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볼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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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 크루트 볼렌더 (Heinz Kurt Bolender)

(1913년 5월 21일 - 1966년 10월 10일)
독일 뒤스부르크 출신인 볼렌더는 1939년에 나치당에 입당해 친위대원이 되었다. 유대인 및 신체장애자 등의 안락사를 담당하는 T4 작전에 참가한 그는 동료인 프란츠 슈탄겔 및 카를 프렌젤과 함께 1942년 4월에 막 완성된 소비블 강제수용소의 간수로 부임했다. 소비블에서 볼렌더는 수인들의 작업감독관으로 일했는데 파울 그로드 친위대 장교와 함께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동향을 감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식 죄수들에게 <어라? 넌 일할 마음이 없나보군?>이라면서 개를 풀어 물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도착하면 가스실로 보낼 자와 일할 자를 구분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그러나 볼렌더의 소비블 근무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1942년 7월에 거짓이혼의 증거를 제출한 혐의로 체포되어 12월에 친위대 법정에 세워지기까지 했다. 1943년 10월에 소비블에서 죄수들의 대탈주가 일어나면서 소비블이 폐쇄되자 볼렌더는 출소 후 소비블의 해체작업에 파견되었다. 그 후 볼렌더는 루블린에서 친위대 경리본부장이던 오즈발트 폴이 운영하던 독일군수산업회사(DAW)에서 일했는데 그는 병기제작의 공적으로 1945년 1월에 제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상했다. 독일의 패전 후, 볼렌더는 아내에게 자신이 죽었다고 증언하게하여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했다. 볼렌더는 하인츠 브룬너라는 가명으로 홀트하임에서 은거했는데 1961년 5월에 서독의 사법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이 진행되었다. 그는 당시 유대인들의 대량학살에 관여한 죄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하겐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던 도중인 1966년 10월 10일에 볼렌더는 구치소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판결은 내려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