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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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2.1. 성모
2.1.1. 전탁음의 소실
2.1.2. 견모(見母, /k/), 계모(溪母, /kʰ/), 군모(群母, /ɡ/), 효모(曉母, /x/), 갑모(匣母, /ɣ/) 간 혼동
2.1.3. 의모(疑母, /ŋ/)의 소실
2.1.4. 일모(日母, /ȵ/)의 소실
2.1.5. 기타
2.2. 운모
2.2.1. 1등운과 2등운 한자음 구분 모호
2.2.2. 입성의 잔존
2.2.3. 운미 (/-t/)가 (/-l/)로 변화
2.2.4. 운미 /-j/의 혼란
2.3. 한국어의 음운 현상의 영향을 받음
3. 오음을 통한 고대음 유추?
4. 한국 한자음 빈도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어에서의 한자 독음이다.


2. 특징[편집]


한국 한자음이 중국 어느 시대의 한자음을 기반으로 하는지 여전히 연구대상이지만, 대체로 당나라 말기에 중국에서 통용되던 한자음이 기반이라고 여긴다. 반절 표기를 기반으로 한자음이 수입된 뒤, 한국어 자체에서 일어난 음운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 외에도 어휘 측면에서는 ( < 墨 mək), 거리( < 街 kreː)과 같이 상고음이 남기도 하며, 시금치(<시근ᄎᆡ < 赤根菜), 배추(<ᄇᆡᄎᆡ<白菜)와 같이 당나라 말기보다 더 늦은 시기 중국의 한자음이 남은 경우도 있다.

2.1. 성모[편집]



2.1.1. 전탁음의 소실[편집]


한국어에서는 전탁음(유성 파열음)이 변별적 자질(distinctive feature)을 가지지 못한다. 이에 성모가 전탁음이었던 한자음들은 모두 전청음과 차청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1]


2.1.2. 견모(見母, /k/), 계모(溪母, /kʰ/), 군모(群母, /ɡ/), 효모(曉母, /x/), 갑모(匣母, /ɣ/) 간 혼동[편집]


중국 한자음이 한국 한자음에 들어올 때 이 다섯 성모의 경우 유난히 혼란이 많았다. 이미 조선 시대 초기의 기록인 동국정운에서부터 이 5성모의 혼란을 설명하였다.

或依漢音, 或從俚語, 而字母七音淸濁四聲, 皆有變焉。

혹은 중국음에 의존하거나 혹은 우리나라 현실음에 따르거나 하여서, 성모[2]

의 칠음(七音)과 청탁(淸濁), 사성(四聲)이 모두 변한 것이 있으니,

若以牙音言之, 溪母之字, 太半入於見母, 此字母之變也; 溪母之字, 或入於曉母, 此七音之變也。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의 글자가 태반이 견모(見母)에 들어갔으니, 이는 성모가 (청탁(淸濁)이 차청에서 전청으로)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이 (아음에서 후음으로) 변한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견모는 ㄱ, 계모는 ㅋ, 군모는 ㄲ, 효모는 ㅎ, 갑모는 ㆅ으로 들어와야 했지만, 실제로 현실음은 많이 달랐다. 특히 심한 것이 계모(溪母)인데, 계모의 원음은 /kʰ/로 한국어의 ㅋ에 해당하나, 206운 상 쾌운(夬韻)에 해당하는 한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자들이 평음화되어 견모(見母, /k)(ㄱ)에 흡수되거나(溪: *켸 → 계, 去 : *커 → 거, 克 : *큭 → 극)[3], 일부는 효모(曉母, /x/)에 흡수되었다.(恢 쾨 → 회) 또한, 견모(見母)에 속하는 한자들이 효모(曉母)로 흡수된 예도 있으며(革 *격 → 혁)[4], 정 반대로 효모에 속하는 한자가 견모에 흡수된 예도 있다.(喝 *할 → 갈) 갑모(匣母)의 경우 해성부가 견모인 경우 견모로, 이외의 경우에는 효모로 뿔뿔이 흩어졌다.(曷: *ᅘᅡᆯ → 갈[5], 害: ᅘᅢ → 해)[6] 군모(群母)의 경우 견모(見母), 계모(溪母), 효모(曉母)로 나뉘어 흡수되었다. [7]

이는 고대-중세 초기 한국어에서 ㄱ/ㅋ/ㅎ이 변별되는 음소였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학문적인 논쟁으로 올라가는데, 적어도 셋 모두가 변별되는 음소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 ㄱ/ㅋ가 서로 변별되지 않았거나, ㅋ/ㅎ가 서로 변별되지 않았거나, 셋 다 변별되지 않았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 한자음뿐만 아니라 15세기 중세 한국어 어휘에서 ㅋ이 어두에 나오는 어휘가 고작 5개(캐다, 콩, 크다, 키[농기구], 키[높이])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나, 받침의 ㅋ이 16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8] 아니면 일본어처럼 처음에는 /k~g/ 음소만 있었는데 한국어에서 일부 어중 또는 어말에서의 발음이 약화되어 /x~ɣ/가 생겨났을 점도 있겠다. 즉, 그 과정 속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을 가능성도 크다.

邯도 마찬가지로 한단지몽 등 사자성어로 쓰일 때 '한'으로 쓰이면서 동시에 강감찬 등 인명으로는 '감'으로도 쓰였다. 이 때문에 한동안 '강감찬'으로 읽어야 할지, '강한찬'으로 읽어야 할지 논란도 있었다.

비슷하게도 酵도 한자도 발효(醱酵)라는 단어에는 '효'로 읽고, 무교병(無酵餠)라는 단어에는 '교'로 읽는다.

회화나무(괴화나무)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2.1.3. 의모(疑母, /ŋ/)의 소실[편집]


보통화와 한국어서는 어두의 /ŋ/ 발음이 소실되었지만 베트남어와 광동어에서는 이 어두의 발음이 보존되어 있고[9], 일본어와 민남어 같은 경우에는 /ɡ/(유성 연구개 파열음)으로 변형되어 발음된다. 그 흔적으로 魚, 五, 銀, 玉을 현대 한국어로 각각 '어, 오, 은, 옥'이라 하는데 일본어에서는 비탁음에서 비롯 된 ギョ, ゴ, ギン, ギョク라고 한다. 이 네 글자 역시 과거 중고 시대의 중국어 발음이 /ŋ/이었음이 반영되어 있다.[10]

고대 한국어의 어두에서 연구개 비음이 나타났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 훈민정음 창제시기 중세 한국어에서는 어두의 ㅇ, ㆁ, ㆆ가 변별되는 상태가 아님을 해례본 제자해, 합자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11] ㅇ의 음가를 유성음 /ɦ~ɣ~ɰ/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통상 영성모(零聲母, zero consonant)로 보므로 업모(業母)의 ㆁ나 읍모(挹母)의 ㆆ이 ㅇ의 욕모(欲母)와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 한자음처럼 영성모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12] 이는 연산군 대에 발간된 개간법화경언해에서 ㆁ이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13][14]


2.1.4. 일모(日母, /ȵ/)의 소실[편집]


조선시대 초기까지만해도 일모가 반치음 (발음 /z~ɹ/)의 형태로 남아있었지만 두시언해의 간행 시기를 전후로 소실되기 시작해 16세기 후반에는 거의 소실되었다. 반치음이 있던 시기에 이 발음이 있는 한자들을 대충 추리면 兒 儒 仁 然 若 穰 仍 柔 任 耳 乳 忍 壤 蹂 二 閏 讓 認 妊 染 肉 辱 日 熱 入 人 정도이다. 사라진 반치음은 대부분 말그대로 소실되어 음가가 사라졌고[15] 몇몇은 ㅅ(/s/)으로 바뀌었다. 이후 이 반치음은 첩해신어왜어유해처럼 /z/(유성 치경 마찰음)을 표기하는데 사용했다.[16]

한편 보통화에서는 반치음을 쓰던 한자의 성모는 한국의 조선시대 후기에 유성 권설 마찰음 /ʐ/ 또는 권설 접근음 /ɻ/으로 바뀌었다.[17]


2.1.5. 기타[편집]


古無輕脣音(고무경순음), 古無舌上音(고무설상음), 古無正齒音(고무정치음)


2.2. 운모[편집]



2.2.1. 1등운과 2등운 한자음 구분 모호[편집]


咍, 灰운과 夬, 佳, 皆 일부 운의 ㆎ~ㅚ로 표현되며, 寒, 桓운과 刪, 山운처럼 안~완으로 표현되는 등 구분이 모호하다. 일본 한자음의 경우 오음에서 대부분 2등운과 1등운을 각각 エ행과 ア행으로 구분한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일본 한자음에서의 オイ와 ヲイ로 되어있는 한자음이 자체가 없다.


2.2.2. 입성의 잔존[편집]


한국 한자음에는 현대 북경 관화에서는 사라진 입성[18]이 여전히 존재한다.


2.2.3. 운미 (/-t/)가 (/-l/)로 변화[편집]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不宜入聲, 此四聲之變也。

'질(質), 물(勿)'의 운(韻)들은 마땅히 단모(端母, [t])로서 종성(終聲)을 삼아야 할 것인데, 세속에서 래모(來母, [l])로 발음하여 그 소리가 느리게 되므로 입성(入聲)에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사성(四聲)의 변한 것이다.

- "동국정운" 서문 중에서


종성 /t/ 발음이 모조리 /l/로 변화한 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한국 한자음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중국 방언에서 일어난 음운 현상이 수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음운현상으로 보는 설, 한자음이 들어오던 시기 한국어 발음에 -t가 없어서, 혹은 개음절 구조였던 고대 한국어에서 매개 모음 사이에 끼어 있던 -t-가 유사한 -l-로 변한 것이 반영되었다는 설로 나뉜다.[19][20]

이는 중국 원나라 시기 북방 관화의 종성 /-t/발음이 /r/ 등으로 변화한 것과 매우 비슷한데, 당시 고려인들이 원나라의 한자 발음을 그대로 따라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송이 멸망하고 금나라, 원나라가 차례로 들어서던 시기 중국 한자음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당시 고려인 통역관들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새로 배워야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21] 한국어의 차용어 '붓(←붇) (筆, 필)'에서 보듯이 고대 중국어의 [t] 종성이 그대로 한국어에 남았다. 상고한어 발음 '붓(<-붇)'[22]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당시 북방 한자음 '필'을 다시 도입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의 본음은 에 가까웠으나 한국에서는 음운 변화로 이 되었다. 범어 Buddha를 佛陀라고 옮긴 사람들은 원래는 '붇타', 더 정확하게는 '부타'로 읽힐 것을 기대했겠으나[23] 현재의 한국 한자음은 '불타'가 되어 원음과 더 멀어졌다. 이 현상과 관련하여, 한국 한자음으로 종성 ㄹ이 들어간 한자 대부분은 일본 한자음에서는 t로 시작하는 ツ나 チ로 끝나게 된다. 예컨대 喝(갈/カツ), 列(렬/レツ), 一(일/イチ(イツ)), 八(팔/ハチ) 등. 해당 한자음들은 베트남어에서도 종성 t 발음으로 읽힌다.

동국정운에서도 종성 ㄹ은 국어에서만 마땅히 쓸 바이며 한자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 지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l로는 입성[24]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정운에서는 -/l/을 입성으로 만들기 위해 을 덧대서(ㅭ) 불파음으로 만드는 이영보래(以影補來)[25]를 만들었다.

여담으로 (串) 등의 종성이 [t]로 끝나는 한자가 있긴 하지만, 이는 串의 원래 발음인 '관, 천'과는 다르며, 우리말 '곶'을 표현하기 위해 훈차한 것[26]이므로 '한자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들은 사실상 전부 'ㄷ' 받침이 'ㄹ'로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한자음 특유의 종성교체 현상에 관해서, 그 기원을 고대 고구려어에서 찾는 의견이 존재한다. 중국 기록인 <양서>에 의하면 고구려에선 성(城)을 kolo라고 발음했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이를 忽(홀)자로 표기했는데, 忽의 중고한어 발음은 xwot[27]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에서는 忽자를 이미 "골"이라고 읽었을 수 있다는 얘기. 알렉산더 보빈은 이 kolo의 원형이 몽골어, 만주어 등에서 발견되는 qoton이라고 추정했는데, "동북아 언어 중 -t가 -l로 변하는 현상은 한국어에서만 나타난다"며 고구려어가 고대 한국어라는 근거로 제기했다.[28][29]

한편 고대 신라어에서도 종성 /t/가 이미 유음으로 발음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주로 영남지방의 지명 및 신라의 인명에서 증거를 찾곤 하는데, 거칠다는 뜻의 황(荒)을 거칠(居柒/居七/居漆)로 음차한 흔적(김거칠부, 거칠산국), 박제상의 신라식 음차/음독으로 추정되는 모말(毛末)[30]이 이미 당대에 모맏이 아닌 모말(momal 또는 momar)로 발음된 흔적[31], 박혁거세의 부인이 나타났다는 알영정(閼英井)[32], 도시/고을/언덕/성 정도의 뜻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신라어 벌(伐)[33]의 훈차음으로 [ㄹ]음을 종성으로 쓰는 불(火)을 선택한 것(달구화(火)현=달구벌) 등이 있다.

그러나 筆의 '붇'과 신라~고려어에서의 현상을 보면 직관적인 답이 보이지 않다. 한자를 홀로 쓸 때 /-t/가 보존되었으나 문장으로 사용됐을 때 변화하던 음운현상에 맞게끔 /-r/(現: /-l/)화 되었을 가능성도 있겠다.[34]

여담이지만 중고한어가 통용되던 시절의 중국 측에서는 반대로 외국어의 -r 또는 -l 종성을 -t로 음차했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튀르크어 Türük를 突厥 (중고한어: *dwət-kuɑt)으로, '몽골'을 蒙兀 (중고한어: muwng-ngwot)이라 음차한 바 있다. 한국 한자음에서는 -t가 -l로 변하는 바람에 오히려 중국어보다도 해당 단어들의 원어와 더 비슷하게 되었다. 또한 -l이 -t로 적힌 신라어 지명은 한국 기록이 아닌 삼국지 등에서 처음 등장하므로, 중국 측에서 같은 방식으로 음차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35]

2.2.4. 운미 /-j/의 혼란[편집]


한국 속음에서만 보이는 특징으로 끝이 'ㅣ'로 끝나야 하는 한자에 'ㅣ'가 없거나 그 반대가 된 한자들이 있다.
  • 腦(노 → 뇌), 西(셰 → 셔 → 서)


2.3. 한국어의 음운 현상의 영향을 받음[편집]


한국어의 음운 현상인 단모음화, 구개음화, 원순모음화의 흔적이 보인다. '셩(셔ᇰ)', '샹(샤ᇰ)' 등이 '성', '상'으로 바뀌거나(예를 들어, 星은 桑經切(ᅟᅡᆼ{ᅟᅡᇰ} + ㄱᅟᅧᆼ{ᅟᅧᇰ})이라는 반절이 존재하여 원음은 '셩(셔ᇰ)'이었으나 '성'으로 바뀌었다. ㅅ이 그 자체로 구개음이 되었다가 평음으로 회귀한 흔적이다.[36] 'ㄴ, ㄷ, ㅌ, ㄹ'은 'ㅚ'를 제외하고는 'ㅜ'나 'ㅗ'와 붙은 모음이 오지 않으며 'ㅅ, ㅈ, ㅊ'는 'ㅜ'나 'ㅗ'와 붙은 모음에는 대부분 받침이 오지 않는다. 예로 段(원음 돤), 跧(원음 좐)이 '단', '전'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개합음(j, w)이 사라지는 단모음화의 예를 보이며, 傳(원음 뎐)이 '전'으로 바뀌는 구개음화, 北(원음 븍)이 '북'이 되거나 勿(원음 믈)이 '물'이 되는 등의 원순모음화가 보인다. 한국 한자음 중에 '디'나 '티'라고 읽히는 한자가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37] 한 예로, 天地의 원음은 '텬디'였으나[38] 구개음화로 인해 '천지'로 바뀌었으며, 마찬가지로 峙의 원음은 '티'였으나 '치'로 바뀌었다. 분당선한티역부산 1호선대티역(大峙驛)이 峙의 역사적 발음을 반영한 경우다. 長은 집운(集韻)에서 제시하고 있는 반절이 直良切(ᅟᅵᆨ + ㄹᅟᅣᆼ)로 원음은 '댱'이었으나, '쟝'을 거쳐 '장'으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황달(黃疸)처럼 활음조 현상으로 한자음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3. 오음을 통한 고대음 유추?[편집]


일본 한자음에서는 남북조시대의 한자음이 백제를 거쳐 전파되었다.[39] 이를테면, 東의 발음은 동이지만 일본 한자음에서는 한음(トウ, /tou/)와 오음(ツウ, tū/)이 있는데[40] 이중 한국한자음은 한음(トウ, /tou/)에 가까운 형태로 오음을 참고하여 당시 한자음을 둥(< 두ᇰ)*으로 유추하거나. 또 하나는 광운의 운모 文중에 文의 경우 오음에서 (モン, /mən/)[41] 이므로 먼*으로 유추하는 방법이다. 중고한어의 중뉴현상 또한 オ의 을류로 표현된다.[42] 합구호는 대부분 ヲ(wə)이므로 따라서 ㅝ로 유추한다. エ의 갑/je/, 을/e/류[43]를 이용해 유추하는 건 마찬가지. 또한 관찰하다 보면 ㅙ, ㅐ에 대응하는 ワイ, アイ는 있지만 ㅚ, ㆎ를 대응하는 ヲイ, オイ로 된 한자음은 발견할 수 없다.[44] 다만, 이 방법은 많이 참고하면 현대 한자음은커녕 중세 한자음과도 붕 떠버릴 만큼 괴리감이 커지고, 매우 확실하다는 것은 아니니 주의하고 명심해야 한다.


4. 한국 한자음 빈도[편집]


파일:external/koreanwikiproject.com/%E6%BC%A2.png 한국 한자음 빈도

[1~10위]
32 27 25 20 19
[11~106위]
[107~308위]
[309~407위]

[1~10위] [11~106위] [107~308위] [309~407위]
* 위 숫자는 해당 음절에 배당된 교육용 한자 수이다.




5. 기타[편집]


  • 엄익상의 논문(2005)에서 정진취안(鄭錦全)이 개발한 CCLang을 이용해서 유사도를 측정하는데, 『漢語方言詞彙』와 『漢語方音詞彙』의 자료를 모두 DB화 해서 어휘 유사도, 음 유사도, 상호 이해도를 컴퓨터로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상호 이해도 측면에서는 광동어(광저우)가, 음 유사도는 객가어(메이셴)가 가장 높은 것으로 계산됐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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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러니하게도 백제를 거치며 유래된 일본 한자음의 오음은 전청음과 전탁음을 구별이 가능하다.[2] 한자음의 첫소리[3] 단 夬만은 유일하게 정반대로 전청이 차청이 된 케이스다(괘 → 쾌).[4] 그래서 革의 발음을 중국에선 한국인 화자에겐 다소 생뚱맞게도 ge라고 읽는다.[5] 曷의 성부인 匃은 견모이다.[6] 중국에서는 갑모(匣母)가 모두 효모(曉母)로 흡수되었다. 曷를 hé, 害 hài라고 발음 하는 식.[7] 중국에서는 군모(群母)가 음평성과 양평성일 때는 계모(溪母)로, 상성과 거성일 때는 견모(見母)로 흡수되었다.[8] 정윤자, 한국어 음소 'ㅋ'의 역사적 고찰, 2007[9] 그래서 Nguyễn를 표기할 때 ㆁ 발음이 소실된 한국에서는 '응우옌, 구엔, 응원' 등 별의 별 표기법이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 같았으면 ᅌᆌᆫ으로 깔끔하게 끝냈을 것이다. 그나마 '응우옌'이 가장 가깝다.[10] 일제강점기 초기의 일어교육을 부분적으로 다룬 김동인김연실전에서 が행을 어두인데도 [응아\]행으로 발음한다는 내용이 제법 자세하게 나온다. 학교를 ガクコウ[응아구고우\]라고 쓰고 ガッコー[응악꼬ː\]라고 읽는다는 부분.[11] "그러나 그 소리는 ㅇ과 비슷하므로 운서에서 ㆁ[疑\]과 ㅇ[喩\]은 많이 서로 섞여 쓰인다.[而其聲與ㅇ相似 故韻書疑與喩多相混用\]", "첫소리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므로 우리말에서는 통용할 수 있다.[初聲之ㆆ與ㅇ相似 於諺可以通用也\]"[12] 홍용기, 15세기 한자 초성의 현실음 소고, 2002[13] 차익종, 개간법화경언해의 한자음에 대하여, 2015[14] 하지만 '원판'이 아닌 '개간'한 것은 16세기이므로 중세 한국어의 음운이 빠르게 변하던 시기이며 옛이응이 소멸해가던 시점이다.[15] 초성에서의 표기는 'ㅇ'으로 함.[16] 오음으로 추측하면 과거에는 [ㄴ\] 계통 발음이였을 것으로 추정.[17] 중국어에서 z~ʑ 발음은 중고한어까지 존재했었다. 훈민정음의 창제 시기에 /z~ɹ/ 발음은 민남어나 중국 일부 도시의 방언에서만 존재했었다.[18] -k, -t, -p로 끝나는 한자음. 다만 후술하는 내용과 같이 한국어에서 -t는 -l로 바뀌었다.[19] 참고할 만한 논문으로는 주재진, 한자음 -l 운미 연구의 성과와 과제, 2006 와 엄익상 교수의 2019년 Lingua논문이 있다.논문링크 엄익상 교수는 차용어음운론의 측면에서 한국어 inventory에 -t 종성이 없었기 때문에 /l/로 차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20] 한자를 백제에게서 전파받은 일본 오음(吳音)에서 -t 입성이던 글자들은 끝이 チ(/ti/ > /tɕi/)로 끝나게 되었다. 백제 한자음에는 -t 입성이 있었다는 얘기. 참고로 한음(漢音)은 ツ/tɯ > tsɯ/로 끝난다.[21] 이 고난(?)은 원나라에서 급제한 목은 이색주원장에게 원나라식 중국어로 이야기하다가 못 알아들을 수준의 북쪽 사투리라고 조롱받은 것을 끝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가, 다시 명청교체기에 변동을 겪어야 했다.[22] /p(r)ut/[23] 한국 불교의 한자음 관용에서 범어 발음을 한자로 옮긴 단어는 한 음절의 끝 자음과 다음 음절의 첫 자음이 동일한 경우에 앞쪽의 자음을 없앤다. 예를 들어 南無는 '남무'라고 읽어야겠지만 불교계는 '나무'라고 읽는다. '석가모니'란 단어도 불교계의 관용적 읽기는 '서가모니'이다. 따라서 이 관용을 '붇타'에 적용하면, 붇의 -t를 지워서 '부타'가 된다.[24] k, t, p처럼 음절 끝이 폐쇄되게 하는 소리들. 현대 국어에서는 ㄱ, ㅅ(ㄷ), ㅂ 계통의 받침자들에 해당한다.[25] 영모(影母, ㆆ)를 사용해서(以) 래모(來母, ㄹ)가 불파음이 되도록 돕는다(補)는 뜻.[26] 이 한자를 고구려어로도 '곶'이라고 읽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치' '구치' 와 같은 말로 표기되어 있으며 '입' 이라는 뜻이다.[27] Baxter-Sagart식으로 복원된 중고한음 기준. 해당 중고음은 Baxter(1992)의 복원 중고음을 살짝 고쳤다고 한다.[28]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추정'만 가능하지 고대한자음이 그나마 남아있는 筆의 '붇'이란 표기는 설명할 수 없다.[29] 원나라 중국어의 입성 -t가 -r이 된 것처럼, 원간섭기 한국어에 어느 정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원나라 세력이 일본에 원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지금까지 입성 -t를 ツ로 보존한 것일 수도 있다.[30] Baxter-Sagart식의 복원음으로는 상고한어/중고한어 둘 다 대략 모맏(MawMat) 정도의 음으로 추정된다.[31] 일본서기에서 박제상을 모마리(毛麻利)라고 기록했기에 교차검증이 된다.[32] 이 또한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도 적혔으므로 閼의 종성이 t가 아닌 l/r였음을 알 수 있다.[33] Baxter-Sagart식 복원음은 bjot(중고한어)/m-pat(상고한어)으로 둘 다 R,L 음이 아닌 T음으로 끝난다.[34] 즉, 상술한 筆를 단독으로 사용하면 '붇'이였으나 만기 고대 한국어에서 'ㄹ'화 현상으로 맞게 "부ㄹ~" (現: 필)로 쓰였을 가능성을 말한다.[35] 삼국지가 쓰여진 무렵의 중국어(동한어) 발음은 이미 까마득한 서주 시대의 상고음보다는 중고음에 훨씬 가까웠다.[36] 사실 1930년대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이전에는 성, 정, 청이라는 음은 철자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ᅟᅥᆼ'이 오로지 ㅅ, ㅈ, ㅊ 뒤에만 온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현실 발음에 따라 ㅅ, ㅈ, ㅊ 뒤의 모든 j를 떨어뜨리고(샤, 쟈, 챠 → 사, 자, 차) ㄷj, ㅌj를 모두 ㅈ, ㅊ으로 바꿨는데(댜, 탸 → 자, 차), 이렇게 하면서 본래 셩(셔ᇰ), 뎡(뎌ᇰ)/졍(져ᇰ), 텽(텨ᇰ)/쳥(쳐ᇰ)이었던 음이 모두 성, 정, 청으로 바뀌었다. 한글 점자에서 성, 정, 청의 표기에 ㅅ+ᅟᅧᇰ, ㅈ+ᅟᅧᇰ, ㅊ+ᅟᅧᇰ을 사용하는 것에서 당시 한국어 철자법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37]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디'나 '티' 같은 표기법은 일제강점기 전까지 통용되어 왔다. 음식디미방이나 최남선경부텰도노래(京釜鐵道歌)가 대표적인 예이다.[38] 실제로 상고음 검색기에서 天의 반절을 他前切(ㅏ + ㅈᅟᅧᆫ)로 제시하고 있다.[39] 단순히 5모음밖에 없어보여도 상대 특수 가나 표기법을 통해 甲/乙류가 있어 참고하기 유용하다.[40] オ는 갑(甲)류[41] オ는 을(乙)류[42] 이렇게 되면 금(金), 은(銀)의 ㅡ가 ㅓ가 되어 '검', '언(< ᅌᅥᆫ)'이 되어야 하는데 수건 '건'처럼 중뉴B에 속해도 ㅓ의 형태를 보이는 한국 한자음이 존재하므로 납득할 수 있다. 즉, 여기서 유추 가능한 사항은 고대음 형태의 중뉴현상은 ㅓ > ㅡ 가 되었다는 것.[43] /je/ > ㅕ~ㅖ, /e/ > ㅓ~ㅔ(< ㅢ)[44] 그걸 관찰 해보면 대부분 エ, ヱ로만 대응한다. 이런 점도 고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