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오지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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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개
3. 결과
4. 기타


1. 개요[편집]


八王子城の戦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0년에 오다와라 정벌을 하면서 일어난 전투.

6월 23일에 마에다 토시이에, 우에스기 카게카츠, 사나다 마사유키 등이 이끄는 1만 5천명의 공격을 받자 요코지 요시노부, 카노 이치안, 나카야마 이에노리, 콘도 즈나히데 등이 이끄는 농민, 여성을 포함한 약 3천 명이 저항했지만 하치오지 성은 반 나절 만에 함락되었다.


2. 전개[편집]


마에다, 우에스기의 군세가 차례로 서쪽의 미나미아사카와, 요코가와 등을 거쳐 하치오지에 도착했으며, 6월 22일 새벽에는 성 주변이 짙은 안개에 휩싸인 상황이었다. 6월 23일에 토시이에가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했지만 수성 측에서 사신을 죽였으며, 날이 밝으면서 다이도우지 마사시게, 마스미 카즈사노스케, 우에다, 키루코, 카네코 등의 군세가 선두로 나서서 공격을 시작하자 수성 측에서는 안개로 적을 보지 못했지만 석궁으로 수백 명을 죽였다.

공격 측의 선두 부대는 콘도 데와노카미, 카네코 이에시게 등을 공격해 250명 또는 350명을 죽였으며, 마에다의 군세는 카노 이치안, 나카야마 이에노리, 오오이시 시나노노카미 등의 협공으로 마에다의 아오키 노부테루를 포함한 30여 명이 전사하지만 우에스기의 후지타 노부요시가 히라이 무헨의 안내를 통해 수로를 기습했다. 또한 하치오지 성 안에서 내통자가 불을 지르자 필사적으로 싸우던 카노 이치안, 나카야마 이에노리 등은 자결하고 오오이시 데와노카미는 전사했다.

일설에 아마카스 키요나가가 진영을 불태우는 난전 속에서 나카야마 이에노리는 전사하고 그 아내도 자결했으며, 요코지 요시노부는 산으로 피했다가 히노하라의 산 속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여성이나 아이들은 망루 옆의 고슈덴에 몸을 던져 자결했고 전투는 새벽에 끝났다.


3. 결과[편집]


하치오지 성은 함락되었고 기록에 따라 527명, 680명, 1천여 명, 3천 명이 전사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마에다의 군세는 280명, 우에스기의 군세는 273명을 죽였다고 보고했으며, 전투가 끝난 후에 시신을 공양하는 절에서는 1283구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한다.


4. 기타[편집]


RDG 레드 데이터 걸에서는 학교 축제의 테마를 이 전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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