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르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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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파일:Frank_Leboeuf.jpg
이름프랑크 르뵈프
Frank Leboeuf
본명프랑크 알랭 제임스 르뵈프
Franck Alain James Leboeuf
출생1968년 1월 22일 (56세)
프랑스 마르세유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

신체 183cm
직업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소속선수스타드 라발 (1988~1991)
RC 스트라스부르 (1991~1996)
첼시 FC (1996~2001)
올랭피크 마르세유 (2001~2003)
알 사드 SC (2003~2004)
알 와크라 SC (2004~2005)
할리우드 유나이티드 (2006~2007)
국가대표50경기 4골 (프랑스 / 1995~2002)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은퇴 이후
6. 여담
7.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 현 배우.

현역 시절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UEFA 유로 2000 우승을 차지했던 프랑스 황금기의 일원이었으며 로만 아브라모비치 인수 이전의 첼시에서 활약했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축구선수 생활 은퇴 이후 할리우드에 정착해 연기를 배우며 2010년 자국으로 돌아가 배우로 데뷔했고, 비중있는 조연 역할을 맡는 배우로 자리잡으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 클럽 경력[편집]


르뵈프의 아버지는 스타드 렌 FC의 코치 출신으로,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르뵈프는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88년 성인이 되어서 1부리그의 스타드 라발에 입단해 경력을 시작했고, 중앙수비수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이며 3시즌 동안 69경기 11골을 기록하며 프랑스 빅 클럽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90년 11월, 르뵈프는 빅클럽은 아니지만 더 큰 클럽이었던 2부리그의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했다. 1부리그에서부터 가능성을 보여준 그에게 2부리그는 작은 무대였고, 여기서 그는 경력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5시즌간 189경기를 소화하면서 팀의 핵심이 되었고, 중앙 수비수로써는 놀라운 기록인 리그 48골을 잡아내면서 팀의 세트피스 주 득점원으로 맹활약한다. 특히 1992-93 시즌부터 스트라스부르와 함께 1부리그로 돌아와 1995년 스트라스부르와 함께 프랑스 컵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클럽의 상승세에 한 몫 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그의 키가 183cm로 중앙 수비수로써는 다소 작은 편이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위치 선정과 킥 능력으로 헤더골과 페널티킥 골을 다수 잡아냈다.

결국 이 활약상으로 인해 늦은 나이지만 프랑스 국가대표에도 뽑히게 되었고, 당시 엄청난 공격축구를 구사하던 EPL첼시 FC가 그를 영입했다. 첼시에서의 5시즌은 르뵈프의 선수생활 가장 큰 전성기 시절로 1996년 입단해 2001년 이적할 때 까지 144경기 17골을 기록하며 중앙 수비수임에도 첼시 공격축구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활약상으로 그는 지금까지도 첼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써 이름을 올리곤 한다. 또한 두 차례의 FA컵 우승과 한 차례의 리그컵,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기록하며 트로피도 많이 들게 된다. 하지만 잔루카 비알리 -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과의 연이은 불화로 인해 입지가 불안해졌고, 첼시 말년에는 주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백으로까지 출전해야만 했다.

결국 2001년 그는 고향 팀 올랭피크 마르세유로 건너가 프랑스 리그로 복귀했다. 어느새 30대 노장이 되어서 그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2년동안 51경기 5골을 기록한 뒤 카타르로 이적하며 현역 은퇴를 준비했다. 알 사드알 와크라 SC에서 각각 1시즌씩 활약한 뒤 르뵈프는 은퇴를 선언했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중소 클럽에서 경력을 시작했기 때문에 1995년 27살의 나이에서야 대표팀에 첫 발탁되었다. 1995년 9월 노르웨이와의 UEFA 유로 1996 예선전에서 폴 르갱과 교체로 들어가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UEFA 유로 1996 본선 명단에도 승선하는 등 대표팀 주전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스쿼드에 뽑히면서 정기적인 국대 멤버로 자리잡았고, 특히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결승전 때는 주전 로랑 블랑의 퇴장으로 인한 징계로 인해 선발 출장해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잘 봉쇄하며 3-0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UEFA 유로 2000 역시 주전은 아니었지만 백업으로 종종 나와 우승을 달성했고, 블랑이 국가대표팀 은퇴를 하면서 주전이 된 그는 마르셀 드사이와 짝을 이뤄 2001년 컨페드컵도 우승을 했고, 이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에도 참가했다. 당시 대회 직전 대한민국과의 최종 평가전에서 3-2 역전승을 거둘 때의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이 르뵈프다. 하지만 그는 2차전 우루과이전에서 부상을 당하며 더이상 뛸 수 없었고, 프랑스는 충격적이게도 조별리그 탈락을 하고 말았다. 이후 곧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A매치 50경기 4골을 기록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매우 지능적인 수비를 구사한 선수였다. 또한 공간을 보는 눈이 탁월해 지금의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같이 롱패스로 한번에 공격전개를 만들어주는 정확한 킥을 구사했다. 이런 킥 능력으로 인해 그는 소속팀에서마다 페널티킥 전담 선수가 되었으며 특히 첼시 FC에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페널티 킥으로 20골 이상을 넣는 괴력을 선보였다.

또한 키가 작았지만 그에 비해 많은 헤더 골을 넣은 선수로 세트피스에서도 하나의 공격 옵션이 되었던 선수였다.

5.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LA할리우드에서 2년간 거주하며 리 스트라스버그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웠다. 이 시기 할리우드 유나이티드라는 미국 하부리그 아마추어 축구팀에서도 활동했고 여기서 같은 축구선수 출신인 비니 존스, 앤서니 라팔리아와 같은 배우들과 친분을 쌓았다. 또한 방송활동도 병행하며 프랑스의 라디오 몬테카를로, 미국 스포츠 방송국 ESPN의 축구 해설자로도 일했다.

2010년대 들어 여러 프랑스 영화에서 꽤 비중있는 조연 역할을 맡으며 성공적인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의사 역할로 국내 팬들에게도 배우로써 첫 얼굴을 내보였다.

2019년 뜬금포로 프랑스판 복면가왕Mask Singer에 출연했다.

6. 여담[편집]


  • 프랑스 배우 크리스로르 놀레와 결혼해서 딸 제이드 르뵈프와 아들 우고 르뵈프를 낳았다. 특히 딸 제이드 르뵈프는 매우 출중한 외모로 어릴적부터 유명세를 탔으며 현재 아버지를 따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 칼럼니스트로써도 오래동안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축구 전문지 텔레풋에 오랜기간 축구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7.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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