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뤼프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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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제2대 대통령
카를 하인리히 뤼프케
Karl Heinrich Lübk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46-1994-034-22A%2C_Heinrich_L%C3%BCbke.jpg

출생
1894년 10월 14일
독일 제국 엥크하우젠
사망
1972년 4월 6일 (향년 77세)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재임기간
제2대 대통령
1959년 9월 13일 ~ 1969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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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빌헬미네 코이텐(Wilhelmine Keuthen)
종교
가톨릭
소속 정당





독일연방공화국 제2대 대통령 취임 선서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독일의 정치인으로, 테오도어 호이스의 뒤를 이어 서독의 2대 대통령을 지냈다.


2. 생애[편집]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베스트팔렌 주에서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말 빈곤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측량사로 활동하다가 1차대전 시기에 입대하여 중위로 전역한다. 이후 1930년 가톨릭 중앙당에 입당하면서 정계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수권법을 발의함에 따라 중앙당은 해산되었고, 뤼프케는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투옥된다.[1] 이후 2차대전 시기에는 알베르트 슈페어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각종 군사시설 공사를 담당하는 일을 맡았으며, 이로 인해 나치의 협력자가 아니냐는 루머[2]도 오늘날까지 심심찮게 돌고 있다.[3]

종전 후에는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중앙당을 계승한 기독교민주연합에 가입하였으며 고향이었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농업장관을 담당하다가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에 의해 중앙 정계까지 발탁되어 연방 정부 차원의 농업장관으로 임명된다.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았던 그의 성향에 주목한[4] 콘라트 아데나워는 1959년 테오도어 호이스의 후임 대통령을 결정할 선거의 기민당 측 후보로 뤼프케를 지명하였으며, 의회에서 기민당이 다수를 점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뤼프케는 어렵지 않게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

상술했듯이 독일의 대통령직은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실권은 그의 임기 중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쿠르트 키징어에게 있어서 별다른 눈에 띄는 행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무난히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다가 가만히 있는게 원래 제일 힘든 법 1969년 임기 만료를 3개월 앞두고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한다.[5] 후임으로는 사민당의 구스타프 하이네만이 취임하게 된다. 사임 3년후인 1972년 뤼프케는 서독의 수도였던 에서 세상을 떠난다.

3. 여담[편집]


  • 무척이나 말이 느렸던 인물이다. 당연히 정치인으로는 치명적인 단점. 한번은 연설 중에 그가 자꾸 사람의 이름을 더듬자 답답해진 청중들이 친절히 소리쳐서 알려주었다고(...) 캐굴욕

  • 실제있었던 일인지 단순한 유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뤼프케식 영어(Lübke-Englisch)라는 에피소드가 유행하기도 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문맥, 숙어 같은 것은 죄다 무시하고 단어 단어마다 끊어서 번역을 한 문장을 말하는 건데 번역기 다음과 같다.
뤼프케가 엘리자베스 2세와의 회담을 가질 때의 일이었다. 접견 과정에서 둘은 경마장을 들리게 되었는데 뤼프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이제 곧 (경마가) 시작할 것입니다." 이 문장을 독일어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Gleich geht's los."

영어로 옮기자면 "Soon it will begin" 정도로 옮겨야 됐지만, 영어가 짧았던 뤼프케는 단어 단어마다 끊어서 번역을 했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괴랄한 영어 문장이 완성됐다.

"Equal[6] goes[7] it[8] loose.[9]"

  • 1967년 3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이는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가원수로서는 최초의 방한 이었다.뉴스 박정희의 주장일 뿐이지만, 뤼프케는 학생 데모를 부정적으로 보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독일은 1차 대전 이후 그동안에 전쟁을 2번했고 정권이 몇 번 바뀌고 사회에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지만 1919년에 한번 함부르크항에서 영국배와 독일배가 충돌을 했을 때 한번 학생데모 사건이 있은 연후에 그 뒤에 학생들은 한 번도 거리에 나온 일이 없다.[10] 학생들은 어디까지든지 자기들 이 시기에는 공부를 해야 되고 배우는 시간이고 실력을 양성해야 하는 시간인데 자기들이 직접 이런 일에 참여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의 학생들은 거리에 나오기 좋아합니까? 학생들이 거리에 떠든다고 해서 난 절대 그 사람들이 애국주의 학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4. 둘러보기[편집]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독일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독일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국가원수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터키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발데즈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띠네즈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미테프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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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긴 했다. 그런데 무려 20개월이나 투옥시킨걸 보면 나치가 어떻게는 뤼프케를 가둬두려고 무진 애를 쓴듯...[2] 동독에 의해 뤼프케가 나치 강제수용소의 책임자라는 루머까지 제기된 상황이다.[3] 2차대전 직후 독일에서 나치 경력 자체는 정말 악질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사회생활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 3대 서독 총리였던 쿠르트 키징어리벤트로프의 외교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독일에서 오늘날과 같이 철저한 과거사 반성과 나치 청산 움직임이 벌어진 것은 68 혁명 이후의 일.[4] 독일 현재 헌법상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워낙 호되게 데였던 탓에 실질적인 권력은 전무한 상황.[5] 사실 건강 악화가 아니더라도 사임 3달 후 있었던 총선에서 사민당이 집권했기 때문에 그리 오래 자리를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6] 독일어로 gleich는 '곧'(soon)이라는 의미와 더불어서 '같다'(equal, same)라는 의미도 있다.[7] 독일어 문장의 geht로 '가다'라는 의미이다.[8] 독일어 문장의 's(es)[9] 독일어 문장의 los. 원래는 독일어에서 geht와 los가 합쳐져서 '시작하다'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단어 하나 하나를 끊어서 옮기다보니(...) Soon goes it loose라고만 표현했어도 좀 어투가 고풍스러울 뿐 어느 정도 여왕이 알아들었을 것이다.[10] 그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이후 1968년 서독 역시 68운동의 구심점 중 하나가 되어 곳곳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