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수 아내 살인 누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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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살인사건으로 변하다
2.1. 경찰의 주장과 재판
3. 반전: 밝혀진 무죄
3.1. 끝나지 않은 싸움, 억울함 풀 길 없어
3.1.1. 모든 것을 잃었다
3.1.2. 사회적 상황
3.2. 유죄추정의 원칙?
3.3. 윤종현 변호사의 말
4. 결론
4.1. 감(感)과 심증의 위험성


1. 개요[편집]


인천에서 냉동탑차를 운행하면서 우유 배달업을 하던 한현수 씨(당시 33세)는 노모와 아내, 두 살 난 아들을 이끄는 가장이었는데 2000년 8월 11일 밤 10시경 아내와 함께 트럭을 몰고 형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경인고속도로를 시속 70km로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씨의 차에서 무언가가 옆으로 떨어지면서 차는 급정거했고 놀란 한 씨가 뛰어내려왔다. 떨어진 것은 한 씨의 아내였다. 한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가 발견한 것은 후두부에서 피를 흘리면서 의식불명이 된 한 씨의 아내와 이를 부축하는 한 씨의 모습이었다. 한 씨는 서둘러 집과 자동차 보험회사, 그리고 우유배달회사에도 사고 소식을 전했으며 뒤이어 고속도로 순찰대와 구급차도 도착하여 사고현장을 수습하고 한 씨를 조사했다.


2. 살인사건으로 변하다[편집]


불행한 일이었지만 사고 수습을 하면서 슬픔에 젖어 있던 한 씨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살인 사건으로 변했다. 이는 사망자에 대한 부검(剖檢) 소견에 교통사고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후두부 골절이 일어났다는 구절이 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를 본 경찰과 담당형사는 한 씨를 조사했고 아내의 명의로 된 보험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보험금을 노려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생각해 한 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한 씨를 추궁했고 자백을 강요했지만 한 씨는 사고라며 부인했고 경찰은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음에도 심증에 확신을 가져[1] 기자회견을 열어 한 씨가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내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트럭을 몰고 가던 남편 한 씨가 조수석에서 졸고 있는 아내를 보고는, 보험금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내를 살해할 것을 결심하고, 조수석 문을 열고 아내를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려 살해하고는, 자신은 아내의 사고에 놀라 당황하는 남편을 연기하려고 119를 부르는 등 위장했다.



2.1. 경찰의 주장과 재판[편집]


한 씨의 아내 명의로 든 보험이 여러 종류였고 그 수취인은 남편과 가족이라는 것이 경찰이 내세운 정황증거였다.

경찰은 한 씨의 가정은 평소에도 가정불화가 잦았고 생활고에 찌든 가정임이 조사에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남편 한 씨가 옆자리에서 조는 아내를 보고 순간적으로 밀어뜨려 살해하면 보험금을 탈 수 있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경찰은 한 씨의 살해 동기를 기재했는데 이는 당시의 공소장(公訴狀)[2]에 실제로 검찰이 기재한 내용이다. 도로 위에 떨어져 쓰러진 아내를 한 씨가 일으켜 세우려는 척하면서 다가가 도로 위에 아내의 머리를 내리쳐 확인사살을 했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었다.

한 씨는 줄곧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당시 인천서부경찰서의 담당 경찰관은 이를 일축하며 자신 있게 한 씨를 검찰에 기소(起訴)의견으로 송치(送致)하며 한 씨에게 장담했다고 한다.

당신이 억울하다고? 만약 당신이 무죄가 된다면, 내가 경찰복을 벗겠다.


그리고 1심에서 한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3. 반전: 밝혀진 무죄[편집]


당시 한 씨의 변호를 맡은 윤종현 변호사는 한 씨의 가정과 가족관계와 보험 등을 조사한 결과 경찰의 주장이 심증과 추론에 바탕을 둔 소설에 가깝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재판부에 당시 한 씨가 운행하던 차량이나 동일한 차종으로 검증을 요청하는 한편 부검소견에 대해 법의학자들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검찰의 공소사실대로라면 한 씨는 한밤중에 시속 70km로 고속도로를 운행하면서 조수석의 문을 열고 아내를 손으로 밀든, 발로 밀어내든 밖으로 떨어뜨린 것이 되지만 기소 과정에서 검찰이 탑차 운전자 등에게 탐문이라도 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사실 검찰의 이런 주장은 탑차 등의 중대형차를 운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할 소리다. 중, 대형 화물차를 몰아 봤다면 고속도로에서 시속 70km 정도로 운행하면서 운전자가 옆으로 몸을 기울여 조수석의 문을 열고 사람을 밀어서 떨어뜨렸다는 검찰의 주장에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3] 그래서인지 당시 변호인이 한 씨의 무죄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것도, 유사업종에서 중, 대형 화물차를 운행해 본 사람들을 탐문해 본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도 나왔다고 한다.

탑차의 크기 참조

링크에서 보듯 운전석의 좌우(左右)폭은 최하 1.5m가 넘으며 당시 한 씨가 운행한 차량은 주차한 상태도 아니었다. 한 씨의 아내는 밤 10시 경에 시속 70km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차에서 떨어졌다. 즉 이 사건/사고 발생 당시,한 씨는 운전대를 잡은 채였고 가속페달 등에서 발도 떼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공소장을 바탕으로 검찰의 주장을 정리해 보자.

한 씨는 밤 10시 경에, 시속 70km로 냉동탑차를 몰고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졸고 있는 아내를 보고 보험금을 탈 욕심에, 조수석을 열고 아내를 밀어 떨어뜨려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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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봉고 프런티어 1톤의 운전석을 옆에서 본 것

결국 실제 2심 재판부에서 시행한 재조사 결과 경찰의 주장, 즉 한 씨가 운행 도중 아내를 밀어 떨어뜨리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실험 결과 운전자가 운행 도중 조수석을 열기 위해 문의 손잡이를 잡으려면, 운전대를 놓거나 페달에서 발을 떼야만 했다. 설혹 아주 팔이 길고 키가 큰 사람이라면 어찌어찌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전방시야를 포기하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현수는 170cm도 채 되지 않는 체구였다. 검찰의 공소내용대로라면 운전자는 차량의 운행을 거의 포기하면서 몸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나 멈춰 있는 상태도 아니고 야간에 고속도로 상에서 시속 70km로 운행하면서 운전대에서 손을 떼거나 페달에서 발을 떼고 조수석 문을 연 다음 조수석에 앉은 사람을 밀어 밖으로 떨어뜨린다? 소형차라고 해도 이는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는데 하물며 중대형 트럭이라면?

2심 재판부는 한 씨가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진술을 재검토했다.

(…) 그러다가 기어를 바꾸는 순간 차가 덜커덩거리더니 조수석 차문이 열리면서 졸고 있던 아내가 차 밖으로 떨어졌다.


재조사 결과 당시 한 씨의 차량은 노후화되어 있어 차량의 문을 고정시키는 장치가 진동 등으로 인해 저절로 열리는 게 불가능하진 않거나 애초에 제대로 닫힌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4] 그리고 한 씨 아내 명의로 된 보험은 자동차보험·교육보험·암보험 등에 불과했고 아내의 사망 등으로 특별히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약관 같은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아내가 사망한 경우 한 씨나 한 씨 가족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최대 2천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한 씨의 가정은 결코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가정불화가 심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이 결코 아니었음이 변호인에 의해 증명되었다. 증거를 찾지 못한 검경이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조사도 없이 한 씨 가정에 대해 멋대로 소설을 썼다. 결국 2002년 7월 한 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일부 인용한다.

검찰 및 1심 재판부가 의심을 할 만한 합리적인 증거도 없이, 편향적 추론에 근거해 피고를 유죄로 처벌한 위법을 저질렀다. 아울러 한 씨 가족이 가입한 보험은 자동차보험·교육보험·암보험 등으로 지급액이 최대 2천만 원 정도에 불과해 그것을 받으려고 살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피고인 한현수 씨에게 본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다.


2심 판결 요지를 대법원도 그대로 받아들여 한 씨는 18개월의 감금생활을 겪은 후 2003년 2월 5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3.1. 끝나지 않은 싸움, 억울함 풀 길 없어[편집]


한 씨는 법적으로는 무죄가 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살인자로 취급받았다.


3.1.1. 모든 것을 잃었다[편집]


당시 중형을 선고받은 미결수는 아무리 미결수라도 구치소교도소 내부 등 실내에서도 수갑을 차고 생활해야만 했다.[5]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현수도 항소하여 안양교도소[6]에서 재판을 기다리면서 교도소에서도 수갑을 차고 생활해야만 했다. 한현수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지는 처우이기 때문에 울화와 스트레스로 당뇨병에 걸려 평소 70kg이 넘던 체중이 수감생활을 겪으면서 50kg 이하로 줄었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등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무죄가 증명되어 몸의 자유는 찾았지만 한 씨의 정신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한 취재기사에 따르면 극심한 분노와 불안, 대인기피증 때문에 석방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혼자서는 바깥출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며 몸도 망가져 창살 안에서 걸린 당뇨병으로 인해 인슐린을 달고 살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무죄 판결도 한 씨의 망가진 몸과 마음을 원래대로 되돌리지는 못했다.


3.1.2. 사회적 상황[편집]


한 씨는 분명히 무죄 판결을 받았다. 증거불충분도 아니라 확실한 무죄다. 그러나 한 씨의 동네 주민들은 무죄로 석방된 한 씨에게 ‘살인범이 왜 돌아다니지?’ 하는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며 기피했다. 2000년 사건 당시 증거를 확보할 수가 없었던 탓인지 실적에 눈이 어두웠던 탓인지 경찰이 기자들을 불러 그가 보험금을 탐내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기자회견을 하여 한 씨가 흉악범으로 널리 보도된 탓이 컸다. 언론들은 한 씨가 살인자라는 경찰 발표는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그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보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7]

한 씨는 무죄가 확정된 후 한 취재기사 따르면 이렇게 말했다.

재판 진행 초기에는 당연히 무죄로 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러나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자 나는 진실이 질 수도 있다는 현실을 알고서 무력감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2심과 3심이 남아 있다지만 사법 절차 전체가 다 마찬가지일 거라는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어요. 미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에요.



3.2. 유죄추정의 원칙?[편집]


입건된 후 줄곧 한 씨는 자신은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경험에서 나온 감 등으로 보아 한 씨는 살인범이 틀림없다'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한 씨의 기소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그에 기초한 검찰의 공소장은 소설이나 다름없었다.

경찰은 한 씨를 범인으로 꿰맞추느라 생활고에 찌들어 가정불화가 잦은 가정으로 둔갑시켜 단란했던 한 가정의 명예를 더럽혔다. 상술(上述)했듯 공소장에는 한 씨가 옆자리에서 조는 아내를 보고 순간적으로 밀어뜨려 살해하면 보험금을 탈 수 있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살해 동기를 기재했다. 한 씨가 쓰러진 아내를 일으켜 세우려던 상황은 한 씨가 길바닥에 아내의 머리를 내리쳐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으로 둔갑했는데 역시 부검 감정서에 있던 ‘교통사고 시 흔하지 않은 상처’라는 표현을 토대로 수사관들이 쓴 ‘소설’이었다. 경찰은 한 씨의 형제까지 공범으로 의심하면서 자백하면 형량을 낮게 받도록 돕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아내를 잃은 한 씨는 이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결국 살인범으로 몰려 기소되었고, 1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추론한 간접 정황 증거를 받아들여 한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 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재판장은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사는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나는 증거법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같은 맥락에서 항소심과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했다면 이의를 달지 않겠다.


한 씨를 처음 살인 혐의로 기소했던 인천 서부경찰서 수사관계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하며 말했다.

교통사고와 살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똑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서 국과수 부검 결과에 의심이 있다면, 나는 또다시 운전자를 살인범으로 기소할 것이다.


마침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 한 씨는 취재진과 함께 네 살 난 아들을 안고 자기를 살인죄로 기소한 인천서부경찰서를 찾았다. 기소 당시 직접 한 씨에게 무죄 판결이 나면 경찰복을 벗겠다고 장담했다던 수사 경찰관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발뺌했다.

결국 그 누구도 한씨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3.3. 윤종현 변호사의 말[편집]


당시 한 씨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윤종현 변호사를 《시사저널》의 안희태 기자가 회견한 내용을 인용한다.

안 기자: 무기 징역에서 무죄를 오간 법원 판단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윤 변호사: 한마디로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간접 증거에 대한 판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심은 피고의 변소(辯訴) 내용이 신빙성이 없어 유죄라고 했는데 2심은 이것이 잘못된 접근이었다고 판정한 것이다.

안 기자: 수사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윤 변호사: 아직 우리나라 수사가 피고인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다른 객관적 증거 수집에는 소홀한 것이 현실이다. 수사 실무진은 한번 구속한 피고인은 계속 유죄로 몰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이 사건도 경찰 수사에 허점이 많아서 검찰이 즉각 바로잡거나 1심 단계에서 바로잡을 수 있었는데 그걸 못해 무기 징역이 나왔다. 살인 사건 용의자에게는 ‘유죄 추정의 원칙’이 관철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8]

안 기자: 가장 어려웠던 점은?

윤 변호사: 살인을 입증할 아무런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과 1심 재판부는 부검의의 감정 소견만을 중요하게 취급했다. 즉 사망자의 후두부 손상이 교통사고에서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견 때문에 유죄로 결론 냈던 것이다. 그러나 ‘교통 사고 시 흔히’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엄밀성이 떨어진다. 법의학자가 구체적 상황 설정을 하지 않고 막연히 판단한 것을 근거로 수사기관과 판사가 무고한 사람을 평생 감옥에 가두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법의학자들에게 자문해 소견서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무죄 판결을 끌어낼 수 있었다.



4. 결론[편집]


탐정만화나 추리소설 등에서는 심증으로 멋있게 콕 범인을 짚어내지만 현실에서는 베테랑 탐정이나 경찰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4.1. 감(感)과 심증의 위험성[편집]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심증이나 감에 의존하게 되면 어떤 정황이라고 해도 누구를 용의자로 보느냐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해석되기 마련이다. 이런 주관적 해석이 수사팀 전체의 분위기가 되면 수사관들 중 누군가가 뒤늦게 물증을 발견해도 무시당하거나 수사팀에서 제외되기까지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미제사건이 된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것이 알고싶다》 921화에서 《손톱 밑 Y염색체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다룬 거제 장목면 다방 여종업원 살인 사건도 경찰이 단편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용의자를 모 택시기사로 특정짓고 그 방향으로만 수사를 집중했다. 그 택시기사는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시체에서 찾은 Y 염색체를 근거로 그가 범인임을 확신했다. 1심에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피의자의 변론을 맡은 진성진 변호인은 의뢰인의 무죄를 확신했다. 다른 증거가 없었다. 이후 Y 염색체는 특정인을 콕 집어낼 수 없다는 게 증명되어 그 택시기사는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럼에도 사건을 담당했다는 수사관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1심에서는 유죄가 되었고, 2심에서는 무죄가 된 그런 상황인데, 왜 그러면 아닌 사람을 잡아넣었으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증거능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판사가 볼 때는 (유죄가) 아니라는 거죠. - 《그것이 알고싶다》 921화 중에서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며, 판결은 그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재수사에 대해 물었을 때 당시 사건 담당 형사는 이렇게 답했다.

실제 범인이 맞아도, 증거불충분이라고 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럴 경우에는 더 이상 누구를 수사해요? 수사할 필요가 없죠. - 《그것이 알고싶다》 921화 중에서


자신들이 잘못해서 엉뚱한 사람을 잡아넣은 것이 아니라 범인이 맞는데 증거가 불충분해서 그런 거다, 그러니까 그놈이 범인이므로 진범 따위는 없고 재수사를 할 필요 따위도 없다고 우긴 것이다.

무죄로 판결되어 풀려난 그들이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국가 등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설혹 거액의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의 억울함이 보상될 수 있을까? 게다가 수사관들의 인식도 이러하니 진범이 잡힐 가능성은 고사하고 수사기관에서 진범을 잡을 생각조차 없는 이런 현실에서 누명을 쓴 이들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을까?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이나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에서도 보이듯이 경험에서 나온 감이나 심증으로 수사방향을 잡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뿐만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사이 진범이 유유히 빠져나가버려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리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4.2. 무죄추정의 원칙의 중요성[편집]


그리고 이런 사건들도 언론 등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알려진 것임을 간과하지 말자. 수사기관의 심증이나 감 등으로 밀어붙이는 수사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지만 벌금형 등 적은 형량을 받았고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이를 갈면서도 별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냥 주저앉고 참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억울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9]

세상에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직업이 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판검사, 의사, 군 지휘관일 것이다. 그들의 실수는 한 사람 혹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 그들이 실수를 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인간이기 때문에 범할 수 있는 실수 한 번이겠지만 억울한 피의자, 환자, 병사의 입장에서는 실수라는 말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인생이 오가는 것이다.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하고 의사에게 실력이 요구되는 것이며 군 지휘관에게는 무능함이 가장 큰 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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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말은 실제로 이후 담당형사를 찾아간 취재진과 한 씨에게 담당형사가 한 말이기도 하다. 그 형사는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다고 했다.[2] 기소와 재판 등을 위해 사건내용 등을 상세히 기술한 서류[3] 검찰의 공소장 등에서는 안전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 씨의 아내가 안전띠를 매고 있었다면 한 씨는 운전을 하면서 아내가 맨 안전띠를 풀고 조수석 문을 연 후, 아내를 밀어 떨어뜨렸다는 것인데 이는 더 어려운 일이다.[4] 제대로 문이 닫히지 않으면 경보가 울리는 등의 감지장치가 달린 차량이 아닌 노후화된 구식 차량이었다. 해당 사건/사고 발생일은 2000년 8월 11일이다.[5] 중형을 선고받은 흉악범은 좌절하여 자살을 시도하거나 분노하여 행패를 부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견 합리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미결수들은 아직까지는 무죄인 상태임을 감안하면 행정편의를 위한 조치라는 반론도 있다.[6] 교도소이지만 미결수 수감공간이 있고 그 규모도 크며 고등법원과도 가까운 편이라서 타 지역의 미결수들, 특히 강력범 미결수들이 안양교도소 내의 미결수 동에서 2심(항소심), 3심(상고심) 등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말하자면 전두환도 구속 당시부터 이곳에 수감되었다.[7] 오보는 대대적으로 해도 정정보도에는 인색한 언론의 고질적인 적폐다. 이런 사례는 십수년 후의 홍가혜 사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따르면 그녀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기사와 그것을 베껴쓴 기사의 개수는 1800건 이상에 이르지만 그것이 허위여서 그녀가 법원에 고소했고 그녀에게 손해배상금을 내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사실을 보도한 기사는 딱 100분의 1 수준인 18개(...)였다고 한다. 또다른 비슷한 사건으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있다. 범인은 따로 있고 금방 잡혔는데 오히려 피해자 부모가 죄인처럼 몰렸던 일이다. 이 사건에서는 언론의 잘못이 컸지만 경찰에게도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8] 원래 법의 기본원칙들 중 하나는 검찰이 기소한 용의자의 유죄를 입증해야 할 책임은 검찰 측에서 진다. 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용의자는 무죄다.[9] 실제로 청주의 한 부부가 공권력남용 피해를 입은 사건을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경찰은 그가 경찰을 폭행을 했다느니 하는 억지 트집을 잡아 입건해 결국 형을 선고받았고 그나마 약식기소에 가벼운 형이었지만 억울해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오히려 괘씸죄(라고밖에 설명할 말이 없다)로 더 큰 벌을 받았다! 게다가 아내가 남편이 무고하다고 증언하자 이번엔 그 아내까지 위증을 했다며 집어넣는 등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그 전과로 인해 피해 부부는 직장을 잃는 등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고 고3에 미성년자였던 부부의 아들은 부모가 당한 일을 보면서 PTSD를 얻어 극심한 탈모(한때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가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기막힌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재심을 통해 최종 무죄를 얻었지만 부부의 삶은 이미 망가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