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최근 편집일시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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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어빙 G. 텔버그 기념상
제83회
(2011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토니 빌
마이클 필립스
줄리아 필립스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그레이 프레드릭슨
프레드 루스
모나 스케이거
(대부 2)

사울 자엔츠
마이클 더글러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감독상
제46회
(1974)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조지 로이힐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2)

밀로스 포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각색상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제46회
(1974년)

어니스트 타이디먼
(프렌치 커넥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리오 푸조
(대부)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리오 푸조
(대부 2)

보 골드먼
로렌스 하우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각본상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윌리엄 골드먼
(내일을 향해 쏴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에드먼드 H. 노스
(패튼 대전차 군단)

패디 차옙스키
(종합병원)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BAFTA 로고.svg
감독상
제32회
(1979년)


제33회
(1980년)


제34회
(1981년)

앨런 파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감독상
제29회
(1972년)


제30회
(1973년)


제31회
(1974년)

윌리엄 프리드킨
(프렌치 커넥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윌리엄 프리드킨
(엑소시스트)

제36회
(1979년)


제37회
(1980년)


제38회
(1981년)

마이클 치미노
(디어 헌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로버트 레드포드
(보통 사람들)
각본상
제29회
(1972년)


제30회
(1973년)


제31회
(1974년)

패디 체이예프스키
(종합병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리오 푸조
(대부)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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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cannespalmedor.png
국제영화제 그랑프리[1]
제26회
(1973년)


제27회
(1974년)


제28회
(1975년)

앨런 브리지스
(하수인)
제리 샤츠버그
(허수아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컨버세이션)


모하마드 라크다하미
(불타는 해의 연대기)
황금종려상
제31회
(1978년)


제32회
(1979년)


제33회
(1980년)

에르마노 올미
(나막신 나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폴커 슐뢴도르프
(양철북)

밥 포시
(재즈는 나의 인생)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출생
1939년 4월 7일 (84세)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신체
182cm
가족
부모
카르마인 코폴라[1], 이탈리아 코폴라
배우자
엘레노어 코폴라
자녀
소피아 코폴라, 로만 코폴라[2], 지안 카를로 코폴라
조부모
프란체스코 페니노
형제자매
여동생-탈리아 샤이어[3], 형-오거스트 코폴라[4]
손주
지아 코폴라, 로미 마스
학력
호프스트라 대학 (학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석사)
직업
영화 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작품들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영화 감독.

영화 역사에 손꼽힐 만한 감독으로, 윌리엄 프리드킨,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함께 미국1970년대를 풍미한 거장 감독이다. 이 시기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을 감독하며 명성을 드높였다.


2. 생애[편집]


이탈리아계 미국인 부부의 차남[5]으로 태어났다. 부친 '카르마인 코폴라[6]'는 음악가로 지옥의 묵시록 지휘자를 했고, 지금은 굳이 부친을 거론 안해도 코폴라 가문 자체가 예술 관련 명문가이다. (딸 소피아 코폴라는 감독, 아들 로만 코폴라는 각본가 , 조카 니콜라스 케이지제이슨 슈워츠먼[7]는 배우이며, 친척도 대부분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

놀랍게도(!) 로저 코먼이 발굴한 로저 코먼 사단 중 일원으로서 1963년 코먼이 제작한 호러 영화 '디멘시아 13'에서 감독과 각본으로 데뷔했다. 학생 때부터 리더십이 강해 대학 연극부를 이끌며, 각본을 잘 써 영화사들의 시나리오 편집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배우들 통제하는데 능수능란하여 기대를 받다 독립 장편 영화〈레인 피플〉로 차츰 이름을 알리고, 곧 대부 프로젝트에 고용됐다. 영화사는 재능 있는 신인 정도로 여기나 코폴라는 특유의 정치술과 리더십을 발휘해 자기 입맛대로 영화를 만들고, 그렇게 대부 시리즈는 역사에 남을 성공을 이룬다. 그 뒤로〈컨버세이션〉,지옥의 묵시록황금종려상 2회나 수상하며 197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고전 그리스 비극에 일가견이 있으며 인물간의 신화적 갈등(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을 변주하는데 탁월하고 어릴 적부터 극단에서 짬을 쌓아 배우들 연기 연출에 도가 텄다. 명실상부 블록킹 (연기 동선) 연출의 대가이며, 실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힘의 대결, 심리적 표현을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가에 있어선 1970년대 일인자였다.

메이킹 영상을 보면 알 파치노를 앉혀놓고는 똑같이 따라하라며 직접 연기를 펼치기도 하고, 대배우들 앞에서 전혀 기 죽지 않은 채 자신의 뜻대로 컨트롤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게리 올드만과 찍을 때는 올드만이 고집을 피우자 일부러 스탭들 보는 앞에서 고래 고래 모욕을 줘가며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옥의 묵시록 찍을 때 말론 브란도가 말을 안 듣는 것은 기본이고 체중까지 수십 Kg을 넘겨 현장에 등장하자 묘안을 짜내 어둠 속에 그를 파묻어 버리고 자기 멋대로 독백하는 것을 찍어 명장면으로 만들어내는 등, 거물 배우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는 장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사업가 기질과 정치적 능력이 특출나 영화사의 입김을 감당해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선택과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는 교과서적 인물이다.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고 거대한 현장을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있고, 예술적 능력 이외에도 영화 제작의 현실적 조건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났다. 물론 거장으로 인정받아 전권을 부여받은지옥의 묵시록 제작 때 과도한 야심 덕분에 스스로 죽을 맛을 보기도 했지만 코폴라 가문 자체가 영화인 집안으로 아내는 영화 제작자, 딸 소피아 코폴라도 배우이자 영화 감독, 첫째 로만 코폴라도 뮤직 비디오 감독이자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이다. 조카 니콜라스 케이지(이 이름은 예명)와 크리스토퍼 코폴라[8]도 영화인이다. 여동생 탈리아 샤이어록키의 여주인공으로 아들이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제이슨 슈워츠먼은 조카이고, 손녀인 지아 코폴라도 2013년 연출데뷔를 했다.

내용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이 든 후로는 사업가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혈연과 인맥을 중시하면서 이런 저런 사업을 많이 벌린 편이다. 가족들 대부분을 영화계에 입성시켰고 노인이 된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 농장을 경영하며 편안히 살고 있다.

그 밖에도 영화 '대부'에서 여동생 탈리아 샤이어[9]마이클 콜레오네의 여동생 코니 콜레오네록키 시리즈에서 록키의 아내 애드리안 페니노를 연기하고 친딸 소피아도 대부에서 마이클의 딸로 나오는데 아기 때는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성인으로 나온 대부 3는 그녀의 발연기가 영화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그로 인해 소피아 코폴라는 각종 타블로이드에서 부친과 비교되는 일이 많자 연기를 포기하고 사진촬영을 비롯 이런 저런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다 영화감독으로 전업하고 처녀 자살 소동으로 데뷔했다.[10]

대부(1972)-컨버세이션(1974)-대부 2(1974)-지옥의 묵시록(1979)으로 이어지는 4연타석 홈런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2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번[11]이나 받는 등 화려한 70년대를 보냈지만, 지옥의 묵시록 이후 코폴라의 영화들은 70년대 빛나는 작품들과는 다르게 매우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대부 3를 비롯 영화는 계속 만들지만, 주로 기획이나 제작에 더 많이 참가하고 있다. 물론 이후에도 기획 프로필을 보면 은근히 인지도 있는 영화가 많다. 그리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 나 럼블피쉬, 아웃사이더(영화) 등의 우수한 작품을 감독했다. 더불어 제작자로 여러 영화도 제작, 기획했는데 슬리피 할로우나 지퍼스 크리퍼스 시리즈 같은 영화 제작, 기획도 맡았으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조지 루카스와 함께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1997년맷 데이먼, 클레어 데인즈, 대니 드비토 주연의 〈레인메이커〉 이후, 2000년대부터 만든 영화들은 평가들이 매우 안 좋다.

2007년 마틴 스코세이지가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감독상 받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함께 시상자로 나와 감독상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 멘트를 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포도주 제조용 포도농장을 경영 중이며,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도 정식수입 중이며,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12] 2013년 해당 사업 관련해 한국을 찾는데 인터뷰 사진 하나 남기지 않아 팬들도 소식을 몰랐다. 인터뷰도 영화 매체가 아닌 비즈니스 언론에서 진행했다. 이외에도 리조트, 레스토랑들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대부 3 재편집판 THE GODFATHER CODA: THE DEATH OF MICHAEL CORLEONE를 개봉했다. 트레일러 영상에서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


3. 여담[편집]



  • 코엔 형제는 코폴라가 연출한 피니안의 무지개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



  • 키가 182cm로 대부의 콜레오네 가족을 연기했던 배우들보다 장신인데, 그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그들보다 더 작아보인다. 이는 배우들이 죄다 키높이를 신었기 때문이다.

  • 2019년 경부터 사람들이 기억하던 푸근하고 살집있는 모습과 달리 굉장히 수척한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닌가 걱정 어린 여론이 있었으나, 코폴라 본인 스스로 건강을 위해 비만 클리닉을 다니며 체중을 감량한 것이라고 한다.


4. 작품들[편집]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장편 연출 작품
,(다큐멘터리 영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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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63 디멘시아 13 로고.png
파일:1966 유아 빅 보이 나우 로고.png
파일:1968 피니안의 무지개 로고.png
파일:1969 더 레인 피플 빗 로고.png
파일:1972 대부 1 로고.png
파일:1974 컨버세이션 로고.png
파일:1974 대부 2 로고.png
파일:1979 지옥의 묵시록 로고.png
파일:1982 마음의 저편 로고.png
파일:1983 아웃사이더 로고.png
파일:1983 럼블피쉬 로고.png
파일:1984 코튼 클럽 로고.png
파일:1986 페기 수 결혼하다 로고.png
파일:1987 병사의 낙원 로고.png
파일:1988 터커 로고.png
파일:1990 대부 3 로고.png
파일:1992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로고.png
파일:1996 잭 로고.png
파일:1997 레인메이커 로고.png
파일:2007 유스 위드아웃 유스 로고.png
파일:2009 테트로 로고.png
파일:2011 트윅스트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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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사이더(영화)-럼플피쉬에 출연했던 맷 딜런이 재출연했으며, S.E. 힌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수작으로 평가 받으며 미국에서 크게 성공해 현재까지 권장 영화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브랫 팩 군단의 시초를 만들어 냈다.

  • 마음의 저편-평가는 그럭저럭이지만 흥행에서 대참패를 거둬 코폴라에게 타격을 준 영화. 제작비가 2,600만 달러[13]인데 북미에서 겨우 63만 달러 벌었다. 덕분에 코폴라는 파산에 몰리고, 이후 영화들 중 이때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찍은 것이 많다.[14]




  • 터커-작품평은 좋았지만 흥행은 참패한 1988년작. 자동차 회사를 세워 획기적 차량을 만드나 포드GM같은 대기업의 횡포로 몰락해 비참하게 사라진 실존인물 프레스턴 터커(1903~1956)의 일대기 영화다.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영화부문),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수상작.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드라큘라를 로맨스 영화로 만들었다. 게리 올드만이 로맨틱한 악역으로 출연했고, 작품평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15] 게리 올드만은 자신 특유의 캐릭터 해석력으로 색다른 분위기와 말투로 사람을 홀릴 듯한 그만의 드라큘라를 창조해냈다. 제작비 4,000만 달러에 2억 1500만 달러 수익으로 흥행 성공!.

  • -1996년작으로 로빈 윌리엄스조로증 환자로 나왔는데 느와르나 대하극 위주의 감독의 이력으로서는 독특한 성격의 작품(코미디, 가족물)이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로튼토마토 신선도 19%)

  • 레인메이커-1997년작으로 법정 드라마이다. 간만에 괜찮은 수작이 나왔다는 평이나 90년대 이후 코폴라 감독의 작품 이력이 그렇듯 흥행은 실패.


  • 테트로-2009년작으로 럼블피쉬처럼 흑백 영화인데 이것도 실패했다. 제작비 5백만 달러에 263만 달러 수익에 그쳤다.

  • 트윅스트-2011년호러영화. 제작비 700만 달러의 저예산 호러물...이었으며 미국 흥행 집계도 안될 정도로 쫄딱 망했다. 저예산 호러물을 생각하면 평작에 들어가지만 감독 커리어에서 엄청난 졸작으로 악평받고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10:02:03에 나무위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줄리아드 스쿨 출신 음악가[2]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 사단에서 사촌 제이슨 슈워츠먼과 함께 각본가로 활동[3] 장남이 제이슨 슈워츠먼 [4] 대학교수이고 차남이 니콜라스 케이지 [5] 장남이 교수 출신으로 니콜케이지 부친인 오거스트이고, 여동생이 록키 여주인공 탈리아 샤이어 [6] 줄리아드 스쿨 출신[7] 탈리아 샤이어의 아들[8] 니콜라스의 친형. 다만 감독이나 연기보다는 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영화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80년대 국내에 개봉한 실비아 크리스털 주연 영화 드라큐라의 미망인을 감독[9] 배우 제이슨 슈워츠먼 모친[10] 이후 도쿄가 배경인 스칼렛 요한슨,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여성으로는 첫 지명이 됐다. 다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는 지 커스틴 던스트, 엠마 왓슨과 작업한 영화들의 평은 미묘한 편이다. 그래도 2017년매혹당한 사람들감독상으로 반등에 성공[11] 황금종려상 2회 수상 감독은 2023년 기준 9명이다. 알프 셰베리, 빌레 아우구스트, 에밀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 미카엘 하네케, 켄 로치, 루벤 외스틀룬드 등 면면이 쟁쟁하다.[12] 비슷하게 〈대부 2〉의 비토 콜레오네가 자신의 가게에서 생산한 올리브유를 팔기도 한다.[13] 참고로 원래 제작비가 2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엄청 뛰어오른 것이다. 코폴라는 지옥 같은 지옥의 묵시록 촬영 이후, 쉬어가는 느낌으로 소품이던 이 영화를 찍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특유의 도전 의욕이 발생해, 당시 새로운 매체이던 비디오로 영화를 촬영할 것을 결심하고, 이때의 시행착오로 제작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영화 자체가 흥행과 거리가 멀고, 영사 방식 등의 문제로 결국 기록적으로 망했고, 이후 코폴라의 경력 내내 발목을 잡았다.[14] 대표적 예가 대부 3. 대부는 2편까지 계획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안 좋자, 결국 다시 손을 댔다. 나중에 자기 입으로 여러차례 "대부3? 돈 때문에 찍었어. 그래서 망한거요 ㅋ" 라며 자조했다.[15] 다만 호러물로맨스물로 바꿔버렸다고 엄청 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