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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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Nietzsche187a.jpg

본명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출생
1844년 10월 15일
프로이센 왕국 작센 주 뢰켄
사망
1900년 8월 25일 (향년 55세)
독일국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바이마르
국적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프로이센 왕국 (1844~69)
무국적 (1869~1900)
직업
문헌학자, 문화 비평가, 계보학자, 철학자, 시인, 음악가
서명
파일:프리드리히 니체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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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일
1900년 8월 28일
묘소
Röcken Churchyard
학파
대륙철학, 독일 관념론, 허무주의, 투시주의, 후기 구조주의
연구 분야
미학, 반토대주의, 반소비지상주의, 무신론, 윤리학, 실존주의, 사실-가치 구분, 형이상학, 허무주의, 존재론, 철학사, , 심리학, 비극, 가치이론, 의지주의
모교
포르타 공립학교 (1858년-1864년)
파일:본 대학교 Small 로고.png 본 대학교 (1864년-1865년 / 중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ni_Leipzig_-_Siegel.png 라이프치히 대학교 (1865년-1869년 / 문헌학 / 박사)
경력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정교수 (1869~78)[1]
신체
173cm
종교
무종교(무신론)[2]
가족
아버지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 (1813~1849)
어머니 프란치스카 니체 (1826~1897)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 (1846~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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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프리드리히 니체
일본어
フリードリヒ・ニーチェ
중국어
弗里德里希·尼采
그리스어
Φρίντριχ Νίτσε
러시아어
Фридрих Ницше
아랍어
فريدريك نيتشه
힌디어
फ्रेडरिक निएत्ज़्स्चे
세르비아어
Фридрих Ниче
조지아어
ფრიდრიხ ნიცშე
페르시아어
فردریش نیچه
아르메니아어
Ֆրիդրիխ Նիցշեն
히브리어
פרידריך ניטשה


1. 개요
2. 생애
3. 사상
3.1. 몸철학[2]
3.2. 철학자들의 편견에 관하여
3.2.1. 진리의 해체
3.2.2. 주체의 해체
3.2.3. 과학비판
3.2.4. 인과론과 자유의지 해체
3.3. 양심과 도덕
3.3.1. 정의론
3.3.2. 귀족의 도덕, 노예의 도덕
3.4. 데카당스
3.4.1.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
3.4.2. 천재와 대중
3.5.1. 자기긍정
4. 니체 사상에 대한 철학적 비판
5. 영향력
6. 니체의 평론
6.1. 바그너에 대해서
6.2. 음악 자체에 대해서
6.3. 문인들에 대해서
7. 오해와 진실
7.1. 여성혐오주의자였다?
7.2. 기독교까이다? 아니다?
7.3. 나치 파시스트였다?
7.4. 여동생과의 추문?
7.5. 이외
8. 명언
9. 읽을 만한 글귀
10. 저서
10.1. 읽는 순서
11.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
12. 관련 강의 영상
13. 관련 문서
13.1. 니체 철학 용어
13.2. 관련 인물
13.3. 기타
14. 여담



1. 개요[편집]


Gott ist tot. Gott bleibt tot. Und wir haben ihn getötet. Wie trosten wir uns, die Mörder aller Mörder?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해자 중의 살해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즐거운 학문(1882) 中, 125p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의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의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니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제1장 中

19세기에 활동했던 독일 철학자, 시인, 음악가, 문헌학자, 문화 비평가, 심리학자, 계보학자. 그가 주장한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신은 죽었다[3], 힘에의 의지[4], 위버멘쉬[5][6], 영원 회귀[7][8], 운명을 사랑하라[9] 등이 있다.

특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대륙철학,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대륙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10] 마르크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시대 지식인들이 얼마나 정직한지를 확인하려면 그들이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론적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마르크스와 니체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는 진실되지 못하다는 말로, 니체가 당대에 끼친 지성사적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발언이었다.[11][12]

특유의 공격적 비판으로 인해 오인되기도 하지만,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13] 그러한 까닭 중 하나는 니체 특유의 서술 방식이다. 그의 저작은 대부분 압축적이고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지며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14] 하지만 실제 성격은 온화하고 유머를 좋아했으며 사교성이 있었다고 한다.


2. 생애[편집]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프로이센 왕국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 생일이 똑같다는 이유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만, 니체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에 태어났다. 이 때문에 나에게는 한없는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나에게 '프리드리히' 라는 이름을 안겨준 일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생일이 휴일이었다는 점뿐이다."

니체는 프로이센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를 끔찍하게 여겼기 때문에 프로이센 왕가에 대한 감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니체의 가정사는 좀 불운했다. 어려서 그는 루터교 목사였던 아버지와 역시 목사 집안 출신이었던 어머니, 여동생 엘리자베스, 어린 남동생 요제프, 할머니, 미혼인 두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니체가 5살 때 뇌연화증으로 죽었고, 몇 달 후 동생 요제프까지 병으로 사망했다. 이 두 죽음은 니체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니체는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 니체가 알기로 그의 아버지는 매우 지적이면서, 열정적이고, 가볍기도한 니체 본인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의 집안 여성들은 하나같이 매우 진지하고, 무겁고, 절제하며, 엄격한 전형적인 북독일 루터교인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다 보니 니체는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로움이 없었다며 강한 원망을 품었다. 이러한 경험은 니체의 철학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니체는 10세 때 모테트(Motette, 성서 구절을 다성적으로 다룬 무반주 악곡)를 작곡하는 등 10대 시절부터 짧게 작곡 활동을 했다. "음악이 없는 삶이란 잘못된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청년 시절 이후부터는 본업인 저술에 몰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작곡에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오페라나 오케스트라곡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음악 스타일은 슈만과 흡사했다. 많지는 않지만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청년이 된 니체는 1864년, 본 대학교에 진학해 신학과 그리스 고전 문헌학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본 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게 된다. 2학기가 지난 1869년, 학생 신분이었던 그는, 불과 24세의 나이에 당시 고전문헌학의 권위자이자 지도교수였던 리츨(F. W. Ritschl)의 추천으로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가 되었는데, 심지어 이때의 니체에게는 아무런 학위도 없었다. 바젤 대학교는 이례적으로 학위 논문 심사를 거치지도 않고 라이프치히 대학을 통해 니체에게 박사 학위를 주었고, 바로 한 달 뒤 니체는 바젤 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서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니체는 그 대학의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 바젤 대학교 문서에 따르면, 리츨 교수의 추천과 니체의 문헌학에 대한 특출난 재능 때문에 이러한 이례적인 결단이 내려졌다고 한다. 리츨 교수는 니체를 가리켜 "내가 강단에서 학생들을 기르쳐 본 이래로 이토록 고전문헌학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본 적이 없다."라고 탄복하며, 니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가 바젤 대학교 교수가 되면서부터 니체는 인근에 거주하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깊은 친분을 맺으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바그너와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토론으로 날을 지새우기도 했다.[15] 바그너와의 교류는 그가 문헌학자에서 철학자로 전환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를 고전문헌학자로 대성시키려던 스승 리츨과 갈등이 생기게 되고, 결별하기에 이른다. 또한 니체는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깊게 반영하여 작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크게 감복한다. 니체는 1870년부터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구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발전시켜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완성했다. 그는 이 "비극의 탄생"을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무병으로 종군했다. 그러나 병으로 귀환했고, 이후 죽을 때까지 병에 시달렸다. 다만 이때 얻은 병 때문에 니체는 보다 치열하게 고민을 할 수가 있었고, 니체 본인도 자신의 병환을 하나의 축복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1870년대 중반 즈음에 바그너가 점차 데카당스, 독일 제국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여긴 니체는 1876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보고 회의를 더해갔다. 니체는 사실상 이때부터 바그너와 정신적으로 결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그너 부부에게 부모와도 같은 정을 느꼈던 니체는 결별 선언을 미루었다. 결국 1882년 바그너 최후의 작품인 파르지팔을 보고 니체는 바그너가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여기고,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던 바그너 부부를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결별을 선언한다.

1879년 건강 악화로 교수직을 사임했다. 이후 10년간 유럽을 떠돌며 자신의 주요 작품을 집필했다. 그는 1889년 1월 3일[16]을 기점으로 정신이 나갔는데,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을 보고는 울면서 그 말을 감싸안다가 넘어졌다.[17] 이날 작성된 편지[18][19]를 보면 그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날은 니체가 제정신을 가진 마지막 날로 사실상 그의 기일이다. 그의 정신착란을 두고 한때 매독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었던 때가 있었다.[20] 하지만 최근에는 의학적 고찰을 통해 나온 많은 논문에서, 뇌종양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21]

말년엔 정신 발작으로 몸과 마음이 더 쇠약해져 10년 동안 부모님과 여동생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었다.[22] 그 뒤 병이 악화되어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니체는 평생 독신이었다. 1882년 친구의 소개로 루 살로메라는 지적인 여자와 친분을 맺고 청혼했으나 차였다. 그녀는 그저 니체의 철학을 사랑했을 뿐이었다. 루 살로메의 회고에 의하면 니체는 자신보다 17살이나 연상이었다고...


3. 사상[편집]


주거를 제공하고, 오락을 제공하고, 음식과 영양을 제공하고, 건강을 주었음에도, 사람은 여전히 불행과 불만을 느낀다.

사람은 압도적인 힘[23]

을 원하는 것이다.

《아침놀》 中





3.1. 몸철학[24][편집]


니체 사상에서 가장 앞선 전제는 몸(body)이다.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플라톤을 비롯한 서양 철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한가지 사실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철학자 또한 몸을 가졌다는 점이다. 니체는 인간의 생각은 몸(뇌신경계)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몸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9세기의 생화학적 지식과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전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다.

니체가 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 서양철학에서 지루하게 이어져오던 이원론, 즉 정신 vs 물질 논쟁 때문이다.

서양의 이원론에서 세상은 정신물질로 이뤄져 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현상이 있고, 이를 지배하는 안보이는 정신(자연법칙)이 있다. 그리고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라서 인간의 영혼은 정신이고, 몸은 물질이다. 서양인들은 자연에 정신이 인간의 영혼처럼 실존하며, 물질보다 앞서고 물질보다 우월하다고 굳게 믿었다.

플라톤이데아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이데아는 이후로 '진리'라고 불리며 서양인들의 머릿속을 2,000년간 지배했다.

그런데 서양철학은 근대에 접어들며 정신(자연법칙)이 물질적 현상(데이터)를 일반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품기 시작한다.

자연히 인간의 영혼 또한 뇌신경계의 전기화학작용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다만, 몸이 영혼보다 앞선다는 것은 기독교 가치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저항이 심했다. 게다가 큰 난점도 하나 있었는데, 하찮은 포유류의 몸에서 어떻게 과학, 철학, 예술, 종교 같이 고등한 것이 나오는지 설명이 안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니체는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욕망이 철학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을지에 관해서 서술한다. 즉, 철학자는 마치 그가 세상의 모든 물질로부터 동떨어진 순수한 정신으로 사유하는 듯 떠들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에 깔려있는 자신의 몸에서 비롯된 욕망에 기초해서 철학을 해왔을 거라는 "가설"[25]을 제시한다. 성욕, 소유욕, 지배욕, 명예욕 같은 몸의 욕망이 사유를 무의식 속에서 조종한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만물은 변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전통을 따르는 철학자들과, 불변한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전통을 따르는 철학자들로 양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니체는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철학자들이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 근본 이유가 사람들이

1. 변화를 좋아하고 순간에 몰입하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 (=충동의 정서)

2. 변화에 불안을 느끼고 확실한 것에서 느끼는 안정감 (=질서의 정서)

이라는 두 가지 몸의 욕망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두 욕망 중 어느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지에 따라서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철학과 파르메니데스적인 철학으로 끌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전개하면, 너와 나의 몸이 다르면 욕망, 가치관, 진리도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남성과 여성은 뇌신경계가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부모와 자식, 젊은이와 늙은이, 건강한 자와 병자, 적도 출신과 극지방 출신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이 시각에서 보면 같은 사람이더라도 늙거나, 병들거나, 건강해지거나, 기후가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그 사람의 정신은 바뀐다. 심지어 니체는 이와 같은 이유로 8만 년 산 인간의 정신은 매우 달라질 것이며, 인간과 모기(곤충인 그 모기다) 또한 서로 다른 철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서양철학의 흐름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뒤집는 것이었다. [26] 니체가 형이상학자라는 것도 이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니체 본인은 스스로를 생리학자 또는 심리학자라고 부르며 현대인이 보기에 엉뚱한 부심을 부렸다. 그 이유는 자신이 물질을 중심으로 사유하면서 기존의 정신 우위의 형이상학 전통을 전복시켰다는 자부심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27] 때문에 그런 뻘소리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들의 사유는 엄연히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의 일부이고, 형이상학의 역사적 맥락 없이는 이해될 수가 없다.

한편, 니체의 이러한 몸의 욕망과 그 철학을 연결짓는 생각은 이후 칼 융에 의해서 적극 수용되어서, 아예 인간의 각 호르몬 별로 각기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철학이 있을 거라는 상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쓰여진 것이 『심리유형론』이다. 다만 융이 활동한 1910년대에도 호르몬이 직접 발견되지는 않았고, 그 성질에 대해서도 어림짐작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다.


3.2. 철학자들의 편견에 관하여[편집]


형이상학에 관한 니체의 비판은 『선악의 저편』 제 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는 니체의 글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장중한 것이다. 1960년대에 니체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재발견되고, 포스트 모더니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 또한 모두 이 짧은 1장의 내용에 빚을 지고 있다.


3.2.1. 진리의 해체[편집]


서양 철학의 플라톤적인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다. 이데아, 보편자, 물자체와 같은 개념들이 추구하는 진리의 영원성과 불멸성이 허구임을 논증한다.

니체는 형이상학자들이 '진리'에 목메다는 점에 주목하며 시작한다. 이를 놓고 그는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질문을 하나 던지는데, 우리가 왜 굳이 그렇게 간절히 진리를 추구하냐는 것이다. 니체는 이에 칸트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될 만한 답을 내놓는다. 세상에 진리가 있어서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 스스로가 그 "진리"란 것을 상상해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놓고 인상적인 비유를 한다.

누가 여기에서 오이디푸스인가? 누가 스핑크스인가?

『선악의 저편』

즉, 흔히 우리는 스스로를 진리라는 수수께끼에 답하기 위해서 길가에 서있는 오이디푸스라고 생각해왔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애초에 그 수수께끼를 내놓은 스핑크스라는 것이다.

니체의 논리전개의 특징은 초점을 '주체'에 맞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이래로 서양철학은 주체와 객체를 구분한다. 주체 vs 객체의 구도에서 주체는 관찰하는 사람이고, 객체는 관찰되는 대상이다. 그리고 그 맥락에서 서양철학의 '진리'라는 것은 주체인식과 객체의 일치를 말한다. 반면에 '비진리'와 '거짓'이란 것은 둘이 일치하지 않음, 착오를 말한다. 여기에서 진리에 도달이 가능하냐는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에 관해서 니체는 관점주의를 외친다. 즉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자연히 그 사람의 진리라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니체도 결국 그러한 말을 한다. '진리'란 그 사람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에서 그들의 '지식'을, 격식을 갖추어 마침내 '진리'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선악의 저편』


니체는 형이상학자들의 논의에는 항상 '대립'(또는 데리다의 저 유명한 '이항대립')의 패턴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를 볼 때 그가 찾아낸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진리 vs 비진리(=거짓)

확실 vs 불확실

불변 vs 유전

보편 vs 특수

영원 vs 순간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대립 구도에는 가치평가가 이미 깔려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위 진리는 비진리보다 중요한 것이고, 확실성이 불확실성보다 좋은 것이고, 불변하는 게 흘러가버리는 것보다 믿음직하고, 보편적인 게 개별적인 것보다 참된 것이고, 영원한 것이 짧은 순간보다 값진 것이라는 가치평가가 이미 내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는 확실하고 불변하고 영원하고 보편적인게 곧 진리라고 떠드니 일종의 답정너라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의 철학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철학의 정체가 내게는 차츰 명료해졌다. 즉 그것은...자기고백

<선악의 저편>


또한 니체는 형이상학자들의 논리가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플라톤이데아, 스토아 철학의 자연, 칸트물자체, 헤겔정신을 뜯어보면 절대적이고 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이미 전제를 해놓고서는 자신들은 그것을 찾았다고 결론낸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종교적이고 '미신'인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대답이란 말인가? 설명이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물음의 반복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선악의 저편』

이러한 형이상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가치평가, 순환논리의 원인을 니체는 '확실성'이라고 본다. 플라톤, 스토아학파, 칸트, 헤겔 모두 확실성을 원했기 때문에 불변하고,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확실성'이 추구된 원인에 대해 니체는 몸철학 관점에서 답한다. '자기보존'의 욕구가 인간의 육신에 '선천적', '유전적'으로 내재되어(유전자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안정적으로 계속 살고 싶다"는 욕망이 무의식에 깔려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정 추구 -> 불변의 진리

계속 추구 -> 영원의 진리

로 짝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 서양철학이 추구한 '영원 불변의 진리'란 것은 "나는 안정적으로 계속 살고 싶다"는 욕망을 추상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질에 불과한 인간의 몸이 정신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결국 진리란 인간은 철학자 이전에 동물이라는 사실이 빚어낸 '인간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만 니체는 이러한 인간적인 편견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삶답게 느끼게 해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내용은 도덕의 계보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다.


3.2.2. 주체의 해체[편집]


니체의 데카르트 객관론 비판 부분이다. 데카르트는 20세기 서양철학의 병기창이라 할 만큼 아주 중요하다. 근대에 이어져 온 서양철학의 객관론 vs 주관론 문제에서 근대 유럽의 객관론 시조가 데카르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코기토, 나라는 존재가 생각한다는 것 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고 믿었다.

1. 나는 생각한다,

2. 고로 나는 존재한다.

ego cogito, ergo sum


니체는 이것을 2개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첫번째 비판은 "나는 생각한다"는 명제에 관한 것인데, 그는 '생각'은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되는 것이며, 그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단수가 아니다는 반박을 한다.

그는 정동이란 개념을 논하는데, 맥락상 스피노자의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몸은 자기보존을 지향하고, 이로 말미암아 정동(번역에 따라 정서)을 갖는다. 정동은 평소에는 구체성이 없는 기분에 머무는데 정동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예쁜 여성을 봄) 구체적인 욕망(성욕, 애욕)으로 의식하게 된다. 인간의 생각은 대부분이 내가 의식해서가 아니라 외부자극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시각은 현대 뇌과학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선악의 저편』


그러한 무작위로 떠오른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의 정신이 '단일체'로 보이는지에 관해서 니체는 기계론, 벡터스러운 설명을 한다. 물체에 관성이 있듯이, 정신의 정동이 그런 운동상태 같은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코나투스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정동을 극복하는 의지는 결국 다른 또 하나 또는 몇 개의 다른 정동의 의지일 뿐이다.

『선악의 저편』, 제4장 117


니체는 이러한 정신이 수많은 정동이 다툰 끝에 하나의 방향(벡터값)이 정해지는 것으로 본다. 뉴턴역학에서 수많은 힘이 충돌했음에도 최종 현상은 선형 운동이듯이, 정신도 그 안에는 무수한 정동의 의지가 충돌했음에도 나타나는 것은 단 1개의 정동 뿐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정신이 단일하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주체의 '단일성' 또한 착각에서 나온 편견에 불과하다.

그래서 니체는 정신은 '단일체'가 아니라 '복합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1. 초콜릿을 보고 식욕을 느낀다.

2. 벨트가 뱃살에 가하는 압력이 다이어트의 필요를 일으킨다.

3. 저혈당으로 인한 현기증이 마라톤을 할 때의 어지러움을 연상케 한다.

결론: 세 가지 생각이 충돌한 결과, 초콜릿을 먹으며 다이어트(마라톤)을 결심한다.

니체가 보기에 이러한 생각들의 충돌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는 것과 같다. 단지 나라는 단 하나의 몸 안에서 벌어질 뿐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의 영혼'이라고 부른다. [28]

니체의 두 번째 주장은 분석철학에서 좋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선 그가 시작하는 것은 "나는 생각한다"는 단일 명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생각한다.

1. '나'는 생각하는 존재이다.

2.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3. 생각을 하는 상태와 비교 가능한 생각을 안 하는 '상태'가 존재한다.

는 3가지 숨겨진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들을 우리가 인식 못하는 이유를 니체는 언어의 문법에서 찾는다. 니체는 독일어를 비롯한 유럽 주류 언어들이 문법상 주어가 필수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더 구체화해서, 'be동사의 뜻은 있다/이다'임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무엇이든지 '단어'가 있으면 그것이 정말로 세상에 실존한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주어 중심의 문법 때문에 유럽인들이 공통된 편견을 가졌고, 그래서 철학을 왜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공통된 문법 철학에 힘입어 철학 체계가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세계 해석의 어떤 다른 가능성을 향한 길이 막히는 것

『선악의 저편』

반면에 우랄 알타이 제어에 속하는 철학자들(한국어도 포함된다)는 그들의 언어가 주어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29] 이러한 니체의 언어에 의해 사고가 한계지어질 수 있다는 관점은 20세기 철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단일성을 지닌 주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편견을 유럽인들이 왜 갖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니체는 이 또한 몸철학의 관점에서 답변한다. 자기보존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나의 몸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유용한 편견'이라는 것이다. 확실한 토대가 있어야 그것을 지반으로 집을 짓듯이 이 세상을 이해(모델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를 단일 객체로 파악하는 것이 자연에서 이 몸을 보존하는 전략을 짜내는데는 훨씬 간편하기는 할 것이다.

니체는 주체의 단일성이란 인간의 편견이 서양의 종교와 과학에도 깊게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주체의 단일성 +

주체의 불변성 +

주체의 영원성

= 기독교의 영혼, 자연철학의 원자설

이란 것이다. '확실성'을 위해서 주체의 단일성, 불변성, 영원성이 필요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종교적(정신)으로 전개하면 기독교의 영혼이 되고, 자연철학(물질)으로 전개하면 원자설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에게 영혼은 곧 정신의 원자론이고, 원자는 곧 물질의 영혼론이다. 모두 우리가 인간이란 동물이기에 가진 '인간적인' 편견이란 것이다.

'원자'가 인간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발상은 소위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논쟁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 vs 닐스 보어를 비롯한 신세대 물리학자의 논쟁 또는 불확정성 원리을 반세기 가까이 앞선 것이다. 실제로 신세대 독일 물리학자들은 당대에 대중화된 실증주의 철학에 영향을 깊게 받았는데, 니체 또한 실증주의 계열에 한 발 걸쳐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우연은 아닐 것이다. [30]

3.2.3. 과학비판[편집]


경험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다만 플라톤 철학도 같이 비판한다. 모두까기 인형같으니

논의는 물리학에 관한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보기에 물리학은 근본적으로 플라톤계열의 형이상학과 같은 것이다. '해석'이고 편견이라는 것이다.

물리학도 단지 하나의 세계 해석이며 세계 정리

『선악의 저편』

니체는 수학도 인간의 언어라고 본다. 소유물을 헤아리는 용도였던 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지만 여전히 그 본질은 인간의 편견이 담긴 창조물이란 것. [31]

니체는 19세기 과학(뉴턴역학다윈니즘)과 형이상학의 차이점에 관해서 재밌는 관점을 제시한다. 둘의 차이는 감각에 대한 믿음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과학 vs 형이상학

= 감각론 vs 반 감각론

= 감각 지상주의 vs 정신 지상주의

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감각적 경험을 멸시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 이 모든 것이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저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감각되는 것들은 진리의 그림자일 뿐이다. 니체는 플라톤과 그 휘하의 형이상학자의 이러한 반(反)감각적인 태도를 강박이고 편견이라고 비판한다. 흥미로운 점은 니체가 19세기 과학 또한 똑같은 강박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 점이다. 플라톤과 정반대로 과학은 일종의 감각 지상주의에 매몰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의 계보』에서 자세히 다뤄지는 내용이지만 부연하자면, 니체는 문헌학자여서 방대한 고서를 탐독했다. 그런데 거기서 니체는 한 사회의 지배층은 주로 반감각론에 빠지는 반면, 피지배층은 감각론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관찰한다. 니체는 이 경향을 몸철학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지배층은 육체 노동을 안했기 때문에 반감각적인 취향이 되었고, 때문에 반감각적인 형이상학을 소비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피지배층은 육체 노동 때문에 감각적인 취향이 됐고, 때문에 감각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에 매력을 느꼈다고 본다. 문제는 지배층이 정신과잉에 빠졌듯이 19세기 노동자들도 과학을 통해서 자신의 감각을 편애하게 되었고, 감각론의 독단에 빠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결국 과학 자체보다는 그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되느냐를 니체는 문제 삼은 것이다.

경험주의, 실증주의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된다. 니체는 감각적 경험에도 객관성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32] 나의 감각 경험은 나의 뇌신경계를 통해서 이뤄진다. 때문에 감각 경험은 내 몸에 종속된 주관적인 것이다. 광수용체 수가 다르기 때문에 색도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 과학이나 경험주의, 실증주의는 소위 팩트를 전제하지만 니체에게 팩트란 건 미신일 뿐이다. 오로지 너와 나 복수의 주관이 있을 뿐이다. '객관적 감각경험' 또한 가정이고, 상상물인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자연법칙'이라는 말도 싫어한다.

그대들은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자연법칙 만세!"

그러나 이것은 해석이지, 텍스트[33]

는 아니다.

『선악의저편』, 제1장 22

니체는 과학에는 가설, 이론만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현대 과학계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19세기 유럽 지식인들은 기독교를 과학으로 대체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을 절대적 지식으로 여기며 반쯤 종교화하는 경향이 있었다.[34] 니체는 이 점을 비판한 것이다. 니체는 신을 죽이고 새로운 우상을 세웠다며 한탄했다.

따라서 니체에게 과학이란

과학 = 감각적 경험 + 인간의 해석

이어야하고, 둘은 동등한 무게를 가져야 한다. 이 점은 독특한데, 왜냐면 그가 살던 19세기의 실증주의자들은 감각적 경험에서 나온 데이터를 훨씬 우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각은 자극을 수용할 뿐이고, 이 자극을 모아서 개념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신의 몫이다. 그 점에서 니체는 과학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실증주의자들 마냥 감각만으로 다 해결하려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현미경만 들여다보는") 미시적인 방법론이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 총체적으로 설명하려면 결국 빈 공간을 메꾸는 총체적인 상상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니체는 학문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

3.2.4. 인과론과 자유의지 해체[편집]


니체는 과학에 대한 비판에서 인과론에 관한 비판으로 이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은 결과에는 원인이 반드시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35]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만물은 모두 인과에 얽혀있고, 인과의 시작에는 궁극적인 단 하나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근대 기계론자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원인은 스스로 자기원인이 되는 진리 또는 유일신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36] 그런데 니체는 질문한다.

나는 왜 원인과 결과를 믿는가?

인과는 우리가 문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모델이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존재하는 법칙은 아니다. 기계론자들은 이 점을 착각했다. 그들은 단지 잘 작동할 뿐인 모델을 실존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37] 그럼에도 니체는 자신이 '결과의 필연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분명히 비합리적인 믿음이다. 불가지론에서 인과론은 있을 수 있지만, '필연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미신인 것이다.

자유의지도 니체가 보기엔 인과론에 대한 미신의 한 종류이다. 자유의지는 자기원인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니체에게 자유의지란 "나에게 주어진 결과의 원인은 나 자신"이라는 믿음이다.

니체는 이 모든 것을 몸철학의 관점에서 답한다. '자기보존'의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은 생존을 위해서 '확실성'을 추구하고, 그래서 모든 결과에는 필연적으로 원인이 있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해야 하는 필연성은 나 자신에 관한 것인데, 그래야지 자기 삶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지배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와 필연성은 "나는 꼭 살고 싶다"라는 고백에 불과한 것이다.

니체는 그래서 제안한다.

원인과 결과를 그릇되게 사물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순수한 개념으로만, 다시 말해 기술하고 이해하기 위한 관습적인 허구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선악의 저편』

그의 제안은 매우 현대적이다.[38] 이로 볼 때 니체는 인과론에 '필연성'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 인과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간과하고 1980년대부터 과학계와 논쟁을 벌였던 포스트 모더니즘 학자들 때문에 종종 니체는 부당한 오해를 받아왔다.


3.3. 양심과 도덕[편집]


니체의 윤리학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는 그의 작품 『선악의 저편』에서 주로 다뤄지지만, 니체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양심의 정의에 관해서 니체는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몸철학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양심을 몸(뇌신경계)에서 욕망하는 것을 '일반화'한 법칙으로 여긴 것이다. 때문에 니체 입장에서는 그 본질이 유아적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십계명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살인을 하지 말라 = 살해당하는게 두려우니까, 모든 사람이 하면 안된다고 일반화한 것.

도둑질을 하지 말라 = 남에게 빼앗기는게 싫으니까, 모든 사람이 하면 안된다고 일반화한 것.

간음을 하지 말라 = 배우자가 바람피는 것이 싫으니까, 모든 사람이 하면 안된다고 일반화한 것.

다만 니체는 양심이 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몸이 바뀌기 전에는 거부할 수 없다고 본다. 내 양심을 부정한다는 것은 나의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양심은 가치 판단과도 연결된다. 『도덕의 계보』에 따르면, 자기 욕망에서 비롯된 양심에 일치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만족하고, 심지어 존경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구걸하는 거지를 내가 동정한다.

-> 적선을 해서 내 마음을 달랜다.

-> 누군가가 대신 적선을 해도 내 마음이 편해진다.

-> 적선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가 된다는 것이다. 타인을 호오, 선악 등으로 평가하는 것도, 내 감정과 유용성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 자체가 존경스럽기 때문에 존경하는 게 아니라, 나의 양심/가치관과 일치하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다. 내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 취향과 같다.

이 맥락에서 니체의 문제의식은 그의 데카르트 객관론 비판으로 이어진다.

주관성 vs 객관성

니체의 관점주의에 따르면 '그 자체로 객관적인 것'은 없다. (또는 인식할 수 없다.) 사회의 합의에 따라 '객관적인 것으로 인정된' 것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객관론, 절대주의자와 같이 삶에 딱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진리를 너도 믿어라"하는 강요와 다름이 없다.

니체는 이 시각에서 양심과 도덕을 구분한다.

주관적 진리 vs 객관적 진리 =

주관적 가치 vs 객관적 가치 =

양심 vs 도덕

즉, 도덕 또한 우리의 양심을 너도 따라라! 하는 강요에 불과하다. 때문에 니체의 윤리학에서는 남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가장 큰 악인이다. 우리의 양심으로 남의 양심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독단성의 폭군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래서 도덕주의자를 깊이 혐오한다.

도덕의 본질은 '양심의 객관성을 구성원들에게서 끌어내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끌어내는 척도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이 객관적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주관이 섞여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양심의 척도가 다르다. 따라서 양심의 객관화란 너의 A 양심, 나의 B 양심을 모두 꺾고 타협해서 임의로 발명된 AB 도덕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도덕이란 그 누구의 양심하고도 완전하게 맞지 않는 것이다.

도덕은 사람들의 양심을 일반화한 개념이다. 그래서 도덕을 따르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자신의 양심과 크고 작게 어긋난다고 느낀다. 모두 다 같이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는 것이다. 결국 도덕은 모두의 개성과 양심을 억압하는 질서다. 니체가 도덕을 포함한 모든 객관론을 '폭군' '노예' '천민' 등으로 부르며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하는 이유다.

니체의 궁극적 해결책은 결국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의 양심은 곧 나의 진리다. 너의 양심은 곧 너의 진리다. 서로의 진리가 다르다는 것은 각자 몸(뇌신경계)에서 나오는 욕망이 다르다는 것이다. 욕망은 우리가 각자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진리, 욕망을 마주할 때 경멸감을 느낀다. 나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멸감은 내 몸이 자기보존을 위해서 뿜어내는 스트레스 호르몬 따위의 것이다.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소중하다. 그로 말미암아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니체는 "비진리를 용인하자"고 제안한다.

니체에게 진리란 내 몸에 기반해 형성된 것으로 나만의 편견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맹신하는 독단성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나의 진리는 나에게 최고의 것이지만, 남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다. 이 '독단성'에 빠져버리는 문제를 니체는 시적으로 '심연'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심연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초인 또는 위버멘쉬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그대들의 눈은 언제나 '그대들에게 걸맞은' 적을 찾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대들 가운데 몇 사람은 첫눈에 증오를 느낀다. 그대들은 자신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대들의 사상을 위해서 싸워야만 한다. 만일 그대들의 사상이 패배한다 해도 성실성은 승리의 소리를 외쳐야 한다. 그대들은 오직 새로운 싸움의 수단으로서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오랜 평화보다도 짧은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노동이 아닌 전투를 권한다. 평화를 권하지 않고 승리를 권한다. 그대들의 노동은 전투여야 하고, 그대들의 평화는 오직 승리여야 한다. (...) 그대들은 다만 미워해야 할 적을 만들어야 한다. 경멸해야 할 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대들은 적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적의 성공이 그대들의 성공이 되기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곽복록 옮김, 1부-전쟁과 전사


3.3.1. 정의론[편집]



정의론
니체의 정의론은 그의 사도마조히즘적인 경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사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통은 정신을 고양시키기 때문에 정신의 성숙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힘에의 의지'에 의해 고통은 장려되며, 고통으로 인해 더 높은 정신(귀족적 정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망적이네. 고통이 내 삶과 의지를 집어삼키고 있어. (...) 다섯 번이나 죽음의 의사를 불렀다네."
니체는 오버베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져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자신을 폭발할지 모르는 기계라고 말한 그는 정말로 8월 초에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 이분법을 떠올린 이후 처음으로 폭발적인 생각들을 떠올렸다.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는 그가 나중에 '차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른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냈다.
《니체의 삶》

그는 또한 정의의 기원을 응보와 고통에서 찾으며, 고통을 '가장 오래된 축제'라고 표현한다. 고대의 경제적 교환 관계에서 손해를 변상할 수 없는 인간은 대신 신체형을 받게 되는데, 신체형이 손해를 변상할 수 있다는 개념은 바로 고통을 즐기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악으로 여겨지는 고통이, 고대에는 하나의 축제였으며, 그 축제에서 '고통은 정의로운 것'이라는 개념이 파생되었지만, 노예도덕이 지배하는 근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고통은 악으로 치부되고 있다. 니체는 그러한 굴레에 반대하고 정의의 자기지양을 유토피아로 제시하는데, 자신을 충분히 긍정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은 너그러움을 통해 상대를 용서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를테면 충분히 강력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그 이전의 시대보다 범죄에 대해 더 너그러웠으며, 정의는 자기지양을 통해 조금씩 더 너그러워지며 마침내 용서와 자비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니체의 정의관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철학자가 미셸 푸코라고 할 수 있는데,[39] 푸코의 저작들에는 니체의 계보학적 사유가 뚜렷히 드러난다.


3.3.2. 귀족의 도덕, 노예의 도덕[편집]


『도덕의 계보』는 많은 사람에게 니체의 대표작으로 여겨질 만큼 영감으로 가득 차있다. 니체는 여기서 그 유명한 '귀족의 도덕 vs 노예의 도덕'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귀족 도덕 vs 노예 도덕에서 의아한 것은 그가 왜 '귀족의 도덕'이라는 엘리트주의적 워딩을 골랐는지이다. 『선악의 저편』제5장: '도덕의 자연사'에 따르면 니체가 "노예의 도덕"이라는 워딩의 모티브를 얻은 것은 고대 로마의 타키투스의 문헌에서이다. 역사가였던 타키투스는 유대인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적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노예로 태어난 민족

니체는 여기서 유대인을 노예 민족이라고 부른 게 비단 타키투스의 독창적인 워딩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대 로마를 비롯한 지중해의 모든 고대 세계가 유대인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이것을 유대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불렀는지와 비교한다.

모든 민족 가운데 선택된 민족

즉, 유대인들은 만인이 자기들을 노예라고 멸시하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신이 선택한 자들이라고 정신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자였던 로마인은 후일 얄궂게도 노예였던 유대인의 정신승리에 의해서 정복당했다. 로마가 기독교화 된것이다. 니체는 이 점을 주목한다. 가치관도 일종의 프레임 전장이라는 것이다. 즉,

로마인 vs 유대인 =

저주받은 민족 vs 축복받은 민족 =

귀족 vs 노예

로마인 관점에서는 자신은 귀족이고 유대인은 노예인데, 유대인 관점에서는 로마인은 저주받았고 자신들은 축복받았다고 보았고, 결국 유대인이 이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니체는 로마인의 가치관에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꼈다[40] 그래서 19세기 독일의 기독교 가치관에 맞설려면 다시 귀족 vs 노예 프레임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 것이다.


3.3.3. 안티크리스트[편집]


현재 정말로 활동적인 인간들은 마음속으로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중간 정도 수준인 좀 더 온순하고 좀 더 관상적인 사람들은 오직 (현재에 맞게) 조정된 기독교, 즉 놀라울 만큼 단순화된 기독교를 믿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루게 하는 신, 행복과 마찬가지로 덕을 우리에게 주거나 빼앗으면서 전체적으로는 항상 올바르고 선하게 진행되게 하고 우리가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난할 아무런 근거가 없게 하는 신
간단히 말해 신성으로까지 높여진 체념과 겸손ㅡ 이것이 여전히 기독교에 남아 있는 최상의 것이자 가장 생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는 기독교가 부드러운 도덕주의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 자유, 불사'가 아니라, 오히려 호의와 절도 있는 법도, 그리고 호의와 절도 있는 법도가 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안락사다.
― 『아침놀』, '기독교가 죽어가는 침대에서'
기독교는 비유하자면 독수리에게 쫓기는 토끼이다. 토끼는 사냥하는 독수리를 악하다고, 핍박받는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토끼의 망상으로, 독수리는 단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뿐이다.
여기서 선악을 구분하는 토끼의 마음은 '노예도덕'이고, 선악의 구분 없이 호오로 판단하는 독수리의 마음은 '주인도덕'이다. 즉 토끼와 같은 약자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과 희생'으로 몰아넣고, 이를 '선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독수리와 같은 강자는 굳이 선하려고 마음먹지 않으며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거이 행할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는 노예도덕이다. 현세가 아닌 사후의 천국과 종말론에 의지하여 도덕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지상에서의 삶을 희생시키고 금욕적인 삶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욕망을 부정하도록 가르치는 기독교를 때려부숴야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소리의 울림마다 사탕처럼 달콤한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약한 것을 좋음으로 위조하려고 합니다.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뀝니다.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뀝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순종'으로 바뀝니다. 약자의 비공격성, 약자가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비겁함 자체, 그가 문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이 서성이기만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인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미덕이라고 까지 불립니다. 복수할 수 없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 불리고, 심지어는 용서라고 불리기까지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한 '적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밀담자[41]와 구석에 있는 화폐 위조자[42]들이 모두 이미 서로 따뜻하게 의존하며 웅크려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들은 가련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련함이 신에 의해 선택받은 영예이며, 마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개를 때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내게 말합니다.
― 『도덕의 계보』


3.4. 데카당스[편집]


니체의 미학에 관한 부분이다.

우선 니체의 문제의식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유럽은 허무주의 사상이 유행했고, 프랑스 작가들(빅토르 위고)을 중심으로 낭만주의와 순수예술을 활발하게 탐구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는 기성세대 유럽인에게 당혹스러운 것이었는데, 허무주의는 기독교나 권위를 무의미하다고 조롱하여 사회의 해체를 이끄는 한편, 예술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감한 변화는 부정적인 뜻으로 각각 니힐리즘데카당스라고 불렸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었는데, 허무주의로 인해서 계급갈등, 남녀차별과 같은 문제가 광범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현대예술의 개념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비로소 유럽이 현대의 초입에 서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런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허무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 온갖 가치를 파괴했지만 정작 새로운 가치는 제시하지 못한 것인데, 이로 말미암아 가치의 진공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2020년대 한국이 유교적 가치가 뇌사 직전이지만, 이를 대체할 가치가 없는 붕뜬 상태인 것과 유사하다. 다만 현대의 한국은 어설프게라도 따라할 유럽식 가치라도 있지만, 19세기 유럽은 그런것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훨씬 절망적이었다. 니체는 이러한 '유럽의 병'을 진단한 결과, 예술과 철학의 균형이 깨진 것을 병인으로 봤다.

니체에게 예술과 철학은 그 경계가 흐릿하다. 철학이란 내가 총체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는 '보편성' 또는 '일반화'라고도 불리는 추상화를 수반한다. 예를 들어 벚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야자수를 우리는 뭉뚱그려 나무라고 일반화해서 부른다. 일반화라는 것은 나무의 보편성(가령 잎, 줄기, 가지 같은 특징 등등)을 추려내는 작업이며 그와 동시에 각 나무의 개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나무라는 일반명사에는 벚나무의 화사한 꽃도, 버드나무의 늘어짐도, 소나무의 향도, 야자수의 곧은 줄기도 담겨있지 않다. 이러한 추상화 작업을 통해 세상을 모델링한 것이 철학이다.

그런데 이 모델링이란 것은 니체가 보기에 그 본질이 '비유'이다. 물리학자 러더퍼드는 천체와 원자의 궤도가 일치한다고 보았고 러더퍼드 모형을 만들었다. 양자역학에 의해 러더퍼드 모형은 실제 원자의 움직임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아직도 널리 쓰이고 있다. 러더퍼드의 개성과 독창성이 담긴 비유인 것이다. 그 점에서 니체는 철학과 과학의 모델링 작업은 비유적이고, 은유적이고, 예술적이라고 한다.

예술도 그 본질이 비유이고 은유라고 니체는 보았다. 내가 체험한 것, 심리적 현실을 외부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음악은 예외다.) 극사실화조차 내가 감각한 표상을 본뜬 것, 즉 비유다. 사진도 나의 표상을 구도와 빛으로 흉내낸 것, 즉 비유다.

니체에게 예술과 철학의 차이점은 어떤 방식으로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느냐이다. 철학과 과학은 위에서와 같이 '일반화'를 통해서 내가 감각했던 것을 추려낸다. 철학이 100 종의 나무를 단 하나의 '나무'라는 개념으로 만들고, 그와 정반대로 예술은 더한다. '과장'이다. 예술은 단 한 그루의 나무에 집중해서 100가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그 한 그루의 나무가 세상의 모든 것 이라는 듯이 내 몸속에 떠오르는 느낌, 감정을 폭발하듯 표현한다. 충동적인 것이고, 과장인 것이다. 니체의 시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철학 vs 예술 =

일반화 vs 과장


니체는 고대 그리스에서 두 신이 유난히 숭상되는 것에 주목했는데, 질서의 아폴론과 충동의 디오니소스가 그것이다. 평상시에는 아폴론이 숭배되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사람들이 미친듯이 디오니소스 축제를 하는 것을 니체는 '질서와 충동이 본래 사람에게 내재한다'고 해석한다.

그가 보기에 질서와 충동의 정서가 잘 조화된 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아테네에는 디오니소스 축제 주간에 연극 발표대회를 진행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때 출품한 작가 중에 우수한 작가 3명을 뽑아서 축제기간에 상연한다. 각 작가는 4편의 연극을 한 세트로 제출해야 했다. 그러니까 도합 12편의 연극이 상영된 것이다.상연하는 각 작가의 연극 비율이 비극 3편 : 희극 1편이었다.

아테네의 축제기간 동안 연극은 도시 아고라 옆의 대형 극장에서 상연되는 반면에 디오니소스 축제는 도시 성벽 밖의 언덕에서 이루어졌다. 축제하러 갈 사람들[43]은 도시 밖으로 다 빠지고 비교적 점잖은 지배층들이 모여서 비극을 봤다.

아테네의 지배층들은 왜 굳이 비극을 봤을까? 이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카타르시스, 즉 평상시 이성으로 억눌렀던 감정을 씻어내는 것으로 봤고, 쇼펜하우어는 내 몸의 생존 의지가 덧없음을 깨닫게해서 진정한 자유, 일종의 열반으로 향하는데 사용했다고 봤다. 둘 다 일종의 반면교사의 용도로 여긴 것이다.

반면 니체는 그리스 비극도 이성적인 사람들이 즐기는 일종의 디오니소스 축제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 본질이 '충동'과 '도취'로서 같다는 것이다. 평상시 그리스인이 섬기는 질서의 아폴론은 이성의 신앙이다. 이성은 인간이 당장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 지도를 아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잘 잡듯이 철학, 과학으로 세상을 잘 모델링하면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이성이 하는 세계의 모델링은 모두 불완전하다. 감각경험(데이터)를 모아서 어림짐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기존 이론으로 설명이 안되는 예외적인 사실들이 있는 것도 모두 불완전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성을 아무리 활용해도 우리의 삶에는 도무지 예상도 통제도 안되는 불운과 불행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44]

게다가 이성적인 삶만 추구해서는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결국 죽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무의미하다. 이성의 눈으로 보면 나의 멸망은 확고하게 예정되어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여기서 디오니소스 축제가 의미를 가진다. 이성과 달리 충동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며, 당장 눈앞의 것만 쫒아간다. 거기에는 그 다음이 없으며 오직 지금 '도취'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포도주의 취기, 흥에 겨워 추는 춤, 생판 처음 보는 남녀와 나누는 육체적 쾌락 등 디오니소스 축제는 지금의 느낌만이 존재한다. 니체가 보기엔 그리스 비극도 이와 같다. 비극은 인간이 마주하는 고통을 '과장'하여 표현한다. 그래서 비극에 빠져들어 회로애락에 통탄하면서도 상연이 끝나면 후련한 기분으로 극장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느끼는 감정을 좋은것으로 여긴다. 니체의 다소 마조히즘스러운 측면인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로 흔히 알려진 그의 인생관이다. 니체는 사람의 삶을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 영웅신화의 관점에서 본다. 터무니없는 고난으로 고통을 느낄 때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즉, 강한 고통은 내가 살아있다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여기 살아있다. 그리고 더 살고 싶다." 이 깨달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고난을 헤쳐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극이란 예술은 이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이렇게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생의 의지를 부질없는 것으로 여긴 것과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비극적 예술가는 자신의 무엇을 전달하는 것인가? "

그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것의문스러운 것[45]

앞에서의 공포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 상태 자체가 지극히 소망할 만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알고 있는 자는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가 예술가라면 그는 그 상태를 전달하며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강력한 적수 앞에서, 커다란 재난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문자 앞에서 느끼는 용기와 자유ㅡ 이런 승리의 상태가 바로 비극적 예술가가 선택하는 상태이며, 그가 찬미하는 상태이다.

『우상의 황혼』


도취(디오니소스)는 삶을 풍부하게 하는 소중한 것이지만, 니체는 분명 꿈, 형상(아폴론)도 소중히 여긴다.그 점에서 데카당스가 문제되는 것이다. 데카당스는 니체가 보기에

질서 vs 충동

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이다. 충동의 극단으로 치닫아버린 것이다. 충동이 현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대신에 공상으로 도피하는 수준으로 치닫은 것이다. 그리고 아폴론(질서의 정서)의 극단인 인형같은 삶과 달리, 디오니소스(도취의 정서)의 극단은 짐승보다 못한 삶이다. 극단적인 삶은 절제가 결여되고, 마약에 중독된 것과 같은 자멸적인 삶이다. 결국 니체가 제안하는 질서와 충동의 정서의 조화라는 것은, 일주일에 일요일은 쉬고, 그리스 비극도 영화도 적절히 보는 것이지, 한달 내내 방구석에서 보는 것은 365일 디오니소스 축제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고, 니체가 보기에는 데카당스이다.

무엇이 이런 데카당스에 빠지게 했는지에 관해서 니체는 질서의 정서 과잉이 원인이 되었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그가 볼 때 고대 그리스에서 그리스 비극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소크라테스의 등장이다. 소크라테스가 이성 지상주의를 이끌면서 질서 과잉 상태로 나간 반면에, 충동의 정서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질서의 정서와 철학에게 버림받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 또한 충동 과잉으로 치닫으면서 탐미주의에 빠져 자멸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정서의 양극화가 발생한 것이다. 니체는 이 기조가 중세 기독교를 거치면서 강화되어 19세기 독일에 이르렀다고 여긴다.

결국 니체가 제시하는 것은 질서와 충동의 정서가 다시 건전한 조화를 이루는 예술과 소비방식이 부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철학이 먼저 변해야한다. 데카당스는 철학이 충동의 정서와 예술을 무시하고 버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객관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3.4.1.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편집]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말한다.

쇼펜하우어의 예술론을 보충했다시피한 처음 관점과 달리, 덧붙인 서문에서는 니체 자신의 철학적 관점 즉 그리스도교 대 디오니소스의 구도로 발전한다. (기껏해야 서문에서 잠깐 언급하는 정도이지만) 그의 처음 관점과 보다 원숙한 관점이 대비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니체의 교묘한 이분법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 꿈(형상) 대 도취의 이분법은 전형적인 이항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항이 떼어놓을 수 없이 밀접해 있음을 보여준다. 엄밀한 듯 엄밀하지 못한 이러한 이분법은 후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데리다라든지, 융이라든지.)

아폴론적인 것은 이성의 형식으로, 인과관계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명확한 형상을 요한다. 그것은 조각가의 조각품, 호메로스의 서사시, 조형 예술 같은 것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활발한 에너지로, 자신의 내면에서 뿜어진 모종의 느낌을 요한다. 그것은 서정시인의 서정시, 아르킬로코스의 시, 즉흥 음악 같은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합창단을 그 기원으로 한다.[46] 여기서 디오니소스가 아폴론을 통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즉 그리스 비극은 도취의 감각을 원천으로 함과 동시에 형상을 통해 상연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합창단의 도취 상태는 그들 자신이 신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그로 인해서 땅이나 태양이나 여타 천체나 자연물들, 아폴론적인 것이 일종의 연극 소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융합은 소크라테스와는 딴판이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는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결여된 아폴론적 예술을, 예컨대 플라톤의 대화편 같은 것을 만들었다. 처음 니체는 여기에 머문다. 소크라테스 대 디오니소스의 구도인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니체는 보다 근원적인 사실, 서양사상의 맥을 잇는 그리스도교야말로 진정한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이제 그리스도교 대 디오니소스의 구도로 옮겨간 것이다.


3.4.2. 천재와 대중[편집]



니체는 널리 만연해 있는 천재에 대한 환상을 부정한다.

이제까지 천재란 불현듯 떠오른 영감을, 번개처럼 뇌리에 스친 착상을 포착하여 창작하는 자로 여겨졌다. '신이 내린 재능' '범접할 수 없는 천재' 따위의 찬사는, 천재를 대중이 도달할 수 없는 신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니체는 반박한다.

손으로 하는 일의 성실성―재능과 타고난 능력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 조금밖에 없었던 온갖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위대한 사람이 되었고 '천재'(사람들이 말하는 대로)가 되었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강두식 옮김, 제4장 예술가와 저술가의 영혼에서 163


재능―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된 인류에 있어서는, 누구나 태어나면서 많은 재능의 통로를 부여받는다. 누구나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만이 강인성·지속성·에너지 등을 타고 나며 그것에 길들여질 뿐이다. 그래서 그 소수만이 재능 있는 사람이, 즉 실제로 가진 만큼의 능력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된다. 다시 말해 작품과 행위에서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강두식 옮김, 제5장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징후 263


니체의 천재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대중 때문이다. 대중이 어떤 종류의 걸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 작품의 제작자를 칭송하면, 두 가지 효과가 일어난다. 첫째로, 대중 자신이 작품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효과이다. 경외심에 의해 대중은 불완전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 때문에 미숙한 부분을 도외시하며 저급한 것으로 오해한다. 유년기는 단지 장년기로 통하는 다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임에도 말이다. 둘째로, '천재'가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효과이다. 천재는 자신의 기술을 숙련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대중이 그에게 "당신은 천재요!"라고 찬사를 보내면 즉각 마음속에서 교만이 싹트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었는지 완전하게는 이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런 찬사가 독이 되는 것이다.

니체는 이런 찬사와 신화가 대중과 '천재' 양쪽에게 독이라고 본다. 니체에게 예술은 예술가와 대중이 보조를 맞춰 추는 춤이기 때문에 '천재'를 숭배하는 신화를 걷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술의 불완전함과 예술가의 허영심은 대중이 무엇보다도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다. 대중은 예술가의 허영심과 자만심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동시에 예술가는 대중을 보란 듯이 속여야 한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삶)야말로 가장 즐거운 놀이라는 사실을 니체는 말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가 이 지상에서 인간을 짓누르고 있어. 네가 알아서 풀어보라니, 몸에 물 한 방울 적시지 말고 물에서 나오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아, 아름다움이란! (...) 이성엔 오욕으로 여겨지는 것이 가슴엔 오로지 아름다움이니 말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권, 김희숙 옮김, 221쪽


3.5. 위버멘쉬영원회귀[편집]


"인간이 왜 사나? 어떻게 살아야 좋은건가?"에 대한 니체의 답변이다. 19세기 쇼펜하우어허무주의에 대한 니체의 반박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유명한 용과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비유를 든다.

1. 기존 가치(=용)에 순응하는 낙타

2. 기존 가치와 투쟁하는 사자

3.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아이

『선악의 저편』으로 볼 때, 니체는 19세기 후반을 사자가 용과 투쟁하여 이미 승리한 단계로 봤음을 알 수 있다. 쇼펜하우어도 그러한 사자 중에 하나로 본 것이다. 문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기독교 가치(용)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가 허무주의이고, 19세기 '유럽의 병'이다. 니체는 이렇게 좌초한 쇼펜하우어를 넘어설 필요를 느낀다.

여기서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니체는 근본적으로 쇼펜하우어주의자라는 것이다. 굳이 분류하면, 니체는 쇼펜하우어 수정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몸철학도 쇼펜하우어를 복사 붙여넣기했다 봐도 무방할 만큼 비슷하다. 다만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결론 만큼은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문제가 되는 쇼펜하우어의 결론이란 이렇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육체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세상을 본다(=철학한다)고 보았다. 여기까지는 니체도 동의한다. 다만, 쇼펜하우어는 그렇기에 다 무의미하다고 결론내린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몸에 휘둘려서 왜곡된 철학을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진리에 다가가는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몸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잘못됐음을 똑똑히 인식하고 그런 편견을 무시하고 극복해야만 한다. 순수한 정신상태에 도달하자는 것으로, 일종의 불교적인 해탈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니체가 보기엔 잘 가다가 삼천포에 빠진 형국이다. 소크라테스-플라톤-스토아학파-기독교-칸트-헤겔 등으로 이어지는 정신 우위의 관념론(N)적 가치관에서 쇼펜하우어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계속 영원이니 불변이니 하는 헛깨비를 쫒아다닌다는 것이다. 니체가 보기에는 쇼펜하우어가 갈구하는 영원 불멸의 진리관도 우리 몸의 욕망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욕망 X 무한한 상상력 = 영원 불멸의 진리

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이니, 칸트의 초월도 몸에서 나온 편견의 산물에 불과하다.

여기서 니체의 흥미로운 관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우리가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철학도 우리 몸(뇌신경)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가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진법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미 컴퓨터의 육신인 반도체가 이진법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정신인 프로그램도 이진법의 한계를 못벗어난다. 인간의 육신과 그 정신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육신에서 나오는 정신은 모두 '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더불어서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주장과 같이 자신의 '편견'을 온전히 인식하는 것도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선악의 저편』

'심연'은 인간 인식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던 모든 철학자들에 대한 니체의 비판이다. 내 자신의 편견을 스스로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데카르트 인식론은 '주체'와 '개체'가 존재한다. 주체는 관찰하는 나이고, 객체는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다. 그런데 '나의 편견'을 바라보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주체(관찰자) = 나

객체(관찰대상) = 나

즉, 주체와 객체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내 눈으로 내 눈알을 보고 싶다는 어리석음과 같다. 물론 현실에서는 거울이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철학자들이 보고 싶은 '나 자신의 편견'을 보여주는 거울은 없다. 결국 철학자 한 개인이 가진 편견으로 다시 자신의 편견을 분석하는 웃기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연'은 이러한 인간의 육신에서 비롯된 편견과 그것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의 어려움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나중에 철학과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으로 이어진다.

니체가 보기에 이 경우에 나오는 항상 나오는 패턴은 순환논리와 자기강화다.

1. 어디 나의 편견을 알아볼까? 생존본능이 나의 편견인 것 같군.

2. 그럼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생존본능의 반대편으로 가면 되겠네?

3. 역시 인간의 '정신'은 고귀하고 '육신'은 미천해!

니체가 보기엔 애초에 그들이 가진 편견은 정신지상주의이다. 그래 놓고는 돌고돌아 다시 "정신이 최고"라고 결론내서 믿는 바보짓을 한다는 것이다. 니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서양사상가 거의 모두가 이 함정에 빠진다는 점이다. 어떻게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상이한 상황에서 살았던 인간들이 똑같은 함정에 빠지는 것일까? 객관론자라면 그게 진리이기 때문에 수많은 성인들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관점주의자이다. 진리라서 많은 철학자들이 찾아낸 것이 아니다. 철학자, 성직자라고 불린 인간들이 똑같았기 때문에 그들의 진리가 똑같은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쳇바퀴 돌듯이 결론을 정신지상주의로 똑같이 내는 현상을 니체는 초기 노트에서 '영혼회귀'라고 부른다. 일종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인 셈이다. 이 영혼회귀는 나중에 저 유명한 '영원회귀'(영겁회귀)로 이어진다.

만약 선배 서양철학자들이 니체를 알았다면 아마 니체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 고귀한 영혼을 추구하는 게 미신이라면 우린 어떻게 살란 거냐? 전통 형이상학에서 볼 때 이 길의 끝은 명확하다. 정신 없는 짐승의 삶이다! 도대체 그런 삶이 의미가 있느냐?" 이 절망감이 곧 허무주의이며, 19세기 유럽의 병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니체의 반응은 "그게 뭐 어때서?"이다. 이 몸에 귀속된 내 정신과 인식의 한계를 그다지 슬프게 여기지 않는다.

파일:NihilismGenz.jpg
19세기 사람들이 왼쪽과 같았다면, 니체는 오른쪽과 같은 자세를 취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저 유명한 위버멘쉬 또는 초인이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걸린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가 보기에 인간은 '짐승'이며 지구 위를 기어다니는 일개 생명체다. 인간의 사유도, 식욕, 수면욕, 성욕의 연장선이고 고도화에 불과하다. 인간의 문화, 철학, 종교, 예술을 뜯어보면 심연, 즉 유전자에 각인된 동물적 본능과 욕망이 각인되어 있다. 그로 말미암아 생긴 '편견'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한 편견은 오히려 유용한 것이라고 니체는 주장한다. 다소 진화론적인 관점인데, 과정이 어찌되었든지 유전자로 프로그래밍된 그런 편견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고, 지금도 살아간다는 것이다. 편견은 오랜 세월 함께 지낸 동료이지 적이 아니란 거다.

판단의 오류는 (...) 생명을 촉진시키고 유지하며, 종을 보존하고 심지어 종을 육성할지도 모른다.

『선악의 저편』

편견은 생존을 위해서 필수다. 위험한 것/안전한 것, 유용한 것/필요없는 것의 구분은 객관적 진리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숲에서 내가 찾은게 독버섯인가 아닌가의 지식은 전혀 보편성이 없다. 인간이 먹고 죽어도 옆의 개미나 딱정벌레는 잘만 먹을 수도 있다. 인간이란 동물만의 진리이고 편견이다. 하지만 그 편견으로 말미암아 나는 독버섯을 안먹고 살아남는다.

더 나아가 '편견'을 니체는 아예 삶과 동의어로 본다. 삶이란 "끊임없이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좋은 것, 나쁜 것, 해로운 것, 이익인 것 끊임없이 판단을 하는 것이 생존과 뗄래야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삶이란 평가하는 것, 선택하는 것 (...)이 아닌가?

잘못된 판단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며 삶을 부정하는 것이리라.

『선악의 저편』


다만 그렇다고 편견 속에서만 산다면, 그건 정말 짐승의 삶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결코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위의 '영혼회귀'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편견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초월을 꿈꾼다는 것이다. 초월은 니체가 온갖 미사여구로 꾸민 개념인데, 사실 그 본질은 니체가 그렇게 비꼬고 까내렸던 철학자들의 '일반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는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 더 오래, 더 강하게 등등 자신의 욕망에 '무한'을 곱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에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부분에 해당한다. 가령 누군가가 동물을 해부하는 것은 그의 사소한 지적 호기심이지만, 이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사물을 관통하는 일반 구조를 찾고야 말겠어!"하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반전은 그가 근본적으로 관념주의자(N) 라는 것이다. 그는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몸을 가진 사람이다. 니체는 플라톤, 스토아, 데카르트,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사실 깊은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만약에 홉스 같은 경험주의자(S)와 관념론자(N)인 플라톤 둘 중에 누구하고 친구하고 싶냐고 물으면 니체는 주저없이 플라톤을 택했을 것이다. 이 맥락에서 니체의 글도 다시 보면, "관념론은 나빠."가 아니라 "우리 관념론자들아, 편식만 하지말고 감각경험도 꼭꼭 씹어먹어야지. 안그러면 영양실조로 병든다?"에 가깝다. 그의 글도 항상 감각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장 고귀하고, 예술적이고, 창조적이고, 신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상상하는 능력이다. 이는 그의 과학비판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경멸감'도 위 맥락에서 니체에게 좋은 것이다. 경멸감은 나의 진리, 그러니까 삶의 방식과 철학이 다른 진리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철학의 충돌보다 기쁨과 흥분, 삶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없다. 니체는 자신의 어린 동료이자, 가까운 친구였던 파울 레 박사가 공리주의에 기반해 쓴 책을 읽었을 때의 소감을 고백한다.

진정한 영국적인 유형의 가설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만났는데, 이것은 모든 반대의 것, 모든 적대적인 것을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힘으로 내 마음을 끌었다. (...) 내가 이 책만큼 문장 하나하나, 결론 하나하나를 마음속으로 부정할 정도로 그렇게 읽은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감이나 초조함은 전혀 없었다.

니체는 자신이 파울 레의 철학을 마주했을 때 느낀 빡치고 욱하는 감정으로 말미암아 즐겁고 격렬하게 철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숙적, 라이벌로 그는 자신의 사유를 도약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거 완전 배트맨 대 조커-

삶에 숙적, 특히 철학적 숙적이 필요하다는 니체의 시각은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그의 시각과도 연결되는데, 그가 보기에 로마 제국과 같은 눈부신 문명들이 몰락한 이유는 더 이상 그러한 숙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19세기 유럽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러시아 제국의 팽창이 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이 시각을 적용해서 보면 미국의 성공은 영국, 독일, 일제, 소련, 탈레반, 중국과 같은 끊임없는 숙적을 마주했기 때문이라 해석될 것이다.[47]

'기만'도 니체에게는 좋은 것이다. 위 철학적 숙적과 연결되는 것인데, 니체는 지금 여기서 나를 능동적으로 살게하는 기만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여긴다. 신념도 기만의 일종이란 것이다. 반면에 해서는 안되는 기만도 있는데, 철학자나 성직자들이 자주 그러하듯이 '관조'한다든가 수동적으로 살게 만드는 경우가 그렇다. 그 점에서 기만 자체는 중립적인 도구로 보는 것 같다. 그에 따르면 기만은 관념에 탁월한 자들이 구사하는 검투술이다. 칼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제압하고 올라서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스트들이 유창한 웅변술과 변론술로 활약을 한 것도, 소크라테스가 그들 중에 가장 뛰어난 이 기술의 달인으로 여겨졌던 것도 그런 이유라 주장한다. 특히 '가치의 전도'는 니체가 보기에 기만술의 최고 정점에 있는 것이다. '귀족/노예'의 구도를 신에게 '축복받은/저주받은'으로 뒤집어버린 유대인의 탁월함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니체의 이 기만관점에서 가장 훌륭한 영웅이다. 그들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스스로를 관철시켜왔다. 로마인은 이성적이고 무력을 숭상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유대인은 무력에 굴복한 패배자이고, 노예이다. 사실 세상 그 누가 보더라도 그렇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도 패배한 조선인을 노예로 여겼다. 하지만 그런 로마인과 세상의 '객관론'에도 유대인은 자기 '주관'을 잃지 않는다. 만약 친일파와 같이 무력 앞에 굴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쳤다면, 유대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유대인은 로마와 이성이라는 거대한 적에 사랑과 이타심, 동정심과 같은 논리정연한 사유로 맞선다. 물론 이러한 언어는 기만술이다. 니체는 유대인들의 본심은 요한계시록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여긴다. 로마인들에게 한없는 경멸감과 분노를 느꼈으며, 그래서 승리와 보복을 꿈꿨다는 것이다. 니체는 유대인이 '민족'이란 관념을 발명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강력한 집념속에서 디아스포라를 유지하고, 금전을 모으며 살아남고, 당장 복종할 지언정 여전히 자신들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그 신념, 자기기만을 꺾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올라선다. 나의 주관적 신념을 남들의 객관론으로부터 지킨 것이다. 이것은 니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 영웅의 전형이다. 니체는 약자가 가진 투지와 정신을 높게 평가한다. 이는 니체가 본인의 삶을 집안 여성들과 19세기 루터교에 억압받았던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 기만술에 관하여 철학자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유능했는지에 관해서 혀를 내두른다. 특히 니체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쇼펜하우어이다. 쇼펜하우어는 육체적 욕망들을 생존본능과 결부된 것으로서 동물적인 것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쇼펜하우어 본인은 자신이 그렇게 무시하는 생존본능에 따라서 집에 강도가 들어올까 두려워 호신용 총을 서랍에 항상 보관하는가 하면, 매 끼니를 아주 좋은 음식들로 채우는 미식가적인 취향을 가졌다. 게다가 매 식후에 플루트를 연주하며 즐거움을 느낀 것은 덤이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과 모순되고, 결국 육체에 굴복하고만 패배자의 삶을 산것일까? 니체는 오히려 쇼펜하우어가 탁월했다고 본다. 철학자도 자신의 강함을 느끼면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치의 본질에 대해서 니체는 '거리(distance)의 파토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쉽게 말해서 "나는 너네하고 수준이 틀려."하는 정서다. 가령 전사는 자신의 몸과 검술이 뛰어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이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철학자와 성직자들은 '초연함'을 무기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조하는 삶'이 대표적이다. 범인들이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수준으로 도도하고, 무심해서 존경심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부터 쇼펜하우어까지 철학자들은 대부분 감각적 세계에 대한 초연함으로 자신의 강함을 느끼고, 기쁨을 누렸다. 이것은 다른 문화권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니체는 힌두교브라만 또한 왕과 정치에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거나, 고행을 즐겨했다는 것을 예로 든다. 이러한 철학자와 성직자들은 정도가 지나쳐서 자신의 관념론에 스스로 잡아먹힌 경우를 제외하면, 본인들은 삶을 잘 즐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관념의 기술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리로 여기며 따르기 시작했을때이다. 니체는 이렇게 철학자와 성직자의 기만술에 녹아버린 일반인들에게 깊은 연정을 느낀다. 『차라투스트라』에서도 그는 외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져서 죽어가는 시장의 광대가 지옥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두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옥도 천국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의 영혼은 그대의 육신보다 먼저 시들 것입니다. 전혀 위로가 안될 것 같다




3.5.1. 자기긍정[편집]



자기긍정
오늘날에는 누구나 자신의 소망과 가장 소중한 생각을 감히 말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내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 이해를 함에 있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스쳐가는 생각,—앞으로의 삶에서 내게 근거와 보증, 달콤함이 될 생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그렇게 하여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여기서 쓰인 긍정(Bejahung)이란 부정의 반댓말이다. 즉 확인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귀족주의자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의미의 귀족주의가 아니라 "정신의 귀족주의"를 말한다. 본인도 '어떤 사람이 귀족인가 아닌가'는 '어디에서 왔는가'(=혈통)가 아니고, '어디로 가는가'로 분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귀족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달리 말해 자기 자신의 의욕을 긍정하는 인간이며, 또 자신의 의욕을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는 인간과 도덕을 두 부류; 노예와 귀족으로 나눈다. 노예는 사랑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아서, 되도록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주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다. 반면에 귀족은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챙긴다. 또한 노예는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노예의 주인이다. 귀족은 노예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잘못되더라도 기꺼이 책임을 진다. 따라서 니체는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마음껏 드러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려는 사람을, '정신의 귀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 초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3가지로 나누고, 각각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에 비유하였다. '낙타'는, '~해야 한다.'로 상징되는 '용'에게 지배당한다. 낙타는 자신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고통의 사막을 건너면서도 남(용)이 가르키는 방향에 자신의 방향을 맞추며 살아간다. 낙타는 금욕주의와 자기부정을 통해 살아가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상징한다. 이러한 낙타는 사막이라는 고통을 겪으면서 점점 반항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사자'의 단계이다. '사자'는 '용(용이 상징하는 것: '해야 한다.')'의 권위와 가치에 의문을 품고 적극적으로 반항한다. 하지만 반항만 할 뿐이어서, 용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지니지 못한다. 용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고 니체는 말한다. '어린아이'는 '해야 한다'는 용의 무시무시한 압력에도 잠시 뒤돌아서면 망각하며, 자신의 방향을 자기가 결정해서 삶(놀이)의 규칙을 입맛에 맞게 매일마다 바꾼다. '어린 아이'와 같이 스스로가 삶의 가치를 창조하며 이러한 삶 자체를 긍정하는 사람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Übermensch)', 즉 '자기자신을 극복한 사람'인 것이다.


4. 니체 사상에 대한 철학적 비판[편집]


니체 사상에 대한 철학적인 비판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 중에서도 철학계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비판은 매킨타이어에 의한 비판이다.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 (After virtue)》에서, 니체는 '기존 도덕가치에 대한 개인 스스로의 재평가'를 강조했기 때문에 기존 도덕의 가치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개인마다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존 도덕가치에 대해서 '난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라고 말하게 되고, 이는 도덕적 상대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도덕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는 극단주의적 주장마저도 용인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여러 정치철학자들이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우려하는 점은, 가치 판단을 개개인에게 맡김으로써 사회가 도덕판단의 영역을 애써 피하려다 보면 오히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득세를 돕는 꼴이 되며, 사회와 정치에 대한 담론을 다룰 때는 도덕을 논하지 않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니체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예를 들자면, '표현의 자유를 명목으로 극단주의자들이 나치 옹호 집회를 여는 경우, 우리는 가치평가가 개인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저런 극단적인 주장에도 사회는 중립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48][49]

즉 니체의 관점주의는 도덕의 무의미함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이 쓸모없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도덕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연대의식을 가지고 그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과연 우리사회에서 불필요한가?라고 매킨타이어는 반문한다. 이 지점에서 매킨타이어는 '전통이 가지고 있는 도덕가치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전통에 대한 복종의무가 법제화되는 방식에 있어서[50] 국가가 개인에게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으므로, 전통에 기반한 도덕은 적어도 '인간 존재를 위한 도덕이어야 한다'는 한계를 위반하지 않아야 된다고 매킨타이어는 주장한다.


5. 영향력[편집]


니체는 20세기 지성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이며, 그의 사상은 21세기의 오늘날에도 그 사상적 중요성과 적시성으로 인해 여전히 철학적 담론의 중심에 서 있다. 니체의 영향으로 이성 중심의 학문들(모더니즘)은, 감정적이고 실험적인(아방가르드) 시도들의 학문(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모했다. '이성' 중심은 감성이나 표현 중심으로, '주류' 중심은 비주류나 다양성 중심으로, '다수' 중심은 '개인'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들은 수많은 이론과 사조를 만들어내며 꽃을 피웠다. 이는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학·음악·미술·무용·건축·정치학·사회학·신학·심리학/심리 치료 이론 등 정신사와 문화사 전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니체는 처음에 시인, 철학자 혹은 예술가, 철학자로 이해되었다. 니체 사후에 학계는 니체에 대해 침묵했으나 1940년 전후 하이데거에 의해 니체는 서양 형이상학 전통으로 등재된다. 이후 1960년대 프랑스에서 니체는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19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이때, 니체의 사상은 철학 이외에도 사회학, 신학, 심리학, 문학, 음악 그리고 조형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되면서 20세기의 철학자로 우뚝 떠올랐다. 1960년대 이후 구조주의의 그림자를 밟은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니체만 아는 니체'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니체가 모르는 니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헤겔 이후에 새로운 철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근거였다. 그 답변들이 1980년대 이후 국내 학자들에게도 적극 수용되었다. 하이데거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은 니체와 함께 프로이트마르크스를 호출했다. 라캉은 프로이트를,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푸코질 들뢰즈 그리고 데리다는 니체를 불러냈다. 이 탈근대 사상가들은 저마다 다른 무기를 통해 유럽 모더니즘의 척추인 기원과 중심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들뢰즈는 니체의 망치를 들고 프로이트를 가격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본주의의 반인간적인 측면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의상을 입고 지구촌 정신사의 무대에 출현하고 있다. 현대 정신사의 최전선이나 역사적 사회적 현장에 니체가 나타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가 해석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해서 언뜻 보기에 그의 사상이라 단언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자세히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이성적 권위를 해체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 가운데는 서양 근대 문명의 병리 현상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51], 자본주의, 인간 왜소화 현상 등 서양 근대 이념과 제도, 근대 문명을 비판하는 모습도 있고, 권력화되고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인간의 노예근성을 철저히 해부했으며, 점차 속물화되고 천민화되는 현대 인간에게서 정신적 깊이와 인간적 품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주창자로 니체를 읽기도 하고, 인간 영혼의 내부를 최초로 심도 있게 해부함으로써 현대 심층심리학의 이론적 원형을 제공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니체를 인간 사유의 한계를 깨뜨리며 사유 기호의 자유로운 놀이 세계를 열어 놓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또는 우주적 무아(無我)를 주창함으로써 자기 자각을 추구하는 서구적 불교사상으로 읽기도 한다.[52]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니체를 자신들의 지적 선구자로 제시한다. 그러나 니체는 체계적인 철학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체계적 관점주의를 선호하였고 모든 전통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였다. 사실 니체가 제시하는 흥미로운 주제들 중 몇몇은, 그들의 관심사와 일견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니체의 사유 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리든 후기구조주의로 불리든 간에 20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니체의 반이성주의적 성향을 계승하면서 전통적 진리에 대해 비판하는 니체를 원하였고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강조하는 니체를 원하였다. 그들은 니체 철학의 주제인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허무주의, 위버멘쉬 등에 초점을 맞춰 니체의 텍스트들을 해석의 전거(典據) 또는 대상으로 삼았고, 니체를 각자의 철학적 입장을 개발하는 데 이용했다. 전통 형이상학의 이항 대립적 사고방식의 가정들에 도전하였고, 차별성과 이질성을 선호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비판적 기획을 개발하는데 니체를 참고하고 니체로부터 영감을 얻어나갔다.

  • 음악
음악에서는 지금까지 약 219명의 작곡가가 420개 작품에서 니체의 텍스트나 시에 음악을 붙여 작곡하거나 그의 음악 이념 혹은 예술정신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 니체의 주저 제목을 그대로 단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나 프레더릭 딜리어스(F. Delius), 구스타프 말러(G. Mahler), 안톤 베베른(A.v. Webern), 카를 오르프(C. Orff), 파울 힌데미트(P. Hindemith) 등 수많은 작곡가가 니체의 기독교 비판이나 삶의 예술, 혹은 극복의 사상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 또한 불협화음을 해방시킴으로써 무조음악을 창시한 아르놀트 쇤베르크(A. Schönberg)도 니체와 친근한 거리에 있었다. 표현주의 음악을 선도했던 그는 음열 구성에서 복잡성이나 점묘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12음 기법을 체계화하는 ‘신음악(Neue Musik)’을 주도하며 그의 제자인 베르크나 베베른에게 영향을 미치는 등 20세기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미술
니체는 현대미술의 탄생에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아르 누보의 독일적 양식이라 할 수 있는 유겐트스틸(Jugendstil)의 잡지 <판(PAN)>은 그 정신적 이념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왔고, 이 양식을 ‘차라투스트라-양식’이라고 불렀다. 또한 움베르토 보치오니(U. Boccioni), 지노 세베리니(G. Severini), 카를로 카라(C. Carrà), 루이지 루솔로(L. Russolo), 지아코모 발라(G. Balla) 등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들은 니체 사상에 나타난 삶의 역동성을 기반으로 기계 문명이나 거대 도시, 젊음, 운동, 힘, 속도 등 새로운 시대의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서양 문명을 비판하며 합리적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회의를 품고 삶의 개혁을 추진하며 일상의 예술작품을 보여준 반(反)예술운동으로서 다다이즘(dadaism)도 실상 니체의 그늘에 있었다. 바실리 칸딘스키(V. Kandinsky), 파울 클레(P. Klee), 프란츠 마르크(F. Marc), 가브리엘레 뮌터(G. Münter) 등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그룹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L. Kirchner), 에리히 헤켈(E. Heckel) 등 다리파(DieBrücke) 화가들은 그 예술 모임의 명칭을 <차라투스트라>에게서 빌려 왔다. 이들의 뒤를 이어 나온 뭉크(E. Munch)는 시대적 불안이나 병리 현상 및 그것을 극복하는 빛과 힘, 에너지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딕스(O. Dix)는 전후(戰後) 일상의 어두운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추의 미학을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했다.

니체는 더 나아가 초현실주의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앙드레 브르통(A. Breton)은 자아의 생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경련의 아름다움을 그려냈고, 몸의 리비도가 정신화되어 세계로 유출되는 과정을 수수께끼 같은 영상적 언어로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S. Dalí)는 아리아드네, 마스크, 기만, 관점주의, 가치전도, 놀이 등 니체적 주제를 변주하며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그려냈다. 조르조 데 키리코(G. de Chirico)는 니체에 의존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회화’를 만들어냈으며, 막스 에른스트(M. Ernst)는 가면과 정신을 통해 인간의 이면을 탐구했고, 안드레 마송(A. Masson)은 생성소멸의 과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자각 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음악과 연극, 미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행위의 자발성이나 즉흥성, 즉 해프닝을 통해 기존의 인습적 형식 예술을 깨뜨리고 비형식적 현실을 찾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플럭서스 운동 역시 니체적 영감을 조형한 것이었다.
  • 무용
현대무용의 새로운 무대도 니체적 영향 아래 펼쳐졌다. 현대무용을 창시한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은 니체를 ‘최초의 춤추는 철학자’라고 부르며 <차라투스트라>를 평생 자신의 침대 곁에 놓고 보았으며, 니체에게서 신체의 자연성, 몸의 긍정, 그리스적 세계관, 자유정신을 체현하는 몸의 율동을 얻었고 이를 통해 현대 무용의 문을 연 것이다. 그녀는 기존의 무대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가 춤을 추거나 그리스 신전을 찾아가 춤을 추었고, 전통적 발레 형식을 벗어나 벌거벗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유로운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각성된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와 동시에 우주의 춤에 인간이 참여한다는 ‘운동의 합창’ 개념을 만들고 음악 기보법을 최초로 정립한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 그의 제자이자 ‘무(無)음악의 무용’이라는 표현주의 무용을 만든 마리 뷔그만(Mary Wigman), ‘열린 장’의 개념으로 ‘새로운 춤’을 만든 포스트모더니즘 무용의 아버지 커닝엄(Murce Cunningham) 등도 니체적 실험 정신의 표현자로 볼 수 있다. 커닝엄은 무용에서 우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춤의 주제, 주인공, 사건을 떠나 ‘춤의 본질’ 자체에 눈을 돌리게 했다. 몸의 긍정이나 자유정신,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우연의 강조 등 현대 무용의 탄생 과정이나 그 전개 과정 역시 니체와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 무용의 문을 연 최승희 역시 일본의 이시이 바쿠(石井漠)에게서 무용을 배웠는데, 그 역시 니체주의자 마리 뷔그만의 표현주의의 우산 속에 있었다.
  • 문학
문학에 끼친 니체의 영향은 너무 지대한 것이어서 소수의 작가만이 그의 영향권 밖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독일 문학에서는 자신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니체적 소설이라고 부른 토마스 만(Thomas Mann)이나 니체의 미학적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특성 없는 남자>의 저자인 무질(R. Musil) 등이 있으며, 토마스 만과 동시대에 활동한 헤르만 헤세도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미 문학에서 조지 버나드 쇼(B. Shaw),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Yeats), D. H. 로런스(H. Lawrence), 제임스 조이스(J. Joyce) 등이, 프랑스 문학에서는 폴 발레리(P. Valéry), 앙드레 지드(A. Gide), 앙드레 말로(A. Marlaux)와 같은 작가가 있고, 이탈리아와 그리스 문학에서는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 d'Annunzio)나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T. Marinetti), 니코스 카잔차키스(N. Kazantzakis) 등이, 러시아 문학에서는 막심 고리키(M. Gor'kii)나 상징주의 작가 안드레이 벨리(A. Belyj) 등이 있었다.
  • 심리학
니체는 현대의 심층심리학이나 다양한 심리치료이론이 탄생하고 형성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학이나 카를 융분석심리학, 알프레드 아들러(A. Adler)의 개인심리학, 오토 랑크(O. Rank)의 의지심리학 등 인간 영혼의 내면 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한 심층심리학의 탄생 역시 니체의 영향이 있었다. 스스로를 위대한 심리학자로 규정하며 서양 정신사 전체를 해체하고 이를 심리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니체의 작업은 인간 영혼의 내면을 탐색하는 수많은 심리학적 자원을 남겼다. 니체사상은 현대의 심층심리학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조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빅토르 프랑클(V.E.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ie, 의미치료), 어빈 얄롬(I. Yalom)의 실존적 심리 치료, 아헨바하(G. Achenbach)의 철학 실천(철학 상담), 임상 철학 등이 형성되고 발육되는 데도 풍부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 철학
또한 철학 영역에서도 실존주의, 해석학,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페미니즘 등 현대사상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니체의 정신적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이데거야스퍼스, 뢰비트, 핑크와 같은 실존철학자는 니체에게서 인간의 실존과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단서를 발견했고, 호르크하이머나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같은 비판이론가들이나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가들, 더 나아가 사라 코프만, 브롱델, 이리가레, 엘렌 식수 등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서양 근대의 병든 문명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탈근대적 사유문 법을 찾았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진단한 프랜시스 후쿠야마(F. Fukuyama)의 ‘역사의 종말’ 중심에도 니체의 마지막 인간과 극복인 사상이 놓여있으며, 페터 슬로터다이크(P. Sloterdijk)의 현대사회의 문화투쟁론 및 자기 긍정의 언어학으로서의 복음론에도 니체는 여전히 진행형의 이념 논쟁을 제공해 주고 있다.
  • 한국
니체는 서양 지성사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한국에도 깊이 침윤되기 시작했다. 니체와 한국의 중요한 만남 가운데 하나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일어났는데, 예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던 안호상이 1928년에 철학자 오이켄의 미망인과 함께 니체문서보관소(Nietzsche-Archiv)를 방문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Elisabeth Förster Nietzsche)를 만났던 것이다. 안호상은 엘리자베트의 안내로 니체의 유고를 보았고, 이때 니체의 위대성을 느끼며 니체를 한국에 소개하기로 약속했다. 귀국 후 1935년에 그는 <조선중앙일보>에 7차례 연재형식으로 <니-최 부흥의 현대적 의의>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겠다는 니체 여동생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후일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 교육의 초석을 놓았으며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니체가 처음 소개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1909년 박은식이 주필로 있는 <서북학회월보>에서였다. 여기에 실린 작자미상의 ‘윤리총화(倫理叢話)’라는 글에서 ‘니체주의’는 ‘톨스토이주의’와 비교되었는데, 전자는 자애(自愛)를 강조하는 개인주의를, 후자는 타애(他愛)를 강조하는 이타적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1893년 이후 일본의 니체 담론과 1902년 이후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와 왕궈웨이(王國維)의 니체 논의는 모두 사회진화론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이러한 동아시아의 지성사적 논의가 개화, 자강, 애국 계몽 운동을 하던 지식인들에 의해 대한 제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니체가 다시 다루어진 것은 1920년 천도교의 월간지 <개벽>의 창간호에서였다. 니체는 1920년대에 김기전, 박달성[53], 이돈화, 김억, 이대위 등 지성인에 의해 사회진화론, 개인과 사회, 개인(자아)해방과 사회 평화 등 사회철학적 물음 속에서 소개되면서 개화, 근대화, 항일 운동, 신문화 운동과 연관되어 한국의 정신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초기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니체는 민족주의적 의상을 입은 한국적 니체였고, 식민지 시대의 시대적 고민을 넘어서려는 강력한 힘의 철학, 의지의 철학을 표명하는 사회철학자로서 니체였다. 이후 시대를 거듭하며 전원배, 박종홍, 하기락 등에 의해 니체가 체계적으로 소개되고 철학적으로 논의되었다.

1930년대에는 니체사상을 토대로 김오성(본명 김형준)이 문학이란 새로운 능동적 실천적 창조적 인간 유형을 창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보며 ‘네오휴머니즘’의 문예 비평 사상을 주창했다. 이 당시 문학의 영역에서 니체 수용의 또 하나의 결실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시인 그룹 ‘생명파’의 탄생이었다. 서정주·유치환·오장환·윤곤강 등 생명파 시인들은 생명·의지·초극·휴머니즘이라는 공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니체 철학의 한국적 시적 변주였던 것이다.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은 이후 김동리의 ‘제3휴머니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문학의 본질은 휴머니즘의 발굴에 있다는 김동리의 순수문학론에는 근대성 비판, 자기극복, 인간성의 발굴, 아름다운 삶의 조형 등 니체 사상이 깃들어 있는데, 이는 19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문학계의 이념적 지형도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90년대를 지나며 정동호, 이진우와 원광대 김정현 교수를 비롯해 독일에서 니체를 연구한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여러 연구자의 노력으로 세계 표준판 <니체비평전집>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 가운데 다양한 니체 사상의 주제가 다루어지고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되었으며, 여러 학문 영역을 가로지르며 현재까지 니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6. 니체의 평론[편집]



6.1. 바그너에 대해서[편집]



니체가 작곡한 관현악 합창곡 <삶에 대한 찬가(Hymnus an das Leben>(1887년)
리하르트 바그너가 니체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여러 면에서 결정적이다. 니체와 바그너 사이에는 여러 공통분모가 있었다. 니체는 10대 시절부터 바그너의 음악을 알고 있었고, 바그너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오페라를 그리스 비극으로 돌려놓자고[54] 주장했다는 점에서 둘의 의견은 일치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와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 바그너는 1854년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그의 철학에 빠져들었고, 자신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깊이 반영했다. 무식한(?) 음악쟁이가 무슨 철학이냐는 편견이 강했는지, 과거에는 바그너가 일방적으로 니체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잘못된 견해가 일반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반대에 가깝다.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니었다. 니체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바그너보다 쇼펜하우어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니체는 바그너와 교류하기 불과 3년 전인 1865년 처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었다. 니체는 바그너와의 토론을 통해 철학에 깊이 빠지게 되어 문헌학자로서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니체는 거의 매일같이 바그너 집에 놀러가 거기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바그너와 니체는 31년이나 나이차이가 났는데, 아버지 없이 자랐던 니체는 바그너 부부에게 거의 부모와 같은 정을 느꼈다고 한다. 바그너와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던 니체는 1870년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구상하여 저술하기 시작했고 이를 발전시켜 1872년 자신의 첫 저서인 "비극의 탄생"을 완성하여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 본연의 정신을 살리고 있는 작곡가로 바그너를 지목한다.

하지만 이후 서서히 여러 가지 이유로 니체는 바그너의 예술에 회의를 품게 된다. 바그너 작품들 자체가 내재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불일치에 대해 점차 회의를 가지고 혐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876년 바그너가 25년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여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의 초연을 보고 나서 바그너에 대한 회의가 심화되었다. 니벨롱의 반지는 소재적으로 니체와 접점이 매우 많은 작품이다. "신들의 멸망", 그리고 "신의 의지를 초월한 자유로운 인간"의 출현을 고대하는 바그너의 이 작품은 니체를 상징하는 "신은 죽었다", "위버멘슈"의 개념과 매우 깊이 연관된 것이다. 물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이미 1850년대 초반에 대본이 모두 완성된 상태였기에 니체가 바그너에게 영향을 받았으면 받았지, 바그너가 니체의 영향을 받아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니벨룽의 반지에서 신의 의지에서 자유로운 인간들은 모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해석하기 따라서 바그너는 신들의 멸망 이후 신들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의 인간의 출현을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매우 불분명하다. 어쨌거나 니체는 지크문트와 지크프리트의 연이은 실패와 죽음, 그리고 이로 인해 결국 염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이 자신의 철학의 궁극적인 방향과 불일치하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결국 1882년 바그너의 유작 '파르지팔'의 초연을 보고 바그너가 기독교에 굴복했다고 비판하며 그를 데카당스로 규정하고 바그너로부터의 결별을 생각한다. 1882년 작고하기 수개월 전 베네치아에서 요양하고 있던 바그너와 그의 부인을 마지막으로 만나 담담하게 그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미 그전부터 니체가 심심치 않게 바그너를 비판하는 글을 써오던 차였기 때문에 바그너도 니체와의 결별을 예상하긴 했으나, 그로부터 직접 결별을 선언받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적들에게 언론을 통해 가차없는 독설로 비판해왔던 바그너였지만 니체에 대해서는 매독으로 정신적으로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언급한 것 이외에는 니체의 공개적인 비판에 대해서 따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한 뒤부터 1889년 전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완숙미가 넘칠 시기에 에세이 '바그너의 경우'[55], '니체 대 바그너' 등 바그너를 공격하는 저서를 여러 권 저술했다. 이에 대해 니체가 정작 바그너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유튜브로 아무 때나 수시로 반복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그너의 만년 음악극은 바그너 생전에도 상연된 적이 거의 한두 번밖에 없었기 때문에 바그너의 작품에 대해 오늘날의 기준만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바그너로부터 결별하며 그에 대해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은 니체 개인으로서는 뼈아픈 일이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었지만,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가치가 없었고, 그렇기에 잊혔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들도 아니고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던 니체로서는 바그너의 말기 오페라에서 신에 대한 인정과 사랑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이후 극심한 정신 분열 상태가 더욱 심해졌다. 애초부터 바그너와 친해진 연유도 일찍이 쇼펜하우어와 교제하며 그의 사상을 사랑하고 지지했던 바그너를 니체가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즉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이상 니체는 더 이상 바그너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던 것.

(참고 -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쇼펜하우어도 깠다. 그는 아무 희망 없는 염세주의 역시 기독교나 형이상학 못지않게 미워했다.)[56][57]


6.2. 음악 자체에 대해서[편집]


음악 자체에 대한 니체의 태도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음악이 인간 특유의 감성과 낭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으며, 따라서 음악 중에서도 교향곡 등의 순수 기악보다는 즉흥 연주곡, 소나타 등을 더 선호했다. 그가 한때 바그너에게 끌린 이유 역시 바그너의 음악에 들어있는 그리스 비극으로의 회귀라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그의 스탠스에도 변화가 어느 정도 오는데, 이는 "비극의 탄생"에 그가 1884년에 붙인, "자기비판에의 시도"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6.3. 문인들에 대해서[편집]


문학 쪽에서 본다면 "스탕달을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라 할 정도로 스탕달을 높게 평가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도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무언가를 배운 유일한 심리학자이다 : 그는 내 인생의 가장 멋진 행운 중의 하나이다. 이 심오한 인간이 천박한 독일인을 하찮게 평가한 것을 열 번 지당한 일이었으며, 그는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시베리아 형무소의 수감자들, 사회로의 복귀 가능성을 더 이상 갖지 못하는 중범죄자들을 자신이 예상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느꼈다ㅡ 러시아 땅에서 자라는 것 중에서 가장 최고의 재목이자 가장 강하고 가치 있는 재목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라고 느꼈던 것이다."라면서 격찬했다.

반면에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허무주의자로 단정하고 안 좋은 방향으로 평가했다. 스탕달이 사실주의 문학의 시조격인 인물이고 플로베르 역시 사실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작가임을 감안하면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모파상에 대해서도 호평했고, 대체로 프랑스 문학이나 예술을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근거로 "나는 오로지 프랑스적 교양만을 믿고 다른 유럽적 '교양'은 전부 오해라고 간주한다."[58]라든가, "독일이 닿으면 문화가 썩어버린다." 등의 글을 남겼다.

호메로스를 높게 평가했다. "호메로스는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가! 호메로스의 “소박성”은 오로지 아폴론적 환영에 대한 완전한 승리로 파악되어야만 한다."라고 평했다.[59]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로 비추어 봤을 때 도덕적 기준에 맞춰 숨기고 포장하는 것을 경멸하고 시원시원하게 까발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60]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위대한 시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현실을 퍼내어 이용한다ㅡ 그가 나중에 자기의 작품을 더 이상은 견뎌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도록 말이다. 나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가슴을 찢는 비통한 작품을 알지 못한다 : 어릿광대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그 인간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ㅡ 햄릿을 이해했는가?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만 하고, 심연이어야만 하며, 철학자여야만 한다“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에 대해서는 “그 같은 감미롭고도 열정적인 음악을 찾아 나는 모든 세기의 전 영역을 다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신적인 악의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 없이는 나는 완전성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ㅡ나는 인간과 종족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들이 신과 사티로스의 분리 불가능함을 얼마나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지에 의거해서 평가한다.ㅡ 하이네는 독일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는지! 단연 하이네와 내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들이었다고 언젠가는 불릴 것이다ㅡ우리는 범속한 독일인들이 독일어를 가지고 해왔던 모든 것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평했다.


7. 오해와 진실[편집]



7.1. 여성혐오주의자였다?[편집]


니체가 성 차별주의자였다는 의혹은 그의 글 전반에서 들어나는 매우 공격적인 어조로 인해 처음부터 널리 퍼져있었고, 이에 대한 학계논쟁은 항상 있어왔다. 의견은 크게 긍정, 부정, 수정으로 나뉜다.

성 차별주의자라고 해석하는 쪽에서는 그의 발언[61][62][63]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반감을 여과없이 드러낸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성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쪽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언[64]을 인용하며 "여성은 철학적 차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에 의해 보편적 진리라고 주장된 것은 서투른 독단이고, 실제 진리의 모습은 여성의 태도와 행위에 가깝다는 관찰이 그것이다."[65]와 같이 여성성을 진리에 비유하기도 하는 등 여성성의 재발견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니체가 평소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성과 이성중심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었음을 고려할 때, 여성성은 이것을 보완하고 견제하는 역할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은연중에 여성성을 극복할 것으로 치부하고 성별 간의 차이를 없애려고 한 당대의 여성 운동에 대하여 대체로 비판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관점이다. 또 해체론적 시각에서는 니체가 현대적 페미니즘과는 다르게 사회적 - 정치적 관점에 갇히거나 국한되지 않은 철학적 분석과 주장을 하였다고 말한다.[66]

니체가 살던 시기가 19세기였던 것과 당대의 사회적 한계를 감안했을 때 이런 내용은 오히려 진보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독특한 보수적 성향과 1860년대 중반 이후의 독일 자유주의의 쇠퇴, 독일 중간계급의 정치적 취약성의 결과가 반영된 19세기 독일 여성 운동의 성격은, 교육의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어머니로서의 소양 교육 정도에 만족하고, 기혼 여성의 재산권이나 자녀에 대한 권리를 말하면서도 그 적극적 모색에는 주저하며, 여성 참정권에 대한 강력한 주장도 오랫동안 표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하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여성의 권리와 요구가 증대한 것에 비해 감소되어 왔다”는 말에서처럼, 초기 페미니즘의 동일화 운동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67]

현대 제3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니체가 제기했던 이러한 인식을 수용하고, 여성성이 파괴되지 않는 양성의 평등을 위해 니체를 재평가한다. 여성성이 지니는 고유한 장점을 결핍으로 파악하고, 이를 인위적인 남성성과의 동일화 운동으로 없애려 한 당시의 페미니즘의 경향은 니체가 볼 때 여성성을 죽이는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니체가 당대 페미니즘의 선봉장이었던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와 교류한 사실도, 니체가 여성 혐오주의자가 아니라는 근거로 거론된다. 링크 또한 여성의 대학 입학에 찬성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니체를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처럼 단순히 여성혐오주의자로서만 읽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일 수밖에 없다.http://scholar.dkyobobook.co.kr/searchDetail.laf?barcode=4010023785732


니체의 작품들을 볼 때, 그가 19세기 여성들에게 경멸감을 느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다만, 그 이유 몇가지가 복합적인면이 있다.

첫째, 니체는 소위 '몸철학'을 했던 사람이다.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욕망이 있고, 이에 따라서 그의 진리가 결정된다. 그리고 니체라는 사람의 몸은 분명 이성을 진리로 욕망했다. 20세기에는 비록 그가 반이성주의자들을 위한 병기고로 활용됐지만, 그는 엄밀히 말해서 플라톤 이래로 이어지던 이성지상주의를 비판한 것이지, 그는 이성을 사랑한 엄연한 서양철학자였다. 니체가 관찰하기에 일반 여성들은 이성을 진리로하는 부류가 아니다. 즉, 철학자들과 매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 다른 욕망과 진리를 마주할 때 우리는 경멸감을 느낀다. 니체도 여성들에게 경멸감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그다지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몸철학 관점에서 그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도 않는다. 다만, 몸철학은 주관론의 관점이다. 신체가 다르면 욕망도 다르고, 진리도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신체가 다르기에 욕망도 진리도 다르다.

내가 여성 자체에 대해 말하는 몇 가지 진리는 [...] '나의 진리'일 뿐

<선악의 저편>

그래서 니체는 자신이 비록 여성들에게 경멸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자신의 신체반응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철학도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살자는 내용이다.

둘째, 니체는 욕망을 그다지 신성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덕의 계보>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진리인 이성조차도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그로 인해 남이 고통받는 것에서 육욕(엔돌핀 터지는)을 느끼고, 이익을 추구하고 헤아리는데 예민한 어떤 동물의 욕망이 본질이라고 여긴다. 하물며 다른 종류의 진리에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니체는 이성과 경쟁하는 욕망을 이타주의, 동정심, 종교적, 도덕 등으로 부르는데, 니체가 보기에 그 본질은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원하는 욕망이다. 남을 돕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심지어 순종하는 것 조차 모두 결국은 상대의 마음을 정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가 이성주의자를 광전사스크루지 같은 존재로 본것이라면, 도덕주의자는 관종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욕망을 날것으로 그것도 매우 창의적이면서 신랄한 표현으로 서술하니 여혐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도덕적'인 욕망을 전혀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던것 같지는 않다. 가령 그의 서술로 볼 때, 이런 도덕적인 욕망이 강했던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인데, 니체는 이탈리아인의 그러한 면을 호의적으로 서술한다. 종교적 재능이 천부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니체는 이성에 플라톤이 있다면, 도덕에는 예수가 있다는 시각이 있는데, 니체는 예수에 관해서 단 한줄도 부정적인 평가를 했던 적이 없다. 오히려 기독교 신학생이 썼다고해도 믿을 만큼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글은 많다. 니체의 예수에 관한 시각은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신학계에서 유행한 역사적 예수 관점이 분명한 것 같다. 역사적예수 관점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니체의 친척이기도 하다.

니체는 19세기 여성들과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그러한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욕망하는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특히 당대 여성 지식인들과 여성운동가들에 관해서도 상당수가 그것을 일종의 패션 또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으로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즉, 그 시대의 지적인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매력적인 신여성으로 포장하는가 한편, 다른 여성들을 구시대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연애 경쟁에서 따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사이에 남성을 쟁취하는 경쟁이 얼마나 심하고, 오로지 그 중심으로 여성들의 목적이 맞춰져있는지 니체는 가사노동을 예로 설명을 한다. 그가 보기에 가사노동은 학문적으로 고도화, 전문화를 시키면 의학에 필적하는 수준(영양학, 가정의료)으로 성장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만약에 남성들이 가사노동에 참가했다면 실제로 그렇게 됐을 거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수천년간 그런 전문화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요리는 사랑 관심을 획득하는 중요 수단으로서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억압적으로 보이는 전통들도 사실은 여성들의 욕망에 맞추고 조정한 결과물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가령 신약성경의 주 저자인 바울은 성차별주의자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여성들은 교회에서 입을 다물라고 썼다. 하지만 정작 그가 쓴 다른 글을 보면 그가 세운 어느 교회가 2개로 쪼게져서 이를 해결하려고 고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쪼게진 양쪽 정파의 지도자가 둘다 여성(...)이다. 이렇게 상호모순되는 내용이 왜 등장하는지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들끼리 갈라져서 싸우면 남자들은 도저히 답이 없으니까 아예 갈등을 원천봉쇄하는 규칙을 제정했다는 것.

이러한 니체의 의견은 액면상으로는 꼰대 성차별주의자과 그다지 다를게 없다. 다만 남성이 잘 이해못하는 여성들의 욕망과 진리가 따로 존재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 또한 니체는 남성과 여성이 구체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 무지했다. 만약에 니체가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신체내에 남성 호르몬여성 호르몬이 모두 공존하고, 그 비율이 노화하면서 역전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매우 다른 시각에서 글을 썼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몸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조상들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생리학적 병증과 마주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등권의 요구이다. 이 동등을 위한 투쟁은 가히 병적 징후에 가깝다. 나를 미쳤다고 판단한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도 이를 시인했다.
이 같은 투쟁에 뛰어든 여성들은 양성 간의 싸움에서 우선권이 자신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체 왜 여성들은 남자의 사랑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그 권리마저 찬탈하려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여성을 치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녀들은 어린아이가 필요하다. 즉, 그녀들에겐 임신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에게 남자란 항상 수단에 불과했다. 거리에 나부끼는 저 ‘여성 해방’의 목소리, 이것은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여성들의 분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임신에 필요한 남자를 얻지 못했다는 상실감의 표현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들의 ‘수단’을 강탈한 같은 여성들에 대한 증오이다.
여성 해방론자들이 적으로 상정한 남성은 그저 수단일 뿐이며, 전술에 불과하다. 그녀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이며, 말이 통하는 고급 창녀이며, 이상주의자라고 내세움으로써 동시대의 같은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고등 교육과 양복 바지, 그리고 참정권은 여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에 필요한 무기일 뿐이지 요구가 아니다. 따라서 남자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은 여성적인 세계마저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이 사람을 보라 中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 그리고 이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럽이 일반적으로 추악해지는 최악의 진보에 속한다. 왜냐하면 여성의 학문성과 자기 폭로의 이러한 서툰 시도가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부끄러워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여성에게는 현학적인 것, 천박한 것, 학교 선생 같은 것, 하찮은 오만, 하찮은 무절제와 불손이 많이 숨어 있다.ㅡ여성이 어린아이를 상대하고 있을 때를 살펴보라!ㅡ이러한 것은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남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장 잘 억제되고 제어되어 왔다. 만일 '여성에게서의 영원히 권태로운 것'이ㅡ여성에게 이것은 풍부하게 있다!ㅡ과감하게 밖으로 나오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만일 여성이 우아하고 장난스럽고 근심을 없애주고 마음의 짐을 벗어나게 하고 매사를 쉽게 생각하는 현명함과 기교를, 만일 여성이 유쾌한 욕구를 처리하는 섬세한 솜씨를 철저하게 근본적으로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면, 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성스러운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맹세코 말하는데, 지금은 이미 경악하게 하는 여성의 소리가 커져가고 있으며, 여성이 궁극적으로 남성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의학적인 확실함으로 들이닥치게 된다. 여성이 이와 같이 학문적으로 되려고 한다면, 이것은 가장 나쁜 취미가 아니겠는가? […]
선악의 저편 中

[…] 여성은 진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 여성에게 진리가 무슨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여성에게는 처음부터 진리보다 낯설고 불쾌하고 적대적인 것은 없다.ㅡ여성의 큰 기교는 거짓말이요 그 최고의 관심사는 가상이며 아름다움이다. 우리 남성들은 고백하도록 하자 : 우리는 여성의 바로 이러한 기교와 이러한 본능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 우리 남성들은 여성이 계몽에 의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가 '여성은 교회 안에서 침묵해야만 한다!'고 선언했을 때, 이는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었다. 나폴레옹이 너무 말이 많은 드 스탈 부인[68]에게 "여성은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고 시사했을 때, 이는 여성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ㅡ그리고 오늘날 "여성은 여성에 대해 침묵해야만 한다!"고 여성에게 소리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여성의 친구라고 나는 생각한다.[69]
선악의 저편 中

7.2. 기독교까이다? 아니다?[편집]


  •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온건한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거 없는 주장이다.

내 나이 12살에 나는 기발한 삼위일체를 생각해 냈다
: 즉 신 - 아버지, 신 - 아들, 신 - 악마라고 하는.
나의 결론은 신이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신성의 2번째 인격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유할 수 있기 위해 그는 자신에 반대되는 것을 생각해 내야 했다는 것.
말하자면 창조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 그럼으로써 나는 철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유고 17권

  • 그리스도교를 비판했지만, 예수의 삶 자체를 비판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란 말 자체는 이미 오해되어 온 개념이다. 근본적으로는 오직 단 한 명의 그리스도교인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도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 순간 이래로 '복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살았던 삶과는 이미 정반대의 것이었다. 하나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 즉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으리라는 신앙을 그리스도교인의 징표로 보는 것은 터무니없이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적인 실천,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살았던 것과 같은 삶만이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7.3. 나치 파시스트였다?[편집]


  • 니체가 파시즘반유대주의를 옹호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작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들을 확 쏴버리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싫어했는데 생전에도 자신과 엮을려는 부류가 있어서 특히 더 싫어했다. 이러한 오해는 니체의 여동생에게서 나왔다.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니체는 나치에 가까운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녀는 니체가 죽은 후에 니체의 메모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짜집기하여 자기 멋대로 책을 만들고는 니체의 이름으로 팔아먹었다. 이 책의 제목은 '힘에의 의지'. 니체가 저술 계획만 세우고 저술을 포기한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비평판 니체 전집에 포함되지 않는다.

니체는 사상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을 비판하긴 했어도, 히틀러처럼 인종적인 이유로 유대인을 공격하진 않았다. 애초에 따지자면 니체는 독일인들을 민족적으로 더 강하게 비판했다. 예를 들어 니체는 유대인의 노예도덕이 기독교의 근본이라고 비판했지만, 그 반면에 유대인을 오랜 고난의 세월을 통해 단련된 민족이며 질적으로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 평했다. 또한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논거가 단지 유대인들의 돈에 대한 시기와 질투, 원한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경우 유대인을 시기하는 독일인들이 노예도덕을 가진 게 된다. 또한 유대인들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저서에 들어가 있다. 애초에 그가 바그너와 갈라선 이유 중에는 바그너의 완강한 반유대주의적 성향도 포함되어 있다.

니체의 저서를 직접 보면 그가 전체주의와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를 혐오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니체는 공동체를 혐오했고 공동체의 도덕 또한 혐오했다. 니체는 창조적인 개인을 중시하는 탓이다. 니체에 따르면, "모든 공동체는 항상 사람을 천박하게 만든다."[70]

한때, 나치가 니체의 사상을 이용하여 강자의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니체의 사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니체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 투쟁하고자 하는 강자를 말했던 것이지, 반대로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괴롭히고 짓밟는 강자를 말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강약약강의 태도를 지닌 강자는 니체에게 있어서 진정한 '강자'가 아니다.# 또한 약자들의 연대가 만들어 낸 도덕을 니체가 경멸했던 것은 맞으나, 더 정확히는 그 도덕이 강조하는 겸손, 순종, 인내, 사랑 등의 사회적 가치가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 투쟁하고자 하는 강자 개인의 의지와 활력'마저 강제로 꺽어버렸기 때문이지, 약자 그 자체를 경멸했던 것은 아니었다.[71] 따라서 현대의 철학자들은 니체의 사상을 강자의 지배논리를 합리화하는데 사용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니체의 사상은 결국 도덕의 무용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정치철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국가의 위선을 지적했을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민주주의의 결점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문제 제기라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니체 본인이 원체 과격한 논조를 구사했고, 상호 모순적인 텍스트를 남겼으며, 그가 비판한 당시 유럽 사회가 결국은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틀이었다는 점이 결합하여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거센 논쟁을 만들어내기에 그의 사상은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모든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면서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7.4. 여동생과의 추문?[편집]


  • 여동생을 성적으로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니체가 썼다는 '나의 여동생과 나'라는 책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위서 논란 속에 있다. 방대한 문헌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출간하여 현재 정본으로 평가받는 비평판 니체 전집에서는 이 책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게다가 니체의 다른 저서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자신의 유년기와 가족에 대해서 니체가 써놨는데,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서는 철학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식으로 악평을 써놨다. 니체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좀 버르장머리 없는 지식인 스타일 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어머니와 여동생은 사뭇 진지하고 무거운 전형적인 북독일 루터교인 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나중에는 여동생이 반유대주의자가 된 것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다.

7.5. 이외[편집]


  • 니체의 사상은 그 급진적인 성향으로 인해 자주 오해되었다.
지성사에서, 마르크스를 제외하고는, 니체의 지적 모험은 비교될 대상이 없다. 그가 당한 불의를 바로잡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사상이 잘못 해석되고 전해지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토록 고귀한, 그리고 대단한 정신이 고통 속에서 만들어낸 사상이 그토록 끝없는 거짓말들과 강제 수용소의 시체들로 소개된 것 같은 일은 유례가 없다.
알베르 카뮈
첫째, 니체가 말하는 노예를 주인에 의해서 지배되는 존재이며 그래도 되는 존재라고 보는 것
둘째, 힘에의 의지를 지배욕이라고 생각하는 것
셋째, 영겁 회귀를 동일한 것의 진부한 회귀로 생각하는 것
넷째, 초인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배자들로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을 독자가 하고 있다면 독자와 니체 사이에 제대로 된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
이 관점하에서는 니체가 허무주의자로, 더 심하게는 파시스트로, 혹은 기껏해야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는 예언자로 보일 것이다.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 니체를 오해하는 4가지 방법

8. 명언[편집]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100년만 기다려보자. 아마도 그때까지는 인간을 탁월하게 이해하는 천재가 나타나서 니체라는 이를 무덤에서 발굴할 것이다.[72]

― 니체 서간집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 우상의 황혼 中.[73]


괴물[74]

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75]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e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 <선악의 저편> 中


더러운 것에 대한 혐오가 지나치면, 스스로를 정화시키고자 하거나 정당화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 <선악의 저편> 中


그대의 몸은 그대의 철학보다 더 많은 지혜를 품고 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진리는 추악하다. 진리에 의해서 멸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예술을 가지는 것이다.

(Die Wahrheit ist häßlich. Wir haben die Kunst, damit wir nicht an der Wahrheit zu Grunde gehen.)


삶의 여로를 걷는 우리들은 여행자다.

가장 비참한 여행자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인간이며,

가장 위대한 여행자는 습득한 모든 지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는 인간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中


여론을 따르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위에 다름없다.

〈반시대적 고찰〉 中


젊은이를 타락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에,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76]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개선이란 무언가가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77]


기억력이 나쁜 것의 장점은 같은 일을 여러 번, 마치 처음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성숙이란 어릴 때 놀이에 열중하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즐거운 학문 中


아이들이냐 아니면 책이냐. [78]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79]

― 즐거운 학문 中[80]



9. 읽을 만한 글귀[편집]


우리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 언제나 막 시들어 가며 향기를 잃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아, 언제나 물러가는 폭풍우나 누렇게 변한 감정뿐이다!

아, 언제나 날다가 지쳐버린, 이제는 손으로도 잡을 수 있는 새뿐이다!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오래 살 수 없고 날 수 없는 것, 지치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것뿐이다!

그대들,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나의 사상들이여

오직 그대들의 오후만을 위해..

나는 색깔들을, 많은 색과 그만큼 많은 다채로운 애정을,

50가지 정도의 황색, 갈색, 녹색, 적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많은 색으로도 그대들이 아침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표현을 할 수 없다.

나의 고독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그대 나의 오래되고 사랑스러운

사악한 사상들이여!

― 《선악의 저편》


사람들이 문법과 문법적인 주어를 믿었듯이, 이전에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제약하는 것이요, '생각한다'는 술어이자 제약되는 것이다ㅡ사유는 하나의 활동이며, 그것에는 반드시 원인으로 하나의 주어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 《선악의 저편》


그대들은 그대들의 내면에서 역사를, 큰 동요를, 지진을, 오랫동안 지속되는 큰 슬픔을, 섬광 같은 행복을 체험했는가? 그대들은 크고 작은 바보들과 함께 바보로 존재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선량한 인간들의 광기와 아픔을 정말 체험했는가? 그리고 최악의 인간들의 아픔과 행복을 체험했는가? 그렇다면 내게 도덕에 대해 말해도 좋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다면 내게 도덕을 말하지 말라!

― 《아침놀》


많은 것을 보지 말고, 듣지 말며, 자기에게 접근하게 놔두지 말라는 것ㅡ 이런 자기 방어 본능에 대한 관용적 표현은 취향이다. 이것은 가능한 한 부정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부정을 필요로 하게 될 만한 곳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분리하라고 명령한다. 아주 작은 방어적 지출이라 하더라도 규칙적이 되고 습관적이 되며 엄청나면서도 전적으로 불필요한 빈곤을 유발시킨다는 합리적 이유에서다.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지출은 지극히 자주 거듭되는 작은 지출들이 모인 것이다.

가시를 갖는다는 것도 일종의 낭비이고, 가시가 아닌 너그러움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을 때에는 가시는 심지어 이중의 사치인 것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와인을 마시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젊은 남자들의 공허한 허상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나쁜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좀더 정신적인 본성들을 소유한 사람들 모두에게 알코올을 무조건 금하라고 충고한다.

든든한 식사가 너무 양이 적은 식사보다 소화가 더 잘된다. 위 전체가 활동을 한다는 것은 소화가 잘되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누구든 자기 위의 크기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래 질질 끄는 식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간식도 하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라 : 커피는 우울하게 만든다.

차는 아침에 마셔야만 건강에 이롭다. 약간만이되 강하게 마셔라; 차는 조금만 약해도 건강에 아주 좋지 않으며, 하루 종일 힘들게 만든다. 차를 마실 때는 누구든 자기의 한도가 있는 법이며, 그것들 사이의 경계는 종종 아주 좁고도 미묘하다. 심한 자극성 기후에서 차는 하루의 시작으로는 권할 만하지 않다 : (마시려면) 차 마시기 한 시간 전에 기름을 뺀 진한 카카오 한 잔을 먼저 마시게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ㅡ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ㅡ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ㅡ이것에 대해 나는 이미 한번 말했었다ㅡ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라고.

― 《이 사람을 보라》


에피쿠로스는 이미 이런 종류의 선행 형식과 싸운 적이 있었다. 에피쿠로스가 무엇과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크레티우스를 읽어보라. 그는 이교도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교'에 맞서 싸웠다. 말하자면 죄 개념에 의한, 벌과 불멸 개념에 의한 영혼의 타락에 맞서 싸웠다.ㅡ 그는 지하적 제의들, 잠복하고 있던 그리스도교 전체와 맞서 싸웠다ㅡ 불멸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진정한 구원이었다.ㅡ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이겼을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전부 에피쿠로스주의자였기에.

그때 바오로가 등장한 것이다. 바오로, 로마의 '세상'에 대한 찬달라적 증오의 육화이자 찬달라적 증오의 천재인 바울, 유대인이며 영원한 유대인의 전형인 바울...... 그가 알아차렸던 것, 그것은 어떻게 유대교 변두리의 작고도 종파적인 그리스도교-운동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불길'을 일으킬 수 있을지, 어떻게 '십자가의 신'이라는 상징을 가지고서 하부에 있는 모든 것, 은밀히-반항하는 모든 것,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아나키적 책동의 유산 전체를 거대한 힘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진리에 가차 없는 폭압을 가하면서 그 찬달라적 종교들의 매혹 수단이었던 표상들을 자신의 고안물인 '구세주'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단 입 안에만 넣은 것이 아니다ㅡ그는 구세주를 미트라의 사제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때가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던 때였다. 그는 '세상'의 가치를 빼앗아버리기 위해서는 불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파악해 냈다. 그는 '지옥' 개념이라면 로마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ㅡ'피안'이 삶을 죽여버린다는 사실을 파악해 냈다.

― 《안티크리스트》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홀로 가련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를 떠나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에 맞서라! 더 바람직한 것은,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 하라 !

그가 너희를 속였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인식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을 미워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너희는 나를 숭배한다. 하지만 어느 날 너희의 숭배가 뒤집히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신상에 깔려 죽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너희가 차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뭐 중요하단 말인가 !

너희는 나의 신도다. 하지만 신도가 뭐 중요하단 말인가 !

너희는 너희 자신을 아직도 찾아내지 않고 있었다. 그때 너희는 나를 발견했다.

신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모양이다. 그러니 신앙이란 것이 하나같이 그렇고 그럴 수 밖에.

이제 너희에게 말하니, 나를 버리고 너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가 모두 나를 부인할 때에야 나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신의 탄생

스스로를 믿고 있는 민족은 자기네의 고유한 신 또한 갖는다. 신 안에서 그 민족은 그들을 정상에 위치시키는 조건들, 즉 그들의 덕을 숭배한다. 자신에 대한 기쁨을,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그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존재에 투사한다. 풍요로운 자는 베풀기를 원한다. 긍지에 찬 민족은 희생하기 위해 신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전제들 안에서 종교는 감사하는 형식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한다. 이를 위해 신을 필요로 한다.

2. 선하며 악한 신

그런 신은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어야 하며, 친구일 수도 적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는 선한 점으로나 악한 점으로 인해 반드시 경탄받는다. 신에게는 반자연적인 거세를 가해 한갓 선한 신으로 만드는 것은 여기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악한 신을 선한 신만큼이나 필요로 한다. 그들 고유의 존재는 관용과 박애 덕분만은 아니니까. 복수와 분노와 질투와 조소와 간계와 폭력을 알지 못하는 신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승리와 파괴의 황홀한 열정조차 알지 못할 그런 신, 누구도 그런 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왜 그런 신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3. 거세, 선한 신과 악마

한 민족이 몰락할 때, 미래에 대한 믿음, 자유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느낄 때, 복종이 가장 이로우며, 복종한 자의 덕목이 보존 조건이라고 그들이 의식할 때, 그들의 신 또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신은이제 음헌한 위선자가 되고 겁도 많아지고 겸손해져서 '영혼의 평화'를, 더 이상-증오하지-않기를, 관용을, 친구와 적마저도 '사랑'하기를 권할 것이다. 신은 계속해서 도덕화하고, 모든 개인적인 덕의 동굴로 기어 들어가, 모든 이를 위한 신이 되고, 사인(私人)이 되며, 세계인(cosmopolitan,코스모폴리탄)이 된다. 신은 예전에는 한 민족, 한 민족의 강력한 힘, 한 민족의 영혼에서 나오는 공격적인 모든 것과 모든 힘에의 갈망을 표현했었다. 이제 신은 한갓 선한 신일 뿐이다.

가장 남성적인 덕목과 충동들을 제거당한 데카당스의 신은 이제 필연적으로 생리적으로 퇴행한 자들, 약자들의 신이 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약자라고 부르지 않고, '선한 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힌트도 필요없이 역사의 어느 순간에 선한 신과 악한 신이라는 이분법적 허구가 비로소 가능해졌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자기네(피정복자)의 신을 '선 그 자체'로 끌어내리는 피정복자들의 본능이 정복자들의 신의 선한 속성을 삭제해버린다. 이들은 자신의 지배자들에게 그들의 신을 악마로 만들며 복수하는 것이다. 선한 신 그리고 악마, 양자 모두 데카당스의 소산이다.

4. 선한 신의 여행

신 개념이 지친 자들을 위한 지팡이라는 상징으로, 물에 빠진 모든 자를 위한 구조대라는 상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침몰해간다면, 신 개념이 가난한 자들의 신, 죄인의 신, 병자의 신의 전형이 된되면, 그리고 구세주, 구원자라는 술어가 말하자면 신에 대한 술어로 남게 된다면.. 이런 변신은 무엇을 뜻하는가? 신적인 것의 이러한 환원은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ㅡ신의 왕국은 그렇게 해서 좀더 커졌다. 예전에 신은 단지 그의 민족, 그의 선택된 민족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민족과 같이 외국으로 나가 사방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어디서든 가만히 눌러 있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마침내 온갖 곳에 본거지를 틀고 위대한 세계인(cosmopolitan)이 되기에 이르도록. 그가 '대다수'를 그리고 지구의 반쪽을 자기편으로 얻기에 이르도록 말이다.

5. 신의 붕괴 (철학자를 만난 신)

창백한 자들 중에서 가장 창백한 자인 형이상학자 제씨들, 이 개념의 백색증 환자들마저 그 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신이 그들이 짓거리에 최면이 걸려 한 마리 거미가, 형이상학자가 되어버릴 때까지 그들은 신의 주변에 오랫동안 그물을 쳤다. 이제 신은 세계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서 짜냈으며ㅡ스피노자적으로ㅡ 이제 스스로를 점점 더 얇게 점점 더 창백하게 변모시켜, 그는 '이상'이 되었고, '순수정신'이 되었으며, '절대자'가 되었고, '물자체'가 되었다. 신의 붕괴 : 신이 '물자체'가 되었다.

― 《안티크리스트》


여전히 기쁨은 부족하다.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웃어라, 싱글벙글 웃어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

기뻐하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옅어진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가라.

ㅡ《니체의 말》[81]


위대한 정신들은 회의주의자이다. 정신의 강력함에서, 정신의 힘과 힘의 넘침에서 나오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 입증된다. 확신하는 인간은 가치와 무가치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것 전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확신은 감옥이다. 확신은 충분히 넓게 보지 않고, 발 아래를 보지 않는다. 위대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위한 수단을 원하는 정신은 필연적으로 회의주의자다. 온갖 종류의 확신으로부터의 자유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강한 힘에 속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들을 묶고 고정시키는 외부의 규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강압이나 좀더 고차적인 의미에서의 노예제가 어떻게 해서 의지박약의 인간을 번성시키는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조건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확신이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확신하는 인간에게 확신은 그를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많은 것을 보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공평하지 않고, 철저히 편파적이며, 모든 가치를 고정적이고 자기에게 필요한 시각으로 보는 것 ㅡ 이것만이 확신하는 인간 종류를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진실한 인간의 반대이자 적대자이고ㅡ진리의 반대이자 적대자이다.

믿는 자는 '참'과 '거짓'이라는 문제에 대한 양심을 자기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때 정직하면, 그는 즉시 몰락해버릴 것이다. 확신하는 자의 시각의 병적 제약성은 그를 광신자로 만든다ㅡ사보나롤라, 루터, 루소, 로베스피에르,생시몽처럼ㅡ강하고 자유롭게 된 정신의 반대 유형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병든 정신들, 이런 개념의 간질병자의 거창한 태도는 많은 대중에게 효력을 발휘한다. 광신자들은 그림처럼 아릅답게 보인다. 인간은 근거를 듣느니보다 제스처 보기를 더 좋아한다.

― 《안티크리스트》


나는 비할 바 없이 끔찍한 미증유의 인간이다

;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비할 바 없이 좋은 일을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이다 : 그래서 나는 파괴자 중의 파괴자인 것이다.

선과 악의 창조자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파괴자여야만 하며 가치를 파괴해야만 한다.

이렇게 최고악은 최고선에 속한다 : 하지만 이것이 창조적 선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도덕주의자라는 내 말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부정을 내포한다.

첫째, 나는 이제껏 최고라고 여겨졌던 인간 유형, 즉 선한 인간, 호의적인 인간, 선행하는 인간을 부정한다.

둘째, 나는 도덕 그 자체로서 행사되고 지배적이 되었던 도덕 유형을 부정한다 - 즉 데카당스 도덕,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교 도덕을.

― 《이 사람을 보라》


비도덕주의자라는 말을 나는 다른 의미로서도, 즉 내 자신에 대한 표지이자 휘장으로서 선택했다

;나를 전 인류와 구분짓는 이 말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데에 나는 긍지를 느낀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교적 도덕을 자기 밑에 있는 것으로 깨닫지 않았다 ; 그러기 위해서는 높이와 멀리 바라보는 시각과 이제껏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심리적인 깊이와 심연성이 필요하다.

― 《이 사람을 보라》


나를 특정짓는 또 하나의 것은 싸움이다. 나는 기질상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이다. 적수일 수 있다는 것, 적수라는 것ㅡ이것은 아마도 강한 본성을 전제할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모든 강한 본성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저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저항을 찾는다. 복수심과 뒷감정이 필연적으로 약함에 속하는 것처럼 공격적 파토스는 필연적으로 강함에 속한다.

공격자가 어떤 적수를 필요로 하는지는 그의 힘을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좀더 강력한 적수를 찾는다는 데서ㅡ또는 좀더 강력한 문제를 찾는다는 데서 드러난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또한 문제들에 결투를 신청하지만, 그의 과제는 적수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전 역량과 유연함과 싸움 기술을 힘껏 발휘하면서 전력을 다해야하는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ㅡ 대등한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적과의 대등함ㅡ정직한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적을 경멸한다면 싸움을 할 수 없다. 명령을 하거나, 어떤 것을 자기 밑에 있다고 얕잡아보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 싸움 방식은 첫째: 나는 승리하고 있는 것들만 공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승리할 때까지 기다린다. 둘째: 나는 내 우군이 없을 만한 것, 나 홀로 싸우는 것ㅡ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태롭게 하는 것만을 공격한다.

―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고 이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렸다. 마이나데스는 '광란하는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표범 등 짐승의 가죽을 걸친 그녀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관을 쓰고, 한 손에는 뱀이나 포도송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디오니소스 숭배의 표지인 지팡이를 든 채 노래하고 춤추면서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디오니소스 신에 의해서 접신이 되었을 때 이 여자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괴력을 발휘하여 나무를 뿌리채 뽑는가 하면, 야수를 갈갈이 찢어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이 여자들을 거느리고 리디아, 프리기아, 그밖의 동방 여러나라에서 자신을 포교했다.

일반적으로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의 본고장인 트라키아나 프리기아에서 디오니소스 제의가 있을 때 열광적으로 난무하던 여신도들의 신화적 반영이 아닌가 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제의가 행해지는 동안 자신 속에서 신을 느끼면서 일상의 습관이나 금기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합일을 맛보았다.

― 《비극의 탄생》


“나는 조금 홀가분해졌다. […] 바그너에게서 등을 돌린 것은 내게는 하나의 운명이었으며 ; 이후에 무언가를 다시 기꺼워하게 된 것은 하나의 승리였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위험하게 바그너적인 짓거리와 하나가 되어 있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강력하게 그것에 저항하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누구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나보다 더 기뻐하지는 않았으리라. […] 내가 도덕주의자라면, 어떤 명칭을 부여하게 될지 알겠는가! 아마도 자기극복이라는 명칭일 것이다.”

― 『바그너의 경우』, 1888년


예술이 있으려면, 어떤 미적 행위와 미적 인식이 있으려면 특정한 생리적 선결 조건이 필수 불가결하다. 도취라는 것이. 도취는 우선 기관 전체의 흥분을 고조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전에는 예술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원을 갖는 온갖 종류의 도취는 모두 예술을 발생시키는 힘을 갖추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원적인 성적 흥분의 도취가 특히 그러하다. 온갖 큰 욕구들, 온갖 강한 격정들의 결과로 생겨나는 도취도 마찬가지다. 축제나 경기, 걸작과 승리 밑 극단적인 움직임 전부에 따르는 도취, 잔인함에 따르는 도취, 파괴 시의 도취, 기상적 영향을 받아 생기는 도취, 이를테면 봄날의 도취, 또는 마약의 영향으로 생기는 도취, 의지의 도취, 가득 차고 팽창된 의지의 도취 ㅡ 도취에서 본질적인 것은 힘이 상승하는 느낌과 충만함의 느낌이다. 이런 느낌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주입시키고, 우리로부터 받기를 사물에게 강요하며, 사물을 폭압한다. 이런 과정이 이상화라고 불린다. 여기서 편견 하나를 없애자. 이상화는 보통 믿는 바와는 달리 자질구레하거나 부차적인 것을 빼내버리거나 제해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주요 특징들을 엄청나게 내몰아버리는 일이 오히려 결정적인 것이어서, 그 때문에 다른 특징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충만함으로 인해 만사를 풍요롭게 만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원하든 사람들은 그것을 부풀려서 보고 절실한 것으로 보며 강하고 힘이 넘쳐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사물이 그의 힘을 다시 반영해낼 때까지 사물을 변모시킨다. 사물이 자기의 완전함을 반영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완전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ㅡ 바로 이것이 예술인 것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누구도 인간에게 인간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인간의 부모나 선조도 아니며, 인간 자신도 자신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러저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특정환 상황과 특정환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이 없다. 그의 존재의 숙명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특정 의도나 특정 의지나 특정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이상' 또는 '행복의 이상' 또는 '도덕성의 이상'을 실현시킬 도구도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넘겨주고자 하는 것은 허무맹란한 일이다. 목적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고안해낸 것이다. 사실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 《우상의 황혼》


과거에 대해서는 나는 다른 모든 인식자들처럼 아주 관용적으로 대한다. 말하자면 도량 있는 자제력을 가지고서 : 전 세기에 걸친 정신병원-세계를, 즉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적 신앙', '그리스도교적 교회'를 나는 암울한 신중함을 가지고 통과해간다.ㅡ나는 인류에게 그들의 정신병에 대한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조심한다.

하지만 내가 현 시대로, 우리의 시대로 들어서자마자 곧 내 감정은 뒤바뀌고 폭발해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신학자와 사제와 교황이 하는 모든 말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이라는 사실이다ㅡ 그들이 '순진'해서나, '무지'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이가 알고 있듯이 사제 또한 '신', '죄인', '구세주'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피안', '최후의 심판', '영혼의 불멸', '영혼' 자체라는 개념들이 말이다 : 이것들은 사제들을 지배자로 만들었고 지배자로 남게 했던 고문 기구들이자, 잔인함의 체계들이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안티크리스트》


’기쁜 소식(복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된 삶이, 영원한 삶이 발견되었다는 것ㅡ이런 삶은 약속되지 않는다. 이런 삶은 거기,너희 안에 이미 있다: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서. 누구든지 다 신의 자식이다ㅡ예수는 결코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ㅡ신의 자식으로 누구든 다 서로 동등하다.

'복음'이란 바로 아무런 대립자도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 하늘나라는 아이들의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신앙은 싸워서 획득한 신앙이 아니다. ㅡ 이 신앙은 거기, 시작부터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신적인 것으로 아이 같은 천진함이 되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기적에 의해서든 보상이나 약속에 의해서든 입증하지 않는다. '성서'에 의해서는 더욱 아니다 : 신앙 그 자체가 매 순간마다 신앙의 기적이고, 신앙에 대한 보상이나 증거이며 '신의 나라'인 것이다. 이런 신앙은 자신을 공식화하지도 않는다.

첫 사도들은 온통 상징과 불가해성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 존재에 관하여 어떤 것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그네들의 조잡성으로 예수를 번역해버렸다. ㅡ 그들 머리속에서 예수라는 유형은 좀더 잘 알려져있는 형식으로 변형된 후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선지자, 구세주, 미래의 판관, 도덕의 설교자, 기적을 행하는 자, 세례자 요한ㅡ 예수라는 유형을 오해할 계기는 이처럼 많았다.

그것은 살아 있고, 공식들에는 저항한다...... 인도인 사이에서라면 샹캬 개념을, 중국인 사이에서라면 노자의 개념을 이용했을 것이다ㅡ그러면서 아무런 차이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표현을 자유롭게 해보자면 예수를 '자유정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ㅡ 그에게는 고정된 것은 죄다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 말은 죽이는 것이고, 고정된 것은 모두 죽이는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개념인 '삶'의 경험은 그에게서는 온갖 종류의 말, 공식,법칙, 신앙,교의와 대립한다. 그는 단지 가장 내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쁜 소식을 가져온 자'는 그가 살아왔고, 그가 가르쳤던 대로 죽었다ㅡ '인간을 구원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죽었다. 그가 인류에게 남겨놓은 것은 바로 실천이었다: 재판관과 호위병과 고발자와 온갖 종류의 비방과 조소앞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ㅡ 십자가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였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태를 도발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그들안에서 간구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도적에게 그가 한 말은 복음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신적인 사람이었구나. '신의 자식'이었구나"라고 그 도적은 말했다. "네가 그것을 느끼면ㅡ구세주가 답하기를ㅡ 그러면 너는 낙원에 있는 것이다. 너 역시 신의 자식인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 노하지 말라. 책임 지우지 말라. 또한 악한자에게도 저항하지 말고ㅡ 그를 사랑하라......

― 《안티크리스트》


어디서든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더구나 자기의 전 역량을 요청하는 위대한 과제를 풀어야 하는 자에게는 선택 영역은 더 제한된다. 풍토는 신진대사에, 그 방해와 촉진이라는 면에서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장소와 풍토 선택에서 실패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과제에서 멀어지게 될 뿐 아니라, 아예 과제가 억류당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 그 과제가 그에게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진대사의 속도는 정신의 발이 움직이느냐 아니면 무기력 하느냐와 정확히 비례한다: '정신' 자체가 진정 신진대사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명민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했던 곳, 위트와 예민함과 악의가 행복을 이루었던 곳, 천재가 거의 필연적으로 자기의 안식처로 삼았던 곳을 모두 모아보자 : 그곳들의 대기는 모두 아주 탁월하게 건조하다. 파리, 프로방스, 플로렌스, 예루살렘, 아테네ㅡ 이 장소들은 무언가를 입증하고 있다: 천재는 건조한 대기와 맑은 하늘을 전제하고ㅡ 신속한 신진대사를 전제하며 거대하고도 어마어마한 양의 힘을 항상 다시 공급할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것을.나는 탁월하면서도 자유로운 소질을 갖춘 정신이 풍토를 선택하는 섬세한 본능을 갖지 못해서, 오그라들고 움츠러버리는 전문가나 유머 감각 없는 뚱한 자가 되어버렸던 경우를 하나 목도했었다.

― 《이 사람을 보라》


내 작품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책들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게 된다.

배움의 진정한 황홀경을 체험한다: 나는 어떤 새도 이르러보지 못했던 높은 데서 왔고, 어떤 발도 길을 잃어보지 못한 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내 책 중 어느 하나를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ㅡ 내가 밤의 휴식마저 설치게 한다고 말했다...... 내 책보다 더 긍지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더 세련된 종류의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기법이 바로 독일어로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할 사항으로 남겨져 있었다 : 나라도 예전에는 그 가능성을 혹독하게 배척했었을 것이다. 나 이전에 사람들은 독일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으며ㅡ 언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ㅡ 숭고하고도 초인간적인 열정의 거대한 상승과 하락을 표현하는 위대한 리듬 기법, 복합문의 위대한 문체가 나에 의해 비로소 처음 발견되었다 ; <차라투스트라> 3부 마지막 장인 <일곱 개의 봉인>이라는 표제의 송가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시라고 불리어온 것의 위로 천 마일이나 높이 날아올랐다.

― 《이 사람을 보라》


아주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오만 가지 배려를 주고받는 우리 현대인은 우리가 제시하는 이런 섬세한 인간성, 그리고 관용과 친절과 상호 신뢰에 있어 이르게 된 의견 합일이 하나의 긍정적인 진보라고 믿어버리고, 이 점으로 인해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신경은 르네상스적 실재성을 견대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대인의 이런 무능은 진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 즉 필연적으로 사려로 가득 찬 도덕을 발생시키는 더 약하고 더 유약함과 더 상처받기 쉬운 더 말기적인 소질을 증명해줄 뿐이다.

강렬한 시대와 고상한 문화는 동정과 '이웃 사랑'과 자아와 자의식의 결여를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ㅡ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적극적인 힘들에 의거해 측정될 수 있다ㅡ이럴 때 르네상스라는 그토록 풍요롭고 그토록 숙명적인 시대는 위대했던 최후의 시대로 드러나고, 우리 현대는 자기에 대한 소심한 염려와 이웃 사랑, 노동과 겸허와 공정성과 과학성이라는 덕을 가지고서ㅡ수집적이고 경제적이며 기계적인ㅡ약한 시대로 드러난다

'평등권' 이론에서 그 표현을 얻는 '평등'은 본질적으로 쇠퇴에 속한다 :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간격, 유형의 다수성,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 내가 거리를 두는 파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강한 시대의 특성이다. 오늘날에는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긴장과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ㅡ극단적인 것들은 희미해져 결국은 모두 유사하게 되어버린다

― 《우상의 황혼》


정신적인 문제에 냉혹할 정도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민족 이기주의의 천박한 시대적 헛소리를

자기의 발 아래의 것으로 내려다보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가 그에게 이득을 줄지 손해를 줄지 물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물어볼 용기가 없는 문제들을 선호하는 강건함

금지된 것에 대한 용기

미궁으로 향하는 예정된 운명

일곱 가지 고독에 의한 한 가지 경험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로운 귀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위한 새로운 눈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진리들에 대한 새로운 양심

그리고 위대한 양식의 경제성을 추구하려는 의지

그 힘과 열광을 흩어지지 않게 한데 모으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 존경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자유을 가져야 한다.

이런 자들만이 나의 독자이고, 나의 정당한 독자이며, 예정된 독자이다.

― 《안티크리스트》


오늘날 도덕적인 문제를 연구하려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모든 종류의 열정들이 하나하나 고찰되고 시대와 민족, 크고 작은 일들이 낱낱이 추적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이성과 가치 평가 전체, 사물들에 대한 조명에 빛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존재에 색채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 아직 그 역사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사랑, 소유욕, 질투, 양심, 경건, 잔혹의 역사가 도대체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 심지어 법의 비교사나 아니면 단지 형벌의 비교사조차도 지금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루를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 노동과 축제와 휴일을 규범적으로 확정해놓은 결과가 연구된 적이 있는가 ? 음식의 도덕적 영향에 대해 알고 있는가 ? 섭생의 철학이 존재하는가 ? (채식주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란이 이미 그러한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공동체 생활의 체험, 예를 들어 수도원의 체험이 수집되어 있는가 ? 결혼과 우정의 변증법은 서술되어 있는가 ? 학자, 사업가, 예술가, 수공업자의 윤리에 대해 연구한 사상가는 있는가 ?

지금까지 인간의 실존의 조건으로 고찰되어온 모든 것, 그리고 이러한 고찰에서 나타나는 모든 이성, 정열, 미신 등이 궁극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탐구되었는가 ? 상이한 도덕적 풍토에 따라 인간의 충동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고, 또 아직도 나타날 수 있는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장 근면한 연구자에게조차 과도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관점과 자료를 모두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총망라하는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풍토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도 마찬가지다(왜 여기에는 이러한 도덕적인 근본 판단과 주요 가치판단의 태양이 빛나고 저기에는 다른 태양이 빛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유가 지닌 오류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판단의 본질을 확증하는 것은 다시금 또 다른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연구가 행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우선 학문이 인간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근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종류의 영웅주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연구와 희생이 그 그늘에 가리게 될 수세기에 걸친 실험이 행해질 차례가 온다. 아직까지 학문은 자신의 거석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것을 위한 시대도 올 것이다.

― 《즐거운 학문》


풍습은 이익이 되거나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예전 사람들의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풍습에 대한 감정은 그러한 경험 자체가 아니라 풍습의 오래됨, 신성함, 자명함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되고 풍습을 수정하는 것에 반발한다. 즉 윤리는 새롭고 좀더 나은 풍습의 발생을 저해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 《아침놀》, '풍습과 풍습에 대한 감정'


기원전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이후 대체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공동체들은 '풍습의 윤리'에서 비롯된 저 가공할 중압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이단적인 사상과 가치 평가, 그리고 충동이 거듭 출현할 때마다, 이는 무시무시한 현상들을 수반하면서 일어났다. 거의 모든 곳에서 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은 광기다.

그대들은 왜 그것이 광기여야만 했는지 이해하는가? 날씨와 바다의 악마적인 변덕처럼 소리와 몸짓이 전율을 일으키는 불가해한 것, 그 때문에 그러한 날씨와 바다와 유사하게 경외할 만하고 관찰할 가치가 있는 그런 어떤 것을 그대들은 이해하는가? 간질 환자한테서 나타나는 마비 증상과 거품처럼, 전혀 자유의지를 갖지 않은 상태의 징후를 현저하게 보이게 하면서 광인을 이처럼 신성의 가면이자 확성기로 나타나게 하는 어떤 것을? 새로운 사상의 소유자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외경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게 하면서 그를 새로운 사상의 예언자이자 순교자가 되도록 몰아대는 어떤 것을?

오늘 날에도 여전히 천재에게는 한 알의 소금 대신 광기를 일으키는 약초가 주어진다고 거듭 이야기되지만, 이전의 모든 인간들은 광기가 존재하는 곳에는 약간의 천재성과 지혜, 즉 사람들이 서로 속삭이는 것처럼 '신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였다. 아니, 사람들은 속삭이는 것을 넘어 강력한 이러한 사상을 표명했다. "광기를 통해 그리스는 최대의 자산을 갖게 되었다"라고 플라톤은 고대의 인류 전체와 함께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어떤 윤리의 질곡을 부수면서 새로운 법을 부여하려는, 거역하기 어려운 유혹에 사로잡혔던 저 탁월한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실제로 미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을 미치게 하거나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종교적 영역이나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실로 모든 영역의 혁신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시의 운율을 혁신했던 사람들마저 광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미치지도 않았고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할 용기도 없을 경우 어떻게 자신을 미치게 할 것인가?" 고대 문명의 중요한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무서운 사상을 따랐다. 이와 관련해 감정을 깨끗하게 하고 생각과 기도를 성스럽게 하는 것 외에 여러 비결들과 식이 요법에 대한 은밀한 가르침이 전해졌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마술사가 되기 위해, 중세 기독교인들이 성자가 되기 위해, 그린란드인들이 안게코크가 되기 위해, 브라질인들이 파헤가 되기 위해 취했던 처방은 본질적으로 같다.

즉 무의미한 단식, 성욕의 지속적인 억제, 사막으로 가거나 산에 오르거나 기둥에 오르는 것, '멀리 호수가 보이는 오래된 버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황홀경이나 정신의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는 처방들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인간들이 아마 겪었을 가장 쓰라리면서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누가 감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저 고독하고 어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한숨을 누가 감히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아아, 그대 하늘에 있는 자들이여, 광기를 주소서! 마침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광기를 주소서! 황홀경과 마비, 섬광과 암흑을 주소서! 일찍이 죽어야 할 어떤 사람도 경험한 적 없는 혹한과 뜨거운 열로 나를 겁에 질리게 하소서! 포효하며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형태로 나를 겁에 질리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울부짖고 신음하게 하시고 동물처럼 기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만 하소서! 의심이 나를 파먹어갑니다. 나는 법을 파괴했습니다. 시체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처럼 법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내가 법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타락한 자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신이 당신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내가 당신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부디 나에게 증명해주소서, 광기만이 나에게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지나칠 만큼 자주, 그것도 매우 훌륭하게 그 목표에 도달했다.

― 《아침놀》, '도덕의 역사에서 광기의 중요성'


수녀의 순결, 그녀는 그 얼마나 강한 비난의 눈길로 다르게 사는 여인들의 얼굴을 쳐다보는가! 그녀의 눈에 얼마나 많은 복수와 쾌감이 존재하는지! 주제곡은 짧고 변주곡은 수없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지루해지지는 않는다. 우월의 도덕은 근본적으로 세련된 잔인성에 대한 쾌감이다.

― 《아침놀》, '고상한 잔혹함'


첫째,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피하면서 가능한한 오랫동안 불만족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충동을 약화하고 시들게 할 수 있다.

둘째, 충동을 만족시킬 때 자신에게 엄격한 규칙을 부과할 수 있다. 이렇게 충동 자체에 규칙을 부과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시간을 정하고 제한함으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충동에 의해 교란되지 않는 시간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를 통해 첫 번째 방법으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의도적으로 충동을 거칠고 자유분방하게 만족시키면서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역겨움을 통해 충동을 이겨내는 힘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경우 죽을 때까지 말을 몰아대다가 결국 자신의 목마저 부러뜨리고 마는 기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방법에서는 그 기수처럼 되는 것이 보통이다.

넷째, 지적인 책략이 있다.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을 만족 전체와 확고하게 결부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약간 연습한 후에는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생각 그 자체가 늘 즉시 고통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다섯째, 무언가 특히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을 자신에게 부과하거나 의도적으로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생각과 육체적인 힘의 움직임을 다른 길로 유도함으로써 많은 힘의 방향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여섯째, 육체와 정신의 조직 전체를 약화시킴으로써 개별적인 격렬한 충동을 약화한다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예를들어 고행자처럼 자신의 감각을 철저히 굶기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육체와, 종종 자신의 지성도 함께 굶김으로써 육체와 정신을 쓸모없게 만드는 사람의 방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떤 격렬한 충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의 권능 밖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이 방법으로 효과를 거두는가 못 거두는가 하는 것 역시 우리의 권능 밖에 존재한다. 오히려 이 과정 전체에서 우리의 지성이 우리를 괴롭히는 격렬한 충동의 경쟁자인 다른 충동의 맹목적 도구일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이 안식에 대한 충동이든지, 치욕이나 다른 나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이든지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충동의 격렬함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사실은 다른 충동에 대해 어떤 충동이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충동의 격렬함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충동과 똑같이 격렬하거나 훨씬 더 격렬한 다른 충동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의 지성이 어느 쪽이든 편을 들어야만 하는 투쟁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 《아침놀》, '충동을 극복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


가련한 인류.- 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육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자들.- 단지 위, 내장, 심장의 고동, 신경, 담즙, 정액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ㅡ즉 저 모든 불쾌감, 무기력, 과도한 긴장,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계(육체)의 우연성 전체! ㅡ 파스칼과 같은 기독교인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 신인가 악마인가, 선인가 악인가, 구원인가 저주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이 모든 것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오, 얼마나 불행한 해석가인가!

― 《아침놀》, ‘가련한 인류, 육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자들'


광인이 있었다.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나는 신을 찾고 있다! 나는 신을 찾고 있다!'라고 외쳤다는 광인. 그 광인이 시장에 등장했을 때 신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기에 그 광인은 웃음을 자아냈다. 광인은 비웃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노려보며 말했다.

" 신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대답하지. 우리가 신을 죽였다. 그대들과 내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신을 죽일수 있었지? 어떻게 이 피를 닦아낼수 있을까? 무엇으로 이 피를 닦아낼 수 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때어냈을 때.. 그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거지?'

" 어디로 가는거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거지? 모든 태양들로 부터 멀어지는건가? 우리는 계속 추락하고 있는걸까? 뒤로,옆으로,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위와 아래라는것이 이제 있기는 한걸까? 무(無)속을 끝없이 방황하기만 하는걸까? 빈공간의 숨을 느끼지 못해? 추위를 느끼지 못해? 밤이, 계속된 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 이제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만 하는 것 아니야?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아? 신도 썩어! 신은 죽었어! 되돌아 갈 수도 없어! 우리가 신을 죽였어! "

"최악의 살인자인 우리를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가장 신성한, 가장 힘있는 존재가 우리들의 칼에 죽었어. 누가 이 피를 닦아내지? 무슨 물로 이 피를 씻어내지? "

광인은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광인을 쳐다보았다. 광인은 등불을 바닥에 던졌다. 산산조각이 나고 불은 꺼졌다.

' 너무도 이른 시간에 왔구나.' 광인은 속으로 말했다. ' 아직 내 시간은 오지 않았어. 이 사실이 아직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어. 천둥과 번개는 시간이 필요해. 별 빛이 사람들에게 닿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이 사실이 그들에게는 아직 가장 먼 별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 자신이 저지른 일인데도 말이야! '

― 《즐거운 학문》


최대의 중점 ー 만일, 어느 낮밤에, 악령이 그대의 가장 외딴 고독 속으로 숨어들어와 이렇게 말한다면: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았던 이 삶을 다시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며, 모든 고뇌와 욕망, 모든 상념과 탄식이, 네 삶의 이루 말할 수 없이 작고 큰 모든 것들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네게 돌아오고, 여기 거미와 나무 사이의 달빛과 이 순간과 나마저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현존의 영원한 모래시계가 매번 거듭해서 티끌 중의 티끌인 너와 함께 뒤집히리라!" 그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를 갈며 그런 말을 한 악령을 저주하지 않겠는가? 혹은 언젠가 한번 이렇게 답했을 압도적인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너는 신이다. 나는 이보다 신성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 생각이 그대를 사로잡는다면 지금의 그대는 바뀔 것이며, 어쩌면 부서질 것이다. "너는 이것을 다시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각개의 행동을 끔찍한 무게로 짓누르리라! 아니면 이 최후의, 영원한 증명과 봉인만을 원하기 위해선, 어떻게 네 자신과 삶에 좋아져야 하겠는가?

― 《즐거운 학문》


사람이란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철학자가 '최종적이며 고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모든 동굴 뒤에 한층 더 깊은 동굴이 있지 않을까? 표면적인 세계를 넘어선 곳에 좀더 광대하고 낯설고 풍요로운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근거의 배후에, 모든 '근거를 마련하려는 작업' 아래 하나의 심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의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철학은 전경의 철학이다.

철학자가 여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주위를 살펴본다는 것에는, 그리고 그가 여기에서 더 이상 깊이 파고들어 가지 않고 삽을 내던져버린 것에는 무언가 자의적인 것이 있다. 거기에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 모든 철학은 또 하나의 철학을 숨기고 있다. 모든 생각도 하나의 은신처이고, 모든 말도 하나의 가면이다.

― 《선악의 저편》


모든 심원한 사상가는 오해되는 것보다 이해되는 것을 더 두려워 한다. 왜 그대는 그것을 나처럼 그다지도 힘들게 생각하려 하는가?

― 《선악의 저편》


칸트는 추론한다. 1. 어떤 조건들 아래에서만 타당한 주장들이 있다. 2. 이 조건은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순수 이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렇다. 그러한 주장들의 진리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그 근거를 가져온단 말인가? 그 믿음은 후험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경험 이전의 선험적 데이터 역시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필연성과 보편성은 결코 경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들이 경험없이 있다는 것은 무엇에 의해 명백하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인식이 아니다! 규제적 신조(믿음)인 것이다. 선천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이 있다면, 순수이성에 의한 사물 인식인 형이상학도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 《유고 1888년 초~1889년 1월 초》


비판은 한 번도 이상 자체로 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어디서 이상에 대한 대립이 생기는 것인지, 왜 이상은 아직도 도달되지 않는지 혹은 왜 이상은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입증되지 않는지라는 문제로만 향할 뿐이다.

― 《유고 1888년 초~1889년 1월 초》


존재자를 가정하는 것은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하다. 논리학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공식만을 취급한다. 따라서 존재자라는 가정은 실재에 대한 증명력을 여전히 갖지 않으리라. '존재자'란 우리의 광학에 속한다. 주체, 실체, 이성 등의 날조된 세계는 필요하다. 조정하고 단순화하고 위조하고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힘이 우리안에 있다

― 《유고》


역사와 민속학적 연구가 알고 있는 모든 가치 목록, 모든 '너는 해야만 한다'는 말에는 어떤 경우에도 심리학적 탐구나 해석보다도, 먼저 생리학적 탐구나 해석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의학이 비판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러한 혹은 저러한 가치 목록과 '도덕'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 《도덕의 계보》


상이한 도덕적 풍토에 따라 인간의 충동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고, 또 아직도 나타날 수 있는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장 근면한 연구자에게조차 과도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관점과 자료를 모두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총망라하는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풍토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도 마찬가지다(왜 여기에는 이러한 도덕적인 근본 판단과 주요 가치판단의 태양이 빛나고 저기에는 다른 태양이 빛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유가 지닌 오류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판단의 본질을 확증하는 것은 다시금 또 다른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연구가 행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우선 학문이 인간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근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종류의 영웅주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연구와 희생이 그 그늘에 가리게 될 수세기에 걸친 실험이 행해질 차례가 온다. 아직까지 학문은 자신의 거석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것을 위한 시대도 올 것이다.

― 《즐거운 학문》


"생각된다 ; 따라서 생각하는 어떤 것이 있다" : 데카르트의 논변은 이렇게 귀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실체 개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미리 '선험적 참'이라고 설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된다면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에 행위자를 덧붙이는 우리의 문법적 습관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요약하면 여기서는 이미 논리적-형이상학적 요청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요청은 확인되고 있을 뿐만이 아니다. 데카르트가 취한 방식으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어떤 것에 이르지 않고, 아주 강한 어떤 믿음의 사실에만 이를 뿐이다. 저 문장을 "생각된다. 그러므로 생각된 것이 있다"는 면제로 환원시켜 보면, 단순한 동어 반복만을 우리는 얻을 뿐이다.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바로 그것, 즉 '생각된 것의 실재성'은 건드려지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형식으로는 생각된 것의 '가상성'은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데카르트가 원했던 것은 생각된 것이 단지 가상적 실재성뿐 아니라, 실재성 그 자체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 《유고 1887년 가을~1888년 3월》


보라, 우리의 주위가 얼마나 풍만한가를! 이와 같이 넘쳐흐르는 자연 속에 먼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Übermensch)'을 이야기하라고 가르친다. 신이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다. 나는 이 억측이 그대들이 창조하려는 의지를 넘어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하나의 신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 - 그렇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간구하노라. 모든 신에 대해 침묵을 지켜라. 그대들은 능히 초인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나의 이름에는 엄청난 사실이 추억으로 연상이 될 것이다. 즉 세상에서 전대미문의 대위기와 가장 심원한 양심의 갈등, 그리고 이제까지 신뢰되고 요구되었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역하며 만들어졌던 결정에 대한 추억 말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다이너마이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속에는 어떤 종교의 창시자와 같은 사고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천민의 관심사이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는 무리들과의 접촉 뒤에는 손을 닦고 싶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이며 이것이 또한 나를 탁월한 파괴자로 만든다.

― 《이 사람을 보라》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들이 '도덕에 논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불렀고, 알고자 안간힘을 썼던 것은, '적절한 조명에 비추어 봤을 때', 그저 당시 지배적인 도덕에 대한 '맹신'의 배운 형태이며, 그것의 새로운 '표현 방식'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확고한 도덕이라는 하나의 구체 내부의 '사실문제(matter-of-fact)'에 불과하며, 그것의 궁극적인 동기에서, 이러한 도덕에 대한 '그것의 정당함에 대한 의문'의 어떤 종류의 부정이다──또한, 이러한 맹신에 대한 검증, 분석, 의심, 그리고 해부하려는 행동들과 정반대의 것이다…

― 《선악을 넘어서》


이제 나를 떠나보내고 자신을 찾으라. 그리고 그대들이 나를 모두 부정했을 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가리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82]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갔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라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다 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 테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간을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자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오."

"그들은 은둔자를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인간을 죽임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을 '정의'로 정의한다. 니체는 정의라는 진리를 죽임으로써 정의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진리의 말살은 곧 진리.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신을 죽인다. 하지만 니체는 외친다.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우리는 신을 죽인 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 즉 삶의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신은 이미 죽었다. 신이 된 우리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우리는 풀 수 없다. 우리는 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들 외친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신이 만들었던 영원불멸의 시스템은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모든 감정 느낌을 허무하게 만든다.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0. 저서[편집]


제목
발간 연도
비극의 탄생[83]
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1872년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84]
Über Wahrheit und Lüge im aussermoralischen Sinne
1873년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
Philosophie im tragischen Zeitalter der Griechen
반시대적 고찰[85]
Unzeitgemäße Betrachtungen
1873년~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년
아침놀[86]
Morgenröte
1881년
즐거운 지식
Die fröhliche Wissenschaft[87]
1882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88]
Also sprach Zarathustra
1883년
선악의 저편[89]
Jenseits von Gut und Böse
1886년
도덕의 계보[90]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년
바그너의 경우
Der Fall Wagner
1888년
우상의 황혼[92]
Götzen-Dämmerung, oder, Wie man mit dem Hammer philosophiert
안티크리스트[93]
Der Antichrist
이 사람을 보라[94]
Ecce homo
1908년[95]
니체 대 바그너
Nietzsche contra Wagner
1889년
권력에의 의지[96]
Der Wille zur Macht
1901년

10.1. 읽는 순서[편집]


흔히 니체의 저서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잘 알려져 있으나, 니체 철학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은유를 다 읽어내기에 무리가 있으므로 그저 산문시를 읽는 것에 불과하다. 니체의 텍스트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또는 <우상의 황혼>, <도덕의 계보>다.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경우 니체가 말년에 쓰러져 정신병에 걸리기 직전 해에 스스로 남긴 철학적 자서전이다.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니체 본인의 평가와 해설이 담겨 있어 니체를 개략적으로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만, 차라투스트라와 마찬가지로 운문적이고 은유적이므로 입문용으로 읽기에는 다소 난해할 수 있다. 한편 <우상의 황혼>과 <도덕의 계보>는 니체 철학의 핵심을 담은 작품들로서, 비교적 니체가 말하고자하는 논지가 명확하게 저술되어 있기 때문에 입문하기에 좋다. 삶을 외면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에 대한 비판과 디오니소스적 긍정에 대한 내용이다. 특히 <도덕의 계보>는 도덕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특정 계층을 위해 조작되어왔는지 밝힌다.

또한 이 저서들과 같은 시기에 쓰인 유고를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유고에는 니체가 출간한 저서들의 발생과정 및 숨겨진 의도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1885~1888년 사이에 쓰인 유고(책세상판 전집 기준 19~21번)는 '힘에의 의지'를 기획하기 위한 글 모음이기 때문에 니체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이 유고를 읽어야 한다.


11.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편집]


니체 전집은 휘문출판사판(1969년), 청하출판사판(1982년), 책세상 니체전집 (2000년) 총 세가지가 있다. 원고의 방대함과 치밀함은 책세상판이 높지만 번역 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청하판은 80년대에 나왔고 중역이 많지만 그럼에도 니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책세상판과 달리 중요한 서문/평이 실려있으며 번역의 질이 우수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의 말년작인 선악의 피안(청하 '선악을 넘어서')가 그렇다. 책세상판도 일부 단권으로 된 책은 서문이 달려있으며(ex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의 뒤에 해설이 달려있다.

책세상판 전집이 나온 이후 대우고전총서에서 니체 작품들을 모아 니체 선집을 구성했다.


12. 관련 강의 영상[편집]


[navertv(19450214)]


13. 관련 문서[편집]



13.1. 니체 철학 용어[편집]




13.2. 관련 인물[편집]


  • 바그너 : 니체가 따랐던 작곡가. 지휘자.
  • 쇼펜하우어 : 니체 철학의 초기에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루 살로메 : 니체가 짝사랑했던 여인.
  • 질 들뢰즈 : 니체를 연구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을 탄생시켰다.
  • 미셸 푸코 : 푸코는 니체의 계보학적 관점을 이용해 당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근대성을 상대화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하였다.
  • 미하일 바쿠닌 : 니체가 영향 받은 사상중에서 19세기 아나키스트인 바쿠닌의 사상이 많이 보여진다. 첫 번째로 바쿠닌의 천상에 왕이 존재한다면 그는 지상의 왕의 핑계이니 그를 폐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니체의 절대적 신을 부정하는 그의 사상에 영향을 준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바쿠닌은 파괴는 창조의 욕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이는 니체의 나는 창조하기 위해 파괴하는 자를 사랑한다는 사상의 영향을 주었다. 또한 바쿠닌과 니체 모두 국가와 권위가 따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97]
  • 아돌프 히틀러 : 니체의 사상을 강자의 지배논리로 변형시켰다. 하지만 후대의 철학자들은 니체의 사상은 '강자를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를 옹호했지, '강자'를 옹호하진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니체의 사상이 강자의 지배논리로 해석되어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13.3. 기타[편집]


  • 실존주의
  • 포스트모더니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데미안[98]
  • 인간 말종
  • 인간 찬가
  • 슈퍼맨[99]


14. 여담[편집]


  • 한국의 지식인들은 종종 원효를 한국의 니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굴 속 해골물을 먹고 깨닫고는 세상에 나가 자신의 지혜를 광대처럼 '춤'을 추면서 전파했던 원효를 두고, 마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차라투스트라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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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ˈfʁiːdʁɪç ˈvɪlhɛlm ˈniːtʃə), Nie(니)-tz(츠)-sche(셰)가 아니라 Nie(니)-tzsche(체)로 끊어읽는다. tzsch는 지금은 고유 명사 외에는 쓰이지 않는 독일어의 오중문자(Pentagraph)로 [t͡ʃ\] 발음이다. 현대 독일어의 tsch, 영어의 ch와 발음이 같다.[2] 후대의 편의상 쓰는 강학상 용어이고, 니체 본인이 몸철학이란 용어를 쓴 적은 없다.[3] 서양의 전통적인 최고 가치로서의 신이 부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시작은, 소크라테스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에 의해 육체적 삶을 도외시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그리스도교가 계승하며 더욱 고착화된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현실의 삶보다 내세의 삶(천국)을 더 강조하기에, 천국을 강조할수록 '현실에서의 삶'은 점점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신은 죽어야 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4] 절대적 가치(신)가 사라진 세상에선,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속에 살고 있으며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면 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만든 가치가 상대가 만든 가치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기 위한 노력과 의지가 곧 '힘에의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상대방의 가치를 짓밟고자 함은 아니다.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해 나의 가치가 세련되게 다듬어지므로, 상대방의 가치는 나의 가치 형성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상대방의 가치 또한 소중해 할 줄 안다. 이런 경쟁을 통해 내 삶을 지배하는 가치를 내 스스로 만들어 내고, 내 삶의 규칙들을 내 손으로 작성하는, 그런 사람이 위버멘쉬가 된다.[5] 초인/Übermensch(Overman), (보통)사람을 넘어서라. 니체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가치와 욕망을 추구하는 '정신적 귀족'이 되기를 원했다. 니체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노예'라고 불렀는데, 노예는 자신의 욕구를 절제한다. 또한 노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권리(힘에의 의지)를 양보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노예의 반대를 뜻하는 것이 '정신적 귀족'이다. 즉,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말한다.[6] 니체는 위버멘쉬를 설명할 때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하는데, 어린아이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긴다. 이야말로 귀족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노예는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가며(그게 약자라면 경쟁하기 위하여, 그게 강자라면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 노예는 단지 남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지만(자신을 선하다고 보기 위해서 자신을 억압하는 주인을 악으로 두는 것), 귀족은 남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줄 안다.[7]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떤 욕망의 대상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든 욕망은 성취를 이루면 권태로워진다. 즉 가치 생성의 마지막 귀결은 권태라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삶이 허무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우리의 일상도 욕망추구와 마찬가지다. 결국 일상은 반복됨으로써 권태를 느끼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니체는 이 반복된 일상(욕망추구)을 뒤집어서 생각하고자 한다. 반복은 일종의 원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원 '위'에서의 운동은 선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곳에 위치하든지 자신의 위치가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즉,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금 현재의 순간순간이, 바로 우리 삶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8] 어렵게 얘기하자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은 시간이 없는 세상과 동일하다. 이데아만 있는 세상이다. 즉, 신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없다. 이는 인간의 세상에서도 잠시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을 극한으로 미분하면 순간이 되는데, 이 '순간' 역시 시간이 없는 영원이라는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의 시공간론 참조) 그런데, 이 '순간'은 현재에 무한히 반복된다. 따라서 영원 회귀란, 무한히 반복되는 '순간'... 그것은 바로 지금 '현재'라는 것이다. (즉, 천국은 '현재'에 있다는 것.)[9] 아모르 파티(Amor fati/라틴어)를 말한다. 영원회귀에서 개인 삶의 모든 현재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음으로 몰락해 가고 있는 우리의 삶마저 우리의 중심이라고 외칠 수 있다. 즉 몰락해가는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파티가 되며, 여기서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왔고 자신이 만들어갈 운명이 설혹 그 결과가 불합리하게 여겨지더라도, 자신이 만들어왔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 불합리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10] 니체사상이 나치에게 이용된 이후로 유럽에서는 금기시되다가 다시 발굴된 것은 하이데거에 의해서이다. 영미철학계 내에서도 적을 분석한다는 차원에서 니체 연구가 들어갔는데, 영미철학계는 사실 니체 사상이 나치가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알리는 철학적 작업들을 통해서 영미권에도 니체전문가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유럽권에서는 니체를 실존철학, 포스트모더니즘사상과 연관짓는 반면에, 영미권의 분석들은 대부분 니체를 정치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다.[11] 출처[12] 앞뒤 문장을 더 적으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학자, 특히 철학자의 정직성을 측정하려면 마르크스와 니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된다. 니체와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자신의 저술이 상당 부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저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정신적으로나 지성적으로나 사실상 마르크스와 니체가 만든 세계다.Wilhelm Hennis, 2000. "The Trace of Nietzsche in the Work of Max Weber", Max Weber's Central Question. (Threshold Press). p.149. / Bryan Turner가 1999년에 쓴 Classical Sociology 85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3]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니체는 불신자가 신자가 되거나, 보수주의자가 혁명가가 되거나, 방법론적 학자가 몽상가가 되거나,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가 광신자가 되어왔다”고 말한다.[14] 이것은 '도덕의 계보학'에서 니체 본인이 직접 언급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니체는 아포리즘(일부 번역본에서는 잠언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잠언은 한마디의 짧은 경구이며 아포리즘은 어느 정도의 부피를 지닌 긴 논의라는 점에서 서로 명확히 구별된다)으로 쓰인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일단 그것을 온당하게 읽어내는 것만 해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쓰고 있다. '아침놀' 서문에서는 대놓고 본인을 읽는 법을 배우라고 하고 있다(...)[15] 니체는 젊은 시절 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책을 발견하여 읽었는데 이를 계기로 철학을 파고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16] 그의 마지막 저작인 '디오니소스 송가' 집필을 끝마쳤을 시기다[17] 이를 보고 니체가 '죄와 벌'을 읽고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 매료되어 한 무의식적 행동이라고도 한다. 작중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학대받는 말을 동정하여 감싸안는 꿈을 꾼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니체는 이 시점부터 정신이 나간 건 맞다.[18] "나는 인도에서는 붓다였고, 그리스에선 디오니소스였습니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는 나의 현현이며 셰익스피어와 바콘 경도 그와 한가지입니다. 근래의 나는 볼테르였으며 나폴레옹이었고 어쩌면 리하르트 바그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무적의 디오니소스이며 지상에 축제를 불러오는 자입니다."[19] 그런데 이러한 문체는 니체에게 있어서 매우 일상적인(?) 문체('이 사람을 보라'를 읽어보면 대충 알 수 있다)였기 때문에 단순히 니체가 미쳤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물론 말년에는 확실히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긴 했다.[20] 니체의 매독설은 1947년 니체 비평가인 빌헬름 랑에-아이히바움이 "니체가 학생 때 라이프치히의 한 창녀로부터 성병에 걸렸다는 말을 베를린의 한 신경학자로부터 들은 바 있다"고 밝힌 데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이 니체가 매독에 걸렸다는 근거로 추후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인용되면서 매독설이 확산됐다고 한다.[21] 출처 원문[22] 속설에 '식분증' 증세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뇌종양으로 인한 마비가 왔다면 움직이지 못하는데 식분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한 것은 자세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23] 원문 Macht. 이 Macht를 일본 쪽에서 권력으로 해석하고, 국내 학계에서 이걸 그대로 '권력'으로 따서 쓰는 바람에 니체와 나치즘, 반민주주의 논쟁 등의 떡밥에 활발한 불씨가 지펴졌던 바 있다. 21세기 이후에는 이걸 으로 옮기는 추세이다.[24] 후대의 편의상 쓰는 강학상 용어이고, 니체 본인이 몸철학이란 용어를 쓴 적은 없다.[25] 니체는 자신의 사유를 자주 이렇게 부른다[26] 대표적으로 칼 마르크스사적 유물론이 그렇다.[27] 다만 서양 인문학에서 그들의 등장은 뉴턴에서 아인슈타인 넘어가는 정도의 충격이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28] 니체의 주장은 현대의 분리뇌외계인 손 증후군 관찰과 일치하는 바가 있다. 게다가 이 관점은 20세기 초반 정신분석의 기반을 닦아주었기에 철학사적 의미도 상당하다.[29] 이 주장은 한국 철학자들이 엄청 마음에 들어하며 자주 인용된다.[30] 이렇게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사례는 종종 있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는 『충족이유율과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에서 동시성 이론을 전개했다. 그것을 아인슈타인이 그대로 이어받아 상대성 이론을 발명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그와는 별개로 상대성 이론을 자기 철학에서 전개했다. 이는 과학과 철학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해석이고 상상물이라는 니체의 시각에서 보면 다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다.[31]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이후로 수학이 언어라는 관점은 더욱 굳혀졌다. 그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수학의 합리성 자체도 의문시한다. 다만 니체는 그 정도는 아니다.[32] 이것은 니체가 독창적인 것은 아니고, 과 같은 일부 경험주의, 칸트와 같은 관념론, 심지어 플라톤에서도 광범위하게 동의하는 시각이다.[33] 진리를 묘사한 것을 뜻하는 서양철학용어.[34] 사실 현대에도 과학을 절대적, 배타적 지식으로 여기는 태도가 잔존해 있다. 예를 들어 도킨스는 과학과 종교를 대립하는 것으로 봤고, 이 때문에 인문학자들에게 대차게 까였다.[35] (...) 그러므로 그것을 운동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리고 운동하면서 운동시키는 것은 중간적이므로, 운동하지 않으면서 운동시키는, 영원하고, 실체이고, 활동인 어떤 것이 있다.『형이상학』, 조대호 옮김, 1072a23-26[36] 니체가 빅뱅이론을 알았다면, 아마 인과론의 미신에 오염됐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37] 이를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라고 지적했다.[38] 인과론을 부정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기존 관념의 타당성을 재고한다는 뜻에서 현대적이다.[39] 정확히는 정의에 대한 관점 그 자체라기보다는 정의에 대한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론을 말한다.[40] 니체는 라틴어가 자신의 모국어라 할만큼 지독한 로마빠였다. 그다음 좋아한 나라는 프랑스[41] 밀담자는 앞에서 말한 '약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밀담자'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도덕을 강조하는 것이지, 도덕을 강조하기에 약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42] 약자(밀담자)의 천박함과 비겁함을 이용해, '도덕(선, 겸허, 순종, 인내)'을 강조하며 그것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의 도덕은 '용서'와 '적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그리스도교)의 도덕을 말하므로, 여기서 '화폐 위조자'가 뜻하는 것은 성직자를 말하는 것이다.[43] 광란의 축제에 뛰어든 사람들은 노예나 여성 등 피지배층이 주류였다. 평소에 억압받던 사람들이 한번 푸는 날이었기 때문이다.[44]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원리에로 환원시킬 수 없고 굽힐 수도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불렀다.[45] 인간의 삶은 '우연'과 '불합리'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끔찍하고도 의문스러운 것이다.[46] 여기서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를 객관 대 주관으로 파악해선 안된다. 객관은 주관과 분리된 것임에 반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세계와 주관의 조화이기 때문이다.[47]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그의 저서 『관념의 모험』에서 '모험, 새로움, 도전'이 문명의 흥망을 가늠하는 척도라 보았다.[48] 물론 니체 본인은 그런 근본주의나 극단주의를 매우 싫어하고, 오히려 그에 대항해 항상 대중과는 한 발짝 떨어진 채로 보라는 '거리의 파토스'를 두어 광기에 휩쓸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다. 또한 니체는 어떤 도덕가치가 극단주의에 해당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사실 니체 사상에 따르면 '무엇이 극단주의인지 극단주의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 극단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 조차도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단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데 그 극단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모순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다.[49] 단 이 문제는 소수의 의견을 니체의 사상으로 보고, 다수의 의견을 공동체주의 철학자의 사상으로 봐서, 소수와 다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를 묻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의무'는 각각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개념만 선택해선 안되고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기 정치철학자들이 니체를 비판하는 지점은 니체의 논리는 결국 전체주의적 폭력에 맞서 '개인의 자유'만 강조하기 때문에 도리어 사회의 연대를 파편화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에 정반대 입장에서 '다수의 규칙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상기 철학자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리어 이 '다수의 폭력'을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즉, 개인'만' 고려해선 안되고 공동체'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 다수가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다수를 옹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면서도 어떻게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가', '무제한적 자유는 가능한가', '자유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면 어떤 근거와 한계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지, 이는 단순히 소수가 맞다거나 아니면 다수가 맞다는 식으로 환원되는 문제는 아니다. 애초에 소수나 다수 중 한쪽이 무조건 맞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자유주의나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그냥 이기주의나 전체주의이다. 공동체를 통해 자유가 작동할 수 있지만 그 자유의 기능이 없으면 공동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50] 법은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한 강제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약한 강제력을 갖는 도덕과 차이가 있다. 여기선 '도덕이 법으로 강제될 때'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고, 이러한 점에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51] 특히 니체는 아나키즘중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스트였던 막스 슈티르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유일자와 니체의 이상적 인간상은 정말 많은 면에서 매치가 많이 된다. 물론 이에 대해서 막스 바진시키등의 아나코 코뮌니스트들은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와 막스 슈티르너가 말한 유일자는 그 개념부터가 다르다며 둘의 연관성을 부정한 적이 있다. [52] 니체의 사상 전반적인 색채를 잘 들여다보면 불교와 유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서양철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실재와 이원론을 부정했고, 욕망과 고통을 극복한 자유로운 상태를 지향했다.[53] 독립 유공자 박달성과 동명이인이다.[54] 바그너 이전의 주류 오페라나 주세페 베르디 등 당시 오페라는 평범(?)한 인간들에 대한 것이 주류였다. 최초의 오페라가 그리스 비극의 재현을 목적으로 했다는 걸 보면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을지도..[55] 이 책에서 니체는 바그너를 비판하고 대신 오페라 '카르멘'과 그 작곡가 조르주 비제를 예찬한다.[56] 그는 염세주의는 이루지 못한 이상주의에 파생물이라며 약자들의 도덕을 가진 인간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것이라며 극딜을 박는다. 쇼펜하우어 : ????[57] 쇼펜하우어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니체가 까는 정도만큼이나 피도 눈물도 없는 염세주의는 아니다... 니체의 사유 체계가 얼마나 급진적인지 알 수 있는 부분.[58]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3.[59] 니체의 책 '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에서 나오는 말이다.[60] 이는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곡인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을 풍자하여 깠던 것에서도 기인했을 것이다.[61] 그래서 여자들에게 정치와 학문의 개별적인 부분들(예를 들면 역사학)이 맡겨진다면, 작지 않은 위험이 생긴다. 왜냐하면 학문이 뭔지 정말 안다고 하는 여자보다 무엇이 더 낯설겠는가?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No.416 [62] 여성 해방에 대하여 - 여자들이 사랑하는 데, 그리고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똑같이 느끼는 데 그렇게 익숙하다면, 그들은 도대체 고정할 수 있을까? 따라서 그들은 또한 어떤 사태에는 드물게 홀딱 빠지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자주 홀딱 빠진다. 그들이 사태에 홀딱 빠질 경우, 그들은 곧바로 이것들의 당파적 추종자가 되고 그로서 이것들의 순수하고 무구한 작용을 망쳐버린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No.416[63] 그리고 여자는 복종해야 하고 그녀의 표면을 위해 깊이를 발견해야 한다. 여자의 정서는 표면이다. 얕은 물 위에 떠 있는, 움직이기 쉬운 폭풍우 같은 막. 남자의 정서는 그러나 깊어서, 그의 흐름은 지하의 동굴에서 졸졸 흐른다. 여자는 그의 힘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하지만, 파악하지는 못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64] 그러므로 아마도 삶의 가장 강력한 마법은 이런 것일 것이다. 아름다운 가능성으로 빛나는 금실로 짠 너울이 삶 위에 놓여 있다. 미래를 예고하면서, 저항하고, 부끄러워하며, 조롱하는가 하면, 동정하고, 유혹하면서. 그렇다. 삶은 한 여자이다(니체의 저술 중 <즐거운 학문> No.339)[65] 김진석 저술,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161~162P [66] 김진석 저술,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163P[67]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94288/1/9_%EB%B0%B1%EC%8A%B9%EC%98%81.pdf [68] 1766 ~ 1817, 프랑스 혁명기의 낭만주의 작가.[69] 당시의 여성 해방 논조에 대해 한 말이다.[70] 니체 - 선악의 저편 284.[71] 약자들의 질투심과 원한을 가지고, 더 강한 상대와 싸우고자 하는 강자들의 활력을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지, 약자 그 자체를 경멸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니체에게 있어서, 질투심과 원한이 없는 약자는 경멸의 대상이 아니며, 그러한 약자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를 보인다면, 그는 사실 강자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강한 힘과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압하는 강자는 니체에게 있어선 약자에 해당한다. 이래도 이해가 안된다면, 니체 스스로도 권력이 있거나 힘이 쎈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과, 니체가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에게서도 힘에의 의지를 발견했다고 말했던 사실을 기억하자.[72] 그의 예견은 일찍 들어맞았고,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 니체의 무덤은 오래지 않아 수시로 파헤쳐졌다. 20세기 유럽 예술사와 정신사의 대부분은 그의 무덤을 딛고 일어섰다.[73] 즉,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나는 살아 있는 한 더 강해질 것이다.' 라는 의미. [74] 웹상에는 '악마'로 제시된 인용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Ungeheuer은 "괴물, 괴수, 난폭한 인간. 거대한 것, 초대형"을 뜻하지 악마를 말하지는 않는다. 독일어로 악마를 뜻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 Teufel, Kụckuck, Satan, Pfeifer 등이 '악마'로 쓰인다.[75] 니체의 관용구 중에서 "신은 죽었다"와 함께 가장 유명한 말이다. 우스개로 "니체와 싸우는 괴물은 그 스스로 니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도치시키는 유머도 있다(...)[76] "Man verdirbt einen Jüngling am sichersten, wenn man ihn verleitet, den Gleichdenkenden höher zu achten als den Andersdenkenden."[77] "Ohne Musik wäre das Leben ein Irrtum."[78] "Aut liberi aut libri"[79] 그의 대표 사상인 영원 회귀 사상의 핵심 내용이다.[8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왔다고 한국에서 잘못 알려져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thus spoke zarathustra)》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즐거운 학문 (the gay science)》에 나온 구절이다.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니체에 말"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온다고 잘못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문맥을 무시하고 한국에서 명언처럼 인용되는 많은 말들이 대부분 이 책에서 나왔다.[81] "니체의 말"은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저서로, 니체의 여러 저서에서 명언 같은 말들을 문맥의 고려 없이 떼어 모아놓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만든 책이다. 한국에는 여기서 여러 말들이 니체의 명언인 양 퍼졌지만, 문맥을 고려하지 않거나 아예 오역으로 인한 잘못된 해석이 많으니 열람 시 주의해야 하며, 이 책의 글 그대로를 니체의 명언으로 인용하면 안 된다.[82] 묘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추종자들에게 한 말이다.[83] 장르가 다양하다. 미학, 철학, 문헌학 책. 원래 문헌학 책으로 씌여졌는데, 문헌학자 사이에서 엄청나게 까였다. 해당 서적 출판을 계기로 학자 집단에서 따돌림당하게 된다. 사실 니체가 다른 문헌학자들을 왕따시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84] 니체 저술 중 가장 짧고 쉬운 논문이다. 분량도 3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며 어느 정도 철학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며, 니체의 초기 사상이 가장 명료하게 결집된 텍스트이다.[85] 4년에 걸쳐 4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1.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873) 2.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1874) 3.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874) 4.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1876)[86] 많은 잠언들로 이루어진 책이다.[87] 참고로, 이 책 제목의 영문 번역은 'The Gay Science'이다. 여기서 Gay는 '즐거운'이라는 의미지, '동성애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니체가 이 책을 집필했을 때는 전자의 의미가 훨씬 자주 쓰였었다. 따라서 '동성애의 과학'을 다루는 책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하자.[88] 니체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89] 차라투스트라의 해설서. 차라투스트라는 꽤 난해하지만, 이것은 그것과 비교하면 덜 난해하다. 이 책은 아홉 장으로 나뉘어 기술되었는데, 첫 장에서 실체론을 비판하며 시작된다.[90] 도덕적 개념의 형성사를 다룬 책. 그래서 책 제목이 <도덕적 개념의 족보>이다.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노예도덕의 계보>라고 해도 된다.[91]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인 니벨룽의 반지의 제3부 악장극.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에서 모티브를 받았다고 한다.[92] 소크라테스칸트를 집중적으로 비평하는 서적으로, 책 제목은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91]패러디이다.[93] 반쯤 제곧내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독교는 비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비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니체는 이 책에서 기독교불교를 비교하며 기독교를 비판한다. 니체가 주장하길, 기독교는 무능하며 고통을 많이 받는 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데 반해 불교는 실증적인 종교라고 하며, 그 이유로 기독교는 천국지옥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개념을 만들고 현실의 고통을 절대악과 인간의 불완전성의 결과로 여기며 현실을 부정하는데 반해, 불교는 실존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고통 또한 삶의 일부로 인정한다는 점을 든다.[94] 니체 자신의 진면목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이 책은 그의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이다. 책의 제목은 우상의 황혼과 같이 다 성경 구절의 패러디이다.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옷을 입은 채로 나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라! 이 사람이다!' 하였다." <요한복음> 19:5[95] 쓰여진 연도는 1888년, 최초로 출판된 연도는 1908년이다.[96] 1960년도 이후부터 니체의 공식적인 저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97] 바쿠닌과 니체 모두 아나키스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으니 선시대인인 바쿠닌을 니체가 따랐을 가능성도 있다.[98] 사실상 니체의 찬가라고 해도 좋을만큼 니체의 사상과 깊게 연관이 되어있다.[99] 영어권에서 Übermensch를 superman으로 번역하기도 했고, 실제로 DC 코믹스의 슈퍼맨의 모티브가 니체의 초인이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니체에게 슈퍼맨 타이즈를 입히는 등의 유머가 있지만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편. overman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원어 그대로 Übermensch라고 쓰는게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