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구니오
덤프버전 :
분류
- 일본의 남성 정치인
- 일본 총무대신
- 일본 문부과학대신
- 일본 법무대신
- 일본 후생노동대신
- 일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 제34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36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37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38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39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0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1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2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3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4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5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6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7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자유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신진당 국회의원
- 구 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1948년 출생
- 2016년 사망
- 도쿄도 출신 인물
- 일본의 정치인 자녀
-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정치인
- 소화기질환으로 죽은 인물
- 쓰쿠바대학 부속 고등학교 출신
- 도쿄대학 출신
- 욱일대수장
- 정3위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하토야마 이치로의 손자이자 하토야마 유키오의 동생이며 하토야마 지로의 아버지.
2. 생애 및 정치 활동[편집]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가쿠슈인 초등과, 중등과, 도쿄 교육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일찍부터 정치인을 지망해 미국 유학 이후 다나카 가쿠에이 밑에서 비서로 근무했다. 반대로 형인 유키오는 처음부터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정치에 뜻이 없던 형이 훗날 총리가 되고, 구니오는 총리직에 오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1976년 제3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신자유클럽의 추천을 받아 구 도쿄도 제8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낙선했으나, 8개월 만에 다시 열린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1978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고, 1991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에서 문부 대신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93년에 자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한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이시바 시게루 등과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으며, 하타 쓰토무 내각에서 노동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신진당에 참여하나, 1996년에 탈당해 형 유키오와 함께 민주당을 창당하고 부대표로 취임한다. 그러나 민정당과의 합당 등 당의 노선을 두고 형제 간의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다시 탈당해(...) 1999년, 무소속으로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나 이시하라 신타로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1] 이후 2000년에 자민당으로 복당했다.[2] 이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쿄 권역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된다.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당시 민주당 대표 간 나오토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8구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때 구니오는 “저런 사람이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라면서 유세했는데, 재밌는 건 정작 간 나오토가 대표로 있는 민주당의 창당 멤버가 바로 본인이었다는 점이다(...). 결과는 2위로 지역구에서는 낙선했으나 석패율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05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외할아버지인 이시바시 쇼지로[3] 의 출신지인 구루메시가 속한 후쿠오카현 제6구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아소 다로을 지지했다.
이후 2010년 경에 자민당을
그러다가 2016년 6월 21일, 십이지장궤양으로 도쿄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이후 지역구인 후쿠오카현 제6구는 차남인 하토야마 지로가 물려받았다.
무덤은 도쿄 고코쿠지역 바로 앞의 고코쿠지(護国寺)로, 산조 사네토미의 무덤 바로 옆이다. 이외에도 오쿠마 시게노부, 야마가타 아리토모, 도이하라 겐지도 이 절에 묻혀 있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기타[편집]
- 2009년 SMAP의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가 밖에서 옷 벗고 돌아다녔던 사건 당시 어느 인터뷰에서 "대단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왜 그런 자를 이미지 캐릭터로 선택했는가. 부끄럽고, 최악의 인간이다.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해서 여론의 빈축을 산 적이 있었다.
- 2010년 2월 경, 구니오는 "우리 형은 항상 어머니와 부하한테 나눠줄 돈이랑, 부하를 키우는 돈이 필요하다면서 돈을 거두고 있었다"(...)고 말하며 형한테 불리한 발언을 했고, 이걸 요사노 가오루가 캐치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헤이세이의 탈세왕'이라고 비난하면서 구석까지 몰아갔었다.
- 요리가 취미였어서 그의 비서들은 하토야마가 주는 식사를 먹었다고 한다. 또한 어릴 때부터 나비를 좋아해 많이 채취했었다.
- 이와야 다케시 전 방위대신이 와세다대학 졸업 후 구니오의 비서로 활동했다고 한다. 요시카와 다카모리 전 농림수산대신도 니혼대학 졸업 후 그의 비서였다.
- 가와이 가쓰유키가 하토야마의 살아생전 측근이었다. 다무라 노리히사 전 후생노동대신도 그의 파벌에 소속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