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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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내역
2.1. 2002년 이후
3. 멤버 변동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95년, 1999년부터 결성된 힙합 그룹. 리쌍개리을 비롯해 디기리, 브라운아이드걸스미료가 속해 있었던 그룹으로도 알려져 있다.


2. 활동 내역[편집]


1995년 말 허니라는 혼성 힙합 그룹이 데뷔했으며, 멤버는 박명호/광범/미애[1]의 3인이었다.

타이틀곡인 'X라는 아이'[2]는 앞서 서태지가 4집 타이틀곡인 'Come Back Home'으로 불러온 갱스터랩[3] 열풍을 이어나가는 의미도 있었고, 랩 메이킹 일부를 서태지가 담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잠깐 주목을 끄는가 싶었지만 처참하게 망했다.

이후 미애가 떠나면서 허니는 해체했고, 박명호는 홍대 클럽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살아가다가 이주노에게 발탁, 이주노의 지휘하에 스머프와 엑스틴을 거친 개리[4], 역시 엑스틴을 거친 [5], 언더그라운드에서 활약하던 디기리[6], 주라[7], 영풍[8], 수정과 함께 허니 패밀리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다만 개리는 2집까지 활동하고 이후 빠졌으며 길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길, 개리, 디기리를 엮어 리쌈(?)트리오라 불렸다.

앨범이 나오기에 앞서 컴필레이션 앨범인 1999 대한민국에서 Love is blue를 샘플링한 '우리 같이 해요', '랩교' 등의 트랙으로 크게 이름을 알린 허니 패밀리는 같은 1999년 9월에 1집 앨범을 내놓았으며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샘플링한 타이틀곡 '남자 이야기'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영화 댄스 댄스에도 특별출연하였는데, 이 영화는 그들의 1집 앨범 활동기인 9월에 개봉되었다.

2000년에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뮤직 vol.1에 마린 일병 구하기를 냈다. 리믹스 트랙으로 스타크래프트 효과음을 잔뜩 넣은 버전과 라디오 버전으로 효과음을 싹 들어낸 버전이 있다.

멤버였던 미료의 말로는 그 당시 힙합하는 젊은이들에게 허니패밀리와 YG패밀리가 오버그라운드의 양대산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이 패밀리라는 형식으로 인한 외연이 좋아 보여서 그랬던 것도 강하다. 그렇다고 뭐 당시는 언더그라운드 위주였으니 의미가 없다고 하기에는 거의 언제나 그리고 거의 모든 한국 힙합하는 사람들은 오버그라운드를 지향했고, 단지 양적으로 대부분은 오버그라운드까지 못 갔고 언더 안에서 놀았기 때문에 때문에 문법이나 서술이 언더그라운드 위주인 것이다.[9] 오버까지 갔던 사람들이 대중들의 호응을 언더 가수들과는 큰 차이로 얻었기 때문에 오버까지 간 것은 맞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몇몇 특출난 선봉장 역할을 하는 가수들을 제외하고는[10] 음악도 오버에서 하던 사람들이 평균적인 수준이 훨씬 더 높기도 했고.

그리고 수정 대신 미료[11]를 영입하고 2000년에 내놓은 2집 'Another Level'의 타이틀곡 '워워'는 가요 차트 중위권에 드는 등 선전했지만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으며, 이주노의 기획사도 경영미숙으로 문을 닫으면서 허니 패밀리는 잠정적인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이 당시의 허니 패밀리는 하나의 그룹이라기보다는 흡사 우탱클랜 같은 클랜의 개념으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2.1. 2002년 이후[편집]


멤버 중 개리와 길은 따로 '리쌍'이라는 듀오를 결성하여 2002년 1집인 'Leessang of Honey Familly'를 냈으며 타이틀곡인 'Rush'를 시작으로 이후 내는 앨범마다 모두 히트를 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으로 자리잡게 됐다.

독자적인 앨범을 내놓은 것은 비단 리쌍뿐만이 아니고, 같은 시기 리더인 박명호도 클론노이즈 등을 제작한 프로듀서 김창환의 휘하에서 2002년 솔로 앨범을 발매했지만 망했다. 류주환과 함께한 포크풍의 타이틀곡 '사진'이 약간 인기를 끌긴 했지만 말 그대로 약간 수준이었고, 다른 수록곡들의 센스가 너무나도 기괴했다. 무대에서 바바리맨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곡 '투명인간'이 가히 압권. 한편 이 시기 박명호는 당시 같은 김창환 프로듀서의 휘하에 있었던 심태윤에게 랩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그의 앨범에 작사/작곡자로 참여하기도 하였으며,[12]2005년 발표한 클론 5집 앨범에도 작사/작곡가로 참여하는 등 인연을 이어나간다.

다른 멤버인 디기리는 2004년 솔로 앨범을 냈지만 역시 망했다. 게다가 수록곡인 'This Is Diss'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주석이 평소와는 다르게 쌍욕을 써가며 mp3에 대한 독설을 쏟아냈고, 언론에는 이 가사가 디기리가 쓴 가사라고 와전되어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앨범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리쌍을 제외한 허니 패밀리 관련 앨범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히며, 심지어는 국내 최고의 힙합 앨범을 논할 때도 종종 거론되는 비운의 명작 혹은 저주받은 걸작.

2004년 명호와 주라 2인 체제로 3집이 나왔지만 역시 망했고, 2006년 명호, 영풍, 디기리, 주라 4인 체제로 4집을 냈지만 시대에 뒤쳐진 음악이라는 혹평만 들으면서 또 망했다. 남은 건 에로배우들이 대거 출현하여 19금 수위로 찍었다는 수록곡인 '오늘밤 일'의 뮤직비디오 파문뿐.

게다가 디기리가 2008년 쿨케이와 함께 신검에서 괄약근에 힘을 주어[13] 본태성 고혈압으로 인한 4급 판정을 받았다는 게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남자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츄에이션인 재입대를 몸소 겪게 되고 영풍마저 허니 패밀리를 떠나면서 진정 미래가 불투명하게 되었나 싶었더니...

2010년 명호와 주라가 투리와 팬더, MC 창진 세 명의 멤버를 새로 영입, 다시 5인 체제로 정규 5집을 냈다. 4집에 비해 곡들의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지고 사랑노래의 비중이 높아졌다. 역시 망한 듯 하지만

싱글을 간간히 내면서 일단 활동은 계속 해나가고 있다. 별 재미 못 본 5집 이후 객원 형식이었던 세 명은 팀을 나갔고, 2011년 11월에는 다시 명호와 주라 두 명만 남아 R&B 보컬 문명진과 함께 디지털 싱글 '우리 결혼할까요?'를 발표했다.

2012년 1월에는 돌아온 영풍 및 전역한 디기리가 다시 팀에 합류, 일렉트로니카로 선회한 싱글 'Go! Go!'를 발표했다. 특히 왕년의 사장님이었던 이주노가 훅에 참여했지만 나름대로 대범한 외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재미없고 밋밋하다는 평가. 곡에 대해 혹평을 한 네이버 블로거에게 주라 본인이 직접 '글케 졷같나여 ㅋㅋ (에이 일렉 안한다니깐ㅋ)'이라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3. 멤버 변동[편집]


허니 패밀리 멤버 변동
허니
박명호
광범
미애
허니패밀리
주라
영풍
디기리
개리

수정
미료,써니[14]
솔로 전향
리쌈트리오 결성
브라운아이드걸스 결성
박명호
솔로 전향
리쌍 결성
영풍
디기리
MC창진
판다맨
투리
영풍
디기리


4. 관련 문서[편집]


[1] 과거 철이와 미애의 그 미애이며 본명은 김미애. 그 뒤 미국에 가서 2018년 현재는 뉴욕에 거주중이다.[2] 1999년 비(정지훈)가 활동했던 6인조 아이돌 그룹 "팬클럽"이 리메이크했다.하지만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팬클럽은 해체.....[3] 이라고 쓰면 틀린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통용되었다.[4] 본명 강희건[5] 본명 길성준[6] 본명 원신종[7] 본명 손형선[8] 본명 원영풍[9] 언더그라운드 위주의 역사 문법으로 한국힙합을 쓰면 우스운 것이 허니 패밀리의 전신인 허니가 95년 데뷔인 것처럼 언더가 어느 정도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기 한참 전에도 오버에서도 힙합은 활발하게 나오고 있었다.[10]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금방 오버그라운드까지 진출한다. 정말 예외는 가리온 정도.[11] 본명 조미혜, 허니패밀리가 잠정 활동 중단된 이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로 데뷔하게 된다.[12] 2003년에 발표한 심태윤 1.5집에도 박명호 솔로 1집 수록곡인 "울고 있는 너의 모습 보면"을 리메이크해 수록하였으며, 후일 "난 널 사랑해 너만 사랑해"에서도 심태윤과 박명호가 콜라보하기도 하였다.[13] 이로 인해 평소 자신을 지칭하던 '리듬의 마법사' 대신 '괄약근의 마법사'라는 멸칭을 얻게 됐다. 그 뒤 쿨케이와 함께 동반 입대했다.[14] 객원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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