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이자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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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국 에드워드 2세의 왕비
프랑스의 이자벨
Isabelle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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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상상화
이름
프랑스어
프랑스의 이자벨
(Isabelle de France)
영어
프랑스의 이사벨라
(Isabella of France)
별칭
암늑대 (She-Wolf)
출생
1295년
프랑스 왕국 파리
사망
1358년 8월 22일 (62-63세)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 성
장례식
1358년 11월 27일
뉴게이트 그레이 프라이어스 교회
배우자
에드워드 2세 (1308년 결혼 / 1327년 사망)
자녀
에드워드 3세, 존, 엘레노어, 조안
아버지
필리프 4세
어머니
호아나 1세
형제
루이 10세, 필리프 5세, 샤를 4세
종교
가톨릭 (세례명:이사벨라)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3.1. 자녀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프랑스어: Isabelle de France (프랑스의 이자벨)
영어: Isabella of France (프랑스의 이사벨라)

프랑스 왕국공주이자 잉글랜드 왕국왕비.

2. 생애[편집]


프랑스의 미남왕 필리프 4세와 나바라 여왕 후아나 1세의 딸로 1308년 1월 25일 12세의 나이로 불로뉴에서 에드워드 2세와 결혼했다.[1] 필리프 4세의 고명 딸로 미남 아버지를 닮은 굉장한 미인이라 '아름다운 이사벨라(Isabella the fair)라고 불렸다. 또한 머리가 좋고 처세를 잘해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는데, 조정자 역할로서 정치에 입문했다. 에드워드 2세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그녀는 국왕의 총애를 받던 피어스 개버스턴이 한창 세력을 떨칠 때와 1312년 개버스턴이 살해되고 난 뒤 에드워드와 귀족들 사이에 화평을 도모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1320년대에 새로 국왕의 총애를 받게 된 더스펜서 부자에 대해 적대감을 품었다.

1325년 프랑스로 건너가 오랫동안 끌어오던 가스코뉴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고, 그곳에서 훗날 에드워드 3세가 되는 아들 에드워드 왕세자와 합류한 뒤 더스펜서 부자가 궁정에서 제거될 때까지 잉글랜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녀는 자신의 정부 로저 모티머를 비롯한 다른 망명 귀족들과 함께 에식스로 건너가, 에드워드 2세와 더스펜서 일가의 군대를 물리치고 더스펜서 부자들을 처형했다.

1327년 남편을 퇴위시키고 버클리 성에 감금시킨 다음[2]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즉위시키고 그녀와 모티머는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에드워드 3세는 1330년 기회를 엿보다 모티머를 체포하여 처형했으나, 어머니를 죽이기는 싫었는지 이사벨라는 수녀원에 유폐하였다가 2년 뒤 풀어주었다. 그후 이사벨라는 아들 에드워드 3세의 궁정에 많이 방문하였고 손주들을 애지중지했다고 한다.[3]

그녀는 죽기 전 가난한 글라라 수녀회[4]에 입회했고, 죽은 뒤 시신은 런던에 묻혔다.[5]

오빠인 샤를 4세가 적통 왕자 없이 공주만 남긴 채 사망함에 따라, 부왕 필리프 4세의 혈통을 잇는 카페 직계는 멸족했지만 이사벨라를 통해 플랜태저넷 왕조에 모계로 필리프 4세의 혈통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백년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남
에드워드 3세
(Edward III)
1312년 11월 13일
1377년 6월 21일
에노의 필리파
슬하 5남 4녀[6]
2남
콘월 공작 엘담의 존
(John of Eltham, Duke of Cornwall)
1316년 8월 15일
1336년 9월 13일

1녀
겔레 공작부인 엘리노어
(Eleanor, Duchess of Guelders)
1318년 6월 18일
1355년 4월 22일
레이노트 2세
슬하 2남
2녀
스코틀랜드의 왕비 조앤
(Joan, Queen of Scots)
1321년 7월 5일
1362년 9월 7일
데이비드 2세


4. 대중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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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소피 마르소가 배역을 맡았다. 이사벨라가 윌리엄 월레스와 연인 관계로 묘사되어서 윌리엄 월레스는 에드워드 3세의 아버지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윌리엄 월레스가 1305년에 처형되었을 때, 이사벨라는 10살이었다.[7]

틸다 스윈튼이 데릭 저먼의 영화 《에드워드 2세》에서 이사벨라 왕비로 나온다. 배우의 극강의 미모를 확인할 수 있다.[8]

소설 《저주받은 왕들》에서는 1권 1장부터 주역으로 등장하며 이후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1] 결혼은 10살 때 결정되었으나 당시 결혼할 수 있는 최저 연령인 12세가 되기 전까지 기다렸다.[2] 이후 에드워드 2세는 감금당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1327년 9월 21일,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는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는데 프랑스의 이사벨라와 모티머가 후환을 없애기 위해 폐위당한 에드워드를 살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3] 그 중에서도 흑태자 에드워드를 제일 아꼈다고 한다.[4]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운 수도회프란치스코회의 제2회 수도회로, 봉쇄수녀원이다. 한국에도 진출하여 있는데, 경기도 양평군제주특별자치도 등에 수녀원이 있다.[5] 남편인 에드워드 2세의 심장이 담긴 작은 상자를 쥐고 있는 채로 묻혔다고 한다.[6] 흑태자 에드워드, 앤트워프의 라이오넬 등.[7] 이사벨라는 1308년에 에드워드 2세와 결혼했기 때문에 윌리엄 월레스가 에드워드 3세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불가능하다.[8] 영화 자체는 정통 시대극은 아니고 에드워드 2세와 총신 가베스턴의 관계를 현대식으로 어레인지 한 것이다. 이는 게이였던 감독 데릭 저먼의 성향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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