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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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30년에 상하이에서 창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
3. 1930년에 창당된 만주 혁신의회의 여당
4. 1935년에 만들어진 조소앙의 독립운동 단체
4.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1937)와 전국연합진선협회(1939)
5. 1940년에 창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
6. 1963년에 창당된 정당
7. 2022년에 창당된 정당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정당
대한제국 ~ 미군정
(1897 ~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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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bgcolor=#dcdcdc,#222> ||<|8><-2> 공산정당 ||<-7> 조선의 붕당 ||<|10><bgcolor=#dcdcdc,#222> ||
||<-5><bgcolor=#6a1309> 황국협회 ||<-2><bgcolor=#87ceed> 독립협회 ||
||<-7><bgcolor=#ffC87C> 신민회 ||
||<-7><bgcolor=#005ba6> 대한민국 임시정부 ||
||<|7><bgcolor=#fffff0>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3><bgcolor=#f02815> 의열단 ||<|3><bgcolor=#fff8dc> 조선혁명당 ||<|2><bgcolor=#00008b> 한국독립당 ||<-2><bgcolor=#00008b> 한국독립당 ||<-2><bgcolor=#f5deb3> 대한인국민회 ||
||<bgcolor=#f0fff0> 한국혁명당 ||<|2><bgcolor=#00008b> 한국독립당 ||<bgcolor=#90ee90> 대한인동지회 ||<bgcolor=#007dc2> 흥사단 ||
||<-2><bgcolor=#722F37> 신한독립당 ||<-2><bgcolor=#ffb6c1> 신간회 ||
||<-4><bgcolor=#ff8200> 민족혁명당 ||<|2><bgcolor=#80ff00> 한국국민당 ||<|2><bgcolor=#00ffff> 흥업구락부 ||<|2><bgcolor=#fff000> 수양동우회 ||
||<bgcolor=#90253f> 경성 콤그룹 ||<bgcolor=#ffbb00> 조선건국동맹 ||<bgcolor=#dc143c> 조선민족혁명당 ||<bgcolor=#ffdb58> 조선혁명당 ||<-2><bgcolor=#4c516d> 한국독립당 ||
||<bgcolor=#d82018> 전국평의회 ||<bgcolor=#da251d> 건국준비위원회 ||<bgcolor=#c9062a> 조선독립동맹 ||<|2><-4><bgcolor=#4c516d> 한국독립당 ||<|2><bgcolor=#0000ff> 독립촉성중앙협의회 ||<bgcolor=#7cfc00> 조선민족당 ||
||<bgcolor=#cc0000> 조선공산당 ||<bgcolor=#da460d> 조선인민당 ||<bgcolor=#c70125> 남조선신민당 ||<|4><bgcolor=#008000> 한국민주당 ||<colbgcolor=#f00000> 조선민주당 ||
||<|3><bgcolor=#353839> 독립노농당 ||<-3><bgcolor=#cc0000> 남조선로동당 ||<|3><bgcolor=#27176f> 대동청년단 ||<|3><bgcolor=#4f7fd4> 조선민족청년단 ||<|3><bgcolor=#ffffe0> 청년조선총동맹 ||<|3><-2><bgcolor=#1271b5> 대한독립촉성국민회 ||<|3><bgcolor=#FF0000> 서북청년회 ||
||<|2><bgcolor=#cc0000> 남조선로동당 ||<-2><bgcolor=#e31910> 사회노동당 ||
||<-2><bgcolor=#e31910> 근로인민당 ||
|| 진보정당 || 조선로동당 (남로당파) || 진보정당 || 조선로동당 (연안파) ||<-7> 보수정당 / 민주당계 / 진보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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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진 독립운동 단체 겸 민족주의 정당이다.

다른 당들에 비해 역사가 복잡한데, 같은 해에 상해와 만주라는 다른 두 지역에서 같은 이름의 정당이 탄생하였고, 합당과 탈당 등 일련의 사건을 거쳐 상해 쪽 한국독립당이 재건되었으며, 그로부터 몇 해 뒤에는 상해와 만주의 한국독립당이 하나의 이름으로 다시 합쳐졌다. 해방 후에도 같은 이름의 당이 두 번 등장하는데, 이 문서에서는 당들이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서술한다.


2. 1930년에 상하이에서 창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편집]


한국독립운동 정당
한국독립당
(임시정부)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재건임시정부)
1930년 1월 25일에 이동녕, 안창호, 김구 등 26인이 독립투쟁전선 통일과 지방파벌 청산이란 목적 하에 상해에서 결성한 당. 설립할 당시 조소앙삼균주의를 당의 정의 및 강령으로 채택하였고, 덕분에 한국독립당은 주의와 정강을 갖춘 정당으로서 반일적 민족운동과 무력적 파괴운동을 투쟁방식으로 하는 혁명적 정당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한 이들 중 대부분이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의 임시정부는 성과가 미비하여 해체를 하냐 마냐 하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 당은 서로 대립하는 인사들을 민족주의 통일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결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국독립당은 설립 당시에는 조직, 선전, 훈련 등의 반일운동을 광범위하게 벌이기로 결정했으나, 실제로는 당세 확장을 위한 조직 활동과 기관지 발행을 통한 선전 활동에 치중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로 인해 일제의 검색이 강화됨에 따라 상해를 떠나 항주로 근거지를 옮겼고, 그 이후에는 당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재무부, 내무부, 총무부 등의 부서를 설치했다. 또한 김철, 조소앙 등의 주도 하에 기관지 <진광>을 창간하고 각종 선언서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선전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국독립당의 외곽 단체로는 상해한인청년당,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 상해한인소년동맹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상해한인청년당이 기관지 발행 등의 선전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수행하였다.


3. 1930년에 창당된 만주 혁신의회의 여당[편집]


1920년대 초 만주의 무장 독립운동 세력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의 3부로 나뉘어 있었다. 1920년대 중후반 민족유일당 운동의 영향으로 만주 지역에서도 3부 통합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통합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하나의 단체로 완전히 통합하지 못하고 북만주 지역의 혁신의회(1928)와 남만주 지역의 국민부(1929) 둘로 나뉘게 되었다. 그 둘 중 김좌진이 주도하고 있었던 혁신의회는 1년 뒤인 1929년에 한족총연합회로 개편되었다.

1930년에 김좌진이 암살당한 뒤, 지청천이 남은 이들을 수습하여 한족총연합회를 한국독립당으로 개편하였다. 1933년 한국독립당은 활동 근거지를 만주에서 중국 본토로 옮기고 한중연합군을 구성하여 쏠쏠한 전과를 올렸으나 중국공산당의 압력으로 얼마 안 가 해산되고 말았다.

한국독립당은 1934년 한국혁명당과 합당하여 신한독립당을 창당하였고, 신한독립당은 1935년 5당 합당에 참여하여 민족혁명당을 창당하였으나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해 얼마 안 가 조소앙의 재건 한국독립당이 출범하면서 신한독립당 계열도 같이 탈당하였다. 이후 지청천이 1937년에 탈당하여 조선혁명당을 창당하였고, 조선혁명당은 이후 1940년에 한국국민당 및 한국독립당과 합당하여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다.


4. 1935년에 만들어진 조소앙의 독립운동 단체[편집]


1931년에 일본이 벌인 만주사변은 한인 독립운동 세력에게 기회가 되었다. 중국인들의 항일 구호가 높아지면서 한중 연합이 급속하게 진전된 것이다. 이러한 정세에 따라 독립운동단체들의 역량을 집중하여 대일통일전선을 형성시키자는 의견이 나와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이 출범하였고, 한국독립당은 의열단, 신한독립당과 합당하여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이하 민족혁명당)을 창당하였다. 5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족혁명당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계열 세력에 의해 주도되자 조소앙1935년 7월에 탈당하여 1935년 9월 25일 조소앙·박창세 등은 민족혁명당을 이탈하여 한국독립당의 재건을 선언했고 창당하였다. 합당을 반대했던 김구 또한 합당 중에 빠져나와 1935년 11월 항주에서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였다.[1]

이후에는 민족혁명당은 협동전선으로 출발했지만 결집한 이들의 성향과 노선 등의 차이로 인해 점차 분열되었다. 조소앙 역시 당의 노선 변화에 불만을 품고 당을 나와 재건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다. 재건 한국독립당은 이후 독자적으로 활동하였으나 재정적 문제로 인해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했다.

김구한국국민당(1935년), 지청천의 조선혁명당(1937년)과 함께 한국독립당(1940년)으로 합당하였다.


4.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1937)와 전국연합진선협회(1939)[편집]


1937년 4월 이후, 중국 관내의 반(反) 민족혁명당 세력은 김구의 한국국민당, 조소앙의 재건 한국독립당,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분리된 상태에서는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당 연합을 시도하게 된다. 조소앙은 재건선언 당시 정치상 견해가 부합되는 세력과의 결합을 천명했고, 민족혁명당을 탈당한 뒤 조선혁명당을 결성한 지청천 역시 일본과 대립하는 모든 세력을 연결한다는 정강을 채택하여 당이 연합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리하여 1937년 8월, 각 당의 대표들이 난징에 모여 회담한 끝에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약칭 광복진선)가 결성되었다.

그 후의 중국 관내의 민족해방운동은 김구가 이끄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양립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두 단체는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목적이 같았으나, 투쟁 방략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결국 민족통일전선운동은 김구와 김원봉을 중심으로 하는 양대 진영의 대립만 키우면서 항일독립운동전선의 대동단결은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일전쟁이 절정에 이르자 중국 국민당 총재 장제스는 둘의 합작을 권유하였는데, 마침 항일독립전선운동을 통일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기에 김구김원봉은 1939년 5월 「동지동포제군에게 보내는 공개통신」을 발표하여 양 진영의 연합전선 형성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이후 한국국민당, 재건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민족혁명당, 조선혁명자연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청년전위동맹 등 총 7개 단체가 모여 7단체회의를 거쳐 전국연합진선협회가 발족하였지만 몇몇 단체들 의 이탈로 인해 세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얼마 안 가 소멸하고 말았다.


5. 1940년에 창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독립당(194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1963년에 창당된 정당[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독립당(196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2022년에 창당된 정당[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독립당(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편집]


이후로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1세기한독당이라는 군소정당이 또다시 등장했다. 당명 그대로 자신들의 당은 한국독립당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실상 연관성도 없을 뿐더러 이 시점에서 한국독립당은 일반 대중에게 완전히 잊힌 상태였기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소멸했다.


9.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5 11:13:34에 나무위키 한국독립당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김구는 일제에 의해 수배중이었기 때문에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 없어서, 부득이 가흥을 오가는 선박 위에서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열어 한국국민당을 창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