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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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하영규(河靈圭)
생몰
1892년 6월 6일 ~ 1965년 3월 17일
출생지
경상도 영산현 읍내면 성내리
(현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1]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하영규는 1892년 6월 6일 경상도 영산현 읍내면(현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영산면 동리로 이주했으며, 생선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1919년 3월 13일, 그는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남산에서 남경명·구중회·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비밀리에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독립운동에 한걸음의 후퇴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맹세서에 각기 서명한 후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산면내를 시위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며,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은 부분 취소되었으나 결국 징역 6개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5년 3월 17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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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영산면 성내리는 출생지고 영산면 동리는 본적이자 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