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나(백야극광)

응? 내 과거에 대해 알고 싶어?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해 줄 순 있어.
나는 아무 권력도 없는 백야성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기사였고, 일이 바빠서 자주 집을 비우셨어. 엄마는 전업주부였지만 집안일에 그다지 소질이 없으셨어. 그래서 내가 아팠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셔서 그저 물을 많이 먹이는 것밖에 못 하셨어. 그러다보니 난 어렸을 때부터 요리와 빨래 같은 생활 기술을 배우고, 나 자신과 어머니를 직접 돌보는 수밖에 없었어. 기사가 되는 건 줄곧 내 꿈이었어. 그래서 몰래 전투 훈련에 매진했지. 하지만 백야성에서는 여명 아카데미의 비싼 학비를 댈 수 없는 하급 귀족 집안의 딸은 그저 빨리 시집이나 가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그 당시엔 항상 기도를 하곤 했어. 부디 빛의 신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고, 날 여명 아카데미에 입학시켜 달라고 말이야.
　

처음 아르바를 발견했을 땐 아직 갓 태어난 어린 뱀이었어. 심술궃은 아이들이 독니를 뽑거나 갖은 방법으로 아르바를 괴롭히고 있었고 말이야.
난 약자를 괴롭히는 그런 행위를 두고 볼 수 없었어. 그래서 나서서 말렸지만, 그 애들은 날 비웃었어. 내가 여명 아카데미의 학생도 아니면서, 있지도 않은 빛의 신에 대한 신앙을 내세우며 정의로운 척한다고 말이야.
난 무척 화가 났고, 혼자서 익힌 루미나틱스로 녀석들에게 벌을 줬어. 그런데 다음날 그 애들의 부모들이 집에 찾아왔고, 부모님한테 배상금을 요구했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집마다 사과하고 다녔어. 하지만 그때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강직했어. 아버지는 그 애들의 부모에게 아이들이 무고한 동물을 괴롭히고, 이유 없이 남을 비웃은 것은 귀족에 걸맞는 언행이 아니라고 하셨지.
그 순간 나는 내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게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어.
　

부모님은 나 몰래 집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팔아서, 어떻게든 내가 여명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게 돈을 마련해 주셨어.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이 사행검을 만들어 주셨어. 그리고 입학할 때 부모님은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
[네가 이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상, 반드시 끝까지 해내고, 뛰어난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
그 말씀은 지금도 내 행동의 원칙이야.
나 같은 하급 귀족은 여명 아카데미에서는 소수거든.
학생회장이 돼봤자 계급 차이 때문에 친구도 별로 사귀지 못했어. 에리카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야. 에리카는 나랑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야. 자주 이상한 말을 해서 이해하기 힘든 아이지만, 성실한 노력파고, 다른 학생들처럼 계급에 집착하지도 않아. 같이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우린 점점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됐어. 마치 여동생이 하나 생긴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에리카는... 항상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난 졸업한 뒤에 이단심문조로 배속됐고, 거기서 신전의 수녀인 헤이디 선배를 만났어.
헤이디 선배는 무척 뛰어난 사람이야. 타고난 두뇌와 엄청난 우아함이 있지. 그래서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선배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이야.
그래서 난 헤이디 선배를 목표로 노력하기 시작했어.
루미나틱스를 더 열심히 연마하고, 심문조에서 지시하는 번잡한 임무들을 하나하나 해냈어. 그렇게 심부름꾼 일을 1년 정도 했을 무렵, 드디어 첫 답사의 기회가 찾아왔어... 언젠가는 반드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아버지와 같은 훌륭한 기사가 될 거야. 그리고 헤이디 선배와 함께 싸울 자격이 있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