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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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Korean Film Archives

파일:한국영상자료원 로고.svg
정식 명칭
한국영상자료원
한자 명칭
韓國映像資料院
영문 명칭
Korean Film Archives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설립일
1974년 1월 18일 (50주년)
설립 목적
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관계 문헌ㆍ음향자료 등 영상자료의 수집ㆍ보존ㆍ전시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예술적ㆍ역사적ㆍ교육적인 발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4조
업종명
그 외 기타 협회 및 단체
대표자
김홍준
주무 기관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주주
해당사항 없음
기업 분류
기타공공기관
직원 수
100명(2022년 3분기 기준)
미션
영상자료의 수집·보존·활용으로 한국영화의 예술적·역사적·교육적 발전에 기여한다
비전
영상자료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국민의 영상 아카이브
소재지
본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관련 웹 사이트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사이트
관련 전화번호
대표 전화: 02-3153-2001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영화필름 등의 제출
5. 사업
6. 역대 원장
7. 자료
8.1. 시네마테크 프로그램 목록
9. 영상도서관
9.1. 영상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희귀작
10. 참고 자료
11. 노동조합 현황



1. 개요[편집]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4조(한국영상자료원의 설치 등) ①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관계 문헌·음향자료 등 영상자료의 수집·보존·전시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예술적·역사적·교육적인 발전을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한국영상자료원을 둔다.
②한국영상자료원은 법인으로 한다.
⑤한국영상자료원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민법」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특수법인으로 한국 영화 필름의 보고이자 영화사 연구에 힘쓰는 기관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상암동)에 터를 잡고 있으며[1], 문화콘텐츠센터 내에 한국영화박물관과 함께 있다. 어둠의 경로에서도 볼 수 없는 고전 영화들을 무료[2]로 볼 수 있다.


2. 역사[편집]


1974년에 영화진흥공사가 북한이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 정회원이 된 데에 자극을 받자, 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를 세웠다. 초기에는 남산 영진공 사옥에 입주하며 영화 자료 보관만 한정된 채 1976년 FIAF 옵저버 자격을 획득했고 같은 시기 영진공과 함께 남산 구 KBS TV스튜디오 건물로 옮겼다. 1985년 FIAF 정회원이 된 후 1990년 서초 예술의전당 예술자료관으로 옮겨 1991년부터 현 명칭이 됐다.

1994년 영상자료 보존 사업에 대한 국고 보조를 처음 받기 시작하여 1996년 영화법 폐지 후 '영화진흥법'이 새로 제정되자 국내 영화필름 등을 납본받기 시작했다. 1998년 '한국영화정보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한 뒤 2002년 개정 영화진흥법(2006. 4. 28. 법률 제7943호로 폐지.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전신) 시행에 따라 특수법인으로 전환됐다.

2006년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를 개설 후 2007년 5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내에 있는 새 건물로 이전했고, 6월에 영상도서관을 열고 11월 고전영화 VOD 서비스를 개시했다.

2008년 시네마테크KOFA 및 한국영화박물관을 연 뒤 2016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파주보존센터'를 열었으며, 2018년 동남아시아태평양시청각아카이브협회(SEAPAVVA)의 정회원이 됐다.


3. 특징[편집]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희귀 고전 명작들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디지털 복원해서 발매한다. 참고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런 작품들을 사면 훨씬 싸다.

자료원 직원들은 '영화는 사유재산이 아닌 문화유산'이란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이유를 설명하자면 수많은 한국 영화들, 심지어 1980년대 초반 영화들은 의무납본제가 없어서 원본 필름을 재활용하거나 수거하여 녹여 은단을 만들거나 밀짚모자 틀을 만드는데 썼기 때문에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게 꽤나 많았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 필름이 1946년작 <자유만세>였을 정도였다.[3] 창립 초창기에 직원들은 영화인들을 찾아가 부탁해가며 필름을 위탁이나 기증 형식으로 거저 모았고, 기반이 점차 다져지면서 외국에 수출했거나 국내에 있는 복사본들을 발굴하든가, 심지어 폐업 일보직전의 단관영화관이나 수집가들의 집까지 찾아다니며 자료를 찾아 복원하고 있는데 이만희 감독의 만추같은 작품은 아직도 필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래도 법령 때문에 수집된 필름들이 많아서 복원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해외 발굴은 1990년에 일본과의 1년간의 교섭 끝에 <망루의 결사대(1942)> 등 일제강점기 말기 영화 3편을 처음 찾아낸 것이 기원이고, 2003년 북한영화 전문가인 이효인이 원장으로 취임한 뒤 중국과 러시아 등지의 아카이브를 뒤져가며 2004년부터 2년 동안 <미몽>(1936) 등 총 8편의 영화를 발굴해냈다. 복원 DVD도 파는데 이건 러시아 고스필모폰드에서 구한 걸 디지털 복원한 거라고... 거기서 발행한 잡지에서 의하면 디지털 복원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 하녀. 하녀의 경우, 영상자료원에서 구한게 약 10분 정도가 없는 필름이었던 관계로 영상자료원이 별도 보유 중이던 해외 상영용 영문자막 프린트 필름을 사용하여 네가 필름을 복원, 자막을 지우고 색감을 재조정하여 원래 필름 상태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 뒤[4] 결손부를 끼워맞춰 한벌의 상영용 프린트를 만들어 내는 고된 작업을 거쳤다. 그 외에도 충무로 등지에서 원로 영화인들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채록해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책으로 낸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해외 기관으로는 영국 영화 협회가 있다. 사실상 한국영상자료원의 선조격 되는 곳.[5]

내부 사정이 그리 풍족하지 않다고 한다. 현재 국회 심의를 거쳐 책정하는 1년 예산으로는 복원 작업하고 남은 돈으로 내야 하는데, 자체적으로 블루레이를 1년에 4편 정도 밖에 못 낸다고 하며, 2000년대 초반까진 검색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아 직원들은 자료 수가 몇이나 되냐는 매니아들의 전화 통화를 받고 자료실을 헤매기도 했다.

또 블루레이 발매가 상당히 정전 위주로 가는 경향이 있어서 아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영화광들이 많다. 현재는 몬도 마카브르나 크라이테리온 콜렉션 같은 해외 블루레이 발매사와 협업하는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4. 영화필름 등의 제출[편집]


영화도 출판물처럼 납본제도가 있는데, 일단 소장되고 나서 외부에 상영하거나 방송, VOD 판매 등을 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영화제작업자는 상영등급을 분류받은 때에는 당해 영화의 원판필름·디스크 등 또는 그 복사본과 대본(臺本)(이하 "영화필름등"이라 한다)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한국영상자료원에 제출하여야 한다(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5조 제1항).

또한, 외국영화 또는 상영등급을 분류받지 않아도 되는 영화를 수입 또는 제작한 자가 당해 영화가 보존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당해 영화필름등을 한국영상자료원에 제출할 수 있다(같은 조 제2항).

한국영상자료원은 위와 같이 영화필름등을 제출한 자에 대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영화필름등에 대한 보상에 필요한 재원은 국고에서 부담한다(같은 조 제3항).


5. 사업[편집]


한국영상자료원은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행한다(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4항).
  • 제출되는 영화필름등의 보존과 보상
  • 국내외 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관계 문헌·음향자료 등 영상자료의 수집
  • 수집된 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관계 문헌·음향자료 등 영상자료의 보존과 복원
  • 영상문화 발전을 위한 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관계 문헌·음향자료 등 영상자료의 활용 및 전시
  • 영상정보화 및 콘텐츠 활용 사업
  • 그 밖에 한국영상자료원의 설립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


6. 역대 원장[편집]


1984년까진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겸임하였다.

  • 김재연 (1974~1976)
  • 노영서 (1976~1980)
  • 장근환 (1980~1981)
  • 이진근 (1981~1984)
  • 정연구 (1984~1990)
  • 호현찬 (1990~1993)
  • 최무룡 (1993~1994)
  • 신우식 (1994~1997)
  • 정홍택 (1997~2003)
  • 이효인 (2003~2006)
  • 조선희 (2006~2009)
  • 이병훈 (2009~2015)
  • 류재림 (2015~2018)
  • 주진숙 (2018~2022)
  • 김홍준 (2022~)


7. 자료[편집]


내부에 한국영화박물관도 있는데 이만희(돌아오지 않는 해병)나 하길종, 유현목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영화 본편들은 필름으로 보관되어 있는데 이걸 보고 싶으면 10분당 1만 5천원씩, 게다가 대관료까지 합하면 대략 30만원 가까이 드는데, 7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 그리고 필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상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이런저런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물론 이건 상영 필름으로 볼 때만이고, 디지털 매체로 변환된 사본으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6] 당장 위에 언급된 작품 상당수는 영상자료원 공식 유튜브에 풀버전이 올라와 있어서 집에서도 손쉽게 관람 가능하나, 영상도서관 안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VOD 자료들도 있다.

자료원 소장자료를 외부에서 상영하거나 VOD/블루레이 등 2차 매체로 팔려면 저작권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1996년 의무납본제 이전까지 모은 국산 자료들은 위탁이나 기증 형태로 보존돼 있는데, 이 중 영화인들에게 위탁해서 모은 자료들은 저작권자를 모르거나 저작권자가 거절할 시엔 배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몇몇 원로 영화인들이 자료원을 찾아와 필름을 돌려달라며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후술할 <씨네21> 기사에 나오는 방규식(1939~1998) 감독이 그 예이다.

수업료(1940)

몇몇 희귀 필름들은 국가등록문화재 제 342호~347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각 순서대로 미몽, 자유만세, 검사와 여선생, 마음의 고향, 피아골, 자유부인, 시집가는 날.

한편 지금도 자료 기증을 받고 외국 반출 자료를 찾고 있는 등 자료를 계속 추가 중이다. 방송자료[참고] 문서도 참조.

8. 시네마테크KOFA[편집]


지하 1층에는 일반석 321석+장애인석 4석 규모의 1관과 일반석 150석+장애인석 2석 규모의 2관의 두 개의 상영관이 있어서 매일 1~3회씩 상영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안내에 따르면, 1관의 스크린 크기는 1264cm * 540cm, 2관은 880cm * 483cm이다. 즉, 1관은 2.35:1의 시네마스코프 비율이고, 2관은 1.85:1의 비스타비전 비율이다. 상영작의 화면비에 따른 마스킹이 이뤄지고 있으며, 상영작의 국내 판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큐타이틀을 이용한 세로 자막 영사밖에 안 된다.

주로 고전영화나 독립영화, 비교적 덜 알려진 외국영화 등[7]을 무료상영하는데, 특정영화가 보고싶으면 XXX회고전이나 전작전을 노리는게 좋다. 하지만 VOD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라든가...(김자옥 주연. 이때만해도 그녀는 하이틴 스타였다)

월별로 상영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영화 예매료는 0원으로 현장 예매가 아닌 온라인의 경우에는 맥스무비와 연동되어 예매 수수료 500원이 붙었는데 2017년 3월부터 자체 예매 시스템을 도입해 온라인 예매도 0원이 되었다. 온라인 예매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온라인 좌석 70%, 현장 좌석 30%씩 나누어 예매를 받고 있다.

무료라는 점 때문인지 관람객 매너가 좋지 않다. 관객의 절반 정도는 시간 때우러 온 근처 거주 노인들(...). 쿠엔틴 타란티노스탠리 큐브릭 같은 네임드 감독, 최근 상영작, 감독이나 배우의 GV가 있는 날은 그래도 젊은 층도 많은 편이다. 비교적 쾌적한 관람을 원하면 저녁 7시 이후 상영되는 영화를 노려보자.

물론 젊은 세대도 노매너가 있는데 예매를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관객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홈페이지 접속해 취소를 하는데 3분도 걸리지 않지만 예매료가 없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

2019년 2월 1일부터 노쇼(No-Show) 근절 정책이 시행되었다. 30일동안 예매를 해놓고 취소를 하지 않아 미입장 처리되는 매수가 5매가 될 경우, 30일 동안 온라인 예매가 정지된다.


8.1. 시네마테크 프로그램 목록[편집]




[[한국영상자료원|[[파일:한국영상자료원로고.png
500]]]]

{{{+3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프로그램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9. 영상도서관[편집]


2층에는 영상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영화 관련책이나 VOD, VHS, DVD, Blu-ray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예전에는 신분증을 맡겨놓고 이용하는 시스템이었지만 2012년 ~ 2013년 경에 회원등록제로 바뀌었다. 데스크 옆에는 물품보관함이 있다.

상암동 본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파주보존센터에서도 영상도서관 이용이 가능하며, 영화를 플레이어에 넣고 헤드폰을 끼고 감상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매너가 필요하다.

영화 관련 정보와 VOD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관 홈페이지로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가 있는데 2018년 9월부터 모든 VOD가 전면 무료화되었다.


9.1. 영상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희귀작[편집]


이 작품들은 저작권 등의 문제로 외부에 배포되거나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영상도서관에서만 감상이 가능하다.



10. 참고 자료[편집]



11. 노동조합 현황[편집]


  • 전국공공전문노동조합 한국영상자료원지부: 미가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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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지털미디어시티역보다 수색역에서 내리면 가까우니 참고.[2] 블루레이, DVD, VHS, VOD 소장본 한정. 필름 소장본은 별도의 비용이 든다.[3] 이마저도 박학, 독은기 등 월북 영화인들이 출연한 탓에 편집/재녹음해서 1975년에 공개됐다.[4] 그러나 2008년 시네마테크 KOFA에서 첫 상영회 당시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갑자기 필름그레인이 줄어들고 화면이 선명해지는 바람에 결손 부분이 티가 좀 심하게 났다. 이후 재개봉했을 때와 DVD/블루레이에선 그나마 나아졌으나, 여전히 티는 난다.[5] 국영기관, 영화 보관/발굴/복원 사업 주도, 시네마테크 등 비슷한 구석이 많다.[6] 필름 상영은 사실상 행사급은 가야 대여가 가능하다. 그나마도 네거티브나 포지티브는 보존 문제로 열람 자체가 불가능하고 릴리즈 프린트가 대다수. 아예 디지털 파일이나 베타테이프로 상영하는 경우도 많다.[참고] 제목이 이렇게 됐으나, 4.2 영화 문단에 영화 자료 보존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7] 서울아트시네마가 세계 영화 위주로 상영한다면 영자원은 아시아/한국 영화 상영이 많다. 부산시네마테크는 그 중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