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아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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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16대 리히텐슈타인 공.
2. 생애[편집]
1945년 2월 14일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프란츠 요제프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장크트갈렌 대학교 비즈니스 및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섭정이 되었으며, 1989년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2세가 서거하자 공위를 계승했다.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재산은 8조 원에 달한다. 모나코의 그리말디 가문보다 5배 부유하며,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왕조보다 400배 부유하다. 알로이스 공세자를 섭정(Regent)[1] 으로 임명하고 국내의 전권을 이양하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공위(公位)는 한스아담 2세에게 있다.
3. 가족 관계[편집]
1967년에 6살 연상인 브히니츠와 테타우의 마리 킨스키 여백작(Fürstin Marie Kinsky von Wchinitz und Tettau)과 결혼해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4. 기타[편집]
섭정 알로이스 공세자는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본인의 도덕적 가치관으로 도무지 용인할 수 없었는지 법안에 서명하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빌 게이츠에게 나라를 팔아버리고, 나라 이름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바꾸게 하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겠다."라고 협박하기도 했다.[4]
공가 입장에서는 사실상 세금이 없는 수준의[5] 나라를 공가의 사유 재산으로 먹여살리는 수준이니 의회가 거역할 수가 없다. 결국 알로이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의회는 할 수 없이 그의 거부권을 수락했고, 이에 따라 알로이스는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한 몇 안 되는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그래서 리히텐슈타인은 유럽 최후의 전제군주제 국가라며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가 너무 작아서 국정이 별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고, 공가 덕분에 복지를 받고 있는 국민들도 공가의 강력한 왕권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의 오촌 조카이다. 한스아담의 친할머니 엘리자베트 아말리 여대공[6] 이 카를 1세의 이복 고모다.[7]
5. 둘러보기[편집]
[1] 조선으로 치면 대리청정[2] 바이에른 왕국의 왕족이자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인 프란츠 공작의 조카로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의 먼 후손이다. 백부인 프란츠 공은 후사가 없고, 그의 동생인 막스 공은 아들이 없어 막스 공의 장녀인 조피가 자코바이트의 추정 승계자이기도 하다. 비텔스바흐 가문은 살리카 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가문 수장은 프란츠 공과 막스 공의 6촌인 루이트폴트가 이을 예정이다.[3] 파나마 출신의 패션디자이너다.[4]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본래 오스트리아 황제의 봉신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안슐루스로 인해 독일에 합병당하기 전까지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현재의 리히텐슈타인이 아닌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공과 공족들도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장군과 외교관으로 많이 활약했었다.[5] 세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와 같은 제도는 있다.[6]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의 차녀.[7] 카를의 아버지 오토 대공의 이복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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