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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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날짜
3. 유래


1. 개요[편집]


한식()은 한국의 명절 중 하나이다.


2. 날짜[편집]


동지의 105일 후로서[1] 보통 4월 5일이나 6일쯤이다. 시기가 24절기청명과 날이 자주 겹친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일)"라는 속담이 있다. 주로 나쁜 일이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늦어도 별 차이 없다는 뜻. 오십보 백보. 현대에 들어서는 식목일이 추가됐다

5대 명절 중 하나인데, 나머지 넷인 설날,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은 모두 음력으로 날짜를 정하지만, 한식은 양력 기반인 24절기로 정한다.[2]


3. 유래[편집]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고사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晉)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중국에도 있는 날이지만 한식에 하는 일을 지금은 다 청명에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중국의 한식은 청명 하루 전날로 정해진다. 이는 시헌력 때문인데 동지 105일 뒤가 청명보다 먼저였다. 시헌력에서는 동지 105일 뒤가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늦어진다. 그래서 한식이 청명보다 먼저란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바꾼 것.

개자추진문공(文公)과 19년간 망명생활을 함께하며 충심으로 보좌했으며, 식량이 없어 문공이 굶주리자 자기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먹인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문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일 탓에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아 실망한 개자추는 면산(緜山)에 은거했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문공을 따라 그 고된 생활을 한 건 뭔가를 노리고 한 게 아니라 마땅히 그리 해야 했을 일이기 때문에 한 것인데, 그걸 빌미로 관직을 얻고 떵떵거리는 과거 동료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고도 한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지만, 끝끝내 그는 어머니와 산을 나오지 않았으며 불이 꺼진 후 나무를 끌어안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를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라 한다. 이에 진문공이 그를 애도하여 한해에 이날 하루는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겠다고 영을 내려 사람들이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 한식의 유래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보다는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예전에 쓰던 묵은 불(舊火)의 사용을 금지하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4. 세시풍속[편집]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하는 등 묘를 돌아보는 일을 한다.

과거 식목일법정 공휴일이었을 때 한식이 식목일과 날짜가 같거나 하루이틀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식목일에 한식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식목일이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3] 이러한 풍속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물론 식목일에 쉬지 않아도 그 주의 주말 즈음 해서 성묘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한식의 위상이 매우 컸다. 설날추석에 이어 단오와 맞먹을 정도의 위상을 갖춘 명절이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설날과 추석만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서 명절의 위상을 유지시켰고 정월 대보름과 한식과 단오를 더 이상 명절로 쇠지 않게 되면서 그 위상이 쇠퇴했다. 정월 대보름과 단오는 사실상 대중적 명절로서의 지위가 미미해졌으나[4] 여전히 한식 즈음에는 성묘를 하는 집안들이 은근히 있다.

동학(천도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1860년 음력 4월 5일에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래서 동학/천도교에서는 음력 4월 5일을 기념하였으나, 1908년에 천도교 4대 교주 춘암 박인호가 천도교의 기념일을 음력 날짜에서 그대로 날짜만 양력으로 옮겨 기리기로 정한 이후, 양력 4월 5일에 최제우가 계시받음을 기념한다. 그래서 천도교에서는 한식은 주요 명절이고, 식목일이 휴일 지정이 해제될 때도 이 때문에 천도교 측에서 반대가 있었다.

[1] 15주일이 정확히 105일이므로 동지와 이듬해의 한식은 요일이 같다.[2] 24절기는 전통 역법에 포함되어 있어 음력에 기반한 요소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은 음력을 사용할 때 알기 어려운 태양의 이동과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24절기이므로 태양력에 기반한 요소이다. 애당초 조선 후기 청나라로부터 시헌력을 받아들인 이후로는 책력이 엄밀히 말하면 태음력이 아닌 태양력으로 바뀌었다. 태양력에 근거하되 태음력의 형식을 따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헌력 이후로의 음력을 태음태양력이라고 하는 것이다.[3] 이 때문에 4월에는 기본적으로 4년에 한 번씩만 공휴일이 생기게 되었다.[4] 다만 정월 대보름에 견과류를 일부러 사다 먹는다든지 구내식당에 견과류 믹스가 올라오기도 하는 등 풍습 자체는 정월 대보름이 오히려 잘 남아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또 단오의 경우 강릉단오제 등의 행사가 유지·전수되고 있고 대한씨름협회가 단오장사 씨름대회를 정례적으로 여는 등 전통 풍습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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