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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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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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화산 위에서 잠자고 있다. (...) 대지가 다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폭풍우는 지금 지평선 저 위까지 다가왔다.

Nous dormons sur un volcan (...) Ne voyez-vous pas que la terre commence à trembler? Le vent de la révolte souffle, la tempête est à l’horizon

- 알렉시스 드토크빌, 2월 혁명 발발 직전 의회 연설에서












1848년 혁명들은 '부르주아 혁명'이어야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혁명으로부터 몸을 뺐다. 그들은 프랑스의 지도 아래 서로 보강해 가면서 옛 지배자들의 부활을 막거나 연기시키고, 러시아가 개입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의 부르주아지는 다시 한 번 '위대한 국민'이 된다는 보수와 그것에 따르는 위험보다는 국내의 사회적 안정 쪽을 택했던 것이다.


  • 혁명 성공 직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적기를 새로운 국기로 수립하자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부르주아들이 강경히 반대해서 기존의 삼색기가 국기로 채택되었지만 만약에라도 적기가 채택되었더라면 러시아보다도 70년 앞서서 세계 최초[1]로 적기를 국기로 선택한 정부가 등장할 수 있었다.
  •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성공한 마지막 혁명이다. 이 혁명 이후로 사회 기득권을 손에 넣은 부르주아들이 혁명 세력으로부터 이탈하면서 애초에 혁명 자체가 자주 벌어지지도 않았다. 파리 코뮌은 결국 몇 달 지나지 않아 진압당했으며 68운동도 결국 보수 세력이 재집권에 성공했다.[2]

[1] 물론 1871년의 파리 코뮌 역시 적기를 국기로 채택하기는 했지만 이쪽은 세력이 철저히 파리에 국한됐던 데다 몇 달 버티지도 못해서 실질적인 정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2] 하지만 68운동은 이후에 서유럽북유럽 국가들의 대부분의 헤게모니를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좌파 사상이 차지하는 첫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절대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