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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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강령
1.1. 전문
1.2. 의의
2. 삼성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1.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강령[편집]


1951년 7월 2일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선언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강령이다.


1.1. 전문[편집]


자본주의는 거대한 생산의 힘을 지녔지만, 정작 생산력을 발생시키는 주체인 노동자와 무산계급은 경제상으로 언제나 빈곤해야 했다. 이에 사회에 관계된 권한이 없는 노동착취와 임금삭감을 반대하고 노동착취에 맞서는 노동자들을 돕겠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빈부 격차를 축소하고자 헌신하겠으며, 자본주의가 야만스러운 제국주의의 발생을 또다시 돕지 않게끔 막겠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권위주의 체제를 동반하고 있지만, 자유와 민주 없이 사회주의의 원류는 실현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 따라 발전된다.

1. 19세기 이래 자본주의는 거대한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자본주의는 인민의 대다수가 생산의 지배로부터 소외되는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으로서 권리보다 소유의 권리를 우위에 둔다. 자본주의는 재산권이나 사회적 권리를 갖지 못한 임금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계급의 투쟁을 격화시켰다. 세계는 각인에게 응분의 생활을 충족시킬만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세계인구의 기본적인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파멸적인 위기와 대량의 실업이 없이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것은 사회불안과 빈부의 뚜렷한 격차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팽창과 식민지 수탈에 호소하여 국민간, 민족간의 분쟁을 더욱 더 가열하게 만들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강력한 자본가적 집단이 과거 야만성을 띤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형태로 다시 대두하도록 조장하였다.

2.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폐해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유럽사회에서 발생하였다. 자본주의 때문에 가장 고통을 받은 것은 임금노동자였으므로 사회주의는 맨 처음에 임금 노동자의 운동으로서 발전하였다. 그후 많은 시민들 즉 자유직업자, 사무원, 농민, 어민, 수공인, 소매상, 예술인, 과학자등은 사회주의가 그들의 장래에 대한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수탈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3. 사회주의는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또는 관리하는 소수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해방하는 것을, 그리하여 경제권력을 국민 전체의 손에 넘겨주어 자유로운 사람들이 평등한 자격으로 함께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사회주의는 세계정치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세력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선전으로부터 실천의 단계로 들어섰다. 어떤 나라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사회의 기초가 튼튼하게 마련되었다. 여기서는 자본주의 해악이 없어지고 사회는 새로운 생기를 얻고 있다. 사회주의의 제 원리는 실천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5. 많은 나라에 있어서 방임된 자본주의가 국가의 간섭과 공공소유로서 사적 자본가를 제한하는 경제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사람들은 계획의 필요성을 더욱 더 인정하게 되어가고 있다. 사회보장, 자유로운 노동조합, 산업 민주주의가 지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와같은 발전은 주로 사회주의와 노동조합 운동자에 의한 오랜 투쟁의 결과이다. 사회주의가 강한 곳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창조를 향하여 중요한 시책이 채택되어가고 있다.

6. 근년 세계의 후진지역의 사람들은 국민적 자유와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사회주의가 가치 있는 투쟁의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환경에 따라 갖가지 민주적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 지역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의 주요한 적은 토착 재벌의 기생적 수탈과 외국 자본가에 의한 식민주의적 수탈이다. 사회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하여 투쟁하고 토지개혁과 공업화와 산업공유제도의 확장과 생산자 및 소비자의 협동조합의 발전을 통하여 대중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것을 요구한다.

7. 사회주의가 세계의 도처에서 발전하고 있는 한편에는 새로운 세력이 자유와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이 운동을 위협하려고 대두하고 있다. 러시아에 있어서의 "볼세비키" 혁명 이래 공산주의는 국제노동운동을 분열시켰으며 많은 나라에 있어서의 사회주의 실현을 수십년은 지연시켰다.

8.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전통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왜곡시켜 버렸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완곡한 이론을 수립하였다.

9.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밑에 있어서 인류를 분열시키고 있는 수탈을 제거함으로써 자유와 정의를 달성하려 하는데 대하여 공산주의자는 오로지 일당독재를 실현하기 위하여 계급분열은 격화 조장하려고 날뛰고 있다.

10: 국제 공산주의는 새로운 제국주의 도구인바 그것이 정권을 장악한곳에서는 어디에서 나 자유와 자유를 획득할 기회를 파괴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군국주의, 관료주의와 공포 경찰제도에 기초를 두고 있다. 부와 특권의 역연한 차별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것의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어 냈다. 강제노동은 그 경제조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1. 사회주의는 엄밀한 획일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 국제적운동이다. 사회주의는 그들의 신념을 마르크스주의적 기초 위에 두거나 혹은 사회분석의 다른 방법에 두거나를 불문하고 또 그들이 사회주의자가 된 동기가 종교적인 원리이든 인도주의적인 것이든 모두 하나의 목적 즉 사회정의, 보다나은 생활,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노력한다.

12.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개선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멸망케 할 힘을 한층 증대시켰다. 이 때문에 생산은 경제적 자유주의에 그대로 맡겨서는 안되며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조직적으로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계획은 개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는 국내 및 국제문제에 있어서 자유와 계획을 주장한다.

13. 사회주의의 달성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신봉자 하나 하나의 공헌을 필요로 한다. 전체주의적 방법과 달라서 사회주의는 국민들로 하여금 피동적인 역할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국민들의 철저하고도 적극적인 참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최고의 형태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이다.



1.2. 의의[편집]


이 선언 이후로 스탈린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의 개념을 분리하고, 노동당, 사회민주당, 사회당 등은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완전히 배제한 민주사회주의[1]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게 되었다.


2. 삼성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편집]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봐.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구태여 회사에서만 할 필요 없다.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

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불량은 암이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이고, 3만 명이 만들고 6천 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다.


바뀌고 싶은 사람만 바뀌어.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 많이 기여해. 적게밖에 못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어서 적게 기여해.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말라 이거야.


현재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하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출장 당시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던 것으로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것을 바꿔라"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건희 회장은 일본인 고문인 후쿠다 다미오(福田民郞)[2]에게서 받은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1993년 6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했으며 현재의 삼성 로고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직원들을 꾸짖기 위해 핸드폰 15만 대를 불태워 버린 애니콜 화형식은 전설로 전해질 정도. # 이기태 사장이라는 최고의 실무진이 애니콜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낸 것은 그의 역량과 이건희라는 비전가의 결단, 추진력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한 마디로 (긍정적인 의미의) 그 회장에 그 사장.

그는 이러한 '신경영'을 통해 임원진들의 반대까지 물리치며[3] 극단적인 질적 개혁을 골자로 한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고 이 승부수는 통해 결국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후쿠다 고문에게는 매우 두둑히 챙겨줬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들을 다 제치게 도와줬다면서 욕을 먹기도 했다고.

질적 개혁이 뭐 그리 대단한 비전에 의한 것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 한국 대기업들 중에서는 이런 경각심을 가진 곳이 거의 없었고 당장 내수 매출이 잘 나오고 하니 해외 일류 기업들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지더라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했다.[4] 결국 LG전자는 이 때 삼성처럼 하지 못해 결국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삼성 라이징'의 저자인 기자 제프리 케인도 삼성이 오너 세습 경영을 포기해야하지만 그렇다고 전 오너의 신화를 흐릴 필요는 없다며 '이건희 회장은 냉전 이후의 시장 변화에 대해 미리 내다본 몇 안 되는 경영자였으며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글로벌 삼성은 없었다.'고 평가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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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민주사회주의는 함부르크 강령 등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사용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최종적 달성 목표를 이른다.[2] 일본 전자업체 교세라 출신으로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가였다. 1989년 이건희 회장의 제안을 받고 삼성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3] 당시 삼성의 2인자나 다름없었던 이수빈 현 삼성경제연구소 회장마저 그의 극단적인 질적 개혁안에 반대하다가 이건희가 화가 나 티스푼을 테이블 위로 던진, 일명 티스푼 사건(...)도 이 때였다. 물론 화난다고 스푼을 던진게 잘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개혁이 험난했으며 이건희가 생전 회사 내에서 신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한 것이 괜히 형성된게 아니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4] 심지어 상당한 질적 개혁이 이루어지고 난 1990년대에서도 선진국에서는 삼성을 'Sam-Suck'이라 부르며 2류 기업 취급하는 분위기가 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