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배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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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colbgcolor=#d70029><colcolor=#fff><width=25%> '''감독''' ||[[고희진|{{{#000,#fff 고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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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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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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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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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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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한국도로공사 EX 등번호 12번
프로화

한송이
(2005~2008)


문정원
(2011~ )
천안/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등번호 12번
태솔
(2007~2008)

한송이
(2008~2011)


휘트니 도스티
(2012~2013)
GS칼텍스 서울 KIXX 등번호 12번
지정희
(2009~2011)

한송이
(2011~2017)


한수진
(2017~2023)
대전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스파크스 등번호 12번
유희옥
(2016~2017)

한송이
(2017~ )


현역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No.12
한송이
韓송이 | Han Song-Yi

출생
1984년 9월 5일 (39세)
경기도 오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성호초 - 수일여중 - 수원전산여고 - 남서울대[1]
가족 관계
아버지 한선택, 어머니 송문희, 언니 한유미
포지션
아웃사이드 히터 | 미들 블로커[2][3]
신체
186cm | 65kg
점프 높이
스파이크 높이 305cm | 블로킹 높이 298cm
배구 입문
초등학교 4학년
프로 입단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한국도로공사)
소속 구단
한국도로공사-구미 한국도로공사 EX (2002~2008)
천안-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8~2011)
GS칼텍스 서울 KIXX (2011~2017)
대전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스파크스 (2017~ )
응원가
써니힐 - 두근두근[4]
MBTI
INFJ
별명
쏭대장, 쏭알, 쏭, 햇살, 송이좌
SNS
파일:한국배구연맹 로고.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클럽 경력
2.1. 구미 한국도로공사
2.2. 천안/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3. GS칼텍스 서울 KIXX
2.4. 대전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스파크스
3. 국가대표 경력
3.1. 2012 런던 올림픽
4. 플레이 스타일
4.1. 아웃사이드 히터
4.2. 미들 블로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2008년 FA 사태
7. 여담
7.1. 자매 배구선수
8. 역대 프로필 사진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구 선수. 현재는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소속으로 뛰고 있다. 한유미 배구 해설위원의 친동생으로도 유명하다.


2. 클럽 경력[편집]




2.1. 구미 한국도로공사[편집]


고3시절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했으며[5] 2002-03 시즌 슈퍼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후 도로공사의 주포로 활약하며 맹활약, 2005년 V-리그 원년 정규리그 1위를 비롯하여 2000년대 중반 도로공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팀이 늘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한동안 콩라인에 속해 있었다.[6]

2000년대 중반 도로공사의 주축선수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게 된다. 레프트윙 주포로서 경기에서 많은 점수를 올려 FA시즌이었던 2007-08시즌 몰빵을 당하며 김연경, 황연주, 그리고 각 팀 용병들을 제치고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한송이의 해당 시즌 득점왕 수상은 용병제 이후 2021년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토종 득점왕이라는 것. 당시 도로공사는 레이첼 밴미터가 부상 여파로 당장 합류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대체 외국인선수인 케이티 존슨은 레이첼만큼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외국인선수 부재로 인해 도로공사는 한송이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송이는 에이스로서 자기 역할을 다했다.

다만, 대개 장신의 주공격수들이 그렇듯 리시브 능력은 바닥을 기었다. 그래서 국내경기는 물론 국제경기에서 목적타 서브의 대상자이기도 했다. 당시 소속팀인 도로공사에서 고참들이 대거 은퇴를 하면서 한송이를 보호해 줄 리시버가 없어지는 바람에 본인이 직접 리시브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부터 한송이는 전담공격수에서 윙리시버로 전환하게 된다. 그런데 간혹 기복이 있는 롤러코스터 플레이를 가끔 보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위의 귀여운 별명과는 달리 여배팬들이 심히 깔 때는 '한기복'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7] 그래도 리시브 능력은 윙으로서 커리어를 마감할 시기까지 꾸준히 늘어서, 2013-14 시즌에는 공격수 최초로 통산 5,000 리시브를 달성하기도 했다.


2.2. 천안/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편집]


2007-08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어 김연경, 황연주 등 고교 후배들이 많이 있는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1억 5천만원이라는 역대 FA 최고액 연봉 계약을 맺어 이적하게 된다. 이적 당시 높으신 분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라는 외압설이 있었다.[8]

하지만 정작 흥국생명으로 이적 후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아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다.[9] 같은 레프트 포지션의 김연경과 외국인 선수 카리나 오카시오에게 밀려 거의 뛰질 못했다. 시즌 막바지 카리나가 맹장염으로 빠지게 되고 황연주가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자 플레이오프부터 뛸 수 있었다. 2008-2009 시즌 흥국생명의 우승으로 드디어 콩라인에서 벗어났다.

파일:image_stream-_7_.jpg
2008-09 플레이오프 2차전

2010-11시즌 팀의 주포로서 약간 모자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레프트윙 주예나와 용병 미아 예르코프가 제때 터져준다면 우승청부사 김사니의 토스웍이 더해여 무시무시한 팀이 될텐데... 우린 안될꺼야 아마. 그래도 기어코 팀을 정규시즌 3위에 올려 놓는 활약을 보였다.


2.3. GS칼텍스 서울 KIXX[편집]


2010-11 시즌 종료 후 2번째 FA 자격을 얻어 GS칼텍스 서울 KIXX로 이적했다.

런던 올림픽 이후 소속 팀에 복귀하여 팀의 리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GS칼텍스의 2012 V-리그 컵대회 우승과 함께 대회 MVP를 수상했다. GS칼텍스로 이적했을 당시에는 포텐셜은 터지지 않았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 나혜원을 보상선수로 지명한 GS칼텍스는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GS칼텍스의 주포 김민지가 FA 미아가 돼버리면서 약해진 공격진을 훌륭히 메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13 시즌 드래프트 전체 1번픽으로 들어온 이소영의 맹활약과 더해 팀의 리시버 라인을 든든히 지키면서 팀이 전반적으로 수비가 견고한 팀이 되는 데 한 몫을 했다.

2013-14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한 라운드를 쉬었지만, 복귀 후에 안정된 리시브를 보여주며 제 역할을 했고, 특히 시즌 막판과 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 때 이소영과 포지션을 스위칭한 게 성공하며 GS칼텍스의 6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종료 후 3번째로 FA 자격을 얻었고 GS칼텍스에 잔류하여 모처럼 팀을 옮기지 않았다. 덤으로 2014-15 시즌 떠난 베테랑 듀오 이숙자, 정대영의 역할을 맡아야 함과 동시에 주장 완장을 받게 되었다.

2014-15 시즌 들어서는 그동안 전혀 뛰어 보지 않았던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013-14 시즌 라이트 전환이 실패로 끝난 것도 있었고, 정대영의 이적으로 생긴 센터진의 낮아진 높이와 만년 까이는리시브에서 면제시켜 수비 부담을 줄여줄 목적인 듯. 이를 처음 시도한 평택 현대건설 전부터 팀의 반전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잘만 하면 이 분처럼 선수생명이 연장될 수 있다.

2016년에도 센터로 계속 출전하고 있다.

2016-17 시즌에 센터로 출전하였지만 역시나 공격 비중이 상당히 낮았고, 블로킹도 하드웨어에 비하면 기대 이하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소영의 블로킹 수치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당연히 이런 스탯으로는 FA 계약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무려 1억 5천만원의 금액으로 FA 재계약 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진정한 금수저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매 시즌마다 기량이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 선수에게 1억 5천만원이면 지나치게 오버페이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 차라리 이것을 아껴서 돈 조금 더 보태 진짜 공격수로 써먹을 수 있는 김수지를 영입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다.

2017년 오프시즌에 트레이드로 대전 KGC인삼공사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팀에서 은퇴하길 바랐던 GS칼텍스 팬들의 팬심은 불편해졌고, 트레이드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구단 프런트에 화가 난 인삼공사 팬들의 팬심은 거의 학을 뗀 수준이 되었다. 2017년 6월 3일에 언니 한유미가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GS칼텍스에 이적하는 걸로 발표되었지만 상술한 트레이드 설 때문에 반짝하고 말까봐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그러나 결과는 GS칼텍스가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한유미를 지명한 뒤, 현대건설이 염혜선의 보상선수로 지명한 김유리와 맞트레이드하는 형식으로 다시 현대건설로 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응? 이로써 자매는 한솥밥을 먹은 지 하루만에 다시 이별을 하게 됐다. 올스타전 아니고서는 한 팀에서 뛸 수 없는 두 자매의 처절하고도 슬픈 이야기 그리고 그 직후 시은미와 함께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 되었다.[10]

이후 밝히기로는, GS칼텍스 시절 레프트로서 좋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던 자신이 오로지 팀의 사정때문에 센터로 전향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성적도 안나오고 그동안 없었던 어깨부상까지 겹쳐 은퇴 기로에 섰다고 한다. 서남원 감독의 레프트 복귀 제안에 인삼공사에서 레프트로서 선수생활 연장을 선택하면서, 한송이의 센터 전향은 그대로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2019년부터 대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2.4. 대전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스파크스[편집]


서남원 감독은 원 포지션인 레프트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GS칼텍스에서 포지션 전환으로 고생했던 부진을 씻기 위해서 본인도 절치부심해야 했을 것이다.

트레이드 직후에는 되찾은 윙 공격수 자리에서 인삼공사의 높이를 보강해주며 쏠쏠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30대중반의 레프트가 인삼공사의 고질병인 주전 레프트 자리를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8-19시즌 팀이 18연패를 비롯해 침체에 빠진 시기, 노쇠화와 함께 출전 시간이 줄었다. 레프트, 센터, 라이트의 멀티 자원으로 대기하면서, 팀의 최고참으로 어린 선수들을 케어하는 모습을 주로 보였다.

10월 31일 vs GS칼텍스 전에서 황연주, 양효진에 이어 역대 3호로 4500득점을 달성했다.

2019-20시즌을 앞두고 처음으로 고정 포지션을 부여받으며 경기 주장으로 선임되었다.[11]

11월 24일 vs GS칼텍스 전에서 개인통산 600블로킹을 달성했고 (공식 5호) 3:2로 승리해 MVP로 뽑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올 시즌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매 경기마다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며 소중히 플레이한다."라는 짠한 멘트를 남겼다.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미들블로커로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하며 '회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5라운드 들면서 경기당 블로킹이 부쩍 올랐고, 덕분에 2월 20일 vs 흥국생명 전에서 개인통산 650블로킹을 달성했다. (역대 3호) 단 세달 만에 (대략 16경기) 블로킹 50개를 추가한 셈. 비록 벤치자원이지만 5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기에 이른다.

3월 23일 KOVO가 코로나19의 확산 때문에 시즌 종료 결정을 하면서 2019-20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후 시상식에서 센터부문 베스트7에 선정되어 생애 첫 베스트7을 수상했다. 시상식 당일날 은발로 염색하고 나타난건 덤.# 이로써 자매 모두 백발염색에 성공! 또한 오지영, 염혜선, 채선아와 함께 FA 자격을 얻었고, 2년 연봉 2.2억에 이변 없이 인삼공사에 잔류했다. 한유미의 발언에 따르면 협상 기간이 시작되자 마자 싸인해버렸다고..[12]* MBC인터뷰

언니 한유미가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밝히기 무관중 경기에서는 관중이 있을때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텐션 올리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2020-21시즌에는 지난 19-20 시즌에 이어서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활약하였다. 세트당 블로킹 0.699개로 도로공사의 정대영에게 0.002개 앞서 블로퀸 자리에 올랐다. # 14-15시즌 이후 6시즌 만에 V스타 여자부 1위로 올스타에 뽑혔다. 2019-20시즌에 이어 20-21시즌 베스트 7 센터로 뽑히면서 두 시즌 연속으로 베스트 7에 올랐다.

2월 3일 vs IBK기업은행 전에서 황연주, 양효진, 정대영에 이어 역대 4호 5000득점에 성공했다.[13]

2021-22 시즌을 앞두고 주장 오지영이 GS칼텍스로 이적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21-22 시즌 김해란과 함께 스무번째 시즌을 맞이했으며, 김세영이 20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함으로써 이 역시 김해란과 함께 실업리그 시대에 드래프트를 통해 데뷔한 최후의 2인이 됐다.[14]

11월 18일 흥국생명전 3세트에 역대 5호 750 블로킹을 성공했다.

2020-21시즌에 이어 2021-22시즌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K스타 여자부 센터부문 2위로 올스타에 뽑히면서 두 시즌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어 '쏭맏내'[15]라는 별명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2022년 1월 30일 기업은행전에 200 서브 득점을 성공했다.

2021-22시즌 이후 이숙자 해설위원이 소속팀의 수석코치로 오면서 다시 한 번 한솥밥을 먹게 되었고, 2022-23시즌을 앞두고 이소영에게 주장직을 넘겨주었다.[16]

22-23시즌에는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건지 박은진-정호영을 선발로 출전시키고 한송이는 3옵션으로 물러난 모양새다. 고희진 감독이 정호영에게 꾸준히 경험치를 먹이려고 기회를 아낌없이 주지만, 정호영과 박은진이 둘 다 무난하게 가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경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영택 시절 꾸준히 기회를 받은 아웃사이드 히터 3인방이 부진하며 돌림판 신세가 되자 고희진이 한송이에게 왼쪽 큰 공격을 맡겨봤는데, 클라스 어디 안 간다고 이게 성공을 거두면서 레프트 알바까지 겸직하고 있다. 한 세트 내에서도 미들과 왼쪽을 계속 오가면서 말년에 열심히 구르는 중.

2023년 3월 16일 현대건설전에서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블로킹인 9개를 포함하여 14득점으로 활약,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2022-2023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었고 연봉 2억,옵션 1천만원 총 2억 1천만원에 인삼공사와 재계약 했다. 바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자신이 잘 키우겠다고 하여, 잔류를 암시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2011082111_.jpg
파일:한송이와 김연경 (2011).jpg
약 10년간 함께 국가대표 레프트 자리를 책임진 한송이와 김연경
200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 할 때 팀의 막내로 있었다.

실력으로는 1984년생 또래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그래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의 막내로 선발되기도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팀에서도 고참들이 대거 은퇴를 하면서 한송이를 보호해 줄 리시버가 없어지는 바람에 본인이 직접 리시브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국가대표 경기에서 리시브 능력마저 출중한 김연경의 대각에 서기 때문에 리시브 능력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AVC컵-세계선수권대회-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는 국제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서브리시브를 제대로 받는 등 오랜만에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만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윙 리시버로서 불안정한 리시브가 꾸준하게 지적돼 왔다. 소속팀에선 수비 좋은 센터가 있기에 어느정도는 가려지지만, 국제대회에선 상대팀의 목적타에 실력이 금세 노출되기 때문.[17]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리시브 능력도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의문의 1승을 거뒀다 카더라.
파일:Olympics+Day+11+Volleyball+3AVnYfu0Fopx.jpg
4강 진출이 확정된 후 언니 한유미와 포옹하는 한송이
매번 국가대표의 약점으로 지적받은 김연경의 대각 자리였지만, 2012년 세계예선전과 올림픽 본선에서 가히 인생 경기로 불리울만할 공수양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여자대표팀 36년만의 올림픽 4강 진출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연속된 경기와 백업의 부재로 인한 체력 저하 때문에 동메달 결정전에서 급격히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 아쉬움이 남았다.

2014년 여름 국제경기에서 리시브 문제로 다시 팬들의 성토를 받고 있다. 게다가 괜찮았던 공격마저 2013-14 시즌에 부상과 봄배구 때의 이소영-한송이 시프트 이후로 헤매고 있는 실정. 2014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이선구 감독이 "한송이가 리시브를 해야 안심이다."라는 얘기로 홍띵보와 비교하고 있는 판이다.[18]

2014 인천아시안게임 멤버로 선수 생활 중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차지했다.

과장 좀 섞인 셈 쳐서 출전하는 모든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리시브 불안과 특히 클러치 상황에서의 리시브 범실로 인해 많은 욕을 먹었으나, 한송이가 대표팀에서 하차한 이후 윙리시버 자리의 부재와 아직 신인에 불과했던 후배 레프트들의 부족한 리시브 덕에 한송이가 재평가되었다. 특히 2016년 리우 올림픽 8강에서 이재영박정아가 네덜란드의 목적타에 탈탈 털리며 김연경-김해란의 2인 리시브 시스템으로 바뀌는 상황은 4년전 이탈리아를 상대했던 8강전에서 한송이가 얼마나 잘했던건지 깨닫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다가 센터로 포지션을 전향하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자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멤버로 선발되었다.#

올림픽이 연기되었지만 2연속 베스트7을 수상할 정도로 기량이 여전해서 2021년 대표팀에도 다시 차출되었다. 하지만 올림픽 전에 치르는 VNL에서는 영 부진해서 까이고 있다. 감독이 적극적인 리딩 블로킹을 주문했지만 뒤늦은 센터 전향 탓인지 헤메는 일이 잦았고, 대회 막바지로 갈수록 출전 시간이 줄더니 뜬금없이 라이트 자리에서 나오거나 리시브를 하기도 했다. 결국 한송이 대신 김수지박은진이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도쿄행이 불발되었다.[19]


3.1. 2012 런던 올림픽[편집]


파일:런던 올림픽 8강전 한송이.jpg
라운드
결과
득점
공격
리시브
세트당
디그 성공
기록지
상대
스코어
성공률
효율
점유율
성공률
효율
점유율
P2
P3
조별리그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1-3 패
12점
35.29%
17.65%
20.36%
75.76%
범실 없음
39.29%
3.50
#
#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3-1 승
12점[20]
34.48%
13.79%
25.66%
63.64%
50.00%
35.48%
1.50
#
#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3-0 승
16점[21]
50.00%
42.86%
24.35%
77.42%
범실 없음
53.45%
3.00
#
#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터키
2-3 패
6점
27.27%
0.00%
16.67%
48.57%
34.29%
42.17%
0.40
#
#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2-3 패
16점[22]
34.29%
5.71%
21.88%
63.41%
60.98%
38.68%
1.00
#
#
8강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3-1 승
17점[23]
46.88%
43.75%
22.07%
73.53%
64.71%
43.59%
2.50
#
#
준결승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0-3 패
13점[24]
47.83%
26.09%
23.00%
46.67%
36.67%
44.78%
1.33
#
#
3위 결정전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0-3 패
10점[25]
27.78%
11.11%
16.98%
40.00%
32.00%
38.46%
0.67
#
#
합계
102점
38.46%
20.81%
21.29%
61.75%
54.98%
41.63%
1.68
#

대회 스탯
비고
득점
102점 (합계)
8위
[26]
공격
20.81% (효율)
19위

블로킹
0.39 (세트당)
18위

서브
0.16 (세트당)
14위

리시브
61.75% (성공률)
15위
[27]
디그
1.68 (세트당)
28위

여담으로 한송이가 레프트 선수치고 블로킹이 매우 좋다. 아시아권 한정으로 미들블로커를 볼 수 있는 피지컬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상대 공격수를 견제할 수 있는 적절한 스피드도 있다. 올림픽 예선에서는 일본의 아라키나 야마모토를 잘 막아내었고 올림픽 본선에서는 브라질의 타이사와 이탈리아의 지올리의 외발이동 견제를 잘해주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4.1. 아웃사이드 히터[편집]


2010년 이전까지 항상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에이스는 170cm대의 빠른 발과 수비력이 중심이었던 살림꾼형 선수였고, 180cm만 넘어도 모든 팀의 주전 미들 블로커가 가능했던 역사 이래, 180cm가 넘는 여성 윙 스파이커는 마치 김영만, 양희승 이후 남자 농구의 2m 스윙맨같은 로망이 있던 포지션이다. 이미 1980년 중반에 180cm의 날개공격수 윤정혜(前 한일합섬, 現 남성여고 감독)가 등장, 이후 김남순(前 한일합섬-KT&G), 구민정(前 한일합섬-현대건설) 등 180cm의 날개공격수들은 꾸준히 나왔다. 그중 공격력이 가장 뛰어나 국제대회에서 가장 확실하게 활약했던 한일합섬의 김남순이 은퇴한 이후 항상 대한민국 여자배구에는 "김남순보다 크고 강한 공격수가 있으면 국제대회에서 해결사 역할을 잘할 수 있을텐데..."라는 기대가 있었다.[28] 81년 황금세대 후 정대영, 김세영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대표 베스트 7에서 항상 왼쪽 한자리를 책임져줄 장신 공격수가 필요했지만 180cm 중반 이상을 넘는 선수들은 운동능력이 윙스파이커로 뛰기엔 다소 떨어졌고 공격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무조건 미들블로커로 가기 십상이었는데, 언니 한유미의 첫 등장으로 이제 차세대 공격수가 나올 수 있을거란 기대가 생겼고[29] 뒤를 이어 한송이가 드래프트에 등장했으며, 그 이후에서야 180cm 이상의 거포 계보를 시작할 GS칼텍스김민지, 나혜원이 등장해 차세대 김남순에 대한 기대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186cm라는 큰 키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의 오픈 공격과 사이드블록은 그 자체로 여자배구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게 했고 실제로도 한송이가 득점왕을 차지한 2007-08 시즌 이후 V-리그에서 2020-21 시즌까지 여전히 토종선수 유일무이의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레프트를 맡았던 시절 항상 약점으로 지적됐던 것이 서브리시브였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게, 한송이처럼 신장이 큰 선수는 상대적으로 무게중심이 높게 형성이 되어 급격히 떨어지는 서브에는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 아이러니 하게도 한송이가 전술한 경쟁자들 중에 그나마 국대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도 공격력이 더 강했던 김민지, 나혜원에 비해 서브리시브를 더 잘했기 때문이다. 김민지를 내보내면 김연경이 수비만 해야하는 참사가 벌어지므로...[30]

게다가 한송이가 전성기를 맞이한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까지 한송이의 라이벌은 다름아닌 김연경이었다. 이는 빈말이 아닌 게, 이 시기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대각자리는 무조건 한송이었고, 동 포지션에서 김연경을 제외하곤 가장 실력이 좋았던 선수 역시 한송이었다.[31] 그러나 모두 다 알다시피, 김연경(192cm)은 한송이(186cm)보다 키는 더 큰데, 공격, 서브캐치, 블로킹 등 그 어느 것도 모두 한송이를 초월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국가대표 생활 내내 김연경과 비교되며 저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송이가 빠진 2016 리우 올림픽에서, 8강전 상대인 네덜란드가 박정아이재영이 버틴 리시브라인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모습을 보자 한송이가 런던올림픽 때 얼마나 잘했던것인가 재평가되기도 했다. [32]


4.2. 미들 블로커[편집]


센터로 전향한 이후 한동안은 레프트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정도[33]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원체 큰 키를 이용한 상대팀 전위공격 견제가 좋았던지라 속공보다는 블로킹 중심의 플레이를 가져갔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 2018-19 시즌에 회춘을 하며 2019년 2020 도쿄 올림픽 예선대회에 오랜만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2020-21 시즌에는 블로킹 1위[34], 이동공격 1위를 기록하여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라바리니 감독 체제부터 강조한, 공격수로서의 센터, 즉 미들히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따른 결과 속공, 이동공격 지표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35]

센터 완전 전향 후에도 정통 센터와는 차별적인 플레이들을 종종 선보였다. 일례로 대형 유망주였던 정호영이 입단 직후 포지션에 설왕설래가 많던 시절, 리시브에 어려움을 겪던 그를 날개공격수로 활용하고자 한송이를 리시빙 센터[36]로 활용하는 노인학대 포메이션으로 한동안 시즌을 치르기도 했다.물론 실패 또한 센터로 출전하여 기습적으로 윙 공격을 선보이기도 한다. 동선이 꼬여서 사이드 공격수 자리를 채우러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감독 입장에서는 레프트도 센터도 정상궤도에 올랐던 선수이기에 활용 카드가 늘어나는 셈. 레프트 시절부터 일가견이 있던 다이렉트와 이동공격 마킹은 센터 전향 후에도 녹슬지 않는 모습이다.

레프트 시절에 비해 화려하고 꾸준한 기록은 보이지 못하나, 한 번 에이징커브를 겪은 선수가 다시 회춘하고 꾸준히 출장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센터 시절은 욕을 거의 먹지 않는다. 특히 레프트에 비해 역할이 적은 포지션이기에 틈틈이 어린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조언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2003 슈퍼리그 신인상
  • 2004 KT&G V-투어 베스트6
  • 2007-08 NH농협 V-리그 득점상
  • 2007-08 NH농협 V-리그 백어택상
  • 2007-08 NH농협 V-리그 월간 MVP (2월)
  • 2010-11 NH농협 V-리그 베스트드레서상
  • 2012 수원 프로배구컵대회 MVP
  • 2019-20 도드람 V-리그 베스트7 센터
  • 2020-21 도드람 V-리그 베스트7 센터


6.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6.1. 2008년 FA 사태[편집]


2007-08 시즌 엄청난 몰빵을 선보이며 득점왕에 오른 한송이가 FA 자격을 얻자, 언니인 한유미가 있는 현대건설로 이적할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거취 문제로 큰 잡음이 있었다.

당시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아버지였던 한선택이 2008년 5월 13일(당시 FA 1차 협상 기한이 5월 8일 까지였다.) 직접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에다가 하소연을 쓸 정도로 당시 도로공사의 병크가 지금 흥국생명 뺨 칠 수준이었다.

공기업인 도로공사 측은 FA 투자에 있어 불리하다며 한송이를 놓칠 경우 리그에 불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송이의 이적을 막으려고 타 구단에게 기업 차원의 외압을 행사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 한송이를 잔류시키지 못할 바에 자신들의 주 사업인 고속도로와 관련된 팀에는 보내지 않겠다는 것인데, 현대건설에는 공사 수주를, KT&G에는 휴게소 담배판매대를, GS칼텍스에는 휴게소 주유소를 빌미로 협상에서 손을 떼게 했다고. 한송이의 아버지와 언니 한유미가 넷상에 성토글을 게재하며 일파만파로 커지게 되었다.
한송이 아버지 글 전문
안녕하세요, 한송이선수 아빠되는 사람입니다.
먼저 이렇게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한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대해서 많은관심 가져주신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래프드를 실시하는데
그때는 완전히 개인의 의사는 반영이 안되고 각 구단에서 필요로 하는 순서에 의하여
선수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5년을 좋던 싫던간에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후에 얻어지는 혜택이 fa 란제도인데 선수가 원해서 만든 제도도 아니고
각 구단과 협회에서 선수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서 그나마 만들어준 제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저희 부모된 입장에서 처음엔 잔류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시즌이 끝나자
바로 회사하고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금액도 제시했고
회사에서 다른 부분도 신경써 주셨고 아무튼 회사도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1차접촉때 그리고 2차접촉때 계속해서 같은 금액을 제시하며
화사측 논리만 이야기 하시는 겁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금액을 1억 2천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회사에서 신경써 주신것도 있고 해서 절충을 해서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계속 질질 끄니까 송이가 마음을 바꾸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매스컴에서도 일단 송이가 나오면 현대나 케이티엔지나 무조건 잡는다고 하니
송이가 마음을 바꾸게 된 동기입니다.
무단이탈문제도 감독과 이야기 한상태에서 나온 것이고 5월 8일날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협상을 해
야 하니 들어오라구 해서 저는 솔직히 싫던 좋던 간에 네가 5년동안 몸담았던 회사니까
들어가서 인사드리고 마무리 잘하고 와라 해서 들여 보냈는데
들어가서 얼마나 심하게 꾸지람과 모욕을 당하고 왔는지 집에와서 펑펑 울더군요.
자기 하나놓고 4명이서 집중공격을 했다고
그리고 회사에서 사전접촉을 이야기 하시는데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르며 저희도 코보 홈페이지에 있는 공시사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보짓은 안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생각하시듯 한송이가 팀을 나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건 거의 현대로 갈것이다 생각하실 겁니다. 현대가 12연패씩하면서 언니가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상황에서 현대로 가는것으로 알고계실 겁니다. 그걸 알고 회사에서 제동을 걸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는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회사에서 저한테 농담반 진담반 하신말씀이
있었고 송이에게도 하신말씀이 계셨고 배구계관게되시는분한테도 들었습니다.
물론 입장이 있으니까 아니라고 하신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 현대가 손을 떼고 케티엔지가 손을 뗐겠습니까, 네티즌 여러분들은 이해가 가십니까
회사에서는 그렇게라도 해놓으면 다시 돌아갈것이다 생각을 하신것 같더라구요. 그러면
8일날 들어갔을때 그렇게 몰아세우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송이가 다시 돌아갈수 있는 길을 완전히 막아놓고 다른팀에다 그렇게 하시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저희가 사전접촉을 했다면 8일날 들어가서 그러고 나오겠습니까.
저도 그렇고 송이도 그렇고 현대를 못가면 도로공사에 남는것이 최선이라는거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여자배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흥국이나 지에스에 가면 안되는거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갈수 있는길을 원천봉쇄를 해놓은 상태에선 어쩔수 없이
두팀 중 한팀을 택해야 하는 저희 입장입니다. 선수가 남은 배구생활 자기가 꿈을 펼쳐서
뛸수 있는 팀으로 갈수있게 도와주시는게 옳은일이라 생각 됩니다.

제가 컴퓨터를 잘 못해서 이 글을 쓰는 데 한시간도 더 걸린거 같습니다.
진짜로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생각도 안나고 말주변도 없고
하도 답답하여 글을 올려 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1차 협상 마지막 날에 인사나 올라러 도로공사 프런트와 만났는데 거기서 프런트 4명이 그냥 막말에 욕설을 해서 그 날 귀가 후 펑펑 운 것도 모자라 사업권을 무기로 현대건설과 KT&G(현 인삼공사) 이적을 가로막았고, 그렇다는 건 복귀시키겠다는 소리인데 그것도 스스로 거세시키고 당시 강팀이었던 GS칼텍스나 흥국생명 행 아니면 은퇴로 몰아넣었다는 말. 심지어 언니 한유미도 당시 그 상황에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아예 FA 제도를 폐지하는 게 낫다고 할 정도였으니...관련기사 그래서 결국 흥국생명으로 이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보상선수로는 이보라. 결국 당시 도로공사 프런트의 뻘짓으로 현대건설에서 5시즌 뒤 맹활약할 선수를 얻을 수 있었던 찬스를 스스로 걷어찬 셈. 물론, 다른 선수를 지명했을 수도 있지만.


7. 여담[편집]






  • 원래 스파이크 서브를 넣었으나, GS칼텍스로 이적할 즈음 스탠딩 서브를 넣기 시작했다. 이때 공을 돌리면서 입김을 부는 듯한 특유의 동작을 취한 뒤에 서브를 넣는데, 이 동작이 마치 군고구마를 호호부는 것 같다고 하여 한송이의 서브는 배구팬들 사이에서 군고구마 서브호호 서브라고 불리고 있다. 본인이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적은 없으나 기무라 사오리의 서브폼과 매우 유사하다.

파일:32552241.2.jpg

파일:external/static.news.zum.com/20120902_1346593155_68778500_1.jpg
한송이 : 운동하는 여자가 뭐 어떻다고??
황현희가 가지고 있던 메달을 뺏어 그 큰 키로 황현희를 농락했다.#

  • 한때 검색창에 한송이를 그대로 치면 예전에는 그라비아 모델 한송이가, 2012년 이후로는 화성인 바이러스 출연자 한송이가 제일 먼저 떴었지만 지금은 배구선수 한송이가 가장 먼저 뜬다.[37]

  • 언니와 함께 SNS를 자주 한다. SNS뿐만 아니라 배구 갤러리 눈팅도 자주해서 배구갤러리가 한송이 손바닥이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 별명으로는 쏭알이, 천송이 등이 있다.

  • 체육 교과서에 실린적이 있다.
파일:2012-03-23 교과서 한송이.png
  • 신발, 특히 농구화[38]를 많이 모은다고 한다.

  • 언니와 달리 피부가 구릿빛인 탓에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땐 언니가 더 구릿빛이었는데 프로팀에 오면서 피부가 하얗게 된 반면 자신은 그대로라서 속상하다고... 그래서 누군가 피부색을 지적하면 정색하며 싫어한다.

  • 엄청난 동안을 자랑한다. 1984년생으로 2022년 기준 39세의 나이지만 띠동갑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갔는데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동안을 자랑한다.#[39][40]


  • 언니에게 '', ''라고 반말을 깐다. 현실 자매 언니가 제빵의 명장인데...

  • 한유미 - 한송이 자매가 고백하길, 1997년 외환 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소위 '생계형 배구'라 칭하며 배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침 언니 한유미도 1999년 청소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3위라는 호성적 때문에 미국의 모 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41] 당장의 생계를 위해 실업팀으로 입단할 수 밖에 없었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점이 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동기부여였다고 한다.


  • 국내 배구 잡지 더 스파이크 2020년 6월호에서 109~110쪽에서 한유미와 한송이의 온도 차이를 보여주었다. 한송이는 FA공시 하자마자 사인했다. ( "오후에 약속 있어요!" )
(Cool한 동생: 4월 10일, FA공시 당일)
한: 루갈 핵꿀잼~
감독: 안녕 송이야~
한: 어? 감독님!
감독: 이거 계약서인데 한번 읽어보..응?!
한: (도장 꾹) 얍! 이제 편안하게 휴가다~
감독: 뭐야~ FA 계약 따기 쉽잖아~ (감독하고 첫 계약)||
언니: 내동생 한송이가 오늘부터 FA네~ 베스트7 수상, 샐캡 인상, 인삼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 FA대박이겠어! 유튭각!!
언니: 여보세요~ 송이야, 이번 계약 말인데, (간도 좀 보고) 좀 천천히~
동생: 응, 나 계약했어~
HOT한 언니: 한송이 바보~ 똥몽충이!!||

  • 한유미의 배구TV 배유나편에 따르면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GS칼텍스 소속 당시 산 타는 훈련을 하면 거의 꼴지였다고 한다.[42][43]

  • MBTI는 INFJ-A 선의의 옹호자. 인구의 1% 정도만 가졌다고 한다.[44]

  • 반려견반려묘를 키우고 있다. 평소 유기되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관련 단체에 기부도 자주 하고 있으며, 은퇴 후에는 유기견들을 위한 배구 봉사단을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45]

  • 반려견 반려묘 활동뿐만 아니라, 통산 5000득점 당시에는 상금 전액을 학대 피해아동 지원에 기부하고 20-21시즌 베스트 7에 뽑힌 상금을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에 기부한걸 보면 사회복지 쪽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다. 또한 언니 한유미가 그랬던 것처럼 한송이 본인도 후배들이 하는 굳은 일들을 솔선수범하여 나서는 등 리그 내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롤모델이기도 하다. 2010-11시즌 스폐셜V 흥국생명 편에서 후원하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MC에게도 1000원을 줬다

  • 배구가 입시 체육과 딱히 관계있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하루는 한송이가 체대 편입시험에 응시하는데, 일반인한테 달리기에서 졌다고 한다. 그리고 언니 한유미는 충격받았고, 배구 실력과 달리기가 관계없음을 인정했다.

  • 지나가던 관객이 다음 치어풀을 중계 화면에 띄웠다. 그러나 언니 한유미는... 네, 삼십대구요. 게다가 나이까지 굳이 37살이라고 덧붙인 건 덤.
국최고센터
이누나
십대인줄||
  • 데뷔때부터 그랬지만 굉장히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다. 21-22시즌에 KOVO에 공식 등록된 바에 이르면 186cm의 키에 체중이 64kg인데, BMI 수치로 환산하면 18.5로 저체중과 정상체중의 경계선상의 수치다. 운동선수라 일반인에 비해 근육량이 많다고 감안해 보면 운동선수 중에서는 상당히 마른 편인 셈.

  • 박스를 모으는 게 취미라고 한다.[46][47] 떠날[48] 준비를 하고 있다며 본인이 언급했는데,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은 은퇴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

  • 헤어에 관심이 많은듯 하다. 자주 탈색하고 염색도 자주하는 선수중 하나.

  • 한유미-한송이 자매는 어렸을 때 피부가 까맣다고 한다. 한유미는 프로팀 입단하면서 많은 화장품을 바르면서 피부가 백옥피부가 되었는데, 이걸 본 한송이가 "그래, 언니랑 나랑 같은 유전자고, 화장품만 잘 바르고 세월만 지나면 나도 언니처럼 하얘지겠지" 하고 화장품을 정말 꼼꼼히 발랐다고 한다. 본인이 원하는 백옥피부 보다는 건강한 피부로 바뀌어 상당히 좌절을 했다고 한다.

  • 등번호에 관한 에피소드가 되게 웃긴데, 수원한일전산여고 재학 시절 학교에서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다가 교실로 왔는데 남는 번호가 없어서 등번호 12번 선택했다고 한다.[49]

  • 상당히 길치라고 한다. 산 구보 훈련 및 장거리 훈련을 하면 가끔씩 길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뭐 훈련하는데 핸드폰을 가져가지도 않으니 길 가는 행인분에게 전화를 빌려서 언니인 한유미에게 전화해서 "언니, 감독님한테 나 길 잃어버렸다고 어디어디쯤이라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거나, 감독님한테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하거나 그랬다고 한다.

  • 한유미 유튜브 방송에 보면 김희진 편이 있는데 "오늘은 누구 데리고 방송하냐" 그래서 한유미가 오늘은 희진이하고 방송한다고 해서 한송이가 김희진과 친해서 얼굴도 볼 겸 유튜브 방송을 같이 했다고 한다. 한유미, 한송이 둘다 잘해서 국가대표를 자주 갔지만 언니인 한유미가 은퇴하고 나서 한송이는 더 많이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되었다고 한다. 룸메이트 원칙이 고참이 후배 선수를 고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같은 팀끼리는 선택할 수 없는 규율이 있다. 그래서 한송이는 김희진을 거의 숙소 룸메이트로 오랜 세월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한송이가 국가대표팀 훈련하다가 발목 부상이었을때도 걷지 못해서 김희진이 부상입은 한송이를 들쳐 업고 도와줬다고 한다. 회복실에다가 식당에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한송이는 김희진을 아끼는 후배라고 한다. 한송이 집 근처 노래방에서 김희진이 노래를 그렇게 많이 불렀다고, 정다은, 김언혜, 김희진 몇 몇 선수들과 예전에 괌을 여행으로


  • 콜라를 안 좋아하기로 유명한 선수다.[50]

  • 2023년 9월, 생일을 맞아 '쏭대장과 함께하는 기부 플로깅' 행사를 했다. 참여한 팬들과 함께 한강공원에 모여 쓰레기를 줍고 이후 팬미팅을 진행하였으며 팬들이 낸 참가비에 본인의 사비를 더해 사단법인 유엄빠에 기부했다.

  • 프로데뷔 시절부터 지금껏 등번호 12번을 달고 뛰고 있는 선수다.

7.1. 자매 배구선수[편집]


파일:0000034195_001_20180403170631095.jpg

대한민국 여자배구에서 언니 한유미(오른쪽)와 함께 대표적인 자매선수로 유명하다.[51]

한유미-한송이의 수원전산여고 직속 후배인 김연경이 가장 부러워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큰언니가 배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배구선수가 되었는데 정작 큰언니는 배구를 그만두었다는 것.

한때 언니와 함께 국내 잡지에 등장했다.

E채널 노는 언니에 언니 한유미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과거 스포츠조선 1면에 언니와 함께 등장했다.

2023년 2월 21일, 대한배구협회 배구인의 밤 행사에서, 두 자매의 부모님 한선택, 송문희씨가 장한 어버이상받았다.


8. 역대 프로필 사진[편집]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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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5 13:27:05에 나무위키 한송이(배구선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한국배구연맹에 등록된 한송이 프로필 참조[2] 2014-15시즌부터는 실질적으로 미들 블로커로 뛰고 있다.[3] KGC인삼공사로 이적한 2017-18시즌 본 포지션이었던 아웃사이드 히터로 돌아왔다가 이후 미들 블로커로 또다시 포지션 변경했다.[4] GS 시절부터 사용했다. 인삼 이적 후에도 사용하다 잠시 사용하지 않다가, 2022-23 시즌부터 재사용 중.[5] 입단 동기인 김해란과 함께 세미프로 시대인 슈퍼리그에 드래프트로 지명돼 데뷔한 최후의 2인이다. 참고로 세미프로 시대 최초의 드래프트는 2000년으로 당시 전체 1번은 김세영으로 2020-21 시즌까지 뛰었다. 그리고 김세영의 동갑내기이자 리그 데뷔 1년 선배인 정대영이 신인 자유계약 시대에 데뷔한 최후의 1인으로 남아있다.[6] 도로공사는 17-18시즌에 가서 통합우승을 하였다.[7] 한송이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1세트부터 잘 풀리는 날은 공격-수비 범실이 적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8] 도로공사는 한송이를 잡지 못할 것 같자 '고속도로와 관계 있는 팀으로는 보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9] 당장 FA시즌이었던 2007-2008 시즌 몰빵의 여파로 시즌 후 시상식 때 발목 부상으로 목발을 짚고 나왔었다. 거기에 FA계약 난항으로 쉽지않은 시즌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10] 트레이드 상대는 김진희문명화.[11] 팀 주장은 오지영이다. 리베로가 경기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송이가 대신 하는 것이다. 본인 피셜 '바지주장'[12] 언니 한유미는 동생이 간도 좀 보고 밀당도 하면서 더 끌기를 바랬다고 한다. 반면 한송이는 구단이 이미 노장인 자신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해 준게 고마워서 바로 싸인해버렸다고[13] 5000득점으로 받은 상금은 학대 피해 아동 지원에 기부했다.뉴스[14] 참고로 2021-22 시즌 최고령 선수인 정대영은 실업리그 시대 자유계약으로 데뷔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15] 팀내에서 맏언니지만 막내미가 있어서 붙여진 별명.[16] 이 3인방은 GS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끈 주역들이다. 다만 이숙자 코치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나오지는 못했다.[17] 하도 까여서 위키백과에서는 어떤 까가 "배구선수" 중에 가장 리시브를 못하는 선수 1등 한송이 2등 신영수"라고 딱 올려놓기도 했다.[18]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선구 감독이 사실상 임시 대표팀 감독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전임 차해원 감독을 해임한 이후 사실상 V-리그 우승팀 감독이 돌아가며 보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대표팀을 전적으로 맡아야 할 전임감독 선임과 일관성 있는 대표팀 운영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지원 따윈 없는 대한배구협회에 비난을 돌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김연경+자기팀 선수들 중심으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문제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부분.[19] 7월에 열리는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 예비엔트리에서 센터는 한송이, 양효진, 김수지, 박은진, 이다현이 포함되었고, 여기서 복근부상으로 폼이 안 좋았던 김수지가 혼자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며 한송이와 양효진이 VNL 주전 센터로 낙점되었다. 하지만 한송이가 많이 부진하는 바람에 감독이 VNL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만 올림픽 출전 선수를 뽑겠다고 한 방침을 뒤집고 김수지를 다시 불러왔다(...) 그리고 라바리니는 서브공략을 매우 중요시하는 스타일인데 박은진이 VNL에서 서브툴을 극대화시켜 재미를 본 것도 올림픽 엔트리에 영향을 끼쳤다.[20] 공격 10 + 블로킹 2[21] 공격 14 + 블로킹 2[22] 공격 12 + 블로킹 2 + 서브 2[23] 공격 15 + 블로킹 1 + 서브 1[24] 공격 11 + 블로킹 1 + 서브 1[25] 공격 5 + 블로킹 4 + 서브 1[26] 대한민국 대표팀 득점 2위이다. 3위는 27위의 정대영.[27] 리시브 시도수가 251회 (한 경기 31.38회)로 대회에 참가한 윙 리시버들 중 시도수가 가장 높다.[28] 구민정은 김남순 직후 국대 에이스 해결사에 잠시 올랐지만, 바로 81년 황금세대가 등장했으며, 그중 독보적이었던 센터 정대영과 레프트 한유미의 등장으로 1옵션 해결사의 자리를 내주었다. 거기다 전력으로는 비등했던 1980~1990년대 여자배구 강국이었던 중국과 일본에는 그런 공격력이 뛰어난 장신 윙스파이커들이 있었다. 중국의 순유에나 일본의 오바야시 모토코,야마우치 미카 등이 우리 블로킹 위에서 강타를 날리면서 공격하는 장면이 당시 시청자들의 기억에도 남아있다.[29] 다만, 한유미의 경우 2003년 오프시즌 국제대회에서 당한 무릎인대 파열이 선수 커리어 전체적으로 큰 영향을 줬을 정도였다. 김연경 등장 이후에 어쩔 수 없이 동생과 경쟁을 해야했던 건 덤.[30] 김민지의 경우에는 큰 키와 파워가 있었지만 기동력이 떨어졌고, 나혜원은 프로 등장 당시까지는 좋았지만 더 이상의 성장을 하지 못한 케이스였다.[31] 언니 한유미는 2003년 무릎인대 파열 부상으로 인해 서브캐치 역할에서 면제되곤 했고, 한자매보다 바로 아래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임효숙 역시 2001년 FIVB 청소년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당시 주축선수로 원체 수비는 좋았지만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더 성장히자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밖에 상기 언급된 김민지, 나혜원 등 1980년대 중반 생 날개공격수 중에서 롱런한 선수는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32] 이재영의 경우 돌아올 수 강을 건너버린 상태라 사실상 전력외 인원, 반면 박정아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서브캐치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반전에 성공함은 물론 포스트 김연경 시대의 해결사로서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줬다.[33] 실제로 GS칼텍스에서 KGC인삼공사로 사인앤 트레이드 이적 시 원 포지션이었던 레프트로 되돌려주겠다는 서남원 감독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34] 시즌 블로킹 부문은 양효진이 2009-10 시즌부터 무려 11시즌 동안 연속으로 1위를 기록했다.[35] 참고로 라바리니 체제에서 줄곧 선발된 박은진 역시 공격 측면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센터의 기동력 측면에서 아쉬울지언정 소극적이지는 않다는 얘기.[36] 미들블로커 기근으로 날개공격수도 미들블로커로 돌릴 수 밖에 없던 포지션 돌려돌려 돌림판+좌파배구를 운용했던 GS칼텍스 말년에도 종종 이렇게 활용되었다.[37] 2012년 들어서는 항목 2의 한송이가 활동을 중단했고, 항목 6의 한송이가 더 유명해져 항목 5가 먼저 뜨는 경우가 많아졌다.[38] 소장 목적도 있지만, 배구 선수들 중에 농구화를 신고 경기에 뛰는 선수도 있을 정도. 농구화의 접지력 때문에 무겁더라도 배구화 대신 농구화를 신는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가빈 슈미트가 있다.[39] 참고로 놀이공원 같이 간 선수들은 나현수(99년생), 고의정(00년생), 서유경(02년생). 한참 한송이가 프로 갈 준비하고 있을 때 태어난 선수들이다.[40] 심지어는 숙소일기 다같이 산다 흥국생명 편에서 어떤 팬이 한송이, 김해란과 연관해서 김해란, 한송이는 동기의 느낌이 안 나지 않음?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김해란 - 한송이 동기가 제일 충격적이었다.고 댓글을 달아놨다고 한다. -불같이 화가 난 김해란은 덤.-[41] 한유미의 유튜브 채널에서 나무위키 낭독회에서 밝힌 내용인데, 한유미의 발언으로 봐서는 보통 대학교 스카웃이 아니라 NCAA 배구 여자부에서도 수준급 성적을 내던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단 한유미뿐만 아니라 당시 청대팀 주축이었던 정대영, 김사니도 역시 비슷한 제의를 받았다.[42] 다행히 그 뒤에는 배유나, 이소영이 뒤따라 꼴지는 면했다.[43] 트레이드를 통해 GS칼텍스에서 KGC인삼공사로 이적한 2017-18 시즌 스페셜 v 플레이어스캠 맨투맨에서도 본인도 체력이 약한 편이라서 빵이나 바나나, 초콜렛 같은 간식도 먹는다고 언급했다. 특히나 본인이 워낙에 먹는 것도 좋아해서 소속팀 매니저가 조금 사다주는 간식을 잘 챙겨서 먹는다고. 이후 자막은 이렇다. 당신을 대식가로 인정합니다. 또한 몸에 좋다는 보충제, 마그네슘, 비타민과 같은 건강식품을 평소에도 잘 챙겨먹는다고. 다시 말해 약의 힘으로 버티고 있단다. 또한 이후 자막으로는 34세, 몸 생각해야 할 나이.라고 쓰였다.[44] 같이 검사한 김희진ENFP-T 재기 발랄한 활동가가 나왔는데 가장 이상적인 궁합으로 판명. 실제로 이 둘은 과거 룸메이트를 했었는데 당시 관계가 괜찮았던듯.[45] 키우던 반려견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46] 2017-18시즌 숙소일기 다같이 산다 KGC인삼공사편에서 언급했다.[47] 큰 박스를 발견한 최수빈이 왜 박스가 많냐며 물어본 것이 발단.[48] 그만큼 배구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49] 이후로 지금껏 12번을 달고 코트에서 뛰고 있다고.[50] 소속팀 유튜브 채널에서 홍다이 통역이 한송이를 보고는 제로콕이라고 하자 이같이 언급했고, 이후 홍다이 통역은 당황해했다.[51] 한때 한유미-한송이 사이에 있는 작은언니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유언비어로,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극성팬이 퍼트린 낭설이다. 실제로는 한유미-한송이 두 자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