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병춘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관료, 법학자.
2. 생애[편집]
1932년에 경성부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과 고숙원 사이에서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1]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나 노스웨스턴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59년에 하버드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에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70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외교안보 담당 특별보좌관 및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이 되어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였다. 1974년에 주미대사로 부임하였다. 주미대사로서 코리아게이트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0.26 사태 이후 다시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복직하였다. 그러다가 1982년 6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에 의해 이범석의 뒤를 이어 제5공화국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1983년 10월 9일에 버마에서 일어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순직하였으며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2]
3. 여담[편집]
-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80년대를 움직일 세계의 100대 인물'로 선정하였다.
- 장남 함재봉도 1992년부터 부친의 뒤를 이어 연세대학교에서 13년 동안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사상 전공)로 재직했으며, 아산정책연구원[3] 에서 원장을 거쳐 이사장직을 역임하였다. 차남 함재학은 법철학 전공으로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5 21:47:45에 나무위키 함병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버지 함태영이 무려 60이 되어서 본 아들이다. 함병춘의 큰형인 함병철보다 43세가 어리고, 장조카 함인섭보다는 25세가 어리며, 종손자 함양호보다도 1살 어리다. 아버지 함태영은 92세까지 장수해서 60살이나 차이나는 막내아들이 성인이 되고 교수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것까지 보았다.[2] 아버지도 국민장으로 장례가 엄수된 바 있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부자(父子)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진 유일한 사례다. 관련 기사[3] 정몽준 전 의원이 부친 정주영 회장의 아호 '아산'에서 이름을 따 설립하였고, 수년 동안 국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 및 정책 싱크탱크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