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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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긍정적인 면
3. 문제점


1. 개요[편집]


인텔리…… 인텔리 중에도 아무런 손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증서 한 장을, 또는 그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텔리……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 가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부르주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수요가 아니 되니 그들은 결국 꼬임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원문 7∼8자 탈락)……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구십구 퍼센트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中

學歷[1] inflation

경제용어 인플레이션에서 그 개념을 빌려온 말로, 국민의 평균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 보통 , , 보단 대학교 이상의 교육을 말한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의무교육은 언어의 통일과 국민 의식 형성 등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보장하는 의무교육제도는 20세기 중반을 지나서 급변하는 사회상을 따라가기에 힘이 부치고 경직된 제도의 문제로 인해 국민이 원하는 지식수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웠고 사교육은 이 틈새를 노려 성장했다. 그 때문에 현대 사회는 의무교육 상한을 고등학교까지 올렸지만, 실제는 이보다도 더 높은 고등교육을 요구하게 되고 대학교대학원 이상의 교육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가 학력 인플레이션의 시작을 불러왔다.

특히나 사회 발전에 따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지고 대학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대학 진학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OECD에서 2012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OECD2010년 대학 진학률이 평균 60%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당 자료의 19페이지를 보자. 호주가 거의 100%에 가까운 진학률로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도 70% 정도로 자료 내에서는 상위권. 가장 낮은 중국도 20%로, 옛날에 비해 크게 올랐다.[2]


2. 긍정적인 면[편집]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 구성원 전반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 자체에는 긍정적인 점도 여럿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투표권을 가지는 국민 개개인의 교육 의식 및 수준이 높아야만 한다. 어차피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부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선거로 선출된 소수 전문가 집단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대략적인 정책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다. 그리고 현대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됨에 따라 그런 최소한의 수준에 필요한 지식 자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후보와 친환경 에너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후보 중 어느 쪽이 우리나라 실정에 더 나을 지를 고려해서 투표하려면, 각 발전 방식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알아야만 한다. 경제 문제에서도 감세 정책을 펴겠다는 후보와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후보가 경합할 때 누구를 선택할 지 판단하려면 경제학도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국민은 후보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일단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정치 문화를 바꾸는 것도 국민이 계몽되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할 이유는 많다. 공장에서 단순 생산직으로 일하는 데에는 대학 교육이 직접적인 쓸모가 없다. 그러나 고용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법언도 있듯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 일반인이 법적 구제 절차나 소송 방법 등을 변호사처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할 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심지어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많이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의무교육만 마치면 법적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되지만, 정작 의무교육 기간에는 자녀 교육법에 대해 배우기는커녕 성교육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직도 한국 정서상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서는 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가르치기 힘들다. 따라서 성인이 된 이후에 대학에서 받는 교양 강의에서나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사회적 비용을 이유로 대학 교육을 제한한다면 오히려 사회적인 부작용(원치 않는 임신, 성병, 성범죄 등)이 클 수 있다.[3] 가정을 이룬 후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서도 부모가 교육을 많이 받았을수록 더 나은 가정교육을 제공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단적인 예로, 호기심 많은 자녀가 이것저것 질문을 할 때 적절히 대답해 주지 못하고 짜증이나 낸다면 자녀의 지능 발달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당장 취업하는 데 필요한 것만 배운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낮은 학력을 대물림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긍정적 효과들을 거두려면 학력이 배움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저 비싼 등록금을 내고 출석만 해서 학위를 받는 것이라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시간과 금전을 낭비할 뿐이다. 그러나 만약 교육이 그렇게 파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교육 제도 문제이지 학력 인플레이션의 문제는 아니다. 너도나도 고학력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당장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지식을 배우고 있으니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는 주체로 본다면, 전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을 때 국가도 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은 자명하다.

물론, 지식과 교양, 능력이 반드시 학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의 능력에 대해서는 흔히들 김기덕, 서태지 같은 사례를 예로 드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제도권 교육을 받은 기간이 짧을 뿐 실질적인 배움의 양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단 얘기다. 김기덕의 경우, 비록 국졸이긴 하지만 프랑스 유학 경험이 있다. 링크 또한 서태지의 경우, 해외에서 녹음 작업을 하면서 외국인 엔지니어들과 교분을 쌓으며 많은 것을 배웠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전에는 나름 일본 진출을 준비하면서 김종서의 부인[4]에게 일본어도 배워 두었기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안다. 게다가 서태지의 집안에 고학력자가 많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낸 정희석이 셋째 할아버지였고, 삼촌들 중에 대학 교수도 있었으며, 아버지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졸자였다. 그런 집안 배경 때문에 대중문화 평론가 이영미는 그래도 어린 시절에 피아노 배울 정도로 잘살지 않았느냐아비투스가 남달랐단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력'을 '學力(능력)'으로 보느냐 '學歷(경력)'으로 보느냐에 따라 저학력자도 고학력자로 평가될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학력(學歷)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같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교육 기관의 졸업 여부만을 의미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선비들을 스승으로 모시며 공부한 사람들의 경우, 적어도 한문 실력은 어지간한 대졸자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로 일부러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자녀들을 공부시킨 경우도 많았다. 한용운의 경우가 이런 케이스인데 어떻게 보면 홈스쿨링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즉 공식적인 학력은 무학일지라도, 서당에서 공부한 어르신이 한글도 배우지 못한 어르신과 동등한 지식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과거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교육 기관이 있지도 않았고, 정보를 접하는 통로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었거나 학교 교육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해도, 학원을 다니면서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으며, 홈스쿨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국민들의 기본 학력이 높아져야 한다. 특히 홈스쿨링은 부모가 고학력자여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고학력자가 똑똑하고 저학력자가 무식하다는것은 아니다. 저학력자 중에서도 똑똑한 사람은 많다. 그리고 6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아무리 못나와도 고등학교까지는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식과 교양은 있고 노무현이나 김대중도 대학은 안나왔지만 대통령이며 LG전자 조성진 부회장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전선에 나가 부회장 되는 등 기업 임원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70년대까지는 대학을 갈 수 있더라도 그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컸기에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것이다.

3. 문제점[편집]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이선 수치는 이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어떤 사람은 외칠지도 모르겠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뭐가 나쁜가? 많은사람들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 추구되며 그 내용과 방법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러하다. 그러나 배움이라는 것이 삶과 동떨어진 불필요한 시험 등에 통과하기 위해서 지식을 암기하고 특정한 교실에 출석을 강요당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강제당하는 것이라면 그 효과는 분명히 나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력 '인플레이션'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형식적인 학습이 많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양식은 풍부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빈곤해진다. 고등 학생들의 삶을 보라. 그들은 충분한 질적 학력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그들의 삶은 풍부한가 빈곤한가?

이한, 《탈학교의 상상력》. 삼인. 125쪽


학력 올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나는데, 그에 반해 취업 등 돌아오는 보상이 매우 적다. 한마디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은 웬만한 복지국가에서 무상으로 해준다고 해도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며, 미국,한국처럼 의무교육이 아닌 국가에서 개인이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기위해 들여야하는 비용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었다.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대출 등으로 부담을 경감하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약한 편이다. 부모 세대는 자식이 대학에 다닐 때 50대가 되는데 은퇴에 대비한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대신에 교육비 부담을 지게 된다. 20대가 직접 교육비를 부담할 경우에는 30대까지 교육비 문제를 주택, 결혼 문제 등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N포세대가 이런 세태를 반영한 말이며 이는 심각한 저출산의 원인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거기에다가 과연 모든 직업군이 대학교 이상의 학력을 필요로 하냐는 문제도 있다. 이는, 학력은 어디까지나 학교에 들어가 일정기간 교육을 수료한 여부일 뿐이지 실제로 지식 수준이 향상되었냐의 여부와는 별개이기 때문. 또한 발전 초중기에는 고학력자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지만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고학력자의 공급은 지금까지의 영향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수요는 점차 줄다가 고정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회계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은 물론 가장 보편적인 능력만이 요구되는 사서 같은 직종까지 자격의 학력화와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도제 훈련 및 취업 중 자격 부여로부터 취업 전 자격 부여(고등 교육의 수료, 필기형 자격 검증 시험)로 바뀌면서 자격증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5]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사회일수록 출세 목적 교육, 사교육이 판을 치게되고 단순히 졸업장, 수료증을 갖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6] 다만 받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란 불안감이 퍼져서[7] 이를 손보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학력을 고용의 주요한 지표로 쓰는 사회 구조는 곧 졸업장 열병을 가져온다. 다시 말해 교육이 자격증 취득과 결합되고 그에 종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교육 기능 자체에 해악적인 영향을 미치며, 학생은 본연의 목적에서가 아니라 졸업장을 따고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지식이나 기술을 배운다.[8]

거기에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육은 3차교육(tertiary education)에 속하는데 외국은 직업교육을 여기에 포함한다. 3차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해 그 공급수요가 는 것인데 그 혜택을 보게 될 기업이나 집단들은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피교육자들이 비용 대다수를 부담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쪽에서는 반값등록금, 국가장학금이 학력인플레를 더욱 야기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반값 등록금과 같은 정부 지원이 수요자의 대학진학 비용을 낮추어 대학진학률을 더욱 상승시키고 학력 인플레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곧 대학졸업자의 경우 취업 시 눈높이를 낮추기가 어려워 청년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고용의 미스매치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졸업을 지연시켜 대학생들의 평균 재학기간을 늘리고, 이로 인하여 추가 간접교육비도 발생하게 된다.[9]

최종적으로는 취업이 되더라도 대학수준 내지 고등교육의 학력이 필요치 않은 일자리에 취업되어 고용의 질이 크게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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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학력은 '능력'으로서의 학력이 아니라 '경력'으로서의 학력을 의미한다.[2] 중국도 대학 정원이 고3 학생수에 비해 매우 적어서 그렇지 대학 진학에 엄청난 열기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교육열 또한 매우 뜨겁다. 가오카오 문서 참조.[3] 사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려면 성교육을 하는 시기를 더 앞당겨서 성에 대해 한참 관심이 많아질 때 해야지 대학에서 성교육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책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중학교·고등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하는 데 저항이 강한 현 시점에서는 대학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는 말이다.[4] 재일교포 출신이다. 즉 원어민에게 외국어를 배웠다는 얘기.[5] "20세기 초에 사서는 '책을 사랑하고, 관리자에게는 책의 구매를, 문의자에게는 적합한 일을 조언해 줄 수' 있기만 하면 되었다. 환언하면 그는 실제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으면 되었다. 1930년대에 사서 지망생은 학교 졸업장이 유용한 재산이라는 말을 들었다. 1950년에 그것은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었다. (보통) 15세 혹은 16세까지 계속해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사서가 될 수 없었다. 1970년에는 두 가지 보다 높은 수준. 즉 보통 아동에 대한 2년간의 추가적인 연구가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었다. 도서관 연합회는 대학이나 CNAA 학위가 오늘날 상급 수준의 G.C.E. 소지자처럼 흔하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1950년대에는 3년간의 최소 도제 훈련 기간이 (2년간의 특별한 훈련을 받은 후) 1년으로 줄어들었고, 1970년대에는 대학 졸업자에게는 3년이 전부 면제되었다. 1970년대에는 3개의 종합 대학과 6개의 종합기술 대학(polytechnics)이 사서 학위 과정을 제공하고 있었다." (로널드 도어, 《졸업장 열병》. 50~53쪽)[6] 특히 생산직의 경우는 대한민국 노동법에 남아있는 학력별 임금 상한 제도가 남아있기 때문에 시급을 적게 줘도 되는 고졸을 선호한다.[7] 특히 한국은 학벌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심한 나라이다.[8] "대부분의 사람이 '교육' 을 말할 때, 그것이 엄격한 훈련에 의해 행해지든지 혹은 더 자유롭고 흥미로운 실험 방법에 의해서 행해지든지 간에, 그들은 어떤 교과목을 습득하는 학습의 과정을 염두에 둔다. 지식은 그 자체로 추구될 수 있고 정신을 사용하는 기쁨 때문에 추구될 수도 있다. 평소에 독서 습관을 가진 소년은 교회에서 성경을 읽는 데에도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나이 먹은 사회과학자는 젊은 동료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컴퓨터를 배운다. 또한 상인의 아들이 더 나은 상인이 되기 위해 회계 기술을 배우는 것과 같이 지식은 이윤과 관련되어 추구될 수도 있다. 또한 의사가 보다 양심적이고 자긍심이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신장에 관한 최근의 보고서를 읽는 것과 같이 소명 의식에 의해 추구될 수 있다. 어쨌든 지식의 습득이 그 본질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되든, 자기 만족을 위해 이용되든지 간에 중요한 사실은 지식 자체의 습득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격 획득의 과정에서는 학생은 지식의 습득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한 것으로 증명되는 데' 관심이 있다. 학생은 지식 그 자체를 위해, 그리고 이 후 실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볼 때 단 한 번 재생하기 위해 지식을 습득한다. 학습과 지식의 재생은 선망하는 직업, 지위나 수입을 얻는 데 필요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만일 교육이 직업 수행에 요구되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라면, 자격 획득이란 직업을 얻기 위한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한 학습이다." (로널드 도어, 《졸업장 열병》. 31~32쪽)[9] 게다가 왠만한 4년제 대학교들은 재학연한을 두고 있어서 졸업을 연기하다가 재학연한을 초과해버리면 말 그대로 제적이 된다. 재학연한을 초과해버릴거 같으면 그냥 졸업 후에 취업을 하는게 백배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