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고레 공수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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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 공수사단 "폴고레"
3 185ª Divisione paracadutisti / Brigata paracadutisti "Folgore"
185th Paratroopers Division "Folgore"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창설일
1943년
소속
파일:이탈리아 왕국 전쟁기.svg 이탈리아 왕국군
상급부대

규모

역할

모토

사령관

1. 개요
2. 주요 연혁
2.1.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편제
3.1. 전투전의 상황
3.2. 전투 상황
3.3. 전과 및 피해
3.4. 평가



1. 개요[편집]


Fra le sabbie non più deserte
무인의 사막 속에서

son qui di presidio per l'eternità i ragazzi della Folgore
이 곳에 묻힌 폴고레의 병사들은 영원한 수호신들이다.

fior fiore di un popolo e di un Esercito in armi.
국민과 군대의 꽃으로써.

Caduti per un'idea, senza rimpianto, onorati nel ricordo dello stesso nemico,
어떠한 후회도, 반항도 없이 무너지지 않은 적을 기리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essi additano agli italiani, nella buona e nell'avversa fortuna,
그들은 역경과 행운 속에서 이탈리아인들을 섬겼으며

il cammino dell'onore e della gloria.
그들을 명예와 영광의 길로 이끌었다.

Viandante, arrestati e riverisci.
나그네들이여 다시 일어서라.

Dio degli Eserciti,
군인들의 신이여,

accogli gli spiriti di questi ragazzi in quell'angolo di cielo
천국에서 이들의 영혼을 받아주어라.

che riserbi ai martiri ed agli Eroi.
순교자들과 영웅들의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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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알라메인의 폴고레 추모석에 적혀있는 비문.


파일:4a316c62264c8c59d130667ed01a044e.jpg
2차대전 당시 폴고레 공수사단의 군복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존재했던 이탈리아 왕국군 육군의 공수사단. 폴고레(Folgore)는 이탈리아어번개를 뜻한다. 공식 창설일은 1941년 9월 1일이었으나 부대가 창설되기 전에도 작전에 투입됐다. 약군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군 중에서 분투하고 상당한 전과를 만든 부대.

폴고레 이외에도 이들과 함께 악전고투에서 승전보를 울림으로써 유명해졌던 부대들이 꽤 있다. 검은 닭 깃털 장식으로 유명한 베르살리에리, 에르빈 롬멜과 부관이자 21기갑사단의 지휘관 한스 폰 루크 대령이 격찬했던 아리에테 기갑사단, 바다에선 현대 UDT 수중침투전의 토대 자체를 닦았던 데치마 플로틸리아 MAS, 정식 이탈리아군이 아닌 이탈리아인들로 구성되었던 의용병들이었던 내전 당시 스페인 공화인민군 제11 국제여단 가리발디 대대 등이 있고, 이 항목에 소개된 폴고레 사단 또한 이런 군계일학 중 대표적인 부대였다 할 수 있다.


2. 주요 연혁[편집]


  • 1941년 4월 그리스 해안 잔테, 케팔로니아 섬 전투강하
  • 영국키프로스 습격
  • 1942년 7월 북아프리카 파병
  • 1963년 1월 1일 여단 편제로 개편

2.1.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편제[편집]



  • 보충병력
    • 귀아스타토리 전투공병대대
    • 파비아사단의 보병대대, 포병대대 각 1개 대대
    • 브레시아사단 예하 1개 포병중대
    • 아리에테 기갑사단 예하 88mm 대전차 포병중대1개
    • 제5베르사글리에리대대 예하 대전차 포병 중대 1개
    • 독일 21기갑사단 예하 전차 1개소대


3. 엘 알라메인 전투[편집]



3.1. 전투전의 상황[편집]


  • 1942년 9월 영국군의 브레스포드 공세시 제10 공수대대의 손실로 제9공수대대로 흡수

3.2. 전투 상황[편집]


  • 1942년 10월 23일 엘알라메인 공세 시작
  • 정규사단급의 방어구역 할당으로 방어역량 부족
  • 1차 및 2차 방어선 구축으로 1차 방어선은 위장, 지나친 전차의 후미 공격
  • 2차 방어선 화력 집중
  • 이후 3일간 방어성공(상대 : 영국군 제7기갑사단, 44, 50보병사단, 자유프랑스 제1사단, 그리스 여단등)
  • 11월 2일 철수 명령 받음
  • 11월 6일 푸카에서 항복. 이후 리비아까지 도보 퇴각.
  • 제 285 폴고레 공수대대로 재편성된 후 튀니지 전투에 참가


3.3. 전과 및 피해[편집]


  • 연합군의 110여대의 전차 파괴 및 3,000여명의 사상자를 냄.
  • 정원 3,500명중 1,100여명 사상


3.4. 평가[편집]


"남자 구실은 했다."

"무기는 형편없지만 싸우는 법을 알았다."

북아프리카에서 포로로 잡힌 독일 국방군 병사들의 평가.

나치의 병사들, 죙케 나이첼, 하랄트 벨처, 민음사. 391페이지.


윈스턴 처칠 수상은 "우리는 사자와 같은 폴고레 사단의 생존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라고 평가했다고 하지만 처칠이 이런 연설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는 게 정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부 해외자료가 처칠이 1942년 11월 2일 하원 연설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고 주장하나, 공식 기록을 살펴보면 당일 하원은 소집된 바 없다. 다만 폴고레 사단 장병들의 분투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영국 제44 보병사단장인 허기스 장군은 " 나는 내 남은 생애에 두 번 다시 폴고레 사단과 같은 적을 만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이탈리아군은 이미 2차대전 시절부터 폄하의 대상이었다. 아니 사실 군대뿐만 아니라 19세기경부터 이탈리아를 포함해서 라틴권, 슬라브권같은 같은 백인이라도 좀 어딘가 후진적으로 보이는 나라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같은 더 나아보이는 백인들이 보기엔 다 까임의 대상이었다.[1] 한국은 단지 이런 서구권의 드립을 수입했을 뿐이다.

자국내 비슷한 사례로는 이탈리아 해군에도 Decima Flottiglia MAS라는 특수부대가 대활약을 했다.

[1] 대표적으로 아일랜드인은 '하얀 흑인'이라고 비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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