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죠피 숄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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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1월 독일의 공영TV인 ZDF가 독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독일인 1백인’을 발표한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콘라트 아데나워
마르틴 루터
카를 마르크스
한스, 죠피 숄 남매
빌리 브란트
6위
7위
8위
9위
10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오토 폰 비스마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1위부터는 영문 위키 참고.
같이 보기 : 위대한 인물 시리즈


1. 개요
2. 생애
2.1. 하얀 장미 결성전까지
2.2. 활동
2.3. 최후
3. 기타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Hans_scholl.jpg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Sophie_scholl.jpg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48003.jpg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Kurt-Hubert.jpg
한스 숄
1918년 9월 22일 ~ 1943년 2월 22일

조피 숄
1921년 5월 9일 ~ 1943년 2월 22일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1918년 11월 6일 ~ 1943년 2월 22일

쿠르트 후버 교수
1893년 10월 24일 ~ 1943년 7월 13일


나치에 저항하는 비폭력 단체인 하얀 장미를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2. 생애[편집]



2.1. 하얀 장미 결성전까지[편집]


오빠 한스 프리츠 숄(Hans Fritz Scholl)은 1918년 9월 22일에 독일 남부에서 태어났고 3살 터울여동생 조피아 막달레나 숄(Sophia Magdalena Scholl, 애칭 조피)은 1921년 5월 9일에 태어났다.

1940년대 나치는 우생학에 경도되어 장애인을 비롯한 '열등 유전자'를 말살하는 T4 작전을 벌여 강제로 안락사와 불임 수술 등을 자행하고 있었다. 한스와 조피는 독일 제국 가톨릭 추기경 클레멘스 아우구스티누스 에마뉘엘 요제프 피우스 안토니우스 후베르투스 마리 그라프 폰 갈렌(Clemens Augustinus Emmanuel Joseph Pius Anthonius Hubertus Marie Graf von Galen, 1898~1946)[1]의 강론을 듣고 경악하여 하얀 장미를 결성했다.


2.2. 활동[편집]


그들은 아우구스트 폰 갈렌 주교의 강론 전문을 복사하여 뮌헨 대학교에 살포했다. 그리고 급우 알렉산더 슈모렐(1917~1943), 빌리 그라프(1918~1943), 크리스토프 프롭스트(1918~1943) 등과 그들의 대학교수였던 쿠르트 후버(1893~1943)가 입단했다. 이들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나치가 곧 망한다고 주장하고 1943년 2월까지 나치 지지세가 강했던 독일 남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3. 최후[편집]


이들은 6번째 전단지를 1943년 2월 18일 뮌헨 대학교의 수업 종료에 맞춰 공개적으로 배포하던 중 나치당원인 뮌헨 대학의 경비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악질 나치 부역자 판사인 롤란트 프라이슬러에게 재판을 받게 된 남매는 당당하고 용감하게 신념을 발언하였으나[2] 사형을 선고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언"자유여 영원하리""태양은 아직도 빛난다"이다.

다른 하얀 장미 구성원들도 첫번째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당하거나 2번째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3]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치는 이 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심지어 전단을 인쇄하는 것을 도왔나 멤버 중 한 명인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까지 체포해 6개월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하얀 장미에 대한 나치의 탄압은 극심했다.

나치의 연좌제식 탄압에 숄 집안은 그야말로 멸문지화를 당했으나 맏딸 잉에 숄(Inge Aicher-Scholl, 1917~1988)은 나치 패망 후까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녀는 나중에 "하얀 장미(Die Weiße Rose)"라는 책을 썼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1970년대 말 최초 출간되었으며 당시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 재출간된 버전(미네르바 문고 시리즈 제4권)으로 구할 수 있는데 아동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3. 기타[편집]


상술한 잉에 숄의 '하얀 장미'는 1982년 독일(당시는 서독)에서 영화화되었다. #위키피디아#IMDB

2003년에는 독일 역사의 위인들을 부조로 만들어 기리는 레겐스부르크[4]발할라 기념사원에 반나치 운동가로는 최초로 조피 숄이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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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네임이 엄청나게 긴 것은 귀족이기 때문이다. 백작 출신이었다. 2005년에 베네딕토 16세가 성인으로 시성했다.[2] 다만 훗날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완전한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조피는 자신과 오빠의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증거가 드러나자 솔직하게 인정한 뒤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고.[3] 쿠르트 후버와 빌리 그라프, 알렉산더 슈모렐.[4] Regensburg. 뮌헨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