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트마깅 바트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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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5대 대통령
할트마깅 바트톨가
ᠬᠠᠯᠲᠠᠮ᠎ᠠ ᠶᠢᠨ ᠪᠠᠲᠤᠲᠤᠯᠭ᠎ᠠ | Халтмаагийн Баттулг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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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3월 3일 (61세)
몽골 인민공화국 울란바토르
학력
몽골 순수 미술학교 졸업
신장
약 160cm대 중반[1]
배우자
안젤리카 다바인[2]
자녀
2명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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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제5대 대통령
2017년 7월 10일 ~ 2021년 6월 25일
소속 정당



경력
삼보 국가대표 선수
국회의원 (2004~2016)
도로교통건설도시개발부 장관 (2008~2012)
농업공업부 장관 (2012~2014)
몽골 제5대 대통령 (2017~2021)
민주당 대표 (2021~ )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기타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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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제5대 대통령.[3][4]

차히아깅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민주당 정권을 재창출하면서 집권하였으나 재임 내내 의회 다수당인 몽골 인민당 소속 총리와 사사건건 충돌했고, 결국 인민당 주도로 대통령 임기를 축소하는 개헌안이 통과된 후 법정 다툼에서 패하며 재선에 도전하지 못한 채 퇴임했다.

무술 대련 스포츠 선수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 대통령 당선 당시 한국에서도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2. 생애[편집]


1963년 3월 3일,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났다. 3살 되던 해인 1966년 홍수 피해로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울란바토르가 워낙 건조한 초원 지대에 자리한 도시라 폭우와 홍수가 매우 드문 지역[5]임을 감안하면 하필 어릴 때 대단히 재수가 없었던 셈.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정진해 교육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 8학년 재학 당시 선생의 조언으로 예술업계에 몸담았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관광객들에게 팔아 돈을 벌었고, 영어 공부도 틈틈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스포츠에 눈을 뜨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고, 1980~1990년대에 걸쳐 부흐·유도·삼보 등 무술·격투 스포츠 전문 선수로 활약했다. 삼보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1983년 삼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따면서 이름을 날렸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이후에는 사업에 뛰어들어 호텔요식업 업체를 운영하면서 크게 성공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지닌 유명인사가 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상승하자 민주당에 입당해 정계에 진출, 2004년 총선에서 당선되며 국회의원이 되었고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도 연이어 당선되면서 3선을 달성했다. 이 시기 의회 원내에서 민주당 중심의 정당연합인 '민주연합'의 대표를 맡았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도로교통건설도시개발부 장관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농업공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 같은 당의 차히아깅 엘베그도르지가 당선되며 집권여당의 국회의원 겸 장관으로서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2016년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하였다가 낙선하였고, 이듬해인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재선에 성공하며 8년 임기 종료를 앞둔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1차 투표에서 38.64%를 득표해 결선에 진출한 후 2차 결선투표에서 의회 의장 출신인 미예곰빙 엥흐볼드 인민당 후보를 누르고 55.15%를 득표하며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여론이 엥흐볼드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음에도 깜짝 승리를 거두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요인으로는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이를 청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점, 정치개혁과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앞세워 중산층과 서민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점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인민당이 의회 원내에서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어 총리 선출권과 내각 구성권을 쥐고 있기에 사실상 동거정부 상태를 이어가게 되면서 권한 행사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을 맞이했으나, 최초 발생국인 중국과 무려 5,000km나 국경을 맞대고 있음에도 집단 감염 등의 큰 피해를 따로 겪지 않고 지나갔다. 물론 고비 사막이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고 있어 남부 국경을 통한 인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덕이 크고, 초기부터 통행 제한과 개학 연기 등 강경한 봉쇄 정책 시행의 결과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외국 국가원수였는데, 몽골로 귀국한 뒤 예방 조치 차원에서 14일간 자가격리를 했다.#

2020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면담하고 한국의 벤처 창업 비결을 배워 도입하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는 장관과 국가원수의 일대일 협의로 주목받았다.#

2020년 총선에서 전체 76석 중 무려 62석을 차지하며 의회를 장악한 인민당이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에서 6년 단임으로 바꾸는 개헌안을 통과시켜버렸고, 이 때문에 2021년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해당 개헌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4월 19일 인민당을 해산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나 모두 무위에 그쳤으며, 법정 소송까지 간 끝에 법원이 인민당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재선 도전이 좌절되었다.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선 서드넘존도잉 에르덴(Содномзундуйн Эрдэнэ) 당대표가 6.37%라는 처참한 득표율로 낙선하고, 인민당오흐나깅 후렐수흐 후보가 72.02%를 득표하며 압도적인 표차로 결선투표 없이 당선되면서 자신의 재선 도전을 막은 인민당이 정권을 교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특히 후렐수흐 당선인은 자신의 대통령 재임 중 동거정부의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었으므로 더더욱 씁쓸함이 컸을 듯하다.

2021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연임 제한 탓에 4년 단임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퇴임 이후 민주당 대표가 되어 제1야당을 이끌게 되었다. 다만 의회에서 인민당의 의석점유율이 압도적이라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

2022년 중국에 수출하려던 석탄 650만 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부패 스캔들이 터졌는데, 여기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수 (득표율)
2차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7
제5대 몽골 대통령 선거
몽골

517,478 (38.64%)
611,226 (55.15%)
당선 (1위)



4. 기타[편집]


  • 키는 작은 편이다. 170cm인 푸틴보다 작으니 160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스포츠 선수였던 경력에 걸맞은 몸매를 아직도 유지 중이다.

  • 몽골 유도협회 회장도 맡았다.

  • 찬찬히 살펴보면 나름 입지전적스런 인물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 → 예술인 → 스포츠 국가대표 → 사업가 → 정치인 → 국가원수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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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0cm인 푸틴보다 작으니 160대 중반으로 추정된다.[2] 러시아 국적자다.[3] 참고로 몽골 이름은 '부계명 + 자기 이름'이며 '-ийн'은 소유격이므로 직역하면 '할트마의(자식인~) 바트톨가'이다. 국내외 외교문서 등에서는 몽골식 표현인 '할트마깅 바트톨가(Khaltmaagiin Battulga)'를 그대로 표기하며, 현재 한국에선 이름에 소유격을 넣지 않으므로 한국식 이름표기로는 '할트마 바트톨가'가 맞다.[4] 이름 관련해 '할트마 바툴가'라는 표기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할트마' 부분은 몽골 어법으로는 '할트마깅'으로 적는 게 맞으나, 한국식 이름 표기법으로는 '할트마'라고 적을 수도 있다. 다만 '바툴가'는 틀린 표기인데, 몽골 문자몽골식 키릴 문자 체계에서 'у'와 'ү'는 다르며 전자는 'u'(오)로, 후자는 'ü'(우)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툴가'가 아닌 '바톨가' 혹은 '바트톨가'라고 적는 것이 어법상 맞다.[5] 울란바토르는 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온다는 한여름 8월의 평균 강수량도 70mm밖에 안 되는 곳이다. 홍수 재난은 이후 2009년에 다시 한 차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