13일에는 가장 강력한 폭염이 찾아와 경성은 8월 10일 38.2˚C를 기록했다.[82] 이후 35~36˚C를 연일 기록하였고 20~23일에는 마지막 발악인지 또 강한 폭염이 찾아와 22일 경성은 37.7˚C를 기록했다. 이 폭염은 8월 29일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끝나나 싶었지만[83][84] 9월에는 하순을 제외하면 늦더위가 심해서 결국 실질적으로는 여름이 9월 21일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렇게 9월 30일에는 5.7°C까지 떨어지면서 끝나나 했으나, 이후 10월 14일에 29도를 찍으면서 뒤끝이 상당히 길었다. 경성의 경우 폭염일수가 47일을 찍으면서 2020년 현재까지도 서울 역대 최고기록으로 남아있다. 서울의 7월 평균기온은 27.6°C로 1994년, 2021년, 2018년에 이은 4위이고 8월은 27.5°C로 6위이다. 이보다 높은 8월은 1943, 1994, 2013, 2016, 2018년 5개 모두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해이다. 심지어 9월도 평균기온이 21.4°C하순이 저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치고 매우, 그리고 1981~2010 치고도 0.2도 높았다. 심지어 이 여파로 연평균기온도 12.1도였다.[85]함흥도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다.[86]평양도 섭씨 35도를 넘어가는 폭염에 고통을 받았다.[87]거기에다 가뭄까지 아주 심했다.#[88]


1.7.5. 1940년대[편집]


1940년대는 현대 지구온난화 시대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1937년과 1939년 여름을 위시로 이전 년대들보다 폭염이 길고 늦게까지 찾아오는[91]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심지어 한낮 기온 부문에선 현대에 밀리지 않거나[92] 아예 압도하는 기록들도 나올 정도.[93] 하지만 1940~1941년과 1945년 7월, 1947년은 저온이었다. 물론 이 조차도 폭염은 모두 있었다.

대구의 기온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7월 13일 39.6℃, 7월 28일 39.7℃, 7월 31일 39.5℃, 8월 1일 40.0˚C를 기록했다.[94] 이 때의 40도는 76년간 대한민국 공식 최고 기온 기록을 갖고있다가 2018년 폭염에 기록이 깨졌다. 제주도는 7월 25일 37.5˚C를 기록해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고기온을 달성했고 같은 날 강릉시는 39.4˚C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이렇다 할 만한 폭염 기록이 많이 없다는 것이 다음 해 폭염과 반대되는 애매한 부분이다. 대구 7월 평균기온이 29.3도인데 서울은 25.9도로 높기는 했으나 아주 덥지는 않았고 8월에는 선선했다.

전해에 이어 폭염 크리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더웠던 4년 전과 대구에서 특히 폭염이 심했던 전년도와는 다르게 이번 해에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장기간 폭염이 계속되었다. 거기에다가 가뭄까지 아주 심했다. 서울 7월 강수량 125mm, 8월 강수량 36.8mm이다. 그나마 남부지방에는 7월에는 비가 다소 오긴 했다. 1994년 폭염 이전에 1939년 폭염과 함께 한국에서 기록된 가장 고통스러운 폭염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일제강점기 말기였던데다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까지 폐간된 상황이라 언론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어 기억에서 많이 잊혀진 듯(...). 여기서 당시의 기온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은 입추 이후에도 오히려 15여 일간 기온이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이며 처서(8월 24일)날에 38.2˚C, 나흘 뒤인 28일에도 37.9˚C[95]를 기록했다. 9월 1일에 33.4°C를 기록하고 이후 30도 밑으로 갔으나, 이후에도 고온이 쉽게 물러가지 않아서 백로에도 폭염이 이어지더니 9월 15일에 32.3℃를 기록하고 말았고, 결국 추분이 찾아오는 9월 하순에서야 겨우 폭염이 꺾였다. 인천도 8월 21일 37.7˚C, 그 다음날에도 37.5˚C의 온도가 기록되었다. 1943년 7월 서울 월평균기온은 26.1°C, 8월 서울 월평균기온은 27.8°C로 역대 3위이고 2015년까지는 1위었다.[96]

1943년처럼 이례적으로 8월 말이 더운 편이었다.

  • 1945년 여름, 일제강점기 조선~미군정/소련군정: 서울 기준 5월은 13.6˚C로 5월 월평균 역대 최하위였고 6월~8월 초반까지도 그다지 폭염이라고 부를만한 날씨가 없었지만, 중순 초부터 슬그머니 더위가 심화되더니 광복절인 8월 15일부터 더위가 강력한 폭염으로 변모하였다. 광복절 기념으로 폭염으로 변신 서울은 23일에 37.0˚C를 기록하였고, 20일에 인천에서 35.5˚C, 21일에 대구에서 37.4˚C를 기록하였다. 이 세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은 심각한 폭염이 찾아오지 않거나 기상 미관측으로 공식적인 날씨를 확인할 길이 없다. 이 폭염은 보름 뒤인 8월 30일에 누그러졌다.[97] 이때 당시의 체감 온도도 인상적이었는지[98], 거의 반세기 뒤1994년 여름 때도 어느 어르신이 "우리나라가 해방될 적에도 이렇게 더웠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 1948년 여름, 미군정/소련군정~대한민국: 서울 기준 7월과 8월 초에는 그럭저럭 시원하거나 평년 수준의 여름의 날씨를 보였으나, 8월 중반기에 들어 더위가 물러가기는 커녕 조금씩 강해져가는 현상이 펼쳐졌다. 특히 8월 하순에는 하루 빼고 아예 32~34˚C로 도배되었을 정도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 8월 마지막날에 34.4˚C로 한해 최고의 극값을 기록하고, 9월 첫날에 33.6˚C[99]를 기록한 뒤에야 강력한 폭염이 꺾였다. 하지만 그 뒤로도 늦더위가 은근히 기승을 부렸다. 얄궃게도 이 당시 여름은 7월 7일에 상륙한 태풍 펄(Pearl)[100] 빼고는 8월 하순까지도 태풍이 1개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8월 하순 내내 날씨가 폭염으로 점철된 이유도 이것 때문인 듯.

  • 1949년 여름, 대한민국: 서울의 기온이 광복절에 37.7˚C를 기록했고[101] 대구광역시도 14일 37.8˚C까지 올랐다. 여기서 주목해볼 점은 바로 인천인데 보통 인천광역시는 서울보다 겨울에 비교적 덜 춥고 여름에도 비교적 덜 더운 편이지만 이 해에는 서울보다 인천이 더 더웠다. 8월 16일에 무려 38.9˚C까지 올라가서 7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인천의 역대 최고기온이다.[102] 이 폭염 현상은 당시 9호 태풍 '주디스'(Judith)가 대한 해협을 스쳐 지나가면서 열기를 밀어내며 발생한 것으로[103], 서울과 인천이 폭염에 시달릴 당시 대한 해협과 가까운 부산에는 237mm라는 폭우가 내렸고, 오랜 시간 주디스가 대한 해협에 정체되어 폭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6~7월은 크게 덥지 않았으며[104], 태풍 이후로 부수적으로 찾아오는 늦더위도 9월 중순에 잠시 최고기온이 30~31˚C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없었다. 참고로 울산은 이 탓에 이상 저온을 보였다.[105] 여담으로 이 해 이후 1958년 6월, 1994년, 2018년 같은 튀는 기록들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37도 이상의 극값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해이기도 하다.[106][107]


1.7.6. 1950년대[편집]


1950년대 초반 6.25 전쟁 시기까지는 일제 시대 후반~미군정 시절과 같이 폭염이 심했다.

  • 1950년 여름, 대한민국: 이미 5월부터 조짐이 보여서 5월 평균기온부터 17.5°C로 상당히 높았으며 5월 29~30일에 서울의 기온이 33.7°C, 34.4°C[108]까지 오르며 이상 고온이 숨쉬듯이 당연한 2000년대~2023년 5월에도 깨지지 않은 5월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여름에는 상당히 더웠다. 한창 전쟁중인 8월 중순 초에 태풍[109]이 지나간 뒤로도 처서를 얼마 남기지 않은 8월 19일에 36.9°C 를 기록하는등 늦게까지 더위의 기세가 무서웠다. 결국 서일본에 상륙한 또다른 태풍[110]의 영향을 받고서야 폭염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8월 30일과 31일에 다시 32도를 넘어갔는데, 9월 1일부터 서울 공식 관측 기록이 끊겨서 8월 31일 이후의 기록을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111][112] 서울 평균기온도 26.5°C로 그 2001년, 2007년, 2010년, 2020년 8월과 평균기온이 같다. 26.5도가 얼마나 높나면 그 대구광역시의 1981~2010 기온(26.4°C)보다도 조금 높다.[113][114]

  • 1951년 여름, 대한민국: 대구 기준으로 이미 5월 초부터 나흘간 30도를 넘어감으로써 전조를 드러냈으며, 6월 하순부터 폭염이 심화되어 29일 35.6°C, 30일에는 36.9°C를 기록하였다. 이때 서울.경기 일대에도 한순간에 폭염이 들이닥쳤는지, 당시 미군이 비공식으로 관측했던 기록에 의하면 서울[115]은 6월 30일 최고기온 34.6°C, 7월 1일 36.3°C[116], 7월 2일 35.2°C[117]를 기록했다. 최저기온 역시 7월 2일에 24.6°C라는 기록을 세웠다. 수원 역시 6월 30일 35.7°C[118], 7월 1일 36.3°C, 7월 2일 33.5°C를 기록했다.[119] 평택도 기록이 남아 있어서, 6월 30일 36.3°C?!, 7월 1일 37.4°C, 7월 2일 33.5°C를 기록했다. 대구와 거리가 먼 서울.경기도 이랬다면 중간 지역인 충청도도 상상 이상으로 더웠을 것으로 추정. 그 뒤, 장마철이 끝나고 7월 하순부터 다시 폭염이 시작되어 8월 말까지 그대로 이어져 8월 17일에 38.2°C를 기록했다. 그 탓에 대구의 8월 평균기온이 27.7°C[120]로 기록되었다. 대구 기준 8월 한정으로 1951년만큼 평균기온이 높은 해가 없었으므로 당시에는 1위로 랭크되었다. 그 외 광주[121]와 포항 27.5°C, 목포와 제주 27.1°C, 부산 26.8°C, 울산 27.2°C 등, 전주 27.4°C 등, 유력한 남부 지역들 전부가 폭염이 관측되었다. 안타깝게도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지역에선 한국 전쟁의 여파로 기상관측이 시행되지 않았지만, 서울경기는 비공식으로나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1951년 8월의 서울22일[122]까지도 상당히 더웠으며, 열대야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월평균기온이 27.1°C로 계산되었다. 그래도 이 사이트에서는 서울의 7월 평균 25.2°C, 8월 평균 26.8°C라고 하는데, 이 사이트는 이상하게 1982년까지는 평균기온이 0.1~0.4도씩 오차가 있으므로 평균기온이 27도를 넘었을 가능성도 있다. 7월은 조금 높은 수준이나 8월은 상당히 더웠을 것으로 추측된다.[123][124] 남아있는 기록으로 볼때 이 여름은 한여름철인 7~8월에 매우 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만 해도 7월에 장마가 왔을 때는 습기 때문에 최저기온이 도저히 하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8월에 폭염이 찾아왔을 때는 비록 최고기온에선 극단적인 극값은 없었으나, 최저기온이 계속 25~26도를 기록했다가 22일에 27.4도를 기록했었다. 게다가 다른 지역의 기록을 볼때 이 습한 장마와 더위는 남한 전지역 공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952년 여름, 대한민국: 전 해에 이어 이 해에도 폭염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대구 기준 7월 하순부터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어 8월 12일에 38.2°C가 기록되었으나, 이번엔 8월 초순에 최저기온이 18°C까지 낮아지는 등 전년만큼 폭염이 살짝 힘을 쓰지 못 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그 탓에 8월 평균기온 25.7°C로 전년 8월보다 2°C 낮게 기록되었으며, 다른 지역도 1951년 8월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였다. 당시 기상관측이 시행되던 지역 중 제주시가 26.1°C로 1위를 했을 정도이다. 이번엔 강릉과 인천에서 다시 기상관측을 시작하였는데, 중부지방에선 폭염이 비교적 약하게 기승을 부려 강릉[125] 24.3°C, 인천[126] 23.9°C 등으로 낮게 기록되었다. 이 사이트에 의하면 서울의 7월 평균기온 25.7°C, 8월 평균기온은 25.2°C라고 한다. 그러나 51년 폭염에 게재된 미국 사이트에 의한 실제에 가까운 평균으로는 7월이 26.1˚C, 8월이 25.4˚C이다.[127]

  • 1953년 여름, 대한민국: 1949년~1952년 여름에 이어 폭염이 찾아왔다. 이번엔 대구 기준 7월 초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고, 휴전 기념으로 잠시 내려갔다가 올라가 28일에 36.1°C를 기록한 뒤 다시 내려갔다. 8월 8일부터 다시 폭염이 시작되어 보름 가까이 폭염이 기승을 부렸으며, 22일과 23일에 36.9°C를 기록하였다. 8월 평균기온 26.2°C이며, 7월은 25.7°C로 52년 8월과 같은 평균기온을 기록하였다. 이번에도 제주가 27.2°C를 기록해 관측지역 중 1위를 기록했으며, 1952년 10월부터 재관측이 시작된 추풍령이 8월 19일에 35.5°C를 기록하긴 했지만, 평균기온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이 사이트에 의하면 서울의 7월 평균기온 25.8°C, 8월 평균기온은 26.2°C라고 한다. 이것이 맞다면 대략 대구와 비슷한 수치인데, 상술된 미국 사이트에서는 7월이 25.4˚C, 8월이 25.9˚C라고 한다. 그리고 1939년[128]부터 이어진 20세기 초중반 폭염의 절정기의 마지막 시기였다.

  • 1955년 여름, 대한민국: 6월 13일, 16일, 22일에 33℃까지 오르며 이른 폭염을 알렸으나, 그 뒤 7월 15일부터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에 들어서 애매하게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러다 8월 초순 말부터 다시 33℃가 기록되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약해졌다가 강해지길 몇번이나 반복한 끝에 27일에 35.0℃까지 오르며 1945년 8월 이후 10년 만에 8월 하순에 35℃를 다시 기록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129] 다음날에 기온이 낮아져 실질적인 폭염은 27일에서 끝났으며, 9월 6일과 7일에 31~32℃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55년 여름이 끝났다.

  • 1956년 여름, 대한민국: 1년이 저온으로 점철된 1956년이었지만, 7말8초의 더위와 9월 초의 늦더위는 여름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북태고 영향권에 들었고, 29일부터 33~34℃가 넘는 폭염이 시작되었으며, 8월 2일 최고 35.0℃, 최저 26.4℃, 일평균 30.3℃[130]로 추산되었다. 그뒤 8월 16일까지 여름 날씨가 지속되었고 그 이후 찬공기 남하로 18일 최저 15.5℃까지 떨어지고 최고도 30℃ 이하로 떨어진 날씨가 한동한 이어졌다. 이후 9월 초에 뒤늦은 더위가 찾아와서 2~3일에 30℃를 넘겼고, 특히 5일 최저 23.9℃에 일평균 27.0℃(!)를 기록. 이후에도 늦더위가 이어지고 급기야 23일에 다시 최고 29.6℃에 일평균 22.5℃에 이르는 늦더위가 찾아왔으나 직후 더위가 쓸려나가고 완연한 가을 날씨가 찾아왔다. 그러나 9월 역시 저온인 날이 더 많아서 월평균은 낮은 편이었으며, 결국 10월부터는 다시 저온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 1958년 여름, 대한민국: 7~8월에는 큰 폭염은 없었으나 6월에 비정상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서울은 6월 24일 37.2℃를 기록하여 현재까지도 6월 역대 최고기온으로 남아있다.[131] 그로 인해 평균기온도 22.3°C로 1981~2010년보다도 높게 관측되었다. 폭염의 고장인 대구광역시는 한숱 더 떠서 같은 날 38℃까지 올라가며 전국 6월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만다. 광주광역시에서도 36.7℃의 기온이 관측되어 6월 최고기온 역대 1위이다. 4월까지는 이상 저온 수준으로 강한 꽃샘추위가 있었으나 5월부터 갑자기 기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이와 같은 유래없는 6월 폭염이 기록되었다. 정작 7~8월에는 이상 저온으로 서울 최고기온 극값이 33~34℃ 선에서 그쳤다.

  • 1959년 여름, 대한민국: 저번 해와 다르게 6~7월은 정말 더위가 잠잠했으며, 7월 28일에 33.6°C를 기록해 비로소 더위가 시작되었다. 8월 초에 본격적인 더위가 집중되었는데, 8월 3일 최고기온 36.2°C1950년 8월 19일36.9°C 이후로 9년 만에 36°C를 넘어섰다. 4일~7일에 34~35°C를 기록한 뒤 10일에 더위가 다시 잠잠해졌으며, 18~19일과 30일에 다시 33°C를 넘어서기도 했다. 9월 14일에 잠깐 늦더위가 찾아와 30.2°C를 기록한 것을 끝으로 더위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평범했던 여름을 등재할만한 사유가 뭔지 의아할 법 한데, 그 이유는 이 해 8월 3일에 36.2°C를 기록한 이후로 한여름 기간에 다시 36°C를 넘은 시기가 1978년 7월 28일, 즉 19년이나 지나서야 다시 기록되었기 때문.[132][133] 한편 당시 경상남도 부산시에선 다시 더위가 시작되던 7월 17일에 갑작스런 소나기로 인해 압사 사고가 발생하였다.


1.7.7. 1960년대[편집]


상상 외로 폭염이 아주 강했던 일제 시절이나 해방, 전란 직후를 뒤로 하고, 폭염의 기세가 심하지 않은 1950년대 중반~1980년대 중후반(1987년) 중 한 연대이다. 35~36℃를 기록했던 해도 있었으나, 그 정도는 며칠 단위로 기록하던 이전 시대와 비교해선 확실히 기세가 약해졌다.

  • 1961년 여름, 대한민국: 7말 8초에 폭염이 찾아왔다. 8월 1일에 35.3℃를 기록했다. 8월 18~19일에도 잠시동안 폭염이 다시 찾아왔다. 바로 밑에 추가된 일본 쪽의 늦더위로 인한 영향으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9월 말에 29.4℃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여파인지는 몰라도 서울 9월 평균기온이 21.5°C를 기록해 당시에는 1위였다.

  • 1961년 여름, 일본: 이쪽은 사실상 10월까지가 여름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한여름 더위는 물론이고 늦더위까지 지긋지긋하게 설쳐댔다. 도쿄만 해도 7월도 8월도 아닌 9월 16일에 최저기온이 27.0℃(?!)[134] 를 기록, 26일에 최고 33.5℃를 기록했고, 교토는 한술 더 떠서 10월32℃, 중순에도 29.6℃를 두번을 기록하였다... 서일본이랑은 거리가 먼 미야기에서도 다른해 9월보다 유난히 높은 평균기온이 기록된 것으로 볼때, 강도가 차이가 있을뿐 일본 전역에 때늦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일본 쪽은 9월 평균기온이 어지간한 한국의 여름철 평균기온을 뺨칠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서울도 9월 평균기온이 21.5°C를 기록해 당시 치고 신기록을 세웠다.

  • 1962년 여름, 대한민국: 6월은 그럭저럭 흘러갔으나, 7월이 시작되자마자 33°C에 가까워졌고, 2일에는 35.0°C[135]로 폭염 경보 수준으로 더웠으며, 5~6일에도 34.5°C, 34.1°C를 기록했다. 14일과 16일에도 33.2°C, 34.0°C를 기록, 그 뒤 7월 말부터 재차 폭염이 찾아와 24일 34.2°C, 25일에는 35.0°C, 최저기온은 25.8°C를 기록해 열대야가 관측되었고 연중 가장 더운 날이었으며, 이 뒤로 8월 전까지 열대야가 3일 더 관측되었다. 26일 34.7°C를 기록한 뒤 비로 인해 기온이 낮아졌다. 7월 평균기온은 26.1°C로 추산되었다. 8월은 7월보다 극값이 낮아 12일의 33.1°C가 전부였으며, 최저기온도 7월 말의 여파가 남은 8월 1일의 24.9°C가 제일 높아서 열대야가 관측되지 않았다. 8월 21일 32.1°C을 끝으로 폭염이 쓸려나감으로써 뜨거운 여름은 그대로 끝났다. 8월 평균은 25.1°C로 추산되어 7월보다 1도 가량 낮았다. 7월, 8월 평균기온으로는 2014년 7월, 8월과 거의 일치한다.

  • 1964년 여름, 대한민국: 서울 기준으로 4~5월부터 고온이었고 6월 말에 33°C 전후를 3일 연속으로 기록했다. 이후 7월은 장마로 인해 중순까지 기온이 오르지 못하다가 하순부터 오르기 시작해 27~28일에 33°C를 넘어 폭염이 다시 나타났다. 여느 때처럼 8월 초에 가장 더워 1~2일에는 34.5°C까지 올랐고 2~6일에 5일 연속 열대야가 나타나서 일평균이 30°C에 근접했다. 그 이후 17~19일에 34.4°C까지 다시 올랐고 열대야도 나타났다가 처서를 기점으로 더위가 물러났다. 8월 평균기온은 26.3°C로 약 1°C 높았다.

  • 1965년 여름, 대한민국: 이 해 7월 4일~8월은 1987년, 1993년, 2003년 수준으로 이상 저온이 강했고 서울에서 7월말~8월에 폭염일수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6월 말~7월 초에 다소 강한 폭염이 나타났다. 서울에서 6월 24일 33.4°C, 25일 34.6°C, 27일 33.6°C로 폭염이 나타났다. 7월 2~3일에는 각각 35.2°C, 34.6°C까지 올랐다.[136] 이 여파로 6월 평균기온이 22.1°C로 현대 1981~2010 수준이며 당시치고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최저기온은 낮아서 결국 이 해 서울에서는 열대야가 단 한번도 없었다.[137] 여담으로 이해 9월 24일에 30도까지 오르는 늦더위가 관측되었다.

  • 1967년 여름, 대한민국: 이미 5월부터 이상 고온이 기승을 부리더니[138], 7월 25~26일 이틀간 서울 기온이 35도를 기록했고 26일에는 노량진 전차 레일이 녹아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구의 기온이 8월 9일 38.2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8월 서울 극값이 고작 21.5도로 그 늦더위가 심한 2020년 8월과 같았으며 대구 평균기온도 28.6도를 기록했다.


1.7.8. 1970년대[편집]


  • 1972년 7월, 대한민국: 이 해의 여름은 짧고 굵은 폭염의 전형이었다. 7월 2일 최고 32.8℃ 기록, 15일에도 32.2℃까지 올라갔으며, 18~23일에 절정을 맞이하였다. 18일 33.3℃를 시작으로 20일에 최고 35.6℃, 최저 25.9℃, 일평균 31.1℃[139]를 기록해 연중 가장 더운 날이었으며, 23일까지 34~35℃의 더위가 계속 이어졌고 22일에는 최저 26.2℃로 가장 높은 최저기온을 기록. 26일에 최저 25.1℃, 28일에 33.8℃를 기록하고 30일까지 32℃를 기록했으나, 이것이 마지막으로 뜨거운 여름이었다.[140] 8월로 넘어가자 16일 최저 24.8℃, 17일 최고 32.1℃ 빼곤 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계속되는 비와 그로 인한 찬공기 남하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폭염보다 폭우의 파워가 강했던 1972년 8월의 날씨는, 반세기 뒤인 2022년 8월에도 양상이 조금 바뀐 채로 비슷하게 진행되었다.[141] 이는 심지어 9월까지 계속 이어져 8~9월 모두 저온을 보였다.

  • 1973년 여름, 대한민국: 최단기 장마로 6월 말에만 장마가 있었고 7월부터 장마가 끝나자 30도 이상의 더위가 지속되었다. 서울 기준 반세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중순부터 지속적으로 최저기온이 24~25°C 이상이 나타났고 7월 17~18일에 34.5°C를 기록했고 그 이후로도 32~33°C를 기록해서 7월 평균기온은 26.8°C였다. 8월에도 31~32°C를 유지하다가 광복절을 전후로 34~35°C의 폭염이 나타났고 16일에는 25.3°C/35.2°C/29.9°C로 광복절을 지나서도 일평균기온이 30°C에 근접했다. 이후 폭염은 끝이 났지만 말일까지 최저기온이 21.2°C 밑으로 가지 않아 8월도 25.9°C로 조금 높았다.

  • 1975년 8월, 대한민국: 폭염 지속으로 서울 평균기온 27.0도로 32년만에 서울에서 27도 이상을 기록했다. 8월 18일에 35도를 넘었다. 처서가 지나서도 폭염이 지속되었다. 결국 9월에도 22.1도로 역대 평균 기온 1위 달성. 서울도 22.6도로 2019년 9월과 같았다. 게다가 이 흐름이 10~11월까지 계속 이어져 전국 기준으로 1975년 가을의 평균기온이 역대 가장 높았다. 사실 1975년 자체의 고온이 심했다. 이해 4월은 전조였는지는 몰라도 13°C대였다.

  • 1977년 여름, 대한민국: 대구의 기온이 7월 31일 39.5℃를 기록했다. 이는 1994년 대구의 최고기온[142]보다도 높다. 서울도 7월 29일에 35.0℃를 기록했다.

  • 1977년 여름, 그리스: 아테네에서 2015년 이전까지 유럽 최고 고온이었던 48도를 기록.

  • 1978년 여름, 대한민국: 전년도에 이어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왔다. 이 해에는 5월부터 30℃에 가까운 이른 더위가 연속으로 찾아왔고, 이후 7월 21일부터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22일부터 1주일 동안 33~36℃까지 올라갔고, 그중 7월 28일에는 36.1℃까지 올라 1959년 이후로 19년 만에 36℃를 기록하였다. 최저기온도 27일에 27.1℃를 찍었고, 일평균도 29일에 31.6℃까지 치솟는 등 꽤나 더위가 강력했던 흔적이 드러나 있다. 7월 평균은 26.4℃로 추산되었다. 8월은 1일과 5일에 34℃를 넘은 것에 그칠 정도로 7월 말에 비해 조금 약화된 채로 폭염이 지속되었으며, 주로 초순과 하순에 더운 날씨가 몰려있는 양상을 띄었다. 8월 평균은 25.8℃로 추산. 9월에도 6일의 30.6℃를 제외하곤 눈에 띄는 늦더위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심각한 저온 현상도 없어 9월 평균 20.9℃로 추산되었고, 10월에 들자마자 갑자기 29.2℃라는 늦더위가 찾아왔다. 결국 기상학적인 가을이 10월 5일에 시작되어서 1998년, 2006년, 2013년, 2016년, 2019년, 2021년, 2022년처럼 10월 초까지 여름이었으며, 10월 평균기온도 전년도인 1977년만큼은 아니나 꽤 높았다.

  • 1979년 5월 29일, 대한민국: 한반도 동쪽 지역 위주로 이 날에만 날씨가 크게 더웠으며, 부산 34.0℃, 강릉 34.9℃ 등 일부 지역에서 34~35℃까지 올라갔다.


1.7.9. 1980년대[편집]


  • 1983년 여름, 미국, 유럽, 대한민국: 미국 중서부, 동부, 남부에 화씨 100도(섭씨 약 37.8도) 이상의 폭염이 지속되고 가뭄까지 겹쳐 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세계적인 농업지역인 이들 지역의 농산물 작황이 부진하여 국제 곡물가격도 급등했다. 유럽에서도 20세기 최악으로 꼽히는 폭염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한국도 이해에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 폭염이 찾아왔다. 특히 8월 3일 포항의 최고기온 37.8도, 최저기온도 28.2도, 평균기온 32.3도로 숫자로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이 찾아왔다.[143]

  • 1984년 여름, 대한민국: 7월 31일에 서울의 최고기온 34.7°C 기록. 이후 잠잠해지나 싶더니 8월 10일과 18~19일도 35°C까지 올랐다.

  • 1987년 여름, 그리스: 최고 기온 46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한달 넘게 지속되어 1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144]

  • 1987년 여름, 강원도 동해안: 1987년 여름은 별다른 더위없이 이상 저온이 있었던 해로 기억된다. 다만 6월초 한정 강릉에 엄청난 폭염이 있었는데 무려 6월 5일 무려 36.9°C 라는 한여름에나 볼법한 수치를 나타냈다.[145] 이 기록은 당시 기준 기상관측이래 6월 초순 전국 최고기록으로, 2020년 6월 9일에 대구37.0°C 의 기록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33년간 자리를 지켰다.

  • 1988년 여름,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이 벌어졌던 해였다. 6월 26일에 32.8℃까지 올라 폭염일수에 근접했으며, 7월은 장마철로 극값이 31.6℃에 그쳤다. 그러나 8월 첫날이 되자마자 최고기온 34.2℃를 기록하여 본격적인 폭염을 알렸으며, 연일 33℃의 날씨가 이어졌고, 7일에는 36.0℃까지 올랐다. 8일 최저기온이 26.3℃에 달하여 연중 첫 열대야를 기록하였고, 연중 가장 더운 밤이었으며, 10일에 다시 한번 최고기온이 36.6℃까지 올라 연중 가장 더운 날씨를 보였다. 14일에 34.7℃를 기록한 이후, 8월 중순 이후 날씨가 으레 그렇듯이 슬그머니 기온이 내려갔고, 20일 이후에는 30℃에도 미치지 못 하는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27일과 29일에는 23℃까지 가라앉았다. 그러나 9월로 넘어가자 다시 슬그머니 더위가 찾아왔고, 6일~8일 사흘에 걸쳐 30℃가 넘어갔다. 11일에 기온이 내려갔지만 곧 기온이 올라갔으며, 서울 올림픽 개막일에 28.4℃를 기록하고, 다음 날에도 28.8℃로 29도에 근접하였다. 24일의 27.8℃를 마지막으로 늦더위가 사라졌으며, 폐막일인 10월 2일에는 24.6℃로 기온이 그나마 안정되어 있었다. 7, 8, 9월 평균기온은 각각 24.4℃[146], 26.4℃[147], 21.4℃[148]로 2020년과 비슷했다. 당초에 서울의 여름철 더위를 피하여 기온이 안정화되는 시기인 9월 중순에 개막일을 잡았는데, 실제로도 그 예상이 적중하여 8월 전반기(1일~16일) 내내 33℃가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졌다. 33년 뒤[149]에 벌어진 도쿄 올림픽 기간이 무더위의 절정과 완벽하게 겹치는 7월 하순~8월 초순으로 잡히자 도쿄의 한여름 무더위[150]를 강하게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서울 올림픽과 1964 도쿄 올림픽의 개최일[151]이 소소하게 재평가되었다.


1.7.10. 1990년대[편집]


  • 1990년 여름, 대한민국: 5~6월은 저온이었고 7월도 평범했으나 8월에는 다소 더위가 있었다. 8월 7일에 35.5도를 기록했고 폭염이 7말 8초에 연속으로 일어났다. 부산은 8월 평균기온이 역대 1위인 28.3 °C를 기록하였으나, 이례적으로 심한 더위기록은 8월 마지막 이틀을 빼면 거의 없었으며 대신 최저기온이 매우 높아[152] 평균기온도 덩달아 올라간 사례이다. 흐름을 보면 2020년 8월처럼 습기가 가득한 스타일이었던 듯.

  • 1992년 여름, 대한민국 남부: 대구광역시에서 7월 8일과 29일에 37.8℃︎를 기록했으며, 7월 하순 평균기온이 무려 30.5℃︎였다. 34~37℃︎의 폭염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대전 이남부터는 32~34℃︎ 이상으로 폭염이 길게 지속되었고 강릉도 7월 29일에 37.4℃︎로 7월 역대 5위를 기록할 만큼 심했으나 폭염이 7월에 집중되어 있고 서울은 이와 대조되게 폭염이 전혀 없었던 여름이라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름이 되었다. 즉 남부지방 중심으로 더운 여름이었다.

  • 1993년 여름, 미국: 남동부에서 7월 평균 최고치를 기록. 그러나 이때 중서부에서는 홍수, 북서부는 이상 저온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역시 이 해에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하여[153] 서늘한 여름을 보냈다.

  • 1994년 여름, 대한민국·일본·중국 중동부[154][155]: 우리나라에서 경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아주는 인생 최강의 폭염을 맛본 여름. 기상학자들이 2017년까지도 첫순에 놓았던 전설의 가뭄.[156] 한국에서 1932년, 1939년, 1942년, 1943년 등의 아주 오래전 최강 폭염이 잊혀질만 할때쯤 가공할 폭염을 20세기에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157] 하지만 이 해에 세워진 기록을 대부분 씹어먹는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폭염이 2018년에 발생했다.[158] 아직까지 이견이 있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1994년을 기준으로 동아시아의 몬순이 변했다고 볼 정도. 일사병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란 후라이가 가능했다. 상당수 지역에서는 이미 5월부터 최고 기온이 29도를 넘기는 등 이미 조짐이 보였다. 어쩡쩡한 장마로 인해 6월 말부터 시작된 폭염은 9월 초순까지 길게 이어졌으며 9월 중순~12월 말에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159] 이 때 대구광역시는 39.4도를 기록했다. 심지어 7월의 대구 월평균 기온은 관측이래 유일하게 30도가 넘는 30.2°C! 서울도 38.4°C로 역대 최고 기온 달성. 2018년 이전까지 최상위 기록이었다. 서울의 7월 평균기온은 28.5도로 역대 1위, 8월 평균기온도 27.6도로 역대 5위. 이보다 높은 8월은 2018년 28.8도, 2016년 28.0도, 1943년 27.8도, 2013년 27.7도로 모두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한 해이다. 이 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3,384명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는 '초과사망자'라는 개념을 오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전국 평균기온은 1994년과 2018년이 같다.[160] 게다가 3달 총합으로 하면 1994년이 0.033...도 높은데 반올림되니 같은 것이다. 즉 평균기온으로 따지면 아직도 1994년이 원탑인 셈이다. 그만큼 1994년 폭염이 길고 광범위했던 지독한 폭염이였다.
당시 전국 폭염일수는 무려 29.4일을 기록했고 서울에서는 열대야35일이나 발생했다. 몇몇 사람들은 작년에 올 더위가 올해 더위에 얹혀서 왔다고 할 정도다.[161] 덤으로 폭염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조차 공급에 차질을 빚었는데, 7월 초에 조기 종료된 장마 탓에 전국 대부분 지방의 강수량이 평년보다 훨씬 적어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전북 남원은 7월 한달 간 강수량이 단 1mm에 그쳤으며 거창, 정읍에서도 10mm 미만의 강수량을 보였다(...).지중해성기후? 폭염은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아 가뭄 피해가 심각하여, 오죽하면 태풍이 오기를 기대할 정도였으며[162] MBC에서는 타는 들녘에 사랑의 물줄기(...)라는 특별 생방송을 편성하여 각 지역 가뭄이 극심한 지역에 양수기를 배달시키는 방송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8월 초에 남부 지방에 영향을 준 태풍 브렌던은 바람은 강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비를 뿌려줘 효자태풍이라는 칭송(?)를 들었다. 일본에서도 지역에 따라 40도를 넘어가는 역대 최고 수준의 폭염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가뭄 크리까지 겹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중국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역사적인 폭염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안후이 성의 과거 여름 자료에서도 강수량은 적고 기온은 최고수준이었던 1994년의 위엄을 알수 있다.#
공교롭게 김일성 사망과도 때가 겹쳤기 때문에 항간엔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며,[163] 당시 군인들은 혹독한 폭염에 겹친 초긴장 정국 덕분에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이 해의 압도적인 폭염 때문에 하나의 기준점이 됨으로써 이후의 폭염은 항상 1994년과 비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6년 폭염에서 최고 기온은 갱신되었지만 폭염, 열대야, 가뭄이 지속된 일수는 아직도 1994년이 더 앞서고 그로인한 농작물 및 인명피해도 1994년의 기록이 아직도 더 앞선다. 또한 1994년은 1998년, 2015년, 2019년처럼 끈질기게 이상 고온을 보여 3월을 제외하고 모두 더웠다. 9~12월 고온도 다소 강했으나 그래도 늦더위는 없었다.[164] 그리고 2018년 폭염이 모든 것을 갈아치웠다. 그리 혹서기의 체감온도는 2010년대 이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중국발 미세먼지까지...

  • 1995년 여름, 미국 시카고: 시카고에서 7월 11일부터 1주일 간 닥친 폭염으로 700명 이상이 사망하여 살인 폭염으로 불릴 정도였다. 고온에 높은 습도까지 동반되어 매우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가장 기온이 높을 때 41℃까지 올랐으나, 폭염의 기세는 길지 않아 1주일만에 평년 기온으로 내려갔다. 짧은 기간 동안 폭염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사망자 중에는 냉방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 사는 저소득층 노인이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폭염을 단순 이상기온이 아닌 자연재해로 규정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 최악의 경우인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특히나 폭염에 취약한 노약자들의 피서와 열사병 방지를 위해 냉방시설을 점검하고 사회안전망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담은 폭염사회라는 책도 국내에 번역본이 나와있다.

  • 1995년 여름, 대한민국, 일본: 1995년 여름은 전년도와 달리 2010년 여름만큼은 아니지만 남쪽으로 갈 수록 더운 여름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년도의 압도적인 기록과 중부지방의 평범한 여름으로 상대적으로 묻힌 여름이지만[165] 남부 지방에는 강한 폭염이 찾아와 대구광역시는 7월 29일에 36.6 °C를 기록했고 심지어 8월부터는 3~8일간 최고기온이 37 °C 이상을 연일 기록하였으며 9~10일에는 최고기온이 33 °C로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다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 14일에는 39.2 °C까지 올라갔다.[166] 이후 34~36 °C를 넘는 무더위가 8월 19일까지 이어지다가 20일부터 폭염이 물러갔다. 광주광역시에서도 8월 14일 35.9 °C를 기록했다. 게다가 일본은 1995년의 8월이 1994년의 8월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더웠다. 도쿄의 8월 평균기온이 29.4℃로 2010년에 이어 아직까지 역대 2위이고, 당시에는 관측 사상 처음으로 29℃를 넘어선 기록이었다. 그리고 1995년 7월의 경우에는 1994년 7월 보다 낮았다.

  • 1997년 여름, 대한민국: 6월부터 폭염 수준의 기온을 보여 6월 평균기온이 23.4°C였고, 6월 15일에는 35°C를 찍었다.[167] 7월 17일부터 기온이 오르더니 21일 이후에 폭염이 시작되었다. 7월 말에 36.1°C를 기록했다. 7월 서울 평균기온이 26.1도를 기록했다. 8월 초에는 7월보다는 약했지만 폭염이 있어서 34도까지 올랐다. 그리고 9월 초에는 강한 늦더위가 찾아왔다.[168] 그러나 이후 빨리 식어서 이상 저온으로 갔다.[169] 하지만 대구는 9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 1998년 여름, 대한민국: 본토에서는 여름에 잦은 폭우로 인해 폭염일수가 없는 곳도 있었지만, 제주도는 예외였다. 7월 초순부터 34.5도에 이르는 폭염이 찾아왔고, 7월 말에 다시 찾아온 폭염은 8월 중반까지 계속되어 8월 11일에 37.2도, 15일에는 37.4도[170]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밤에도 최저 27~29도대의 살인적인 열대야까지 겹쳤으니... 이 직후 기온이 낮아짐으로써 폭염은 끝이났지만, 평균기온이 7월 27.4도 8월 28.2도로 전후 년도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171] 또한 본토의 여름도 최저기온은 높았으며 1998년은 4년 전처럼 저온이 없고 고온이 심각한 해로 극단적인 고온이 존재했다. 4월에는 5월같은 날씨를 보여서 4월 평균이 15.6°C를 기록했다.[172] 5월에는 중순부터 아예 대놓고 여름 날씨를 보여[173] 5월 21일에 31.4°C로 전조 증상을 보이더니,[174] 그나마 하순까지 다소 높았던 5월에 비해 6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기온이 내려가서[175] 좀 나아지나 싶었으나, 7월 7일에 최저기온이 25.5˚C를 기록해 관측 사상 2번째 7월 초순 열대야가 관측되었고, 장마가 일시적으로 멈춘 7월 28~30일에 최고 30~32˚C가 관측되었으며, 8월 2일에도 32.0˚C가 관측되었지만, 이 뒤로 장마가 끝을 모르고 계속되어 흐지부지 넘어가는 듯 했다. 게다가 서울에서 폭염일수가 없으니 시원한 인천은 아예 없을 것으로 생각될텐데 인천은 7월 28일에 33도를 넘어 폭염일수가 기록되어 서울이 폭염일수 없는 해인데 인천이 폭염일수를 기록한 유일한 해이다. 그러나 9월로 넘어가자 늦장 폭염이 찾아와서 7~8일에 30˚C를 넘었고, 9~13일에는 31~32˚C를 넘어서기도 했으며[176], 18일 29.0˚C, 19일 30.6˚C, 20일 31.9˚C로 하순 직전까지 한여름에 못 다한 폭염을 이제와서 만회하려는 듯 계속 기승을 부렸다. 최저기온도 8일~14일에 21~23˚C에 이르렀고, 20일에 또 21.9˚C를 기록. 그러나 하순 초에 비로 인해 열기가 쓸려가서 그제서야 늦장 폭염이 끝이 났다. 27일에 27.3˚C로 다시 슬슬 기미를 보였으나 또다시 비로 인해 그마저도 쓸려나갔다. 그러나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서 16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177] 9월 평균은 23.0˚C로 10월과 함께 당시 월평균 1위를 갱신하게 된다. 또한 1998년 자체가 더운 해인게 봄까지는 슈퍼 엘니뇨로 고온이 심했고 5~6월에 중립으로 가더니 여름에 라니냐가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폭우가 잘 내리지만 라니냐로 인해 가을 늦더위도 심하고 연말까지 고온이 이어졌다.

  • 1998년 여름 인도: 평소 더운 지역임에도 불구, 고온으로 인해 약 2500명 정도가 사망. 우리나라는 같은 년도에 손에 꼽히는 고온현상 기록을 보여주었으나, 정작 여름에는 잦은 폭우로 인해 폭염이 약한 편이었다.

  • 1999년 여름, 대한민국: 6월 말에 더위가 있어서 33도를 넘었고 평균기온도 23.1도를 기록했다. 7월에 반짝더위가 있었고 8월에 입추~처서기간에 더위가 있었다. 8월 17일에 서울의 최고기온이 35.4도를 기록했다. 대략 전 해인 1998년 6~8월의 평균을 1도 정도 올린게 1999년 여름이다. 심지어 9월도 22.0°C로 1975년과 같이 22도를 넘었고 역대 2위이다. 그러나 제주시는 폭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다.

1.8. 2000년대[편집]


  • 2000년 여름, 대한민국: 5월 하순부터 전국이 29~32°C를 기록했고 경상도는 33~37°C를 기록했으며 이후 6월부터 8월까지 폭염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35°C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고 전국적으로도 잦은 폭염이 나타났다. 서울 기준 평균기온은 6월 23.7°C, 7월 26.8°C, 8월 26.2°C이다. 그러나 1999년과 다르게 9월이 되자마자 급격히 하강하여 서울 20.7°C, 전국 19.5°C 기록.

  • 2002년 여름, 대한민국: 7월 28일 서울 34.8°C, 인천 37.0°C, 백령도 33.5°C로 폭염일수가 기록되었다. 그러나 8월이 되자 이상 저온 수준으로 기온이 내려갔다.

  • 2003년 여름, 서유럽: 44.1℃가 기록된 프랑스에서만 15,000명 사망, 주변국을 합쳐 70,000명이 사망했다. 포르투갈의 아마렐레자에서 48℃가 기록되었고, 스위스에서도 그로노란 곳에서 41.5℃가 기록되었다.[178]


  • 2004년 여름, 대한민국: 7월 말부터 32~35°C의 폭염이 찾아오더니 8월 둘째주에 중서부지방에 강한 폭염이 찾아왔다. 8월 10~12일에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강한 폭염이 찾아왔는데 이때 경기북부에는 37~40°C를 넘기도 했다. 서울도 10~12일에 35~36°C의 강한 폭염이 왔으며 특히 10일 36.2°C까지 올랐다. 이 폭염은 14일부터 비가 오면서 차츰 누그러졌다. 평균기온은 7월의 경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평년 수준이였지만 그 밖의 지방은 조금 높았고 8월은 전국적으로 평년 수준이나 수도권은 반대로 조금 높았다.[179]

  • 2005년 4월, 여름, 대한민국: 역대 최강의 폭염이 올 것이라는 오보와 달리 평범한 여름을 보였으나 4월 하순에 영덕에서 최고 극값인 34.0°C, 인천에서 32.7°C, 서울에서 29.8°C, 대관령에서 30.1°C를 기록해서 3월까지의 저온 현상을 뒤로 하고 4월에 때이른 더위가 찾아왔다. 게다가 평범한 편인 여름이라도 폭염은 있어 7월 하순부터 8월 상순까지 전국적으로 폭염이 찾아왔다.

  • 2005년 여름, 일본: 6월 중순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평범했으나, 하순에 들어 기온이 오르더니 급기야 6월 27일부터 도호쿠나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역이 강력한 폭염으로 되었다. 6월 28일 나고야의 최저기온이 27.1°C로 연중 가장 높은 최저기온을 기록했고, 같은 날 도쿄의 최고기온이 36.2°C로 연중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이보다 서쪽으로 더 가면 더욱 가관인데, 구마모토나가사키는 6월 27일부터 나흘간 최저기온이 26°C대를 유지했으며, 후쿠오카는 한술 더 떠서 나흘간 최저기온 27~28°C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에히메현 니이하마시29.4°C에 비하면 조금 낮은 것이라고 한다.

  • 2006년 여름, 미국, 프랑스: 로스엔젤레스 등 서부 지역에 닥친 이상 폭염으로 사망자가 225명이나 발생했고 산불이 알어나 주민이 대피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로스앤젤레스가 48℃까지 치솟았다. 옆 나라 캐나다에도 폭염의 영향이 번져 리튼이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마을에서 42.1℃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파리는 7월에 24.6°C를 기록했다.

  • 2006년 여름, 대한민국: 6월 초에 매우 크게 더워져 6월 2일에 서울 32.4°C 등으로 수도권 지역에 31~34°C의 폭염이 찾아왔다. 이후 10~11일에 비가 와서 이상 저온이 찾아왔지만 다시 올라서 약간 고온인 날씨가 이어졌다. 그러나 7월에는 강력한 집중호우로 기온이 낮아졌으나 백령도는 32.1°C까지 올랐고, 8월에는 대체로 더웠으며, 서울은 2000년대 8월 중 1위였고, 평균기온이 27.0°C를 기록하면서 12년만에 27°C 이상을 기록했다. 전국도 26.3°C를 기록했다. 물론 극단적인 기록은 없었지만 서울 기준 31~35°C로 꾸준히 더웠다.[180]

  • 2007년 여름, 일본: 사이타마 구마가야 시에서 일본 공식관측 사상 최고기온인 40.9°C를 기록했다. 도쿄,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에는 8월 한달 간 대부분의 날에 열대야 현상이 이어졌다.

  • 2008년 여름, 대한민국: 7월에서 남부지방에 폭염이 나타나서 남부지방 중심으로 높게 나왔으며 8월 초에는 짧지만 전국적으로 강한 더위가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8월 8일에 35.4°C를 기록했다.

  • 2009년 여름, 호주: 호주 역사상 최악의 폭염. 374명이 사망하였다. 빅토리아 주의 호프턴에서 48.8℃가 기록되었고, 멜버른에서도 46.4℃가 기록되었다. 폭염으로 인해 산불이 발생해 빅토리아 주는 비상상태를 선포했고, 서울특별시 면적의 7배 가량의 숲이 불타고 173명이 추가적으로 사망했다. 한국도 이 무렵 따뜻한 겨울을 맞이해서 서울에서 2월 평균기온이 2.9°C가 기록되었다.

  • 2009년 겨울, 아르헨티나: 남반구의 온대 지방인 아르헨티나에서 난데없이 겨울인 8월에 폭염이 닥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4.6℃가 기록되었고 산타페에선 무려 38.3℃가 기록되었다. 거의 봄을 앞둔 늦겨울인데다 한국의 겨울보다는

  • 2009년 여름, 대한민국: 7월은 이상 저온으로 전국적으로 폭염이 전무했으나 8월 중순에 더위가 왔다. 서울 기준으로 광복절을 전후로 폭염이 찾아왔으며 8월 9일에 33.6°C, 14일 33.4°C, 8월 16일에 34.4°C를 기록했다. 태백시는 이 해부터 2011년을 제외하고는 2020년까지 모두 폭염이 발생했다. 반면 대전광역시와 거제시, 해남군은 이 해가 2022년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폭염이 없었던 해였다.

1.9. 2010년대[편집]


2010년대에는 과거와 비교해서 폭염의 빈도가 높아졌다. 당장 동아시아 지역만 봐도 2010년 이후로는 잦은 집중호우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위가 약했던 2011년을 제외하고는[181][182] 한국, 중국, 일본 중 최소 두 나라 이상은 이 문서에 모두 폭염 기록이 작성되어 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2000년대는 1994년 등을 제외하면 폭염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지만 2010년대 들어 8월 평균기온이 막 27°C를 넘어가는 해들이 많아졌다.[183] 그리고 2020년대 초반과 다르게 8월 중심으로 더웠다. 사실 2010년부터 여름이 더워진것은 맞긴 하지만 그 전년도인 2009년 여름이 꽤나 선선한 탓에 더 부각되기도 했다.[184]

1931년~1960년 7월 평균 기온은 24.5°C, 8월 평균 기온은 25.4°C, 1981년~2010년 7월 평균 기온 24.9°C, 8월 평균 기온은 25.7°C로 큰 차이가 없는데 비해, 1991년~2020년 7월 평균 기온 25.3°C, 8월 평균 기온은 26.1°C로 10년 새 크게 상승했다. 특히 최근 10년으로 따지면 7월 25.8°C, 8월 26.8°C로 약 1°C나 상승했다.

1.9.1. 2010년[편집]


2010년 여름, 북반구 각지: 그 해 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여파라는 설이 있다.

세계 최한국인 러시아에서 폭염으로 5만 6천 명이 죽었다는게 아이러니할 정도지만[185], 이 해 여름 우타에서 45.4℃, 야슈쿨에서 44.0℃가 기록되었고, 모스크바에서도 무려 38.2℃에 도달하는가 하면 밤에도 더위가 식지 않는 열대야 현상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사하 공화국에서도 35.3℃라는 기온이 기록되었다. 거기다 고온+건조 크리로 화재까지 대량 빈발한 탓에, 이같은 더위에 내성이 없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1000년 사상 최악의 자연재앙이라 꼽는 이 더위로 연일 죽어나갔고 영안실이란 영안실은 죄다 만원을 이뤘다고 한다.[186] 21세기 자연재해 중 쓰촨성 대지진에 이어 사망자 랭킹 6위에 꼽히는 전율적인 폭염.

일본에서는 7월 하순과 8월에 폭염이 이어지면서[187] 수백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남겼다. 한국의 1939년, 1943년, 1994년, 2016년, 2018년처럼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로 항목이 개설될 정도로(#) 일본에서는 1994년이나 2018년[188]을 뛰어넘는 최악의 폭염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도쿄에서는 8월 한달 간 단 하루를 빼놓고 최고기온이 30℃를 넘고, 최저기온이 25℃를 넘는 열대야가 총 50일이 넘게 계속되었다. 폭염은 서늘한 홋카이도까지 강타하여, 홋카이도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37℃를 넘는 기온을 기록했다. 폭염은 9월까지 이어져, 교토나고야에서는 9월에도 38℃를 넘는 날이 나타났다. 최저기온도 교토시에서 29°C로 초열대야에 가까웠다. 강하게 발달한 북태평양 기단의 중심 세력이 일본 열도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폭염이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暑/더울 서)자가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 신장 하미이우에서는 중국 전역 최고 수준인 44℃를 기록했고 베이징에서는 베이징 지역 최고 수준인 43℃를 기록했다.

2010년 여름은 한국에서는 위도별 차이가 유독 큰 여름이었다. 남부지방은 매우 덥고 서울은 폭염, 경기북부는 열대야가 거의 없었고 평범한 여름이었던 것이 남부 지방과 대조되는 여름이다. 그 1995년과, 2013년 7월, 2020년 8월보다도 차이가 매우 심한 전형적인 위도형 폭염이다. 보통 여름은 위도별 차이가 작고 6월~7월 상순, 8월 초중순 은 오히려 중부가 더 덥기도 하는 등 중부와 남부 서로 비슷하지만 2010년 여름은 위도별 차이가 커서 남쪽으로 갈수록 더 더웠다. 2010년 7월 하순부터 남부지방에서 더위가 시작되었고 2010년 8월 한달간 남부지방에는 기록적인 더위가 왔으며 대구시는 평균기온 29.1°C이자 연 전체 폭염일수 40일을 기록했다. 다만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가 한반도이기 때문에 중부지방은 덥긴 더웠으나 매우 덥지는 않았고 비가 꽤 오긴 했다. 그리고 서울은 8월 한달간 강수일수가 24일로 매일같이 비가 오고 집중호우가 발생했으며 서울은 폭염일수가 하루만 있었고 기온이 낮은 경기북부는 열대야가 없는 등 서울과 경기북부는 별로 덥지 않은 평범한 여름이었다. 기상청에서 제주, 부산, 전주, 대전, 천안, 수원, 서울, 파주 순으로[189] 평균기온을 보면 북쪽 도시일수록 기온이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철원, 서산, 목포에서 폭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며 대전, 해남, 거제에서는 이 해부터 모든 해에 폭염이 발생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중부 지방은 평년보다 조금 더운 수준이었지만 남부 지방엔 강한 폭염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9월 중순까지도 한여름 수준의 기온을 보였다. 전국 평균기온은 26.7도로 서울보다 더 높았다.

1.9.2. 2011년[편집]


2011년 7~9월, 대한민국: 이 해 여름은 비가 많이 와서 남부 지방을 제외하면 폭염이 거의 없었지만[190] 처서를 기점으로 기온이 올라 8월 말~9월 초와 9월 3주에 폭염이 찾아왔다. 9월 1일 대구는 35.5도를 기록해서 뒤늦게 극값이 경신되었고 15일에는 34.5도를 기록했으며 9.15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서울도 2일에 32.4도, 15일에 31.5도까지 올랐다. 그나마 습도와 최저 기온은 높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 그러나 이후 2019년에는 잦은 비로 습도도 높았고 최저 기온마저 높아서 결국 3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한편 서울도 7월에 폭염이 기록되었다. 7월 18일에 34.1°C를 기록했다. 그러다 9월 말부터 내려가서 10월은 이상 저온을 기록하다가 말부터 다시 올라 11월은 고온이 매우 심해 서울 25.9도, 전주 28도를 기록하는 등 다시 신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2011년 6~9월, 일본: 전 해와는 달리 그나마 평범한(?) 여름이었으나, 한가지 눈에 띄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바로 6월 28일에 사이타마현 지역에서 39.8°C(??)가 기록되었다는 것. 심지어 공식관측소에서 기록된 것이다.

1.9.3. 2012년[편집]


2012년 [191], 베트남: 2012년 5월 2일 베트남에서 43℃를 넘는 폭염에 베트남 전쟁에서 버려진 산악에 있는 미군기지에서 불발탄이 폭염을 못견디고 터졌다. 곧이어 터진 충격으로 다른 폭탄 2개가 연속으로 터져 5헥타르의 산림을 태우고 소방수에 의해 진압되었다. 다행히도 부상자는 없다고 한다. 이날 베트남 도시에서는 살수차가 다수 동원되어 대대적으로 물을 뿌렸다고 한다.

2012년 여름, 대한민국: 4월 하순[192]~6월에 이상 고온으로 전조 증상을 보이더니, 서울특별시 36.7℃, 전북 전주시 38.3℃을 기록했으며, 비공식 기록이긴 하나 경북 경산시 40.6℃[193]를 기록했다. 심지어 적도 지방보다 한국이 더 덥다는 일기예보 짤까지 돌아다녔다. 아무도 이때의 폭염이 기록적인 폭염임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창 진행 중일 때 이 문서에 적혀 올라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2013년과 2016년, 2018년이나 2021년 7월이 나타나면 어떨까? 하지만 전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을 비교해봐도 1994년 쪽이 훨씬 높다.[194] 서울 역시 1994년 이후 가장 더웠는데[195], 그래도 1994년의 압도적이었던 폭염보다는 훨씬 견딜만했다는 평이다. 대전은 8월 초에 1994년 8월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7월 상순과 중순까지는 장마의 영향으로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았고, 고온은 7월 말부터 8월 초에 고온이 집중되었다. 8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그나마 더위가 진정되었다. 9월에는 전국이 19.9°C로 2021년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10°C대를 기록했고 서울은 2010년대 중 유일한 음의 편차인 20.9°C이다. 이 이후로는 20°C를 안 넘긴 적이 없었다. 그나마 가장 20도에 가까웠던 2020년 20.1°C가 그 다음이다.[196][197] 여담이지만 순기능도 하나 존재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폭염 때문에 모기 유충이 죄다 죽어버려서 해충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더위와 모기를 등가교환


1.9.4. 2013년[편집]


2013년 여름, 호주: 일명 Angry Summer. 호주 내륙의 뭄바라는 도시에서 49.6℃가 기록되었고, 날씨가 서늘한 편인 태즈메이니아의 호바트에서 41.8℃가 기록되었다. 시드니에서도 45.8℃가 기록되면서 이전의 최고기온 기록이 경신되었고, 호주 여러 주요 도시에서 40℃가 넘는 고온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폭염에 따라 태즈메이니아에서 거대한 산불이 일어나 2만 헥타르에 달하는 지역에 피해를 입혔다.한편 이때 호주와 비슷한 위도의 북반구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한파에 시달리고 있었다.[198]

2013년 여름, 동아시아·미국 서부
  • 7월부터 중국의 양쯔 강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40℃가 넘는 엄청난 더위가 이어졌고, 장쑤, 쓰촨, 안후이, 저장 등의 여러 성들과 난징, 청두, 상하이, 충칭, 항저우 등 주요 대도시들이 일제히 40℃를 넘겼다. 상하이는 40.8℃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온과 역대 최다 고온 일수를 갱신했다. 그리고 사막도 아닌 저장성 펑화가 43.5℃를 찍었다가, 이 기록마저 저장성 신창에서 기록된 44.1℃에 의해 깨졌다.
  • 대만에서도 타이베이가 39.3℃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 일본도 고치현 시만토시가 41.0℃를 기록하면서 일본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했고, 야마나시현 고후도 40.6℃를 넘었으며 도쿄에서도 초열대야 현상이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38도 이상에서 21일 이상 유지되어야 가능한 병아리 부화가 상온에서 일어났다.
  • 대한민국도 전년도에 이어 다시 폭염 크리를 맞았다.
    • 이 해 4~6월은 전반적으로 전년도 3~5월과 흐름이 비슷했다. 5월 초는 전 달의 심한 이상 저온 현상으로 다소 낮았지만 중하순에 갑자기 크게 올라 대구 34도, 서울 31.9도 등 이른 더위를 보였다.
    • 이후 6월은 서울 월평균 기온이 24.4℃[199]1위, 전국적으로도 2위를 기록했다. 6월은 중부 중심으로 더워서 중부지방은 체감상 7월보다도 더 더웠다.
    • 제주도와 남부 지방은 7월 상순부터 장마가 끝나는 동시에 폭염이 시작되었다. 특히 제주도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고, 남부지방은 장마의 영향으로 가뭄은 덜했지만 32℃를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 더위의 메카(?) 대구는 20년간 나무를 심어 평균기온을 1℃ 가량 떨어뜨렸다는 이야기와 폭염 사망률 최저기록을 수립했지만, 그래도 더운 건 더웠다.
    • 이와 반대로 중부 지방은 8월 초까지 장마가 이어지면서 남부 지방이 폭염 크리를 맞을 때 폭우 크리를 맞았다.[200]후에 중부지방도 장마가 끝나면서 폭염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전국에서 열대야가 발생했다. 2013년 여름은 SNS의 발달과 기상정보의 발달, 원전비리의 여파로 인한 전력부족 등으로 인해 더 덥게 느껴졌다는 평. 그리고 중서부지방에서는[201] 2012년보다는 덜 더웠다는 평도 있었다.
    • 8월 8일에는 강릉시에서 최저기온이 30.9℃를 기록하여, 대한민국 기상관측 사상 두 번째로[202] 최저기온이 30℃를 넘는 초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울산광역시에서 최고기온이 38.8℃까지 치솟아 울산 관측 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8월 8일 울산 남구 고사동은 40.0℃를 기록했으나, 8월 10일 울산 북구 송정동이 최고기온 40.3℃까지 올라가 이전 기록을 2일 만에 갈아치웠다.[203][204] 이런 살인적인 폭염 속에 학교들이 개학을 미루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05] 전국 평균기온은 27.0도이다.
  • 사실 2013년 폭염이 각인된 것은 박근혜 정부 1년차의 관공서 에너지 절약 강요 때문이었다. 정부는 관공서의 7~8월 전력 사용량을 15~20% 감소시키라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정책을 편 것도 모자라서, 친절하게도 더 구체적으로 일반 기업의 실내온도는 26℃, 공공기관의 실내온도는 28℃[206]로 맞추라는 미친 정책[207]강원도민일보을 폈다. 그 바람에 일부 관공서와 교육기관에서는 희망온도를 28도까지 올리는 기능이 없어서 에어컨을 아예 못 틀었다... 심지어, 그래도 전력 난이 심하다며 7월 중순에는 모든 관공서에는 피크타임(오후 2~5시)에 냉방기를 아예 틀지 말라고 지침사항이 들어왔다.파이낸셜뉴스 이런 심각한 상황을 높으신 분들 스스로조차 못 견뎠는지 2014년부터는 실내온도 기준이 26℃로 내려갔다.경향신문
  •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를 중심으로 한 남서부 지역에는 6월부터 섭씨 40℃~50℃의 폭염이 닥쳤다.# 유럽에는 일부 지역에 기록적인 고온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이내 진정되어 심한 폭염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 한편 이후로 10월에 서귀포에서 열대야가 기록되었다. 이는 가장 늦은 열대야 관측이다. 9월은 추석 연휴 무렵을 제외하고 다소 평범했으나[208] 10월에 서울도 최저기온 20도를 찍었고 큰 추위도 없었으며 고온도 심하고 잦아서 10월에도 늦더위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여름도 10월 10일까지 여름.[209] 이는 2019년 10월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이상 고온이 잦았던 2019년 11월과 달리 달력 모양이 같은 2013년 11월에는 중순부터 초겨울 날씨만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다소 추웠다.
  • 반면 쿠웨이트는 2013년 8월 월평균기온이 35.0°C로 강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1.9.5. 2014년[편집]


2014년 5월, 동아시아, 7월~8월 2일 대한민국 : 때이른 5월 더위로 동아시아 각지가 폭염 크리를 맞았다. 한국에서는 5월 31일에 대구 37.4℃, 경산 38℃로 기상관측 이래 5월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다만, 경산시의 기록은 '자동관측장비'에 의한 비공식 기록이다. 영남 지방에서 처음으로 5월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서울도 33.3°C를 기록해 1950년 이후 64년 만에 가장 높은 5월 폭염일수를 기록했으며 대전광역시도 서울과 같은 33.3°C, 전주시는 34.8°C를 기록했으며, 강릉제주에서는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5월에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210] 이 폭염은 오래 가지 못하고 6월 들어 기온이 어느 정도 낮아지면서 진정되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에서 5월 30일에 5월인데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폭염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때의 폭염으로 이해 여름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더워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작 한여름에는 예상보다 그리 덥지 않았다.

물론 아예 더위가 없진 않아서 7월 초중순과 7월 말~8월 초에 짧게나마 더위가 있었는데, 경산이 39.9℃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서울은 7월에 폭염이 찾아왔으며 7월 9일에 최저기온 25.6˚C로 3번째 7월 초순 열대야이고, 7월 초순 중 가장 높은 최저기온[211]을 갱신했으며, 최고기온은 33.0˚C로 폭염 기준을 턱걸이했다. 그 뒤 8월 2일에 35.8°C, 최저기온은 28.7˚C로 당시 기준 107년 관측 사상 2번째로 높은 최저기온이었다. 물론 4년 뒤에 싹 갈아엎어졌다. 또한 서울 기준 2014년 중 가장 강수량이 많았던 7월 25일에는 낮시간에는 햇빛이 나서 34도의 폭염이 찾아왔으며 비는 새벽에 소나기로 왔는데 59.5mm로 60mm를 넘지 못했다. 2014년 7월 강수량이 적은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 서울 및 중부지방은 7월 한달 내내 고온이 이어졌다. 심지어 인천도 8월 2일에 35°C, 12년만에 폭염경보일수 기록이다. 게다가 시원한 백령도마저도 2002년에 이어 2014년 8월에 폭염일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8월 2~4일에 나크리라는 태풍이 영향을 끼친데다 엘니뇨 현상이 겹쳤기 때문에 8월에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고, 낮에도 크게 오르지 못했다. 그로 인해 8월 상반기(1~17일) 전국 평균 최고기온은 2013년보다 4.3℃ 낮았다. (2013년: 32.3℃, 2014년: 28℃) 물론 서울은 25.1°C로 조금만 낮았다지만 유일한 이상 저온이고 전국적으로는 23.5°C하위 4위이다. 심지어 그 제주도도 서울하고 같은 25.1°C를 기록했고 대구도 24도대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폭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반면 여름에 시원했던 인천은 이 해부터 온난화로 2021년까지 매 해마다 폭염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도 이 해부터 매년 35도를 기록하고 있다.


1.9.6. 2015년[편집]


2015년 5월 말, 인도: 47℃가 넘는 헬게이트가 펼쳐졌고 아스팔트도로녹아내리고 사망자만 2000명이 넘는, 인도 기상청 관측사상 최악의 폭염이 발생하였다. 뉴스타운 사망자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빈곤층이나 노약자, 즉 상대적으로 폭염의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화를 면치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다 엘니뇨까지 영향을 주었고 약 1주일동안 지속되는 폭염이기에 날씨가 풀린 주말엔 사망자 수가 주춤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고 한다. 카드뉴스(SBS) 이웃나라 파키스탄에도 폭염이 닥쳐서 천 명 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파키스탄 제1의 도시인 카라치도 기온이 45℃까지 올라갔다.

2015년 7월, 서유럽: 독일 남부에서 40.3℃를 기록했으며, 프랑스 파리도 역대 7월 최고기온을 경신했다고 한다.

2015년 5~8월, 동아시아: 5월에는 경북 지역 중심으로 폭염과 초이상 고온이 왔으며[212][213] 26~29일에는 2013~2014년에 이어서 또 전국적으로 3년 연속 5월 폭염이 찾아왔다. 28~29일은 수도권 중심으로 매우 더워서 서울이 32도까지 올랐다. 서울은 아예 2년 연속 32도를 넘었다. 이후 6월 10일에는 서울에서 34.9°C를 기록했으며 중부지방은 7월에도 폭염이 있었다. 찬홈으로 인한 동풍 유도로 서울 기준 7월 10일에 34.3°C, 7월 11일36.0°C[214]까지 올랐다. 3년만에 서울에서 36°C 이상을 기록했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더위가 상당했다. 남부지방의 경우 7월 초중순에는 이상 저온이 찾아왔지만 7말8초는 역시나 강한 더위가 왔다. 다만 9월에는 다시 이상 저온으로 가기는 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비는 부족했으나 습도가 높아 땡볕의 더위가 이어졌다. (8월 초에는 체감온도 상으로 1994년과 2012년의 더위를 능가했다.) 이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로 수증기가 유입된 영향도 있지만 온난화로 인해 전체적으로 해수 증발량이 많아진 원인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부족한 원인은 위도별 온도차가 차이가 나지 않아 비구름이 형성될 여건이 되지 않아서인데 북풍이나 북동풍의 영향이 약한 원인이 크다. 8월 5일에 울산 삼동면의 자동관측장비가 비공식적으로 40.0도를 기록했으며, 전라북도 부안군의 한 바지락 양식장에서는 폭염으로 갯벌 온도가 올라 바지락 40톤이 폐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215] 8월 6~7일 서울도 34~35도를 기록했고 대구는 36~38도를 기록했다. 물론 2012년, 2013년에 비해 폭염 기간도 짧았고 열대야도 예년에 비해 심하지 않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평균기온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서울은 26.3도로 평년보다 조금만 높았으며 남부지방은 7월 이상 저온으로 기온이 높지 않았다. 전국적으로도 각각 24.2/25.0도로 2011년, 2014년과 함께 평년 수준에 그쳤다. 여담으로 부산에서는 이 해부터 모든 해에 폭염이 발생하고 있으며 반면 서귀포에서는 10년만에 폭염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홋카이도의 오비히로시에서 36.5℃를 기록하여 오키나와보다 덥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당연히 도쿄도 7월 말부터 35℃를 6일 연속으로 찍었다. 이 때문에 2021년에 벌어질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할 수 있냐는 우려가 나오는 중이었고.TV아사히 뉴스, SBS 해외토픽 실제로도 폭염이 심했다. 그러나 일본 평균기온도 평년~저온에 그쳤다.


1.9.7. 2016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6년 폭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6년 5월, 인도: 인도 북서부에서 51℃라는 살인적인 폭염이 관측되었다.[216] 이때 인도에서는 헬게이트가 펼쳐졌다. 이전 최고기온은 1956년 관측된 50.6℃라고 한다. 더구나 이 기록은 거주지 기준이고 사막 지역은 55도 정도로 더 올라갔을 것이란 말도 있다.

2016년 여름, 북반구 각지: 7월을 기점으로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관측되었다. 특히 한국에서의 2016년은 1994년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봄철 이른 더위, 강력한 여름철 더위, 가을철 늦더위가 모두 나타났다.[217] 2018년은 이른 더위(3~6월)은 다소 있었지만 가을철 늦더위가 심하지 않고 10월은 이상 저온을 보였다.

1.9.8. 2017년[편집]


2017년 5월, 중국: 베이징 등 중국 북부지역에서 때이른 35℃ 이상의 폭염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9일~20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39℃에 이르렀다. 5월 중후반에 벌써 40℃에 육박하는 폭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2017년 여름, 북반구 각지
  • 대한민국2016년 11월부터 재앙 수준의 가뭄이 기승을 부리더니 더위까지 일찍 찾아왔다. 2017년 더위는 유독 빨리 시작되었는데[221], 봄부터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국 내륙의 뜨거운 공기와 강력해진 북태평양 고기압이 원인이라고 한다. 2017년 초여름 평균 최고기온이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이후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222]
    • 5월 중순부터 대구·경북 지방에 올해 첫 폭염특보가 내려졌으며, 대구·경북 지방은 4년째 5월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전국적으로는 무려 5년 연속으로 5월 폭염이다. 6월 중순엔 서울에서 올해 첫 폭염특보가 발효되었다. 그리고 6월 23일에 34도까지 올랐다. 그리고 7월 초에 기다리던 장마가 늦게나마 찾아왔지만, 북태평양 기단의 세력이 4년만에 강해 장마전선이 주로 중부 지방에 머물렀다.[218] 그리고 북태평양 기단이 세력을 확장해 장마가 잠시 물러가면서 폭염이 찾아왔다.
    • 7월 11일에 전국 대부분 지방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는데, 7월 11일 밤 서울에서 올해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열흘 빠른 것이었다.
    • 7월 13일 경북 경주에서는 39.7℃를 기록해 75년만의 7월 폭염이 찾아왔다. 이는 전년도 가장 더운 날(경북 영천, 8월 13일, 39.6℃)보다 0.1℃높은 온도였으며, 심지어 한 달이나 빨랐다. 영남 지방에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난 것은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뜨거운 남서풍이 소백산맥을 넘으면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마전선의 활성화로 7월 15일 폭염특보는 모두 해제되었다.
    • 7월 21일 서울에 올해 첫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다시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서울에 내려진 폭염경보는 2016년보다 보름 정도 빠른 것. 7월 20일에는 34.9°C를 기록, 7월 25일 서울 기온이 35.4℃를 기록해 2017년 처음으로 35℃를 넘었다. 서울의 경우 4년 연속 35도를 넘었다.
    • 7월 21일 강원도 강릉 아침기온이 30.1℃를 기록했다.[219]
    • 특히, 제주시는 기상관측이 시작된 1923년 이래 가장 더웠다. 제주에서는 7월 21일까지 15일간 열대야가 일어났으며, 이는 올해 전국 최장 기록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7월 24일 최저기온이 29.4℃를 기록했다.[220]
    • 8월 1일 수도권과 남부 지방 일부에 폭염특보가 내려졌고, 8월 4일 동해안을 제외한 전국으로 폭염특보가 확대·강화되었다. 2017년 입추관측사상 다섯 번째로 더웠다. 입추 폭염은 태풍 노루일본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반도 쪽으로 보낸 뜨겁고 습한 공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런데 입추를 넘기자 마자 평년수준을 회복했으며 12일 반짝 더위를 제외하고는 13일이 되자 평년기온보다 2~4℃, 전년도보다는 5~7°C 낮은 시원한 날씨를 보였다. 실제로 8월 중순(11~20일) 전국 45개 관측소의 낮 최고기온 평균은 27.9℃를 기록했다. 평년 8월 중순 기온(29.7℃)보다는 1.8℃ 낮고, 작년(34.1℃)에 비하면 6.2℃나 내려갔다. 8월 중순이 덜 더운 것은 한반도 북동쪽 오호츠크해 기단 고기압이 예년보다 강하게 발달해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기단한반도 쪽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 결국 8월 중하순에 계속되는 강수로 인해, 8월임에도 가을 날씨가 일찍 찾아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앞뒤 년도들보다는 폭염이 덜했다. 8월 4째주에는 다시 더워지나 싶더니 27일부터 31일까지는 매우 강한 이상 저온이 왔다. 그러나 9월 1일부터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서울 기준 아침에는 꽤 쌀쌀하나 낮에는 아직 더위가 남아있어 일교차가 컸다. 그렇게 초중순은 평범했으나 9월 23일 이후에는 느닷없이 늦더위가 찾아와서 26일 31.4°C, 10월 2일 29.4°C 기록했고 10월 상순은 20.1°C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4년 뒤에는 이 시기에 더더욱 심한 고온 현상이 찾아왔다.
  • 중국의 경우 상기하였듯이 베이징에 5월부터 최고기온 39℃라는 때이른 폭염이 찾아오더니 7월 14일 베이징 최고기온이 43℃가 예상된다는 예보가 나왔고, 7월 13일엔 신장 투루판의 최고기온이 49℃를 기록했으며 50.5℃를 기록한 지역도 있다. 이는 중국 최고기온 기록이다. 아니다 다를까 최고기온 43도가 예보된 7월 14일 베이징에서 아프리카인이 쓰러지는 사고가 뉴스에 떴고, 베이징의 온도계는 42.5도를 기록했다. 상하이에서는 7월 21일에 2013년 기록된 40.6도를 0.3도 넘은 40.9도를 기록했다.
  • 일본에서도 간사이 서쪽지역을 중심으로 35℃ 이상의 기록적인 폭염이 닥쳤다. tenki.\jp 2017-07-25(일본어) 총무성 소방청에 따르면 7월 17일~23일 동안 온열질환 증세로 6천369명이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중 6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OBS뉴스 2017-07-25 日 무더위 속 1주일새 열사병 6명 사망
  • 미국 일부에서도 역시 초여름 시기인 6월부터 기록적 폭염이 닥치기 시작하더니, # 로스앤젤레스에서는 131년만의 최고 더위를 기록했다. #


1.9.9. 2018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8년 폭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8년 폭염/대한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8년 여름[223], 북반구 각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북반구 대부분의 국가들이 재난급 폭염에 시달렸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그 동안의 최고기온 기록들이 대부분 경신될 정도로 관측 사상 역대 최강의 폭염이 찾아왔다.[224]

1.9.10. 2019년[편집]


  • 대한민국
    • 4월 22일, 천안, 광주 27.9°C, 양평 28.1°C, 서울 28.2°C, 동두천 28.4°C, 수원 29.2°C, 이천, 대전 29.3°C 등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평년 6월 중하순에 해당하는 날씨를 보였다.[226]
    • 5월 중순부터 이른 더위가 심해지고 사실상 여름으로 넘어갔다.[227] 서울의 경우 5월 중순 평균 기온이 20.7°C로 역대 1위이다.
    • 5월 15일, 광주광역시에서 올해 전국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는 폭염 특보제가 도입된 2008년 이후 가장 이른 시기에 발효된 것이다.
    • 5월 16일, 서울은 30.0°C를 기록했다.
    • 5월 23일, 일부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 5월 24일, 서울에서는 33.4°C를 기록하여 5년만에 5월 폭염 일수를 기록했다. 심지어 2014년보다 더 높다! 이 기록은 극값 4위에 있고 2014년 5월 31일은 극값 5위에 있다. 그 밖의 지역도 30~33도를 넘는 폭염이 찾아왔다.
    • 5월 25일, 강릉에서 열대야가 관측되었다. 아침 최저 기온은 무려 27.4°C, 일 최저 기온도 26.6°C로 역대 최고 기록 달성. 이로써 2년 연속으로 한반도에서 5월 열대야가 관측되었다. 또한 중부지방에서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5월 26일, 서울은 31도, 강릉은 35도까지 올랐다.
    • 6월 3~5일에는 대구에 폭염이 찾아왔는데 33~35°C 이상을 기록했다.
    • 6월 25일, 서울에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이 때부터 중부 지방의 더위가 시작되었다.
    • 7월 3일, 대구·경상북도·강원도 일부 지역에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 7월 4일, 서울과 경기 동부에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 7월 5일, 경기 일부 지역과 대전·충청 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으며, 같은 날 서울과 경기 일부·강원 일부 등 중부지방에 올해 첫 폭염경보가 발효되었다. 7월 5일에 서울에서 35°C를 기록해서 6년 연속 35도를 넘었고 7월 상순 폭염경보일수를 기록했으며 이것만으로 해도 1965년 7월 2일 35.2°C 이후 54년만에 최고기록인데 다음날인 7월 6일에는 더 올라서 서울에서 36.1°C까지 오르면서 7월 초순으로는 1939년 7월 9일 36.8°C 이후 80년만에 기록을 세웠다.[228] 게다가 7월 상순에 2일 연속 35도 이상을 기록했다. 최저기온도 6일 24.6°C로 열대야에 근접했다. 이후로도 7월 10~12일을 제외하고는 중부 지방은 더운 편이었다. 북한에서는 기상청 발간 <북한기상연보 2019>에 따르면 2019년 7월 6일 혜산시의 최고기온이 무려 46.0℃를 기록하였다!!
    • 7월 중순까지는 습도가 꽤 낮아 덥지만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어 올해는 폭염이 심하지 않고 불쾌지수가 높지 않은 상황이 여름내내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말이 나오기 무섭게 장마철이 끝나고 다시 우리가 흔히 아는 덥고 습한 여름 날씨가 시작되었다. 또한 2019년 7월은 비교적 건조해서 중부지방 기준 폭염에 비해 열대야는 덜했지만 8월에는 열대야마저도 심했다.
    • 7월 19일, 태풍 다나스로 인한 남풍 유입으로 서울에서 35.0°C까지 오르는 폭염이 또 발생했다. 그리고 7월 24일 이후에 장마가 와서 폭염이 약간 주춤했는데 장마가 좀 소강된 7월 27일에 서울에서 33.4°C를 기록했다. 대신 남부 지방은 7월 하순 들어 며칠을 제외하고는 더웠다.
    • 7월 31일, 강릉의 아침 최저기온이 초열대야에 근접한 29.7°C 를 기록하며 작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힘든 새벽을 보냈다.
    • 서울의 경우 7월에 35°C를 넘는 날이 3일이나 나왔으며 평균기온이 25.9°C로 평년보다 1°C 높았다. 8월 평균기온도 27.2°C로 역대 7위이다.
    • 8월 2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특히 5일에는 서울 최고기온 36°C, 비공식 최고기온도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이 40.2°C를 기록하여 작년 폭염을 잊혀질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한, 서울 최저기온 27°C로 열대야가 나타났다. 6일에는 서울 최저기온이 28°C, 최고기온이 36.8°C로 2018년을 제외하면 21세기 중 가장 높은 기온이다. 물론 작년 폭염이 역대 최악 수준의 살인적인 폭염이었기 때문에 올해 폭염이 작년 폭염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말은 지나친 과장이다. 7일에 프란시스코로 잠잠해졌다가 8~9일부터 올라서 10~11일에는 레끼마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35도 이상으로 갔디. 특히 인천은 10일 36.0°C를 기록했다.
    • 8월 2~14일에는 수도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이 33~38°C 안팎의 폭염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태풍 프란시스코레끼마, 크로사의 영향 덕에 기온 자체는 30~34°C 언저리에 형성되는 날이 종종 있었다. 올해 폭염이 약한건 절대 아니지만 확실히 작년의 무자비한 폭염에 비해선 양호한 수준이다.[229]
    • 8월 15일~17일에는 크로사와 소나기의 영향으로 수도권 기준 밤 기온이 23°C 안팎, 아침 최저 20~22°C, 낮기온 26~29°C의 평년 수준~조금 낮은 수준의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반대로 남부지방은 이 때 폭염이 찾아왔다. 작년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시원한 편이다. 이후 18일부터는 최저기온 21~24°C, 최고기온 29~32°C로 평년보다 조금 높은 날씨가 나타나기도 했으나 8월 29~30일에는 저온현상까지 찾아와서 최고기온도 25~26°C였다.
    • 9월 10일, 대구, 부산, 경남 일부 지역, 경북 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이날 대구포항은 낮 최고기온이 33도로 예상되었다. 이후 15~16일에 서울에서 30~31°C의 늦더위를 기록했다.
    •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9월 19일 기준 서울의 아침기온이 14°C를 기록되면서 늦더위가 물러가고 가을날씨가 찾아왔으며 그래도 이때는 최고기온은 높았지만 21~22일에는 타파로 인해 최고기온 20도 전후의 이상 저온이 찾아왔지만 타파 이후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쉽게 물러나지 않으면서 9월 23일부터 차츰 기온이 올라서 9월 25일부터 10월 4일까지 이상 고온이 지속되었다. 심지어 9월 29일과 30일에 남부 지방에는 낮 최고 기온이 29~31°C까지 올라가고 서울도 29.9°C를 기록했다. 10월이 되었는데도 최저 기온이 18~22°C, 최고기온이 26~29°C를 기록했으나 미탁이 지나간 뒤 10월 6일부터 북쪽에서 다시 찬 대륙성 고기압이 한반도쪽으로 남하하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을 일본 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해 날씨가 다시 쌀쌀해지며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동풍이 잦아서 영동을 제외하고 대체로 고온이 잦았다. 결국 이상 고온은 겨울이 되자 더 심해졌고 다음해 4월 1일까지 이어졌다.
    • 2012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장마가 끝나고 8월 초까지 꽤나 강한 폭염이 이어지다 중순부터 기온이 낮아지며 폭염의 기세가 주춤하였고 태풍으로 끝나는 여름이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차이점이라면 2012년은 볼라벤이라는 하나의 태풍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강타하였지만 2019년은 많은 태풍들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2012년2019년 둘다 3번 연속으로 대한민국에 영향을 주었다.
    • 사실 전년도가 말도 안 되게 더워서 그랬을뿐, 서울의 8월 평균기온이 27.2°C[230]로 2012년의 27.1°C보다도 높아 역대 한자리 순위권안에 들어가며, 최고기온 기록도 서울이 8월 6일 36.8°C 로 최악의 폭염이 발생한 1994년과 2018년을 제외하면 1959년 이후 60여년 간 그 어느해보다도 높다.[231] 대전도 27.2°C를 기록하면서 평년보다 상당히 높았다. 수원도 월 최고평균/최저평균만 놓고 보면 1994년 8월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높게 기록되었다.[232] 월 평균기온 역시 26.8°C. 즉 상대적인 착시일뿐 중부 지방(특히 수도권)에서는 상당히 강한 더위가 내습한 나름 상당히 더운 여름이었다. 남부지방의 경우 7월이 평년과 비슷했고 제주도는 아예 대놓고 이상 저온이 심했으나[233] 8월에는 평년보다 높았다. 남부지방도 대구 등 영남의 8월은 상당히 더웠다. 2019년 8월 일조시간은 전국적으로 다소 많았으나 지역차가 컸다. 서울을 비롯한 중서부지역은 매우 많아서 서울 일조시간은 242.7시간으로 평년보다 90시간 많았고 다음해 74.7시간보다 3배 이상 많으나 경남해안은 중부에 비하면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아서 일조시간이 평년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234] 제주도는 일조시간이 적었다. 일본 역시 7월 이상 저온 이후 8월이 더웠다. 또한 2010년과 정 반대로 극값 기준으로는 위도가 높을 수록 더 높아서 중강진은 7월 19일 39.2°C를 기록하고 서울도 7월 6일 36.1°C, 8월 6일 36.8°C를 기록했으나 제주도와 남해안은 7월 극값이 낮았다. 이 때문에 7월은 북한이 제주시보다 오히려 평균기온이 더 높은 현상이 나타났고 8월도 남북 차이가 거의 없었다. 편차 기준으로는 당연히 중부, 아니 북한이 압승했다. 전국도 26.0도로 다소 높았다.

2019년 5월, 8월, 일본: 5월에는 강한 일사와 따뜻한 공기의 하강이 이어지면서 5월 26일 오비히로에서는 38.8℃, 사로마초(佐呂間町)에서는 39.5℃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역대 5월 최고기온을 2.3℃나 경신한 것이며 해당 지역에서는 7.2°C나 경신한 것이다.한국일보 머니투데이 이게 8월 초반에 찾아왔다면 일본에서 42℃~43℃라는 고온이 나타날 수 있어 보인다.[235] 8월에는 7월의 이상 저온이 무색할 정도로 장마가 끝나고 일본에 폭염이 찾아왔다. 도쿄 8월 평균기온은 2018년 8월을 능가했다. 특히 니가타현아이카와(相川)에서 8월 15일에 최저기온을 30.8℃를 기록해 일본 전역의 모든 최저기온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236] 2021년 6월 말에 캐나다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2019년 5~6월, 인도: 원래 5~6월이 혹서기지만 예년보다 5℃ 이상 높은 폭염이 찾아와 수도 델리는 48℃, 서부의 라자스탄에서는 50.8℃의 높은 기온이 기록되었다. 폭염으로 인해 인도 전역에서 20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중앙일보

2019년 6~7월, 유럽: 6월 말부터 프랑스스페인, 독일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폭염이 내습했다.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40℃가 넘는 폭염이 찾아온 프랑스의 경우 6월 28일 갈라르그 르 몽튀외에서는 무려 45.9℃가 기록되면서 관측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가디언 기존에 6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2003년 6월의 44.1℃를 경신했다고도 한다. # 최종적으로 프랑스는 46.0℃, 독일은 41.2℃라는 공식 기록이 나타났다.[237] 7월 말에도 다시 한 번 폭염이 찾아와 파리에서는 25일 역대 최고 기온인 42.6℃가 기록되었고, 독일도 북서부 링겐에서 41.5℃가 기록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이 경신되었다.가디언 이 해 역시 유럽의 폭염이 심했다. 그러나 한국은 2018년보다는 시원했지만 오히려 평년보다 높았고 7월 초 중부와 8월 상순~중순에 최대 34~37도까지 올랐다.

2019년 6~7월 ,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6월 평균 기온이 15.8℃로 평년보다 3℃ 이상 높았고[238], 7월 4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32.2℃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기온인 29.4℃ (1969년 6월 14일) 를 큰 차이로 경신하였다. #

1.10. 2020년대[편집]


이제 2023년 여름에 돌입하고, 아직 2020년대의 3분의 1만 지나서, 2020년~2022년 여름만으로 2020년대의 여름을 논하긴 아직 이르다. 일단 8월에는 비와 구름으로 인해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 해서[239] 그에 따라 8월이 일조량이 평년보다 적었으며 7월보다 일조량이 상당히 적었다. 게다가 2020년을 제외한 두 해의 여름은 7월에는 폭염이 강하게 나타나서 전국적으로, 특히 중부 지방 중심으로 7월이 8월보다 평균이 높은 양상을 보였다. 8월 하순~9월 상순에는 선선하다가 9월 중하순은 북태고/태풍 등에 의해 기온 하강이 더디게 나타나서 고온이 나타났으며[240], 2021년 10월처럼 여름 날씨가 10월 상순까지 확장되는 경우까지 일어났다.[241] 한여름 이전인 4~6월도 고온이 더욱 빈번해지고 심해진 것은 덤이며[242] 나름 여름 중 건조함의 대명사인 5[243]~6월도 이제 더 이상 건조하기만 하지 않다.[244][245] 아예 5월에 32°C를 넘는 해가 나타나고[246] 심지어 5월의 절반 이상이 여름인 해도 빈번해질 것으로 예측된다.[247][250]

그리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3년 연속 문서가 분리될 정도로 심해졌다. 다만 과거에 비해 나무위키의 서술 빈도가 높아진 것이 원인이기도 해서 문서가 따로 존재하다고 무조건 폭염이 극심했던 해라고 보기는 힘들어졌다.

또한 장마 역시 과거에 비해 양상이 이상하게 변했고, 이에 기상청에선 "과거보다 장마 예측이 어려워졌고, 전통적인 의미의 장마는 수명이 다한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을 정도였다.

1.10.1. 2020년[편집]


세계 기상학자들은 2020년 여름이 역대 가장 무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측했으며, 결국 현실이 되었다. 기상학자들은 1880년 인류가 전 지구의 지면온도, 해수온도의 관측을 시작한 이래 2020년 북반구의 여름이 역사상 가장 무더웠다고 밝혔다. 종전 기록은 2016년과 2019년 여름인데 올해는 그 두 해보다 0.04°C 가 높아 기록을 새로 썼다. 남반구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2016, 2019년에 이어 역대 3위로 결국 올여름 전세계가 기록적으로 더울 것이라는 기상학자들의 예측은 정확했던 것이다.[251] 하지만 2021년 이후 3년 연속으로 폭염 문서가 분리될 정도로 심각해졌음을 감안하면 이 해까지가 그나마 정상적인 여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

1.10.1.1. 대한민국[편집]

  • 일자별
    • 이 해 5월부터 폭염특보를 체감온도로 하면서 기존에 겨울철(10~3월)만 체감온도를 표시했었으나 여름철(4~9월)까지 도시별 현재날씨에서 현재는 물론이고 2020년 5월 이전의 과거 4~9월 날씨도 체감온도로 나오며 체감온도로 폭염특보가 초여름보다 한여름에 집중되었다.
    • 5월 1일, 즉 5월 첫 날부터 서해안을 제외한 전국적으로 25~30°C를 기록하는 초여름 날씨를 보였고[252][253] 강원 영동과 영남 지역에서는 한여름 수준의 최고 30~33°C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254] 뿐만이 아니라 습도가 높고 최저기온이 기록적으로 높아서 체감상으로는 한여름 날씨 수준이었다. 5월 1~4일 더위는 최저기온도 15~18도 전후였다.[255] 5월 6일, 서울에서 27.9°C, 광주에서 30.1℃를 기록했고, 전국적으로 다소 더운 날씨를 보였다. 그러나 5월 9일부터 비가 내려 전반적으로 평년보다 낮은 선선한 날씨로 인해 14일, 17~18일, 23일을 제외하고 기온이 낮은 날이 이어져 결국 수도권은 월평균기온이 평년 수준이었다. 이후 5월 29일, 기온이 다시 올라 초여름 날씨를 보였다. 5월 30일, 서울에서 30.0℃를 기록했다.[256]
    • 6월 3일, 영남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6월 4일, 남부 지방에서 30℃ 이상의 최고기온을 기록하였고 대구는 35°C를 기록했지만 습도가 낮아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6월 폭염일수는 작년과 비교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주요 더위는 장마철 이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1 #2 #3 #4 #5[257] 기상청은 전반적으로 2018년 같이 최악의 폭염을 기록하지는 않을 것이나 2019년보다는 다소 덥고 2016년과 비슷한 폭염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258] 6월 9일, 서풍이 불어서 서울 32.8℃, 대전 34.3℃, 전주 35.1℃, 대구 37.0℃, 비공식 경산 37.4℃ 등 전국적으로 폭염이 기승을 부렸으며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특히 강원 영동 지역은 일 최저기온이 25℃를 웃돌아 올해 여름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 이후 6월 13일 서울에서 33.5°C를 기록한 후 6월 14~19일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으나 17~18일에 비가 오면서 남부 지방은 기온이 내려갔다. 하지만 21~23일에는 6월 초순에 준하는 더위가 찾아왔다. 6월 22일, 동풍이 불어서 서울에서 35.4℃를 기록했으며 6월 하순 기온으로는 1958년 이후 62년 만에 가장 더웠고 결국 7년 연속 35도를 넘었다.[259] 이 외에 수도권[260], 강원[261], 충청[262] 영남[263] 등 내륙 곳곳이 관측 이래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후 6월 28일까지는 6월 14~19일과 비슷하게 조금만 높았다. 서울의 6월 평균기온 기록은 23.9℃로 평년의 22.2℃보다 1.7℃ 높았다. 이 외에도 전국 평균기온이 22.6℃를 기록하여 1973년 전국 기상관측 시작 이후 2위인 2013년의 22.4℃ 를 누르고 역대 1위를 기록했고, 평년보다 1.6℃ 높았다. 대전은 6월 평균기온 24.1°C로 1위를 세웠다. 폭염일수도 무려 2일이나 되어 평년보다 1.4일 많아 역대 가장 높았다. 그러나 6월 29일부터 장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음 달인 7월에는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264]
    • 7월 31일, 제주와 남부 지방은 기나긴 장마가 끝나자 마자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해 수온이 낮아 기록적인 폭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2020년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예년보다 강하지 않아서 2016년 폭염2018년 폭염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최고기온 자체는 이상 저온이었다. 이후 8월 7일부터 중부 지방에 집중호우를 뿌렸던 장마전선 비구름대가 남하하여 결국 남부 지방도 장마가 끝나나 싶었더니 다시 폭우를 맞았다. 또한 더울 때 최고기온은 29~31°C인 곳도 있었다.
    • 8월 1일, 영남 일부 지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부산의 최고기온이 33℃를 웃돌고 울산과 대구의 최고기온이 34℃를 기록하는 등 영남권 중심으로 체감 온도가 35℃를 넘는 폭염이 찾아왔다. #1 #2
    • 8월 4일에 경기북부와 강원영서북부를 제외하고 비가 별로 안 와서 8월 5일에 서울에서도 올해 첫 열대야가 발생하였다.
    • 8월 9일, 남부 지방에서는 비가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30℃를 넘는 더위가 다시 찾아와 대구와 포항 등지에 33℃의 폭염이 찾아왔으며 8월 12일부터 전국에 장마가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거의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되었다. 8월 12일 기준 낮 최고기온은 대구 33.7℃, 포항 33.3℃ 등을 기록했으며 체감온도는 구미 35.6℃, 포항 34.6℃, 대구 34.2℃, 경주 33.7℃, 안동 31.9℃ 등을 기록했다. # 또한 이 날부터 서울에서 30도를 넘기기 시작했다. 서울 체감온도도 33도를 넘어 폭염주의보에 충족했다.
    • 8월 16일부터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중부 지방도 장마가 끝나며 전국적으로 폭염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지역에서 33℃ 이상을 기록하고 제주도, 강릉, 남부 내륙은 35℃ 이상, 대구와 포항 등지엔 37℃를 기록했다. 8월 17일에 서울에서 32.2°C까지 올랐고 8월 20일, 경남 양산시(공식), 경북 경산시(비공식)에서 37.8℃를 기록하였다. 8월 16~22일에는 전국의 폭염이 무색하게 서울과 경기북부에서는 더위가 약했으나, 서울에서도 8월 하순인 25일, 그리고 26일 연속으로 "34.5℃'를 기록하며 33℃를 넘겨서 결국 폭염이 나타났다. 심지어 26일에는 최저 기온까지 매우 높아서 결국 일평균 기온이 30˚C를 넘었다.[265] 시기를 감안하면 34.5°C는 매우 강한 것이고 8월 초에 올시 36~37°C 정도였을 것이다.(2012년 8월 5일, 2019년 8월 6일과 비슷) 똑같이 서울, 경기북부만 폭염 약했던 2010년 8월에 비해 더운 편이었다. 열대야의 경우 8월 말일까지 갔는데 처서 때를 제외하고 다시 24℃~29℃ 내외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https://news.heraldcorp.com/village/view.php?ud=202008201929590709964_10|#]]) 처서인 8월 23일에 서울 최저기온 21.5°C로 평년 수준을 회복했으나 이게 8월 최저기온 극값이다. 게다가 오후엔 30도였다. 게다가 서울 정도면 많이 떨어진것이고[266] 남부지방은 극값이 23도 언저리, 제주시는 아예 24도대가 극값이자 열대야일수가 30일이다.. 대구광역시에서 2020년 8월 폭염일수도 24일이다.[267] 그러나 태풍이나 가을 장마 등 변수가 있어서 아직 확신은 할 수 없다.[268]
    • 8월 27일에 태풍 바비의 영향으로 잠시 기온이 약간 떨어졌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9월 1일까지 30~35도의 늦더위가 찾아왔다. 그러나 9월 2일부터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이후인 3일부로 올해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이후로도 10월까지 2010년대에 일상이 된 늦더위는 커녕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날씨만 계속되었다. 결국 서울 기준 9월 평균기온은 큰 늦더위 없이 21.4°C, 전국은 20.1°C를 기록하여, 2012년 9~10월, 2014년 9월, 2017년 9월 초중순, 2018년 9월, 2019년 6월처럼 평년 수준의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269][270][271][272] 또한 10월은 큰 늦더위 없이 서울 14.3°C, 전국 13.8°C로 평년보다 조금 낮은 다소 쌀쌀한 날씨를 보였다.

  • 종합 - 6월 이상 고온, 7월 초이상 저온, 8월 늦은 폭염
    • 기상청 보도자료 - [2020년 여름철 기상특성] 월별 기온 들쑥날쑥, 가장 긴 장마철에 많은 비
    • 서울특별시 기준으로 정리하자면 6월은 1958년 수준으로 매우 더웠지만[273] 1월~7월까지 2개밖에 발생하지 못한 태풍과[274] 이상 저온, 그리고 잦은 집중호우1998년과 비슷한 날씨를 보이면서[275] 폭염이 뚜렷한 힘을 보이지 못했다. 7월 월평균기온 24.1도를 보면 2007년~2021년 중에 가장 낮으며 2021년보다 정확히 4도, 2019년보다 약 2도, 평년보다 약 1도가 낮았고 2011년보다도 시원했다. 8월 월평균기온 26.5°C를 보면 평년보다 높은 편에 속하지만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던 2018년은 물론 2013년2016년보다 훨씬 시원하고 2019년2012년보다도 시원한 편이다. 다만 2015년보다 조금 높으며 2011년, 2017년보다도 높고 2010년대 8월 중 가장 시원했다고 한 2014년보다 약 1.5도 높은 수준이었다. 7~8월 합친다면 2018년은 물론 2016년, 2013년보다도 말할 것도 없고 2019년, 2012년, 2017년, 2015년보다도 시원하고 심지어 2014년보다도 시원하며[276] 다름아닌 2011년과 맞먹는다. 7월~8월 중순만으로는 2003년 이후로 17년만에 서울의 한여름(7월~8월 중순) 폭염이 없었다. 서울에서 8월 24일까지는 열대야는 발생했으나, 32℃ 이상의 폭염은 8월 17일을 제외하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복절 이후 장마가 종료된 뒤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중부지방까지 장악하여 오히려 더 더워졌고, 22일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가도 24일엔 동풍의 영향으로 서쪽 지방에 더운 공기가 유입되면서 32℃를 기록했고 25~26일엔 남풍으로 전환되면서 태풍 바비가 몰고 온 더운 공기의 영향으로 34.5 °C를 기록하며 폭염이 발생하고 말았다.
    • 8월 13일만 해도 중부 지방이라도 시원할 것으로 보였으나 8월 13일 18시 예보에서 기온이 상향되어서 폭염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중기예보상에서 기온이 높아졌고 물론 예보보다는 낮았다지만 8월 21~22일 에 비가 내려 시원해졌지만 다시 더워져서 늦더위로 이어진다고 했다. 결국 8월 말에 강한 늦더위로 이어졌다. 8월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보면 전국적으로는 7월과 완전히 상황이 반대되었다. 남부 지방에서는 7월의 저온현상이 강했지만 8월 초부터 계속되었던 열대야와[277] 중하순 폭염까지 겹쳐 체감하는 것에 비해 8월 월평균기온이 손에 꼽게 높았다. 대구광역시의 8월 월평균기온이 28.6 °C를 기록해[278] 2018년 8월의 27.7°C보다도 높고[279] 1967년, 1995년 8월의 기록과 같으며[280] 현재까지 이 이상으로 8월 평균기온이 높은 해는 1994년, 2010년, 2013년 빼고는 없다. 한술 더떠 그를 능가하는 지역도 많다. 7월의 이상 저온으로 인하여 심한 곳은 전달보다 5~6°C씩이나 높았다. 반면 서울과 경기북부는 7월 저온이 약했고 8월 고온도 심하지는 않은 편이여서 전달보다 2~3°C만 상승했다.[281]
    • 사실 2020년 8월의 월 평균기온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굳이 남부 지방이 아니더라도 전국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예시로 대전의 월평균기온은 27.5°C 로 상당히 더웠던 2019년 8월 평균기온 27.2°C 보다 높고, 그 유명한 2016년 폭염 8월 평균기온 27.9°C보다 조금 낮은 정도다. 경상도에서도 동해안은 내륙보다 더하다. 평균기온이 대구보다는 낮고 서울과 비슷한 포항은 월 평균 기온이 "28.6°C' 로 2018년 7월, 8월 평균기온보다도 상당히 높고 오로지 1994년 7, 8월의 평균 29.2°C 의 기록만이 이보다 더 높다.
    • 심지어 제주시는 8월 초에도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더워서 8월 평균기온이 29.4 °C까지 치솟아 제주도 역대 1위의 극값을 기록하는 것도 모자라 전국 역대 1위의 8월 평균기온 극값이 기록되었다.[282] 제주시의 경우는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1994년, 2018년을 비웃을 만한 폭염이었는데, 7월 28일부터 9월 2일까지 8월 23일 하루 24.3°C을 제외한 36일동안 계속 열대야가 이어졌으며, 13~15일 3일 연속으로 36°C 를 넘기는가 하면[283] 8월 6일과 8월 8일에는 아침 최저기온 29.7°C 를 기록하며 1923년 제주시 관측 시작이래 97년만에 가장 높은 아침 최저기온을 세우는 등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졌다. 다만 서귀포시는 폭염이 없었고 그닥 덥지는 않았다. 대신 열대야는 제주시 못지 않았다. 2020년 8월은 2016, 2018년과 달리 하순이 될수록 더위가 강해지고 심지어 그 해 최고기온 기록이 세워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시로 강릉은 8월 25일 낮 최고기온이 36.5°C 까지 오르며 83년만의 8월 하순 최고기록 을 세웠으며[284], 대전은 8월 25일 35.4°C 를 찍더니, 8월 28일에도 기어이 다시 최고기온 35.0°C 를 찍으며 1969년 대전 관측이래 가장 늦은 35°C를 기록했다. 인천의 경우 관측소가 바닷가에 있어서 기온이 못 올라서 타 지역과 달리 6월 폭염도 없었고 이상 저온이 심한 7월 10일부터 8월 11일까지는 물론이고 더위가 시작된 8월 12일~24일에도 30°C를 넘긴 적이 없어 2020년에는 폭염이 없다는게 거의 확정되었으나 바비로 인해서 26일에 34°C까지 오르면서 폭염이 기록되었고 극값만 봐도 인천 기준 2016년 폭염과 맞먹는다. 서울도 113년 기상관측 이래 최초로 8월 한달동안 최저기온이 21.5°C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같은 해 1월과 더불어 최저기온 극값이 가장 높은 진기록을 세웠다. 우연히도 다음해 3월에도 최저기온이 -1.2°C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다음해 10월에도 10월 5일에 가장 높은 최저기온(21.7°C)을 기록해 공교롭게도 7개월 주기로 최저기온 극값 최고 진기록을 세웠다. 서울에서 8월 극값이 34.5°C인데 약해보일 수 있으나 이게 25~26일, 즉 처서를 넘어서 연속으로 기록되었으며 일평균기온도 8월 26일에 30도를 넘었는데 이런 기온은 이보다 늦은 날에 1939, 1943년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즉 6일 늦었다면 9월에 그럴 뻔 했다. 수원은 아예 월 최저기온 극값이 21.7°C이다. 게다가 8월 27일 바비가 지나간 이후, 덥고 습한 공기를 몰고 오면서 마치 동남아 처럼 극단적으로 습도가 높은 날씨에 열대야와 늦더위가 지속되었고[285] 일부 지역에 소나기가 자주 내렸지만 기온이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올라가면서 엄청난 꿉꿉함을 동반해 견디기 더 힘들게 만들었다. 서울의 경우는 최고기온은 조금 나아졌고 평균기온도 크게 높지는 않았으나 최저기온은 기록적으로 높았다.
    • 그러나 이 늦더위 현상도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9월 2일부터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다음 날인 3일부로 올해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종료되었으며 기온도 평년과 비슷해져 완연한 초가을이 찾아왔다.[286] 심지어 곧이어 따라온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9월 5~7일은 이상 저온 수준까지 갔다.
    • 즉 이번 여름이 시베리아발 한기남하라는 특이변수가 없었으면 기상청의 전망대로 2016년 폭염 수준의 처럼 되었을 것이다.[287] 다만 2018년 8월과의 차이점이라면, 2020년 8월은 강수가 잦다 보니 낮 기온이 극단적으로 올라갈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공식 최고기온도 8월 20일 양산시의 37.8°C 에 머물렀다.[288] 대신, 기온이 내려가지 않고 처서를 넘어도 더위가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어 8월이 끝날때까지 33~37°C 안팎의 더위가 지루하게 이어졌다.[289] 정리하면 2018년처럼 38~40°C 를 넘는 극단적인 폭염은 없을지언정, 한달 내내(특히 처서 넘어까지) 더위가 이어져 8월 평균기온 자체는 남부 지방 한정 손에 꼽을 정도로 높았다. 2020년 여름의 이러한 반쪽으로 나뉜 특이한 특징 때문에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는 2020년 여름이 더웠다고 하면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남부 지방 입장에서는 굉장히 더운 6월과 8월을 모두 겪었으니 2020년 여름이 더운 여름으로 기억될것이다.[290]
    • 전국 8월 평균기온은 26.4°C로 8월 초에 저온현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하순 늦더위로 평년보다 1.5 °C 높았으며 상위 6위를 기록했다. 또한 기온도 높은 편인데 집중호우도 많아서 강수량도 평년보다 많은 편이었으며, 전국 평균 강수량은 401.6mm로 평년의 274.9mm보다 126.7mm 많았고 특히 강원영서 705.3mm(평년 304.5mm), 수도권 575.2mm(평년 319.1mm) 지역은 평년보다 매우 많았지만 제주도는 149.8mm로 평년의 277.1mm보다 적은 값을 기록했다. 일조시간도 매우 적으나 제주도는 오히려 많았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는 작년보다 0.3 °C 낮았으나 여전히 평년보다는 0.2 °C 높았으며, 서시베리아, 알래스카, 북미 일부를 제외한 전 북반구가 작년보다는 기온이 낮았다. 동시베리아, 티베트, 북미 북서부, 카스피해 지역은 평년보다 낮았으며 반대로 서시베리아, 동아시아 등은 평년보다는 높은 기온을 보였다. 전 세계 8월 강수량은 85.5mm으로 작년보다 3.0mm, 평년보다 2.7mm 적었으며, 이는 주로 인도-동아시아 지역에 강수가 집중된 것이 그 원인이다.
파일:2020년여름철전국평균기온널뛰기현상.jpg
  • 2020년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3.8 °C로 평년보다 0.4 °C 높았으며 6,8월이 평년보다 꽤 높았으나 7월이 매우 낮아서 결과적으로는 평년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그쳤다.[291] 제대로 높았다고 볼 수 있는 지역은 강원도 영동 지역 한정이고 전라도나 서해안 지역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또한 여름철 전국 평균 강수량은 1007.0 mm로 평년보다 매우 많은 축에 속했다.
  • 물론 8월의 경우는 중부 지방보다 남부 지방이 더운 여름이 되긴 했으나 7월의 이상 저온은 남부 지방이 더 심했으며 서울특별시의 경우는 7월에도 일사와 야간구름, 동풍 등의 여러 요인으로 기온이 30°C 이상으로 오르는 날도 많았고 저온이 와도 기온이 빨리 올라 타 지역보다 높았다. 그리고 6월의 경우 영남을 제외하면 수도권, 강원도 등 중부 지방이 더웠으며 호남 지역과 서해안은 고온이 약했다. 그리고 8월 서울의 열대야 일수도 결코 평년보다 적지 않은 13일[292][293]을 기록했으니 중부보다 남부의 더위가 이례적으로 심했던 2010년, 2013년에 비하면 정도의 차이는 적은 편이다.[294]어쨋든 중부 지방의 더위가 덜했던것 만으로도 지난 해지지난해에 대구를 찍어누르는 엄청난 더위에 시달려야 했던 수도권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해소된 셈이다. 또한 봉화군은 17년만에 폭염이 없었다.

1.10.1.2. 해외[편집]

  • 6~7월, 러시아 - 추위로 유명한 러시아 베르호얀스크에서는 6월 21일 최고기온 38°C를 기록하여 2010년 러시아 폭염 당시의 38.3°C를 6월부터 거의 근접한 날씨가 찾아왔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시베리아 동부 사하 공화국의 넓은 지역에서도 가공할 폭염이 찾아왔고, 그 중 지표면 온도가 45°C를 기록한 지역도 있었다.# 이렇듯 시베리아 지역의 고온현상으로 찬 공기가 밑으로 내려와서 한반도는 7월 중하순에 기록적 인 이상 저온[295] 현상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296]

  • 7~8월, 서유럽 - 스페인 북부 지역의 산세바스티안은 기온이 42℃까지 올라 기록을 작성한 이래 6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297] 수도 마드리드에서도 39℃의 고온이 이어졌다. 영국 런던 서부에 있는 히스로 공항에선 37.8℃를 기록해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자 역대 세 번째로 더운 날로 기록되었다. #1 #2

  • 7~8월, 중동 -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51.8℃를 기록하여 관측 사상 최고치를 찍었으며 이라크 남부의 알 바스라 시와 아마라시는 53℃까지 올라갔다. 이라크는 이미 2015년에 체감 온도 73℃, 습구온도 38.4℃[298]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 외에 사우디아라비아 51.8℃, 레바논도 45.4℃까지 최고 기온이 올라갔으며 원인은 홍해에서부터 중동 일대에 정체된 고기압의 영향으로 인한 열돔 현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와중에 전력난까지 시달려 이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2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1 #2

  • 8~9월, 일본 -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한국, 중국, 남아시아권)과 달리 북태평양 기단에 완전히 장악되면서 폭우가 일찍 끝난 대신 폭염이 찾아왔다. 8월 7일에 시즈오카시에서 37.1℃를 기록했으며 10일 기준으로 169개 지역서 35℃를 넘는 고온이 관측되는 가운데 기후현 타지미시에서 38.6℃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8월 11일 기준 수도권 지역은 40℃가 넘었다. 코로나19 대량확진 사태에 열사병 경보까지 내려져 엎친데 덮친격이 된 상황이다. #1 #2 #3 #4 2020년 8월 17일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에서 41.1℃를 기록하기도 해서 2018년 7월 23일과 타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299] #5 2020년 9월 3일 니가타현 산조시에서 40.4℃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6[300] 그 바람에 최악으로 높았던 2018년 8월 평균기온을, 2020년 8월이 제쳐버리는 사례가 일본 전국 각지에서 속출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 2010년 8월과 비슷하거나 높은 곳도 있다. 오사카는 2020년 8월이 30.7도'이다. 최근엔 기후변화로 달라지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9월을 초가을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9월에 40℃ 대를 기록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일 수 있다. 2020년 고온의 위엄을 알 수 있다. 9월에 33도를 우습게 넘어가는게 초가을이라니...[301]

  • 8~9월, 미국 서부 - 8월 16일,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에서 54.4℃(130°F)를 기록하면서 정확한 기온 측정 시스템을 구축한 이래 역대 가장 높은 기온[302]이다.#1 하지만 2021년에 캐나다가 5°C가까이 국가 신기록을 갱신하면서 비정상도를 고려할 때 데스밸리가 56.7°C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존재하며 갑론을박이 있다. 9월 5일, 미국 기상청은 노동절 연휴 기간 동안 로스앤젤레스 최고 기온이 43℃까지 치솟고 라스베이거스도 40℃를 웃도는 폭염이 있을 것이라고 예보했다.#2 실제로 6일에 LA 카운티 우들랜드 힐즈가 49.4℃를 기록하면서 종전 최고 기록인 2006년 48.3℃을 뛰어넘었으며 샌루이스오비스포 카운티의 파소 로블레스도 47.2℃를 기록하였다.#3 게다가, 2019-2020 호주 산불 규모와 맞먹을 정도의 대형 산불이 발생해 서울시의 30배에 달하는 면적을 태우고 3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20년 미국 서부 산불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불 문서 참고.

  • 9~10월, 파라과이 - 9월 하순부터 10월 초까지 계속된 폭염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의 온도가 40℃ 이상으로 올라갔다. 9월 26일 그란차코 지역에 위치한 서부 포소온도에서 45.5℃가 기록되어 파라과이 역대 최고 기온이 갱신되었고, 수도 아순시온에서도 42.3℃가 기록되어서 1934년 기록된 종전의 최고기온 42.0℃를 넘어섰다.# 이러한 폭염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303]

1.10.2. 2021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1년 폭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1년 북미 서부 폭염 사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1년 폭염/대한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1년 여름은 북반구 각지에서 폭염이 찾아왔으며 특히 북미,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등에서는 6월 중순 이후 대륙을 가리지 않고 북반구 곳곳이 돌아가며 각종 폭염기록이 깨졌다. 특히 북미의 경우 2018년 동아시아를 뛰어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폭염 중 하나를 겪었다. 한반도는 1월 중순~4월이 고온이었으나 반대로 5월이 저온이었지만 7월이 되자 다시 매우 더워졌고 8월 중순이 되자마자 폭염이 주춤하여 8월은 서울, 전국 모두 약간 낮았다. 그러나 9~10월은 다시 고온을 보였으며 특히 10월의 경우 초반에 매우 극단적인 고온 현상을 보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장기화 속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7월 초부터 터진 4차 대유행으로 인해 마음놓고 워터파크나 해수욕장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던 물놀이장도 2년 연속으로 운영하지 않게 되어[304] 불쾌지수가 더욱 치솟는 여름이 되었다.


1.10.3. 2022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2년 폭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2년도 어김없이 북반구 곳곳의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관측되었다.


1.10.4. 2023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3년 폭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3년 폭염/대한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관측 기록[편집]



2.1. 평균 기온 (서울)[편집]


서울 순별(旬別) 평균기온 (출처)
(2011년 이후, 7월 상순~8월 하순)
연도
7월 상순
7월 중순
7월 하순
8월 상순
8월 중순
8월 하순
2011년
23.8
24.8
25.3
26.5
24.8
26.0
2012년
23.9
24.0
28.1
30.5
26.4
24.7
2013년
25.1
25.3
26.1
28.2
28.6
26.5
2014년
26.2
26.5
25.8
26.6
24.0
24.9
2015년
24.9
25.8
26.8
27.7
26.7
24.5
2016년
24.6
25.7
28.2
29.7
29.7
24.9
2017년
25.9
27.2
27.6
29.0
25.1
23.8
2018년
24.0
28.0
31.1
31.3
29.7
25.6
2019년
25.5
25.4
26.7
29.2
27.4
25.2
2020년
24.6
23.7
24.2
25.3
27.1
27.1
2021년
25.0
28.3
30.8
27.9
26.4
23.5
2022년
28.3
26.2
27.5
27.5
26.6
23.4
2023년
26.5
25.4
28.1
29.1


평균값[a]
25.1
25.9
27.4
28.3
26.9
25.0
평년[b]
평균기온
24.4
25.0
26.5
27.1
26.4
24.8
과거 평년[c]
평균기온
24.0
24.5
26.0
26.6
26.1
24.4

서울 월별(月別) 평균기온 (출처)
(2011년 이후, 7월~8월)
연도
7월
8월
평균
2011년
24.6
25.8
25.2
2012년
25.4
27.1
26.3
2013년
25.5
27.7
26.6
2014년
26.1
25.1
25.6
2015년
25.8
26.3
26.0
2016년
26.2
28.0
27.1
2017년
26.9
25.9
26.4
2018년
27.8
28.8
28.3
2019년
25.9
27.2
26.6
2020년
24.1
26.5
25.3
2021년
28.1
25.9
27.0
2022년
27.3
25.7
26.5
2023년
26.7


평균값[a]
26.1
26.7
26.4
평년[b]
평균기온
25.3
26.1
25.7
과거 평년[c]
평균기온
24.9
25.7
25.3

2018년은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고, 2016년, 2021년, 2019년, 2022년, 2013년, 2012년, 2017년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7월말~8월초는 2020년이 가장 서늘하고 2011년2014년도 서늘한 편이었다는 걸 알 수 있으며, 8월 중순은 2011년, 2014년, 2017년이 서늘했다.

12개 해 중 2011~2019년 구간의 8월 상순을 보면 무더위가 매우 심했고[305] 1년 중 가장 더웠다. 그 탓에 8월 상순 서울의 평균기온이 무려 1.7°C나 올랐다. 그리고 최근 6년[306]의 7월이 매우 더워서 7월 중순 및 하순도 1.4°C나 올랐다. 7월 상순은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온난화 경향이 꽤 있고 8월 중순도 7월~8월 상순만큼은 아니지만 고온인 편이라 다소 올랐다. 그러나 8월 하순은 2013년, 2020년을 제외하면 평범하거나 낮은 편이며 높아도[307] 심하게 높진 않다. 7월 말~8월 초는 2011년과 2014년에도 시원했지만 2020년에 비하면 1°C 이상 높다.[308]

그리고 7~8월 기준 2015년은 최근 여름 치고는 평범하고 폭염도 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년보다는 다소 높은 편이고, 2019년은 최근 여름 치고도 높은 편이며 평년보다 꽤 높지만 전년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2020년도 7월 하순~8월 초순은 이상 저온이었지만 더위가 늦게 찾아와서 8월 중순은 평년보다 높았다. 그리고 하순도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309]

2021년은 매우 이례적으로 8월 상순이 7월 하순보다 2.9°C 나 낮았다. 7월 하순이 8월 상순보다 기온이 훨씬 높았다.[310] 이는 폭염의 강도가 7월 중하순에 집중되었고, 8월 상순은 7월 하순만큼은 아니지만 다소 무더운 편으나, 몇몇 날은 강수로 최고기온이 떨어졌고 입추 전후로 최저 기온이 조금 떨어져 기온이 낮아졌다.[311]

2022년은 6월 하순 평균 기온 1위, 수도권 기준 첫 6월 열대야를 달성했으며, 서울 기준 7월 상순 28.3°C로 역대 1위다. 그러나 중순은 잠시 열기가 주춤했으나, 7월 하순~8월 상순에 폭염이 닥쳐 모두 27.5°C를 기록했다. 8월 상순은 열대야가 심했으나 그마저도 폭우로 인해 주춤해졌다. 8월에는 19년만에 8월 폭염이 없었으며 작년 8월보다도 조금 낮았다. 다만 남부지방과 강원영동, 제주시는 폭염이 꽤 심한 편이였다. 강원영동, 제주시는 8월이 최난월이었다.

최근 10년(2011년~2020년) 7월 하순은 27.0°C이며, 1981년~2010년 평균보다 1°C 높다. 최근 10년(2011년~2020년) 8월 상순 평균은 28.4°C로 평년보다 1.8°C 높으며, 최근 10년(2011년~2020년) 8월 중순 평균은 27.0°C로 평년보다 1°C가 높았다. 그리고 평년의 서울 7월은 24.9°C, 8월은 25.7°C인데 최근 30년(1991년~2020년) 7월 평균기온은 25.3°C, 8월 평균기온은 26.1°C로 평년보다 각각 0.4°C씩 올랐다.

서울 평균기온 순위

7월
8월
1위
1994년
28.5°C
2018년
28.8°C
2위
2021년
28.1°C
2016년
28.0°C
3위
2018년
27.8°C
1943년
27.8°C
4위
1939년
27.6°C
2013년
27.7°C
5위
2022년
27.3°C
1994년
27.6°C
6위
2017년
26.9°C
1939년
27.5°C
7위
2000년
26.8°C
2019년
27.2°C
8위
1973년
26.8°C
2012년
27.1°C
9위
1978년
26.4°C
1924년
1975년
2006년
27.0°C
중간 생략
최저 2위
1913년
22.3°C
1980년
22.8°C
최하위
1954년
21.9°C
1936년
22.7°C

여담으로 서울 기준으로 공식 기상관측을 시작한 년도부터(1907년 10월 기상관측 시작) 년도 끝자리가 1,4,5인 년도는 폭염이 모두 나타났다. 그러나 끝자리가 1일 경우는 1951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반짝 더위만 나타나서 매우 짧게 한두번씩만 더웠다. 1951년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 불가지만 상당히 더웠다.[312] 2021년도 폭염은 나타났으며 7월은 매우 더워서 이 기록이 깨졌지만[313] 8월 더위는 다소 약해지면서 서울과 전국 모두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았다. 우연이지만 폭염이 심하지 않으면 꼭 때 이른 더위 또는 늦더위 중 최소 1개 이상 심한 것 같다.[315]


2.2. 폭염 일수 관련[편집]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열대야 일수 관련 기록에 대한 내용은 열대야 문서
5번 문단을
열대야#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1. 평균 일수[편집]


순위
7월
8월
연합계
연도
일수
연도
일수
연도
일수
1
1994
17.7
2016
16.6
2018
31.0
2
2018
15.4
2018
14.1
1994
29.6
3
1978
9.4
2013
12.1
2016
22.0
4
2021
8.1
2006
11.9
2013
16.6
5
1973
7.8
1990
10.8
1990
16.4
6
1977
7.5
1996
10.3
1996
15.7
7
2008
6.3
1994
9.8
2004
14.8
8
2004
6.2
2019
8.8
1978
14.7
9
1981
6.1
1984
8.4
1973
14.3
10
2017
5.9
2012
8.1
2012
14
최저
1974
0
1980
0
1993
0.1
1993
1993
평균값
전체
(1973~2022)
4.0
5.3
10.2
30년
(1991~2020)
3.9
5.7
10.5

연 평균 폭염일수는 1991~2020년 기준 전국적으로 11일 정도 발생한다. 폭염일수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서울은 보통 10일 정도 발생하고 폭염의 고장인 대구광역시는 25일이나 발생하며 광주광역시는 16일, 대전광역시는 12일 정도 발생한다. 그 밖의 제주 9일, 강릉 13일, 진주 15일, 춘천 11일, 청주 14일, 전주 19일, 포항 17일, 영천 21일, 의성 22일 등이며 반면에 서해안, 남해안과 부산 지역은 폭염일수가 연간 2~5일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서귀포시는 열대야로 유명하지만 극단적으로 오르지 않아 폭염일수가 적다. 2010년대 들어 폭염이 심화되면서 전국적으로 폭염일수가 늘어나고 있다. 반면 대관령은 폭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교차로 유명한 의성군의 경우 봄철(4~5월)에 최저기온이 한 자리수로 쌀쌀한 날씨에서도 폭염이 찾아오기도 한다. 2018년 4월 21일 의성군의 최저기온은 7.8℃로 추위를 느낄 수 있는 온도인데 낮에는 33.1℃로 폭염이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교차로 인해 일평균기온이 20℃ 미만이었다. 서울도 2019년 5월 24일에 16.2℃로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출발했지만[316] 33.4℃까지 오르면서 일교차가 심했고 폭염이 찾아왔다.

폭염의 경우 7월 중순~8월에 주로 발생하며 5~7월 상순과 9월에도 발생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강릉, 포항 등 동해안은 4월에도 발생했다. 서울의 경우 1932년, 1950년, 2014년, 2019년은 5월, 1920년, 1935년, 1939년, 1943년, 1948년은 9월에도 폭염일수가 발생했다.


2.2.2. 지속 일수[편집]


순위
연도
지역
시작일
종료일
지속 일수
1
2018
충남 금산군
7월 11일
8월 16일
37일
2
2016
경남 합천군
7월 23일
8월 25일
34일
3
1996
경남 합천군
7월 22일
8월 20일
30일
4
2004
경남 남해군
7월 20일
8월 14일
26일
5
1994
대구광역시
7월 1일
7월 25일
25일
1995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7월 26일
8월 19일
최저
1993
제주
7월 12일
7월 13일
2일


2.2.3. 빠른 / 늦은 폭염일[편집]


가장 빠른 폭염일
순위
연도
일자
지역
1
1998
4월 20일
강릉시·울진군
2
2018
4월 21일
울진군·의성군·포항시
3
2005
4월 28일
영덕군·울진군
4
2008
5월 3일
강릉시
5
1997
5월 6일
대구광역시

가장 늦은 폭염일
순위
연도
일자
지역
1
2007
9월 21일
대구광역시·합천군
2010
경주시·대구광역시·밀양시·순천시·영천시·제주시·주암·포항시·합천군
2
1998
9월 19일
광주광역시·남원시·부안군·부여군·전주시·정읍시
2008
고창·고창군·광주광역시·남원시·밀양시·산청군·순창군·순천시·임실군·전주시·정읍시·주암·진주시
2022
서귀포시[317]·광양시
3
2013
9월 18일
전주시
4
2011
9월 17일
광양시·광주광역시·남원시·순창군·순천시·완도군·임실군·장흥군·주암·해남군
5
1975
9월 15일
제주시


3. 군대에서[편집]


군대에서는 여름혹서기 훈련을 한다. 하지만 혹한기 훈련보다도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318] 적어도 현실의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혹서기 훈련을 잘 하지 않는다. 굳이 한다고 해도 당연히 일사병&열사병 등에 대한 대비 교육을 철저히 받은 뒤에야 비로소 훈련에 투입된다. 실제로도 35도 이상이면 연대장 재량 하에 하던 훈련도 중지시킬 수 있다. 군대에서는 온도 지수를 민간 관공서보다 더 신경쓰는데 이는 자칫 전투력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구, 습구, 흑구 온도를 고려하여 일정 값 이상 나오면 야외 활동이나 훈련을 축소하거나, 금지시키거나, 일과 시간을 조정하기도 한다.[319]

보통 연대급 이하 부대들은 혹서기 때 유격 훈련을 하지만, 사령부에서는 유격 훈련을 하지 않고 혹서기 훈련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말로만 혹서기 훈련을 하지 실제로는 산 속으로 들어가 큰 나무들의 그늘 밑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마치 혹한기 훈련처럼 경계근무나 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특전사, 특공대, 수색대 등 엘리트 장병들을 육성하는 곳은 폭염에도 훈련을 강행하기도 한다.[320] 자신이 장기복무 더 나아가 장성급 장교를 간절히 원한다면 제아무리 폭염이라고 해도 다른 사관생도들보다 더욱 더 열심히 훈련에 임하여 최상위권의 성적을 가져야 한다. 사관학교 출신 장성급 장교들을 보면 이들은 과거 꽃다운 청춘 시절 사관학교에서 폭염이 몰아쳐도 매우 열심히 남들보다 열심히 훈련을 잘 받아서 별을 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미래에 다른 동기들보다 빨리 별을 달고 싶다면 아무리 힘들다고 투정 부리지 말고 열심히 훈련 받도록 하자.[321]


4. 여담[편집]


nn94년은 극심한 폭염이 발생하기로 유명하다. 1594년[322], 1794년[323], 1894년[324], 1994년[325]이 대표적이다. 1694년은 예외로 더위가 발생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1942년, 1944년, 1977년, 1995년, 2010년, 2013년, 2020년 폭염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심했다.[326] 반면 1943년, 1949년, 2004년, 2015년, 2016년, 2018년, 2019년, 2021년 폭염은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심했다.[327]

2012년 이후로 폭염 관련 기록이 날짜 별로 자세히 작성되어 있는 건 편집자에게 있어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 그 전에 있던 사건보단 기록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쉬운 말로는 '가까운 과거에 있던 일일수록 자료가 많으니까' 혹은 '내가 겪은 폭염이 가장 더운 폭염'이라고 믿으니까. 그리고 조금만 더워도 득달같이 위키로 달려와서 본 문서에 기록하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다. 이상 고온/사례이상 저온/사례에서 볼듯이 심한 고온이나 심한 저온이 아니라도 기록되어 있다. 특히 2020년부터는 문서에 대한 서술이 길어지고 있다.[328] 물론 과거 사례도 많이 추가했다. 다만 과거에 비해서 빈도가 조금 줄어든 한파는 의외로 과거 사례가 많다 보니 과거와 현재의 글 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한파도 아닌 그냥 겨울 자체를 거기에다가 넣는 경우까지 생겼다.[329] 대표적으로 2015년[330], 2016년 12월[331], 2019년 1~2월[332]과 12월, 2020년 1월[333]

지구 온난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2000년대 이전에도 기록이 안 되었을 뿐이지 폭염 자체는 꽤 많이 일어났다. 게다가 2010년부터 크게 더워진다고 부각된 이유도 그 전 해인 2009년이 워낙 시원한 여름인 탓도 있다. 그리고 위의 XX년만에 가장 덥다는 말도 기자들이 자극적인 기사를 위해 쓴 것이라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1981년, 1988년, 1994년은 3년만의 폭염이 발생했다.

단적으로 저 위에 1977년 한국에서 폭염이 일어났다고 되어 있는데 정작 다음 해인 1978년에는 32년만의 폭염이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있다. 더 웃긴 건 그 전 해인 1976년또 18년만의 폭염을 운운하고 있다는 거. 그렇게 따지면 한도 없다. 애당초 대륙성 기후인 한반도에서 폭염, 홍수, 가뭄 이 셋은 매 해마다 일상적인 일이며, 셋 중에서 하나라도 안 일어나는 게 오히려 특이한 일이다. 서울에서 폭염이 없는 해는 1913년, 1969년, 1979년, 1980년, 1986년, 1987년, 1992년, 1993년, 1998년, 2003년 밖에 없다. 하지만 아래 자료를 봤을 때 2011년 이후의 여름이 1981년~2010년 여름보다 대체적으로 더 더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11~2022년 8월 상순은 평년보다 1.6°C나 높다. 물론 2020년의 저온 현상 때문에 깎였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위의 폭염이 없는 해를 나열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중 폭염이 없던 해는 1913년 뿐이다. 극값도 31.7°C로 역대 2번째로 낮다. 연도별 최고기온 극값을 비교해 보면 의외로 일제강점기~6.25에는 높다가 196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는 낮고 2000년대 중반~2010년대부터 다시 올라가는 모양을 보인다.

극심한 폭염이 발생한 년도들은 4월에 이상 고온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례로 1943년, 1994년, 2016년, 2018년, 2021년 등.[334]

서울에서 8월 기준으로 월평균 25℃대를 기록한 사례가 115해 중 41해[335]로 정말 많다. 지구온난화열섬 한점 없는 순수 한더위가 나타났던 구한말부터, 반대로 저 둘이 만성으로 나타나는 현대 여름에도 나타나는지라 사실상 디폴트 수준이라 봐도 된다. 1907년부터 현재까지의 8월 평균기온이 25.6°C니 당연한 셈. 비공식을 포함해서 가장 오래된 사례가 1887년 8월25.4~25.6℃이고[336], 가장 최근의 사례도 135년 뒤인 2022년 8월 25.7℃이다. 일제시대~1990년대 8월 평년이 25.4°C 정도고 1981~2010년은 25.7°C, 1991~2020년은 26.1°C이기 때문. 그 다음 26℃대[337], 24℃대[338], 27℃대[339], 23℃대[340]이고, 제일 적은 것은 22℃대[341]과 28℃대[342]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01:55:30에 나무위키 폭염/사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그리고 몇달 뒤 가을철에는 때늦은 강우가 왔다는 기록도 있다.[2] 이때 조선에서도 왕과 신하들이 폭염과 가뭄이 심하다고 언급하는 것을 보아 모르긴 몰라도 이해의 여름은 유럽이든 조선이든 정상이 아니었던 듯 하다.[3] 1593년 5월 27일(양력 6월 25일)자 기록.[4] 당시 서울의 여름 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길이 없어 이 더위가 전국 단위였는지, 경상도 위주였는지 알 수 없다.[5] 참고로 평범하게 더위가 왔을 경우, "더워서 찌는 듯 하다"라는 기록이 일반적이라고 한다.[6] 그리고 400년 뒤 1994년 7월에도 더위가 쇠도 녹일 듯한 폭염이 왔었고, 수도 서울은 7월 24일38.4℃를 기록하기도 했다.[7] 이 사이트의 계산에 의하면 5월 24일로 나온다.[8] 현재는 5월 하순이 사실상 여름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다만 절기상으로는 여름이 맞다. 음력 4~6월을 여름으로 보기 때문이다.[9] 1627년 5월 29일(양력 7월 11일)자 기록.[10] 1627년 6월 17일(양력 7월 29일)자 기록.[11] 한편 이 당시에 동아시아에 가뭄이 심각했고 조선도 예외가 되지 못 해 양력 6월에 해당하는 시기부터 계속 가뭄이 언급되는데, 이 더위도 그 영향인지는 미상. 결국 1627년부터 계속된 가뭄 때문에 1628년에는 명나라에 대기근이 터지고 말았고, 대규모로 민란이 터져 안 그래도 나라 상태가 부실하던 명나라에 망조가 급속도로 들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임진왜란 이후 또 한번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한다.[12] 양력 9월 8일이다.[13] 서울의 7월 평균 수준이다. 서울이 위도 지역 중에 시원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북위 48° 에 위치한 파리의 여름 기후가 서울보다 5°C나 낮다는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높은 것이다. 그래도 의문이 든다면, 파리의 7월 평년이 20.5°C인 상태로 25.0°C가 기록되었으니, 서울로 따지면 24.9°C인 서울이 29.4°C라는 정신 나간 수치를 기록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유명한 2018년 7월이 27.8°C였고, 1994년 7월28.5°C였으며, 8월로 넓히더라도 28.8°C가 한계이다.[14] 한편 한국은 이 때 이상 저온이 찾아와서 서울이 파리보다 낮았다.[15] 속이 타는 사람의 가슴을 축여주고, 더위를 먹은 사람의 열을 식혀주는 약이라고 한다.[16] 1794년 6월 28일(양력 7월 24일)자 기록.[17] 여담으로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선 혁명 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진 끝에 7월 28일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 실각하는 일이 있었다. 한반도가 무더우면 유럽 쪽에 무슨 큰 일이 터진다. 1914년과 1939년에도 그렇고...[18] 실제로 1888년 8월과 2018년 8월의 달력이 같다.[19] 1940~2023(향년 83세). 이하 비공식 기록은 대부분 이 블로그이다.[20] 2000년대 중 꽤 더운 6월인 2004년, 2007년 6월과 같은 수치이다. 열섬 현상도 전혀 없었던 시절에 평균기온이 23도를 넘어 2000년대~2010년대에도 이상 고온으로 인정되는 기록을 세운 셈. 1904년 이전의 기록은 전부 비공식이지만, 공식이었다면 2021년 기준으로 2007년, 2004년에 이어 12위로 랭크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바로 아랫순위가 희대의 폭염으로 악명을 떨치기 전인 2018년 6월의 23.1°C이다.[21] 1917년, 1927년, 1972년 7월과 같은 기록을 세웠는데, 이 세 해의 공통점이 최고 33°C 이하인 날에 열대야가 하루에서 사흘 정도 기록했다는 정도이다.[22] 2022년 6월과 같은 수치이고, 1997년, 2010년 6월보다 0.1℃만 낮다.[23] 7월은 1973년, 2000년 7월 다음으로 높고, 8월은 2001년, 2007년, 2010년, 2020년 8월 26.5℃보다 높다.[24] 서울은 공식 기상관측을 1907년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1880년대부터 이미 서양에서 넘어온 선교사들, 식민지 수탈을 위해 한반도에 들어온 일제세력에 의해 기상관측이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25] 당장 기상 관측 이래 레전드 폭염 삼총사로 뽑히는 1939년, 1994년, 2018년 여름들을 생각해보자. 서울 7월 강수량이 각각 순서대로 87.6mm, 139.5mm, 185.6mm 로 매우 적었다. 이러한 기록이라면 7월 초반에 장마로 인한 집중호우 이후 전선이 빠르게 북상해서 폭염이 찾아온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2016년이 있다.[26] 사실 1880~1900년대 초반 사이 한반도는 전반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잦았다고한다. 이 때문에 옛날임에도 평균기온 27도 이상인 지금 기준으로도 꽤 더운 해들이 몇몇 존재한다. 하단에 서술. 물론 블로그의 평년값이 높다는 것을 감안해도 2020년 8월(26.5도)와 비슷하거나 높다.[27] 사실 이 시대에 26.5도 정도도 대단한 것이 맞긴 하다. 현대 보다도 높으며 8월 평년이 25도 초반으로 여겨지는 당시 시대에 평년보다 1.5도 정도 높다면 당연히 평소보다 덥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이게 유효해서, 81~10년 8월 평년 기온에서 1.5도 근처까지 올리면 둘다 최고 36도 후반까지 기록해서 나름 한더위했던 2012년, 2019년 8월이며, 91~20년 기준으로는 1994년, 2013년 8월까지 올라가게 된다. 사실 구한말보다 평균이 비약적으로 오른 지금도 8월에 평균 26.5도를 기록할 정도의 더위면 너무 덥다는 소리가 최소 한번씩은 어김없이 나온다. 21세기만 해도 2001년, 2007년, 2010년, 2020년, 이렇게 4차례나 기록했으며, 특히 뒤늦게 더위가 온 2020년 8월에는 월말로 갈수록 미치도록 덥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반응이 아주 많았다. 8월 26일에 최저기온이 27도를 넘겼으니... 아무튼 이를 감안하면 국립 도서관 책의 기록은 다른 비공식 기록보다 묘하게 현실적이기도 하다.[28] 희대의 폭염이 오기 전인 1994년 6월의 22.8°C보다 0.1℃ 높고 2018년 6월의 23.1°C보다 0.2°C 낮다.[29] 2015년, 2016년 6월과 같은 수치이다![30] 2016년 7월의 26.2℃보다 높고, 1978년 7월의 26.4℃와 같다.[31] 2019년 8월 27.2℃, 2012년 8월 27.1℃보다 높다![32] 그러나 바로 밑에 하술할 양상을 보면, 초반은 몰라도 후반에는 최고와 최저 간에 격차가 적은 양상 때문에 월평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1894년, 1967년, 1990년, 2020년 8월에도 나타난 바가 있어 드물다고 보기 힘들다.[33] 서울의 역대 7월 13일 극값 기록(34.6℃, 1994년)보다 높다. 서울 역시 35~36℃를 기록해 일찍부터 극값 기록 경신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1892년에 극값 경신을 한 것이 1994년에도 뚫지 못 한채 130년 동안이나 그대로였을 것이란 뜻.[34] 1871~1900 당시 도쿄의 6월 평년기온이 20.6°C이다. 즉, 평년보다 3 °C나 높은 기온을 기록한 셈. 1990년대 이후 도쿄는 6월 평균이 23°C를 넘나드는 경우가 빈번해졌으며, 2004년 6월이 23.7°C, 2010년 6월이 23.6°C를 기록해 110여 년 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두 해도 7~8월은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 펼쳐졌다. 이를 보아 1894년 여름은 100여 년 이상 앞서간 폭염이라고 봐야 할 정도. 더욱이 1894년은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에 비해 열섬 현상이 턱도 없이 부족했던 시대였다.[35] 인천이 이렇다면 서울도 월평균 27°C를 가볍게 넘었을 것이며, 실제로 1943년 8월과 2016년 8월에 인천이 27.4°C를 기록했을 때 서울은 각각 27.8°C28.0°C를 기록했으니 1894년 8월 서울의 월평균은 저 둘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블로그의 과장 확률이 높은 1888년과 달리 1894년은 이와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36] 기록에는 화씨 92.0°F.[37] 청일전쟁이 이때 발발하였다. 그렇게 더운 날씨에 전쟁은 어떻게 하셨수?[38] 81~10년과 91~20년 평년 6월이 0.5°C 차이임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기록이다.[39] 7월은 이상 저온[40] 한편 이 시기에 유독 여름철 강수량이 많이 부족한 현상도 두드러졌다. 여름이 서늘하다고 꼭 좋은 것임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41] 월강수 200mm 여도 마른장마인데 30mm 대라는 것은 정말 너무 비정상적이다. 1901년 문서의 링크를 타고 가면 알겠지만 서울 연강수량이 고작 370mm에 불과했다고 한다.스텝기후?[42] 부산은 인천에 비해 그 해 봄부터 꾸준히 비가 내렸는데, 강수량 탓도 큰것으로 보인다.[43] 정작 1902년은 1980년 수준으로 어지간히 쌀쌀한 여름으로 기록된 듯 하다. 이러한 관계는 1939년 폭염 이후 역대 최대 강수량으로 홍수가 잦았으며 평년보다 기온도 낮았던 1940년과도 비슷하다.[44] 4일 최저기온이 25.5 °C로 가장 높아서 이날이 폭염의 정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37도 중후반대인데 더 가까운 37.5 °C 정도로 최고기온을 맞춘 듯하다. 약 37.3~37.7 사이였을듯.[45] 다만 역대 최고는 아니다. 1949년 8월 16일의 38.9 °C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8월 하순에서도 1943년 8월 21일이 37.7 °C로 살짝 더 높다. 그래도 전체에서도 최고 3위라 순위권 안에 충분히 들어가며, 8월 상순에는 37.5 °C 기록이 역대 1위이다.[46] 평균적으로 서울이 인천보다 2도 정도 높아서 이 경우 2018년 8월에 맞먹는다. 다만 1949년, 2002년 등 드문 사례이지만 인천이 더 더운 적도 있기 때문에 인천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더우면 서울은 인천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47] 출처는 러시아 기상 사이트의 대구 항목이다. 우리나라 기상청에선 1907년 8월의 대구 날씨가 거의 공백인데, 어째서 러시아에서 이렇게 표기했는지 의문. 아무튼 이 사이트 특유의 오차를 고려할 때 27.1°C~27.4°C 정도.[48] 서울도 인천과 비슷했다는 가정 하에 이날에 최고 극값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49] 서울의 기상 관측소 자체는 2월 1일에 신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준비가 꽤 오래 걸린건지 8개월 동안 소식이 없다가 10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50] 8월 22일 이후로 다시 30℃대를 기록. 그리고 9월 말에 일평균 21℃도 더운데, 점점 서늘함이 가속화되는 10월 초라면 더욱 덥게 느껴진다. 심지어 늦더위가 심했던 2021년도 최고 기록이 28.8°C였으니... 물론 이 때는 열섬 현상으로 최저 기온도 상당히 높았으며 지속 기간도 더 길었다.[51] 얼마나 높은 수준이냐면 서울 6월 최고기온 상위 2위이며(1위는 후술할 1958년이다.) 2012년 8월의 서울 최고기온하고 같으며 이상 고온으로 취급되는 2020년 6월 최고기온인 35.4℃보다 높고 심지어 2016년 폭염이 발생한 2016년 8월 서울의 최고기온인 36.6℃보다도 높고 2019년 연중 서울 최고기온보다 고작 0.1°C밖에 낮지 않았다. 시기도 굉장히 빠른 것이, 앞서 언급한 1949년, 1958년 등보다 더 빠르다.[52] 이 폭염의 근원은 아무래도 대륙에서 내려온 난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태평양에서 왔다기엔 비슷한 시기의 나가사키에선 폭염은 커녕 27℃도 못 미치는 날씨를 보여서 어폐가 있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대구 등지에선 32℃에 그치는 등 오히려 난기의 기세가 서울보다 약했기 때문. 거기다 6월 16일경의 서울 일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의 격차도 컸다. 다시 말해 원활한 기온 상승과 하강을 방해하는 습기와 구름이 별로 없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러려면 습기를 머금을 일이 별로 없는 대륙 난기여야 하기 때문.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 시절의 이른 폭염은 기세가 센 대륙 난기+습기, 구름 없이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기온 상승을 부채질하는 풍향 등이 맞물려 그와 같은 기록을 낸 것으로 보인다...[53] 9월 늦더위도 없었고 평균기온도 다소 낮았으며 10월은 일제치고는 조금 낮있으나 2018년 10월 수준을 보였으며 10월 말부터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해 11월은 5년 전에 필적할 정도로 강했다. 그로 인해 1917~1918년 겨울도 역대 기록들이 경신되었다. 물론 1918년 2월은 라니냐가 끝나면서 중순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포근했다.[54] 1918년의 더위는 아마도 동풍으로 인한 푄 현상을 연상시키는 듯한 더위가 이어졌다. 실제로 서울에서 36도가 관측된 7월 25일에는 강릉시의 최고기온이 26.6 ℃에 그쳤다. 8월 7일도 27 ℃의 최고기온을 보였고 이후 강릉은 기온이 더 낮아져서 8월 9일부터 최고기온이 19.1 ℃로 20도에도 못 미치는 기온을 기록하며 급락했다. 또한 강릉에서는 7월 평균기온이 20.9°C로 강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이상 저온/사례/20세기 문서 참조.[55] 서울에서 이보다 더 높은 해는 1939년, 1943년, 1949년, 1994년, 2018년밖에 없다! 아마 이 기록은 동풍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동시기 강릉은 큰 더위가 없었고 제주도 남서쪽에 태풍(1940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 사례로 보자면 태풍 바비가 접근하고 있을 당시인 2020년 8월 25~27일의 날씨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이 태풍은 바비와는 다르게 대한해협을 가로질러 빠져나갔다.[56] 지금이야 열대야는 매년 여름마다 일상적인 수준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열섬 현상 등이 없어서 열대야를 기록했다는 것은 강한 더위였다. 게다가 1919년은 열대야 기준보다 1.4°C나 높아 기록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57] 이때 서울의 최저기온은 오히려 평년보다 낮아서 최저기온은 빨리 떨어져 20 ℃ 이하를 기록했는데 최고기온은 34~35 ℃까지 오르는 15~17 ℃ 차이의 강한 일교차를 보여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다시 최저기온이 올라서 20 ℃ 이상이 기록되었으며 8월 말까지 이어졌다.[58] 1919년 서울의 열대야는 8월 2일 26.4 ℃ 기록밖에 없다.[59] 21세기에서는 아무리 9월 최고기온이 높아도 2011년의 32.8 ℃가 최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매우 대단한 것이다. 물론 늦더위 현상으로 21세기 9월이 평균기온은 높지만 9월에 33도 이상을 기록한 해는 1948년 이후 70여년 동안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5월이 1950년 이후 2014년, 2019년에 폭염 일수를 찍었는 데에도 말이다.[60] 물론 그 이후 기온이 내려갔긴 했다[61] 특히 8월 21일 최고기온 35.0 ℃[62] 이는 현재까지도 전국의 7월 초 최고기온 역대 2위로 남아있다. 1위는 후술할 1934년이다.[63] 다만 대구는 7월 11일에 36.5 °C를 기록했다.[64] 인천광역시는 14일에 서울보다 더 높은 36.5 °C의 기온이 관측되며 한해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했다.[태풍] 파일:1924년태풍경로.jpg[일기도] 파일:19240812.jpg[65] 다만 월평균기온으로는 2012년 6월이 더 높다. 월 최저평균마저 20°C를 기록했기 때문.[66] 2020년 6월 22일 35.4 °C보다 높은 기록이다. 그로 인해 6월 평균기온은 22.9°C로 산출되었다. 당시 평년보다 2°C 정도 높고, 1981~2010 기준으로도 0.7°C 정도 더 높다. 월 최고평균은 29.8°C(?!)로 어지간한 2010년대 6월은 물론이고 2012년 6월(29.7°C)[65]보다도 더 높아서, 6월 최고평균 부문에선 아직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0년 6월이 월 최저평균이 좀 낮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67] 편차에서도 위엄이 돋보이는데, 평년 기온이 가파르게 올라 일제 시절 여름철 편차도 거의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린(6월은 일제보다 원래 현재가 더 높으며 온난화가 최근 10년 사이 가장 심했고 7~8월은 일제와 2000년대(1981~2010)과는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2010년대부터는 기온 상승이 크면서 여름 평균기온이 약 1도 상승했다.) 1991~2020 평년 기준으로도, 이 해 6~8월 편차 모두 플러스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6, 7, 8월 편차가 1991~2020으로 각각 0.2℃, 0.6℃, 0.1℃이다. 일제 시절 서울의 네임드 더위인 1939, 1943년도 1991~2020으로는 6월 편차는 마이너스임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기록. 이 기록은 거의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94년이 되어서야 다시 6~8월 편차 모두 마이너스가 없고 같거나 플러스가 기록된다. 이후 1997년, 2000년, 2010년, 2012년~2013년, 2015년~2016년, 2018년에 있다. 1981~2010년 평균으로만 봐도 세 달 모두 평년 이상을 보이는 달이 1929년 이후 1984년(22.6도, 25.2도, 26.3도)이며 이후로 1994년, 1997년, 2000년~2001년, 2010년, 2012년~2013년, 2015년~2019년, 2021년에 있었다.[68] 하지만 12월에도 11월같은 기온이 이어지며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파가 있긴 했지만 이상 고온으로 2019년 12월보다도 월평균기온이 높았다.[69] 인천은 2018년 폭염 당시에도 최고기온 기록이 35.9°C 에 머물 정도로 여름에 서울보다 확실히 시원하다. 되려 다음해이자 1930년 8월과 비교되는 2019년 8월이 36.0°C로 거의 대동소이했다. 보통 서울보다 1~3°C 이상 낮다.[70] 1930년 8월 서울/대구: 26.4℃/26.2℃
2019년 8월 서울/대구: 27.2℃/27.4℃.
[71] 심지어 지난 달인 7월에 비가 심하게 왔는 데에도 그렇다. 이는 2023년과 유사하다.[72] 물론 그 후 기온이 내려가긴 했다. 그래도 무려 33.5 ℃로 극값 순위권 안에 든다. 참고로 1950년, 1976년을 제외하고 2013년까지는 이 기록은 커녕 32도를 넘긴 적도 없었으며, 똑같이 33도를 넘긴 2014년, 2019년조차 이 기록을 넘기지 못했다. 그만큼 기록적인 것이다.[73] 그래도 9월에 30도를 넘는 일은 없었다. 즉, 극값은 5월이 더 높았던 셈. 심지어 6월보다도 높았을 정도였다. 이는 2019년과 비슷하나 차이점은 2019년 9월에는 30도를 넘는 일이 있어서 사실상 9월은 2020년과 비슷했다.[74] 이유는 관측사상 가장 규모가 큰 한파로부터 파생된 이상 저온 현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3월에는 영하의 평균기온, 4월조차 영하의 기온을 기록했고 1907년 이후 서울 월평균기온이 두 번째로 낮았다. 5~7월도 다소 추웠으며 8월에는 심한 이상저온을 기록했다. 더불어 8월 말에 3693호 태풍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7월에 폭염이 하루정도 있었다.[75] 8월 하순에 34.5 ˚C의 늦더위가 발생한 2020년 8월보다도 0.2 ˚C 높고 8월 이상 저온이 발생한 2014년과는 무려 1.6 ˚C나 차이난다. 여름철에 평균기온 1.6 ˚C 차이는 천지차이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9년 8월과도 0.5°C 차이다.[76]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폭염이 무자비하게 지속되는 유형은 아니고 중간중간에 29-31도의 날씨도 있긴 했다.[77] 서울과 대구가 33-35 ˚C 하고 있었을 8월 상순에 34-36 ˚C로 한층 더 심화된 폭염을 기록했다.[78] 현대에 이와 같은 폭염이 온다면 아마 일최저 28˚C 이상, 심하면 초열대야에 근접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79] 1919년 8월 초, 2022년 7월 상순과 비슷한 구조이며, 1937년에도 7월 하순의 폭염 원인은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압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연해주로 향하는 태풍 또는 열대저기압은 폭염을 다소 멈추게 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2016년 라이언록 등이 대표적 사례) 7월 말에 잠시 더위가 쉬어가는데, 2016년 같은 8월 말 극단 저온은 아닐지언정 전국적으로 더위가 심하지 않고 평범한 여름 날씨를 보였다. 반대로 중국 남부나 서해상으로 태풍이 접근하면 폭염이 심해지기도 한다. 2015년 찬홈, 2018년 야기, 마리아, 2019년 레끼마2020년 바비, 2021년 인파 등이 유명하다. 다만 2018년에는 룸비아와 같은 중국행이지만 열대야를 완화해주는 태풍도 있기 때문에 역시 이러한 태풍의 경향들은 기압계에 따라 유동적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80] 그럼에도 경성은 최고기온 32˚C 이상을 연일 기록했다.[81] 취소선을 그은 이유는 추풍령 39.8도의 경우 신뢰성이 떨어진다. 다른 요소는 없는데 최고기온만 딸랑 기록되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1948년 이전 추풍령의 경우 기온이 문제가 아니라 관측 일수가 매우 적기에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외의 1970년대 이전의 과거데이터를 조사해 보면 평균기온이 최저기온보다 낮은 등 오류값을 걸러내지 못한 경우가 아주 가끔씩 있다.[82] 이는 현재까지도 서울 최고기온 공동 3위이며, 후술할 1943년 폭염의 8월 24일과 기온이 같았다.[83] 이유는 39100호 태풍의 영향이라고 보는게 적절할 듯 싶다. 위력은 그닥 강하지 않았지만 당시 태풍의 진행경로가 조금 독특했는데, 제주,광주,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영향을 끼치며 서해안을 돌다 갑자기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주와 원산 지방에 영향을 주면서 일본 아오모리현까지 갔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S자 라인을 따르는 진행방향을 보였다.[84] 7월 9일~11일 남해안에 간접 영향을 준 3999호 태풍 이후 앞서 8월 29~31일의 39100호 태풍까지 2018년처럼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이 단 하나도 없었다. 폭염으로 인해서 태풍도 접근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5] 참고로 그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이 29일이고 2018년 폭염은 35일이다.[86] 화씨온도 99를 섭씨로 변환하면 37.2˚C가 된다.[87] 화씨 95 = 35˚C이다. 수은주가 110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보아 섭씨온도로 변환하면 (비공식적으로) 무려 43.3˚C를 기록하여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기온인 셈이다.[88] 1994년, 2018년 같이 짧은 장마로 시작하여 가뭄을 동반한 폭염으로 보인다.(물론 2018년은 2018년 한반도 폭우 사태로 인해 폭염 이후에는 가뭄이 덜했으나 15일로 2번째로 짧은 장마이다.)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기사에는 우기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맥락상 장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평년보다 늦고 그 기간조차 단기간에 그쳐 1973년6일에 버금가는 기록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에서 장마로 추정되는 강수기록이 있는 날짜가 6/24 ~ 7/11일인데 강수량이 115mm에 그치며 기록적인 가뭄을 보였다. 그 외에도 양쯔강에서 발달하는 저기압도 평년에 비해 매우 부진해 가뭄을 동반한 것으로 보인다.[89] 같이 나열된 해들에 비해선 폭염 강도가 확실히 덜했으나, 8월 하순에 33℃가 2번 기록되었기에 약하다고도 볼 수 없다.[90] 그러나 복사 냉각이 활발하여 일교차가 커서 월평균은 평년 수준이었다.[91] 특히 더위가 잦아들어야 할 8월 하순에도 폭염이 설치는 경우가 타 시대에 비해 유독 잦았다. 심지어 9~10월까지 지속된 경우도 있었다. 예시를 들면 1939년, 1943년, 1945년, 1947년[89], 1948년 등이 있다. 특히 1943년 8월은 하늘의 광기와도 같은 수준. 9~10월도 여타 다른 해들에 비해서 고온 현상이 많은데, 1939년의 경우 9~10월 모두 기록적이었으며, 1943~44년에는 9월이 기록적이었으며[90], 1945~46년에는 9월 말~10월 초에 29~30°C 기록.[92] 어지간히 여름에 서늘하지 않는한, 여름에 34~36℃를 넘나드는 여름이 정말 많았고, 37~38℃까지 오르기도 몇 차례나 있었다. 현대에선 열섬으로 최저기온이 높은데도 간신히 36℃ 이상을 겨우 기록하거나, 그마저도 습기 때문에 기온 상승이 저지되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현상. 1994년과 2018년은 규격 외이므로 논외.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열섬 현상도 덜하고 습도도 낮은 편이라 일교차가 크게 벌어져서 열대야는 잘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할 만한 점이다.[93] 그렇다고 겨울은 겨울대로 또 추워져서, 40년대는 여름과 겨울의 기온 격차가 어마무시하게 벌어진 시대로 남게 되었다.[94] 그런데 이 폭염은 오래 가지 못하고 1주일만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8월 7일 대구의 최고기온이 29.4도, 그 다음날 최고기온이 24.8˚C를 기록했다. 물론 며칠만에 다시 더워지긴 했지만, 7월 말~8월 1일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내려갔다가 올라갔다를 반복하며 폭염의 기세가 서서히 꺾여갔다. 그래서 7월이 8월보다 평균 기온이 압도적으로 높다.[95] 정말 대단한 기록인데, 2위인 33.2℃(1975년)와 무려 4℃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2위가 33.2℃니 밑순위들은 안 봐도 뻔한 일. 다른 년도들은 다 잘해도 33℃ 정도인데, 1943년 혼자만 38℃에 육박하는 지옥도를 쓰고 있다. 당연히 전례없이 길고 강한 폭염에 습도가 낮아도 체감 온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96] 여담으로 이와 달력 모양이 같은 2018년 7월도 27.8°C의 평균기온이 나왔다.[97] 그러나 고온의 여파는 9월까지 계속 지속되었는데, 평균 기온 21.3°C에 9월 29일29°C 기록. 현대에 와서도 엄청난 기록인데 당시 9월 말이면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 시기인데 상당히 기록적인 것이다.[98] 당시 1~3월과 5월~8월 상순의 강한 이상 저온이 있었던데다가 평년으로는 8월 하순이 시원해지는 것을 감안시 습도와 무관하게 체감온도는 더욱 높았을 것이다.[99] 1943년 9월 1일의 33.4˚C를 경신하였다. 여담으로 이 9월 폭염 이후 현재까지 9월에 33도 이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100] 그마저도 북한 황해도 지역에 상륙했다. 그래도 태풍인지라 근처 서울.경기 지역에도 강한 바람과 비가 내렸다고 한다.[101]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최저기온도 처음으로 27.8°C에 달한 날도 있었다. 열섬 현상이 없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 당시 사람들에게는 흡사한 2018년 8월 최기온이 30°C를 넘은 현상을 처음 겪은 현대 사람들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름 최고기온은 현재와 그때와 별 차이없으며 1960~2000년대보다는 높았으나 최저기온은 그때가 1981~2010보다 1~2도정도 낮았다.[102] 같은 해 7월 16일도 38.9˚C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통계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28.9도일 가능성도 있다. 사실 1949년 7월과 8월 모든 날의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복붙되어 있는데, 이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오류로 7월 한달 분량의 데이터가 소실되어 8월 데이터를 7월 쪽에 복붙한 것으로 보인다. 8월 16일이 더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인천과 가까운 서울이 동년 7월 15~16일 사이에 27~30˚C의 온도를 기록했지만, 8월 15일~16일 이틀에 37˚C가 넘는 폭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름철 서울의 온도가 27~30˚C 정도면 인천도 비슷하거나 낮은, 높아도 2~3도만 높은 기온을 기록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7월 쪽이 더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인천의 월평균기온은 7월 24.5˚C, 8월 26.0˚C로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7월의 일별 기온 데이터를 소실한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103] 비슷하게 2022년 7월 초에 태풍 에어리가 일본 규슈로 태풍이 향하는 과정에서 열기가 밀려나며 한국 수도권이나 대전,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낮에는 폭염이 발생하였고, 밤에서 아침 사이에는 열대야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919년 8월 초에도 비슷하게 대한해협을 가로지르는 태풍으로 인한 열기 공급으로 서울에서 37.5도의 극단 폭염이 일어났다.[104] 7월 말에 5호 태풍 '글로리아'(Gloria)가 중국 강남과 산동 지방을 거치면서 온대저기압으로 격하된 채로 인천과 목포에 영향을 주었고, 25일~27일 3일간 인천은 총 49.6mm의 강수량을, 목포는 46.6mm를 기록했다.[105] 심지어 8월 중순에도 이상 저온이 있었다.[106] 1958년 6월 24일을 제외하고, 즉 한여름철인 7, 8월로 보면 1949년 8월 17일부터 1994년 7월 22일까지, 햇수로는 45년(정확히는 44년 11개월), 일수로는 16411일 동안 37℃ 이상의 극심한 폭염이 찾아온 날이 존재하지 않는다. 1994년 7월 23일에 한번에 37℃를 넘어 38.2℃까지 뛰어오르며 화려한 복귀식을 사람들에겐 화려한 헬게이트를 선사했다.[107] 1919년, 1924년, 1930년, 1932년, 1939년, 1943년, 1945년, 1949년에 37℃ 이상의 폭염이 있었으며, 이듬해인 1950년은 36.9°C로 간발의 차이로 피해갔다. 6.25 전란기에도 비공식 기록을 따르면 1951년 7월 1일 36.3℃ 빼고는 37℃에 가까운 기록은 없다. 물론 현대 시기가 운 좋게 37도를 피해간 사례가 많기도 하다. 2019년 8월도 중간에 구름이 끼어서 36.8˚C를 넘지 않았으며, 2022년 7월 30일도 오후에 구름이 끼지 않았으면 충분히 37도는 넘고 갔었을 일이다. 그 밖에도 2012년 8월 5일, 2016년 8월 21일, 2019년 8월 10일, 2021년 7월 24일도 반올림으로 37도를 기록했다. 그중에서 2021년의 최고기온은 36.5도로 반올림 37도중에서 가장 낮았다.[108] 3월 11일에 한낮에도 -5.2℃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봄철 기간 중 81일 동안 39.6℃라는 미친 듯한 격차가 벌어졌다는 말이 된다. 참고로 2018년 1월 31일에 최고기온 0.0℃를 기록한 뒤 8월 1일에 39.6℃를 기록하며 39.6℃의 격차를 기록하기까지 183일이 걸렸다.[109] 영어 위키백과에 올라온 태풍 이름은 그저 '열대성 저기압 20(Tropical Depression Twenty)'이라고 한다. 대한 해협을 통해 거제 근처에 상륙하여 전라북도를 지나 서울 근처까지 내륙에서 태풍이 북상하였다. 그러나 기온이 좀 낮아졌을뿐 폭염과 열대야는 그대로 계속되었다.[110]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강력한 열대성 폭풍 23(Severe Tropical Storm Twenty-three)'.[111] 하지만 9월 3일 일본 시코쿠 섬에 상륙한 태풍 재인(Jane)과 13일에 일본 규슈에 상륙한 케지아(Kezia) 때문에 이 늦더위도 얼마 못 갔을 것으로 추정. 9월 21일 재개된 비공식 서울 기록에서는 이미 기온이 안정화되었다고 한다.[112] 대구의 9월 기록을 보면 당시 서울의 기온이 어찌 흘러갔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8월 31일에 더운 날씨가 9월로 넘어가며 계속되었고, 늦더위 자체도 9월 16일경이 되어서야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겨우 물러간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대, 서울의 8월 마지막의 폭염이 9월로 넘어가며 초반 며칠은 강력한(대략 32~34℃) 폭염이 유지되었고, 태풍 재인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열기가 물러갔지만 9월 14일경에 또 태풍 케지아가 몰고온 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더웠다가 그 뒤로 늦더위가 가라앉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 주석에서 언급한 미군의 비공식 서울 기상 관측이 늦더위까지 다 끝난 9월 21일에야 재개된 것도 이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113] 운이 좋게도 서울에서 여름까지는 기상관측을 했다. 또한 이 해에 기록이 남아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의 8월 평균기온이 22.7℃로 평년보다 3℃ 이상 높고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한반도 전역이 폭염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114] 서울의 폭염일수 기록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수를 세어보면 26일로 역대 5위이다.[115] 관측 장소는 강서구에 있는 김포국제공항. 공식 관측이 이뤄지는 종로구 송월동과 15.1km 정도 떨어져 있다.[116] 1917년 7월 1일34.1℃를 2도 이상 제치는 수치이다.[117] 1965년 7월 2일 35.2℃와 같다.[118] 비공식이라지만 지금까지 수원에서 기록한 6월 하순 34.0°C(2020년 6월 22일)의 기록을 한참 뛰어넘는 수치이다.[119] 한국 전쟁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관측할 수 없던 사이에 6월 하순(수원 한정)~7월 초순(서울, 수원) 부문에서 엄청난 기록을 세운 셈이다. (다만 수원은 1950년대에는 공식 관측이 없었다.) 정말로 아쉬움을 금하기 힘든 광경이다.[120] 이것이 참 놀라운 기록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그 2018년 8월27.7°C와 같다.[121] 8월 20일 최저기온이 29.8°C초열대야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다. 사실상 관측 이래로 강릉(1942년 7월 26일)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더웠던 날인 셈.[122] 최고 35.2°C, 최저 27.4°C. 일평균기온은 30.0°C이다. 최고기온은 7월 1일이 가장 높았지만, 실질적으로 연중 가장 더운 날은 이날로 보아야 한다. 태풍 마지의 북상으로 열기가 밀려나는 과정에서 22일에 갑자기 더워졌다가 이후로 기온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123] 서울 기준 1951년 열대야 일수가 0일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1951년 당시의 데이터 자체가 말소되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슷하게 강릉 역시 지역 특성과 51년 여름의 습한 더위를 볼때 필시 열대야가 발생했을 것임에도, 데이터 자체가 말소되어 열대야 일수가 0일이다. 애초에 습한 더위가 8월 22일경까지 남한 전지역을 덮고 있었고, 광주는 아예 초열대야에 가까운 기온을 보였는데, 서울, 강릉만 열대야가 없다는 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124] 1980년대 초반까지의 평균기온에서 오차가 있긴 하나, 의외로 이 오류가 아주 일관적이다. 이 사이트의 1980년대 초반까지의 연도들의 7~8월 평균기온이 모두 한국 기상청 사이트보다 0.1~0.4도 낮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 나온 값은 0.1~0.4도 올려서 보는 게 정확하다. 이를 따른다면 1951년 7월 서울의 평균기온은 25.3~25.6°C이며, 특히 8월은 27°C 전후인 26.9~27.2°C로 2006년, 2012년, 2019년 8월과 비슷하다.[125] 아쉽게도 8월이 지나간 1951년 9월부터 관측이 시작되었다.[126] 1951년 10월부터 다시 관측이 시작되었다.[127] 1982년까지 0.2°C 차이를 감안하면 7월 25.9°C, 8월 25.4°C로 이 값과 거의 같다.[128] 1937년 또는 1942년부터라 보는 시각도 있다.[129] 이것이 1955년 여름이 폭염 사례에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8월 하순경 서울이 35℃까지 오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130] 어지간히 독한 더위가 아닌 이상 한여름에도 일평균 26~29℃를 찍는 일제~전란 직후 여름 치고 꽤 높은 일평균이다. 최저기온도 1919년 8월에 맞먹는 열대야를 기록. 기온 격차를 보아 습기 때문에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 한듯 싶다.[131] 이후 1958년 6월 25일부터 1994년 7월 22일까지, 햇수로는 36년 1개월, 일수로는 13177일 동안 서울에 37℃ 이상의 극심한 폭염이 찾아온 날이 존재하지 않는다. 1994년 7월 23일에 38.2℃로 한번에 37℃를 넘어 38℃까지 올라 다시 기록되었다. 복귀식 한번 화려하다[132] 1960년~1977년 여름은 툭하면 36°C 폭염은 제집 드나들듯 기록하던 193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과 달리 죄다 33~35°C가 한계일 정도로 극심한 폭염이 없었다.[133] 그리고 1978년 여름 이후 다시 36°C를 넘은 해가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1988년. 그리고 다시 36°C를 넘긴 해가......[134] 우연의 일치로 교토도 1969년 9월 16일에 최저 27.0℃를 기록하게 된다. 거 북태고씨 너무 선 넘으시네요.[135] 불과 3년 뒤인 1965년 이 날이 35.2°C로 경신되었고 이후 2019년 7월에 36.1°C를 기록하면서 해방 이후 역대 가장 높은 7월 상순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1965년 7월은 이때를 빼곤 큰 더위가 없고 이상 저온이라 열대야도 단 하루도 없고 월평균이 62년 7월보다 낮다. 62년 여름이 폭염 항목에 추가된 이유이기도 하다.[136] 7월 초에 폭염경보를 기록했던 것은 상당히 강한 더위로 2019년에 54년만에 7월 초 폭염경보를 기록했다.[137] 의외로 2020~2021년 겨울의 반대버전이다. 6월은 다소 높고, 7월 초에 절정을 찍었으나 그 때를 끝으로 폭염일수가 없고 7월 중순~8월은 이상 저온이었다.[138] 평균기온부터 서울 기준 19.3℃였다. 2009년, 2012년, 2014년, 2016년, 2017년, 2019년, 2022년 5월 평균과 맞먹는 날씨가 일찍 찾아온 셈이다.(2013년, 2015년, 2018년은 이 해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평년보다는 높았다.) 2003년 5월에 19.6℃를 기록하기 전까지 줄곧 1위였고, 이후 2010년대 5월이 1967년 5월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록을 줄줄이 세우면서 밀려나고 있다. 아마 이때도 전국에서 기상관측을 했다면 이상 고온이 심하다고 평가받는 2010년대 5월과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39] 의외로 주목받지 못 하는 기록으로, 이 기록은 일평균 30℃를 마구 찍어대던 1994년 여름과, 2015년 7월 11일(가장 이른 시기에 일평균 30℃ 이상 기록.) 이전에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30℃대이며, 심지어 30℃를 넘어 31.1℃로 추산되었다. 1972년 당시에는 관측 사상 가장 빨리 찾아온 더위라 할 수 있겠다. 115년 동안 기록된 7월 20일 일평균 기온 중 1위이기도 하다.[140] 7월 평균기온은 25.7℃로 추산.[141] 물론 똑같이 폭염은 없어도 2022년 8월은 25일 이후를 제외하면 평범하거나 고온도 있어 1972년 8월보다 2022년 8월의 평균기온이 크게 높았다.[142] 7월 12일과 21일에 39.4℃ 기록.[143] 그런데 이 기록마저 2018년에 자체 경신 해버렸다...[144] 이때에 그리스와 인접한 터키, 이탈리아에서도 폭염이 계속되었던 반면, 서독, 스위스에서는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하여 산지에서는 8월에 눈이 내리는 일까지 있었다. 한국도 1980년, 1993년 다음으로 역대 가장 서늘했던 여름으로 기억된다. 이후 1993년, 2003년, 2020년(7월) 역시 한국이 이상 저온이고 유럽이나 미국 중에 적어도 한 곳 이상이 폭염이다. 태풍 셀마로 인한 기상청의 흑역사는 덤이다.[145] 한편 6월은 서울에서는 폭염은 없었지만 평균기온은 22.4°C로 조금 높았다.[146] 2020년 7월(24.1℃)과 비슷하다.[147] 양상이 정반대였던 2020년 8월(26.5℃)과 거의 비슷하다.[148] 2020년 9월과 같다.[149] 본래대로면 32년 뒤이나, 알다시피 그 바이러스 때문에 1년 연기되었다.[150] 도쿄의 무더위가 서울보다 엄청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무덥다는 서울의 8월 평년마저도 도쿄의 7월 평년과 비슷하다는 정도.[151] 10월 10일 개최. 이쪽도 1964년 8월 평균기온이 27.8℃에 달하는 무더위가 찾아왔었다.[152] 8월 하순까지도 열대야가 잦았다.[153] 서울 기준 높아봐야 30도에서 31도 정도였다. 참고로 이해 연중 최고 극값은 6~8월이 아닌 5월에 달성되었다! 2022년 현재까지 서울, 광주, 대구에서 열대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자 전주, 강릉, 춘천, 진주 등 상당수 지역에서 폭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다.[154] 독일 베를린에서도 1994년 8월 1일에 37.7도를 찍었다고 한다. 단, 1994년 여름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이 무자비하게 더웠던 것 외에 세계적으로는 조금 더웠던 정도의 비교적 평범한 여름으로 기록되어 유럽쪽에서는 2003년 폭염 같은 특별한 폭염기록이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시적인 현상으로 추정됨.[155] 중국 베이징의 여름철 평균기온이 역대 3번째이자 건국 이후 최대였다거나 일본 도쿄의 열대야 최다일수가 2010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최대였다는 기록이 있는 등 중국과 일본 또한 한국 못지 않게 역사적인 폭염으로 기억되는 여름이다.[156] 기온이 아니라 가뭄 일수 기준, 21세기 지구온난화가 제대로 두각을 보이기 이전의 기록이라서 더 특이할 만하다.[157] 1970~80년대부터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고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이때는 기존의 열대야 기록까지 갈아치워 한반도의 열대야는 1994년이 관측역사상 최대다.[158] 다만 열대야 기록은 2018년보다 1994년의 기록이 더 앞선다.[159] 1994년 9월 1일에 대구광역시가 37.5°C를 기록한 이후로도 연말까지 계속 고온을 보였던 것은 맞지만 서서히 폭염의 기세가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중부지방은 9월은 평년 수준이었다.[160] 7~8월만 하면 1994년이 더 높다. 1994년 7,8월이 각각 27.7,26.7도 2018년 7,8월이 각각 26.6,27.1도이다. 단 서울의 경우 2018년이 더 높으며, 기간이 아닌 세기로 비교한다면 2018년이 우세하다.[161] 반대로 전년(1993년) 여름은 7월 말~8월 초 기온이 9월 중순 기온과 비슷할 정도로 선선하여 역대 가장 서늘했던 여름으로 기억된다.[162] 이때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이렇게 태풍을 손꼽아 기다려 본 적이 있을까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163] 사실 김일성이 죽은 7월 8일 당시에도 이미 경기도 안성 이남 지방에서는 7월 시작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었던터라. 중북부 지방은 장마가 지속되던 북한 영향으로 덜 더웠을 뿐이다. 또한 아직 7월 초니 일시적으로 폭염이 왔다가 지나갈 거란 예측도 있었지만 7월 9일부터 서울을 포함한 중북부 지방도 얄짤없이 폭염 시작, 이 날 기상청에서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오래 갈 것이란 예보를 하였다. 후대에 김일성의 죽음과 폭염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차서, 혹은 소문대로 김정일의 사주로 인해 죽었다고 보는 게 맞다.[164] 1993년에는 5월 말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고 여름은 서늘했지만 처서가 지나고서 오히려 잠깐이지만 늦더위가 찾아왔고, 9월 초순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10월에는?[165] 이 점은 후술할 2019년 여름하고 비슷하다. 차이점은 2019년은 중부 지방,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폭염이 강했고, 1995년은 남부지방, 특히 대구, 경북 지역 중심으로 더욱 더위가 강했다는 점이다. 1995년은 중부 지방의 서울 등은 펑범했으며 2019년은 전라도는 평범했다.[166] 1994년 여름의 대구광역시 지역 최고 극값인 7월 21일 39.4 °C와 비교해도 얼마 차이 없다.[167] 관측 사상 가장 빠른 35℃이자 폭염경보급 폭염이다.[168] 참고로, 원인이 2018년과 유사한데, 티벳 고기압이 늦게까지 물러나지 않았던 듯. 이말인 즉슨, 대륙 열적 고기압(티벳 고기압)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폭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169] 서울 기온으로 보아 9월 초순에 강력한 늦더위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월평균기온 20.2도를 보였던 것을 보면 이달 중하순에 매우 식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후 2022년까지 9월에 이보다 낮은 평균기온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이 이상 저온은 10월까지 이어졌다.[170] 역대 제주도 최고기온인 1942년 7월 25일 37.5도와 0.1도 차이나는 기록이다.[171] 이유는 북태고가 한반도 본토에 머물던 장마전선에 밀려 본토에선 힘을 못 쓰고 제주도까지만 힘을 미쳤기 때문. 만약 북태고가 장마전선을 밀어냈으면 본토도 제주도처럼 어마어마한 폭염이 시달렸을 것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1998년 여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연평균 기온이 기록적으로 높아서 13.6~14°C를 찍어서 현대에도 깨지지 않는 역대 신기록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172] 저온이 없는 1994년 4월과 달리 1998년 4월은 월초에 저온이 있었는데도 이 정도면 1~3일 저온이 없을 시 16도 이상이 되었을 뻔했다.[173] 5월 14일에 여름 시작. 2012년이 5월 2일로 경신하기 전까지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현재 기준으로도 2012년, 2019년 다음 세번째이다.(그 뒤로 2001년, 2003년, 2009년, 2013년~2018년, 2021년(5월 15일 여름 시작. 후술하겠지만 여름이 끝나는 시점도 10월 9일로 이 해와 상당히 유사했다.)~2023년 등.)[174] 5월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심해진 2000년대 부터의 현대에서 봐서는 별거 아닌거 같지만 5월 고온이 적었던 199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실제로 전국은 5월에 연중 최고 기온을 달성한 곳이 많았으며, 전국 평균기온은 17.8°C로 당시에는 1위였다. 현대 치고도 0.5도정도 높은 편. 서울도 19.0°C로 당시 치고는 1.6도나 높은 기록이고 1991~2020 기준으로도 0.8도 높았다.[175] 5월 하순 20.7도, 6월 상순 18.6도. 참고로 5월 하순은 그 엄청난 폭염을 기록했던 2019년 5월보다도 높다.[176] 특히 9월 12일32.8˚C로 그제서야 연중 가장 높은 최고기온을 기록. 한여름철인 7~8월에 32~33˚C는 그럭저럭 더운 날씨이지만, 일반적으로 폭염이 꺾이고 선선해져가는 9월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177] 후일담으로 10월은 그놈의 열기가 집념이 참 강해서 잦은 고온 현상으로 월평균 17.0˚C를 기록해 당시에 1위를 차지했으며, 기상학적 가을도 10월 중순으로 가장 늦게 시작되었다. 즉, 폭염일수는 없었으나 지긋지긋하게 여름이 이어져 5월 14일~10월 13일이 여름으로 무려 5달이나 되는 여름이었으며 여름이 가장 길었다. 11월에야 잠시 평년~조금 높은 수준을 회복했지만 중순 전반의 심한 고온으로 이 와중에도 11월 중순인데도 최저부터가 15.1˚C로 시기에 걸맞지 않게 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바로 급락해서 수능날에 반짝 한파가 왔다. 게다가 12월 들어 다시 고온으로......[178] 그러나 이 해 여름 한국은 이상 저온이 심해서 서울 등 많은 지역에서 2022년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폭염일수가 없는 해로 남아있다.[179] 많은 지역에서 이 해부터 폭염일수가 매년 기록되고 있다.[180] 당시에는 4위였으나 2012~2019년 8년동안 더운 8월이 많아 현재는 9위이다.[181] 물론 남부지방은 7~8월에 폭염과 열대야가 있었다. 이유는 장마 전선이 중부지방에 머무른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182] 하지만 늦더위로 인해 2011년 11월은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183] 1920~1940년대에는 1924년, 1939년, 1943년 각각 한번씩, 1950~1980년대는 1975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없고 1990~2000년대에도 1994년, 2006년 각각 한번씩만 있었으나 2010년대에는 2012년, 2013년, 2016년, 2018년, 2019년 5번씩이나 있었다.[184] 서울 7월 열대야도 2009년에 마지막으로 없었고 이후 2020년에 나온 탓에 정확히 2010년대에는 모든 해에 열대야가 있었다.[185] 다만 러시아도 한국만큼이나 대륙성 기후를 띈다는 것과 최남단 지역들중 소치같은 곳들은 아열대기후를 띈다는 걸 생각하면 꼭 아이러니라 하기는 뭣하다. 애초에 사하 공화국도 연교차가 120℃나 되는 지역이다.[186]소치는 예외.(여기는 46도 기록했다) 여기는 여름에 심심하면 40도로 올라가는 동네라 별 피해가 없었다.[187] 7월 중순까지는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188] 일본에서도 관측 사상 최고 기온(41.1도)를 기록할 정도로 2018년 폭염의 위세도 대단했으나, 일본에서는 2018년에는 8월 들어서는 중간중간에 서늘한 날도 나타나기도 했고, 특히나 홋카이도의 경우는 8월 들어 평년보다 오히려 기온이 낮을 정도여서 폭염과는 거리가 멀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2010년에는 7월 하순과 8월에 걸쳐 계속 폭염이 이어진데다가 본문에 서술된 대로 홋카이도에서조차 폭염을 느낄 정도로 분포 지역과 기간을 보면 2018년보다 훨씬 심한 폭염으로 기억되고 있다. 더군다나 2010년에는 가뭄 피해까지 심해서 폭염에 따른 고통이 더욱 컸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2018년의 경우 일본에서는 일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린 후 폭염이 찾아오고 이후로도 태풍의 영향을 몇 차례 받아 가뭄 피해는 별로 없었다.).[189] 각각 8월 평균기온이 28.8, 27.9, 27.7, 27.1, 26.9, 26.8, 26.5, 25.7도를 기록해 확실히 북쪽으로 갈수록 시원했다.[190] 그러나 5월 말, 6~8월 일부는 폭염 등 더위가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잦은 비로 인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철원, 서산, 목포는 이 해부터 모든 해마다 폭염을 기록했다.[191] 베트남은 저위도지대로 몬순이 시작되기 직전인 봄철이 가장 덥다.[192] 24일에 전주에서 31.1도를 기록. 이후 서울도 30일에 29.4도를 기록하는 등 때 이른 더위가 있었다. 게다가 서울은 이 여파가 그대로 5월까지 이어져 19.7도로 역대 1위. 그나마 이 해는 2011년~2020년 10년 중에서 극값이 29.3도로 가장 낮았고 최저기온 20도 이상도 없었긴 했다.(특히 상순 중심 고온을 보였다.) 여담으로 대전과 전주도 서울과 같은 기온을 기록하여 역대 1위를 기록하였다. 사실상 이 해는 여름이 5월에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서울의 경우 무려 5월 2일에 여름 시작. 심지어 대구보다 빨랐다. 최저 기온으로 비교해도 4월은 낮은 편이었지만 5월이 되자 매우 높아졌다. 서울의 경우 12도 아래로 한번도 내려가지 않았고 15도를 넘긴 날이 많아서 최저 평균이 15.4도이다. 전국도 12.8도로 역대 1위.[193] 이는 측정을 위한 표준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자동 관측 장비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2018년 8월 1일에는 홍천이 공식기록으로 41.0℃를 기록해버렸으며 비공식으로는 42.1℃를 기록한 지역도 나왔다.[194] 1994년이랑 비빌 수 있는 수준이라면 1939년, 2013년, 2016년, 2018년, 2021년(7월) 정도이다.[195] 8월 평균기온 27도를 초과한 해는 1939년, 1943년, 1994년, 2012년, 2013년, 2016년, 2018년, 2019년이므로 이 해는 2006년 이후 6년만에 8월 평균기온이 27도 이상이었고 1994년 이후 18년만에 8월 평균기온 27도를 초과했다. 이 해를 시작으로 그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1924년, 1975년, 2006년은 딱 27도를 기록했다.[196] 다만, 1994년의 폭염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상당수의 25세 미만의 젊은 네티즌들은 2012년의 폭염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며 불평을 쏟아냈다(...).[197] 그러나 1990년대에는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나 사무실에도 에어컨 자체가 지금만큼 보급되질 않았었다. 에어컨 빨로 더위 대피소가 적었던 당시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2012년만 해도 환기를 하고 집 주변에 물을 뿌려도 실내는 더웠기 때문에 그늘을 찾아 돗자리나 평상을 펴놓고 동네 사람끼리 모여 겨우 더위를 식혀서 체감 기온이 높았지만 웬만한 실내공간에 들어가면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2013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198] 1월 4일 호바트가 최고기온 41.8도를 찍을 당시 같은 날 대관령의 최저기온은 -26.8도.[199] 1979년 6월 도쿄의 월평균 기온과 같다! 게다가 이게 도쿄의 6월 평균 중 1위이다. 이걸 따라잡네? [200] 따라서 중부 지방은 7월엔 비교적 시원했지만 8월엔 오히려 더웠다. 서울에서도 2012년을 넘겼고, 현재까지 4위이다.[201] 같은 중부 지방이라도 강원도 영동 지방은 2013년이 2012년 보다 더 더웠다. 그리고 서울도 전년도보다 0.6도 높았다. 사실상 인천이나 경기도 일부, 강원도 일부를 제외하고 전년도보다 더운 셈이다.[202] 일최저로는 최초[203] 울산에서 유독 높은 기온이 기록된 것은 가뜩이나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에다가 푄현상까지 일어나 이런 기온이 기록되었다.[204] 단, 고사동과 송정동의 기록은 2012년 경산에서 기록된 40.6℃처럼 '자동관측장비'에 의한 비공식 기록으로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205] 그런데 이런 폭염도 1994년 최악의 폭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약과였다. 장마가 오래 계속되고 흐린 날씨가 많았던 중부지방에서는 최고기온은 전년도 만큼 크게 오르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전년도인 2012년도보다는 훨씬 견딜만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인천광역시에서 마지막으로 폭염일수가 없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저기온 자체는 중부도 매우 높아서 결국 서울의 8월 평균 최저기온은 2018년에 이은 2위. 평균기온은 27.7도로 1994년과 2012년 8월을 넘겼다. 추세로는 1994년 여름을 능가하는 기록이 나올 것 같았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1994년의 재앙적인 기록은 넘지 못했다.[206] 예외적으로 학교는 교실·도서관 26℃ / 교무실·행정실 28℃로 지정되었다.[207] 다시 말하지만 실내온도 기준이다. 과거에는 '권고' 수준이었지만 이번에는 '지시'인지라, 이 밑으로 내려가면 개문냉방과 함께 단속당했다![208] 물론 중부 지방 기준이며, 남부 지방은 늦더위가 다소 심했으며 대구는 후술하겠지만 평균 기온이 2010년 9월 다음으로 2위를 기록했다.[209] 1998년의 10월 13일 다음으로 가장 늦으며 2006년과 동일하다. 다음은 2021년의 10월 9일.[210] 여담으로 2021년 7월 31일 최고기온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다. 이 날 2021년 7월 전국적으로 봤을때 폭염의 절정이었고 매우 높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날 유난히 심각함을 알 수 있다.[211] 본래 기록은 1994년 7월 9일, 1998년 7월 7일 25.5˚C.[212] 특히 대구는 평균 기온이 무려 21.7°C를 기록해 평년 9월 수준이었고 심지어 이상 저온이었던 같은 해 9월보다도 높았다.[213] 다만 인천, 강화도, 백령도는 평년 수준이었다.[214] 최저기온도 25.7℃로 열대야 기록, 일평균 기온 30.4℃를 기록해 그 1994년 여름을 제치고 가장 빠르게 30℃를 돌파한 날로 기록되었다.[215] 워낙 많은 바지락들이 문자 그대로 삶아져서 죽은 탓인지 이 기사가 나온 8월 6일 트위터에서는 한때 바지락이 실시간 트렌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216] 여담으로, 화씨온도로 변환하면 123.8℉다.[217] 다만 1994년은 이른 더위, 늦더위가 매우 심하지는 않았다.[218] 물론 남부 지방에도 장맛비가 왔으나, 중부 지방에 비해 양이 적었다. 특히, 영남 지방은 그동안의 가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이었다.[219] 2013년에 이어 두 번째 '초열대야' 현상이다. 전날 18시부터 9시까지의 기온이 30.1도 이상을 가리켰다.[220] 강릉은 저녁에 빨리 식었지만, 제주도는 하루종일 29.4℃ 이상이었다.[221] 사실 2011년 이후부터 매 해마다 더위가 빨리 시작된다. 5월 하순 더위 정도는 사실상 일상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4월 말~5월 초 더위까지 보일 정도니 말 다했다. 후술하겠지만 2021년이 5월 이상 저온으로 5월 상순과 하순 더위가 없었으나, 대신 5월 중순 더위가 매우 기록적이었고 3~4월 이상 고온이 강했다. 2022년은 아예 한술 더 떠서 4월 초중순 더위까지 보였다. 5월 중하순도 더위가 2010년대 중후반 급으로 강했던 것은 덤.[222] 대한민국 기상청에 따르면 2017년 6월부터 7월 24일까지 전국의 평균 최고기온(전국 45개 주요 관측소 기준)은 29.1℃로 파악되었다. 7월 평균기온이 관측(1973년) 이래 네 번째로 높았고, 대한민국 기상청이 발표한 '7월 기상특성'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평균 최고기온은 30.4℃로, 평년(28.6℃)보다 1.8℃ 높았다. 더군다나 비가 많이 왔던 중부마저도 평년수준을 기록한 2011년, 2013년과 달리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았다. 서울은 7월 평균기온이 1939년, 1994년, 2018년에 이은 4위로 이 해보다 높은 3개의 해는 모두 기록적인 폭염을 보인 해이다.[223] 길게 보면 4월부터 10월까지도 포함될 수 있으나 4~5월은 중국, 9~10월은 일본 일부 지역만 해당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도 7~8월이 무자비하게 더웠지만 4~5월도 더운 편이나 폭염 수준은 아니고 9월은 평년 수준이었고 10월은 아예 이상 저온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은 2018년 8월도 더웠지만 2010년 8월, 2020년 8월의 평균기온이 더 높게 기록되었다.[224] 그러나 이마저도 세계 기준으로는 2021년 폭염경신했다! 북미 서부 뿐만 아니라 러시아, 핀란드, 뉴질랜드 등의 국가들도 최고 기록 경신이 잇따르고 있다.[225] 심지어 8월 11일까지는 30°C도 넘지 못하였다.[226] 다만 정작 그해 6월은 더위가 심하지 않았고 평년 수준의 날씨가 연일 이어졌다. 그러나 2020년 6월은 그 기온은 물론 30도를 쉽게 넘는 날이 많았다. 다만 2020년 7월은 더위가 약한 수준을 넘어 쌀쌀하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물론 더위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7월 9일에 32.9°C를 기록했기 때문. 그러나 이는 2014년, 2019년 5월 최고 기온 극값보다도 낮았다. 이는 8월에도 24일 까지도 전혀 넘지 못하다가[225] 25일에 34.5°C가 나와서 5월 역대 1위 극값을 겨우 넘었다.[227] 여름 시작이 무려 5월 11일로 2012년 5월 2일 다음으로 빠르다.[228] 게다가 1939년에 비해 시기도 이르다.[229] 다만 2018년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시원하다는 말이지 이번 2019년 여름이 전반적으로 시원하지 않고 8월 초에 역시나 폭염이 찾아와서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7월 말~광복절을 기준으로 할 시 2020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높다.[230] 2018년(28.8), 2016년(28.0), 1943년(27.8), 2013년(27.7), 1994년(27.6), 1939년(27.5)에 이은 7위이다.(년도 순서는 평균기온이 높은 순이다.) 2018년이 아니었으면 6위로 랭크되었을 것이다.[231] 2012년 (36.7), 2016년 (36.6), 2021년 (36.5) 보다도 높다.[232] 1994년 8월: 31.5°C/23.7°C, 2019년 8월: 31.5°C/23.1°C이다.[233] 서귀포는 중순까지 30도를 넘은 적이 없었다.[234] 남부 지방과 제주도의 경우에도 중부에 비하면 강수일수만 많았을 뿐 강수량은 중부와 마찬가지로 평년보다 적었다.[235] 실제로 최고기온을 2℃ 이상 경신하는 사례가 있는데 2019년 6~7월 프랑스, 독일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236] 같은 날, 같은 현 지역인 이토이가와(糸魚川)에서 최저기온 31.3℃를 기록해 일본 전역에서 가장 높은 초열대야를 기록했지만, 이쪽은 일명 아메다스(アメダス)라 하여 무인 자동 관측소, 즉 비공식 기록인데 반해, 아이카와는 공식 관측이므로 공식으로 따지면 아이카와가 제일 높다.[237] 이전에는 최고기온 기록이 프랑스는 44.1℃, 독일은 40.3℃였으니 어마어마한 폭염을 보였다.[238] 앵커리지의 6월은 서울의 4월과 맞먹는다.[239] 특히 2022년 8월은 아예 수원 등 전국 많은 지역이 33℃를 기록할 때, 서울은 32.9℃가 극값으로 폭염의 기준에 미치지 못 해서 폭염이 없었다.[240] 물론 이는 2012년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도 건조한 경우가 더 많아서 견디기 힘들지 않다는 점이 위안이다.[241] 이는 은근히 성가신 문제인데, 늦더위 이후 찬공기 남하로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기록할 때도, 길어진 늦더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늦가을~겨울이 일찍 왔다고 착각하게 된다고 한다.[242] 4월 상순에 30°C를 넘는 경우까지 나왔을 정도니 말 다한 셈.[243] 5월은 기온 상으로는 여름이 아니지만, 갈수록 기온이 높아지고 태양 고도도 높으며 낮 더위가 심해지는 탓에 점점 여름으로 이미지가 굳어가는 중이다.[244] 2020~2021년, 2023년 5월 및 2022년 6월은 습하고 흐렸다.[245] 이것도 꽤 성가신데, 보통 초여름 더위는 건조한 경우가 많아서 견디기 힘들지는 않다. 그런데 잦은 비 등으로 습도가 높아지면 견디기 힘들어진다.[246] 물론 5월에 30℃를 넘어가는 것은 현대 이전에도 빈번히 발생했던 일이나 32°C 이상은 드물다. 의외로 관측 사상 가장 빠르게 30℃를 기록한 게 현대도 아닌 1932년의 일이었다. 진짜 성가신 문제는 지구온난화+열섬 이중 크로스로 인해 기온 하강이 더뎌져고 체감 기온도 과거에 비해서 심히 높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대와 과거를 비교해보면 빈도수 자체는 확실히 증가했으며 최근 10년간 2014년, 2015년, 2019년 3번이나 32°C를 넘었다. 그 중 2014년과 2019년은 33°C를 넘어 폭염 일수까지 기록되었다.[247] 실제로 5월에 24°C 이상을 기록하는 날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최저 기온도 과거에 비해 꽤 높아지는 추세다. 5월 하순쯤에 접어들면 16°C 이상도 빈번하다.[248] 2023년 전까지는 5월에 일평균 30°C 이상은 없었으나 결국 30°C를 기어코 돌파하고 말았다.[249] 대구 및 강릉은 21°C 초과[250] 추후에는 서울에서 35°C 이상, 전국적으로는 37~38°C 이상을 기록하는 해가 나올 수 있다. 일평균으로 따질 경우 서울은 27°C 이상, 전국은 31°C 이상이 가능해 보인다.[248] 월평균으로 따질 경우 서울은 20°C 이상,[249] 전국은 18°C 후반~19°C 이상 기록이 가능해보인다.[251] 한국의 경우 7월의 이상 저온이 심해서 상대적으로 크게 덥지는 않았지만 시베리아의 6~7월이 엄청난 초이상 고온이어서 평균기온이 높게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라크, 사우디 등 서아시아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닥친것이 한 몫 했고. 평균기온도 8월에는 내려가긴 했지만 6~7월이 기록적으로 높아 전 세계 평균기온도 덩달아 올랐다. 한편 2020년 8월 자체는 작년보다 0.3 ℃ 낮았지만 여전히 평년보다는 0.2 ℃ 높았다.[252] 아무리 5월이 여름에 가깝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의 기운이 남아 있는 5월 초에 이러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5월 1일에는 대구광역시도 봄의 극후반일 정도로 아직 전국이 봄이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이와 반대로 엄청난 이상 저온을 보였다.[253] 서해안은 해무로 20도 안팎, 서해5도는 아예 저온이었다.[254] 이런 날씨가 5월 2일에도 지속되었다면 가장 빠른 폭염특보가 내려졌을 수도 있었다.[255] 또한 최저기온도 4월 30일과 5월 1일 간의 갭이 굉장히 큰 지역이 많았다. 최소 2배에 이르거나 심하면 그 이상 벌어진 지역도 있었을 정도다. 4월 29~30일의 경우 최고기온은 이상 고온을 보였지만 최저기온은 복사냉각으로 여전히 쌀쌀해서 영동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한자리수였으나 5월 1일은 전국적으로 구름이 껴서 최저기온이 13~18도, 동해안은 20~22도를 보여서 최저기온도 초고온이었다. 해남만 해도 4월 30일 최저기온이 2.6°C에 머물렀으나, 5월 1일엔 18.7°C로 거진 7~8배에 이르는 차이를 보였다. 동해안은 5월 1~2일에 20도를 넘겼다! 물론 이쪽은 4월 30일부터 최저기온이 16~19도로 높았다.[256] 2020년 5월은 서울 기준으로 9년 만에 18도 이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평년 이상의 기온을 기록했다. 게다가 2021년 5월 이례적인 5월 저온이 오면서 고온으로 보이게 되었. 다만 여태껏 기록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얘기다. 습도가 높아서 체감상으로는 낮지 않았다. 그리고 강수일수는 그닥 많지는 않았지만 부울경이 적었고 수도권과 전남, 강원 영동지역에는 상당히 많아서 일각에서는 우기가 온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기온 상으로는 봄이었지만 체감상으로는 전혀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5월 일조시간도 적어서 장마를 연상케했다.[257] 다만 예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6월에는 7년 만에 기온이 가장 높았는데 정작 7월에는 덥기는 커녕 추웠다.[258] 하지만 한국의 여름철 날씨에 영향을 주는 티베트 지역의 봄에 내린 눈이 올해 다소 많았기 때문에 유난히 변동이 심한 것이 특징인 여름 날씨가 어떻게 될지는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그리고 최악의 폭염으로 악명 높았던 1994년, 2016년, 2018년은 티베트 지역에 눈이 적었다. 그리고 한반도 근처의 수온이 낮아졌다.(라니냐 여름은 서태평양이 고온이라 주로 덥지만 한반도 수온이 많이 낮으니 7월이 저온이었다. 예상대로 무더위 기간이 짧고 이례적으로 긴 장마로 오히려 집중호우이상 저온 피해가 컸다. 2018년, 2016년보다 압도적으로 시원했고 한여름 기준으로는 2010년대 어떤 해 보다도 상당히 시원한 편이었다. 다만 8월 중순~하순에 강한 늦더위가 일어났으며 최저기온이 높아서 8월 평균기온은 손에 꼽게 높았다.[259] 1958년은 6월 기온으로 이상 고온 현상을 보였는데 정작 한여름인 7~8월에는 폭염이 약했다.[260] 동두천 35.5℃, 양평 35.0℃, 이천 34.7℃, 파주 34.4℃, 수원 34.0℃ 등[261] 영월 36.8℃, 춘천 36.4℃, 홍천 35.7℃, 정선 35.5℃, 인제 35.1℃, 원주 34.5℃, 철원 33.6℃, 강릉 33.2℃ 등[262] 충주 34.4℃, 청주 34.0℃, 부여 33.9℃, 대전 33.8℃, 금산, 제천 33.6℃[263] 의성 34.3℃, 안동 34.2℃, 청송 33.2℃ 등[264] 얼마나 낮았나면 심지어 전달인 6월보다 낮았다. 자세한 내용은 2020년 7월 한반도 이상 저온 문서 참고.[265] 이는 이틀 뒤인 8월 28일 도쿄의 기온과 같다. 8월 26일 서울의 최고/최저/평균기온이 각각 34.5˚C/27.0˚C/30.2˚C였는데, 이틀 뒤 8월 28일 도쿄의 기온도 34.5˚C/27.0˚C/30.2˚C였으며, 평균습도 역시 8월 26일 서울은 68%, 28일 도쿄는 67%으로 거의 흡사했다. 즉, 25일은 둘째치고 26일은 서울에 도쿄의 날씨가 강림했다고 봐도 된다. 더구나 26일 당시에는 서울보다 도쿄가 더 시원했으니 말 다했을 지경.[266] 2020년 7월과 정반대된다.[267] 대구 기준 8월 폭염일수 1위이다. 그러나 전국 1위까지는 아니다. 전국 1위는 1943년 8월 서울특별시의 폭염일수 25일이다.[268] 당장 2018년만 봐도 9월 초순까지 폭염과 열대야를 겪을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실상은 태풍 솔릭이 열돔을 다 부숴버렸고 태풍으로 인해 생성된 정체전선으로(가을 장마) 인하여 폭염이 8월 하순에 완전히 끝나버렸다. 2020년도 9월 초순에도 늦더위가 예보되었지만 마이삭으로 서울에서 28도 이상을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24~27도는 자주 기록되었다.[269] 서울은 2012년 이후 8년만에 30도를 한 번도 넘지 못하여 심지어 극값이 5월보다도 낮았다.(다만 8월 31일까지는 30도 이상을 기록했다.) 다른 지역들도 9월 초순을 제외하고 30도 이상으로 올라간 적이 거의 없었다.[270] 서울 기준 2018년에도 30도 이상의 늦더위가 초에 하루 있었지만 2020년에는 아예 없었다. 그나마 9월 1일이 반올림하면 30도였지만 이후로는 28도를 넘어가는 기록도 나오지 않았다. 반올림 해도 28도는 없이 상순~하순 모두 25~26도 전후였다. 그렇지만 9월 중하순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예보보다 1~3도 정도 높게 나와서 7일, 12일을 제외하고 24도 이하도 없었으며 24~27도 사이만 왔다갔다했고 그마저도 28일을 제외하면 이상 고온 수준까지는 아니고 평년 수준~조금 높은 수준이며 서울 이외의 타 지역은 조금 낮았고 10월~11월 상순에는 큰 고온현상 없이 다소 쌀쌀한 날씨를 보였으며 기상청에서도 11월 평균기온을 평년보다 낮다고 전망하여 늦더위나 초이상 고온은 아예 없을 것으로 보다. 그러나 11월은 13일부터 2011년처럼 급격히 더워져 늦더위와 초이상 고온을 맞았다. 그러나 11월 20일 이후로 기온이 내려가 추워졌다.[271] 기온 양상으로는 2019년 5월~6월과 비슷했다. 2019년 5월과 2020년 8월은 초순은 각각 최저/최고기온 저온이 있었고 최고/최저기온은 고온이었으며 중하순은 각각 때 이른 더위와 뒤늦은 폭염/열대야가 기승을 부려 이상 고온을 보였고, 다음 달인 2019년 6월과 2020년 9월은 초중순은 기온이 평년보다 약간 낮았고, 하순은 기온이 평년보다 조금 높았으며 각각 그 해 중 가장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272] 여담으로, 2018년 9월과 2019년 6월이 공통점이 많다. 달력 모양이 같았고, 서울 기준 1981-2010 평년보다 0.3도 높았던 점, 각각 그 해 중 가장 평범한 날씨를 보인 점, 전 달에는 이상 고온을 보인 점, 수도권 등 중부지방은 건조했으나 남해안 중심으로 강수량이 많았던 점이 모두 같다. 다만 기온 양상으로는 정 반대여서 2018년 9월은 초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고 하순은 조금 낮았지만, 2019년 6월은 초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았고 하순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273] 1958년에도 7~8월은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274] 심지어 7월 태풍 0개로 관측 사상 최초로 태풍이 발생하지 않는 7월이 되었다.[275] 8월까지 한반도 본토에선 잦은 비가 오지만 제주도에 폭염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 또한 1998년과 비슷하다. 그리고 2020년처럼 7월 무태풍 기록은 아니고 1개의 태풍이 발생했으나. 1월부터 6월까지는 아예 0개였다. 결국 1998년도 태풍이 매우 적어 16개에 그쳤다. 한편 엘리뇨에서 라니냐로 전환되는 것과 달력 모양도 1998년과 같다.[276] 단 2014년은 7월에 더웠다.[277] 강수의 영향으로 최고기온은 31도 언저리에 있었지만 최저기온은 평년보다 높았다. 습도가 워낙 높아서 생각보단 시원한 느낌은 없었다.[278] 26일에는 36.3도를 기록.[279] 다만, 2018년의 경우 영남 지역은 8월은 동풍으로 인해 7월에 비해 더위가 약한 편인 것을 감안해야한다.그래도 덥다[280] 1995년도 앞서 서술했듯이 서울에서 뚜렷한 폭염을 보이지 않았고 전년도보다는 낮은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잊혀졌던 것이지 대구.경북 지역 중심으로 전년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심각한 더위가 이어졌다. 또한 2010년 8월 같이 위도형 더위로 일본은 1994년보다 더 더웠다.[281] 그러나 이 정도 상승도 남부지방에 비해서 적을 뿐이지 상당히 차이가 큰 것으로 이런 사례는 드물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평균기온을 공평하게 하는것 같다. 7월 저온이 강한 지역일수로 8월 고온도 강해서 7,8월 평균기온은 평년과 비슷했고 편차도 딱히 높거나 낮지 않았다.[282] 서울도 8월 평균기온 26.5 °C로 1950, 2001, 2007, 2010년과 같고 평년보다는 다소 높은 편이며 평년 대구광역시 이상이다. 강릉도 27.0 °C로 역대 3위이다.[283] 13일 36.1°C, 14~15일 36.3°C[284] 종전 기록은 1937년 8월 21일의 36.8°C[285] 여름은 원래 습도가 높다지만, 8월 말치고는 매우 높다. 비가 자주 내린 2010년, 2021년 8월 말과 태풍 솔릭과 국지성 호우가 자주 내린 2018년 8월 말도 8월 말 치고는 습도가 다소 높았으나, 2010년, 2018년, 2021년보다도 더 심한 편이다. 2013년, 2015년, 2017년, 2022년 8월 말의 경우는 한낮에 30~40%까지 떨어진 적도 꽤 있었다. 보통 8월 하순에는 45~55%, 9월에는 최저 습도가 35~45%까지도 떨어질 정도고, 10월은 20~30%까지도 떨어진다. 8월 하순부터는 습도는 낮아져야 정상이지만 한낮에도 습도가 70~80%, 심한 곳은 90%를 육박할 정도이다.[286] 기상학적 가을까지 찾아오지는 않았다. 다만 기상학적 가을날씨를 보이기도 했다.[287] 심지어 장마 예보 초기에는 6월 24일에 한반도 본토에 시작된 장마가 7월 3일에 그대로 북한으로 넘어가서 끝나버리고 폭염이 찾아온다는 예측모델도 있었다. 사실 4월 29일부터 7월 상순까지는 1994년, 2018년과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였다. 물론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나서 늦더위가 강했다지만 장마 기간 자체가 매우 길어져서 수도권 기준 작년과 2018년보다는 나았다. 물론 남부지방 기준으로는 열대야가 잦고 늦더위가 상당해서 평년보다 매우 더운 8월을 보냈다.[288] 2018년 폭염 당시엔 공식 최고기온 37.8°C 정도는 일상이고 피크때는 39~40°C 를 넘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289] 특히 열대야가 심했다. 서울과 경기북부는 2018년은 물론 2016년보다는 훨씬 낮고, 폭염이 비교적으로 약했던 2015년과 비교가 될 정도지만, 강릉, 대구, 포항 등 영동과 남부기준으로는 2018년 8월보다도 열대야가 심하고, 제주는 아예 기록을 경신했으니 말 다했다.[290] 실제로 8월 이후, E로 시작하는 모 국내 최대 날씨 커뮤니티에서는 올 여름 너무 덥다는 아우성도 꽤 있다. 8월 초반에는 잦은 집중호우1998년 8월과 비슷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오히려 2010년 8월, 2013년 7월과 비슷한 특성을 보였다. 수도권에서는 고착화된 장마로 인한 잦은 비, 남부 지방에서는 상당한 더위와 강한 열대야가 2010년 8월, 2013년 7월과 일치한다. 8월 한정으로는 2013년보다 2010년과 일치한데 2010년과 2020년의 경우 서울은 폭염일수가 적고 위도별 차이가 컸지만 2013년 8월의 경우는 8월 초에 장마가 끝나면서 중부 지방 열대야가 길어서 서울에서 27.7 °C를 기록했고 역대 4위를 달성했다. 단 서울만 시원했던 2010년과 달리 2020년은 8월 25~26일에 서울에서 34.5도를 기록해서 늦더위가 매우 강했다. 2010년 8월은 9일 33.3도가 최대인 것을 상기해보자. 8월 9일이면 한창 더울 시기고 26일이면 가을에 가까운 시기인데도 거기에다가 34.5°C니까 8월 초에 올 시 2019년 8월 6일 36.8°C와 비슷한 정도를 기록했을 수도 있고 습도도 높았으니 체감으로는 매우 더울 것이다. 게다가 극값 기준 대구와 큰 차이 나지는 않는다.[291] 6월 폭염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늦더위가 강했더라도 평년보다 비슷하거나 낮아서 시원한 축에 속한 여름으로 기억되었을 듯 하다. 7월 이상 저온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나면 7월에 긴팔을 입는 사람들이 일부 존재했다.[292] 또한 평균 최저기온도 2013년, 2018년처럼 매우 높았다.[293] 사실 이것도 평년보다 적지 않은 수준을 넘어 대놓고 평년보다 확연히 많은 수치이긴하다. 특히 2011년, 2014년 등과 비교하면 훨씬 많은 수준. 심지어 8월로만 치면 2012년, 2019년보다도 많았다.[294] 2013년 8월의 경우 중부 지방도 최저기온이 매우 높아 서울에서 편차가 +2.0도(27.7도)라 전국 편차 +2.1도(27.0도)와 큰 차이 없지만 7월의 경우 전국적이나 남부 지방은 평균기온이 매우 높은 것에 비해 서울은 평년보다 조금만 높은 데 그쳐 차이가 매우 컸다. 이와 정 반대로 2014~2015년, 2019년, 2021년(7~8월 전체), 2018년(8월)은 남부보다 중부의 기온이 대체로 높았다. 한편 2016~2017년(7~8월 전체), 2018년(7월)은 중부와 남부의 편차가 비슷했다.[295] 서울 낮 기온이 20도를 밑돌았고, 순천은 계속 낮 기온이 안오르고 대관령 쪽은 6~7도까지 떨어졌다.[296] 그러나 1월은 시베리아가 이상 고온이었지만 한국도 매우 따뜻했다.[297] 참고로 여긴 스페인답지않게 서늘한, 서안해양성 기후가 나타나는 곳이다.[298] 습구온도 35도에서 사람이 아무리 충분한 물을 마셔도 6시간을 못 버틴다.[299] 시즈오카현이 대한민국식으로는 충청남도에 해당된다. 즉, 관측 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충청남도가 가져간 셈.[300] 일본 공식 관측소 기준 40.4℃로 되어있다.[301] 다만 일본은 완연한 가을인 10월에도 36도를 찍은 적이 있다. 한편 매우 더운 섬 지역에서는 11월에도 미나미토리시마가 34.2도를 찍은 적이 있으니(본토로 한정하면 31.2도) 일반화해서는 곤란하다. 심지어 미나미토리시마가 12월에도 31.6도를 찍은 적이 있으며 1월에는 29.7도, 2월에는 29.0도(정확히는 2위.)3월에는 30.2도( 정확히는 2위.)를 찍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 섬 기후가 열대기후이기 때문이다. 연평균 기온이 25°C 를 넘나들고 대만하고 위도가 비슷하다. 4월부터는 다른 지역에 밀리니 논외. 즉 본토로만 따지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302] 역사상 최고 기온은 1913년 7월에 기록한 56.7℃(134°F) 이지만 최근에 일부 기상학자들은 관찰 자료가 부합하지 않으면서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일본(홋카이도),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종전 최고기온을 2°C이상 경신한 사례가 있기에 1913년 기록이 구라가 아니라는 기상학자들도 존재한다. 또한 미국의 경우 화씨 온도를 쓰지만 소수점 단위를 기록을 안해서 부정확하다는 다른 문제도 있는데 화씨로 134도라면 섭씨 56.4~56.9의 값을 가지며 화씨로 130도라면 섭씨 54.2~54.7의 값을 가진다.[303] 파라과이는 남반구이며 계절의 흐름이 대한민국과 반대라서 에 폭염이 찾아온 셈이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꽃이 피는 시기인 3월 중하순~4월 초중순에 30~33도 이상 폭염을 기록한 셈. 실제로 2022년 4월 10일의 강릉이 근접했다.[304] 서울의 경우 성동구에 있는 살곶이물놀이장이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용산구는 2017년 효창공원에 이동식 물놀이장을 꾸민 이후 2018년 한남동 응봉공원, 2019년 용산가족공원으로 물놀이장을 확대 설치하여 운영했다. 중랑구는 2017년부터 관내 공원과 초등학교 운동장에 이동식 물놀이장을 설치 운영했는데 해당 학교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인근 학교 학생들, 학부모들로부터도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이 모든 곳이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a] A B 2011년~2022년[b] A B 1991년~2020년 사이 30년간.[c] A B 1981년~2010년 사이 30년간.[305] 특히 2016년~2019년은 4년 연속 29°C 이상이었다.[306] 2020년 제외[307] 2011년, 2018년, 2019년[308] 그러나 이 두 해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만 낮은 수준이고 2020년만 이상 저온으로 낮은 것이다. 물론 8월 중순은 2020년은 빼고 모두 이상 저온이 찾아온 건 맞다. 그러나 2011년은 8월 말이 늦더위가 있어 결국 평년보다 0.1°C 높았고, 2020년에는 8월 중순에 30~33°C의 더위가 찾아왔으며 8월 하순에 오히려 뒤늦은 폭염으로 이어졌다. 실질적으로 8월만 놓고 본다면 최근 12년 중 유일하게 이상 저온을 기록한 2014년이 가장 시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4년은 7월(22~24일, 26일 제외)은 더웠기 때문에 7,8월 평균으로는 2011년이 가장 시원했음을 알 수 있다. 7월만으로는 다름아닌 이상 저온을 기록한 2020년 7월이다.[309] 신기하게도 서울은 8월 24일까지는 17일 32.2℃에 그쳐 7~8월 폭염 일수가 아예 없었다. 그러나 8월 하순인 25일에 34.5℃를 기록하며 33℃를 넘겨서 결국 폭염이 나타났다. 인천은 7월부터 8월 24일까지 30도 자체를 넘기지는 못했다.[310] 2014년, 2017년처럼 7월이 최난월이였을 때도 8월 초 기온이 7월 말 기온보다 더 높았다.[311]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도권 지역은 열대야에서 벗어나 에어컨 없이 자는 가정도 많아졌다.[312] 이 사이트에 의하면 1951년 7월과 8월의 평균값이 각각 25.2°C, 26.7°C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가 1982년 이전까지는 기상청의 기록보다 0.1~0.4°C 정도 낮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7월은 25.3~25.6°C, 8월은 26.8~27.1°C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7월은 폭염이 짧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8월의 경우 2006년, 2012년급의 기온을 보여 2006년처럼 폭염이 다소 길거나 2012년처럼 짧아도 36°C를 넘긴 날이 있고 33°C를 넘었은 날도 1주일은 넘었을 수 있을 수준이다. 남부지방의 얘기지만, 1951년 7월 말에서 8월 하순 초까지 극심한 폭염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때, 서울도 이보다 조금 순화된(그러나 최고 34~35°C를 넘긴 날이 있는) 폭염이 찾아왔던 것이라고 막연한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상자료개방포털의 열대야일수를 보면(열대야일수는 전쟁 기간에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1951년에 열대야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하면 폭염이 대체로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1년, 2001년도 기온이 조금 높은 편이었다. 다만 무더위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921년 및 1931년 8월과 1981년 7월도 무더위가 나타났다. 1941년, 1971년, 1991년, 2011년 전체와 1921년 및 1931년 7월, 1981년 8월은 시원했다.[313] 사실 1951년이 상당히 덥긴 했다.[314] 다만 이쪽은 열대야기 심했다.[315] 2011년, 2015년, 2019년, 2022년[314]에는 가을철 늦더위가 심했고, 2014년~2015년, 2019년~2020년, 2022년에는 봄철~초여름 이른 더위가 심했다. 반면에 폭염이 심했던 2012년, 2017년, 2018년은 뚜렷한 늦더위가 없었고 9월이 대체로 평범했다. 대신 2013년, 2017년은 9월 일부와 10월에 늦더위가 있었으며 5월의 경우 2013년, 2018년은 조금만 높았으나 극값은 매우 높았고(2013년은 최고 기온, 2018년은 최저 기온) 2012년과 2017년은 매우 높았으나 서울 기준 최저기온이 20도 이상이 없으면서 최고기온 극값이 30도 전후로 상당히 이상 고온이나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2016년은 이른 더위, 폭염, 늦더위 모두 매우 심했고 2021년은 늦더위가 심했다.[316] 평년 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높은 정도이다. 애초에 최저 기온이 15도를 넘기는 시점은 평년 기준 5월 하순 후반 되어서야 넘는다.[317] 이 해 서귀포시는 여름 동안 폭염이 없었다가 9월 19일에 첫 폭염(34.8°C)이 발생했다.[318] 혹한기 훈련이야 땀을 흘릴 일이 거의 없고 정말 잘 해봤자 감기&동상이고, 추가로 방한복을 더 껴입히고 핫팩이나 기름곤로나 하다못해서 땔감으로라도 불을 지펴가면서 몸을 녹여두게 할 수 있는데, 혹서기 훈련은 땀을 굉장히 많이 흘리는 여름 특성상 일사병&열사병은 기본 옵션이다. 당연히 열사병은 재빨리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아무리 자신이 엘리트인 사관학교 출신 장교에 특급전사라고 해도 폭염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리고 폭염은 남녀노소 안 가린다.[319] 주로 기상 시간을 1시간 당겨 새벽, 오전에 야외 일과를 끝내고 오후에는 실내 작업을 시키고 1시간 일찍 취침하게 한다.[320] 다만 이럴 경우 새벽 3시 기상~저녁 7시 취침과 같이 일과가 바뀐다.[321] 다만 일반 병사라면 건강 챙기기를 부탁하며 지휘관일 경우엔 굳이 무리해서라도 혹서기 훈련을 시행하려고 하지 말자. 차라리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사기를 증진시키는데 더 도움을 준다.[322] 상술되었듯, 7월 말 "더위가 쇠라도 녹일 것 같다"는 표현과 8월 초 "불꽃같은 삼복 더위가 전보다 더하여 사람이 견디기 힘들다"는 표현이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등장하였다. 그 외에도 "바다의 섬들도 찌는 듯 하다"(7월 말), "늦더위가 찌도록 더웠다"(8월 중)는 표현도 있을 정도. 애석하게도, 당시 이순신이 있던 경남 한산도 위주여서 서울까지 더웠는지는 알 수 없다.[323] 어찌나 뙤약볕 더위가 심했으면 국왕 정조가 직접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약을 조재해서 인부들에게 하달하라고 명령했을 정도. 그리고 정조라는 언급을 보면 알겠듯이 국가 공식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기록이다. 초기에 비해 어지간해선 날씨 얘기를 싣지 않는 후기의 특징을 생각하면 의외의 기록.[324] 이쪽은 더위와 그 지속 기간만 따지면 2020년 여름의 조상격으로 악명이 높다. 6월에 130mm가 넘는 월강수량과 동시에 당대 평년보다 더운 날씨가 일찍부터 찾아왔으며, 8월에는 아예 강수량이 거의 제로에 수렴했고, 더위도 강수량없이 8월말까지 계속되었다. 이에 대해 국왕 고종이 "조선의 여름은 더운 것이 정상이나, 올해 여름은 유별나다."고 발언했다.[325] 1994년 폭염 문서 참조.[326] 2020년은 호남은 상대적으로 나았으나 대구.경북과 제주도의 더위가 기록적이었다. 2018년 여름은 전국적으로 최악의 여름이라 남부 지방도 살인적으로 더웠지만 중부 지방이 더욱 강력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중부 지방보다 남부 지방이 더 더운 것을 감안하면 중부 지방이 더욱 강력한 것이다.[327] 비공식까지 포함할 시 1901년도 여기에 든다.[328] 그 때 여름이 확실히 2011년을 제외한 모든 2010년대 여름보다 덜 더웠는데도 불구하고 8월 늦더위/열대야가 강했다고 이 문서에서 심하게 더웠다는 듯이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2016년, 2018년, 2021년, 2022년 폭염은 문서가 분리된 것을 감안해야된다. 게다가 2020년 여름이 전세계적으로는 역대 최악으로 덥긴 했지만.[329] 2010년대 중반 이후 겨울 한파/대한민국/21세기 문서를 보면 이상 고온까지 모두 넣었다. 폭염은 폭염을 서술하지만 한파는 아예 겨울 자체를 서술하는 편이다.[330] 다만 이 쪽은 2016년 1월 중하순에 매우 강한 추위가 찾아왔다.[331] 물론 2017년 1월도 2016년 1월 중하순의 추위만큼 심하지 않았지만 한파가 존재하긴 했었다.[332] 1월~2월 중순에는 몇몇날을 제외하고는 포근했지만 겨울이라고 할 수 있는 날씨는 지속되었다. 전년도 12월과 달리 한파는 없지만 봄 날씨를 딱히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전년도 12월에는 한파는 왔지만 동지 무렵에 12.4°C까지 오르는 이상 고온도 있었다.다음 해와 2021년 1월 하순~2월에는 고온현상이 더 심했다[333] 1월은 전국 한파일수 0일로 하위 1위를 찍었을 정도로 고온현상이 강력했지만 12월과 2월 일부는 한파가 나타났긴 했다. 물론 이것도 반짝에 그쳤고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갔다.[334] 제주도 한정으로 1998년과 2022년도 포함된다. 1998년은 한반도 본토는 4월에 극심한 고온 현상이 있었으나, 정작 여름철에는 장마전선 때문에 북태고가 계속 밀려나서 기온 상승세가 지체되었고, 2022년은 통가 화산 폭발의 여파로 평소보다 많아진 수증기로 인해 주로 폭염보다는 열대야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335] 1909년, 1911년, 1914년, 1916년, 1920년, 1921년, 1922년, 1925년, 1926년, 1927년, 1928년, 1931년, 1932년, 1942년, 1944년, 1945년, 1946년, 1947년, 1948년, 1954년, 1959년, 1962년, 1963년, 1970년, 1973년, 1974년, 1978년, 1979년, 1982년, 1989년, 1991년, 1998년, 2005년, 2008년, 2009년, 2011년, 2014년, 2017년, 2021년, 2022년. 비공식까지 합할 시 1952년, 1953년도 포함되어 43해이다.[336] 그 이전은 추측하기가 힘들다. 옆나라 일본의 사례를 끌어오려 해도, 같은 해 여름에 일본 도쿄 등은 저온 내지 평년 수준인데 한국 서울에선 평년보다 심한 폭염이 닥치거나(예시: 1901년, 1939년, 1943년 등), 그 반대 사례(예시: 1947년 등)가 있어서 온전히 비교해가며 추측하기 힘든 것도 있다.[337] 1919년, 1923년, 1929년, 1930년, 1937년, 1938년, 1949년, 1950년, 1955년, 1960년, 1961년, 1964년, 1966년, 1967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8년, 1990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4년, 2007년, 2010년, 2015년, 2020년 총 30해.[338] 1908년, 1910년, 1912년, 1915년, 1917년, 1918년, 1933년, 1934년, 1940년, 1956년, 1957년, 1965년, 1968년, 1969년, 1971년, 1977년, 1981년, 1986년, 1987년, 1992년, 2002년, 2003년 총 22해.[339] 1924년, 1939년, 1943년, 1975년, 1994년, 2006년, 2012년, 2013년, 2019년 총 9해. 비공식까지 합할 시 1951년도 포함되어 총 10해이다.[340] 1913년, 1941년, 1958년, 1972년, 1976년, 1993년 총 6해.[341] 1936년, 1980년 총 2해. 1905년이 여기에 들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는 사례가 늘어나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342] 2016년, 2018년 총 2해. 염려되는 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듯한 22℃대와 달리 28℃대는 미래에 더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심지어 29~30°C대 이상도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