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티(백야극광)

불이다! 어서 도망쳐! 불이 났다! 으악! 음... 네, 네가 왜 여기 있지? 내가 방금 크게 소릴 질렀다고? 쳇, 머리가 조금 아파. 방금 악몽을 꿔서 그래. 큰불이 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연기로 자욱했지... 별거 없어, 이런 꿈은 자주 꾸니까 이젠 익숙해. 뭐야? 네가 왜 내 펜던트를 가지고 있어? 뭘 하려는 거야?!... 내가 아까 자다가 떨어트린 거라고?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이 펜던트는 나한테 정말 중요한 물건이야. 넌 콜로서스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이해하겠지. 그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이건 어머니가 나한테 맡긴 마지막 부탁이자, 아버지가 남겨 준 유일한 물건이야... 난 아버지를 본 적은 없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랑 어머니 곁을 떠나셨으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란 건 알고 있어.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랑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아끼셨던 진짜 사나이셨거든.
　

방금 전에 바이스랑 하던 놀이가 뭐지? 카드 뒤집기? 음... 그림책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꼬마 몇 명이 둘러앉아 신나게 웃으면서 카드를 뒤집던 모습이 어린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어. 어렸을 땐 나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싶어 했었지. 하지만 우리 집은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고, 어머니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어. 그래서 친구는 하나도 사귈 수가 없었지. 그래서 말인데... 카드 뒤집기 놀이를 알려주지 않겠어? 해 보고 싶거든. 하지만 난 지금까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놀이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낱말 퍼즐이라면 자신 있지만. 그땐 그림책이랑 신문에 낱말 퍼즐이 자주 실려 있었거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거리였지.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항상 긴장해 계셨고, 항상 바쁘셨어. 그때의 난 어머니가 나한테 더 많은 관심을 쏟아 주셨으면 해서 일부러 말썽을 꽤 부렸었고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너무 없어서 어른들한테 귀염받는 건 무리였겠다 싶지만... 아, 위로는 필요 없어. 난 그렇게 연약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난 이미 굳센 어른이 됐어. 뭐? 그림이 자기가 내 보호자란 소릴 했다고? 보호자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녀석은 나이나 사회 경험이나 나보다 조금밖에 안 많은 주제에, 뭘 뻔뻔하게 어른 흉내를 내고 있어. 진짜 나쁜 녀석이랑 마주친다면 오히려 녀석을 내가 지켜줘야 할 거라고. 음? 네 사회 경험도 나보다 풍부하다고? 알겠어. 만약 네가 나쁜 녀석을 만나면, 너도 내가 지켜주지.
　

나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까딱 잘못해서 뭔가에 불이라도 붙었다간, 너도 타버릴 거라고. 어렸을 땐 실수로 집에 있는 물건들을 태워 버리곤 했었지. 이젠 거의 안 그러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좋아. 혼자서 다니는 건 이젠 익숙해. 내 생김새 때문인지, 나하고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없었거든. 고아원 아이들도 다 날 피했어. 몇몇 아이들이 나한테 했던 가장 [친밀한] 행동은 그저 날 때리고, 욕하고, 비웃는 거였어. 괜찮아, 이젠 익숙하니까. 이미 다 지난 일이기도 하고, 사실 그때도 별 신경 안 썼거든. 그때도 날 괴롭히는 꼬마들보다 내가 훨씬 강하단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굳이 되갚아 주겠단 생각은 안 했어. 난 내가 먼저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짓은 하지 않아. 하지만 악운은 언제나 내 곁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내 삶 속엔 언제나 갑작스러운 큰불과 그로 인한 오해, 심지어는 모함이 존재했으니까... 딱히 너한테 푸념하려던 건 아니었어. 다만 악운이 내 삶에서 떠나 주지 않는다면, 내 쪽에서 녀석을 떠나보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