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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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raite-Pyrenees.jpg
# 사진 출처

스페인어 Tratado de los Pirineos
프랑스어 Traité des Pyrénées
카탈루냐어 Tractat dels Pirineus
포르투갈어 Tratado dos Pirenéus
영어 Treaty of the Pyrenees

1. 개요
2. 배경
3. 조항
4. 영향



1. 개요[편집]


30년 전쟁의 외전으로 치러진 프랑스-스페인 전쟁을 마무리 지은 양국 간의 평화 조약. 1659년 11월 7일에 양국의 국경인 비다소아 강에 떠있는 하중도인 퓌아상 섬 (Isla la Foisan)#에서 인준되었다.

평화의 상징으로 프랑스의 청년 군주 루이 14세와 스페인의 공주 테레사의 결혼식이 치러졌고, 지참금 50만 에퀴가 프랑스에 지급되었다. 한편, 이 조약으로 카탈루냐 북부의 루시옹 지방과 스페인령 플랑드르 (벨기에)의 서남부인 아르투아 일대가 프랑스에 할양되었다.

16세기 중반부터 한세기 가량 지속된 스페인의 헤게모니, 즉 시글로 데오로(Siglo de Oro, "황금시대")의 완전한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근대 유럽사에서 정치, 외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조약이다. 유럽 전체로 보면 종교 이데올로기와 세속 국가간 외교의 분리를 명시한 베스트팔렌 조약이 향후 30년 전쟁 스케일의 대규모 충돌의 재발을 (18세기 중반까지) 방지했다면, 보다 더 구체적인 서유럽 내의 국가간 권력 큰 지정학적 권력 패권구도의 틀은 피레네 조약에서 만들어졌다. 종교개혁 이후 30년 전쟁까지 한 백년, 150년 가량 되는 세월 전반 서유럽 패권은 스페인이 잡고 있었고, 여기에 맞서 전통적인 숙적 관계와 종교적 차이에도 불과하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1] 힘을 합쳐 보통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에서 간접적으로, 이따금은 아예 직접 스페인과 충돌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피레네 조약으로 프랑스, 잉글랜드 양쪽이 공적으로 힘을 합쳐야 할만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공존하기 힘들고[2] 위협적인 패권세력이 사라지고, 이 서유럽 대륙 패권은 프랑스가 이어받는 와정 동시에 통합 영국이[3] 신흥 해상세력으로 무섭게 성장하며 양자간 관계는 필연적으로 벌이졌다. 결국 한세대도 안지나서 바로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는 무섭게 팽창전쟁을 일으키고 반대로 영국은 대불동맹을 주축으로서 네덜란드던, 오스트리아던, 프로이센이던, 러시아던 프랑스와 직접 맞서 탱킹하는 대륙 열강을 돈줄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으며 장군멍군하는 구조는 크게보면 20세기 1차 세계대전까지 깨지지 않았다.[4]

2. 배경[편집]


1635년 리슐리외의 신교측 참전 결정
1640년 포르투갈의 봉기 이베리아 연합
1643년 로크루아 전투
1658년 뒨 전투, 프랑스의 압승
스페인이 양면 전선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평화협정에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ariviereBatailleDunes.jpg

자세한 것은 프랑스-스페인 전쟁 문서를 참조.


3. 조항[편집]



4. 영향[편집]


파일:treaty.of.pyrennes.jpg

이로써 16 ~ 17세기에 이른 합스부르크 스페인과 프랑스 간의 적대 관계가 끝났고 유럽은 새로운 외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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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즈 공작가, 파리 시민들 같은 골수 카톨릭 매파 친스페인 세력은 제외하고 왕실 중심으로 말한다[2] 근세 유럽사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같은 카톨릭이라 할지라도 공격적인 교권주의적 팽창정책을 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교회가 당당히 국가 기관중 하나였던 합스부르크 스페인 제국과 반대로 그 합스부르크 스페인놈들만 꺾을수 있다면 이교도 오스만 함대를 불러서 툴롱 성당을 임시 모스크로 개조해줄만큼 종교적 논리보다 정치적 실익을 중요시하는 프랑스는 아예 경우가 달랐다. 프랑스의 경우 개신교 국가들도 공존은 물론이고 종종 동맹도 맺을만큼 유연성이 있었지만, 전성기 합스부르크 스페인은 종교를 초월한 우호적, 장기적 외교 관계 성립 자체가 힘들었다. 오스트리아쪽 사촌들이라면 몰라 적어도 스페인은 피레네 조약 이전 패권국가로 군림한 시절엔 카톨릭권 밖에선 장기적인 동맹, 우호 세력 자체가 없었다.[3]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쳐지며 형성됐고, 웨일스, 아일랜드는 잉글랜드가 다스린지 오래였다.[4] 세밀하게 보자면 20세기 이전 마지막으로 영불이 같은편에서 상대했던 패권국은 3차 영란 전쟁시기 네덜란드이긴 한데 이건 일시적이고, 그것도 명예혁명터지자마자 바로 풀린 연합이었고, 20세기의 독일 이전 십수년에 걸쳐 영불 양국이 힘을 합쳐서 공적을 상대했던 마지막 사례는 근세 전성기 스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