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마이클

최근 편집일시 :

피트 마이클의 수상 및 영예
[ 펼치기 · 접기 ]










파일:external/img.vavel.com/2d4e722e959211e280ff22000a9e2923_7_737965139.jpg
FC 바르셀로나[1]의 피트 마이클.
파일:ULFk2tK.jpg
대구 오리온스 시절.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스카우트
펜턴 피트 마이클
(Fenton Pete Mickeal)

생년월일
1978년 2월 22일 (46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일리노이 주 록아일랜드
출신학교
신시내티 대학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신체 사이즈
193.8cm 102kg
프로입단
2000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58번(뉴욕 닉스)
소속팀
탬파베이 썬더독스(2000~2001)
캔자스시티 나이츠(2001~2002)
토크 앤 텍스트 폰 팔즈(필리핀)(2002)
페리스테리 B.C.(그리스)(2003~2004)
디나모 모스크바(러시아)(2004)
마케도니코스 B.C.(그리스)(2004~2005)
CB 브레오간(스페인)(2005~2006)
대구 오리온스(2006~2007)
TAU Ceramica(스페인)(2007~2008)
FC 바르셀로나(2009~2013)
UCAM 무르시아(2014)
캉그레헤르스 데 산투르세(2014)
부칸너로스 데 라과이라(2015)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2015~2017)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NBA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유
4. 선수 시절
4.1. 프로 데뷔
4.2. 대구 오리온스 시절
4.3. FC 바르셀로나 시절
5. 여담
6.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前 농구선수. 스페인 프로농구 리가 ACB 소속 명문팀 FC 바르셀로나에서 뛰었으며 2006-07 시즌 한국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에서 뛰어서 한국 농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다. 한국에서는 주로 핏마로 많이 불린다.

순수 기량으로 봤을 때 한국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된다. NBA에는 입성하지 못했지만 유럽에서 최고 수준으로 통할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가 KBL에 나타나 역사에 남을 활약을 펼친, 앞으로도 흔치 않을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은퇴, NBA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스카우트로 활동 중이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이 선수가 가지고 있는 신체능력과 기술들을 보면, 상대팀에서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우선은 자주 보여줬던 3점 라인 근처에서부터 시작되는 골밑 돌파가 답이 없었다. 작지 않은 신장과 튼튼한 웨이트, 압도적인 스피드를 갖췄는데, 왼손잡이 선수이면서도 드리블과 골밑 마무리를 할 때 오른손을 자유롭게 이용할 줄 알았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좌, 우를 가리지 않는 묵직하면서도 매우 빠른 돌파를 막아내야 했다. 핏마가 수많은 골밑득점과 자유투를 뜯어낼 수 있었던 원천이다. 돌파를 해보려다가 아니다 싶으면 간결한 스텝 백, 잽 스텝 등을 이용하여 정확한 중, 장거리 슈팅을 던져댔다. 여기에 양 방향 포스트 스텝까지 잘 활용할 줄 알았는데, 파워풀한 드리블, 스텝에 운동능력을 더해서 손쉽게 수비수를 뚫어낼 수 있었다. 팀 공격을 거의 도맡아 하면서도 체력이 남았는지, 일정 갯수의 어시스트와 뛰어난 리바운드 능력까지 보여주었던 괴물로, 한 시즌 제대로 KBL을 지배하였다. KBL 역대 최강의 외국인 선수를 논할 때 여전히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3. NBA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유[편집]


https://stats.nba.com/draft/combine-strength-agility/?SeasonYear=2017-18#!?SeasonYear=2000-01&sort=LANE_AGILITY_TIME&dir=-1

2000-2001 NBA 드래프트 컴바인 기록이다.

스윙맨으로만 분류된 선수 기준. 레인 어빌리티 2위 (순발력 측정), 쓰리 쿼터 스프린트 전체 2위에 맥스 버티컬 점프34.5인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슈퍼스타 카멜로 앤서니의 드래프트 컴바인을 압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멜로의 체격이 더 크기에 운동능력만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운동능력이 부족해서 NBA 못 간 게 아니다.

카멜로 앤서니는 맨발 신장이 6-6이 살짝 넘지만, 맨발 신장이 6-5인 피트 마이클과 비슷한 성공한 두 선수 앤서니와 함께 비교해 보자.
이름
맨발 신장
윙스팬
레인 어질리티
쓰리 쿼터 스프린트
맥스 버티컬 점프
벤치 프레스
드래프트
피트 마이클
6.5
6-9.5
10.83
3.06
34.5
8
2000년 58위
안드레 이궈달라
6.575
6-11
11.17
3.18
34.5
4
2004년 9위
카멜로 앤서니
6.625
7.0
11.40
3.15
33.5
7
2003년 3위
제이 크라우더
6.475
6-9.25
11.45
3.37
34.5
20
2012년 34위

운동 능력만 보면, 카멜로 앤서니보다 좋고, 안드레 이궈달라제이 크라우더보다 파워를 제외하고는 확실한 압승을 하는 피트 마이클이다. 즉, 자기 사이즈를 넘어 동포지션 기준으로도 탑급의 운동능력을 갖추었다.

게다가 대학 시절 3점슛 기록을 보자.

이름
3점슛 성공률
이궈달라
27.4%
앤서니
33.7%
크라우더
35.0%
마이클
35.5%

대학때 보여준 모습만 본다면, NBA 상급에 속하는 운동능력과 다른 선수에 비하여 처지지 않는 3점슛을 지닌 마이클이 NBA에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사이즈, 수비, 플레이스타일 등 여러 부분에서 NBA 스카우터들에게 그다지 어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우선 크라우더가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보여준 운동능력은 NBA 기준으로도 탑클래스가 맞다. 하지만 맨발 190 후반에 착화로는 2m를 넘기는 크라우더나 이궈달라 등과 달리 핏마의 맨발신장은 190 초중반에 겨우 걸치는 수준에 불과하며, 이는 3번 포지션에서 매우 아쉬운 사이즈이다.

또한 수비 측면에서 보았을 때, 마이클의 대학시절 디펜시브 원 쉐어는 2위로 결코 수비력이 부족한 선수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피트 마이클의 컨퍼런스는 이궈달라나 크라우더가 뛴 컨퍼런스에 비해 약체에 속했다는 것이다. 마이클의 컨퍼런스 평균 득점 상위 20위권내 유명 선수는 쿠앤틴 리차드슨 1명에 불과했다.[2] 각자 자신의 컨퍼런스에서 NBA에서 통할만한 선수들에게 꾸준히 수비력을 검증받은 이궈달라나 크라우더와 달리, 마이클은 그렇지 못 한 편이라는 소리.

거기다 대학 내에서 1, 2 옵션만 했기에 캐치&슛이나 오프 더 볼에 능한 평도 아니다. 애초에 NBA는 리그 수준에 걸맞게 기타 해외리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옵션들이 즐비하며, 대학시절 각 팀의 에이스로 통하던 선수들이라 해도 리바운드, 수비, 오프 더 볼 무브, 3점, 스크린 등을 갈고닦아 롤플레이어로 컨버전 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철저하게 에이스 롤에 특화된 핏마의 플레이스타일은, 단순 기량의 고저와는 별개로 재능의 '모양' 측면에서 봤을 땐 2라운더로써 스카우터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소리. 에이스 롤을 부여받은 핏마가 유럽 무대에서는 어지간한 NBA 벤치 출신의 선수들과 동등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3][4] 정작 NBA에는 핏마보다 더 뛰어난 스코어러들이 넘쳐나며, 그렇다고 핏마가 롤플레이어로 컨버젼을 할 수 있는 유형의 선수도 아니기에 수요가 없었던 것. 어떤 의미로는 야구의 AAAA 리거들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즉, 운동능력이 폭발적이지만 3번으로 뛰기엔 사이즈가 다소 아쉽고, 제법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었지만 그 수비력이 NBA급 선수들을 상대로 검증된 적은 없으며, 비 NBA 리그의 에이스로서는 막강한 기량을 보여줄 수 있지만 NBA 2라운더로서는 이렇다 할 매력이 없는, 한마디로 뱀의 머리로는 최고이지만 용의 꼬리로는 어울리지 않는 선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NBA 리그에서 핏마에게 아무 관심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핏마는 젊었을 적 꾸준히 NBA의 문을 노크해왔는데, 공수에서 기량이 완성되고 나서는 실제로 오퍼를 받기도 하였고 전성기때에는 나름 NBA에 도전을 해볼 만 한 실력이었다는게 중론에 가깝다. 다만 이때는 스페인 리그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뒤였고, 30줄을 넘어 더이상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굳이 모험을 하지는 않은 듯.

4. 선수 시절[편집]



4.1. 프로 데뷔[편집]


일리노이 주 록아일랜드에서 출생하여 록아일랜드 고등학교를 거쳐 인디언 힐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주니어 시절을 보낸후 신시내티 대학교로 옮겨 3~4학년 동안 활약한다.

2000년 NBA 2라운드에서 뉴욕 닉스의 지명을 받은 후 하부리그 ABA에서 2002년 리그 MVP 및 파이널 MVP를 휩쓰는 맹활약에 불구 스몰포워드로서 리얼 사이즈 196cm의 아쉬운 사이즈와 타이밍이 안 좋았던 부상 당시로선 NBA팀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실력 때문에 결국 NBA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ABA에서 뛰다가 필리핀 리그를 거쳐 유럽 무대로 건너간다.[5] 스페인리그의 브로간 루고에서 맹활약하던 도중, 마침 KBL에 외국인 선수 자유계약제가 들어온 후 대구 오리온스가 그를 영입한다.


4.2. 대구 오리온스 시절[편집]




시즌
소속팀
경기
야투
야투 성공률
3점슛
3점슛 성공률
야투율
2006-07
대구 오리온스
52경기
586
59.31%
73
37.82%
55.80
자유투
자유투 성공률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록슛
득점
PER
435
83.98%
137
570
67
49
1,826
(1위)

33.94

대구 시절 오리온의 마지막 중흥기의 주역으로 KBL에서의 활약은 말 그대로 압도적. 폭격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한마디로 양학을 하다시피 했다. 김승현이 슬슬 유리몸의 기질을 드러내며 드러눕기 시작하고, 핏마와 손발을 맞출 것으로 기대했던 리 벤슨이 야반 도주한 후[6] 제러드 호먼, 폴 밀러 등 역대급 식물용병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팀을 말 그대로 혼자 이끌다시피 한다. 떨어지면 점퍼, 붙으면 돌파, 더블팀 붙어도 뚫고 득점 등(…) 결과적으로 시즌 경기당 평균 35.1득점[* 2007년 1월 6일 단테 존스가 이끄는 안양 KT&G 카이츠를 상대로 53득점을 올려 팀을 100-97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게 시즌 최다 득점이 아니라는 점인데, 3월 23일 KCC와의 경기에서는 54득점을 퍼붓기도 했다. 뭐야 이거 무서워 ㄷㄷㄷ] 11리바운드 2.6어시스트라는 괴물같은 성적[7]을 올리며 팀을 4강으로 끌어올린다. 60퍼센트의 2점슛 성공률과 38퍼센트 가까운 3점슛 성공률, 84퍼센트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하였다. 선수 효율성 지수는 무려 33.94.[8] 특히 정규리그 52경기 평균 35분 56초를 뛰며 35득점을 올려 거의 1분당 1점을 올렸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KBL 수준에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던 선수였고, 당연히 오리온스 팬들은 그런 핏마를 신으로 떠받들 수밖에 없었다. 별명도 핏마교주, 핏마본좌였으며, 이 시기 오리온스는 피트 오리온스, 대구 마이클스로 불렸을 정도(…).

안타깝게도 플레이오프에서는 탈락해버리고 말았는데, 플레이오프에서 정말 강한 팀들을 상대했다. 6강에서 전년도 우승팀이자 핵심 멤버들이 대부분 남았던 서울 삼성 썬더스를 꺾었고, 4강에서 피트 마이클과 같이 역대 탑급으로 꼽히는 외국인 선수 크리스 윌리엄스와 물이 오른 양동근 등 뛰어난 팀원들을 보유한 해당 시즌 우승팀 울산 모비스를 만나서 분투했지만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해버린다. 플레이오프 6경기에서 평균 39분을 뛰면서 39점 12.8리바운드 2.3어시스트 1.6스틸 0.6블록 2.3턴오버 // 2점슛 60% 3점슛 35% 자유투 87.9% PER 35.3을 기록했다.

문제는, 한국에 올 때부터 논란이 될 만한 수준의 초특급선수 핏마처럼 외국인 선수 한 두명이 팀을 PO로 끌어올리는 극단적인 외국인 선수 의존현상이 나오자 당황한 KBL에서 결국 용병 자유계약제를 폐지시키고 트라이아웃제로 환원시키기에 이르렀고[9], 핏마는 결국 한 시즌만에 KBL을 떠난다. 그리고 오리온스는 멸망했다. 핏마가 떠난 후 4년간 대구 오리온스의 성적은 10-9-10-10.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21년 현 시점에서도 한때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던 KBL 역대 최강의 외국인 선수라는 평이 주를 이뤘지만, 2020-21 시즌에 이 선수가 등장하면서 피트 마이클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기도 했다.


4.3. FC 바르셀로나 시절[편집]


KBL을 떠난 이후로는 스페인리그로 돌아가 2009년부터 FC 바르셀로나 농구팀에 입단했다. 2010년 LA 레이커스와의 친선전에서 맹활약해[10] 잠깐 국내팬들의 주목을 다시 받기도. 2010년에 유로리그 결승으로 이끌었으며 2010년 All-ACB Finals Team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폐색전[11] 발병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풀 시즌을 소화 못했다. 2012~13년 시즌 또한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유로리그, ACB에서 뛰었지만 3월 31일자로 폐색전이 재발해 시즌아웃되었다.

2013시즌 이후 계약을 종료하고 같은 ACB 소속인 UCAM 무르시아와 계약을 했으나 단 5경기만을 뛴후 캉그레헤르스 데 산투르세로 이적했다. 그 곳에서 무릎 부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베네수엘라로 건너가 부칸너로스 데 라과이라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어소이언 데포르티바 아테네로 이적했지만 단 5경기만을 뛰고 방출되었다. 이후 다른 팀들을 알아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은퇴한 것처럼 보였으나 약 1년 후인 2016년 5월에 아테네와 재계약을 했다.


5. 여담[편집]



  • 사생활에선 구설수가 많았지만 최상급 선수다운 프로의식을 갖추었고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했으며 팀 훈련 시간과 개인 훈련시간 등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사생활에서나 선수로서나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던 모양인데 여러 모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듯... 선수로서도 남들보다 훨씬 열심히 하고 잘 했으니 사생활에서 저 많은 구설수란 것도 기실 부러워하거나 신기해하는 말들이었지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6. 관련 문서[편집]



[1] FC가 말 그대로 축구팀이라는 뜻임에도, 바르셀로나 구단 산하 스포츠팀 이름에는 이 FC가 다 들어가 있다. 농구팀은 FC Barcelona Bàsquet(바스켓)팀이라고 부르며 기타 다른 종목도 이런 식으로 이름에 FC가 들어가 있다.[2] 이궈달라는 브랜든 로이, 루크 잭슨, 이케 디오구, 살림 스타더마이어 등과 같은 컨퍼런스에서 경쟁했으며, 크라우더는 제레미 램, 디온 웨이터스, 제리언 그랜트 등을 상대해야 했다.[3] 실제로 유럽무대에서 NBA 출신 선수들을 상대로 대등하게 겨루거나, 국제무대에서 현역 느바리거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선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농구에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에는 유독 비NBA 선수들은 NBA리거들에게 손도 못대고 털린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팬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마냥 그렇지도 않다는 소리.[4] 간단하게 KBL 출신으로 NBA에 입성한 그렉 스팀스마를 보면 된다. 종합적으로 봤을때 핏마는 확실히 스팀스마보다 실력이 월등하다. 그러나 NBA 기준으로 봤을 때는 핏마의 득점력이나 기타 장점들은 전혀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전혀 어필을 못한다. 반면 스팀스마는 공수 종합 경기력은 핏마보다 훨씬 못하지만 NBA에서 통하는 단 하나의 장점인 블록슛이 있기에 NBA에서 롤플레이어로 써먹을 수 있던 것이다. 이 점은 거의 3점슛 하나로 살아남았던 스티브 커도 마찬가지. 191CM에 피지컬도 극히 평범한 (NBA기준으론 최악인) 커가 핏마처럼 KBL에서 평균 30점 이상을 퍼부으며 지배할 가능성은 낮지만, NBA에서 롤플레이어로 기용하기는 슛 하나는 기계처럼 정확한 커가 더 쓸모가 있는 것이다.[5] 마이클이 데뷔하지 못한 것은 부상 때문이 아니다. 00-01시즌 당시 그가 내내 부상자 명단에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그는 부상이 없었다. 당시 NBA는 12명의 선수 로스터 외에 추가로 부상자 명단에 뛸만한 실력은 안 되지만 선수단의 이탈에 대비해 대기선수들을 등록시켜놓는데 (현재는 inactive list가 이 역할을 한다. 부상 여부는 팀이 자발적으로 제출해야 되기 때문에 아무 사소한 부상이나 적어내고 이런 꼼수를 쓰는 것.) 이 때문에 마이클을 부상자 명단에 등록시켜 놓은 것. 실제로 마이클은 이때도 못 뛰고 방출, 02-03시즌에도 휴스턴 로키츠와 계약까지는 했으나 마찬가지로 뛰지 못하고 1주일만에 방출, 04년에는 서머리그에서 뛰었으나 계약을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 때의 마이클은 확실히 NBA에서 뛸 만한 실력을 못 갖춘 것이 맞다. 그는 필리핀에 가기 전까지 ABA에서 뛰며 몇 년동안 NBA의 문턱을 두들겼으나 끝내 입성에 실패했다.[6] 이후 아말 맥카스킬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신장 초과로 영입이 불발되었다. 맥카스킬은 2009-2010 시즌에 전자랜드에 입단하면서 KBL로 오게 되고, 2010-2011 시즌 중, 오티스 조지와 트레이드로 대구 오리온스에 영입되었다.[7] 경기당 35.1득점은 2016년 현재까지도 KBL 역대 최고 기록이다 참고로 KBL은 40분 경기이며 평균득점 30점이면 득점왕 받을 수 있는 NBA는 한 경기 길이가 48분이다!![8] KBL 초창기 기록을 제외하고 00시즌 이후 기록 중에서 이보다 높은 per를 기록한 선수는 애런 헤인즈 뿐이다.[9] 2010년 이후 V-리그에서도 외국인 몰빵배구가 심화되면서 (레오화재, 시몬저축은행 등등) 트라이아웃제 주장이 조금씩 제기되었는데, 2015-16 시즌 여자부 한정으로 용병 트라이아웃제를 실시하고 이어 2016-17 시즌부터 남자부에서도 용병 트라이아웃제를 실시하게 되었다.[10] 여담이지만 이때 코비 브라이언트를 능가한 활약을 보이며 일부 국내팬들 사이에서 "NBA 주전 이상의 기량인데 일부러 안 가는거다"는 헛소리가 돌기고 했다. 그러나 친선경기를 기준으로 선수의 기량을 판단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기에... 당시 NBA 챔피언이던 레이커스는 2009년 시범경기에서 5할에 그쳤고 해당 경기에서 코비는 20분밖에 안 뛰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미국인인 마이클이 세계최고 수준인 자국 리그에서 뛸 수 있다면 한국, 필리핀, 유럽 등 외국리그를 떠돌 이유가 없다. 실제로 피트 마이클은 20대 중반까지 수차례 NBA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다만 전성기인 2010년대 초반 기준으로 팀내 7-8번째의 벤치플레이어 자리 정도는 차지할 기량은 된다는 게 중론. 실제로 그 당시 NBA 팀에서 오퍼를 받기도 했다.[11] pulmonary embolism, 폐동맥이 혈전 등의 원인으로 막히는 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7-10 00:16:19에 나무위키 피트 마이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20:55:52에 나무위키 피트 마이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