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몽관계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한국-인도네시아 관계|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동티모르 국기.svg
동티모르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파일:캄보디아 국기.svg
캄보디아

파일:라오스 국기.svg
라오스

파일:브루나이 국기.svg
브루나이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키스탄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방글라데시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파일:부탄 국기.svg
부탄

파일:몰디브 국기.svg
몰디브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파일:투르크메니스탄 국기.svg
투르크메니스탄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키르기스스탄

파일:동튀르키스탄 깃발.svg
위구르
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파일:오키나와현 현기.svg
오키나와
파일:일본 원형 국기.svg
파일:사하 공화국 국기.svg
사하 공화국
파일:러시아 원형 국기.svg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유럽
[[한국-우크라이나 관계|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파일:몰도바 국기.svg
몰도바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슬로바키아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
몬테네그로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룩셈부르크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파일:몰타 국기.svg
몰타

파일:바티칸 국기.svg
바티칸

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북마케도니아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파일:덴마크 국기.svg
덴마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파일:모나코 국기.svg
모나코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파일:산마리노 국기.svg
산마리노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슬로베니아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라트비아

파일:알바니아 국기.svg
알바니아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리투아니아

파일:코소보 국기.svg
코소보

파일:리히텐슈타인 국기.svg
리히텐슈타인

파일:안도라 국기.svg
안도라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파일:북키프로스 국기.svg
북키프로스

아메리카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파일:파나마 국기.svg
파나마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엘살바도르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과테말라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베네수엘라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콜롬비아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에콰도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트리니다드 토바고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자메이카

파일:아이티 국기.svg
아이티

파일:도미니카 연방 국기.svg
도미니카 연방

파일:수리남 국기.svg
수리남

파일:가이아나 국기.svg
가이아나

파일:세인트키츠 네비스 국기.svg
세인트키츠 네비스

파일:세인트루시아 국기.svg
세인트루시아

파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svg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파일:벨리즈 국기.svg
벨리즈

파일:바하마 국기.svg
바하마

파일:그레나다 국기.svg
그레나다

파일:앤티가 바부다 국기.svg
앤티가 바부다

파일:바베이도스 국기.svg
바베이도스

아프리카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파일:마다가스카르 국기.svg
마다가스카르

파일:말라위 국기.svg
말라위

파일:코모로 국기.svg
코모로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파일:케냐 국기.svg
케냐

파일:르완다 국기.svg
르완다

파일:모잠비크 국기.svg
모잠비크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파일:감비아 국기.svg
감비아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파일:세네갈 국기.svg
세네갈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파일:모리타니 국기.svg
모리타니

파일:콩고민주공화국 국기.svg
콩고민주공화국

파일: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파일:가봉 국기.svg
가봉

파일:콩고 공화국 국기.svg
콩고 공화국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파일:보츠와나 국기.svg
보츠와나

파일:짐바브웨 국기.svg
짐바브웨

파일:에스와티니 국기.svg
에스와티니

파일:우간다 국기.svg
우간다

파일:토고 국기.svg
토고

파일:잠비아 국기.svg
잠비아

파일:카보베르데 국기.svg
카보베르데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파일:지부티 국기.svg
지부티

파일:기니비사우 국기.svg
기니비사우

파일:기니 국기.svg
기니

파일:적도 기니 국기.svg
적도 기니

파일:시에라리온 국기.svg
시에라리온

파일:부르키나파소 국기.svg
부르키나파소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코트디부아르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공화국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파일:리비아 국기.svg
리비아

파일:튀니지 국기.svg
튀니지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파일:상투메 프린시페 국기.svg
상투메 프린시페

파일:남수단 국기.svg
남수단

파일:레소토 국기.svg
레소토

파일:앙골라 국기.svg
앙골라

파일:카메룬 국기.svg
카메룬

파일:차드 국기.svg
차드

파일:세이셸 국기.svg
세이셸

파일:나미비아 국기.svg
나미비아

파일:모리셔스 국기.svg
모리셔스

파일:말리 국기.svg
말리

파일:니제르 국기.svg
니제르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파일:부룬디 국기.svg
부룬디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오세아니아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파일:피지 국기.svg
피지

파일:파푸아뉴기니 국기.svg
파푸아뉴기니

파일:솔로몬 제도 국기.svg
솔로몬 제도

파일:키리바시 국기.svg
키리바시

파일:팔라우 국기.svg
팔라우

파일:마셜 제도 국기.svg
마셜 제도

파일:투발루 국기.svg
투발루

파일:사모아 국기.svg
사모아

파일:통가 국기.svg
통가

파일:바누아투 국기.svg
바누아투

파일:미크로네시아 연방 국기.svg
미크로네시아 연방

파일:나우루 국기.svg
나우루

다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북한 국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ASEAN 깃발.svg
아세안

파일:아프리카 연합 기.svg
아프리카

과거의 대외관계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발해 · 고려 · 조선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몽골|

파일:몽골 국기.svg
]]
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Бүгд Найрамдах Солонгос Улс
몽골
ᠮᠤᠩᠭᠤᠯ ᠤᠯᠤᠰ/Монгол
Mongolia

1. 개요
2. 단순 비교
3. 상세
4. 국민 감정
5. 역사적 관계
5.2. 고려시대
5.4. 20세기
5.5. 21세기
5.5.1. 2010년대
5.5.2. 2020년대
5.5.3. 탈북 루트
6. 몽골과 한국의 정체성
7. 경제 교류
8. 문화 교류
8.1. 언어
9. 교통 교류
10. 갈등
11. 대사관
12. 여담
13. 관련 기사
1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몽관계(韓蒙關係)

대한민국몽골의 관계.


2. 단순 비교[편집]


항목
대한민국
몽골
면적
100,412km²
1,564,116km²
인구
51,625,561
3,121,772
1인당 GDP
$35,196
$4,151
명목 GDP
$1조 8,239억 (10위)
$127억 2,400만 (131위)
국방비
463억 달러
0.91억 달러
IMF 분류
선진국
개발도상국
국가수반
윤석열 대통령
우흐나 후렐수흐 대통령

3. 상세[편집]


몽골에서는 의외로 한국에 대해 역사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역사적인 호감은 몽골 제국 쪽에서만 해당하는데 정작 그 당시 고려는 인적, 물적 자원을 죄다 몽골에게 뜯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고려 매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매부터 시작해서 비단, 금, 수달 가죽에 심지어는 여자까지 바치라고 해서 많은 고려 공녀들이 몽골로 끌려갔다.

그후 명나라 주원장에 의해 중원에서 추방당하여 몽골 초원으로 쫓겨 갈 때 베이징을 초토화하려다가 철회한 이유는 그 당시 베이징에는 고려인이 대거 거주하고 있었는데, 같은 종족을 죽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며 북원 시대에는 사절을 파견하여 여러 차례 조선 조정에 명나라를 함께 정벌할 것을 권유했고 이것을 눈치챈 명나라의 압력이 조선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몽골 제국 이래로 고려를 말로만 우호국이었지 준식민지처럼 취급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우호국이란 건 어디까지나 몽골인들의 처지에서고 여몽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한국인 처지에서는 당연히 좋은 기억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고려는 그나마 끈질기게 몽골에게 항쟁한 덕분에 몽골군에게 그냥 짓밟히고 멸망당했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때로는 고려 왕족에게 만주 지역까지 공식적으로 통치하게 맡겼다. 이들이 침략자인 건 변함없지만, 당나라청나라 같은 중국 통일왕조들도 한반도 처지에서 침략자였던 건 마찬가지인데다 현재 몽골은 한국을 위협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많이 옅어져 있다.

어쨌든 아래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정치 사정들과는 별개로 몽골인들이 고려와 고려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면 가졌지 딱히 악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다는 점은 명백하며 이게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도 고려 시절 껄끄러운 기억이 있긴 하지만 주변국인 일본, 중국과는 달리 이들과 관련이 없고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몽골까지 싫어할 이유는 없기에 현대 몽골에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치면 한국과 만주족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여타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그렇기도 하지만 몽골인들은 한국인들의 생각보다 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한식을 즐기며,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식한다. 특히 자국의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상당히 많고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겨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경찰관이나 서비스업 종사자들 중 의외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꽤 많다.[1]

이런 부분만 부각해 일부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는 몽골 관련 ‘국뽕’ 컨텐츠가 대거 생겨나기도 했으나, 실질적으로 몽골내에서 오래 체류한 현지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오히려 반한 감정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문서의 갈등 항목에서도 후술되겠지만 울란바토르 중심가에는 가라오케가 무척 많은데, 가라오케 붐을 일으킨 것이 한국인이고, 가라오케를 성매매의 온상으로 만든 것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또 한국인 남성이 몽골인 여성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촬영한 일도 있고, 한국의 건설회사가 몽골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중도금을 빼돌린 사기 사건도 몽골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거론되지 않는 한국 관련 사건이 꽤 많아지면서 반한 감정도 꽤 생겼다고 한다. #

신냉전이 발생한 이후, 몽골은 자원부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주요 협력 대상국으로 거론되고 있다.#


4. 국민 감정[편집]


IRI의 2017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몽골인 응답자 중 73%는 한국에 대해 호감이 간다고 응답했으며,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답변은 20%였다.


5. 역사적 관계[편집]



5.1. 고대[편집]


만주 지방의 서부는 몽골 고원과 연결되어 있었고 만주 중부에서 농경을 하는 고구려인들을 비롯한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여러 민족들은 서부의 동호, 선비, 거란 등 유목민족과 교류가 빈번하였다. 실위 문서 참조. 그러나 몽골족, 몽골이라는 정체성은 중세에 칭기즈 칸이 몽골 고원을 통일한 이후에 성립되는 개념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과 몽골 양국은 한일관계의 임나일본부설, 한중관계의 동북공정과 비슷하게 고대사 귀속의식 관련한 갈등도 없다. 비교하자면 미국 건국 이전 미국 남부 지역 원주민들과 멕시코 고원의 원주민들이 서로 교류했다고 미국-멕시코 관계로 쳐주지 않으며 오늘날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외교 관계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해석에 따라서 한몽관계의 기원은 고구려와 선비족 사이의 관계 및 발해와 거란족(몽골어족 계열 언어 사용) 사이의 관계 그리고 여요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는 있지만 양국 외교 관계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몽관계, 원 간섭기로 거슬러올라간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5.2. 고려시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여몽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원 간섭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국과 몽골이 가장 깊은 관계를 맺었던 시대이다.


5.3. 조선시대 이후[편집]


몽골은 내몽골북원이 들어서고 1388년 붕괴했다. 이후 내몽골은 명나라오이라트 쌍방과 고비 사막과 만리장성을 경계로 각각 대립하다가 후금이 들어선 이후 북원의 후계인 차하르부가 청태종에게 귀부하여 원의 옥새를 바치면서 청나라의 일부가 되었고, 혼인 동맹으로 사실상 복속되었다. 그리고 외몽골의 경우 할하 부족이 정착하였으나 곧 등장한 오이라트의 후신 준가르의 위협을 받다가 청에 복속했다.

조선 초기에는 몽골과의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조선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몽골어가 가능한 역관들을 육성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첩해몽어, 몽어유해, 몽어노걸대 같은 몽골어 교재가 출간되기도 했다. 원나라가 몰락할 때 탐라총관부가 위치해 있던 제주도가 고위층의 피난처로 고려되기도 했다. 또한 명나라에서 북원을 정벌하고 조선의 군력을 견제하고자 대량의 군마를 요구하여, 조선 조정에서는 원나라 시기 목장으로 사용됐던 제주도의 군마로 조달하고자 했다. 여기에 몽골계 목호와 동조한 현지인들이 거세게 반발하였고 그들의 군력이 너무나 막강하여, 이전 고려시대의 목호의 난 때처럼 진압에 애먹어 세종 대에야 겨우 진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내외몽골 둘 다 조선과 거리가 멀어서 사실상 한몽교류는 끊겼다가 정묘호란병자호란만주족과 일체화되어 팔기군의 일원으로 등장한 내몽골 기병들이 한성을 약탈하면서 최악의 형태로 돌아왔다.

참고로 청나라의 초기는 몽골 제국을 계승한 만주족을 표방한 만몽연합정권의 성격도 있었다. 병자호란 때 청태종(홍타이지)은 만몽혼혈이었다. 즉, 그의 아버지는 누르하치(청태조-만주족)이고 어머니는 몽골족의 공주였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으로서는 대몽항쟁의 악몽을 떠올릴 만했다. 한성 약탈을 자행한 팔기부대(기마병)의 주력은 분명히 몽고병, 즉 내몽골군으로 청병이라 표시된 만주군이나 한병이라 표시된 중국군과는 구별된다. 또 삼전도의 굴욕 당시에 항복 문서는 몽골어한문으로 적히기도 했다.

이후 조선에 우역이 돌자 몽고에 사절단을 보내 를 대거 수입해오기도 했다.


5.4. 20세기[편집]


의사 및 독립운동가였던 이태준일제강점기 때 몽골로 건너가 활동했다.

외몽골적백내전에서 소련위성국몽골 인민 공화국이 되었고 이후 공산국가로 남았다. 1948년북한과 먼저 수교하여 북한 단독수교국으로 있었고 그것 때문에 징기스칸 같은 독일 노래도 공산국가 찬양곡이라며 금지되었다.

외몽골은 자연스레 교류가 없어 말 그대로 남이 되었고, 외몽골이 1921년 소련의 원조로 독립해 아시아 최초 공산국가가 되면서 대한민국과는 적대관계가 된 반면 북한과는 우방이 되어 6.25 전쟁 당시 군사원조까지 해 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서울을 3일만에 점령한 북한탱크병은 몽골군(독소전쟁 때 베를린을 점령한 몽골계 러시아군)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출처:신동아). 그외에 군마 약 3만필을 제공했고 북한고아의 일부를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냉전이 해빙되면서 1988 서울 올림픽 때 자국 선수, 임원단을 파견하고 2년 후인 1990년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92년 한중수교로 내몽골은 자연스레 중국, 1990년 한소 수교로 부랴티아는 자연스레 러시아의 일원으로 교류를 재개했고 1990년 한몽수교로 외몽골인 몽골국까지 수교 국가가 되어 한몽교류가 복원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한민국-몽골 간의 교류가 많아졌다. 대한민국의 15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1999년 몽골을 방문하였다.

초기 주한몽골대사중의 모대사는 자신은 몽골제국의 기황후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기철 일가(공민왕에 숙청)의 묘소에 참배하기도 했다.

1999년 12월 17일, YTN이 밀레니엄 특집으로 몽골 다큐를 방영한다고 밝혔다.#

5.5. 21세기[편집]


한국인의 경우도 몽골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아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한글이 뚜렷이 써진[2] 자동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또한 한국어에 능숙한 몽골인들이 많아서 과장 조금 보태서 한국말만 해도 생활 가능할 정도. 실제로 영어하는 통역/가이드보다 한국어 통역/가이드를 더 찾기 쉽다. 다른 나라 같으면 한국인보고 "저펜? 차이나?" 이러는데 몽골에서는 택시 같은 곳에서 한국인을 보면 기사가 먼저 한국어로 "한쿡사람, 킴치치게, 닥도리탕?" 이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체감하는 것보다, 몽골에는 한국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대한민국에서 이삿짐 업계에 몽골인들의 진출은 상당한 편. 체격과 힘이 좋아 짐 나르기에도 좋고, 순수하고 성실한 편이라 이삿짐 센터에서 중요한 도난 사고 등의 문제가 없어 급여적인 면이나 능력적인 면에서 한국인에 비해 출중하기 때문. 또한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외모 덕에 의뢰인들이 부담을 가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이삿짐 파손은 한국인보다 좀 더 많다고 한다. 이거 말고도 물류센터 택배상하차, 건설현장, 대형마트 창고일 등 힘을 많이 쓰는 직업에서 몽골 출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밖에 TMR(몽골횡단철도)이 중국을 거쳐 한국 철도와 연결될 경우 세계적인 항구도시, 그리고 한반도에 있는 다양한 항구도시들과 철도로 연결되는 만큼 몽골의 자원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몽골과 이웃한 중국은 자원 수출에 필수적인 항구를 몽골에게 내어주지 않고 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라둘 다 역사로나, 민족으로나 몽골을 보는 눈길이 영 좋지 않다 몽골로서는 한반도의 항구를 이용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3]

그러나 이 철도가 연결되려면 남북통일이 우선이다. 통일 없이 북한의 개방으로 인해 철도가 연결될 가능성도 있으나, 이렇게 되면 북한 쪽 항구에 남한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의 선례 때문에 철도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투자에는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상술한 대로 전라선을 통해서 내려오는게 더 나을 정도. 이래야 북한이 갑자기 철도를 막더라도 국제 여론의 반발을 사도록 할 수가 있다.

통일 이후라면 굳이 전라도나 경상도까지 가지 않고 현 라선시청진시에 위치한 항구를 개발하여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점 덕분에 몽골은 잘 드러나진 않지만 러시아 못지 않게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 통일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국가들 중 하나다. 가장 열렬하게 지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골 대통령이 평양 한복판에서 대놓고 민주화[4]를 외쳤을 정도다. 더불어 서로가 껄끄러운 6자회담 당사국들과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에게는 몽골이 나름 편한 회담 개최지로 주목받고 있어 최근 들어서는 울란바토르를 아시아의 제네바 만들겠다는 구상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2000년 몽골 학생이 남북한을 유학했다. #

2002년에는 원나라의 마지막 법전인 '지정조격'이 양동마을에서 발견돼 2010년에 당시 몽골 대통령인 '남바린 엥흐바야르'가 방문단을 이끌고 방한하기도 했다.


5.5.1. 2010년대[편집]


2010년 6월 30일, 코이카는 지부티, 몽골,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의 태양광 지원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4년 10월 6일 퇴임 후 한국에서 병 치료를 받고 있던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이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전현직 외국 국가원수의 한국 망명은 사상 최초의 일.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으며 후에 부정부패로 구속되어 2013년 8월에 사면받은 전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오보로 밝혀졌다. 10월 29일 남바린 엥흐바야르가 몽골에 일시 귀국, 현지 인터뷰에서 망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몽골 영자 신문).

중앙일보 역시 망명 기사는 오보였다고 정정 기사를 내보냈다.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잠시 몽골에 머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명목상은) 한국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도 한국 교회에게 돈 받았다는 네거티브가 나올 정도로 몽골 내 한국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KT SAT가 몽골 최대 위성 방송 사업자 DDISH TV(디디쉬티비)와 위성 중계기 임대 계약을 2016년 3월 2일 체결했다. 2016년 말 동경 113도에 발사예정인 KOREASAT-5A(무궁화 5호 대체 위성)의 중계기 4기에 대한 임대 계약으로, KT SAT은 오는 2017년부터 위성 수명에 해당하는 17년 동안 몽골에 위성 방송 서비스(DTH)용 중계기를 제공한다. KT SAT, 몽골에 위성 중계기 임대

2018년 11월 12일, 한몽 고고학 연구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5.5.2. 2020년대[편집]


몽골 한인사회에서 이태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대암장학회를 발족했다.#

유한킴벌리는 몽골에서 숲을 조성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몽골에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기부했다.#

대한전선은 몽골 보건부로부터 '건강정보 교환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코이카는 울란바토르에 있는 몽골국립과학기술대에 코로나19 방역품과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철도공사코트라가 대한민국-몽골수교 30주년을 맞아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철도학교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반크가 대한민국-몽골 수교 30주년을 맞아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카드 뉴스를 제작해 SNS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15일에 중소벤처기업부는 몽골 식품농업경공업부와 중소기업·스타트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25년 서울시립대학교가 몽골에 글로벌 캠퍼스를 설립한다.# 가속화되는 울란바토르의 도시화에 맞춰 서울시의 선진 도시정책을 전수할 계획이다. 완공 목표 시기는 2025년이며 울란바토르 인근의 신도시 터아이막 준모드시티에 건립될 예정이다. 도시행정학과, 도시공학과, 환경원예학과가 우선 설치되기로 했다.

2021년 5월 12일에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방한한 몽골의 바트숨베르 뭉흐징 외교차관을 만나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와 코로나19 대응 협력 등에 대해 논의했다.#

2021년 7월 27일, 김부겸 총리는 방한한 어용에르덴 총리와 만나 한몽 관계의 협력, 코로나19 공조에 대해 논의했고 경제동반자협정을 조속히 개시하는 것도 밝혔다.#

배우 안재모가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5,000평의 토지를 받은 일화를 밝혔다.#

2022년 7월 5일, 코이카는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몽골의 과학기술, 농업분야에서의 인재를 육성하기로 했다.#

8월 2일, 한서대가 2027년까지 몽골 항공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몽골을 방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몽골 방문을 하면서 이태준 기념공원을 방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한몽가치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2월 15일, 울란바토르에서 한국과 몽골의 협력으로 국립 IT 파크에 정보접근센터가 개소했다#

12월 26일, 이동환 고양시장이 몽골을 방문해 문화관광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고양의 숲을 고양시가 공식적으로 몽골에 이양하기로 했다.#

2023년 6월 12일, 기상청은 몽골,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2주간 기상 레이더 관측 기술을 전수한다고 밝혔다.#

5.5.3. 탈북 루트[편집]


최근에는 다른 면에서 몽골이 한국에게 중요해지고 있다. 탈북민들의 탈북경로 상당수가 동남아 혹은 몽골 경유 루트로 바뀌고 있기 때문. 몽골은 중국 인근 국가 중 태국과 함께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얼마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서 중국 내 한국 대사관 진입이 어려울 경우 몽골 밀입국을 시도하기도 한다.

일단 몽골 경유 루트는 동남아 루트에 비하면 중국의 인구밀집지대(=감시망 밀집지대)를 빨리 벗어날 수 있고 탈북루트의 시발점인 베이징이나 선양에서의 거리도 압도적으로 가까워 인기가 높다. 몽골 루트의 경우 국경만 넘으면 북송 걱정은 없고 일단 몽골 국경수비대와 만나기만 하면 한국행은 약속되어 있다.

문제는 그 몽골 진입 방식이라는 게 철조망을 돌파해 어떻게든 국경을 넘어 몽골 국경 수비대에게 발견된다는 것이라 물도 식량도 고갈된 상태에서 몽골 국경 수비대를 만나지 못한 채 밤을 맞으면 건장한 남성이 아닌 이상 얼어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몽골로 가기 위해선 몽골의 모래사막을 지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 크로싱이나 경계(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길도 없는 모래사막에서 몽골 국경수비대에 우연히 발견되기라도 하지 못하면 죽기 딱 좋다.

그래서 대체로 동남아(라오스-태국) 루트를 많이 선택한다. 다만 태국까지 가다가 중간에 라오스에서 잡히면 북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문제. 2013년 라오스 탈북 9명 청소년 사건이 있었는데, 한국 정부와 외교관, 라오스 당국, 탈북자들 간의 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9명 모두 북송되어 라오스 루트가 붕괴되었다.

또 다른 문제로는 한국 대사관에 인도받는 과정이나 출국 허가가 나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도 각종 인력이나 시설 등의 문제로 이들을 무작정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여러가지로 난감한 문제가 있다. 때문에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촌 등을 몽골에 건설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6. 몽골과 한국의 정체성[편집]


몽골어로 한국을 '설렁거스(Солонгос)'[5]라 부르는데, 이 단어의 유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 프랑스의 동양학자 P. 펠리오(1878-1945)는 원과 고려가 족제비 가죽을 많이 거래했던 역사적 기록에 주목하여 설렁거스의 어원을 Solon(누런족제비)+go(~를 가진 사람)+s(복수형)를 합쳐 족제비 가죽[6]을 가진 사람들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보았고, 비슷한 단어인 설렁거(Солонго)가 무지개란 뜻이라서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으로 이름붙였다는 설도 있고[7], 혹은 코리아가 고려에서 유래해서 발음이 변형된 것처럼 이건 '신라' 혹은 '서라벌'에서 유래해 발음이 변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8] 그리고 만주어로 한국을 솔호(Solho)로 부르는 것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석영을 포함하여 '한-몽골 국가연합론'을 제안한 사람이 있으나, 양국의 상호 인식 수준이 너무 다르고 남북통일도 해결 안 된 상황이라 황석영 등의 '알타이 문화 제전' 개최 등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역사학/언어학계에서 한국어알타이 계통론은 이미 후퇴할 대로 후퇴한 상황이다.

우리가 역사자료로 최대한 추정할 수 있는 고조선의 시기엔 이미 완전히 분리된 민족이긴 하나 유전자 분석 등의 자료로 유추해볼 땐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먼 동양인 관계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넓게 보면 흉노, 돌궐, 만주족 등 가까이 있었던 다른 북방계 민족들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언어 문제도 확실히 말 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 현대 한국어삼국시대의 언어가 그것부터 꽤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켈트족에 가까운 골족이 조상인 프랑스인들이 로망스어군계통 언어를 쓰는 경우도 생각해보자. 수 만년이 훨씬 넘을지도 모를 세월 속에서 언어로 혈통적 연관성을 찾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일은 유전자 분석을 통한 추정 정도일 뿐이다.

최근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학교 교육에서는) 한국어는 (우랄-)알타이 계통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사이 알타이어족 자체가 거의 폐지되었고, 한국어는 계통 불명의 고립어로 본다. 즉 알타이 제어가 어족인지도 불확실하지만 어족이라고 해도 한국어가 거기 속하는가의 여부는 더욱 불확실하다. 알타이 제어 문서 참고.

다만 최근 중국의 성장세를 껄끄럽게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외 2007년 대선에서 경제공화당 후보 허경영이 국가 연합이 아닌 몽골과의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물론 몽골 정부와의 사전협의는 있었을 리가 없다. 2016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한국-몽골-연해주-북한-만주를 아우르는 그랜드 칸(GRAND, KHAN, 대환국(大桓國))국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몽골인한국인은 외모가 꽤 비슷해 해외취업 등의 방법으로 한국에 많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로 동아시아에서 몽골인만 한국인과 비슷한 게 아니다. 일단 몽골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호동이나 유퉁 같은 '건장하고 통통한 몸'에 붉그스름한 기가 얼굴에 도는 거친 피부인데 이건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현대 몽골인보다 일본인과 가장 가까우며, 만주족, 북중국인(북방 한족)과도 몽골인보다 혈통적으로 더 가깝다. #

한국인은 남중국인(남방 한족)보다 북중국인(북방 한족)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사실 북과 남으로 나누기는 했어도 절반으로 딱 나눈 게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로 보면 남중국인(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은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없던 지역이었고(역사적인 중국의 주요 도시는 전부 이북에 있다), 이북 지역에서 북중국인이 매우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명확히 분류하고 비교하는 건 어렵다고 한다.

사실 중국 한족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허름한 양복 상의 등으로 겉보기에 다른 인상을 주지만 오래 살수록 복장의 차이점이 줄어들면서 '입만 다물고 있으면' 중국인인지 모르는 정도까지 진입할 수는 있다. 특히 젊은 사람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몽골인은 혼혈이 아니면 분명히 한국인과 구분되는 점이 뚜렷히 존재한다.

붉거나 오렌지 계통의 엷은 빛깔 머리색을 가진 사람이 몽골 쪽에 더 많은 것도 한국인과의 차이 중 하나다. 빨간머리 계통은 대중들의 인식과는 달리 켈트족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 넘어서는 세계 전체에 골고루 분포해 있으므로 이는 붉은머리가 집중되어 있는 러시아계와의 혼혈 영향도 고려 해 봐야 한다.


7. 경제 교류[편집]


양국간의 경제 교류가 활성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몽골 진출이 많아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버스들도 한국 중고버스를 수입하는 경우가 많고 교통카드 시스템도 한국의 것을 도입했기에 더더욱 그런 면이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이로 말미암아 한국식 인프라나 생활방식이 몽골 사회에 이식되는 진풍경이 보여지고 있다. 특히 울란바토르의 신시가지나 신도시 지역은 마치 한국의 도시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익숙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의 망고식스가 몽골 시장에 진출했다.# 현지 이마트에 첫 매장을 개점했다.#

GS25베트남에 이어 몽골에 진출한다.# 한국의 편의점업체 CU가 2년만에 몽골에서 100 점포를 돌파했다.#

2021년부터 한국산 굴착기 등 일부 품목에 대해 몽골의 관세가 낮아지면서 대한민국도 몽골산 의류와 광물 관세를 낮추게 될 예정이다.#

GS리테일은 몽골에 진출해서 매장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국과 몽골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비중이 커졌다.#

이에 동탄신도시와 '몽골'을 합성한 '몽탄신도시'라는 용어로 언론이 조명하기도 하였다.

몽골인의 불법 혹은 합법 외국인 노동자로 한번이라도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은 30만명 가량으로 몽골 인구가 300만명 정도인걸 감안하면 꽤 많다. 몽골 인구 10명 중의 1명은 한국을 경험하고 갔으며 100명 중의 1명은 아직도 한국에 있다. 이들이 귀국할 때 몽골 도입이 시급하다고 느낀 것은 배워간다.

8. 문화 교류[편집]


전근대의 문화 교류는 원 간섭기 몽골풍고려양이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여기도 한류가 굉장한 인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몽골국영방송과 UBS, TV5를 비롯한 주요 방송국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대거 수입해서 틀어주며, 작품에 따라 시청률이 오락가락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꽤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몽골의 인구가 300만, 중국이나 러시아에 살고 있는 몽골족까지 합해도 1,000만 안팎으로 시장성이 별로 크지 않은데 반해 방송국들은 250개에 달할 정도로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제작 기반이 약해서 방송사들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을 수입해서 틀어주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더더욱 한류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몽골에서 이전에도 한국어한국 문화가 아주 낯선 건 아니었다. 공산국가 시절에 상당수 북한 영화가 수입되면서 사극류를 중심으로 꽤나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라나. 이 중에서 가장 히트한 작품은 홍길동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한국 노래도 많이 들을 수 있다. 또한 한국 음식점도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고 한국 상품을 파는 상점이나 마트들도 있기 때문에 몽골인들에게 한국 문화가 생활 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음식의 경우에는 몽골 기준으로는 가격대가 비싸서 일반 서민들이 자주 즐겨 먹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외식 메뉴로는 인기가 많다. 특히 몽골도 비만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채소 요리가 많은 한국 요리가 크게 인기를 끄는 측면도 있고, 그러면서도 몽골인들의 입맛을 끌 육류 요리도 가득하다. 현재도 울란바토르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한식당, 한국 상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김치의 인기가 상당히 많아서, 몽골 전통 음식에 김치를 활용한 요리도 상상 이상으로 많다.

울란바토르에는 고려사(寺)라는 한국식 불교사찰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한국 불교 단체에서 지원 형식으로 지은 것. 몽골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교(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지라 별 거부감은 없고, 양국의 불교 교류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2022년 2월 9일에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가진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이 재한 몽골인 아이들이 유목민 특유의 호방함과 자존감을 지녔다며 한국 정서도 함께 지녀 양국의 장점을 고루 갖췄다고 밝히면서 양국간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5월 22일, 한국인 마두금 연주자 타미르가 한국 최초의 마두금, 몽골음악 음반인 Nomadic Stranger를 발표했다. 타미르는 한국과 몽골은 수교를 맺은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에는 제대로 된 마두금 연주 음악을 접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며, 이번 앨범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마두금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2023년 2월,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로 몽골 정부에서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몽골이 중국의 대체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8.1. 언어[편집]


2000년대 이후, 몽골에서 한류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몽골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몽골인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어 시험인 TOPIK이 몽골에서 실시중이다. 한국에서는 적지만, 몽골어 책이 출판중이고 몽골어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다. 한국에선 단국대한국외대에서 몽골어학과가 설치돼 있다.

대한민국-몽골 수교 30주년을 맞아 세종학당재단에선 몽골에서 한국어 수업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9. 교통 교류[편집]


양국은 일반적으로 항공노선을 통해 교류한다. 몽골의 미아트 몽골항공에어로 몽골리아를 비롯하여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 티웨이항공(하계)이 울란바토르칭기즈 칸 국제공항과 한국의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간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5월 31일까지 양국 간에는 아직 무비자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서 입국시에는 비자가 요구되었다.

2010년 제주와 몽골을 잇는 직항노선이 잠시 개설된 적이 있었으나 수요 부족으로 단항되었다.#

대사관에서 발급받는 비자와 별개로, 몽골이민청 비자 홈페이지에서 약 50달러의 금액으로 전자비자 발급도 가능하다.

2022년 6월 1일부로 몽골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무비자 입국(90일)을 허용했다.# 반면 몽골인은 제주도로 무비자가 가능하나 본토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아직 비자가 필요하다.

10. 갈등[편집]


하지만, 이와 함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저지르는 범죄도 늘었다. 불법체류자도 상당하며, 강력범죄율은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에 2위다(2016년 조사. 러시아가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건수로 4837명으로 1위, 몽골은 4678명으로 2위#). 몽골인들이 순수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유목 생활을 하는 시골 초원 사람들의 이야기고 도시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게다가 순수한 사람이라고 해도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말보다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것도 범죄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몽골인에 대한 반감도 늘어날 듯하다.

하지만 언론에선 동남아중국인들의 범죄사건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직까진 반감은 덜한 편. 그 이유는 몽골인들 범죄 양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한국인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성범죄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보다 국내의 몽골인 자기들 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몽골인들끼리의 문제다 보니 한국인들이 관심 가질 이유가 적은 것.

몽골에서도 한국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과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에서 한국 요리가 맛있고 채소도 많이 들어간다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 몽골의 음식 자체가 육류 위주인데다가 기름기가 많은 음식도 많아서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좋은 품질의 한국 제품들과 한국 노래나 TV 프로그램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감으로 지식인층이나 기성세대의 경우에서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몽골 문화가 한국 문화에 잠식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 더 나아가서 한국의 막장드라마가 몽골의 이혼률 증가 등 사회 문제점에 기여한다면서 한류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고, 젊은층의 경우에는 몽골의 처녀들이 한국으로 시집가서 짝이 부족하다든지의 문제와, 한국 기업에서 당한 여러가지 부조리한 점 등으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사람마다 케바케.

2005년에는 관련글 몽골 대학에서 한국인이 현지 여성을 고용해 헤어 누드를 찍다가 적발되어 여권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몽골 현지에서는 이 사건으로 대소동이 일어나고 반한감정이 치솟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일부 인터넷 언론만 보도하고 잊혀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지금도 몽골에서 두고 두고 회자된다.

2012년에는 대한민국에서 편의점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을 한 몽골인을 한국인이 폭행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해당 기사의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몽골인이 맞아 죽을 짓을 했다는 식의 댓글이 상당수였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은 극단주의적인 사상이 횡행하기에, 이를 정상적인 여론이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죽하면 연예 기사와 스포츠 기사에서는 댓글란이 사라졌을 정도.

그런데 며칠 후에 보도된 모 아이돌 그룹의 실언에 묻혀 버려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과거의 실언이 두고두고 거론되며 비난받는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자주 오르내리며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예인들 특성상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는 건 당연하기에 이 사건을 연예인 사건과 비교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에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여성 승무원 성추행 벌인 사건이 있었는데, 면책특권이 있다는 거짓말을 쳐서 돌아가다가 논란이 커지자 스스로 돌아와 체포되었다.# 700만 약식 기소로 마무리되었다.#

7월에 몽골 국적의 여중생이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재한 몽골인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졌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몽골 내에서 대한민국 교민들이 몽골인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고 한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6월 22일에 제주도에 온 몽골 단체 관광객들중에 일부가 잠적(!)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7월 31일에 싸이의 '흠뻑쇼' 무대를 철거중이던 20대 몽골인 노동자가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11. 대사관[편집]


대한민국은 울란바토르에, 몽골은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12. 여담[편집]


영화배우 강신범이 진행하는 미스테리극장 위험한초대가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특집편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13. 관련 기사[편집]




14. 관련 문서[편집]



[1] 현지 젊은이의 말을 빌리면 영어 다음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지리상 가까운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누르고 최대 제2외국어의 자리를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셈.[2] 개별용달 등등. 도난 중고차가 몽골로 밀수출된 사례[3] 이 때문에 현재도 칭기스칸 국제공항과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간의 화물 물동량이 몽골의 타 국가행 국제선에 비해 월등히 높다. 몽골에서 마음 편하게 쓰기 좋으면서 제일 가까운게 한국의 항구들이기 때문에 선박으로 들여온 화물을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환적하는 것이다.[4] 물론 북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물론 믿는이는 북한주민과 김정은까지 포함해서 단 한명도 없다.[5] 통상적으로 알려진 '솔롱고스'란 말은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발음이다. 몽골어 'о'는 한국어 발음상 'ㅓ'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한 솔롱고스는 잘못하면 몽골에서 '약한(Sul) + 방귀(ungas)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6] 한국산 족제비들은 황금빛 털을 가져 시베리아 족제비와 차이를 보인다[7] 인터넷에서 정설인냥 퍼져있으나 가설일 뿐이다.[8] 우선 신라의 실제 발음은 한국어의 자음동화 현상을 거쳐 '실라'가 되어 한국의 역사적 명칭 중에 자음이 가장 겹친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5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2.10.1;"
, 2.10.1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5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2.10.1;"
, 2.10.1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5 12:31:05에 나무위키 한몽관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