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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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ball

파일:/image/003/2011/02/27/NISI20110227_0004147220_web.jpg

을 시도하는 핸드볼 선수.[1]
스포츠 정보
종류
구기
참여 인원
7명(정규)
11명(특수)
종주국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신체 접촉
가능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남성부: 1972년
여성부: 1976년

1. 개요
2. 연혁
3. 규칙
4. 대한민국에서의 위치
4.1. 편파 판정의 희생양
4.2. 대한민국의 대회
5. 대한민국의 핸드볼 구단
5.1. 남자부
5.2. 여자부
6. 기타
7. 언어별 명칭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heh1Ctx.gif
EHF Euro 2014에서의 득점 장면.[2]

구기 종목 중 하나. 손으로 상대의 골문에 공을 넣는 경기다.


2. 연혁[편집]


핸드볼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상대팀의 공을 빼앗아 골에 던져넣는 경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1915년 독일에서 여성 종목으로 처음 등장했다.[3] 이후 각국에 퍼졌으며, 남성 경기도 생기게 되었고, 주로 실외에서 하는 11인제와 실내에서 하는 7인제가 별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외에서 하는 11인제를 더 많이 했다. 1920년에는 정식으로 통일된 규칙이 제정되었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11인제 핸드볼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 종목에 합류했다. 이후 올림픽에서 빠졌고, 11인제 핸드볼은 쇠퇴했다. 대신 실내에서 하는 7인제 핸드볼이 독일과 유럽 북부, 중부, 동부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다시 독일에서 열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4][5]

독일에서 발전한 만큼 독일이 종주국 위치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핸드볼 최강국인 것은 아니다. 최근 국제 대회를 보면 남자부 결승은 거의 프랑스 vs 결승에 올라온 상대국이라서 사실상 프랑스가 최강국이다. 여자부는 노르웨이가 오래된 전통의 강호이다. 대한민국은 여자부가 상위권을 오르내리는 팀으로 비유럽권으로는 최초로 1995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였고 또한 1988, 1992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강팀이다.[6]

국내 리그가 많이 활성된 나라는 대체로 중부, 동부, 북부 유럽이다. 남자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과 스페인 리그의 위상이 가히 넘사벽이라 EHF 챔피언스리그를 보면 4강 중에서 최소 3팀은 항상 독일 아니면 스페인 팀이었고, EHF 컵에서는 독일 팀들이 무려 10연패를 기록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헝가리나 프랑스의 팀들이 치고 올라와서 춘추전국시대. 하지만 EHF 컵은 아직도 독일 팀들이 독주하고 있다. 남자부에서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가 8회로 챔스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명문팀이다. 여자는 한때 덴마크리그의 위상이 독보적이었으나, 지금은 여기도 춘추전국이다. 여자부에서는 신흥 강호인 헝가리의 Győri ETO KC라는 팀이 현재 최강의 팀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축구 못지 않은 인기 스포츠로 거의 국기 수준이며,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실내스포츠로서는 농구 다음으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서 유난히 인기가 있고 실력도 좋은 편이라 인구가 56,344명인 그린란드에서도 국가대표팀이 세계선수권에 나오기도 했으며,[7] 인구가 318,452명인 아이슬란드의 남자 국가대표팀은 올림픽에서 은메달까지 땄다.[8]

또한 같은 유럽국가라도 나라에 따라 사정이 많이 다르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영국[9], 이탈리아[10], 핀란드[11]에서는 핸드볼을 잘 하지 않는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선 남자부는 프랑스가 2회연속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스웨덴이 은메달, 크로아티아가 동메달을 받았다. 여자부는 노르웨이가 금메달, 몬테네그로가 은메달, 스페인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성적은 4위.

참고로 핸드볼이라는 종목은 특정 국가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7인제 실내경기 외의 다른 바리에이션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영어로 쓸 경우 혼동이 없도록 7인제 실내경기는 팀 핸드볼이나 올림픽 핸드볼을 쓴다. 미국에는 아메리칸 핸드볼, 호주에는 오스트레일리안 핸드볼, 아일랜드에는 게일릭 핸드볼이라는 스포츠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핸드볼과는 별개로 라켓 대신 손을 쓰는 스쿼시나 다름없는 스포츠이다. 체코식 핸드볼과 프리지아식 핸드볼은 위에서 서술한 11인식 실외 핸드볼과 유사하다.


3. 규칙[편집]


7인제와 11인제가 있으나, 정식 경기는 7인제로 수행된다. 골키퍼 1인이 골대를 지키며 다른 6인은 손으로 공을 땅에 튕겨 뛰어다니면서 공격을 수행한다. 선수 교체는 무제한이며 상황에 따라 중간에 골키퍼를 빼고 일반선수를 대신 집어넣을 수 있다.

주요 포지션은 골키퍼, 레프트백(LB), 라이트백(RB), 센터백(CB), 레프트윙(LW), 라이트윙(RW), 피벗(PV)이 있으며, 전술에 따라서 역할이 바뀔 경우도 있다. 보통은 2-2의 전술 형식을 쓴다.

경기는 센터라인 한가운데에서 드로 오프로 시행하며, 절대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뜬 채로 전개하면 안 된다.

드리블 방식은 농구, 득점 방식은 수구와 흡사한 점이 많은 종목으로, 공을 가지고 3발자국까지는 뛰거나 걸을 수 있으나, 그 이상으로 뛰면 오버 스텝을 선언하는데, 농구의 트래블링과 같은 실책이다. 그래서 실책을 기록하면 농구와 더불어서 턴 오버 기록을 남긴다.

경기 시간은 전후반 30분씩으로 추가시간은 없다. 농구와는 달리 샷 클락 바이얼레이션은 없으나 공을 든 채로 시간을 너무 끌면 경기 진행이 안 되므로 빨리 하라고 주의를 주며, 그래도 안 하면 공을 강제로 상대팀에게 넘기는 페널티가 주어진다.

골대 코앞에서 공을 쏘아넣으면 득점이 너무 쉬워(?) 골 에어리어에는 공격측은 물론이고 수비측도 오직 골키퍼 외에는 아무도 발을 넣으면 안 된다. 만약 공격측이 침범하면 수비측의 프리 스로, 수비측이 침범하면 공격측의 페널티 스로가 선언된다. 다만 그 구역 지면에 닿지만 않으면 되므로, 그 구역에 떠 있는 건 문제가 없다. 그래서 그 구역으로 다이빙하면서 착지 전에 슈팅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12]

위험한 반칙을 한 선수에게는 2분간 퇴장을 명할 수 있다. 한 경기에서 2분간 퇴장을 3번 받은 선수는 실격당해 그 경기에서 더는 뛸 수 없다.

고의로 다른 선수의 얼굴을 향해 공을 던지는 행위는 엄금되어 있고, 이는 퇴장뿐 아니라 경기가 끝난 후 높은 확률로 별도의 징계를 받게 된다. 또한 방어가 어렵도록 골키퍼의 어깨보다 조금 위쪽을 지나가게 하려는 궤적의 슈팅이 흔한 전법이었는데 이 때문에 골키퍼가 목이나 얼굴 같은 곳에 강속구를 맞고 다치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자 국제핸드볼연맹이 2022년 들어서부터는 고의성 여부에 관계없이 공이 골키퍼의 머리에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던진 선수에게 2분 퇴장을 적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4. 대한민국에서의 위치[편집]


대한민국올림픽, 특히 아시안 게임에서의 효자종목.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에 대한 심판들의 견제가 매우 센 종목이다.[13] 그러나 올림픽 시즌 한철 관심을 제외하고는 관심 가져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핸드볼은 시즌이 4년마다 온다는 눈물나는 소리까지 듣는다. 이렇게 무관심 속에서 한다고 얻은 이명이 한데볼[14]이었다.

여자부의 경우 특히 올림픽에서 강세를 보였는데,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 런던 올림픽까지 모두 4강에 드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 24년 동안 금메달 2개[15],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기록했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는 2000 시드니 올림픽2012 런던 올림픽의 경우. 모두 4위를 차지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앞세운 남미세가 유럽과 실력을 견주는 축구, 대한민국과 일본과 대만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세와 미국, 멕시코,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대표되는 북중미세가 양분하고 있는 야구, 미국이 종주국인 농구배구, 영연방 국가인 인도와 호주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필드하키와는 달리 핸드볼은 유럽의 텃세가 매우 심하다. 유럽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심판진이 대한민국과 겨루었던 덴마크에 노골적으로 유리한 편파판정을 일삼았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편파판정은 이 대회뿐만 아니라 세계 체조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남은 체조 남자 개인종합 양태영 오심 논란[16]에 가려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정도로 유럽세의 입김이 센 핸드볼에서 대한민국 여자 팀이 유럽에서 열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비롯하여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선수층도 두텁고 피지컬도 월등한 유럽팀들을 상대로 8회 연속 올림픽 4강에 진출한 것은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대단한 업적이다.

남자부의 경우는 1988 서울 올림픽 은메달이 올림픽에서 기록한 유일한 메달이다.

올림픽에서의 실력에 비해 관심가져주는 사람이 없는 종목.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일명: 우생순)'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에 나갈 국가대표 팀을 만든다고 은퇴한 선수까지 박박 긁어모아야 했던 것은 공포의 외인구단류의 은거 중인 고수를 찾는 배부른 짓이 아니라 그런 사정 때문인 것이다.

스피디한 진행에 많은 득점이 한국인들 정서에 잘 부합함에도 당최 흥행이 되지 않는데, 그 원인은 1950년대~1960년대 한국의 초기 인기스포츠가 형성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직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르던 상황에서 내셔널리즘을 등에 업고 '일본을 꺾었다.'는 카타르시스를 준 종목(축구, 야구, 복싱)을 중심으로 초기 인기스포츠가 정립되면서 그 수혜을 입지 못한 종목은 세월이 지나며 완전한 비인기종목으로 굴러떨어져 버린 것. 또한 핸드볼과 마찬가지로 공격권이 자주 오며 스피디한 진행에 많은 득점이 나는 종목인 농구가 이미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아버린 것도 크다.[17]

남자대표팀은 아시아 최강에 세계 하위권 클래스,[18] 여자대표팀은 아시아 경기에선 지는 일 보기가 무지 힘들고, 세계 대회에서도 세계 중위권 클래스. 사실 이것도 세계 탑 클래스였다가 선수층이 얇아지고 대표팀이 노쇠화되면서 중위권으로 내려온 거다. 여전히 세계선수권의 1차 라운드는 가뿐히 통과한다.[19]

남자팀은 1980~1990년대 아시아 대회를 휩쓸면서 아시아 최강국 위치에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세대교체에 실패하여 과도기를 겪으며 휘청했으나, 대표팀에 복귀한 노장 윤경신의 분전을 앞세워 다시 아시아 맹주로 복귀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얇아진 선수층으로 인해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 그와 동시에 중동국가들이 2010년대 들어서 기량이 부쩍 성장하며 아시아 최강국의 자리를 내주고 메달권 진입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여자부의 경우 아시아에서는 2018년까지 총 17회 열린 아시아 여자 챔피언십에서 우승 14회, 준우승 2회, 3위 1회다. 17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이기지 못한 경기라고 1무 4패가 전부.[20] 아시안게임에서도 8개 대회 중 7개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아시아에선 그냥 존재 자체가 깡패.

리그가 발달한 옆 나라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뛰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많다.[21] 그만큼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은 인정받고 있다.

핸드볼 세계대회는 유럽대회+승점 자판기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매우 심하다. 아무래도 유럽 국가 위주로 핸드볼이 발전했고, 전파도 여타 종목에 비해 늦었으니. 비 유럽권팀들이 유럽팀들에게 이기는 거 자체를 보기가 매우 드물다.[22] 그런데 그 유럽팀들이랑 대등하게 싸우며 세계대회의 구색을 맞춰주는 유일한 비유럽권 국가가 바로 한국.[23] 역대 올림픽 메달을 받은 나라에서 유일한 비유럽 나라도 한국으로 금 2, 은 4, 동1로 역대 핸드볼 올림픽 메달순위 4위를 지키고 있다. 그 외 비유럽권 메달국가는 중국 하나 뿐인데 동메달 1개다.

비인기 종목으로 찬밥 신세를 받긴 하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을 통하여 올드 팬들과 새로이 핸드볼의 매력을 느낀 이들이 모여 매니아층이 형성되었고 무한도전에서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나옴과 동시에 거의 전 경기를 비춰줌으로서 핸드볼에 대한 홍보가 되고, 동시에 무한도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인 핸드볼에 대한 재조명을 주었다는 찬사를 받으며[24] 상부상조를 이루기도 했다.

협회장으로 영입한 SK그룹 등 기업에서도 핸드볼에 대한 홍보를 하는 형태로 노력은 많이 하는데 국민들에게 그렇게 큰 인지도를 내지 못하는건 조금 아쉬운 부분. 그래도 (대표적인 케이스로 김온아 선수 같은) 젊고 실력있는 선수들이 새롭게 각광 받으며 언론도 타고 생겨난 팬들이 그대로 핸드볼 팬들이 되는 등, 여러가지 좋은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워낙 핸드볼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핸드볼 실업팀 경기를 찾아가서 보기도 쉽지 않다. 이 점도 개선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 중. 야금야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 SK그룹의 후원으로 올림픽 공원에 핸드볼 전용경기장이 생기고, 2013년을 목표로 세미 프로로 전환할 계획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선수층 자체가 얇아진다는 점이다. 그 문제가 드러난 것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여자부는 일본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하며, 오래도록 놓치지 않았던 금메달을 내줬다. 남자는 금메달을 무난하게 차지하기는 했지만, 대표팀에 38세의 윤경신이 다시 복귀해야 할 정도로 선수층이 두껍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모처럼 자금 지원을 받는 핸드볼의 인기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아쉽긴 해도 여자부가 4강에 진출했는데 남자부는 8강에 가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리고 2014년 1월~2월에 열린 바레인 아시아 선수권에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이란, 바레인과 함께 치른 A조 예선에서 3승1무1패 승점 7점을 기록했다. 중국, 우즈벡, 사우디아라비아는 이겼고, 이란과는 12-12로 겨우 막판에 비겼다. 바레인에는 1점 차로 아쉽게 졌다. 이란이 2승3무를 기록, 2무를 1승으로 집계하는 대회 방식에 따라 한국과 승점 7점 동률을 이뤘다. 승점이 같을 경우 따지는 승자승에서도 한국과 이란이 비겨 다득점을 다시 적용했고, 이란이 앞서 한국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조 예선, 한국 선수단은 조별리그 최종전 상대인 사우디에 28-24로 힘겨운 승리를 거둔 뒤 마지막 바레인-이란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바레인이 이란을 잡을 경우 조2위 4강행이 가능했지만, 두 나라는 짬짜미를 의심케 하는 주거니 받거니 플레이를 거듭한 끝에 30-30로 경기를 마쳤다. 바레인은 4승1무로 조 1위를 확정지었고, 이란도 조 2위로 4강에 올라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한국은 5~8위 결정전으로 내려앉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유럽 귀화파가 다수를 이룬 카타르에게 패하여 남자 핸드볼은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여자 핸드볼은 일본을 가볍게 이기고 4년전 일본전 패배를 설욕하며 금메달을 받긴 했다.[25]

한국 여자 핸드볼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대회까지 올림픽 8회 연속 4강 진출의 성적을 내왔으나 드디어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조별 리그에서 1무 3패를 거두며 마지막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특히 프랑스전에서는 후반 15분간 득점조차 못했다. 선수들도 부진했다 뭐나 말도 많지만 무려 45살의 오영란, 39세의 우선희를 다시 불러들일 정도로 선수층 감소 및 여러 모로 여태껏 하던 성적이 잘했던 거였다.

역대 올림픽 성적 https://en.wikipedia.org/wiki/Handball_at_the_Summer_Olympics

역시 대단한 점인데, 한국이 금메달순으로 5위[26], 전체 토탈로 보면 프랑스, 노르웨이와 함께 공동 1위를 하는 성적이다. 아시안게임도 금메달 1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말그대로 독식했다. 애초에 메달을 2006년 도하 대회때 4위 했을때 빼고는 모든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으니... 특히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참으로 얄미울수도 있는게, 아직 금메달이 없이 은메달만 6개, 동메달 5개인데 한국팀에게 5번이나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참고로 남자 핸드볼은 98년 방콕, 여자 핸드볼은 2006년 도하때부터 토너먼트로 메달을 가리기 시작했다. 앞에 명기한 대회 전까지는 플레이오프 없이 조별 성적으로 우승팀을 가렸다.핸드볼은 안타깝게도 잘하면 이상하게 인기 종목이 잘해서 묻힌다. 핸드볼 최고 명경기로 꼽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는 하필이면 축구가 기적으로 8강에 진출하며 묻혔고 2008년 베이징때는 동메달을 땄지만 하필이면 야구가 전승 금메달을 따며 묻혔고 런던 올림픽역시 축구가 라이벌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따며 묻혔다.

청소년 핸드볼의 경우 2014년 난징 하계청소년올림픽에서 여자 대표팀이 러시아를 32대 3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국내 여자 핸드볼대회에선 82 대 0이라는 믿기 힘든 스코어가 나오기까지 했다. 위덕대학교 핸드볼팀과 대구시청팀의 경기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위덕대학교 핸드볼팀은 전문적인 선수들이 뛰는 팀이 아니어서 이런 점수차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2021년에 대한민국 군대, 육군훈련소에 의해 전도유망한 핸드볼 선수 한 명을 잃었다. 전도유망한 국가대표 출신의 핸드볼 선수 정재완이 군에 입대한 뒤 부상을 당했지만, 훈련소 측의 부실한 대응으로 선수 생명마저 위태롭게 됐다. 훈련소 측은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지만, 핸드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젊은 유망주는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금메달 꿈 앗아간 軍 훈련소...국가대표 선수의 '눈물'

2022년에는 U-18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비유럽국가 최초로 18세 이하 세계선수권을 우승하면서 핸드볼협회 측에서 포상금을 지급했다.# 이어서 U-18 남자부에서도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청소년핸드볼선수권에서 이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4.1. 편파 판정의 희생양[편집]


중동 국가들의 기름칠 정도가 축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심해서[27] 한국이 피해를 많이 보는 편이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남자 핸드볼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보여준 중동심판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이 대표적인 예로, 상대팀 선수조차 편파판정이란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 정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핸드볼을 네이버에 쳐보면 그 당시의 분노가 실린 글들을 아직도 볼 수 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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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어이상실을 넘어 득도와 초탈의 경지에 이른 해설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때 중계를 맡은 최승돈 아나운서의 주옥같은 말들은 최승돈 어록으로 불려지면서 편파판정으로 분노한 국민들의 답답한 속을 어느정도 긁어주기도 하였다.

물론 저런 중동 팀들은 아시아에선 통할지 몰라도 정작 세계 대회 나오면 그냥 동네북된다. 그리고 이 장면이 전세계에 전파를 타면서 IOC가 이 따위로 예선 운영을 하면 핸드볼을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일까지 생겨서 현재는 그렇게까지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후 중동 팀이 유럽 및 아프리카 귀화선수들로 다수를 이루면서 실력면에서도 높아져서 상대하기 어려워졌다. 대한민국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핸드볼에서는 금메달을 땄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은 은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은 동메달에 그쳤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카타르에 밀려서.....

여담이지만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남자 핸드볼 결승전이 바로 대한민국-쿠웨이트 대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란 출신 심판들이 계속 쿠웨이트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편파 판정을 하면서 고전했다. 그러나 편파 판정을 보다 못한 관중들이 물병을 집어던졌다. 심판들의 휘슬이 조금 잦아들었고 결국엔 우승.[29] 참고로 이 때 장소가 바로 창원실내체육관.


4.2. 대한민국의 대회[편집]




4.2.1. 핸드볼 H리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핸드볼 H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대한민국의 핸드볼 구단[편집]


대부분 시청이나 공사에서 운영하는 구단이다. 실업 구단은 남자부에는 두산과 SK 호크스, 여자부에서는 SK 슈가글라이더즈 정도다. 2015 시즌을 끝으로 웰컴론크레디트 코로사가 해체되면서 남자부의 운영에 파행이 예상되었으나 SK그룹에서 새로 SK 하이닉스를 창단해 겨우 위기를 넘겼다.


5.1. 남자부[편집]




5.2. 여자부[편집]




6. 기타[편집]


  • 해변에서 하는 핸드볼은 비치핸드볼이라 부른다. 월드 게임의 종목이다.


7. 언어별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핸드볼
영어
Handball
중국어
手球(Shǒuqiú
일본어
ハンドボール
送球(そうきゅう
베트남어
䏾𢷁(Bóng Ném
러시아어
Гандбол
프랑스어
Handball
스페인어
Balonmano
아랍어
كرة اليد
에스페란토
Manpilko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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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2월 27일 광명시민체육관에서 열린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결승전. 두산 베어스 박중규, 인천도시개발공사 박찬용이다.[2] 득점자는 핸드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는 덴마크의 미켈 한센(Mikkel Hansen)이다.[3] 스웨덴에서도 이미 1910년에 소개된 바 있으나 경기 종목으로 발전되지는 않았다.[4] 핸드볼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도 독일의 강력한 지지덕분이었다.[5] 11인제 핸드볼은 필드핸드볼(field handball) 또는 올드핸드볼(old handball)이라고 부른다. 축구경기장과 동일한 너비와 축구장 보다 좌우폭이 10m 정도 짧은 실외 잔디구장에서 경기를 하며 골대도 축구 골대와 동일한 크기의 골대를 사용한다. 즉 축구장에서 하는 핸드볼경기라고 보면 되고 실제로 축구장에서 금 그어놓고 경기를 했다. 이 반대의 경우가 기존 실내핸드볼경기장과 동일한 규격의 경기장을 쓰는 풋살이 있다.[6] 이제는 브라질의 여자핸드볼도 많이 발전했다. 브라질은 2011 세계선수권 8강, 2012 런던 올림픽 8강, 2013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했는데, 한국에 이어 두번째 비유럽 세계선수권 우승이다. 그리고 2016년 올림픽은 브라질도시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7] 그린란드는 남자 세계선수권에 2001년, 2003년, 2007년 세 차례 나왔다. 2001년에는 20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미국에 이기기도 했다. 미국이 꼴찌(24위)를 했다.[8]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 결승전에서 핸드볼 인구가 200배 정도 많은 프랑스를 상대로 싸워 23대 28로 져 은메달을 땄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남자부 출전권을 획득하여 참가하여, 예선에서 프랑스, 스웨덴까지 이기며 전승을 기록하였으나, 8강전에서 헝가리에 1점차로 져 탈락하고 말았다.[9] 원래 이 7인제 핸드볼은 유럽 대륙 국가에서 발전하여 영어권 국가에서는 즐기지 않는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개최국이므로 7인제 핸드볼 올림픽 정식 채택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나, 애초부터 타 국가 팀과 실력차가 너무 나서 승점자판기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결국 예상대로, 남녀 모두 전 경기를 큰 점수차로 지고 광탈[10] 배구, 농구 등이 우세하면서 핸드볼을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리그는 3부리그까지 구성되어있다.[11] 아이스하키가 워낙 인기 있는 나라라 핸드볼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스웨덴이나 러시아도 아이스하키가 인기 있는데 핸드볼도 많이 하는 것을 보면 특별한 관계는 없는 듯.[12] 물론 발이 먼저 땅에 닿은 뒤에 공이 손을 떠나면 그 볼은 골인이 되더라도 무효다. 규정이 규정이라서 떠있는 상태로 들어가지 않은 볼을 팁인하는것도 가능하다.[13] 여자 대표팀의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 모두 심판들의 미심쩍고 이해할 수 없는 편파 판정과 오심들로 얼룩져 있다.[14] '한데에 나앉다.' 할 때 그 '한데'이다.[15] 여자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 전부이기도 하다. 또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이후 남녀 불문하고 단체 구기 금메달이 16년간 나오지 않았다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야구대표팀이 금메달을 따게 된다.[16] 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선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양태영이 평행봉 연기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0.1점을 손해보는 바람에 동메달에 그친 올림픽 체조 사상 전대미문의 편파판정 사건. 이 종목에서 미국의 폴 햄은 도마 연기에서 착지하다 심판석까지 굴러 떨어지는 큰 실수를 했는데도 10점 만점에 9점대라는 아주 후한 점수를 받은 데 힘입어 양태영을 제치고 금메달을 가져갔다. 이 논란이 얼마나 장난이 아니었냐 하면 양태영 오심사건 며칠 후 역도 여자 무제한급의 장미란이 라이벌 중국의 탕궁홍에 대한 석연치 않은 성공 판정으로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친 것과 육상 남자 마라톤에서 레이스 종반까지 압도적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희대의 관중난입으로 동메달에 그친 사건이 제대로 묻혔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 전대미문의 체조 오심 파문으로 2005년부터 체조 경기에서 10점 만점제가 폐지되었다.[17] 특히 농구같은 경우는 90년대 농구대잔치 흥행과 슬램덩크, 마지막 승부의 영향으로 인기가 많았다. 농구는 3점슛, 덩크, 더블클러치같이 화려함과 박진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슬픈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구기종목 월드클래스급 선수인 윤경신의 인지도가 허재, 서장훈보다도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만큼 농구는 시대의 흐름을 매우 탔다는 소리다.[18] 다만 2010년대 들어서는 중동의 입김, 기존 선수들의 노쇠화 등으로 경기 내용 면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이 줄어들고 있다.[19] 단적인 예로, 2019년 구마모토 세계선수권 1라운드에서 2017대회 우승팀, 즉 디펜딩챔피언 프랑스, 2013대회 우승팀 브라질을 잡아버리고 덴마크, 독일이라는 또 다른 강호와 무승부를 하며 조 1위로 결선라운드에 올라가는 포스를 발휘했다. 다만, 한국 대표팀의 고질적 문제인 노쇠화와 이에 따른 체력부족으로 결선라운드에서 3전패로 탈락. 사실, 한국 여자대표팀은 1993년 대회 이후 매번 1라운드 조별리그는 별 무리없이 통과하고 있다.[20] 일본에 1무 1패, 중국에 1패, 카자흐스탄에 2패[21] 남자부로 대표하면 독일에서 뛰었던 레전드 윤경신, 여자부는 일본에서 지도자로도 활동했던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이나 루마니아팀에서 활약했던 우선희 선수 등.[22] 아울러 오심이나 편파 판정도 상당하다. 몸으로 수비벽을 돌파해서 슛을 날려야 하는 특성 때문에 심판의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아주 많다.[23] 이제는 브라질도 무시 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브라질이 2013년 여자 핸드볼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했는데, 이는 한국에 이어 두 번째 비유럽팀 우승이다. 한국은 1995년 여자 핸드볼 세계선수권 우승. [24] 물론 핸드볼 팀만 비춰준 건 아니지만 임오경 현 서울시청팀 감독까지 출연하며 멤버들에게 핸드볼 상식 퀴즈를 내기도 했었다.[25] 여자 핸드볼은 남자팀과 대결하는 방식으로 유럽, 중동선수들의 우수한 피지컬에 대응하는 훈련을 할 수 있지만 남자팀은 그게 안돼서 문제.[26] 그나마도 상위 소련 , 유고슬라비아는 현재는 없어진 국가 연합이다.[27] 쿠웨이트 왕자가 아시아 핸드볼 연맹 회장이다.[28] 1982년 축구 월드컵 예선에서도 터무니없는 판정으로 쿠웨이트에 패배하며 탈락한 일이 있다. 본래 판정이라는 게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쳐도, 불가능한 반칙이 나온다는 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더불어 쿠웨이트의 경우는 최근에 위원회 선거에 정부가 간섭했다가 IOC에서 자격 정지를 당한 일도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29] 만약 IHF(국제핸드볼연맹) 주관 대회였다면 몰수패, 출전정지 등 강도 높은 조치를 당했을 부분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심판의 판정 또한 재경기 조치 등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