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베트남 혼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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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상세
3. 갈등
4. 베트남인과 결혼한 한국인
5. 유명 인물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한월혼혈 ()이란 한국인베트남인의 혼혈을 말한다. 유전적으로 딱 반반 혼혈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어렵지만,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이고 다른 한 명은 베트남인이라는 정보를 알리기 위해 한월혼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2. 상세[편집]


과거 베트남인이 한국에 온 사례로 고려 시기 화산 이씨, 정선 이씨가 있다고 하지만, 화산 이씨나 정선 이씨는 족보를 바탕으로 시조를 베트남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기에 사료 간 교차검증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화산 이씨의 시조라고 알려진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의 고려에서의 행적은 화산 이씨 측에서 제작한 화산이씨세보(1920년), 수항문기적비(1903년) 등을 제외하면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교차 검증이 되지 않으며, 만연했던 숭조(崇祖) 경향으로 인해 전혀 인연이 없는 높은 신분의 외국 왕족을 시조로 삼았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다.[1] 또한 정선 이씨도 족보를 바탕으로 이의민의 조상이 리 왕조 신종의 동생 이양곤(李陽焜)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양곤이 고려로 망명하여 이의민의 조상이 되었다기엔 행적과 나이가 심각하게 맞지 않는다.[2] 심지어 이의민은 원래 천민 출신이었고, 정선 이씨의 족보는 이의민이 활동하던 시기로부터 500년은 지나고나서야 처음으로 편찬되었다.

현대에는 한국군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기업들도 사업을 위해 진출하면서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혼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베트남의 패색이 짙어져 한국군이 철수를 하게 되자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혼혈아와 현지처를 한국에 데려오기로 하였지만, 한월혼혈의 다수는 베트남에 남게 되어 라이따이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게 된 한월혼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한월혼혈 아동도 소수 있었고, 한국인을 따라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여성과 한국인이 대한민국에서 결혼하여 혼혈 2세를 낳는 경우가 있었다.

이후 오늘날 실질적인 한월혼혈 인구의 대다수는 베트남이 개방에 들어가고 한국과 수교하면서 국제결혼을 통해 들어온 베트남 출신 여성과 시골 한국 남성 간의 자녀들이 차지하고 있다. 간혹 주한미군 소속의 베트남계 미국인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얻는 경우도 존재한다.

북부 지역의 베트남인은 다른 동남아시아인보다 중국 최남부 지역의 남방계 민족과 외적으로 유사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있는 편이다. 베트남 북쪽에 있던 남방계 중국인이 베트남 북부로 이주했기 때문이다.[3] 또한 북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유교·한자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동아시아와 유사한 면이 있어, 다른 동남아인보다 매매혼 상대로 다소 선호되었다.


3. 갈등[편집]


이들은 대개 지방 시골 농촌 출신들이 많아 서울이나 광역시 등 대도시로 주거지를 옮기거나 대도시 내 학교를 다닐 때 차별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연애 결혼으로 만난 동남아 여성영어 회화를 하는 편이며,[4] 유복한 가정은 베트남 5대 도시에 위치한 아파트/저택에서 거주하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를 1년에 2~3번 이상 방문하는 편이다.

한월혼혈은 피부색 이목구비 인종적특성 등 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경우도 존재 하지만,[5] 사실 다른 외모만이 차별의 이유가 아니다. 이들이 차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굉장히 많다. 베트남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보니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국인보다 한국어 습득이 많이 느린 편이라서[6] 차별과 집단따돌림의 희생자가 되곤 한다. 반대로 베트남에서만 생활했는데도 한국인 아버지 덕분에 한국어 발음이 정확한 경우도 있으며, 예시로는 벨라가 있다.

2000년대 들어 동남아 매매혼이 늘어나면서 동남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한월혼혈들은 자신이 베트남 혼혈이라는 걸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7]

4. 베트남인과 결혼한 한국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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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명 인물[편집]




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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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베트남에서도 화산 이씨가 이용상을 시조로 하고 있다는 것을 1959년부터 긍정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혈연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얘깃거리가 되었다. 애초에 화산 이씨의 족보 빼고는 어디에도 맞다 그르다를 논할 자료가 없기도 하다.[2] 이양곤의 고려로의 망명 자체를 사실로 보기 어렵다. 그는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후 송나라로 망명했다가 고려로 재차 망명했다고 하는데, 신종이 1116년생이므로 이양곤은 아무리 일찍 태어났어도 1116~1117년생이고, 이 말은 7살 정도에 불과한 어린이가 2번이나 망명을 했다는 말이다.물론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또한 이의민의 생년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1160년대부터 이미 장성하여 무신정변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 1116~1117년생의 5대손 씩이나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혹여나 부자 관계라면 가능할 수 있어도 이의민의 아버지는 고려사 이의민 열전에 이선(李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이선은 소금 장수였으며, 이의민의 모친은 옥룡사(玉靈寺)의 여종이었다. 이의민은 삼남 중 막내였다.[3]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남쪽에 살던 베트남 원주민(크메르인, 말레이인 등)이 많이 살해되기도 했다.[4] 베트남도 중산층부터는 한국처럼 교육열이 엄청 강하다.[5] 하지만 한국인인 한쪽 부모를 많이 닮아서 먼저 밝히지 않으면 혼혈인것을 모를 정도로 한국인처럼 생긴 아이들도 꽤 많은 편이다. 특히 북부 베트남인의 경우 한국인과 인종적인 차이가 거의 없기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혼혈인 것이 티가 안 나는 경우가 많다.[6] 부모 양쪽이 모두 토종 한국인인 자녀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다 깨치는 경우가 많다.[7] 하지만 외모상 식별 가능한 혼혈이라면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