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마텐클로트

덤프버전 :


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 펼치기 · 접기 ]
{#fff 상급대장 ^^OF-9^^[br]{{{-1 ''Generaloberst / General admiral''[br][[파일:Si_4a.png / [[파일:130px-WMacht_Lw_OF9_GenOberst_1945.png
육군
상급대장
한스 폰 젝트 |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 게오르크 린데만 | 베르너 폰 프리치 | 루트비히 베크 |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 프리드리히 프롬 | 하인츠 구데리안 | 오이겐 리터 폰 쇼베르트 | 쿠르트 하제 | 에리히 회프너 | 프란츠 할더 | 헤르만 호트 |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 알프레트 요들 | 로타르 렌둘릭 | 에르하르트 라우스 |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 요하네스 프리스너 | 한스 위르겐 폰 아르님 | 에두아르트 디틀 | 카를 힐페르트 |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
공군
상급대장
쿠르트 슈투덴트 | 에른스트 우데트
해군
상급대장
알프레트 잘베히터 | 오스카 쿠메츠 | 한스 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 빌헬름 마르샬 | 발터 빌헬름 율리우스 바르체하
병과대장 OF-8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파일:Si_4b.png / 파일:200px-WMacht_Lw_OF8_GenWaGtg_h_1945.svg.png / 파일:AA-3A.png

육군
병과대장

보병대장
프란츠 마텐클로트 | 안톤 도슈틀러 | 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 | 쿠르트 폰 티펠슈키르히 | 테오도어 부세 | -한스 크렙스 |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 디트리히 폰 콜티츠 | 카를 에두아르트 | 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

명예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
기갑대장
핫소 폰 만토이펠 | 발터 벵크 | 빌헬름 리터 폰 토마 | 발터 네링
포병대장
발터 폰 자이틀리츠-쿠르츠바흐 | 헬무트 바이틀링 | 에두아르트 바그너 | 에리히 마르크스 | 에른스트에버하르트 헬
통신대장
에리히 펠기벨 | 알베르트 프라운
산악대장
카를 에글제어 | 프란츠 뵈메
공병대장
발터 쿤체
공군
병과대장
브루노 브로이어공수 | 오이겐 마인들공수 | 울리히 케슬러조종
해군
대장
빌헬름 카나리스 | 오토 칠리악스 | 귄터 뤼첸스
중장 OF-7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파일:Si_5a.png / 파일:1256px-WMacht_Lw_OF7_GenLt_h_1945.svg.png / 파일:AA-4A.png

육군
중장
히아친트 그라프 슈트라흐비츠 | 헬무트 폰 판비츠 | 한스 슈파이델 | 오스카 폰 힌덴부르크 | 아돌프 호이징거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 | 에밀리오 에스테반 인판테스
안드레이 블라소프 | 보리스 시테이폰
공군
중장
발터 베버 | 아돌프 갈란트 | 테오도어 오스터캄프
해군
중장
-
소장 OF-6
Generalmajor / Konteradmiral
파일:Si_6a.png / 파일:200px-WMacht_Lw_OF6_GenMaj01_h_1945.svg.png / 파일:AA-5A.png

육군
소장
발터 도른베르거 | 카를 게프하르트 | 카를 브란트 | 헤닝 폰 트레슈코프 | 하인리히 크라이페 | 한스 오스터 | 오토 에른스트 레머
미하일 스코로두모프 | 이반 코노노프 | 세르게이 부냐첸코
공군
소장
디트리히 펠츠
해군
소장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국방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독일 국방군 해군, 즉 크릭스마리네에만 있는 준장 계급은 미군의 대령에 상응
※ 윗 첨자 : 전사

※ 둘러보기
파일:슈츠슈타펠 문장.svg 슈츠슈타펠의 장성급 지휘관







파일:3816080223165128p.jpg

이름
Franz Mattenklott
프란츠 마텐클로트
출생
1884년 11월 9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 그륀베르크인슐레지엔
(현 폴란드 루부스키에주 지엘로나구라)
사망
1954년 6월 28일, 서독 니더작센주 브라운라게
복무
독일 제국군:1903-1919
국가 방위군: 1920-1935
독일 국방군: 1935-1945
최종 계급
파일:Si_4b.png 육군 보병대장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1. 생애
2. 제2차 세계대전
2.1. 프랑스 침공
2.2. 그리스 침공
2.3. 독소전쟁
2.4. 서부전선
3. 전후



1. 생애[편집]


마텐클로트는 1884년 독일제국 동부 그륀베르크 인 슐레지엔[1]에서 테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설탕 공장주였으며 사임한 대위였다. 그는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후 1903년 메스 지역에서 독일군에 지원하게 된다. 1903년 12월 8일 그의 군 생활이 시작되었고, 마데부르크 보병 제 2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때 당시 중위였다. 전쟁중 철십자 훈장 2급과 1급을 다 수여받았으며, 1차세계대전이 끝났을때 최종계급은 대위였다.
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그는 국가방위군에 남았다. 그는 스타르가르트슈체친스키연대에 배치받았으며, 이 연대는 1935년 10월 15일에 제 25연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독일 국방군으로 바뀐 1938년 3월 1일에 소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에는 트리어 방어부대를 지휘했다.


2. 제2차 세계대전[편집]



2.1. 프랑스 침공[편집]


1939년 9월 19일, 마텐클로트의 사단은 72 보병사단으로 재편성하게 된다. 그리고 1940년 2월 1일, 마텐클로트는 중장이 되었다. 72 보병사단은 프랑스 침공에 참전하는데 당시 사단이 열등한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투에 참여를 잘 못했다. 72보병사단의 한 참전용사는 본인이 숲에서 프랑스 진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작은 교전만 경험했다. 마텐클로트는 공중보급을 잘 못해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바보라고 불렸다. 72 보병사단이 프랑스를 점령한 이후 마텐클로트는 5주동안 메스의 사령관이 되었다가 다시 72 보병사단으로 복귀하였다.


2.2. 그리스 침공[편집]


프랑스에서의 전투 이후 72 보병사단은 그리스 침공 배치되었다. 제72 보병사단은 빌헬름 리스트의 제12군, 프란츠 뵈메 의 XVIII 산악군단의 사단장으로 배치되었다.

나치독일은 그리스 침공에서 중무장한 그리스군의 방어선인 메탁사스 라인을 돌파해야했다. 그리스에서 마텐클로트의 부대는 네베러코프의 남서쪽 방어선을 돌파하고 세레스까지 남서쪽으로 더 진행 한 다음 북쪽으로 돌아서 루펠 요세을 뒤에서 공격하여 좁은 계곡을 가로 지르는 중요한 국도를 점령하는 목표를 얻었다. 그러나 72보병사단은 메탁사스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결국엔 4월 9일 그리스군은 항복했고, 6월에는 크레타섬을 점령을 시작했다.


2.3. 독소전쟁[편집]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그의 부대는 루마니아에 있었다. 남부집단군에 배치되어 러시아 남부를 침공하였고 그의 부대는 1941년 늦가을에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참전한다. 그는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지휘력을 인정 받아 기사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2]. 그후 몇달 동안 에리히 폰 만슈타인 보병대장과 함께 세바스토폴을 포위했다. 그리고 마텐클로트는 이곳에서 민간인 학살을 명령했다. 이후 42군단의 사령관이 되어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하긴 했으나 세바스토폴 공방전때와 같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2.4. 서부전선[편집]


독소전쟁이후 그는 5군단에 사령관이 되어 서부전선으로 갔다. 마텐클로트와 그의 부대는 파데본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4월 1일, 알베르트 케셀링에게 파데론은 함락되었다고 전하였다. 며칠뒤 그는 렘고의 시장을 이유없이 사형시켰다.[3] 그리고 몇주 뒤, 그는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3. 전후[편집]


마텐클로트의 독소전쟁에서의 전쟁범죄는 인정되었다. 그는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을 한 아인자츠그루펜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로 실제로 구속되지는 않았다. 결국 69세의 나이에 서독에서 생을 마감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08:15:24에 나무위키 프란츠 마텐클로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Grünberg in Schlesien. 현 폴란드[2] 1941년 11월 23일에 수훈[3] 그 이유는 렘고를 미군에게 항복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