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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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앙리 그자비에 앙투안 드골
Philippe Henri Xavier Antoine de Gaulle

출생
1921년 12월 28일 (102세)
프랑스 파리
복무 기간
1939년~1982년
부모
아버지 샤를 드골, 어머니 이본 드골[1]
형제자매
여동생 엘리자베트 드골[2], 안 드골[3]
배우자
헨리에트 드골
자녀
장남 샤를 드골
차남 이브 드골
삼남 장 드골
사남 피에르 드골
종교
가톨릭 (세례명: 필립보)
신체
196cm, O형
1. 개요
2. 출생과 전간기
4. 전후 해군 경력
5. 정치 활동
6. 기타



1. 개요[편집]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2. 출생과 전간기[편집]


1921년 12월 28일, 파리에서 프랑스 육군 장교샤를 드골의 첫째이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같은 중학교(Collège Stanislas de Paris)를 다닌 뒤, 프랑스 해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3. 제2차 세계대전[편집]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필리프는 해군사관생도였다. 그는 비록 먼저 영국으로 망명한 아버지 드골 장군의 호소문을 듣지는 못했지만, 자력으로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를 탈출해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에 합류, 자유 프랑스 해군의 일원이 되었다.

2차대전 동안 필리프는 대서양 전투에 참전했다. 1943년에 소위가 되었고, 1944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자유 프랑스 해군 코만도 부대 소속 소대장으로 참전, 프랑스 해방전에 참가해 파리 해방 때도 참여했고, 이후 1945년까지 보주에서 싸웠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34px-Philippe_de_Gaulle.jpg
해군 코만도 소대장 시절의 필리프 드골 중위. 미 육군으로부터 지원받은 피복과 장구류에 프랑스 해군의 정모계급장 등의 부착물을 혼용했다.


4. 전후 해군 경력[편집]


1948년에 대위로 진급하여, 1952년 제6함대에 배속되었다. 이후 1956년에 소령, 1961년에 중령이 되었으며, 진급 전인 1960년부터 호위함을 지휘하며 첫 함장 이력을 쌓았다. 진급 후에는 해군 항공대로 들어가 전투기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고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파리 지구 해군 항공대장을 맡았다. 1967년에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1968년까지 유도탄 프리깃 쉬프랭 함의 함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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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프랭 함 함장 시절의 드골 대령.

1971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제독이 되었고, 해상초계항공단을 지휘했다. 1975년에 소장, 1977년 대서양전대사령관 재직 중 중장으로 진급했다. 1980년, 대장으로 진급하여 해군 감찰감을 지낸 뒤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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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계급 시절의 드골 제독


5. 정치 활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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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모습.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정치가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도우파인 프랑스 공화국연합(Rassemblement pour la République, 약칭 RPR)에서 활동했고, 말년인 2002년에는 중도우파인 대중운동연합(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약칭 UMP)에서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변호사를 지낸 1948년생인 장남이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에 입당할때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4] 이와는 별도로 2022 프랑스 대선에서 본인의 아버지인 샤를 드골 마케팅 열풍이 광풍으로 확산 중이다. 물론 본인은 제발 아버지 이름 팔아서 정치하지 말라고 호소 중.


6. 기타[편집]


현재 102세장수중인데, 샤를 드골의 세 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이다. 심지어 키도 196cm로 어마어마한 장신인데도 굉장히 장수하는 편으로, 보통 키 190대 이상의 장신은 장수에 불리하다. 작은 여동생 안느는 다운증후군으로 고생하다가 이른 나이에 죽었지만, 큰여동생 엘리자베트는 나름 장수하다가 2013년 타계한 것으로 보아 장수에 유리한 유전자를 타고 난 것으로 보인다. 엘리자베트의 남편(즉, 드골 대통령의 사위)인 알랭 브와슈는 육군 장교로 2차대전 당시 드골과 함께 자유 프랑스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1971~1975년 프랑스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2020년에는 아버지의 사망 50주년을 맞아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아버지의 1940년 6월 18일 자유 프랑스 수립 선언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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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右)와 함께 찍힌 2차대전 중의 사진. 그도 키가 매우 크다.(196cm)

아버지가 국가원수인 시절에도 계속 군복무를 한 관계로 전시상태가 아닌 평화시에 통수권자가 본인 아버지인 몇 안되는 사례기도 하다.[5]


7.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샤를 드골/가족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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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0 ~ 1979 (향년 79세)[2] 1924 ~ 2013 (향년 89세)[3] 1928 ~ 1948 (향년 20세)[4] 그냥 반대한 게 아니라, 소문에 의하면 장남보고 "교황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것과 같다"고 조롱했다고 한다. 현재는 장남조차 70살이 넘는 고령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5] 전시상태에는 예비군들도 징집되므로 사례가 흔하지만 평시에는 민주국가에선 약간 특이한 케이스. 드골 부자 외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미국 대통령이던 시절에 아들 존 아이젠하워가 현역 육군 장교로 근무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