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다 야스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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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55년 치바현 훗츠시에서 태어나 치바현립 키사라즈 고등학교를 거쳐 센슈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와타나베 미치오 대장대신의 비서로 근무했으며, 이후 아버지인 하마다 고이치 중의원의 비서로 근무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은퇴한 뒤인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자민당 소속으로 구 치바현 제3구에 당선되어 원내에 진출한다. 당시 당선 동기로는 아베 신조, 다나카 마키코, 기시다 후미오, 노다 세이코, 다카이치 사나에 등이 있다. 소선거구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치바현 제12구를 지역구로 삼아 출마해 당선되어 9선을 기록했다.
중의원 역임 중에는 방위정무차관, 방위청 부장관을 역임했으며 아소 내각에서 하야시 요시마사의 후임으로 방위대신을 역임했다. 방위대신 시절 논문 사건을 일으킨 다모가미 도시오 항공막료장을 정부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경질시켰다.
2011년 10월, 다니가키 사다카즈에 의해 국회대책위원장 대리에 취임하고, 2012년의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를 지지했지만, 이시바는 아베에게 패배했다. 이후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간사장 대리를 역임했다.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에서 기시 노부오의 후임으로 방위대신에 임명되었다.# 방위대신으로서는 두번째 취임이다. 1년 만에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내각에 따라 물러난다. 3개월만에 자민당 정치자금 문제가 나오자 국회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3. 성향[편집]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임’,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등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우익 정치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논문 사건을 일으킨 다모가미 도시오를 직접 경질시킨 바 있고, 헤이트 스피치 규제 찬성과 한일의원연맹에도 가입한 것으로 보아 완전한 강경파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를 지지한 것을 봐도, 아베를 주축으로 하는 강경파 자민당 주류와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수 년간 무파벌로 있으며 당직이나 내각에 중용되지 못하고 있었지만[4] 2022년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기용되며 13년 만에 내각에 복귀했다.
이후 다음 해 9월 13일 내각 개조에 따라 물러났고, 12월에 불거진 자민당 정치자금 파문으로 인해 전임 다카기 쓰요시 국회대책위원장이 교체되면서 후임 국대위원장에 취임했다.#
4. 선거 이력[편집]
5. 기타[편집]
- 전직 이나가와카이 계열 야쿠자 출신으로 무서운 얼굴에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이라 여러 막말과 폭력사건 등[5] 수많은 무용담(...)이 있었던 아버지 고이치와는 대조적으로, 온화한 성격에 TV 출연이나 언론 노출을 좋아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아소 내각의 방위대신으로 재직할 때는 안정된 국회 답변, 보도 대응으로 방위성 내의 평가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 자민당 동료 의원인 하야시 요시마사, 오코노기 하치로, 마쓰야마 세이지와 함께 'Gi!nz(기인즈)'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 2005년에 앨범 1집을 냈고, 2018년에 앨범 2집을 냈다. 결성한 이유는 젊은이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이유이며, CD 판매 수익은 골수이식 재단과 코소보 전쟁 난민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당시 피해 입은 수마트라 섬 원조에 기부하는 선행을 실천하기도 했다.
6. 둘러보기[편집]
[1] 1928~2012,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었다.[2] 2022년 사망.[3] 와타나베 요시미의 아버지.[4] 참고로 하마다는 아베 신조와 기시다 후미오 이 둘과 나이도 비슷하고,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선 동기이다. 아베는 간사장에 중용되고, 이후 총재를 네 번 역임했고, 기시다 또한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하고 이후 총재에 올랐다.[5] 법무대신을 팬 적이 있다. 자민당 본부가 중핵파의 방화로 불이 난적 있는데 하마다 고이치가 화재진압에 나서자 어디선가 나타난 당시 법무대신이던 스미 에이사쿠가 술에 취한채 "매치 펌프 아니냐?"고 빈정거려서 열받은 하마다가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중의원 예산위원장 시절에는 공산당 미야모토 켄지 위원장을 살인자로 불렀다가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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