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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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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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3. 성향
4. 저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www.ncronline.org/20090226cnsph00188_0.jpg
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스위스 출생의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 대표적인 반교리적 진보파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 중부지역이자 가톨릭 강세 지역인 루체른 주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을 가졌다고 한다. 2021년 4월 6일 독일의 튀빙겐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 활동[편집]


교황청 소속 그레고리오 대학을 졸업했고 사제서품을 받은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스 큉의 박사 논문 주제는 의화론으로 개신교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신학과 가톨릭의 의화론이 충돌하지 않고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1]였다. 칼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의 뿌리를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에 두었기 때문에[2] 필연적으로 교회일치운동을 지향했다.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제프 라칭거의 절친으로 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신학적 연구를 제공했으나, 나중에 라칭거 신부가 정통 교리 수호와 연구에 집중함에 따라 관계가 소원해졌고, 큉이 『무류성에 대한 의문』(Unfehlbar? Eine Anfrage)[3] 출판한 이후[4] 교수권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 시기 당시의 신앙교리성 장관이 건의한 바였는데, 그 장관이 다름 아닌 요제프 라칭거였다.

이 사건 후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는 큉 교수와 논의 끝에 에큐메니컬 신학부를 신설하였다. 가톨릭 교계에서도 교수 자격만 박탈하고 사제직은 박탈(파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큉 스스로는 20세기판 종교 재판을 당했다며 매우 아쉬워한다. 그는 바티칸의 교수직 박탈 조치가 시대 착오적인 교황무류성 교의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치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세계 신학자 수백 명 이상이 교황무류성 교의를 비판했지만 교회의 압력으로 입을 다물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3. 성향[편집]


가톨릭 사제로서도 신학적으로 반(反)정통 교리적 진보파이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5]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6]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행보는 학문적인 면에서 주제가 다양한 편이고, 저서는 가톨릭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학, 윤리 등 다양한 영역까지 다루었다.《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시리즈는 이름이 알려졌다. 당연히 가톨릭 내 정통 교리를 준수하는 사람들은 그의 저서가 반교리적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었다고 평가한다. 교황무류성뿐만 아니라 여성 사제 서품[7], 사제 독신제 폐지에도 찬성하는 입장이며 피임, 낙태, 이혼 등 가정과 생명 문제나 동성애 문제에도 반가톨릭 교리적 입장이다. 그리고 교계에서 존경받는 요한 바오로 2세를 매우 정통 교리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비판했고, 여러 차례 순방으로 많은 교구를 파산시켰고 낙태나 이혼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가톨릭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에게 부정적이며, 특히 그의 교회론이나 여성 사제 찬성론을 매우 비판한다.

그러나 한스 큉은 교황의 수위권을 (물론 대다수 가톨릭 신학자의 이해와는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인정하거니와, 큉 스스로의 정체성은 분명하게 가톨릭이었다. 비록 교회론, 교회일치운동, 일부 사회교리에서는 반정통 교리적인 입장을 피력했지만, 교황수위권의 근간 및 7성사, 주교제를 완전 부정한 것도 아니며, 파문을 당한 것도 아니며,[8] 죽을 때까지 가톨릭 교회와 일치되어 있었다. 강의 자격이 중지된 이후에도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으며, 2016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무류성 토론을 제한하지 않겠다." 하는 개인적인 답변을 받았다 한다.출처: 가톨릭 평화신문 (2016. 05. 08)

흔히 큉을 '교황 무류성을 부정한 가톨릭 신학자' 정도로 기억하고, 언론에서도 '현대판 루터'라느니 하는 자극적 표현을 선호하지만, 교황 무류성 부정은 큉의 신학이 지닌 파격성 중 전체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고 그의 주장이 '개신교 신학'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당장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한 견해만 하더라도, 큉의 견해는 가톨릭 내 보수파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급진파 개신교 신학자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 동방정교회의 모든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교회 일치적 목표, 곧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를 추구했다. 그러나 영향력 있고 과감한 일치 운동가들인 다니엘루,[9]

콩가르,[10] 쿨만,[11] 불가코프[12]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교회 일치적인 목표를 추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일치 운동은 내부를 향한 것으로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한스 큉과 더블어 일치 운동은 훨씬 더 넓어져 신앙인과 비신앙인,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포괄하는 온 인류에게 이르게 되었다. 그의 신학은 '보편적인 교회일치신학'이다.

-Battista Mondin 『신학사』(Storia della Teologia) 제4권, 이재룡 · 윤주현 · 안소근(역), 1227쪽


한스 큉은 종교 간 대화와 관련하여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의 역사와 신학 모두를 폭넓게 다루었으며, 많은 문헌들과 오랜 숙고를 토대로 "평화의 보편 신학"을 위하여 종교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보편적인 신학으로서 종교신학을 구상했다.

비판적인 보편적 신학은 무신론과 상대주의 외에도 자신의 종교만을 참된 종교로 여기는 배타주의와 다른 종교들을 자신의 종교에 종속시키는 포괄주의를 배제한다. ... 큉은 『출발하는 신학』(Theologie im Aufbruch)에서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일반적인 윤리적 기준'에 따르면, 어떤 종교가 인간적이고 인간성을 억압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이를 옹호하고 촉진시킨다면 그 종교는 참되고 좋다. '일반적인 종교적 기준'에 따르면, 어떤 종교가 자신의 기원에 또는 경전에, 진정한 '본성'에, 자신이 끊임없이 상기하는 성경 또는 규범적 인물에 충실하게 머문다면 그 종교는 참되고 좋다. '특수한 그리스도교적 기준'에 따르면, 어떤 종교가 자신의 이론과 실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울 분명하게 보여 준다면 그 종교는 참되고 좋다." 큉은 이 기준을 그리스도교에만 '직접적으로 적용'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자로서 그리스도교 내부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측면인 윤리적 및 종교적 측면에서는 참된 종교들이 여럿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분명하게 신학적인 부분인 '실존적' 측면에서는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참되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교만이 참되다.

-Mondin, 같은 책, 1245-1246쪽.

그리스도교 내부의 일치 운동에 있어서도, 큉의 처방은 굉장히 급진적이다. 큉에 의하면, 가톨릭은 교황직을 권력의 도구로 만들었으며, 정교회는 전승을, 개신교는 성경을, 오순절 운동은 그리스도교적 자유를 권력의 도구로 만들었다. 즉 큉에 의하면, 가톨릭이 교황을 보는 시선도, 개신교가 성경을 보는 시선도, 정교회가 전승을 보는 시선도 모두 다 초대 교회와는 다른 것이다.

큉은 가톨릭 교회만 교황권의 구조와 관련하여 고대의 것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특징적 요소들을 절대화하며 권력의 도구로 만들어놓은 다른 모든 교회들도 되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전승을, 개신교에서는 성경을, 오순절교와 다른 젊은 교회들은 "그리스도교적 자유"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Mondin, 같은 책, 1233-1234쪽.

또한 큉은 무류성의 대상에서 교황의 무류적 선언을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공의회, 성경 등 인간의 언어로 된 모든 명제를 제외한다.

『무류성? 질문』(Unfehlbar? Eine Anfrage)에서 무류권 문제를 검토하면서 루터와 칼뱅의 주장을 넘어서는 급진적 결론에 도달했다. 큉에 따르면, 오직 하느님만이 오류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무류권은 교황도 공의회도 성경도 지닐 수 없는 특권이다. ... 이론적 논거는, 인간의 언어로 무류적인 명제를 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과 내가 표현하는 것 사이에, 나의 의도와 나의 언어 표현 사이에 언제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13]

... 큉은 구원 역사의 어떤 가시적 요소에도 무류성은 없다는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 낸다. 성경에도, 공의회에도, 로마 교황들에게도 무류성은 없다는 것이다. 무류성은 언제나, 그리고 오직 하느님께만 속한다.

-Mondin, 같은 책, 1235-1236쪽.

이런 의미에서, 큉의 신학은 정통적인 가톨릭 신학도 아니고, 현대적인 개신교의 신학도 아니며, 그보다는 19세기의 고풍스러운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의 현대 가톨릭적 변주에 가깝다.

한편 교황 수위권 문제에서, 큉은 결코 수위권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큉의 관점은 교황권이 교회의 단일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는 쪽이다.

로마의 수위권이 교회의 단일성과 교회의 신앙과 서구 세계에 기여한 업적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민족 대이동 시대에 국가 질서가 전반적으로 와해되고 오랜 제국의 수도가 몰락했을 때, 이 베드로 대성당의 봉사만은 거의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반석임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어린 서방 민족들은 얼마나 고맙게 여겼던가! 오직 레오만이 앗틸라가이서리히를 대항하여 서로마를 보존할 수 있었다. 로마 교좌는 신생 서구 민족들의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 처한 어린 교회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큰 봉사를 했다. 그것도 비단 귀중한 고대의 유산을 보존하는 문화적 봉사일 뿐 아니라, 이 교회들의 건설과 보존을 위한 진정한 사목 봉사였다! 이 시대는 물론 이후에도 가톨릭 교회는 크게 교종직에 힘입어, 간단히 국가에 넘어가지 않고 비잔틴 황제들의 정교(政敎) 합일주의나 게르만 영주들의 교권분리주의에 맞서서 교회의 자유를 보존할 수 있었다. 과연 그것은 교회의 단일성에 기여하는 봉사였다.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Was Ist Kirche), 이홍근(역), 173쪽

이 발췌문에서 볼 수 있듯이, 큉의 관점은 교황직이 필요없다는 쪽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큉은 지역 교회가 세속 국가의 도구로 이용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교황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중세 프랑스의 갈리아주의에 대해선 "어용법학"(같은 책 174쪽)이라는 가혹한 말까지 사용할 정도였다.

큉은 가톨릭 신학적으로 보자면 분명하게 비정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 정체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가톨릭 교회에 분명한 애정이 있었다. 가령 가톨릭 춘천 교구장인 장익 주교는 큉의 저서 한국어판 맨 앞에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적었다.

한스 큉의 이 저서가 어떤 의미로는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가 논란을 위한 논란을 벌인다고 속단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고 보기에는 교회에 대한 그의 충심과 사랑이 너무나 역력하다. 아니, 바로 그렇기에 교회에 애타게 바라는 그의 마음 또한 그토록 간절한 것이다. 이 점, 편견 없이 이 책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Was Ist Kirche), 이홍근(역), 5쪽. 장익 주교의 추천사.


교회 민족주의(지역 국교회와 민족주의 내지는 세속정부와 결탁하는 행태)에는 '일종의 우상숭배'라며 비판적인 입장이며[14], 러시아 정교회나 성공회 등에 대해 이러한 요소에 대해 염려하는 시선을 보냈다.

또한 큉은 정치적으로는 우파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서유럽 주류의 이민(다문화) 정책[15]과 (급진적) 복지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며, 자유주의자답게 사회주의도 부정적으로 본다. 따라서 큉을 개신교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적 반정통 교리 진보파(정치적 진보파가 아닌) 신학자로 볼지언정 해방신학 계열로 보기는 어렵다. 가톨릭 및 개신교 내 신학적 진보파 중에 정작 정치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 다문화주의(강경 문화상대주의), 급진적 복지정책,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딱 그런 스탠스라고 보면 된다.


4. 저서[편집]


《음악과 종교》(이기숙 역, 포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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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르트 역시 큉의 연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71941&path=201309[2] 바르트는 자신이 직접 배운 스승들 당시 자유주의 신학과 완전히 학연 단절을 선언했다. 그 대신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 1세대 신학자들이 연구로 돌아섰고, 루터의 로마서 강의는 바르트의 명작으로 꼽히는 (1920년 발표한) 로마서 연구로 이어졌다.[3] 이 제목은 『무류성? 하나의 질문』으로 직역할 수도 있다. 영어 제목은 『Infallible? An Enquiry』이다.[4] '교황 비판했다가 제재 당했다'라고 단순화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해당 저서는 '교황의' 무류성만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된 모든 명제'의 무류성을 거부하는 책이다.[5] 여기서 말하는 신학적 진보파는 이혼, 동성애와 같은 사회교리 문제에 반정통 교리적 스탠스를 보이고, 반정통 교리파들의 에큐메니즘 관점에서 폐쇄주의적이라 여겨지는 가톨릭 교회론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는 그런 입장을 말한다. 경제적 정의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적 진보파와는 다르다. 물론 양성평등,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이다가 신학적 反정통 교리적 진보파로 전향하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도(단, 이혼, 동성애 등은 제외) 신학적으로는 정통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가능하다.[6] 특히 성공회루터교[7]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는 성공회에서도 여성 사제 서품에 반발하여, 고교회파 내 보수파 다수가 성공회를 탈퇴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독자적인 교단을 창설하는 대분열이 일어났을 정도로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 성공회에서도 논란이 된 사항에 긍정적이라는 것은 가톨릭 내에서 상당히 반정통 교리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8] 사실 큉이 파문 처분을 받지 않는 데는 큉 개인의 태도와도 관련 있다는 얘기도 있다. 교도권에 의해 전격 파문된 다른 이들과는 달리 큉은 '교도권의 공식 입장이 오류의 가능성이 높으므로 교회는 이를 당장 시정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교회를 공격하진 않았고, 교회의 경고에 대해 '일단은 시정의 노력은 해보겠다'는 정도로 답변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9] Jean Daniélou S.J.(1905-1974). 프랑스인 예수회원으로, 20세기 가톨릭의 교부학 연구와 역사신학, 교회 일치 운동 등에 크게 공헌했다.[10] Yves Congar O.P.(1904-1995). 프랑스인 도미니코회원으로, 성령론, 교회론, 교회 일치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11] Oscar Cullmann(1902-1999). 스트라스부르(스트라스부르크) 출신의 루터교 신학자.[12] Sergiej Bulgakov(1871-1944).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자로, 소련의 종교 억압 정책 때문에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13] (책 속 주석)Küng, Infallibile?: una domanda, Brescia, 1970, p.182.[14] On being a Christian(1974) 등[15] 특히 이민자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시민교육까지 문화제국주의라며 부정하는 강경 문화상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