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 메이렐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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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이름
하울 메이렐레스
Raul Meireles

본명
하울 주제 트린다드 메이렐레스
Raul José Trindade Meireles
출생
1983년 3월 17일 (41세) /
포르투갈 포르투
국적
[[포르투갈|

포르투갈
display: none; display: 포르투갈"
행정구
]]

신체
179cm, 78kg
직업
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보아비스타 FC (2001~2004)
CD 아베스 (2001~2003 / 임대)
FC 포르투 (2004~2010)
리버풀 FC (2010~2011)
첼시 FC (2011~2012)

페네르바흐체 SK (2012~2016)
국가대표
파일: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76경기 10골 (포르투갈 / 2006~2014)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1. 개요[편집]


포르투갈 국적의 전 축구선수.


2. 클럽 경력[편집]


포르투갈 보아비스타 유소년 팀에서 축구생활을 시작한 메이렐레스는 성인 축구선수로 데뷔한 뒤, 보아비스타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2004년에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그는 이적하자 주전 미드필더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5-06 시즌에는 포르투의 도메스틱 트레블을 도왔다. 일 년 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첼시를 상대로 2골을 넣기도 했다. 이후에도 핵심선수로서 포르투의 중앙을 굳건히 책임지며 팀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2.1. 리버풀 FC[편집]


영입 초반 활약이 기대보단 아쉬웠다. 4-4-2만을 고집하는 호지슨이 중앙 미들은 스티븐 제라드, 루카스 레이바, 크리스티안 폴센만을 고집한 탓에 메이렐리스가 오른쪽 미드필더로 뛰게 했으니.그런데 폴센보다 더 잘했다 그래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낯선 포지션에서 그럭저럭 제 몫을 해주면서 10/11 시즌, 리버풀에 영입된 선수들 중 유일하게 제 몫을 하고 있었다. [1]

게다가 케니 달글리시 감독 체제하에 공격형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 위기때마다 적절한 활약을 해주며 리그 후반 리버풀의 순위 상승에 큰 도움을 주어 리버풀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본인 또한 리버풀의 생활에 큰 만족을 느끼는 듯 인터뷰 등에서 지역과 팀에 대한 애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기도 하였다.

리버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음에도 토사구팽당했다. 입단 시 낮은 주급으로 계약하나 다음 시즌에 주급 인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영진은 이전 경영진과 한 약속이라며 주급 인상을 해 주지 않았고 되려 첼시에게서 오퍼가 왔을때 로열티 피[2]를 아끼기 위해 이적 요청서를 내라는 요구를 했다.


2.2. 첼시 FC[편집]


파일:external/www1.pictures.zimbio.com/Raul+Meireles+Chelsea+FC+v+Bayer+04+Leverkusen+w77B2sfTK20l.jpg
첼시 FC 시절.

결국 여름 영입시장의 마지막 날인 2011년 8월 31일, EPL의 다른 경쟁팀인 첼시 FC로 £12M의 이적료에 전격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16번을 배정받았다. 이를 두고 리버풀과 메이렐레스 사이에 약간의 설전이 오갔다. 그와중에 팬들 역시 당황해 하기는 마찬가지.

첼시팬들 대부분은 루카 모드리치를 바랐으나 메이렐레스가 오자 떨떠름해 하다가 가격표를 확인하고선 적절한 영입이라 환영하는 쪽이었고, 리버풀팬은 또 다시 시작된 호구질이라며 팀의 보드진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제대로 망했다. 존 헨리 구단주와 그가 이끄는 보드진의 최대 실수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것.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다. 하지만 리버풀에서 확인된대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적합한 선수다. 좌우측 어디에서도 그럭저럭 준수한 활약을 해주지만 중앙에서 뛸때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전술 이해도가 높아 협력 수비등을 통해 빈 공간을 잘 메워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미드필더의 미덕인 활동량이 굉장히 우수하다. 활동량은 이 선수의 최대장점. 감독의 특별한 지시가 없는한 필드 이곳저곳을 누비는 선수다. 약한 피지컬등을 감안하면 여려모로 박지성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

이런 성향 때문에 로테이션을 돌리면 언제든지 평균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다만 노예모드로 돌입하면 체력이 방전되어 대책 없어진다. 11/12 시즌 첼시에서 박싱데이의 노예(...)로 활약중. 챔스 조별예선 발렌시아전 이후 연속된 선발 출장으로 인해 이 악물고 뛰는 모습이 역력하다.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벤피카 전에서는 1-1 동점이던 후반전 막바지에 환상적인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만난 상대는 FC 바르셀로나. 당시 세얼간이가 건재했던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상대로 메이렐레스는 미켈과 프랭크 램파드와 중원을 이뤘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점유율을 내주긴 하였으나 메이렐레스는 이리저리 활발하게 뛰면서 첼시의 수비를 두텁게 하였며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경고 누적으로 인해 메이렐레스는 결승전에 뛰지 못했는데, 다행히 첼시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챔스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2.3. 페네르바흐체 SK[편집]


2012/13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날 약 1000만유로에 터키의 페네르바체로 이적하였다. 이로 인해 첼시의 중앙 미드필더 자원은 미켈, 하미레스, 로메우와 폼 떨어진 램파드만 남았다. 첼시 팬들은 도대체 왜 메이렐레스를 팔았냐고 아우성 중. 그리고 첼시 역시 그 시즌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감독이 잘려나가고 챔스에서 예선 탈락하는 등 메이렐레스의 저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실패한 시즌을 보냈다.정작 메이렐레스 본인도 페네르바체 이적후 그리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리버풀 FC 후반기에 중요한 골을 넣어주긴 했으나 득점력은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은 선수이다. 첼시에서 맡은 역할도 공격형 미드필더 보다는 활동량을 통한 타 선수의 보조나 수비의 역할이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중거리 슛을 벼락같이 때려 버리기 때문에 골문앞 중앙에서 혼자 서성거리고 있다면 가만놔둬선 안되는 선수. 특히 체력이 많이 비축된 경기 초반에 이런 짓을 많이 한다.

12/13시즌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한 이후, 준수한 경기력과 특유의 터프한 플레이를 연이어 선보이며 팬들에게 자신을 어필하다가 갈라타사라이와의 경기에서 주심에게 침을 뱉는 만행을 저지르고 11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3] 시즌의 대권이 갈라타사라이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 데에는 메이렐레스의 이 돌발행동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퇴장당하는 와중에도 가슴에 있는 페네르바체 앰블럼에 연신 키스를 하며 걸어나가던 장면은 이 선수가 얼마나 평소에 소속팀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뛰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겠다.

13/14 시즌에도 그 성질머리 버리지 못 하고, 베식타스 JK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허벅지를 스파이크로 찍어누르고 퇴장당했다 중요한 더비 경기 때마다 퇴장당하기만 하니 페네르바흐체 팬들 속이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폼도 프리미어리그 시절보다 떨어진 모습이다.

2016년 7월부로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FA가 된 이후 원하는 몇몇 팀들이 있었으나 계약하지 않으면서 33세에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았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FC 포르투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주전 미드필더로 뛰었고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중용되었다.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었던 북한과의 경기에서 전반 27분에 선제골이자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대회 첫 골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후 유로 2016에 낙마하는 등 최근엔 잘 소집되지 않았다. 출전 및 득점 기록은 73경기 10골.


4. 플레이 스타일[편집]


기본적으로 미드필드 어디서나 뛸 수 있는 선수였지만 주로 선호했던 자리는 중앙 미드필더였다. 공격과 수비적인 역량 모두를 적절히 겸비했기 때문에 팀과 감독이 바뀔때마다 메이렐레스의 포지션도 조금씩 바뀌어서 어쩔때는 수비형 미드필더[4], 다른 때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담당하기도 했다. [5]

이처럼 다재다능하고 전술적 이해력이 높은, 굉장히 기동성이 높은 선수였으며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보았던 시절에서 알 수 있듯이 태클과 패스에 특히 강점이 있었고 넓은 활동량과 준수한 중거리슛 또한 겸비하고 있었기에 첼시가 장기 부상을 끊은 마이클 에시엔을 대체할 선수로 지목한 바 있고 또한 포르투, 리버풀같은 상위권 클럽들을 전전할 수 있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포르투갈 U-16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6 챔피언십: 2000



5.2. 개인 수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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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술한 폴센은 나이를 많이 먹어 더 이상 경쟁력이 없었고, 레프트백인 폴 콘체스키는 후에 알리 시소코, 알베르토 모레노보다 더 한 부진을 겪으면서 겨우 6개월만에 퇴출당했고, 왼쪽 윙어인 밀란 요바노비치는 베니테스 시절에 이미 영입을 완료한 선수라서 호지슨이 기용하지 않았다.[2] 선수가 이적요청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태업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이적할 시 통상적으로 이적료의 10%를 선수에게 지불한다[3] 후에 대표팀 동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페페가 터키 축구협회에 선처를 요청하여 징계는 줄어들었다[4] 로이 호지슨의 리버풀에서는 후방 플레이메이커였다.[5] FC포르투에서는 데뷔 초 중앙 미드필더였지만, 팀 사정상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업하게 된다. 반대로 2010년 파울루 벤투 휘하의 포르투갈 국대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일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