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라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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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라크 할라브자.jpg

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아랍어 حلبجة
쿠르드어 هەڵەبجە
영어 Halabja

이라크 북부의 도시. 술라이마니야에서 동남쪽으로 50km 떨어진 분지에 위치한다.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다후크와 함께 이라크 쿠르디스탄 4대 주도 중 하나로 인구는 25만명이다. 19세기 후반 쿠르드 자프 부족의 수도로 세워져졌다. 삼면이 고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쿠르디스탄을 제외한 이라크의 아랍 지역과 차로 기본 4시간이 걸리는 등 도시 규모에 비해 상당히 고립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란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 따라서 이라크의 다른 어느 중간급 이상 도시들보다 쿠르드 색채가 강하며,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탄압에 시달렸다. 이란-이라크 전쟁 말엽인 1988년 3월에는 이라크 군이 화학 무기를 투하해 주민 5천여명이 사망하는 할라브자 학살이 일어났다. 학살의 주범이자 사담 후세인의 아들인 알리 (케미컬 알리)는 이미 후퇴한 이란군의 소행이라 선전했으나 후일 혐의가 밝혀져 사형당하는 것으로 죄값을 치른다.

2. 역사[편집]


파일:할라브자 이라크 1.jpg
서북쪽 5km 지점의 기원전 2000년경 유적인 바크르 아와

고대 룰루비 왕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14세기 들어 술라이마니야의 바반 후국과 함께 양대 쿠르드 제후국이던 아르달란 후국의 영토가 되었다. 바반과 아르달란은 각각 오스만 제국카자르 왕조에 복속하여 대리전을 치렀는데, 19세기 중반 둘다 그들에 의해 멸망한다. 그러자 서남쪽 시르완 강 유역에 살던 쿠르드계 자프 부족이 오스만 제국의 승인 하에 일대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1850년경 할라브자를 세워 중심지로 삼았다. 19세기 후반 자프 부족장 오스만 파샤는 아르달란의 공주 아델라 카넴과 결혼했는데, 1909년 그가 사망한 후 후자가 계승하였다.

쿠르드 역사상 첫 여성 군주가 된 아델라는 1차 대전과 쿠르디스탄 왕국 시절 영국인 포로들을 학살로부터 보호하여 칸 바하두르 칭호를 받았다. 1924년 그녀는 사망하여 할라브자에 묻혔다. 그후 오스만 파샤와 아델라의 아들 아흐메드 무크타르 자프가 자프 부족장 겸 할라브자 시장이 되었다. 모친과 달리 그는 영국의 통치에 맞서 무장 투쟁에 나섰다가 1934년 전사하였고, 딸만 남기며 자프 왕가는 끊기게 된다. 1924년 할라브자에는 우체국이 들어섰고, 이듬해에는 첫 근대 학교가 세워졌다. 다만 전기는 1940년에야 들어왔다.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 하에서 탄압받던 쿠르드 인들은 이란-이라크 전쟁을 틈타 1983년 이란의 지원 하에 봉기하였고, 1987년 할라브자에는 이란군이 주둔하였다.

반격에 나선 이라크 군은 알 안팔 작전에 나서 쿠르디스탄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섰고, 1988년 3월 16일 오전 11시에 할라브자에 화학 폭탄을 투하하였다. 이로써 주민 5천여명이 즉사하고 7천여명이 만성 질환을 앓게 되었다. 이는 이미 이란군이 철수한 상황에서 이라크 군이 탈환 직전에 벌인 학살로, 사담 후세인의 주요 전쟁 범죄 중 하나였다. 1991년 쿠르디스탄 자치 정부 성립 후 2006년 3월에는 학살 기념일에 희생자에 대한 무관심을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발포하여 14세 소년이 사망하였다. 2017년 11월에는 2017년 이란-이라크 지진이 할라브자 남쪽 30km에서 발생했다. 진앙에서 가까웠으나 이란 지역에 비해 피해가 비교적 적어 사망자가 10명 미만이었다. 2008년부터 국제공항 건설 논의가 있으나 지지부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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