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 에를랑겐-뉘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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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Alexander-Universität Erlangen-Nürnberg, FAU

파일:attachment/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logo.jpg

1. 개요
2. 출신 유명인물
3. 부산캠퍼스 (폐교)
3.1. 석사 과정
3.2. 교통
3.3. 학부과정
3.4. 폐교
3.5. 기타


소재지


Schloßplatz 4, 91054 Erlangen

1. 개요[편집]


독일 바이에른뉘른베르크에를랑겐에 있는 국립대학이다. 1743년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 변경백 프리드리히가 설립하였으며, 그 후계자 알렉산더[1]에 의해 후원을 받았기에 두 변경백의 이름을 땄다. 노벨상 수상자를 4명 배출한 역사가 있다. 학생 수는 2014년 겨울학기 기준 약 4만 명으로[2] 뮌헨 대학교에 이어 바이에른 주에서 두 번째, 독일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의 대학교이다. 의학부, 자연과학부, 공학부, 인문학·사회과학·신학부, 법학·경제학부의 5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학이 설립되었을 때, 뉘른베르크는 종교개혁 시기 신성로마제국 제국도시에 종교개혁으로 개신교로 전향한데다가, 신교도 제후 호엔촐레른 가문이 다스렸기에 개신교가 매우 우세했던 도시였지만 19세기 빈회의 이후 가톨릭이 주류인 바이에른 왕국령으로 편입되었기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공존했다. 그러다가 무슬림들이 꾸준히 독일에 유입하면서 현재 신학과는 하나지만[3] 여기서 가르치는 신학은 개신교신학, 이슬람신학, 가톨릭신학이 있다. 그러나 성직자를 양성하지 않고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신학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학과라고 봐도 괜찮다.


2. 출신 유명인물[편집]




3. 부산캠퍼스 (폐교)[편집]




파일:attachment/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busan.jpg



부산캠퍼스 한국어 홈페이지

독일 국립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지사과학단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부산테크노파크에 2010년 5월 11일 부산캠퍼스를 설립하였다.


3.1. 석사 과정[편집]


2011년부터 단일 학부 6개 세부 전공 50명 정원[4] 규모로 대학원 과정과 화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 학생들이 반반씩 나뉘어 입학하며 교수들은 독일인이다. 독일 본교와 동일한 독일식 커리큘럼을 따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해진 수업과 실험실습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인이 연구과제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독일식 안전규정에 의해 업무시간 이외 시간과 주말에는 교수님 없이 연구실에서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하므로 국내 대학원처럼 연구실에서의 업무가 없어 본인 공부를 중점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일 학교이지만 부산캠퍼스 입학 시 독일어 구사 능력은 보지 않으며 면접과 재학 중 수업, 시험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졸업시 독일 본교와 동일한 공학 석사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다.

2011년 상반기 입학생은 한국인 7명 독일인 6명이었다. 한국인 학생 중에는 4명이 졸업하였다. 졸업을 하려면 6개월 간의 인턴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서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한 학생은 바이엘(Bayer AG, 제약회사), 나머지 3명은 뵈링거잉겔하임(Boehringer Ingelheim, 제약회사), 쥐트쭈커(Suedzucker, 식품회사), 크로네스(Krones AG, 자동기계설비회사)에서 6개월간의 인턴을 마쳤다. 졸업 이후에는 4명 중 3명이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2014년 상반기는 한국인 9명이 입학하였다.

  • 화학생명공학부(Chemical and Bioengineering) : 단일 학부이며 6개 세부 전공 중에서 4개를 전공과목으로 선택해야 한다.
    • 생물공정공학
    • 화학반응공학
    • 열역학,
    • 기계공정공학
    • 환경공정공학
    • 유체역학

2013년 기준 학비는 기본적으로 학기당 750만원(5,000유로)으로 상당히 비싸다. 다만 1학년 1학기에는 입학금 및 등록금을 전액 면제한다. 1학년 2학기부터는 성적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1년에 50명 중 10명 정도는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나머지 학생들은 부분 장학금을 지원받아 학비의 20~30% 정도를 내고 있다. 또한, 장학금을 전혀 받지 못할 경우 졸업 시까지 2,250만원이 든다.

2014년~2016년 기준 모든 학생들은 장학금으로 입학금 및 등록금이 전액 면제된다. 기숙사비는 한 학기당 1인실 대략 120만원, 2인실 대략 90만원이 든다.


3.2. 교통[편집]


위치는 강서구 지사동으로 부산 시가지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외진 위치에 있다. 학교 근처는 공단아파트밖에 없기 때문에 캠퍼스의 낭만 그런거 없다. 대중교통으로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하단역에서 55번 버스강서12번 마을버스, 혹은 구포역에서 강서7-2번 마을버스를 타거나 사상역에서 1005번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해서 기숙사를 구하지 않으면 통학하기는 번거로운 편이다. 향후 캠퍼스를 명지국제신도시로 옮길 계획이 있다. 물론 명지도 부산 중심에서는 약간 변두리 지역이지만 적어도 현재 지사동 캠퍼스보다는 접근성이 훨씬 낫다(...)


3.3. 학부과정[편집]


2016년까지는 대학원 석사과정만 운영하고 있지만 향후 명지국제신도시에 캠퍼스를 옮기면서 인천광역시한국뉴욕주립대학교의 사례를 참고하여 2017년 학부과정을 신설할 계획이다. 학부 신설 추진


3.4. 폐교[편집]


"우리 학교가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몰랐다'."

린덴베르거 FAU 부산 분교 부총장[출처]

그러나 신입생 충원과 부산 분교 설치에 있어 졸속행정을 보였고 고액의 영어합숙캠프를 운영하여 교육부에게 지적받기도 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공학 계열 학과를 운영하지만 학생이 부족하여 재정난에 시달렸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계획한 학부 과정 설립이 좌절되자 결국 재정지원 종료 시점에 맞춰 2019년 폐교를 결정하였다.

한국에 상륙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너무 대충해서 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있다. 한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과 교육열만 보고 단순히 한국에 분교를 세웠다는 것. 자교의 한국 내 인지도를 사전조사하지 않은 점과 교육기관의 영리활동이 제한되는 한국법을 알지못해 고액의 영어합숙캠프를 운영했다는 점 때문에 이 비판이 거세졌다.

현재는 LSTME Busan(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 산하 연구소)이 들어서있다. 대한민국 정부부산광역시, 창원시, 동서대학교, 겐트 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 일반 사기업 등과 연계하여 연구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5. 기타[편집]


독일 대학교라서 한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들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 아우디가 이 학교에 차량 지원을 했고 지멘스는 장비 기증과 연수,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던가. 그러나 낮은 인지도와 신입생 충원률 때문에 폐교했기에 이젠 옛말이 되었다.

파일:external/i.huffpost.com/slide_384876_4603302_free.jpg
2014년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가 방문하여 내부를 둘러보던 중 대학 실험실에서 샤워 손잡이를 실수로 잡아당겨서 물벼락을 맞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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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 변경백으로 후계자가 없어 친척인 프로이센 왕국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게 변경백국을 양도했으나, 프로이센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베스트팔렌을 합병하는 대가로 바이에른 왕국에 넘겨주었다.[2] 이 중 1/10은 외국인 유학생이다.[3] 현재는 인문학부, 사회과학부와 통합했다.[4] 1년에 두 차례 각각 25명씩[출처] Daily U's Line, 2013/5/5, 박병수 기자, 국내 외국대학 분교 줄줄이 폐교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