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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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로 河北路
1. 개요
2. 역사
3. 행정구역
3.1. 하북동로(河北東路)
3.1.1. 대명부(大名府)
3.1.2. 개덕부(開德府)
3.1.3. 창주(滄州)
3.1.4. 기주(冀州)
3.1.5. 하간부(河間府)
3.1.6. 박주(博州)
3.1.7. 체주(棣州)
3.1.8. 막주(莫州)
3.1.9. 웅주(雄州)
3.1.10. 패주(覇州)
3.1.11. 덕주(德州)
3.1.12. 빈주(濱州)
3.1.13. 은주(恩州)
3.1.14. 영정군(永靜軍)
3.1.15. 청주(淸州)
3.1.16. 신안군(信安軍)
3.1.17. 보정군(保定軍)
3.2. 하북서로(河北西路)
3.2.1. 진정부(眞定府)
3.2.2. 상주(相州)
3.2.3. 중산부(中山府)
3.2.4. 신덕부(信德府)
3.2.5. 준주(浚州)
3.2.6. 회주(懷州)
3.2.7. 위주(衛州)
3.2.8. 명주(洺州)
3.2.9. 심주(深州)
3.2.10. 자주(磁州)
3.2.11. 기주(祁州)
3.2.12. 경원부(慶源府)
3.2.13. 보주(保州)
3.2.14. 안숙군(安肅軍)
3.2.15. 영령군(永寧軍)
3.2.16. 광신군(廣信軍)
3.2.17. 순안군(順安軍)


1. 개요[편집]


송나라의 최상위 행정구역인 로(路) 중 하나로 오늘날 허베이성을 관할한 지역이다.


2. 역사[편집]




3. 행정구역[편집]



3.1. 하북동로(河北東路)[편집]



3.1.1. 대명부(大名府)[편집]


위군(魏郡). 1042년 북경(北京)이 설치되어 응천부, 하남부와 함께 배도(陪都)로 기능했다. 1048년 대명부로안무사(大名府路安撫使)가 신설되었다.

    • 원성현(元城縣), 신현(莘縣), 대명현(大名縣)[1], 내황현(內黃縣), 성안현(成安縣)[2], 위현(魏縣), 관도현(館陶縣)[3], 임청현(臨淸縣), 하진현(夏津縣), 청평현(淸平縣)[4], 관씨현(冠氏縣), 종성현(宗城縣)[5]


3.1.2. 개덕부(開德府)[편집]


전연군(澶淵郡). 본래 전주(澶州)였으며, 진녕군절도사(鎭寧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1105년 북보(北輔)가 되었고 1106년 개덕부로 승격되었다. 1120년 보군(輔郡)을 폐지하고 하북동로(河北東路) 관할로 두었다.

    • 복양현(濮陽縣), 관성현(觀城縣)[6], 임하현(臨河縣), 청풍현(淸豐縣)[7], 위남현(衛南縣), 조성현(朝城縣)[8], 남락현(南樂縣), 덕청군(德淸軍)


3.1.3. 창주(滄州)[편집]


경성군(景城郡). 횡해군절도사(橫海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 청지현(淸池縣)[9], 무체현(無棣縣)[10], 염산현(鹽山縣), 낙릉현(樂陵縣)[11], 남피현(南皮縣)[12]

    • 보순군(保順軍)[13]


3.1.4. 기주(冀州)[편집]


신도군(信都郡). 단련주였다가 1048년 안무군절도사(安武軍節度使)가 파견되는 주로 승격되었다.

    • 신도현(信都縣), 수현(蓚縣), 남궁현(南宮縣)[14], 자강현(棗强縣)[15], 무읍현(武邑縣), 형수현(衡水縣)


3.1.5. 하간부(河間府)[편집]


하간군(河間郡). 본래 영주(瀛州)로 방어주였으나 1103년 부로 승격되고 영해군절도사(瀛海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997년 고양현(高陽縣)을 순안국(順安軍)으로 이관하였다. 고양현은 976년 고양관(高陽關)으로 고쳐졌다. 1048년 고양관로안무사(高陽關路安撫使)를 두어 영주, 막주, 웅주, 패주, 기주, 창주, 영정군, 보정군, 건녕군, 신안군을 관할하였다.

    • 하간현(河間縣)[16], 낙수현(樂壽縣)[17], 속성현(束城縣)[18]


3.1.6. 박주(博州)[편집]


박평군(博平郡). 방어주였다. 992년 홍수가 일어나 치소를 효무도(孝武渡) 서쪽으로 옮겼다.

    • 요성현(聊城縣), 고당현(高唐縣), 당읍현(堂邑縣), 박평현(博平縣)[19]


3.1.7. 체주(棣州)[편집]


낙안군(樂安郡). 방어주였다가 961년 단련주로 승격되다가 다시 방어주가 되었다. 1015년 치소를 양신현(陽信縣) 경계에 있는 팔방사(八方寺)로 옮겼다.

    • 압차현(厭次縣), 상하현(商河縣), 양신현(陽信縣)


3.1.8. 막주(莫州)[편집]


문안군(文安郡). 방어주였다. 1073년 장풍현(長豐縣)을 진으로 격하시켰고 다시 막현(鄚縣)을 임구현(任丘縣)에 통폐합하였다. 1087년 다시 막현을 설치했다가 다시 진으로 격하시켰다.

    • 임구현(任丘縣)[20]


3.1.9. 웅주(雄州)[편집]


역양군(易陽郡). 방어주였다. 당나라 때 탁주(涿州) 와교관(瓦橋關)이 있던 곳이었으며, 1113년 역양군이라는 군명을 받았다.

    • 귀신현(歸信縣[21], 용성현(容城縣)[22]


3.1.10. 패주(覇州)[편집]


영청군(永淸郡). 방어주였다. 당나라 때 유주(幽州) 영청현(永淸縣)이었던 곳으로 뒤에 익진관(益津關)을 설치했다. 후주 때 패주를 설치하면서 막주 문안현(文安縣)과 영주(瀛州) 대성현(大城縣)을 패주 관할로 두었다. 1113년 영청군이라는 군명을 받았다.

    • 문안현(文安縣)[23], 대성현(大城縣)


3.1.11. 덕주(德州)[편집]


평원군(平原郡). 군사주였다. 송나라의 건국 이후 귀화현(歸化縣)이 폐지되고 1035년 안릉현(安陵縣)을 장릉현(將陵縣)에 통폐합했다가 뒤에 영정군(永靜軍)으로 분할하였다. 1073년 덕평현(德平縣)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안덕현에 통폐합하였다.

    • 안덕현(安德縣), 평원현(平原縣)


3.1.12. 빈주(濱州)[편집]


발해군(渤海郡). 군사주였다. 1012년 포대현(蒲臺縣)을 폐지하였다. 1108년 군명을 받았다.

    • 발해현(渤海縣), 초안현(招安縣)[24]


3.1.13. 은주(恩州)[편집]


청하군(淸河郡). 군사주였다. 당나라 때 패주(貝州)였으며, 후진 때 영청군절도사(永淸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가 후주 때 방어주가 되었다. 송나라의 건국 이후 다시 절도사가 파견되었다. 1048년 은주로 고치고 절도사도 폐지하였다.

    • 청하현(淸河縣)[25], 무성현(武城縣), 역정현(歷亭縣)[26]


3.1.14. 영정군(永靜軍)[편집]


당나라 때 경주(景州)였다. 981년 군을 대명부 직할로 두었다. 990년 기주 기성현이 영정군 관할이 되었다. 1004년 군명을 변경했다.

    • 동광현(東光縣), 장릉현(將陵縣)[27], 기성현(阜城縣)[28]


3.1.15. 청주(淸州)[편집]


건녕군(乾寧郡). 본래 유주(幽州) 노태군(蘆臺軍)이었으나 석경당요나라연운 16주를 할양할 때 요나라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후주에서 삼관을 평정한 뒤 영안현(永安縣)을 설치하고 창주(滄州) 관할로 두었다. 981년 건녕군(乾寧軍)을 설치하고 현을 건녕현(乾寧縣)으로 고친 뒤 건녕현 관할로 두었다. 1108년 주로 승격되었다. 1113년 군명을 받았다.

    • 건녕현(乾寧縣)[29]

    • 조대채(釣臺砦), 독류북채(獨流北砦), 독류동채(獨流東砦), 당성채(當城砦), 사와채(沙渦砦), 백만채(百萬砦)


3.1.16. 신안군(信安軍)[편집]


981년 패주(覇州) 어구채(淤口砦)에 파로군(破虜軍)을 설치한 것이 시초였다. 1005년 신안군으로 개칭되었다.

    • 주하채(周河砦), 조어채(刁魚砦), 전가채(田家砦), 낭성채(狼城砦), 불성와채(佛聖渦砦), 녹각채(鹿角砦)[30], 이상채(李詳砦)


3.1.17. 보정군(保定軍)[편집]


981년 탁주(涿州) 신진(新鎭)에 평융군(平戎軍)을 설치한 것이 시초였다. 1004년 보정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034년 패주(覇州) 문안현(文安縣)과 대성현(大城縣)의 500호를 보정군 관할로 하였다. 1125년 보정군을 보정현으로 격하시켜 막주(莫州)에 소속시키고 현의 자사가 군사를 겸임하게 했다가 다시 복구하였다.

    • 도화채(桃花砦), 부모채(父母砦)[31]


3.2. 하북서로(河北西路)[편집]



3.2.1. 진정부(眞定府)[편집]


상산군(常山郡). 당나라 대에 성덕군절도사(成德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본래 진주(鎭州)였으며, 한나라 대에 조주(趙州) 원씨현(元氏縣)과 난성현(欒城縣)이 진주 관할이 되었다. 973년 구문현(九門縣)과 석읍현(石邑縣)을 폐지하였다. 988년 고성현이 기주(祁州) 관할이 되었다. 990년 속록현이 심주(深州) 관할이 되었다. 1048년 진정부로안무사(眞定府路安撫使)를 설치하여 진정부, 자주, 상주, 형주, 조주, 명주를 관할하였다.

    • 진정현(眞定縣), 고성현(槁城), 난성현(欒城縣), 원씨현(元氏縣), 정경현(井陘縣)[32], 획록현(獲鹿縣), 평산현(平山縣)[33], 행당현(行唐縣), 영수현(靈壽縣)[34]

    • 북채(北砦)[35]

    • 천위군(天威軍)


3.2.2. 상주(相州)[편집]


업군(鄴郡). 창덕군절도사(彰德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 안양현(安陽縣)[36], 탕음현(湯陰縣)[37], 임장현(臨漳縣)[38], 임려현(林慮縣)


3.2.3. 중산부(中山府)[편집]


박릉군(博陵郡). 본래 정주(定州)였다. 960년 북평현이 중산부 관할이 되었다. 태평흥국 연간에 정무군절도사(定武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1048년 진정로안무사(定州路安撫使)가 파견되어 정주(定州), 보주(保州), 심주(深州), 기주(祁州), 광신군(廣信軍), 안숙군(安肅軍), 순안군(順安軍), 영령군(永寧軍)을 관할하였다. 1113년 부로 승격되고 군명을 중산군(中山郡)으로 고쳤다.

    • 안희현(安喜縣), 무극현(無極縣), 곡양현(曲陽縣), 당현(唐縣), 망도현(望都縣), 신락현(新樂縣), 북평현(北平縣)

    • 군성채(軍城砦)[39]

    • 북평군(北平軍)[40]


3.2.4. 신덕부(信德府)[편집]


거록군(鉅鹿郡). 후당 때 안국군절도사(安國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본래 형주(邢州)였으며, 1119년 신덕부로 승격되었다.

    • 형대현(邢臺縣)[41], 사하현(沙河縣), 임현(任縣), 요산현(堯山縣), 평향현(平鄕縣)[42], 내구현(內丘縣)[43], 남화현(南和縣)[44], 거록현(鉅鹿縣)


3.2.5. 준주(浚州)[편집]


평천군절도사(平川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988년 활주(滑州) 여양현(黎陽縣)에 통리군(通利軍)을 설치한 것이 그 시초로 1023년 안리군(安利軍)으로 변경되었다. 1026년 위주(衛州) 위현(衛縣)이 관할로 들어왔다. 1070년 현으로 격하되어 위주 소속이 되었다가 1086년 복구되었다. 1115년 주로 승격되고 군액을 준천군(浚川軍)으로 고쳤다가 다시 평천군으로 고쳤다.

    • 위현(衛縣)[45], 여양현(黎陽縣)


3.2.6. 회주(懷州)[편집]


하내군(河內郡). 송나라의 건국 이후 단련주가 되었다가 다시 방어주가 되었다.

    • 하내현(河內縣)[46], 수무현(修武縣)[47] 무척현(武陟縣)


3.2.7. 위주(衛州)[편집]


급군(汲郡). 방어주였다.

    • 급현(汲縣), 신향현(新鄕縣)[48], 획가현(獲嘉縣)[49], 공성현(共城縣)

    • 여양감(黎陽監)[50]


3.2.8. 명주(洺州)[편집]


광평군(廣平郡). 송나라가 건국된 960년 방어주로 승격되었다. 1073년 임명현(臨洺縣)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영년현에 통폐합시켰다. 1087년 곡주현과 임명현을 현으로 복구했다가 다시 진으로 격하시켰고 1089년 곡주현과 계택현을 다시 설치하였다.

    • 영년현(永年縣), 비향현(肥鄕縣), 평은현(平恩縣), 계택현(鷄澤縣), 곡주현(曲周縣)[51]


3.2.9. 심주(深州)[편집]


요양군(饒陽郡). 방어주였다. 987년 육택현(陸澤縣)을 폐지하였다.

    • 정안현(靜安縣)[52], 속록현(束鹿縣)[53], 안평현(安平縣), 요양현(饒陽縣), 무강현(武强縣)


3.2.10. 자주(磁州)[편집]


부양군(滏陽郡). 단련주였다. 1113년 자주(慈州)에서 한자만 바꿔서 자주(磁州)가 되었다.

    • 부양현(滏陽縣)[54], 한단현(邯鄲縣), 무안현(武安縣)[55]


3.2.11. 기주(祁州)[편집]


포음군(蒲陰郡). 단련주였다. 988년 진주(鎭州) 고성현(鼓城縣)이 기주 관할로 변경되었으며, 치소를 1004년 정주(定州) 포음현(蒲陰縣)으로 옮기고 무극현(無極縣)을 정주 관할로 변경하였다.

    • 포음현(蒲陰縣), 고성현(鼓城縣), 심택현(深澤縣)[56]


3.2.12. 경원부(慶源府)[편집]


조군(趙郡). 본래 조주(趙州)로 군사주였다가 1105년 경원군절도사(慶源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 1119년 경원부로 승격되었다.

    • 평극현(平棘縣), 영진현(寧晉縣), 임성현(臨城縣)[57], 고읍현(高邑縣), 융평현(隆平縣)[58], 백향현(柏鄕縣), 찬황현(贊皇縣)[59]


3.2.13. 보주(保州)[편집]


군사주였다. 송나라의 건국 이후 막주(莫州) 청원현(淸苑縣)에 보새군(保塞軍)을 설치한 것이 시초였으며, 981년 주로 격상되고 1113년 청원군(淸苑郡)이라는 군명을 받았다.

    • 보새현(保塞縣)[60]


3.2.14. 안숙군(安肅軍)[편집]


본래 역주(易州) 수성현(遂城縣)에 981년 정융군(靜戎軍)을 설치한 것이 시초였으며, 역주(易州) 수성현의 3개 향을 분할하여 정융현(靜戎縣)을 설치한 뒤 안숙군 관할로 두었다. 1004년 모두 현으로 통합하고 안숙군으로 고쳤으며, 1125년 안숙현으로 격하되고 안숙현의 자사가 군사를 겸임하였다가 뒤에 복구하였다.

    • 안숙현(安肅縣)


3.2.15. 영령군(永寧軍)[편집]


987년 정주(定州) 박야현(博野縣)에 영변군(寧邊軍)을 설치하였으며, 1004년 영령군으로 고쳤다. 1125년 폐지되고 박야현의 지사가 군사를 겸임하였다가 뒤에 복구하였다.

    • 박야현(博野縣)


3.2.16. 광신군(廣信軍)[편집]


981년 역주(易州) 수성현(遂城縣)에 위용군(威勇軍)을 설치한 것이 시초로 1004년 광신군으로 고쳤다.

    • 수성현(遂城縣)


3.2.17. 순안군(順安軍)[편집]


981년 영주(瀛州) 고양관채(高陽關砦)에 당흥채(唐興砦)를 설치하고 992년 순안군을 설치하였다. 997년 영주 고양현이 순안군 관할이 되었다. 1073년 고양현을 진으로 격하시켰다가 1077년 복구하였다.

    • 고양현(高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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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73년 폐지되어 원성현(元城縣)에 통폐합되었다가 1096년 복구되었다. 1116년 치소를 남악진(南樂鎭)으로 옮겼다.[2] 1073년 원수현(洹水縣)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성안현에 통폐합하였다.[3] 1072년 영제현(永濟縣)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관도현에 통폐합했다가 되돌렸다.[4] 송나라가 들어선 뒤 박주(博州)에서 대명부 관할이 되었다. 1069년 다시 박평현(博平縣) 명령채(明靈砦)를 분할하여 청평현 관할로 했고 치소를 명령채로 옮겼다.[5] 1072년 임청현을 진으로 격하시켜 통폐합했다가 되돌렸고 영제현을 임청현에 통폐합하였다. 1073년 경성현을 진으로 격하시켜 통폐합하였다.[6] 1049년 복양현과 돈구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52년 복구되었다.[7] 1044년 청풍현의 치소를 덕청군(德淸軍)으로 옮기고 현에 군사를 두어 주에 소속시켰다. 1073년 돈구현을 폐지하여 청풍현에 통폐합하였다.[8] 대명부 관할이었다가 1105년 남락현과 함께 전주 관할이 되었다.[9] 1071년 요안현(饒安縣)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청지현에 통폐합하였다. 건부채(乾符砦), 항고채(巷姑砦), 삼녀채(三女砦), 이고채(泥姑砦), 소남하채(小南河砦)가 있었다. 1112년 항고채를 해청채(海淸砦)로 고치고 삼녀채를 삼하채(三河砦)로 고치고 이고채를 하평채(河平砦)로 고쳤다.[10] 치평 연간에 무체현의 치소를 보순군(保順軍)으로 옮기고 군사(軍使)를 두어 주에 소속시켰다.[11] 1069년 치소를 함평진(咸平鎭)으로 옮겼다.[12] 1073년 임진현(臨津縣)을 남피현에 통폐합하였다.[13] 후주에서 창주 무체현 남쪽으로부터 30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였다. 970년 다시 창주와 체주 경계에 보순진(保順鎭)과 오교진(吳橋鎭)을 더하고 창주 관할로 하였다.[14] 1052년 신하진(新河鎭)으로 격상하고 남궁현을 폐지했다. 1054년 신하현을 진으로 격하하고 남궁현에 통폐합하였다.[15] 1068년 진으로 격하되어 신도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77년 복구되었다.[16] 옹희 연간에 현 서쪽에 평로채(平虜砦)를 설치하고 1005년 숙녕성(肅寧城)으로 고쳤다.[17] 997년 심주(深州)에서 하간부 관할이 되었다. 1073년 경성현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낙수현에 통폐합하였다.[18]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하간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6년 복구되었다.[19] 1069년 명령채(明靈砦)를 나누어 청평현 관할로 두었다.[20] 마촌채(馬邨砦)와 왕가채(王家砦)가 있었다. 1113년 마촌채를 정안채(定安砦)로 고치고 왕가채를 정평채(定平砦)로 고쳤다.[21] 장가채(張家砦), 목장채(木塲砦), 삼교채(三橋砦), 쌍류채(雙柳砦), 대와채(大渦砦), 칠고원채(七姑垣砦), 홍성채(紅城砦), 신원채(新垣砦)가 있었다.[22] 963년 다시 설치되었다.[23] 1035년 영청현(永淸縣)을 통폐합했다. 유가와채(劉家渦砦), 조어채(刁魚砦), 막금구채(莫金口砦), 아옹채(阿翁砦), 안두채(鴈頭砦), 여양채(黎陽砦), 희와채(喜渦砦), 녹각채(鹿角砦)가 있었다. 1081년 녹각채를 신안군 관할로 두었다. 1113년 유가와채를 안평채(安平砦)로 개칭하고 아옹채를 인효채(仁孝砦)로 개칭하고 안두채를 화녕채(和寧砦)로 개칭하고 희와채를 희안채(喜安砦)로 개칭하였다.[24] 1043년 초안진(招安鎭)을 현으로 승격시켰다. 1073년 발해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79년 다시 설치되었다.[25] 988년 치소를 영령진(永寧鎭)으로 옮겼다. 994년 다시 치소를 옮겼다. 1071년 청양현(淸陽縣)을 폐지하여 청하현에 통폐합하였다.[26] 1034년 장남현(漳南縣)을 역정현에 통폐합하였다.[27] 1034년 치소를 장하진(長河鎭)으로 옮겼다.[28] 1063년 진으로 격하되어 동광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77년 다시 설치되었다.[29] 1073년 진으로 격하되었다가 1087년 복구되었다. 1104년 다시 폐지되었다가 1115년 다시 설치되었다.[30] 1081년 패주 녹각채를 신안군 관할로 두었다.[31] 1113년 안녕채(安寧砦)로 개칭되었다.[32] 1073년 획록현과 평산현에 각각 통폐합되었다가 1075년 다시 설치되고 천위군(天威軍)의 치소를 이곳으로 옮겼으며, 현에 군사를 두고 진정부에 소속시켰다. 천위군채(天威軍砦), 소작구채(小作口砦), 왕가곡채(王家谷砦)가 있었다.[33] 감천채(甘泉砦), 남주채(嵐州砦), 기주채(沂州砦), 단명채(檀明砦), 부부채(夫婦砦), 백령채(柏嶺砦), 황강채(黃岡砦), 홍산채(洪山砦), 적전채(赤箭砦), 포아채(抱兒砦), 석호채(石虎砦), 중자채(中子砦), 조회공채(雕鄶共砦), 동림산채(東臨山砦), 서림산채(西臨山砦)가 있었다.[34]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행당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75년 복구되었다. 적경채(赤陘砦)와 비오채(飛吳砦)가 있었다.[35] 999년 설치되었다. 1075년 행당현의 2개 향을 북채 관할로 두었다.[36] 1072년 영화현(永和縣)을 폐지하여 안양현에 통폐합했다.[37] 1120년 준주(浚州) 관할이 되었다가 다시 상주 관할이 되었다.[38] 1072년 업현(鄴縣)을 통폐합하여 임장현에 통폐합했다.[39] 곡양현(曲陽縣) 관할이었다.[40] 1042년 북평채(北平砦)에 설치한 것이 시초로 1044년 다시 체주 관할이 되었으며, 북평현의 치소에 군사를 두고 중산부 관할로 하였다.[41] 1120년 용강현(龍岡縣)에서 고쳤다.[42] 1073년 평향현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거록현에 통폐합했다가 1086년 복구하였다.[43] 1073년 요산현을 폐지하고 내구현에 통폐합했다가 1086년 복구하였다.[44] 1072년 임현을 진으로 격하시키고 남화현에 통폐합했다가 1086년 복구하였다.[45]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여양현에 통폐합되었다가 복구되었다.[46] 1073년 무덕현을 진으로 격하시킨 뒤 하내현에 통폐합하였다.[47]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무척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6년 복구되었다.[48]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급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7년 복구되었다.[49] 1026년 회주에서 위주 관할이 되었다.[50] 1074년 설치되어 동전을 주조하였다.[51] 1070년 진으로 격하되어 계택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7년 복구되었다.[52] 본래 한나라 때 설치된 하박현(下博縣)이었다. 후주에서 하박현에 정안군(靜安軍)을 설치하고 하박현을 관할로 두었다가 뒤에 복구하였다. 982년 다시 정안군 관할이 되었다. 985년 정안군이 폐지되어 다시 심주 관할이 되었으며, 986년 폐지되었다가 987년 복구되었고 정안현으로 이름을 고쳤다.[53] 순화 연간에 진정부에서 심주 관할이 되었다.[54] 1073년 소덕현(昭德縣)을 진으로 격하시킨 뒤 부양현에 통폐합하였다.[55] 고진채(固鎭砦), 영안채(永安砦), 황택채(黃澤砦), 해회채(海回砦)가 있었다.[56]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고성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6년 복구되었다.[57] 당나라 때 설치된 현이다.[58] 1073년 진으로 격하되어 임성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6년 복구되었다.[59] 백향현과 찬황현은 1072년 진으로 격하되어 고읍현에 통폐합되었다가 1086년 복구되었다.[60] 981년 역주 만성현의 남부를 나누어 보새현에 통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