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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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Peter_Pace_official_portrait.jpg

출생
1945년 11월 5일 (78세)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자치구
종교
가톨릭
군사 경력
임관
미합중국 해군사관학교
복무
미합중국 해병대
1967 ~ 2007년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제3해병사단 항공비상대대장
워싱턴 해병막사사령관
해병대학장
대서양해병대사령관
남부사령관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미국군인.


2. 생애[편집]


1945년 11월 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페이스를 주로 뉴저지 티넥에서 키웠다. 1963년, 티넥 고등학교(Teaneck High School)를 졸업한 뒤에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1967년, 해병대 보병소위[1]임관했다.

기초 교육을 마친 뒤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제5해병연대 2대대 G중대 2소대장으로 배치되었으며, 구정 공세에 참여했다. 이후 페이스는 베트남에서 동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이후 대대의 작전장교 보좌관이 되어 중위로 진급했다. 1969년, 페이스는 미국으로 복귀해 워싱턴 D.C.에 배치되었고, 해병대 학회에서 근무하던 중 캠프 데이비드의 경비를 맡기도 했다. 이후 백악관에서 근무하던 중 대위로 진급했다.

1972년, 오키나와에 배치된 페이스는 제3정찰대대 근무중대대장을 맡다가, 태국에 배치되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공군 기지의 보안을 맡았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페이스는 해병대본부에서 장교 보직과 관련한 업무를 보았고, 제5해병연대 2대대의 작전장교로 근무하던 중 소령으로 진급했다. 이후 페이스는 제5해병연대 3대대 부대대장과 제1해병사단장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1982년, 페이스는 뉴욕 버팔로의 해병대 모집소장으로 근무하던 중 중령으로 진급했다. 이후 페이스는 제1해병연대 2대대장으로 배치받았고, 오키나와로 이동한 뒤에는 제3해병사단 항공비상대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한국에 배치되어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부의 지상작전부서장으로 근무했다.

1988년, 미국으로 복귀해 워싱턴 해병막사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 페이스는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해병대 학회장을 겸했다. 이후 페이스는 제2해병사단 참모장[2]과 부사단장을 맡게 되며, 준장으로 진급한 페이스는 주로 해안부대의 훈련을 감독했다. 임기가 끝난 뒤에는 해병대학장[3]과 해병학교장을 겸임했고, 소말리아에 배치된 뒤에는 소말리아 주둔 해병대 부사령관과 소말리아 합동특수임무부대의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1994년, 소장으로 진급한 페이스는 주일미군 부사령관으로 근무했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중장으로 진급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되었다. 1997년에는 대서양해병대사령관으로 이동했고, 2000년에 대장으로 진급해 남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2001년, 페이스는 합동참모차장으로 이동했고, 2005년에는 해병대 출신으로는 최초로 합동참모의장에 취임했다. 앞서 보다시피 주로 합동 보직을 거치느라 해병대 최고 선임 제복군인인 해병대사령관은 역임하지 못했다.[4] 합동참모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합참주임원사를 설치했다.[5]

보통 2년 간의 1차 임기를 마친 후, 두 번째로 2년 간의 2차 임기가 거의 보장되는 역대 합동참모의장의 관례상 그도 2007년에 형식적일 줄만 알았던 2차 임기 논의가 있었는데, 이 때 조지 워커 부시레임덕이 심해지던 와중에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그에게 부시의 업보를 책임지라는 듯한 태도로 반대 의견을 냈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부시는 마지 못해 재신임을 포기했다. 때문에 자진 전역 권고도 받았지만, 페이스는 전쟁 기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여 결국 경질에 가까운 형식으로 군복을 벗어야 했다. 그렇게 2007년에 퇴역해 40년의 군생활을 마친 직후, 베트남 전쟁 기념관을 찾아가 방명록에 여러분의 소대장으로서 인사를 남겼다고 한다. 퇴역 직후 공화당에서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WASP가 아니라 천주교 신자라서 그런듯 하며, 현재는 국방장관의 자문을 맡고 있다.

해병대가 육해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군인지라 다시 합동참모의장이 나오긴 요원해보였으나 2015년에 해병대사령관인 조지프 던퍼드가 육군 출신의 마틴 뎀프시에 이어 신임 합동참모의장으로 선임되었다. 8년 만에 다시 나온 해병대 출신의 합동참모의장이지만, 사실 2011년에도 해병대 출신인 제임스 카트라이트가 합동참모의장에 오를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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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대 기준으로 약 25-30% 정도의 사관생도가 졸업시에 해병대를 선택한다.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의 경우에는 연간 졸업자가 150명 이하인데 이중 병종으로 상륙을 선택하는 인원은 20명 아래이다.[2] 해병대 여단 이하의 경우 Executive Officer, 부대대장이 참모장 역할을 한다. 사단 이상부터는 Chief of Staff가 참모장이다.[3] 해병사관학교가 아니라 합동군사대학교 같은 보수교육기관이다.[4]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실세는 통합군사령관이라 합동 보직을 거치는 게 영향력이 크다. 참모총장 등은 의전은 높지만 각 청장들 보좌하며 행사 다니는 사람들이고 군령권이나 군정권이 없다.[5] 그의 뒤를 이은 마이크 멀린은 합참주임원사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고 그 다음인 마틴 뎀프시가 다시 부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