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라발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부르봉 왕정복고|

왕정복고
]]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아르망에마뉘엘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
장조제프 데솔
엘리 드카스
(제2대)
제5대
제6대
제7대
아르망에마뉘엘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
조제프 드 빌리에
장바티스트 실베르 게 드 마르티냐크
쥘 드 폴리냐크
제8대



카지미르루이빅투르니앙 드 로슈슈아르 드 모르트마르



[[7월 왕정|

7월 왕정
]]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자크 라피트
카지미르 페리에
니콜라 장드듀 술트
에티엔 모리스 제라르
제13대
제14대
제7대
제16대
위그베르나르 마레
에두아르 모르티에
빅토르 드 브로이
아돌프 티에르
제17대
(제11대)
(제16대)
(제11대)
마티외 몰레
니콜라 장드듀 술트
아돌프 티에르
니콜라 장드듀 술트
제18대
(제17대)


프랑수아 기조
마티외 몰레


[[프랑스 제2공화국|

제2공화국
]]
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자크 샤를 뒤퐁 드 뢰르
프랑수아 아라고
루이외젠 카베냐크
오딜롱 바로
제23대
제24대


알퐁스 앙리 도풀
레옹 포셰


[[프랑스 제2제국|

제2제국
]]
제25대
제26대
에밀 올리비에
샤를 쿠쟁몽토방
[[프랑스 제3공화국|

제3공화국
]]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루이 쥘 트로쉬
쥘 아르망 뒤포르
알베르 드 브로이
에르네스트 쿠르토 드 시셰
제31대
(제28대)
제32대
(제29대)
루이 뷔페
쥘 아르망 뒤포르
쥘 시몽
알베르 드 브로이
제33대
(제28대)
제34대
제35대
가에탕 드 로슈부에
쥘 아르망 뒤포르
기욤 워딩턴
샤를 드 프레이시네
제36대
제37대
(제35대)
제38대
쥘 페리
레옹 강베타
샤를 드 프레이시네
샤를 뒤클레르
제39대
(제36대)
제40대
(제35대)
아르망 팔리에르
쥘 페리
앙리 브리송
샤를 드 프레이시네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르네 고블레
모리스 르비에
피에르 티라르
샤를 플로케
(제43대)
(제35대)
제45대
제46대
피에르 티라르
샤를 드 프레이시네
에밀 루베
알렉상드르 리보
제47대
제48대
(제47대)
(제46대)
샤를 뒤피
장 카지미르페리에
샤를 뒤피
알렉상드르 리보
제49대
제50대
(제40대)
(제47대)
레옹 부르주아
쥘 멜린
앙리 브리송
샤를 뒤피
제51대
제52대
(제42대)
제53대
피에르 발데크루소
에밀 콩브
모리스 루비에
페르디낭 사리앵
제54대
제55대
제56대
제57대
조르주 클레망소
아리스티드 브리앙
에르네스트 모니
조제프 카요
제58대
(제55대)
제59대
제60대
레몽 푸앵카레
아리스티드 브리앙
루이 바르투
가스통 두메르그
(제46대)
제61대
(제55대)
(제46대)
알렉상드르 리보
르네 비비아니
아리스티드 브리앙
알렉상드르 리보
제62대
(제54대)
제63대
제64대
폴 팽르베
조르주 클레망소
알렉상드르 밀랑
조르주 레이그
(제55대)
(제58대)
제65대
제66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레몽 푸앵카레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마르시알
에두아르 에리오
(제62대)
(제55대)
(제66대)
(제58대)
폴 팽르베
아리스티드 브리앙
에두아르 에리오
레몽 푸앵카레
(제55대)
제67대
제68대
(제67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앙드레 타르디외
카미유 쇼탕
앙드레 타르디외
제69대
제70대
(제67대)
(제66대)
테오도르 스테그
피에르 라발
앙드레 타르디외
에두아르 에리오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68대)
조제프 폴봉쿠르
에두아르 달라디에
알베르 사로
카미유 쇼탕
(제72대)
(제60대)
제74대
제75대
에두아르 달라디에
가스통 두메르그
피에르에티엔 플랑댕
페르낭 부아송
(제70대)
(제73대)
제76대
(제68대)
피에르 라발
알베르 사로
레옹 블룸
카미유 쇼탕
(제76대)
(제72대)
제77대
제78대
레옹 블룸
에두아르 달라디에
폴 레노
필리프 페탱
[[비시 프랑스|

비시 정권
]]
(제70대)
(제74대)
제79대
(제70대)
피에르 라발
피에르에티엔 플랑댕
프랑수아 다를랑
피에르 라발
[[프랑스 임시정부|

임시정부
]]
제80대
제81대
제82대
(제76대)
샤를 드골
펠릭스 구앵
조르주 비도
레옹 블룸
[[프랑스 제4공화국|

제4공화국
]]
제83대
제84대
제85대
(제84대)
폴 라마디에
로베르 슈만
앙드레 마리
로베르 슈만
제86대
제87대
(제86대)
제88대
앙리 쾨유
조르주 비도
앙리 쾨유
르네 플레뱅
(제86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앙리 쾨유
르네 플레뱅
에드가르 포르
앙투안 피네
제91대
제92대
제93대
(제89대)
르네 마예르
조제프 라니엘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에드가르 포르
제94대
제95대
제96대
제97대
기 몰레
모리스 부르제스모누리
펠릭스 가야르
피에르 플림랭
(제80대)



샤를 드골



[[프랑스 제5공화국|

제5공화국
]]
제98대
제99대
제100대
제101대
미셸 드브레
조르주 퐁피두
모리스 쿠브 드뮈르빌
자크 샤방델마스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제105대
피에르 메스메르
자크 시라크
레몽 바르
피에르 모루아
제106대
(제103대)
제107대
제108대
로랑 파비위스
자크 시라크
미셸 로카르
에디트 크레송
제109대
제110대
제111대
제112대
피에르 베레고부아
에두아르 발라뒤르
알랭 쥐페
리오넬 조스팽
제113대
제114대
제115대
제116대
장피에르 라파랭
도미니크 드빌팽
프랑수아 피용
장마르크 에로
제117대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마뉘엘 발스
베르나르 카즈뇌브
에두아르 필리프
장 카스텍스
제121대



엘리자베트 보른









피에르 라발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프랑스 제51대 총리
피에르 장 마리 라발
Pierre Jean Marie Laval


파일:462px-Pierre_Laval_a_Meurisse_1931.jpg

출생
1883년 6월 28일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샤텔동
사망
1945년 10월 15일 (향년 62세)
프랑스 일드프랑스 발드마른 주 프렌
재임기간
제51대 총리
1931년 1월 27일 ~ 1932년 2월 20일 1기
1935년 6월 7일 ~ 1936년 1월 24일 2기
가족
배우자 잔 클라우사[1]
딸 조제 라발[2]
직업
정치인
정당

(1914년 ~ 1923년)

[[무소속|
무소속
]]
(1923년 ~ 1945년)
서명
파일:Signature_de_Pierre_Laval_-_Archives_nationales_(France).png}}}
1. 개요
2. 생애
3. 참고자료
4. 매체에서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정치인. 총리를 역임하였으며 나치 독일 치하의 비시 프랑스에서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1883년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지방의 샤텔톤에서 카페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 때 자연과학에 흥미를 가졌으나 법학으로 진로를 바꿔 변호사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발은 사회주의자였지만, 1차대전의 참상과 볼셰비키의 발흥을 본 후 보수주의자로 전향해 정계에 입문했다. 그 후 보수파의 지지를 받고 1930년대엔 세 번에 걸쳐 프랑스의 총리직을 연임했으며, 타임지에서는 라발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34년 당시 라발은 외무장관인 루이 바르투가 암살되자 13대 대통령 가스통 두메르그 내각의 후임 외무장관에 임명되어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 및 이탈리아와 스트레사 전선을 체결했지만 영국이 프랑스를 불신해 단독으로 독일과 영국-독일 해군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2달만에 실패했고, 협상의 실패가 언론에 알려짐에 따라 라발은 사임해야 했다.

2차대전이 일어난 후 프랑스 침공에서 프랑스가 참패하자 라발은 페탱의 뒤를 따라 총리로 다시 취임했고 적극적인 대독협력정책과 반유대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해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라발은 루프트바페의 군용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샤를 드골프랑코에게 라발의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결국 그는 프랑스로 다시 끌려와 프레즈니 교도소에 수용된다. 1945년 10월 5일 라발의 재판이 개정되었다. 라발은 이미 필리프 페탱이 드골에게 은전을 입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내심 그렇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페탱과는 달리 라발은 그 누구도 그를 살려줄 마음이 없었다. 페탱은 무엇보다 1차 대전의 구국 영웅이었으며 친독 행위도 라발에 비해서 프랑스의 이익을 보호하는 면이 있었기에 지지자도 많고, 동정여론도 많았다. 하지만 라발은 좌와 우를 막론하고 철저한 매국노로 국민적 여론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이 개정되었을 시 변호인들이 출석하지 않았다.[3] 그 후 변호인단이 출석했으나 재판과정을 주시할 뿐 직접 변론에 나서지 않아 라발은 사실상 자신을 혼자서 변호해야 했다.

재판부는 라발이 비시 정부를 히틀러에게 팔아먹기 위해 광분한 민족반역자라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감방이 좁다고 불평하면서 재판부에게 항의와 불평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발언이 나오자, 라발은 "내가 바로 진짜 애국자"라고 도발적인 태도를 취해 결국 퇴장명령을 받아야 했다.

3일째 되는 재판 날 라발은 묵비권을 행사해 출석하지 않았고, 그래서 재판이 피고인의 출석 없이 진행되었다. 재판장과 검사는 피고의 출석이 없이도 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고 결정했고 10월 9일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10월 15일 사형 당일날 라발은 평소 소지하던 청산가리를 삼켜 자살을 기도했지만 곧 주위에 발견되어 위세척을 당한 후 깨어나 자살은 미수에 그쳤다. 그는 사형대의 앞에 서서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판사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역사상 최대의 범죄를 범한 자들이다. 나는 조국을 너무 사랑한 죄로 죽는다". 그리고 변호인들이 마지막 포옹을 하자 "나는 당신들을 보면서 최후의 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시선을 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나는 비겁하게 죽기 싫다. 나의 심장을 쏘아라. 당신들은 역사상 최대 범죄의 공범들이다."


1945년 10월 15일 낮 12시 30분 그는 사형당했다. 62세의 나이였다.


3. 참고자료[편집]


  •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청산>: 주섭일. 사회와 연대(2004)


4. 매체에서[편집]


  • 전간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를 다룬 Hearts of Iron IV에서는 게임 시작 시점의 프랑스의 지도자로 나오는데, 중점 국민연합 재건을 채택하면 피에르 라발이 계속 지도자로 있게 된다. 이후 파시즘 루트를 탈 시 잠시 파시즘 정당의 지도자가 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16:33:48에 나무위키 피에르 라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Jeanne Claussat, 1888년 11월 19일 ~ 1959년 12월 10일[2] Josée Laval, 1911년 4월 2일 ~ 1992년 1월 9일[3] 이때 변호인들은 서한을 보냈는데,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가 재판을 선거 전에 종결시키기 위해 너무 서두르기 때문에 자료를 모을 수가 없어 출석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검사는 이런 변호인들의 불만에 대해 이 사건은 자료조사나 기록검토가 필요없는 사안이며, 피고에 대한 범죄기록은 1940년 6월 이후 백일하에 드러나 있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