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왕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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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진실
3. 전설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라틴어: Presbyter Johannes (프레스비테르 요한네스)
영어: Prester John (프레스터 존)


1. 개요[편집]


사제왕 요한의 전설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 사제왕 요한이라고도 한다.

성모 마리아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다른 종파이긴 하나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도에서 수평선 끝까지 정복하여 거대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다고 중세시대에 알려졌던 '가상의 인물'이다. 특히 당대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으로 이슬람 세력에 군사적, 정치적 위협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들의 너머에 존재하는 기독교 왕국에 대한 전설은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항해왕자 엔리케가 아프리카 탐험대를 조직하고 후원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던 사제왕 요한의 기독교 왕국을 찾는 데 있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엔리케 왕자의 편지를 들고 사제왕 요한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기독교 왕국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대신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여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된다.

2. 진실[편집]


1200년을 전후로, 유럽인들은 동방에서 이슬람 국가들을 격파하는 어떤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유럽 진영은 동쪽에서 태양으로부터 수평선의 끝까지를 정복하고 수많은 국가에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던 사제왕 요한인 줄 알았으나, 몇 십 년 뒤 유럽인들이 맞이한 것은 동쪽에서 태양으로부터 수평선끝까지 정복하고자 이슬람 국가를 박살내고 온 칭기즈 칸몽골 제국이었다.

다만 먼 동방 몽골 초원에 기독교의 일파인 경교(네스토리우스파)를 믿는 케레이트, 나이만 등의 부족이 있었던 건 사실이긴 했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유럽에선 이단 취급받고 있었고 몽골에서 현지화도 많이 진행되어 사제샤먼과 비슷해지는 등, 유럽인들이 그들을 만났다면 기독교라고 생각은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케레이트의 지배자 토오릴 칸은 유럽까지 그 소문이 퍼져서 다분히 기독교 세계 군주처럼 유럽 예술품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근데 칭기즈 칸은 그런 경교를 믿는 부족을 모두 격파하고 몽골 고원을 통일한 뒤 서방으로 진격을 시작한 것이었으니...

몽골의 침입 이후 동방엔 기독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사제왕 요한의 전설의 중심지는 어느새 아프리카로 이동해 있었다. 이교도 세계(아랍 이슬람권) 건너편에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므로 방향을 남쪽으로 돌린 것인데, 이 역시 그 쪽에 에티오피아라는 기독교 왕국이 실제로 있었으므로 그저 환상만은 아니었긴 하다.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 목적에도 사제왕 요한의 왕국을 찾는 것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포르투갈 왕인 주앙 2세는 인도를 사제왕 요한의 왕국으로 알고 친서까지 써서 보냈다.[1] 또 놀라운 것은 인도에는 사도 토마스(도마)가 전파했다는 기독교 종파가 있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 인상적인 사실이다.


3. 전설들[편집]


전설이지만 역사적 사료에는 사제왕 요한에 대한 몇몇 기록이 있다.
  • 아프리카의 전통 기독교 왕국이었던 에티오피아를 사제왕 요한의 국가로 여긴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경교를 믿던 유목민족들을 요한의 왕국으로 보고 기록한 것도 있다. 중앙아시아의 카라키타이(서요), 몽골 통일 이전의 나이만 부족과 케레이트 부족이 그 발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실제 케레이트의 지배자였던 토오릴 칸이 사제왕 요한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현대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은 서요의 황제 야율대석을 사제왕 요한의 원형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서요는 불교 중심의 국가기는 했지만 네스토리우스교 신자 역시 포함하는 복잡한 다민족 국가였고, 화레즘과 셀주크 투르크 군대를 격파, 화레즘 왕조의 조공을 받는가 하면, 셀주크 투르크의 멸망에 이르는 단초 중 하나를 제공하였다. 이들은 모두 몽골 제국에 흡수당했으니 어떤 의미로 유럽을 침공한 몽골족은 사제왕 요한의 전설을 반쯤은 실현한 셈이다.

  •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중국 북부지역의 타타르족의 지도자가 사제왕 요한에게 가축의 10분의 1을 진상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 1165년에 익명의 저자가 사제왕 요한에 대해서 쓴 장문의 글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이야기를 덧붙이는 과정에서 확장되었다. 그들이 가상의 수도자를 내세워 종교적 믿음을 상징, 비유로 표현한 것이지만 독자들에게 사실로 여겨졌다. 1177년에는 교황 알렉산드로 3세에게도 알려졌고 순례자들도 사제왕 요한을 찾아나섰다.

그 글에 따르면 사제왕 요한에게 72명의 왕이 충성했고, 요한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왕국의 신도들을 보호해 생계를 책임지며, 3개의 인도를 지배했다. 그중에는 성 토마스 사제가 묻힌 땅이 포함되어 있다. 해가 드는 성으로 이어지는 사막과 바벨탑 옆에 있는 바빌론의 계곡까지 영토라 했으며, 왕의 영토에는 모든 짐승이 살고 땅 위에는 꿀이 흐르고 젖이 흘러넘친다고 했다.
어떤 지역에는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이 없거나 아예 힘을 쓰지 못하며, 이교도 거주지 중 어떤 곳에는 파이슨이라는 강이 있어 파라다이스에서 흘러나오는 이 강물에는 여러 진귀한 보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동유럽에서 인도에 이르는 땅을 통치했고 그 곳에 사티로스, 그리핀, 피닉스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사제왕 요한은 보석, 황금으로 지은 밀폐된 궁전에 산다고 했다. 이 궁전은 난공불락이며 왕의 거처에는 마법의 거울이 있어 온 세계를 마음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궁전에는 7명의 왕, 60명의 공작, 360명의 백작을 포함하여 많은 수의 시종, 시녀들이 사제왕 요한의 시중을 든다. 그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명령 한마디에 수천 마리의 전투 코끼리와 수십만의 기병들이 움직인다고 했다.
후추를 재배해 곡물, 옷감, 가죽과 교환했다는 이야기, 덩치가 크고 머리가 두 개이면서 산양처럼 뿔이 달리고 램프처럼 밝게 빛나는 눈을 가진 뱀들이 울창한 숲속에 우글거린다는 이야기, 후추가 익을 때면 사람들은 왕겨, 지푸라기,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숲 주변에 둘러서 놓고 바람이 적절히 불 때 불을 놓아 뱀들이 숲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면 동굴 속에 있는 뱀을 제외한 나머지 뱀들은 무서운 불길 속에서 죽는다는 이야기 등의 내용도 나중에 보태졌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 소설 바우돌리노에서도 주인공이 동쪽으로 향하려는 이유로 등장한다.

  • 타임리프 대체역사소설 명군이 되어보세!에서 조선 임금에 빙의한 주인공이 선교사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앞에서 주기도문 등 성경 내용에 대한 지식을 말하자 세스페데스는 조선 임금은 프레스터 존의 후손이며 조선이 과거 기독교 국가였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를 교황청에 보고했다가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까이고 해명을 하라며 교황청으로 호출된다. 근데 주인공이 빙의하기 전에 가톨릭 신자이긴 했다. 군대에서 초코파이와 담배에 혹해 성당에 간 나이롱 신자라 문제였지만...

  • 대체역사물 몽골 사용 설명서에서도 주인공인 송민호가 훌레구의 원정에 앞서 십자군 왕국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사제왕 요한을 자처한다. 마침 본인의 어머니부터가 독실한 신도였던 모태 신앙자이기도 했고(본인은 사실상 나이롱이긴 했지만) 세례명도 요한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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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나가 노부미,'幻の東洋:オリエンタリズムの系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