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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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는 KBO 리그의 프로 야구단이다. 1986년 3월 8일 빙그레 이글스라는 구단명으로 창단했으며, 1993년 11월 1일 팀명을 현재 명칭인 한화 이글스로 변경했다. 연고지는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충청도이며, 홈구장은 중구 부사동에 위치한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이다. 제2구장으로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사용 중이다.[9] 2군은 서산 야구장을 사용하는 중이다. 모기업은 한화그룹이다.
2. 상세[편집]
1986년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KBO의 제7구단으로 창단, KBO 리그의 첫 번째 신생 팀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이글스라는 팀명은 일반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의 사망으로 인한 2세 승계 과정에서 차남 김호연의 몫으로 한화그룹의 식품 계열사 빙그레가 분할되자 1994 시즌부터 빙그레 이글스는 구단명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참고로 빙그레 이글스는 창단 2년차에 탈꼴찌에 성공하고, 3년차에는 정규리그 2위, 4년차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거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연고지는 대전광역시이며 홈구장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이다. 이 구장은 원래 작은 편이었으나 2012년 시즌 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외야 펜스를 뒤로 밀었다. 부연고지는 청주시이며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제2 홈구장이다. 2015년 시즌부터 강원도 춘천시의 의암 야구장을 제3 홈구장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프로야구를 치르기 위한 여건이 충분치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 제2홈구장인 청주구장은 워낙 작아서 투수들의 무덤[10] 으로 악명이 높다. 일명 한국의 쿠어스 필드.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은 서산 야구장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1999년에 롯데 자이언츠를 시리즈 스코어 4:1로 꺾고 우승한 것이 유일한 우승이다.
2015년 기준으로 팀 컬러는 일명 "마리한화"로 대표되는, 안 보려고 하는데도 막상 안 보기에도 뭐하고,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고 이기고 있어도 왠지 질 것 같은 마약야구, 이겨도 뭔가 불안하게 이기는 야구가 팀 컬러가 되었다. 이 팀 컬러는 2018 시즌 한용덕 감독이 부임하면서 암흑기 동안 한화 팬임을 숨기던 팬들까지 다시 합세하게 만들 정도로 흥미를 이끌어내는 야구로 다시 한 번 변모하게 된다. 또한 강강약약팀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2022년 7할에 가까운 승률을 가진 SSG 랜더스에게 시즌 첫 루징시리즈를 안겨준 적도 있다. 팀 자체는 순위가 낮지만 상위권 팀들에겐 발목을 잡는 특이한 플레이를 갖고 있다. 2022년에는 디펜딩 챔피언 kt wiz에 8승 8패를 기록하며 발목을 잡았다.
구단의 지배구조는 (주)한화(40%, 120,000주) / 한화케미칼(주)(40%, 120,000주) / (주)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10%, 30,000주)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10%, 30,000주)로 구성되어 있다.
3. 구단 디자인[편집]
3.1. 엠블럼/로고/심볼[편집]
팀의 상징색은 주황색(빙그레 이글스 시절) - 빨강색(팀명 변경 원년인 1994년부터 2007년 시범경기까지) - 주황색(한화그룹이 CI를 변경한 2007년부터) 순으로 바뀌어 왔다.
1993년을 끝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변경되면서 기존의 엠블럼을 다듬은 로고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2006년, 한화그룹의 CI 변경과 함께 한화 이글스도 엠블럼 변경 작업에 들어갔고 2007년 KBO 시범경기 직후 변경된 엠블럼을 발표했다.
3.2. 상징색[편집]
3.3. 마스코트[편집]
위니와 비니가 결혼하여 낳은 자녀가 수리이며, 수리는 2016년생이다.[11]
3.4. 유니폼[편집]

4. 홈구장[편집]
4.1. 1군 구장[편집]
4.1.1.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편집]

2024년까지 사용 후 2025년 신축 경기장인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로 홈구장을 이전 할 예정이다.
4.1.2.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편집]

4.2. 2군 구장[편집]
4.2.1. 서산 야구장[편집]

5. 역사[편집]

6. 팀 컬러[편집]

7. 팬[편집]
7.1. 인기[편집]
광역연고 개념으로 보면 연고지인 대전과 제2연고지인 청주를 비롯한 충청권 전역이 한화 이글스의 연고 지역이다. 팬 밀집지를 들자면 대전과 제2 홈구장이 있는 청주, 한화 전통의 팜 북일고가 있는 동시에 모기업의 발상지인 천안, 2012년 최저연봉으로 한화에 입단한 MLB 124승 투수의 고향 공주, 그리고 한화 이글스 팜의 야구부가 있는 홍성군과 새로이 생겨난 신도시 세종시 등의 인구 밀집지를 들 수 있다. 다른 도와 달리 매우 성장하고 있는 충청도와 함께 발맞춰 팬도 많아지고 있다.[12] 주말에 수도권 원정 경기 매진까지 이뤄내는 걸 보면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를 포함해서 수원시와 경기도 등 수도권에도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14] # 전라북도 군산시, 익산시, 무주군 일대도 한화와 기아가 나름대로 호각세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어웨이에서 전국적으로 돌아다닌다. 대전/충청 출신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비수도권인 광주를 시작으로 대구,창원 마산,부산 사직에서도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있다. 비연고지만 대전에서 가까운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를 시작으로 심지어 경남권 최고 도시인 창원시와 부산광역시에도 연고지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리한화의 열풍속에 팬이 된다. 이 부분은 해당연고 야구인만 아니라 응원단이 포함되었고 한화그룹 계열사 직원들도 가세한다.
팀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기나긴 암흑기를 겪었지만 이전부터 한화 팬덤은 조용하지만 탄탄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한화 팬덤은 잘 나갈때 보다도 오히려 암흑기 때 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늘 놀림의 대상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놀림들과 나는 행복합니다와 부처님 탈을 쓰고 목탁을 든 팬 짤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런 개그 짤들로 한화 이글스를 알게 된,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비록 약팀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하면서도 늘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착한 팬덤이라는 이미지가 감동적으로 보인 덕분에 높은 인기를 구사하게 되었다는 점이 팬 증가의 이유로 흔히 지목된다.
이처럼 #나는_행복합니다, #보살, #부처, #해탈, #한화는_못말려 등등의 한화를 대표하는 어구나 단어들은 해시태그로 쓰기 좋다는 점이 SNS를 주로 하는 여성들한테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는지 여성 팬들의 유입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검색 결과는 한화 이글스가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에 비해서 월등히 많다. 이는 카프죠시라고 불리는 히로시마의 여성 팬들과 암흑기에 유입된 점, 연고지와 관련이 없지만 팬이 된 점, 응원 방식에 재미를 느껴서 팬이 된 점 등등이 상당히 유사하다.
홍창화 응원단장이 만든 응원들로 팬이 유입된 경우도 적지 않다. 최강한화, 나는 행복합니다는 야구 팬이면 다 알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 응원인 질풍가도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자주 보여진다. 유튜브에서 214만 회를 기록한 적도 있다. [15]
SNS를 잘 이용하지 않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한화의 인기는 증가했다. 여성들이 착한 팬덤에 끌린 것과는 정 반대로 이쪽은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칰칼코마니, 핫도그녀 등등 개그 구단의 이미지에 끌린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에서는 한화팬이라는게 자학개그성 드립에 용이하기도 하고,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화는 알기 때문에 이걸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며[16] 관심 끌기도 좋은 이유 덕분에 BJ, 스트리머, 유튜버, 페북스타, 트위터리안 등등 인터넷 유명인들 중에는 한화팬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더구나 김성근이 감독으로 오면서 노리타들이 유입되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근성있는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으며 성적도 예년에 비해 상승하여 이것이 호재로 작용해 2015년부터는 평균 시청률도 KBO 1위를 하는 등 점점 더 팬덤이 견고해졌다. 비록 2016년에 다시 성적이 하락했지만, 2017년에는 김성근을 경질하며 한화 팬덤의 암적 존재인 노리타들도 숙청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고, 새로이 주류를 차지한 팬들은 성적을 보고 이 팀을 응원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여전히 충성스러운 팬심을 자랑한다. 2018년엔 큰 논란 없이 흥행하는 성과를 보이면서 대전구장은 연일 매진에 원정구장까지 수많은 팬들이 찾아가 구장을 매진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17]
한화 이글스 말고 한화 팬덤 자체도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은데 앞서 말한 부처님 탈을 쓴 팬, 목탁을 치던 팬 외에도 핫도그녀, 해탈한 표정의 어린이 팬 등등의 짤들이 유행했다..
원래부터 골수 한화팬들 중에는 유입 팬들의 이런 면[18] 을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이 꽤 많고, 이는 성적이 좋아진 2018년에 좀 누그러지는 듯 했지만 2020년부터 다시 암흑기에 빠지자 다시 그들에 대한 시선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대다수 팬들은 이러한 면을 보고 팬이 된 라이트 팬들과 다르게 보살드립을 싫어하는건 확실히 맞다. 한화의 인기를 상승 시키는데 보살드립이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승리를 위해 한화를 응원함에도 패배 자체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프레임이 생겨났기 때문. 애초에 이런 프레임 자체를 좋아할 사람이 어딨을까(...). 라이트 팬층에선 여전히 "한화팬과 결혼하면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 "입사면접에서 한화 팬인 걸 밝혔더니 합격했다더라" 같은 보살드립의 파생형들을 두고 즐기고 있으나 이런 라이트 팬들이 점점 빠져들어 헤비 팬이 되고나면 이들도 이랬던 과거를 부정하고 보살드립을 싫어하게 된다[19] .
이러한 한화의 인기를 부정하는 측에선 한화의 최다 관중 수[20] 가 타 팀보다 현저히 적은 것을 근거로 삼는데 이는 홈구장인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와 청주구장의 총 관중수를 합해도 23,500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21][22] 그렇기 때문에 한화로썬 1년에 있는 대전 홈경기를 모두 매진 시켜도 936,000명 밖에 채우지 못 한다. 청주경기가 모두 매진 된다는 가정하에 합하면 겨우 100만명이 넘어가는 수준. 그런 상황에서 70만명을 초과해 최다 관중을 찍었는데도 한화가 비인기 구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홈구장이 아닌 잠실, 문학 같은 대형구장에서 원정 경기가 열려도 한화팬들이 3루를 꽉 채우는 상황이 늘 연출된다. 아예 2018년 원정구단 관중수 통계에서 전통적으로 원정팀의 팬수 덕에 인기팀 반열에 오른 KIA, 롯데를 꺾고 1등을 차지하여 한화가 인기팀이라는 수식어를 다는데 문제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화의 인기가 2010년대 중반에야 올라왔다고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90년대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이미 4대 인기팀에 속했다. 그 롯데 자이언츠조차 넘어섰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1982년-2019년 조사결과 1998년-2021년 조사결과
또한 인기의 척도로 떠오르고 있는 케이블 시청률 면에서도 한화는 전국구 인기팀인 KIA-롯데 다음급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KBO 리그 시청률 TOP10 리스트를 보면 2018년에는 한화의 경기가 5경기로 KIA-롯데에 이어 세 번째, 2019년에는 6경기로 KIA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올라가 있다. 2018년 KBO 리그 시청률 TOP10, 2019년 KBO 리그 시청률 TOP10 한국갤럽이 매년 조사하는 프로야구 선호도 조사에서도 한화는 2015년부터 KIA-롯데-삼성에 이어 4위를 꾸준히 마크하고 있다. 각종 데이터 측면에서 적어도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한화가 명실상부 KBO 인기 구단 반열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2018년에는 한화 이글스가 깜짝 활약을 하면서 KBO의 흥행과 지상파 방송국들의 시청률을 챙겨주는 보증수표로 불리기도 했고, 2020년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지만 기아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한화 이글스가 정규시즌 시청률 3위를 기록하여 다시 한번 KBO 인기 구단임을 증명하였다.#[23]
2020년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결과 한화 이글스를 좋아한다는 응답이 10개 구단 중 5위이며, 특히 18-29세 연령대에서는 11%로 전체 1등을 차지하며 젊은층의 높은 팬심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2021년도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한화 이글스를 좋아한다는 응답이 10개 구단 중 4위이며, 노시환, 정은원, 김민우, 강재민, 김범수 등 젊은 피들이 점차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수베로 감독 등 외국인 코칭스태프 사단의 부임 역시 젊은 팬들의 유입에 긍정적인 요소다.
네이버 스포츠 MY팀에서도 한화 이글스를 관심 팀으로 설정해놓은 사람이 KBO 타 구단보다 많다. 2020년 6월 기준, 한화 이글스가 약 33만명, 그 뒤를 32만명의 KIA 타이거즈가 쫓고 있다. 의외로 팬덤이 크기로 유명한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는 20만명대.
여전히 80~90년대에 날렸던 아재 팬덤이 많은 기아, 롯데, 삼성과는 달리,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50대 이상의 직관이 줄어들고 20~40대가 다수를 차지하게 됨으로서 관람객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24]
인기가 많은 구단인 것과는 별개로, 한화 이글스/사건사고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악성 훌리건도 많았던 구단이다[25] . 구단 측에서 관람석 보안 관리를 빡세게 한 이후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어쨌든 한화 이글스의 높은 젊은층의 인기와 KBO 리그 자체의 높은 인기덕에 한화 구단과 일반 대중 브랜드와의 일명 콜라보레이션으로 불리는 협업 기획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일반 기성복 브랜드이자, 콜라보 상품이 주력 상품인 스파오, 슈펜과 협력하여 팀 콜라보 의류 및 신발을 출시하기도 했었는데, 2019년엔 슈펜에서 KIA와 함께 진행했고, 2020년엔 스파오에서 LG와 함께 진행했다. 또한 식품 업체인 풀무원, CJ제일제당, 하림과도 프로야구팀 최초로 콜라보 식품을 내놓기도 했는데, 2019년엔 풀무원과 "포기하지 마라탕면"[26] 이라는 라면 제품을 출시 했고, 2020년엔 CJ제일제당과 "이글이글 왕교자"[27] 라는 만두 제품을 출시했다. 또한 같은 해에 하림의 계열사인 선진포크와 "불꽃삼겹"[28] 이라는 간편식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때문에 위의 콜라보 의류나 콜라보 식품들이 유통되었던 기간에는 야구장과 관련 판매점이 아닌 일반 인터넷 쇼핑몰과 번화가에 있는 의류 판매점, 대형마트, 백화점 그리고 동네에 있는 평범한 마트나 슈퍼에서 한화 이글스의 로고를 만나볼 수 있었다. 2021년에도 지역 수제맥주 업체인 '금강브루어리'와 협업하여 한화 구단을 모티브로 한 수제 맥주인 "독수리" 맥주를 출시 하여 전국 갤러리아백화점 식품관, 홈플러스에서 상시 판매 하고 있으며, 대전 동구에 위치한 관사촌에서 한달간 팝업스토어를 열어 1999년 우승 시즌 로고들로 제작한 티셔츠, 각종 상품들을 판매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젊은 층에서의 높은 인기 때문인지 2021년 시즌에는 왓챠와의 합작으로 한 시즌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국내 스포츠 팀 최초로 제작할 예정이다.[29] 이 소식을 들은 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인데, 죽어도 이글스 드립이 나오기도 하는 등 낮은 성적 때문에 내용이 좋지 않게 될까봐 우려를 하는 팬들이 많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극적인 장면이 나올 수도 있기에 기대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다.
2022년,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딩고 킬링보이스에 출연하게 되었다. 야수 편[30] 엔 노시환, 하주석, 김태연, 정은원이 출연하였다. 투수 편[31] 엔 강재민, 윤대경, 김종수, 문동주가 출연하였다. 10~20대 팬이 많은 한화이글스인지라, 많은 젊은 팬들은 딩고 프리스타일 출연에 굉장히 반응이 좋다. 현재, 선수들이 부른 노래는 경기 전 스트레칭 및 연습 시간, 우천 시에 틀어주고 있다.
7.2. 유명 이글스 팬[편집]
대체적으로 개그맨들이 많은 것이 특징(#)[32] . 심지어는 방송인들도 꽤 있는 편이다. 한화 이글스 지역 연고 출신(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광역시)인 경우도 있고(★),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군가가 한화팬이거나 혹은 계열사에서 일해 유입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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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호: 前 농구선수. 직관을 한 열혈 팬이었다. 하지만, 농구인으로서 흑역사가 되었다. - 가르마★: 아프리카 BJ
- 각별★: 유튜브 크리에이터, 트위치 스트리머
- 가애란★: KBS 아나운서. 충남 태안군 출신이다.
- 강민철
- 강석우
- 강승호 : 두산 베어스 내야수. 천안북일고 출신이다.
- 강인 : 이용규, 윤규진, 안영명, 이성열과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자기가 SM내 여럿 연예인들을 한화팬으로 이끌어줬다고 한다.
- 강은호:아프리카 BJ
- 강재준#: 아내 이은형 역시 한화팬이다.
- 고인규
- 고상호
- 곽민선★: 대전 출신 프리랜서 아나운서. 아프리카에서 어머니가 팬이며, 본인도 그 때문에 한화 이글스의 팬이 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축구와 농구는 삼성스포츠단 팬이다.
- 구자철★ : 우리가 아는 그 축구선수가 맞다.
- 김가영(기상캐스터)☆ : 기상캐스터 포함 종합 방송인. 충청도 출신 아버지 영향으로 한화 팬이 되었다
- 김강훈★ :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 아역배우. 인스타 사진에서 남동생이랑 한화 경기 직관 사진이 있다
- 김경록★ : 2013년 13연패 기간 중 최초로 야구장에 부처님 가면을 쓰고 등장한 인물이다.
- 김기리★#
- 김기열#:코미디언 출신 트위치 스트리머. 빙그레이글스 시절 팬
- 김나진: MBC 아나운서
- 김정난
- 김정진: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 김동현: 종합격투기 선수. 출생지는 수원이지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고 한다.
- 김동현(AB6IX)★:대전 출신 한화팬
- 김미려#
- 김민경#
- 김방희 : 생활경제연구소 소장. 현재 KBS 제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 김민지(육상) : 청주 출신으로 이글스파크에서 2022년 9월 3일 시구를 하였다.
- 김선신★ : 2013년 4월 오!베이스볼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각 종목별로 자신의 고향인 중부권에 속한 팀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타 팀 팬들에게 편파 등의 오해를 사기 싫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2013년 야구시즌 초반 한동안 치킨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 김선응★: 개그 유튜버 핫소스 멤버. 같은 멤버인 송형주도 한화팬이다.
- 김성주★ :충북 청주 출신. 골목식당에서 한화이글스팬 언급
- 김세연(프로게이머)★ : 오버워치 전 프로게이머 겸 트위치 스트리머. 매우 좋은 멘탈리티로 유명하다.
- 김세정 : 걸그룹 구구단시절 팬싸인회에서 한화이글스 응원한다고 말했다.[33]
- 김소영 : 후폭풍을 감안했는지 팀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 김수지 : 배구선수 김수지.
- 김완기#
- 김웅(1970 정치인):검사 출신 국민의 힘 국회 의원
- 김용태(1968)★: 정치인. 미래통합당 前 국회의원. 참조.
- 김연정 : 치어리더. 롯데 자이언츠 연고인 부산 출신. 하지만, 단명하는 직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팀에 대한 애정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NC 다이노스의 창단 시절 치어리더였지만 당시 호흡했던 선후배들에게도 팀에 대한 소식을 받았다. 막내 시절 이후 6년만에 복귀한 뒤 팬들은 환호를 했으며 그녀에게 대장독수리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사석에서도 팀의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다수 치어 멤버들이 NC로 복귀했으나 꾿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신의 고향이 롯데 자이언츠지만 단호박일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 SNS에서도 이 소식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마스코트인 위니를 좋아한다. 결과론으로 위니 바라기다.
- 김영현(기자) : 전 농구기자 및 아프리카 BJ. 경남 거제 출신. 대학은 부산. 성적부진과 방송문제로 인해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를 방송하고 있으나 그녀의 정신에는 언제나 이글스가 있다. 청주 KB 스타즈 여자농구에서 아프리카 편파BJ로 알려졌다.
- 김우택 - 전 해커스 어학원 텝스, 현 해커스 공무원 영어강사. 2021 하프모의고사 11월 11회에서 한화 팬이라고 언급하였다.
- 김재욱★
- 김준호★#: 대전 출신으로 본가도 아직 대전 서구 가수원동에 있다.
- 김태균# : 팀에 동명이인 선수가 있다. 아래 나오는 가수 최재훈과의 얘기 중 김태균이 은퇴하기 전까지 자기는 계속 인물순위 순서에서 밀릴 거라는 웃픈 얘기를 밝히기도 했다.[34]
- 금채림★ : 기상캐스터. 고향이 대전이며 라이브에서 고백했다.
- 김학래★ : 사실 야구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닌것으로 보여지지만, 절친 개그맨인 이봉원, 최양락 등을 따라 보게되었고, 고향이 충청도다 보니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 김희선
- 남현희
- 남희석★#: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의 골수 이글스 팬으로[35] ,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던 부인의 응원 팀을 강제로 바꿀 정도로 이글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자신을 '한화 빠돌이', '한화이글스 홍보실 간부' 등으로 자칭할 정도로 엄청난 열혈팬을 자처하고 있으며, "한화 팬이라면 언제든지 술을 살 수 있다."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2015년 들어 김성근 감독의 혹사와 경기 운영에 대한 우려를 트위터를 통해 자주 일침을 남긴 바 있다.
진정한 한화 팬이다 - 두툰 : 만화가. 10년차라고 한다.
- 루크 호그랜드 : 중계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외국인 이글스 팬. 루크씨라는 이름을 마킹한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서 수염 있는 외국인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듯. 대전의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를 하던 중에 동료 한국교사와 한화의 경기를 보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한국에 정착했다고.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라 MLB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인데, 두 팀의 유니폼의 색이 비슷해서 한화에도 쉽게 정을 붙일 수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 랄랄 : 2021년 9월 18일에 시구를 했다.
- 류성완 : EBSi의 역사영역 강사.위진 남북조 시기의 한화정책을 설명할 때마다 항상 본인이 한화 이글스의 팬임을 밝힘.
- 류수정★ : 러블리즈 멤버 팬싸인회에서 언급. 정작 시구는 2019 시즌 기준 한 적이 없다.
- 마루에몽
- 맛상무★:푸드 유투버 빙그레 이글스 원년 팬이다.
- 매직박★# : 치과의사 겸 트위치 스트리머
- 바퀴아재
- 박범계★
- 박보영★ : 충청북도 증평군 출신. 2016년 8월 30일 잠실 두산 전에서 입고 온 유니폼에 김태균이 마킹되어 있었고, 2년 후 2018년 7월 26일 대전구장에 직관하러 왔을 당시에 입었던 유니폼에는 이용규(...)가 마킹되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박보영 문서 참조. 또한 개인 V LIVE 방송과 두시탈출 컬투쇼 스페셜 DJ로 나와서 얘기한 바 있다.[36]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밝힌 바로는 시구 요청도 들어왔었지만, 포크볼을 던질 수 있거나(...) 어느정도 구속이 나올 때까진 못하겠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 박상돈 : 출생지는 서울이나 초중고대를 모두 대전에서 나와 사실상 대전 출신으로 보아도 무방.
- 박상철 : 자신의 히트곡인 '무조건'을 본인이 직접 개사하여 한화 이글스 헌정 응원곡으로 만들어 주었다.
- 박상영
- 박잔디★:여성 트위치 스트리머. 대전광역시 출신
- 박정민★ : 2016년 10월 출간한 자신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 '낮술 먹으며 야구를 보다가 한화가 역전 당하는 것을 보고 또 술을 먹었다'는 글이 있다(...) 이후 영화 변산의 1차 티저에선 가을점퍼를 입고 나오기도 했고, 박보영과 친한지 2018년 팬미팅 때는 박보영의 가을점퍼도 사놓았다고 톡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퍼 디자인이 바뀌었다 - 박진성★ : 구 연기군 출신으로, 웃긴대학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 때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살다시피 했을 정도로 오랜 팬이라고 한다.
- 박초롱★ :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구 청원군 출신이다.
- 박찬호★ :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 선수 생활 마지막 해를 본인이 뛰고 싶었던 한화에서 뛰게 되었다.
- 배칠수#: 한화 홍보 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 부기영화의 글작가 급소가격
- 박하나★ :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 부모님을 따라 한화팬이 되었다. 정대훈 전 한화 이글스 선수와 친분이 있고 시구한 적이 있다.
- 백현 : 보이그룹 EXO의 멤버. 2015년 시구를 한 바가 있다.[37]
- 밴쯔★
- 보겸★ : 아프리카TV BJ, 유튜버.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 #
- 서경석★ #
- 서지석
- 성지루★
- 셀옹
- 소유랑★ : 여성 기타리스트, 유튜버이자 트위치 스트리머. 평소에도 한화팬이었음을 밝혔으며, 2020년 3월 창현거리노래방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고 한화응원가를 연주함으로써 한화좌에 등극하였다.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다.
- 송영주(축구해설가):빙그레 이글스때 부터 팬 요즘 한화 때문에 축구 집중하게 시킨다
- 송우진
- 송중기★ : 김회성과 중학교 동창. 본인이 군 복무 시절 한화 야구에서 큰 힘을 얻었다 한다.
- 송형주★: 개그 유튜버 핫소스 멤버. 같은 멤버인 김선응도 한화팬이다.
- 신동우★ : 보니하니 보니. 대전 출신으로 한화 팬이라고 한다. 파트너 하니는 넥센 히어로즈 팬.
- 신성★
- 신성우★
- 신원호 : CJ E&M 소속의 PD. 응답하라 시리즈를 제작한 스타PD이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한화 유니폼을 입을 정도로 광팬.
- 신의현★ : 대한민국 최초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 슬기 : 걸그룹 Red Velvet의 멤버. 김태균의 역전 적시타와 팬들의 응원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 악어(인터넷 방송인)★ : 대전광역시 출신.
- 안소미★# :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
- 안효진★ : EXID의 래퍼, 활동명 LE, 충남 천안시 출신. 2018시즌 마지막 오렌지팬데이에서 시구자로 나섰다.
- 안희정★ : 충남 논산군(현재 논산시) 출신. 前 충청남도 도지사
- 야식이:
- 양노을 : 트위치 스트리머. 친구와 잠실구장에서 한화 vs 두산 경기를 봤는데 그때 한화가 이겨서 한화팬이 되었다.
- 여원★ : 펜타곤의 멤버. 대전광역시 출신. 집에서 잠옷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는다고 한다.
- 연두★
- 연두부
- 오나라
- 오대환★ :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한화 골수팬임을 밝혔다.
- 오상욱★: 대전광역시 출신의 펜싱 올림픽 메달리스트.
- 와싯
- 유대종
- 유병재★ :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 2018년 8월 11일에 시구했다. 다만 이쪽은 과거 한화를 비하한 전적이 있어 팬들에게 이미지는 싸늘한 편.
- 유성은 ☆:솔로 여가수 한화에서 시구 2번 했다
- 유시민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겸 진보정치인. JTBC 2020 신년토론에서 밝혔다.
- 유준상 : 아내 홍은희와 함께 팬이다.
- 유지애 : 러블리즈의 멤버. 2017년부터 3년 연속 여름에 그룹 멤버인 이미주와 함께 시구, 시타를 했으며, 배성재의 TEN에서 한화 팬임을 밝히기도 했다.#
- 유창준 : 한식 요리사로 배우 공승연과 TWICE 정연 아버지이다. 딸 공승연과 같이 한화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관람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으며, 이 날 공승연이 야구장 방문 인증을 하기도 했다.
- 윤미래, 타이거 JK : 팬들의 응원 댓글로 가사를 만든 한화 응원가 '이글거려' 를 만들었다.
- 윤성훈★ : 부산에서 태어나 부여에서 자랐기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와의 복수팬이다.
- 윤종훈★ : 대전 출신 배우. 2021 한화 홈 개막전에서 시구했다.
- 윤현민 : 현재는 배우로 활동하지만 전향하기 전 2005년 드래프트 당시 3라운드에 뽑혔던 선수였었다. 이후 두산으로 이적해 야구선수로서 커리어를 끝냈지만 한화에 있던 시절 선수들, 스태프들과 조금 더 친분이 있는 듯.
- 이광수 : 조인성이 시구하는 날 같이 야구장에 와서 응원했는데도 조인성에게 가렸다.
- 이나은★ : 에이프릴 출신 배우.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이며, 초등학교 때부터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자랐다.
- 이미주★ : 러블리즈 출신 가수.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으로 가족들도 한화를 응원한다고 한다. 2017년부터 3년 연속 여름에 그룹 멤버이자 한화 팬인 유지애와 함께 시구, 시타를 했으며 경기 내내 춤을 추며 열정적으로 관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21년에는 혼자서 시구를 하러 왔는데, 이때도 치어리더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가 인정한 공식 승리요정이다. 이미주가 시구한 4경기 모두 한화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 심지어 첫 시구를 한 2017년 이후 이미주의 생일인 9월 23일에 열린 경기에서 한화가 4년 연속으로 승리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참고로 같은 그룹의 동갑내기 서지수는 두산 팬이다.
- 이범수★
- 이봉원#
- 이상민★#&이상호★#: 개그 콘서트의 쌍둥이 형제. 대전광역시 출신.
- 이상학 : OSEN의 한화 이글스, NC 다이노스 담당 야구 전문 기자이다. 열렬한 한화팬이다가 블로거로 시작하여 데일리안과 OSEN 객원기자를 거쳐 현재의 기자가 되었다.
- 이석원
- 이선옥
- 이영호(FlaSh)★ : 당시 소속 구단의 모기업인 kt스포츠 산하 e스포츠 팀 kt 롤스터 소속이라 kt wiz에서 시구했지만, 본인은 이전부터 한화 이글스의 팬이었다고 밝혔다.
- 이은형#
- 이용덕
- 이장원★ : 페퍼톤스의 베이시스트. 대전광역시 출신. 2019년 KBO 개막 기념 다큐 베이스볼 사피엔스에 출연하여 한화 이글스의 팬임을 밝혔고
정민철이 나온다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그 전에도 문제적남자나 라디오에서 한화 팬임을 드러냈다. 페퍼톤즈가 아닌 페퍼톤스가 된 이유가 바로 이장원이 한화이글스처럼 '스'로 끝나야한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한화가 경기에 이기자 주황색 반바지를 입고 라디오에 출연했다. - 이창명★#
- 이특 : 슈퍼주니어 리더 16년도 라디오 사연에서 잠실경기 한화 졌다고 하는데 본인도 같은팀 응원하다고 언급.
- 잇섭
- 이하윤★ : 전 치어리더 및 현 아프리카BJ. 치어리더가 되기 전부터 한화 이글스의 팬이었고, 같은 구단에서 선수로 뛰었던 김회성과 친척관계인 흔치 않은 케이스. 외사촌 오빠 - 고종사촌 동생 관계라고 한다.
- 인교진★: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으로, 북일고등학교를 나온 건 덤. 본가는 청주시에 있다고 한다. 부인인 소이현은 두산 베어스 팬.
- 인제쿠닌
- 임가은☆ : 일명 한화 오키도키녀로 유명해진 울산 출신의 소녀팬.[38] 중학교 3학년생이던 2016년에 한화 이글스 경기 중 관중석에서 지코의 Okey Dokey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혀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후 시구도 하고 치어리더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등 여럿 구단 행사에 초대받았다. 2021년 현재는 서울로 상경해 한 크루에서 댄서로 활동중.
- 잉조씨★
- 잇섭 : IT유튜버. 2017년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브이로그를 찍었다. 현재는 영상 비공개 상태이다.
- 장준규★: 前 육군참모총장. 충청남도 서산시 출신이다.
- 전노민
- 전영미★#
- 전웅★:대전 출신 한화팬
- 정승지: 배우
- 정영진★
- 정예학원온라인(BJ이차함수) : 2020년 4월 26일 유튜브 생방송에서 밝히기로, 경기를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 댁에 올라가면 항상 아버지와 한화를 응원한다고 한다.
- 정준호★ : 한화이글스 홍보대사 출신. 박찬호 전 선수와 오랜 친분이 있었다.
- 정지원 : KBS청주방송총국에서 지역근무를 하던 시절에 팬이 되었다.
- 정청래★
- 정태우 : 2018년 기준으로 한화이글스 포스트시즌 연예인 최후의 시구자.[39] 2007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사극복장으로 하고 말을 타고(!) 마운드에 올라 시구한 적이 있다. 그 밖에 2009년에는 한밭야구장에서 현 부인인 예비신부에게 프로포즈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 조규찬: 2020년 9월 8일 이글스에 대한 진심어린 팬심을 담은 싱글 'My Eagles, Fly High'을 발표했다.
- 조상우 ★ : 키움 히어로즈 투수
- 조성주
- 조보아★ : 대전 출신 여배우. 두산에서 시구 영상을 공개 했는데 베어스티비 운영자 댓글에서 한화팬이라고 언급했다.
- 조영구★
- 조인성☆ : 배우 조인성. 시구 당시 시포로 야구선수 조인성이 나서서 동명이인 배터리를 보여준 바 있다.[40] 당시 영상 등번호는 15번으로, 구대성의 팬이라고 한다. 방송에서 밝힌 비화에 의하면 한화에너지에 다니던 친척에 의해 영업(...)당하셨다는 모양이다.
- 조한선☆ :아버지가 빙그레팬라서 한화팬이다. 공교롭게도 처제가 구단주이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들 김동관 전무와 결혼했다.
- 주호민
- 지호★: 오마이걸의 前멤버,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으로 가족들을 따라 한화를 응원한다고 V앱에서 밝혔다.
- 지유★ : 드림캐쳐의 멤버.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대전에서 자랐다. 팬싸인회에서 한화팬이라고 밝혔다.
- 직 재스퍼[41] :인스타그램에 한화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간 사진을 올렸다.
- 차인표 : 제작발표회 때 한화이글스 포에버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박찬호 선수랑 친분도 있었다.
- 차태현 : 1박 2일에서 직접 언급.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 채민준★
- 청하 : 2017년 시구에 참석하였고 응원단상 공연에서 치어리더와 합동 공연을 하며 한화팬임을 밝혔다.
- 첸★: 백현과 같이 EXO 멤버. 태어난 곳도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인 대전이다.
- 최양락★#
- 최원영
- 최재훈 : 대한민국의 가수. 팀 내 동명이인이 있다. 야구선수 최재훈이 이적 직후 한참 화제가 되었을 때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인물소개 순위가 밀렸다는 한탄을 한 적이 있다. 관련 내용
- 카더가든 : 이글스TV에서 한화팬이라고 언급. 우천취소로 시구가 무산됐다.
- 칸나 CANNA
- 케인 : 트위치 스트리머. 빙그레 이글스 시절 팬이었다. 지금은 전 감동님이 밈이 되어 한화를 싫어하고 감동님을 증오한다.
- 테라다 타쿠야: 일본인 팬. 인터뷰에서 한화이글스 팬 인증을 했다. 구단에서 시구요청하면 할 생각이다 .
- 태진아★
- 파자마솔: 광주광역시 출신 한화팬.
- 한다감★
- 한상현★: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스트리머.
- 한예리★
- 한지안
- 한현민☆ : 어머니께서 다니던 회사가 한화였다고 하며, 강동우와 류현진이 한화에서 현역으로 뛰던 때 유입된 팬. 참고
- 햄지 : 천만 유튜버,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인스타그램에 직관 사진으로 한화팬임을 인증함. 2022년 8월 13일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시구를 하였다.
- 허공 : 2018년 독수리한마당에 참석해 하주석과 특별공연을 펼쳤으며, 한화의 광팬이라고 밝혔다. 다만 직관 성적이 매우 좋지 못하다고(...)
- 허영란★
- 허태정★: 前 대전광역시장.
- 현우성
- 홍승민★: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 홍진호★: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대전광역시 대덕구 출신. 2014년 9월 6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유니폼 두 벌을 입고 시구식을 했다.[42] LG 트윈스에서 경기 중 역전 후 MBC 스포츠와 한화 이글스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콩드립을 시전히기도 했다.(...)
- 홍은희
- 홍차tv:
- 효기심★
- 황현희#
8. 응원[편집]
8.1. 응원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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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KBO 응원단장 중 경력 3위인 홍창화 응원단장이 장기간에 걸쳐 응원단을 이끌고 있고, 특유의 병맛스러우면서 중독성 있는 응원가로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치어리더는 부산에 기반한 에스컴 소속 치어리더 팀이 맡고 있어서 부울경 출신이 많으며, 인기 치어리더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8.2. 구단 SNS[편집]

9. 역대 선수 및 인물[편집]
9.1. 영구결번[편집]
KBO 소속 구단 중 가장 많은 수인 4개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신용과 의리' 를 그룹 이념으로 하는 구단답게 프랜차이즈 스타는 확실히 챙겨주는 한화의 팀 컬러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43]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4명 모두 이글스의 연고지역인 충청권 출신의 로컬 보이이자[44] 원 클럽 플레이어다.[45]
영구결번 지정순서대로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3루 측 상단 관중석 하단에 기념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김태균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됨에 따라 5번째 영구결번 후보로는 류현진이 매우 유력하다. 류현진은 KBO 시절만 해도 7시즌만 뛰었는데 WAR이 44.74로 KBO 역대 투수 13위에 랭크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의 커리어를 합한다면 역대 한국 야구 사상 최고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등번호였던 99번은 현재 임시결번 상태로 사실상 영구결번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봐도 좋다.
9.1.1. No.35 장종훈[편집]

9.1.2. No.23 정민철[편집]

9.1.3. No.21 송진우[편집]

9.1.4. No.52 김태균[편집]
9.2. 임시결번[편집]
9.2.1. No.99 류현진[편집]
6년째 임시결번 '99', 류현진 향한 한화의 예우
99번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이 2006년 한화 지명 및 입단 후 2012년까지 7년간 사용했던 등번호이다. 류현진은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에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99번을 달고 뛰었다. 만약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로 복귀한다면 99번을 다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그가 은퇴하다면 이글스의 5번째 영구결번이 될 것이 확실시 된다. 물론, 그가 설령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KBO 팀으로 가는게 아닌 이상, 모기업 특성상 예우를 철저히 한다는 원칙으로 인해 영구결번 처리가 사실상 100%에 가까워진다.[47][48]
9.3. 이글스의 스타들[편집]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이다.
9.4. 역대 구단주[편집]
- 빙그레 시절 포함
9.5. 역대 대표이사[편집]
- 빙그레 시절 포함
이경재 대표이사 시기부터 직함이 사장에서 대표이사로 변경 되었다. 그룹 내에선 부사장 대우를 받는다.[52] 각주에서 볼 수 있듯이 예외가 있기는 하다.
9.6. 역대 단장[편집]
- 빙그레 시절 포함
그룹 내에서 상무 대우를 받는다.
9.7. 역대 감독[편집]
역대 감독 목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에서 굵직한 기록을 세웠던 노장 축에 속하는 감독들(김영덕, 강병철, 이광환,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이 이글스를 거쳤던 적이 있다. 이 중 김영덕,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감독의 마지막 1군 감독을 보낸 팀이기도 하다.
이른바 KBO에서 자신만의 일가를 이뤘다고 하는 대감독 3명(이광환, 김응룡, 김성근)이 거쳐갔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것은 이광환 감독밖에 없고[57] 김응룡, 김성근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모두 실패하였다.
특히 이런 감독 특성은 한화 이글스 팬덤이 혹사에 다른 팬덤 이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김영덕 감독의 중무리 야구, 최동원과 염종석 등 롯데 시절 혹사로 유명한 강병철 감독[58] 을 빙그레 시절 이미 경험했다. 게다가 쓰는 선수만 쓰는 김인식 감독,[59] 해태 타이거즈 시절 습관을 전혀 버리지 못한 김응룡 감독 등 혹사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감독을 계속해서 경험했다. 여기에 2015년 김성근 감독의 희대의 혹사를 만났으니, 팬덤이 폭발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
그 길고 길었던 암흑기가 한화로 돌아온 한용덕 감독의 첫 해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바로 깨졌다. 그러나 20시즌 창단 이래 최다연패 14연패를 기록하면서 한용덕 감독은 자진사퇴를 했다.
한용덕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2군 감독이였던 최원호 감독이 감독대행으로 등록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로 물갈이를 시전, 코칭 스탭과 선수 대부분을 말소 및 등록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12일 두산을 상대로 연패를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전면 리빌딩에 나선 2021년 카를로스 수베로를 선임하며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을 맞게 되었다.
10. 역대 기록[편집]
10.1. 팀 성적[편집]
10.1.1.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편집]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은 적이 없는 팀(LG, NC, KT, 쌍방울)은 기재하지 않았다.
10.2. 개인 성적[편집]
볼드는 역대 기록 1위
10.2.1. 통산[편집]
10.2.2. 단일 시즌[편집]
11. 프런트[편집]
00년대부터 여러 제도가 바뀌는데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여주었고 한화출신 선수들이 프런트에 취직하여 칰무원이라는 멸칭이 생겼을정도로 환경 면에서도 개판에 능력주의라면 몰라도 한화선수 출신이 많다보니 서로서로 눈감아주는 등 무능하고 야구에 대해 모르는 모습만 보여주었고 2008년부터 시작된 기나긴 암흑기의 주역이라봐도 좋다.
이 시기부터 있던 개막장 일화를 나열하자면
- 외국인을 5명이나 바꿔버리는 바람에 다음해부터 외국인 교체가 2명으로 제한
- 2000년대 중반부터 신인지명은 5~6라운드까지만 뽑고 계약금이 아깝다고 전부 패스시켜버리고 신고선수로 채우다가 지명인원에 따라 신고선수 영입제한이 생김
- FA 영입에 인색하여 2012년까지 데려온 건 김민재 뿐이었다
- 1차 신인지명도 정치적인 이유로 북일고만 지명하거나 아무런 전략없고 청사진 없이 근시안적으로 지명
- 한대화 시기에는 이러한 병크가 누적되어 군문제로 인해 유일하게 밥값하던 빅뱃 선수가 시즌 도중에 군대를 가버리거나(송광민) 선수가 죄다 군대를 가거나 부상으로 드러누워서 1군에서 뛰던 선수가 2군 경기 땜빵하러 가게 되는(오선진) 촌극이 발생
- 박한이를 싸게 잡을 수 있었음에도 감독에게 언플을 시전하게 함
- 전지훈련 연습장을 프런트가 아닌 감독 개인 인맥을 통해서 잡는 사건이 발생
- LG의 신연봉제에 필받았는지(...) 2012년에 신연봉제 반영하다가 선수들의 불만만 삼
- 가난한 구단으로 유명한 히어로즈도 강진에 2군 구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화 2군 구장은 여러 지자체의 계산기와 정치적 문제까지 얽히는 바람에 지지부진하여서 2012년 서산 구장이 완공될 때까지 야구부를 운영하는 고등학교에서 훈련하는 등 막장운영을 보였다.
- 김응룡 이후 리빌딩의 대가로 포장된 김성근에게 휘둘려서 리빌딩인지 윈나우를 해야하는 지 갈팡질팡하며 선수육성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마구잡이 영입등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 2020시즌에 14연패를 찍자 한용덕 감독의 손발인 코치들을 죄다 2군행을 통보하고 코치진 콜업을 안 하는 바람에 덕아웃에 홀로 남은 감독이 직접 투수 교체를 하러 마운드에 올라가는 망신을 줌
- 처참한 외야를 보고도 리빌딩에 대한 의지가 흐려질것 같다며 FA 투자에 인색하며 철수하였고 이에 대해 비판하는 팬들을 향해 정민철 단장을 포함한 프런트가 팬자이라는 말로 팬들을 기만하고 호구로 보는 진심이 담긴 언플을 함
- 시즌중에 FA를 살꺼라면서 언플을 했지만 비시즌에 철수를 선언한 이후 이는 농담이었다.며 말장난 취급하는 말바꾸기
- 한상훈은 FA로 계약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출시켜버렸고 이와중에 잔여연봉을 미지급하려다가 걸렸다.[70] 이성열은 은퇴하면 한화 프런트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했으나 막상 은퇴하고 나니 구단 사정으로 못하게 되었다며 뒤통수를 침
- 김성근 시절 로스터 제한을 피하면서 선수는 보유하려는 꼼수로 최영환과 같은 유망주들에게 무리하게 육성선수 전환시키려하다가 선수 본인이 나가면서 선수를 놓쳐버림
- 1년 후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으로 고작 연봉 몇백을 위해 최재훈의 연봉을 전체 30위권으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다 수백만원 차이로 FA B등급을 띄움(결과적으로 잡았지만 애초에 정상적인 프런트면 일어나선 안 되는 일)
등 롯데 프런트에 뒤지지 않는 막장력을 선사하였다,
과거처럼 군대, 뎁스문제로 1군 선수가 2군 경기 뛰러 내려가는(...)문제는 발생하진 않지만(그 전에 발생하지 않아야하는게 정상이지만...)
현재진행형인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며 2군 같은 경우 2012년 서산구장 준공 후 2군과 리빌딩에 청사진을 그리며 제대로 운영되기 시작한 건 실질적으로 2021년부터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12. 은퇴식[편집]
은퇴식을 잘 열어주는 구단 중 하나이다. '신용과 의리' 를 한화 그룹의 슬로건으로 삼은 김종희와 김승연의 철학 때문. 그래서인지 전 구단에서 3번째로 은퇴식이 많은 구단이다.(1위는 LG 16회, 2위는 SK 14회[71] )
KBO 영구결번 2명[72] 외에 구대성, 이영우까지 포함 2009~2010년 사이 무려 4명의 레전드가 은퇴식을 치렀다. 특히 송진우와 정민철의 은퇴식은 2주 간격을 두고 치러졌다. 가장 최근에 열린 은퇴식은 2021년 10월 30일에 열린 이성열의 은퇴식이다.
13. 지역 연고 고등학교[편집]
한화 이글스의 지역 연고 고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1차 드래프트에서 가장 이득을 보지 못한 팀중 한팀이며, 1차 지명자를 1년 만에 방출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부실한 연고지 팜으로 유명하다. 암흑기가 시작되자 신생팀 창단이 연이어 일어나는 바람에 드래프트 픽에서 손해를 많이 보기도 했다.
대전팜은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으며 질적으로도 북일고를 제외하면 나머지 팜들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고졸우선지명과 연고지역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선 구단이며 결국 고졸우선지명은 1999년 지명을 마지막으로 폐지, 연고 1차 지명도 2009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가 부활했지만 22년부터 다시 폐지가 예정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고졸우선지명과 1차지명이 폐지된 그 해에 한화의 팜 내부지역에서 그 해의 최대어가 배출되었다는 점. 고졸우선지명의 경우에는 조규수, 마일영이 배출되었고 한화의 스카우트진들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화는 조규수를 택했다. 재미있는 건 이 조규수를 2010년에 두산에 트레이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일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결국 두 선수 모두 한화에 몸을 담아보게 되었다. 1차지명의 경우에는 2010년에 연고 고교인 천안북일고에서 신정락이 배출되었는데(고교 졸업은 2006년) 2010년 신인지명부터 1차지명이 폐지되었기에 전체 1번으로 LG 트윈스가 신정락을 지명했고 한화는 1라운드 4번으로 북일고 투수 김용주를 지명하였다. 22년도 역시 북일고의 1학년들 중 투수 최대어이자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손꼽힐 수준의 투수 유망주로 기대되는 심준석의 뒤에 지명받을만한 타자 최대어인 양재호가 있어, 심준석이 메이저로 직행하고 한화가 혹여나 꼴지를 하지 않으면 역사가 반복될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팜에서 특이점으로는 북일고가 팜 내에 좋은 선수가 없다는 1차적인 이유에 한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는 정치적인 이유까지 겹쳐 북일고 선수가 지명되는 선수가 많다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돼서 1차지명 부활 후 비 북일출신 1차지명이 청주고 출신 황영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이상군, 김태균, 안영명, 유원상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픽한 북일고에서 배출해낸 주전급 선수가 그다지 없기에 반발도 많다.
이 때문에 빙그레 시절부터 북일파와 비북일파(대전고, 공주고, 세광고, 청주고(청주기공고) 등) 간의 갈등이 팀 내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애초에 근거가 빈약하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거의 신인 픽의 방침은 하드웨어. 유난히 선수가 가진 하드웨어에 집중하여 뽑는 경향이 강했으며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무조건 떡대를 보고 픽하곤 했다. 제일 대표적인 케이스가 오승환을 거르고 뽑았던 양훈. 투수진은 물론이고 야수진도 대체로 떡대를 우선적으로 봤는데 이 덕분에 떡대가 있기 좋은 코너 포지션의 거포 유망주는 항상 쌓아놓고 있었고, 10년대 후반 들어 팀 타선이 심각하게 막장화가 되기 이전까지 팀 내 주포역할을 해줄 장타능력을 갖춘 타자는 항상 한명씩은 데리고 있었다. 19시즌 이전 최악의 시즌이었던 2010년 시즌에도 최진행이 타자진에서 버티고 있었을 정도. 반대로 야구 센스와 스킬을 장기로 삼는 작은 쌕쌕이는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때문에 테이블 세터가 될 만한 타자와 사이즈가 작아야 하는 내야 센터 라인의 선수들은 꾸준히 기근을 겪었다. 99년대 후반부터 장기간 1번타자로 뛰었던 이영우조차도 쌕쌕이 타입은 아니였다. 이영우가 군 입대후 커리어가 꺽인 뒤 강동우가 이 자리를 메꾸다가 결국 2013년 시즌 이후 정근우, 이용규를 FA로 영입하면서 메꿨다. 이상할정도로 포수 자원을 수집하는 경향도 있다. 정범모, 한승택, 이준수, 이희근, 박노민, 엄태용 등. 그러나 지명 빈도와 투자에 비하면 육성능력 부족으로 결과물은 그러 그랬고 결국 포수도 트레이드로 틈을 메꿨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00년대 시즌 중반까지의 일반적인 픽 경향. 04년 이후 09시즌까지 신인 픽을 굉장히 개판으로 해왔으며 한화 이글스의 가장 큰 몰락 원인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신인 드래프트를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04년에 한화는 야구단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사용했는데,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는 선수를 줄이는게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04년 5명 지명을 시작으로 하위 지명에서 대학에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뽑는 등 정식 계약을 해야하는 선수의 숫자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육성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지역 안배를 해준다고 지역출신에 실링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뽑았다가 역시나 별 성과를 못 내고 은퇴하는 것을 반복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첫 번째 실책은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 혹사로 매년 필승계투 한두명을 갈아먹으면서 시즌을 보냈던 시절 그 갈아먹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투수픽에 픽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에도 6명 중 4명이었다. 이러한 발픽의 최고 절정은 2009년 지명이었다. 이 해에 7명 중 5명이 투수, 대졸로 상위를 다 채우는 노골적인 즉전감 불펜 수집을 시도한 것. 프로야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00년대 이후로는 대졸 선수는 고교 때 프로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프로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화는 아예 작정하고 고졸로만 채워버린 것이다. 게다가 하위지명에서 포텐을 보고 선수들을 데려오는것도 아니고 픽을 포기해버렸다. 결국 장기간 1군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고졸 장민재였다는 것을 보면 이 시기의 근시안적인 픽이 얼마나 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였다.
근본적으로 근시안적으로 뽑기도 했지만, 육성 파트에서도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아줫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투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했다. 김혁민이나 유원상, 허유강과 황재규 등 짧은 기간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도 존재하긴 했으나 몇몇은 가능성만 보여줬고 몇몇은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킬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고, 최진호나 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이 시기에 야수쪽에 픽을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그나마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에 집중하면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와 김회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과 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 박상규와 김회성이 붕괴한 지역 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픽한 자원임을 고려하면 정말로 제대로 상위에서 지명한 아수는 김강과 오선진 단 두사람인 것. 하위 픽을 한 선수도 몇 명 없었으며 당연히 오래 못가 방출되었다.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한화 프런트는 2010년에 들어서야 문제점을 인식하고 허둥지둥 드랩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된다. 10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으로 2지명 김재우를 지명하고 4지명 이상훈을 데려오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이러한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와 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았지만, 트레이드 된 오준혁이나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경학을 제외하면 전부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하였다. 2012년에는 아예 전체 1픽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에 사용하면서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떡대와 하드웨어를 보고 픽하는 경향을 버리고 쌕쌕이 위주로 픽을 하였다. 양성우같은 선수들이 대표적. 10지명에서 1차 지명으로 라이트팬 조차도 프로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평가받던 북일고의 에이스 김용주를 1지명하는 등 지역 안배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임기영, 이태양, 오준혁 등 재능있는 선수들을 한 해에 하나 둘 씩은 찾아내곤 했다. 이렇게 오랜 드래프트에서의 삽질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도 한화의 편이 아니였다.
하필 팀이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던 그 때 신생팀들이 창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기에 언급된 하주석도 NC가 우선지명으로 두명의 선수를 데려가고 남은 선수였고, 1년뒤에는 지역고교인 북일고의 에이스이자 전국구 에이스인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 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wiz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 이글스는 멘붕.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뿐이었다. 이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4년에도 kt wiz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이자 조선족이라 군면제가 기존으로 장착되어 있는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 그나마 북일고 김범수가 있어 2013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급 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판.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
게다가 김응룡-김성근 감독 시기에 한 해에 한두명씩 주웠던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이 시기에 다수 유출되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건 각 감독의 항목으로 넘기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출들이 10년대 후반과 20년대 초반 타선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하필 김원석같이 재능은 보였으나 사고를 치고 은퇴한 선수들이 있었다는 점도 불운 중 하나였다.
원인이 뭐였던 간에 10년대 초반의 픽은 결과적으로 몇년에 걸쳐 실패를 겪었고, 이 시기에 배출한 주전은 하주석과 이태양 단 두명이며 이태양은 18년 이후로 하락세 후 트레이드, 하주석도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랜기간 2군에서 육성자원으로 분류되면서 팀에 잔류하고 있던 어린 투수들이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점이 위안거리.
04년~09년, 10년~15년까지의 두 시기에 이어 세번째 시기는 김민우-김범수라는 두 선발 유망주를 동시에 배출해낸 15 드래프트를 시작으로 16시즌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5시즌만 하더라도 지역안배를 위주로 드래프트를 했으나 이 이후로는 기존 드랩 기조를 완전히 버렸다. 지역안배를 완전히 버렸으며 투수진도 하드웨어와 제구를 중점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구위를 위주로 보고 있으며, 야수의 경우에는 매년 특정 포지션의 선수를 보강하는 식으로 픽하고 있다. 이 이후의 신인 픽들은 전처럼 발픽은 절대로 아니고, 아직 온전히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지나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결과가 나오고 있다.
투수쪽의 경우 충분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꾸준히 한두명씩 패전처리라도 할만한 선수를 뽑아내면서 픽도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육성 시스템도 마침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여 투수진이 무너진 09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투수층이 생기고 있다. 특히 18년도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던 박상원을 제외하면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으나 고만고만하게 1군에서 버텨줄만한 선수들은 정말 오랫만에 다수 보유하게 되었으며, 돌아가면서 필승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어린 투수들이라 성장이 기대되는 점이 고무적.
야수진은 아직도 애매. 18년에 역대 한화 내야 센터라인 신인 중 가장 좋은 페이스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한 정은원을 뽑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기대치가 있어 보이는 선수들은 전부 큰 결점을 보이면서 1군에 적응하는데 실패, 특히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야수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 20시즌 야수진 대붕괴의 원인. 이 때문에 18시즌 정도부터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과감하게 상위 드랩권을 전부 야수에 몰빵한 19 드래프트를 시작으로 장타력을 갖춘 야수들의 수집에 들어갔다. 시작은 상당히 좋은 편으로 이런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2군 북부리그에서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최종적인 결과는 좀 더 시간을 보고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은 육성쪽으로 공을 넘길 정도의 성과는 내는 중.
14. 사건사고[편집]
15. 여담[편집]
- 한화의 자랑으로는 응원가, 에이스인 한용덕. 구대성, 류현진, 응원단장인 홍창화, 레전드인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김태균을 꼽는데 이견이 없다. '한화 에이스와 4번은 하늘이 점지한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에이스와 4번은 리그 탑급이었다[76] .
- 류현진의 포스팅 건으로 인해 국내 포스팅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팀이기도 하다. 미-일간 포스팅 시스템 개정 때문에 국내 선수도 앞으로 2000만 이상의 포스팅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뀐 제도는 미국-일본 간에만 적용되며 한국 선수의 미국 진출 포스팅은 예전 제도에서 변경되지 않았으므로 더 높은 포스팅 비용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2014 시즌 기준으로 류현진 이상 몸값을 받고 진출할 수 있는 한국야구 선수가 있는 팀들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한화만이 유일하게 한국 야구팀 중 2천만 달러가 넘는 포스팅 비용을 받은 팀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4 시즌 후 포스팅을 시도한 김광현과 양현종이 처참한 몸값이 나오면서 확인사살. 그나마 선방한 강정호도 500만, 그 이후 박병호가 1천만 달러대를 받았다. 2018년 포스팅 시스템 개정 이후 류현진의 2573만 달러를 넘으려면 약 1억 8천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체결돼야 하므로 포스팅 시스템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기록은 더더욱 깨지기 힘들어졌다.
- 만화가 최훈이 개그 소재로 은근히 많이 쓴다.

프로야구 카툰에서 그래도 캐릭터가 워낙 귀여워 호평을 받는 중. 참고로 지금의 귀여운 이미지가 구축된 것은 2011년 이후로 프로야구 만화 특성상 리그 전체를 다루기에 그다지 비중도 없었고 작화도 그렇게 안정되지 않았던 데에다가 부리도 길어서 닭으로 보이면 보였지 그렇게 귀여운 인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최훈은 일단 개그 소재로 한화를 많이 다루긴 해도 기본적으로 한화까는 아니다. 오히려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에서 3년째 웹툰을 그렸었다. 어느 정도 애정이 있는 듯.
하지만 최훈 개인이 네이버나 야친에서는 타 팀들, 특히 LG, SK, 해태/KIA에 대해서는 추억의 에피소드도 많이 그리지만 한화에 대해서는 구단 측에서 직접 돈을 받는 공홈 웹툰을 제외하면 그린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빙그레 리즈시절에 LG의 빙그레 상대전적이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던 것이라든가 최근의 류현진 등 LG 팬들은 한화를 싫어할 만한 여지가 꽤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네이버나 야친 등지에 가끔 등장할 때라든가 공홈 웹툰에서 한화팬들의 지난 2년간 가려웠던 곳을 몸 쪽 꽉 찬 돌직구 수준으로 대놓고 까면서 정말 시원하게 긁어줬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팀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으니까 남의 팀 망치고 있는 금지어 감독을 저렇게 신랄하게 까주는 게 아닌가 싶은 관계로[77] 좀 미묘하다. 어찌 되었든 최소한 어떤 팀처럼 대놓고 X뉴비라고 까인 적은 없으니 적어도 한화까는 아닌 게 확실히 맞다. 참고로 최훈 카툰의 캐릭터중 야구 팬들에게 공통적으로 높은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는 캐릭터가 한화 마스코트 캐릭터이기도 하다. 캐릭터 명칭은 '이글이'. 그리고 이글이는 공식 어플리케이션에 팝업으로 등장한다. 이쯤되면 반공인 마스코트일지도?
- 한화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어진 형제 간의 암투로 인해 팀의 이름이 변경되었다. 창단 당시에는 한화그룹 내의 유일한 소비재 기업인 빙그레의 이름을 딴 빙그레 이글스였으나 형제 간의 암투의 결과로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떨어져나가며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 이글스가 되었다.
- 팬들의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한 구단이다. 지는 경기여도 변함없이 열띤 응원을 보내주어 다른 구단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팬심과는 달리 구단은 성적이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라 '보살팬'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2016년 10월 8일의 시즌 마지막 KIA와 치른 홈경기에서 9회말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자 한 여성팬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과 함께 허구연 위원이 감명받은 멘트를 곁들인 장면은 그야말로 한화팬들의 충성도를 다시 한번 증명한 명장면이었다[78]#.
- 웹소설 괴담 동아리에서 우승을 못 해서 성불 못 한 한화 소녀 팬 귀신이 등장한다.
- 오랫동안 마스코트를 위니, 비니만 쓰다가 2016년 시즌 이 둘의 자식이라는 콘셉트로 '수리'가 추가되었다. 원래 이름은 '아리'였는데 무슨 병아리냐고 항의한 사람들에 의해 슬쩍 태명으로 바꾸고 수리로 변경. 이로써 KBO 리그 내 가족 단위 마스코트가 된 것으로는 롯데 자이언츠의 누리 & 아라 & 피니, 삼성 라이온즈의 블레오 패밀리를 이어 세번째가 되었다. 위니와 비니에 비해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동그란 몸매에 귀여운 외형으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 팬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귀엽다 못해서 하도 쫓아다니면서 때리는지 위니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
마스코트 공개 당일과 탄생 100일 기념을 맞아 두 번의 시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배스킨라빈스 한국 프로야구 피규어 판매 행사에서 수리가 한화 이글스의 피규어로 등장.# 이후 롯데리아 홈서비스 이벤트로 10개 구단 피규어 증정 행사 때도 등장했고(베스킨라빈스 피규어와 비교했을 때 미간이 좀 더 넓게 채색되었다), 이벤트가 끝나고 공식 판매처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링크
-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와 함께 20세기 최후의 한국시리즈 우승팀이며 1회 우승팀이기도 하다. 진짜 마지막 20세기 우승팀은 현대 유니콘스지만 이 쪽은 구단이 해체되었으므로...[79]
- 부기영화의 글작가인 급소가격 혹은 그림작가인 여빛, 또는 둘 다 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가끔씩 소재로 써먹는다. 참고로 이 웹툰, 제목대로 야구웹툰이 아닌 영화 리뷰 웹툰이다. 2017년 최악의 영화 리뷰(116화 16페이지)하다가 나온 이성열의 끝내기 홈런을 시작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후 나온 대학생의 귀농 힐링영화 리뷰(153화 10페이지)에서 당시 성적이 호성적인 것을 본 가을잠바 드립에, MCU의 10년 간의 원기옥을 내뿜은 기념작 리뷰(156화 7~9페이지)에서는 지는 법을 모른다는 드립까지... #1#2 각 화를 보면 알겠지만 리뷰한 영화들도 야구랑은 전혀 상관없는 영화들에서 뛰쳐나온 아무말 대잔치다.
- 2018년 제4회 스포츠마케팅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2009년 시즌에는 유니폼 뒤의 이름을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처럼 영어 알파벳으로 써넣었다. 다만 팬들 반응이 별로 안 좋았는지, 다음 시즌에서는 그대로 한글로 돌아왔다.#
- 2014 시즌부터 한화가 LG 트윈스 상대로 2020 시즌까지 7년 연속으로 매번 한 번 씩은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80] 2021년에는 LG전 끝내기가 나오지 않았다. LG와의 홈 최종전에서 고우석이 흔들리며 이어갈 기회가 왔으나 어이없게 주루사가 나왔다.
- 2019 시즌부터 선수단 공식 프로필 사진에 유니폼이 아니라 후드티를 입는 이색적인 사진을 공개했다. 물론 유니폼 사진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마케팅용으로 사용하는 차원이자, 스포츠팀의 고정관념을 깨는 색다른 차원의 시도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유니폼이 아닌 복장을 선수에게 입히는 건 이례적인 부분. 2020 시즌에는 아예 주황색 맨투맨을 입은 사진만을 선수단 프로필 사진으로 공개되었다. 다만 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크게 갈렸으며 적어도 야구선수라는 기본적인 근본을 고정관념으로 생각하는게 더 이상하다는 반응이 이어져 2021년부터는 다시 유니폼을 착용하고 촬영한다. 그리고 크게 연관은 없지만 해당 시도를 이어간 두 시즌 모두 성적이 크게 좋지 않았다.
- 매 시즌 홈 최종전에서는 불꽃놀이를 하는데, 모기업의 근본이 화학 산업인 관계로 말 그대로 폭죽을 쏟아붓듯이 한다. 예를 들자면, 한화의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시킨 경기 후 펼쳐진 출정식에서는 폭죽을 무려 20분 동안 터트렸다. 때문에 시즌이 끝날 무렵 쯤에는 항상 한화가 우승하면 어떤 불꽃놀이를 보여줄 것인가가 떡밥이 된다.
대전불바다
- 2년 연속 외야수 전체 마이너스를 찍은 2022년 기준에서는 놀라운 일이지만 한화 외야가 리그 최강으로 꼽혔던 리즈시절도 있었다. 송지만(2004년 현대 트레이드)과 이영우, 제이 데이비스(2003년 제외)가 있었던 1999-2004년은 한화 외야가 이병규-김재현이 있던 LG와 함께 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력을 갖춘 외야로 평가받았다.
- 프로야구단 최초로 OTT 서비스 왓챠를 통해 2021 시즌 당시 프런트가 찍은 다큐멘터리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를 공개했다.
- 마스코트가 새인 만큼(?) 경기장에 날짐승이 나타나면 이기는 징크스가 있다. 예를 들어 꿩이라든지, 잠자리라든지...
- 2022년 들어 웹상에서 활동하는 썰쟁이들이 구단 매각 가능성을 들먹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 SK가 빠지면서 현실적으로 들어올 만한 대기업이 없는 것이 현실이고[81] 자칫 북일고 야구부의 해체라는 연쇄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16. 둘러보기[편집]
[1]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내[2] 1989년 대전직할시로 승격. 그 뒤, 1995년에 대전광역시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3]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연고지 제도가 광역 연고지에서 도시 연고지로 개편되며 표기에서 제외된 것일 뿐 1차 지명권이 박탈되거나 한 건 아니다. 대전엔 1차지명 고교가 1곳이지만 충청남·북도에 각각 2곳씩 두고 있다. (충남: 공주고등학교, 천안북일고등학교, 홍성광천고등학교 / 충북: 청주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강원도 영서 지역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1차 지명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지역 연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4] 2025 시즌부터 신축 야구장인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 사용 예정[5] 남성형 마스코트인 위니와 여성형 마스코트인 비니가 있고, 이 둘의 자식이란 설정의 수리가 추가되었다. 기타 항목 참조.[6] 2021년부터 각종 구단 의류와 키트에서 위팬 소유의 골드볼파크 로고를 볼 수 있다.[7] 2021년부터 모자를 뉴에라에서 제공받는다.[8] 
Eagles를 E로 줄인 엠블럼도 사용한다.[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인해 2019 시즌 이후 경기를 편성하지 않고 있다.[10] 2011년 9월 16일 당시에는 정규 이닝만으로도 홈런이 무려 7개나 나왔다.[11] 現 대표이사 박찬혁이 마케팅 팀장 시절에 수리를 만들었다.[12] 지금도 한화가 주말 경기를 하고 나면 KTX가 지나는 경부고속선 포함 경부선, 장항선, 충북선 열차와 서산영덕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의 휴게소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13] 지리적으로도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니만큼 수도권 지역에서도 팬층이 형성되는 요건은 충분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호남 상경민들과 영남 상경민들에게 가려져서 그럴뿐, 수도권에는 충청에서 올라온 상경민들과 그들의 자녀들도 상당히 많다.[14] 인천의 경우,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지인 중 충청권 출신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문학에서 KIA팬 다음으로 원정 응원석을 많이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한화팬이다.[15] https://www.youtube.com/watch?v=F1b6RpX948k&t=1s [16]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한화팬이라는 글을 쓰면, 격려, 위로의 말부터 나는 행복합니다, 최강한화 등 같은 한화팬들이 덧글을 달아주는 등의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롯데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팀들은 이런 반응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엠팍, 야갤과 같은 야구 전문 커뮤니티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야구 팬들 중 한화팬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다.[17] 2018년에는 팀 최고 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덕에 감독님 덕에 인기 많아졌네 하며 헛소리하는 노리타들도 퇴치되었다. 여러모로 한화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2018년이었다.[18] 지나칠 정도로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응원하는 등의 행동. 한화 이글스 갤러리같은 강성 팬덤에서는 야알못들이 한화에는 하나도 관심없으면서 인스타에 지들 보살 이미지 만들려고 한화팬인 척 해서 꼴보기 싫다는 식의 글들도 자주 올라오곤 한다.[19] 팬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을 하기 바라지 노상 꼴찌만 맡아 하는걸 좋아할이는 없다. 더구나 한화의 팀 유일의 우승이 1999년이라 2020년대 기준으로도 오래된 상황이기에 우승을 갈망하는것은 당연하다.[20] 문서 상단의 프랜차이즈 기록 참고[21]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는 24,000석으로 대전과 청주를 합한 수보다 많다.[22] 참고로 무등 구장을 사용하던 시절의 KIA도 비슷한 논리로 비인기 구단 드립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론 챔필로 옮겨간 현재는 그런 주장은 사라진 상태.[23] 심지어 2020년은 18연패에 시즌 막판까지 100패가 유력했을 정도로 최악의 시즌이었는데도 이 정도다.[24] 굳이 추론하자면 오랜 암흑기로 인한 불만, 영호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충청의 지역 성향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여 대전아재들이 야구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리고 포기하면 편해로 바뀐것일지도 모른다.[25] 대전이라는 도시 자체가 문화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즐길거리가 있는 야구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암흑기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훌리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26] 김성훈과 문가혜 리포터가 광고했다.[27] 서폴드가 광고했다.[28] 오선진이 광고했다.[29] 넷플릭스에서 해외의 유수 스포츠 구단들과 촬영한 팀 다큐멘터리 같은 개념이다.[30] https://www.youtube.com/watch?v=Lt9HI4-HZAw [31] https://www.youtube.com/watch?v=gdHyu_6o6eI [32] 개그맨 중에서 충청도 출신 비율이 높다. 관련기사[33] 다만 고향은 전라북도 김제시이다.[34] 최재훈 또한 팀에 동명이인 선수가 있다.[35] 정확히 말하면 원년 OB 베어스 팬이었는데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새로 자리잡은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36] 마침 스페셜 DJ로 나온 날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최재훈이 게스트로 나오는 수요일이었다.[37] 당시 강인과 함께 야구장에 찾았는데 인터뷰에서 백현이 강인 덕분에 야구와 한화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38] 한화 팬이던 어머니를 따라 같이 팬이 되었다고 한다.[39] 2018년 준플레이오프는 99한화 우승을 이끈 이희수 전 감독, 구대성이 시구를 하였다.[40] 원래는 둘이 동명이인인데다 친분도 있는점 때문에 LG시절부터 포수 조인성이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왔으나 배우 조인성이 한화팬이라는 이유로 계속 고사해오다가 포수 조인성이 한화로 이적해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이 경기도 시구가 끝난 후 자리를 뜨지 않고 경기를 계속 보고 간것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41] 힙합 그룹 M.I.B의 리더 출신,당시 쓰던 예명은 '오직'[42] 여담으로 등번호도 2번으로 달고 나왔다.[43] 단 구대성의 15번은 당시 형편없던 프런트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의지가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은퇴식 당일,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그 증거이다. 관련 기사[44] 정민철은 대전, 장종훈과 송진우는 충북(둘 다 고등학교는 청주 세광고 출신으로, 출생지로 놓고 보면 송진우는 증평, 장종훈은 영동 출신), 김태균은 충남(천안) 출신이다.[45] 다만 정민철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김태균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다가 돌아왔다. 그래도 KBO 리그만 따지면 원클럽맨은 맞다.[46] KBO 은퇴 경기 특별엔트리로 1경기 선발 출장했다. 경기 시작 선언 후 바로 노시환과 교체됐다. 이후 노시환은 3루로 이동했고, 선발 3루수 힐리가 1루수로 이동했다.[47] 류현진은 이미 메이저리그 진출 전 한화에서 뛰고 있을 때에도 1선발 활약을 해준 에이스였다.[48] 류현진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한화 복귀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류현진 "올해는 20승…언젠가 한화 100% 복귀"[49] 태평개발, 서울프라자호텔, 서울청량리역[50] 2010년 1월 26일 ~ 2010년 8월 11일[51] 2020년 11월 10일 ~[52] 다만 그 공식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 퇴직 직전에 한화 이글스 대표이사로 부임하는 일도 있기 때문. 이경재 구단주 대행 이후에 부임한 김관수 대표이사는 한화호텔엔리조트 대표이사(사장)를 지내고 말년에 부임한 케이스이며, 정승진 대표도 대덕테크노밸리의 대표이사(사장)를 맡다가 넘어온 케이스이다. 다만 김충범 대표이사는 부사장급 인사였고, 이후에 부임한 김신연 대표이사는 김승연 회장의 사촌으로 사장급이었다.[53] 2021년 12월 ~ 2022년 10월 부임[54] 88년, 89년, 91년, 92년.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앞의 세 번은 모두 해태 타이거즈에게 물먹은 결과다.[55] 대전광역시 출신이지만 이글스에서 뛴 경력은 없다. 다만 OB 베어스가 대전을 연고로 하고 있던 시절 베어스 선수였다.[56] 한대화 이전의 감독들의 출신지는 모두 충청지역과 무관하다. 배성서는 평안도 출신, 김영덕은 재일교포, 강병철과 이희수는 부산 출신, 이광환은 대구 출신, 유승안과 김인식은 서울 출신이다.[57] 그마저도 최하위인 롯데와 고작 2게임차였다.[58] 한화 시기에도 이러한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투수 운용에서 구대성을 과하게 혹사시켜 18승 3패 24세이브의 기록을 세우게 해 구원 투수이면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독식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세웠다.[59]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한화 이글스 시절 2차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특성은 팀의 노령화와 특정 투수의 혹사로 이어졌다. 당시 혹사당한 선수로는 양훈, 황재규, 허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60] 전기 7위, 후기 6위[61] 전기 6위, 후기 공동 5위.[62] 전기 2위, 후기 3위[63] 전체 4위[64] 전체 7위[65] 해태 시절 포함[66] 삼청태 시절 포함[67] OB 시절 포함[68] SK 시절 포함[69] 우리-서울-넥센 시절 포함[70] 이에 관해서는 잔여연봉 지급을 꺼린 프런트도 잘못하긴 했으나 방출건은 김성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많은 편이다.[71] SSG 랜더스까지 합치면 17회로 1위.[72] 장종훈의 경우는 2005년에 은퇴식이 거행되었으니 제외.[73] 한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한화 이글스 2군의 유스팀이라느니, 한화 성골학교라느니 하는 말이 있을정도로 최상위 지명자는 거의 북일고 출신이고, 타팀의 북일고 출신을 트레이드로 자주 데려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암흑기가 길어지자 북일고 출신들을 북일카르텔이라며 싫어하는 팬들도 많다.[74] 한국K-POP고(舊, 광천고)가 위치한 홍성군에는 한화 이글스와 지자체가 합작하여 지은 정규 규격 야구장이 하나 있다. 실제 광천고 학생들이 그곳에서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75] 구 청주고 야구부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된 이후 창단되었던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는 다시 청주고등학교로 이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76] 빙그레 전성기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1991-1992년이 가장 강했으며 주요 타자로 1번 중견수 이정훈과 3번 1루수 장종훈이 있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348 .36)이었으며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타점 2관왕(35 41홈런 114 119타점)에 올랐다. 1992년에 팀 144개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77] 실제로 SK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인데도 SK 시절 염■■을 디스하는 야구팬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은 SK 와이번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78] 당시 이글스파크의 분위기는 흡사 가을야구 진출권을 두고 대결중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경기중계를 맡은 MBC 방송 카메라가 관중석에서 여성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응원을 하던 모습을 캡쳐한 장면은 정말이지 전율이 흐르고도 남았다.[79] 다만 현해탄 건너의 인기구단 한신 타이거스와 같은 1회 우승팀과 비교하면 따끈따끈한 편인데 그쪽은 거의 30년을 넘겼다면 여긴 이제 막 20년을 바라보고 있다.[80] 2014.04.19. 고동진 끝내기 안타, 2014.09.07. 최진행 끝내기 홈런, 2015.04.07. 모건 끝내기 안타, 2015.04.09. LG 내야진 끝내기 실책, 2016.06.10. 정근우 끝내기 안타, 2016.06.12. 양성우 끝내기 희비, 2017.04.18. LG 투수 끝내기 악송구, 2018.05.21. 지성준 끝내기 안타, 2018.06.21. 송광민 끝내기 홈런, 2019.04.04. 정은원 끝내기 안타, 2020.09.15 정진호 끝내기 사구[81] 두산 매각설 때마다 썰쟁이들이 목놓아 부르짖는 카카오와 네이버는 프로 스포츠단 창단에 전혀 관심이 없다.
Eagles를 E로 줄인 엠블럼도 사용한다.[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인해 2019 시즌 이후 경기를 편성하지 않고 있다.[10] 2011년 9월 16일 당시에는 정규 이닝만으로도 홈런이 무려 7개나 나왔다.[11] 現 대표이사 박찬혁이 마케팅 팀장 시절에 수리를 만들었다.[12] 지금도 한화가 주말 경기를 하고 나면 KTX가 지나는 경부고속선 포함 경부선, 장항선, 충북선 열차와 서산영덕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의 휴게소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13] 지리적으로도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니만큼 수도권 지역에서도 팬층이 형성되는 요건은 충분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호남 상경민들과 영남 상경민들에게 가려져서 그럴뿐, 수도권에는 충청에서 올라온 상경민들과 그들의 자녀들도 상당히 많다.[14] 인천의 경우,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지인 중 충청권 출신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문학에서 KIA팬 다음으로 원정 응원석을 많이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한화팬이다.[15] https://www.youtube.com/watch?v=F1b6RpX948k&t=1s [16]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한화팬이라는 글을 쓰면, 격려, 위로의 말부터 나는 행복합니다, 최강한화 등 같은 한화팬들이 덧글을 달아주는 등의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롯데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팀들은 이런 반응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엠팍, 야갤과 같은 야구 전문 커뮤니티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야구 팬들 중 한화팬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다.[17] 2018년에는 팀 최고 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덕에 감독님 덕에 인기 많아졌네 하며 헛소리하는 노리타들도 퇴치되었다. 여러모로 한화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2018년이었다.[18] 지나칠 정도로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응원하는 등의 행동. 한화 이글스 갤러리같은 강성 팬덤에서는 야알못들이 한화에는 하나도 관심없으면서 인스타에 지들 보살 이미지 만들려고 한화팬인 척 해서 꼴보기 싫다는 식의 글들도 자주 올라오곤 한다.[19] 팬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을 하기 바라지 노상 꼴찌만 맡아 하는걸 좋아할이는 없다. 더구나 한화의 팀 유일의 우승이 1999년이라 2020년대 기준으로도 오래된 상황이기에 우승을 갈망하는것은 당연하다.[20] 문서 상단의 프랜차이즈 기록 참고[21]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는 24,000석으로 대전과 청주를 합한 수보다 많다.[22] 참고로 무등 구장을 사용하던 시절의 KIA도 비슷한 논리로 비인기 구단 드립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론 챔필로 옮겨간 현재는 그런 주장은 사라진 상태.[23] 심지어 2020년은 18연패에 시즌 막판까지 100패가 유력했을 정도로 최악의 시즌이었는데도 이 정도다.[24] 굳이 추론하자면 오랜 암흑기로 인한 불만, 영호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충청의 지역 성향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여 대전아재들이 야구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리고 포기하면 편해로 바뀐것일지도 모른다.[25] 대전이라는 도시 자체가 문화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즐길거리가 있는 야구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암흑기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훌리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26] 김성훈과 문가혜 리포터가 광고했다.[27] 서폴드가 광고했다.[28] 오선진이 광고했다.[29] 넷플릭스에서 해외의 유수 스포츠 구단들과 촬영한 팀 다큐멘터리 같은 개념이다.[30] https://www.youtube.com/watch?v=Lt9HI4-HZAw [31] https://www.youtube.com/watch?v=gdHyu_6o6eI [32] 개그맨 중에서 충청도 출신 비율이 높다. 관련기사[33] 다만 고향은 전라북도 김제시이다.[34] 최재훈 또한 팀에 동명이인 선수가 있다.[35] 정확히 말하면 원년 OB 베어스 팬이었는데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새로 자리잡은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36] 마침 스페셜 DJ로 나온 날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최재훈이 게스트로 나오는 수요일이었다.[37] 당시 강인과 함께 야구장에 찾았는데 인터뷰에서 백현이 강인 덕분에 야구와 한화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38] 한화 팬이던 어머니를 따라 같이 팬이 되었다고 한다.[39] 2018년 준플레이오프는 99한화 우승을 이끈 이희수 전 감독, 구대성이 시구를 하였다.[40] 원래는 둘이 동명이인인데다 친분도 있는점 때문에 LG시절부터 포수 조인성이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왔으나 배우 조인성이 한화팬이라는 이유로 계속 고사해오다가 포수 조인성이 한화로 이적해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이 경기도 시구가 끝난 후 자리를 뜨지 않고 경기를 계속 보고 간것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41] 힙합 그룹 M.I.B의 리더 출신,당시 쓰던 예명은 '오직'[42] 여담으로 등번호도 2번으로 달고 나왔다.[43] 단 구대성의 15번은 당시 형편없던 프런트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의지가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은퇴식 당일,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그 증거이다. 관련 기사[44] 정민철은 대전, 장종훈과 송진우는 충북(둘 다 고등학교는 청주 세광고 출신으로, 출생지로 놓고 보면 송진우는 증평, 장종훈은 영동 출신), 김태균은 충남(천안) 출신이다.[45] 다만 정민철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김태균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다가 돌아왔다. 그래도 KBO 리그만 따지면 원클럽맨은 맞다.[46] KBO 은퇴 경기 특별엔트리로 1경기 선발 출장했다. 경기 시작 선언 후 바로 노시환과 교체됐다. 이후 노시환은 3루로 이동했고, 선발 3루수 힐리가 1루수로 이동했다.[47] 류현진은 이미 메이저리그 진출 전 한화에서 뛰고 있을 때에도 1선발 활약을 해준 에이스였다.[48] 류현진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한화 복귀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류현진 "올해는 20승…언젠가 한화 100% 복귀"[49] 태평개발, 서울프라자호텔, 서울청량리역[50] 2010년 1월 26일 ~ 2010년 8월 11일[51] 2020년 11월 10일 ~[52] 다만 그 공식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 퇴직 직전에 한화 이글스 대표이사로 부임하는 일도 있기 때문. 이경재 구단주 대행 이후에 부임한 김관수 대표이사는 한화호텔엔리조트 대표이사(사장)를 지내고 말년에 부임한 케이스이며, 정승진 대표도 대덕테크노밸리의 대표이사(사장)를 맡다가 넘어온 케이스이다. 다만 김충범 대표이사는 부사장급 인사였고, 이후에 부임한 김신연 대표이사는 김승연 회장의 사촌으로 사장급이었다.[53] 2021년 12월 ~ 2022년 10월 부임[54] 88년, 89년, 91년, 92년.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앞의 세 번은 모두 해태 타이거즈에게 물먹은 결과다.[55] 대전광역시 출신이지만 이글스에서 뛴 경력은 없다. 다만 OB 베어스가 대전을 연고로 하고 있던 시절 베어스 선수였다.[56] 한대화 이전의 감독들의 출신지는 모두 충청지역과 무관하다. 배성서는 평안도 출신, 김영덕은 재일교포, 강병철과 이희수는 부산 출신, 이광환은 대구 출신, 유승안과 김인식은 서울 출신이다.[57] 그마저도 최하위인 롯데와 고작 2게임차였다.[58] 한화 시기에도 이러한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투수 운용에서 구대성을 과하게 혹사시켜 18승 3패 24세이브의 기록을 세우게 해 구원 투수이면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독식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세웠다.[59]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한화 이글스 시절 2차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특성은 팀의 노령화와 특정 투수의 혹사로 이어졌다. 당시 혹사당한 선수로는 양훈, 황재규, 허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60] 전기 7위, 후기 6위[61] 전기 6위, 후기 공동 5위.[62] 전기 2위, 후기 3위[63] 전체 4위[64] 전체 7위[65] 해태 시절 포함[66] 삼청태 시절 포함[67] OB 시절 포함[68] SK 시절 포함[69] 우리-서울-넥센 시절 포함[70] 이에 관해서는 잔여연봉 지급을 꺼린 프런트도 잘못하긴 했으나 방출건은 김성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많은 편이다.[71] SSG 랜더스까지 합치면 17회로 1위.[72] 장종훈의 경우는 2005년에 은퇴식이 거행되었으니 제외.[73] 한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한화 이글스 2군의 유스팀이라느니, 한화 성골학교라느니 하는 말이 있을정도로 최상위 지명자는 거의 북일고 출신이고, 타팀의 북일고 출신을 트레이드로 자주 데려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암흑기가 길어지자 북일고 출신들을 북일카르텔이라며 싫어하는 팬들도 많다.[74] 한국K-POP고(舊, 광천고)가 위치한 홍성군에는 한화 이글스와 지자체가 합작하여 지은 정규 규격 야구장이 하나 있다. 실제 광천고 학생들이 그곳에서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75] 구 청주고 야구부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된 이후 창단되었던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는 다시 청주고등학교로 이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76] 빙그레 전성기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1991-1992년이 가장 강했으며 주요 타자로 1번 중견수 이정훈과 3번 1루수 장종훈이 있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348 .36)이었으며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타점 2관왕(35 41홈런 114 119타점)에 올랐다. 1992년에 팀 144개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77] 실제로 SK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인데도 SK 시절 염■■을 디스하는 야구팬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은 SK 와이번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78] 당시 이글스파크의 분위기는 흡사 가을야구 진출권을 두고 대결중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경기중계를 맡은 MBC 방송 카메라가 관중석에서 여성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응원을 하던 모습을 캡쳐한 장면은 정말이지 전율이 흐르고도 남았다.[79] 다만 현해탄 건너의 인기구단 한신 타이거스와 같은 1회 우승팀과 비교하면 따끈따끈한 편인데 그쪽은 거의 30년을 넘겼다면 여긴 이제 막 20년을 바라보고 있다.[80] 2014.04.19. 고동진 끝내기 안타, 2014.09.07. 최진행 끝내기 홈런, 2015.04.07. 모건 끝내기 안타, 2015.04.09. LG 내야진 끝내기 실책, 2016.06.10. 정근우 끝내기 안타, 2016.06.12. 양성우 끝내기 희비, 2017.04.18. LG 투수 끝내기 악송구, 2018.05.21. 지성준 끝내기 안타, 2018.06.21. 송광민 끝내기 홈런, 2019.04.04. 정은원 끝내기 안타, 2020.09.15 정진호 끝내기 사구[81] 두산 매각설 때마다 썰쟁이들이 목놓아 부르짖는 카카오와 네이버는 프로 스포츠단 창단에 전혀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