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니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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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니크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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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Niekro%20Phil%20Plaque_NBL.png
필 니크로
헌액 연도
1997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0.3% (5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8 ~ 198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짐 카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 니크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2 ~ 198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골드 부문 글러브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 니크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호아킨 안두하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로고.svg 1980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안드레 손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필 니크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티브 가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밀워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35번
클로드 레이몬드
(1962~1963)

필 니크로
(1964~1983)


필 니크로
(1987)
뉴욕 양키스 등번호 35번
로저 에릭슨
(1982~1983)

필 니크로
(1984~1985)


밥 턱스버리
(1986~198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번호 35번
제리 리드
(1983~1985)

필 니크로
(1986~1987)


마이크 크리스토퍼
(1982)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35번
제프 뮤셀먼
(1986~1987)

필 니크로
(1987)


버드 블랙
(1990)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35번
필 니크로
(1964~1983)

필 니크로
(1987)


영구결번




파일:필 니크로.jpg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o. 35
필립 헨리 "필" 니크로
Philip Henry "Phil" Niekro

출생
1939년 4월 1일
사망
2020년 12월 26일 (향년 81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오하이오 주 블레인
신체
185cm / 81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MLN)
소속팀
밀워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64~1983)
뉴욕 양키스 (1984~198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86~1987)
토론토 블루제이스 (198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87)
가족
형제 조 니크로

1. 개요
2. 경력
3. 사망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연도별 성적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www.athletepromotions.com/Phil-Niekro.jpg [1]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해라. 그래서 이제 이만하면 됐겠지라는 생각이 들때 거기서 조금 더 연습해라. 그리고, 이제 본인이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이 들 때, 조금만 더 연습해라.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투수.

너클볼러 중 유일한 300승 투수이다. 니크로 뒤로도 찰리 허프, 팀 웨이크필드, R.A. 디키같은 너클볼러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필 니크로만큼 완성도 높은 너클볼을 구사하지는 못했으며[3], 구종 하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투수를 꼽을 때 그렉 매덕스의 투심 패스트볼, 마리아노 리베라의 컷 패스트볼과 함께 빠지지 않고 항상 꼽힌다.


2. 경력[편집]


파일:external/a.espncdn.com/a_niekro2_195.jpg

필 니크로의 너클볼을 치는 것은 젓가락으로 젤리를 집으려는 것과 같았다.

ㅡ 바비 머서


광부였던 아버지 필 니크로 시니어에게서 배운 너클볼을 무기로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너클볼만 던졌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데뷔 초기에는 너클볼만 던질 줄 알았을 뿐, 다른 구질을 던지는 방법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선수 생활 초창기엔 패스트볼 그립도 잘 잡지 못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 니크로 이후 너클볼러로 메이저리그에서 일정수준 이상 성취를 올린 선수들 면면을 보면 찰리 허프는 70년대 다저스에서 불펜으로 혹사당해 부상 당한후 너클볼러로 전향, 웨이크필드는 1루수 자원이었으나 나무배트 적응에 실패하여 투수전향하며 너클볼을 익혔다. 디키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메이저리그 퇴출 위기에 놓이자 감독과 상의해 너클볼러에 도전했다. 이들 후배 너클볼러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너클볼을 택한 것과 달리 니크로는 처음부터 너클볼만 파고 들었기 때문에 완성도에서 차원이 달랐다.

다만 초창기 완성되지 않았던 너클볼은 배팅볼 수준이라서 풀타임 메이저리거 선발로 자리잡기까지 정확히 10년 걸렸다. 즉, 마이너리그에서 10년을 굴렀다는 것. 1958년에 밀워키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다

상기 항목의 출신지에서 나오듯 집이 오하이오였는데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린 선수 선발 캠프에 누구나 참가 할 수 있다는 말과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터가 온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탄광에 간 사이에 야구화를 챙겨서는 차를 얻어타 갔다고 한다. 캠프에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스카우터가 전화가 와서는 니크로의 집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냐고 하자 어머니는 얼른 폴란드 요리 준비했고, 아버지는 몇 잔 먹이면 계약할 때 편하리라는 생각으로 보드카를 사왔다고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터가 집에 와서는 "계약금으로 250달러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물어봤는데 니크로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전 광부라 그 정도 돈을 드릴 여유는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대학교 입학금처럼 오히려 돈을 지불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것. 스카우터가 "아뇨, 저희가 그 만큼을 아드님께 드리는 겁니다." 라고 말했고 결국 계약이 맺어졌고 니크로는 매월 250달러에 하루 식비로 2달러를 따로 받는 조건으로 브레이브스에 입단하게 된다. 이 옛날 옛날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팀 웨이크필드는 그저 "와우..." R.A. 디키는 "하루에 2달러 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라는 반응들이었다.[4]

풀타임 선발로 자리잡은 것은 1967년. 그의 나이 28세에 비로소 선발 기회를 잡아 그 해 200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 1.87로 리그 1위에 올라 비로소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그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완벽한 너클볼을 주 무기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농락했다.


전성기 니크로의 너클볼.

나이 28세부터 시작한 그의 메이저리거 경력은 나이 48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끝나는데, 그 기간동안 거둔 성과는 5404이닝[5]을 던져 318승 274패에 3342삼진. 동생인 조 니크로도 선수 생활의 위기에 봉착하자 아버지와 형에게 너클볼을 배워 200승 투수가 되었다. 형제(318승+221승)가 합작한 539승은 오늘날까지도 메이저리그 최고기록이다.

특히 300이닝 이상 소화한 시즌도 4차례나 되고, 나이 40세 이후에 기록한 121승은 거의 불멸의 기록이 될 듯. 이는 물론 체력 소모가 극히 적은 너클볼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너클볼이 제구가 어려워서 폭투가 많고, 도루 허용이 쉽다는 약점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기록은 결코 폄하될 것이 아니다. 참고로 그는 빼어난 수비 실력을 자랑했고, 특히 견제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너클볼의 약점인 도루 문제를 해결했다. 골드글러브 5회 수상자인 것에서 그의 수비 실력을 알 수 있다.

다만, 지지리도 상복도 없었는데 이는 그가 뛰던 시기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암흑기를 맞이하던 때라서 승수도 잘 챙겨주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1979년 다승왕에 오를 당시 21승으로 동생 조 니크로[6]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지만, 그 해 패수도 정확히 20패로 다패 부분 1위였다. (참고로 당시 필 니크로의 나이는 40였다.) 말년에 오래도록 뛴 애틀랜타를 떠나 뉴욕 양키스로 갔는데, 애틀랜타 팬들이 오히려 축하해 줬다고 한다. 이유는 이 약체에서 뛰면서 20년 동안 겨우 PO만 두 번 밟아본 노장이 은퇴하기 전에 우승 반지를 하나 끼기를 바랐던 마음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시기 뉴욕 양키스도 팀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라서 결국 은퇴할 때까지 월드시리즈 한 번 밟아보지 못했다. 이 기록은 역대 최장 기록이었다.[7]

필 니크로가 치른 경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는 300승 달성 경기다. 자신의 스승이던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자 시즌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병상에 있던 아버지의 권유로 결국 300승 경기에 나서게 되었다. 1985년 10월 6일에 열린 그 해 마지막 300승 도전 경기에서 충격적인 발표를 하는데, 바로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너클볼을 던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자신의 성공이 너클볼 때문이라는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이 경기에서 9회 2아웃까지 너클볼을 단 하나도 던지지 않았고, 마지막 타자에게만 너클볼을 던지면서 완봉승으로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8] 이 완봉승은 훗날 제이미 모이어가 깨기 전까지 역대 최고령 완봉승 기록이자, 현재까지 300승 달성 경기에서 나온 유일한 완봉승이다.

너클볼로 먹고 산 선수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대단히 섭섭한 대우를 받았다. 다섯 번째 투표에서야 비로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는데, 부정투구의 달인인 게일로드 페리가 단 세 번만에 입성한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섭섭한 대우. 명예의 전당 입성과 함께 오래도록 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그의 현역 시절 등번호 35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워렌 스판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존 스몰츠 시대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암흑기 애틀랜타의 에이스로서 의미가 있는 결번이다.

은퇴 후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삽질하던 한 너클볼 투수에게 제대로 된 너클볼을 전수해줬는데, 그 양반이 바로 팀 웨이크필드다. 그리고 프로 선수도 아닌 주제에 계속 너클볼을 가르쳐 달라며 징징거린 아마추어에게 한 달 정도 합숙훈련을 하며 너클볼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너클볼을 배워간 그 아마추어는 고양 원더스의 대표였던 허민이다. 관련 기사

그런데 2012년 8월 7일, 허민 고양 원더스 구단주와의 인연 덕분인지 생애 처음으로 방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8월 9일에는 원더스 모자를 쓰고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 직관을 왔다! 관련 기사 초청자인 허민 구단주와 함께 직관한 경기는 명불허전의 엘꼴라시코. 한국 특유의 응원문화가 인상깊었다고 한다. 네이버의 매거진S에서 허민 구단주가 인터뷰를 했을 때 필 니크로와의 일화를 소개했는데, 필 니크로가 허민에게 너클볼을 가르치며 그를 '브라더'라 부르는데, 허민을 가르치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조 니크로를 생각한다고 한다[9] 당시 그 경기를 중계한 SBS Sports에서 경기 중 인터뷰[10]도 했는데, 한국에서 필 니크로 당신에게 너클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매일 너클볼을 필사적으로 연습하면서 모든 일상생활을 너클볼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약속할 사람이 온다면 가르쳐주겠다."라고 대답했다.

3. 사망[편집]


2020년 12월 27일(현지시간) 향년 만 81세의 나이에 작고했다. 오랫동안 암을 앓고 있었다고 하며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필 니크로
43
194
157
52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15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필 니크로
96.5
54.5
75.5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5.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필 니크로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64
MLN
-
ATL

10
0
0
0
0
15
4.80
15
1
7
1
8
1.467
76
-0.1
-0.1
1965
41
2
3
6
2
74⅔
2.89
73
5
26
3
49
1.326
122
0.4
0.5
1966
28
4
3
2
3
50⅓
4.11
48
4
23
2
17
1.411
90
-0.4
-0.7
1967
46
11
9
9
1
207
1.87
164
9
55
7
129
1.058
179
3.6
4.9
1968
37
14
12
2
0
256⅔
2.59
228
16
45
5
140
1.064
116
3.6
4.0
1969
40
23
13
1
0
284⅓
2.56
235
21
57
5
193
1.027
142
6.3
6.0
1970
34
12
18
0
0
229⅔
4.27
222
40
68
6
168
1.263
100
1.8
2.1
1971
42
15
14
2
0
268⅔
2.98
248
27
70
3
173
1.184
125
4.3
5.1
1972
38
16
12
0
0
282⅓
3.06
254
22
53
5
164
1.087
123
6.0
5.4
1973
42
13
10
4
0
245
3.31
214
21
89
5
131
1.237
120
3.2
4.4
1974
41
20
13
1
0
302⅓
2.38
249
19
88
6
195
1.115
159
6.8
7.9
1975
39
15
15
0
0
275⅔
3.20
285
29
72
11
144
1.295
118
3.6
6.7
1976
38
17
11
0
2
270⅔
3.29
249
18
101
8
173
1.293
115
4.3
6.7
1977
44
16
20
0
0
330⅓
4.03
315
26
164
8
262
1.450
111
5.9
8.9
1978
44
19
18
1
1
334⅓
2.88
295
16
102
13
248
1.187
142
8.6
10.0
1979
44
21
20
0
0
342
3.39
311
41
113
11
208
1.240
119
4.1
7.4
1980
40
15
18
1
0
275
3.63
256
30
85
3
176
1.240
102
3.7
3.4
1981
22
7
7
0
0
139⅓
3.10
120
6
56
1
62
1.263
116
2.0
1.7
1982
34
17
4
0
0
234⅓
3.61
225
23
73
3
144
1.272
104
3.0
3.1
1983
35
11
10
0
0
201⅔
3.97
212
18
105
2
128
1.572
98
1.7
2.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4
NYY
32
16
8
0
0
215⅔
3.09
219
15
76
3
136
1.368
123
3.8
4.6
1985
33
16
12
0
0
220
4.09
203
29
120
1
149
1.468
99
1.0
1.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6
CLE
34
11
11
0
0
210⅓
4.32
241
24
95
6
81
1.597
96
0.8
0.9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7
CLE/TOR/ATL
26
7
13
0
0
138⅔
6.30
163
22
66
4
64
1.651
72
0.2
-0.1
MLB 통산
(24시즌)
864
318
274
29
7
5404
3.35
5044
482
1809
123
3342
1.268
115
78.1
97.0

6. 여담[편집]


  • 동생 조 니크로에게 홈런을 맞은 적이 있다. 참고로 동생도 투수다.

7.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21:09:48에 나무위키 필 니크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은퇴 이후에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은퇴 경기 당시 찍은 사진으로 이때 나이가 무려 47세이다.[2] 『Tales From the Ballpark』 - Mike Shannon, McGraw-Hill Education (March 3, 2000) [3]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니크로보다 한 세대 앞서 데뷔한 호이트 윌헬름의 너클볼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예시[4] 출처는 EBS에서 방영된바 있는 EIDF 2012 스포츠 다큐멘터리 '너클볼!' 에서의 필 니크로 본인의 이야기[5] 메이저리그 통산 4위이자 라이브볼 시대 통산 1위다. 메이저리그에서 27년을 활동하며 롱런 파워피처의 상징이자 탈삼진의 황제로 자리잡은 놀란 라이언보다도 20이닝을 더 던졌다.[6] 이쪽도 통산 221승을 기록한 대투수이다. 메이저리그 형제 합작 승수 부문 1위.[7] 동생 조 니크로도 PO와는 영 인연이 없어서 통산 20시즌 동안 딱 3번 PO에 진출했는데, 그나마 선수생활 막바지였던 1987년에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우승한 경험이 있어 형처럼 눈물겨운 상황은 피했다.[8] 영문위키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유투브에 올라온 300승 경기 하이라이트에서는 계속 너클볼을 던졌다. 추가검증 요망 참고영상 참고영상.[9] 조 니크로는 2006년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났다.[10] 미국 유학파 아나운서였던 신아영이 영어로 인터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